습작

반요(4부) 141

리틀 윙 2020. 1. 5. 02:07

'타에, 유카타의 소매를 뜯으면 소환부 한 장이 있을 거야.'

'누굴 소환하는 건데?'

'나.'

'?'

'단 한 번만 나를 소환할 수 있어. 나 메이코가 어디에 있든간에 네가 위험에 빠지면 도와주러 갈게.'

'필요없어. 난 강하니까!'

'그래도 세상에는 혹시나 하는 일들이 많으니까.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지?'

'뭐…. 어렵지 않으니까, 그 정도는.'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웅웅거리던 주위의 대화소리가 확실하게 들렸다.

 

"고가의 상품이네."

"네, 비싸게 팔리겠군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자, 어두운 방안에 낯선 두 사람이 있었다. 그곳에는 그 둘을 제외하면 타에 뿐이었다. 

 

"벌써 깨어난 건가."

"네?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마비향을 쓰면 이렇게 금방 눈을 뜨더군."

 

마비향…. 낭떨어지에 밀린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유지하라는 고모의 말과 초조한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할아버지 말을 따라 타에는 침착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상황에서 친구들을 걱정하는 건가?"

"친구? 아, 같이 잡혀온 여자애들을 말하는거군요."

 

중년 남자는 쯧쯧 혀를 찼다. 둘 다 동정하거나 돕고 싶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놀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무적으로 말한 거였다. 약에 취했는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좀 참게. 약 때문에 움직여봤자 그쪽만 손해야. 그리고 우리도 상품에 상처가 나면 큰일이니까."

"또…."

 

상품. 참으로 귀에 거슬리는 단어다.

 

"내 친구들은?"

"대답해주면 얌전해질 텐가?"

"그거야 대답에 달린 거고."

"성깔 있는 아가씨였구먼 그래. 가르쳐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

 

험악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자 나이 든 남자는 젊은 남자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젊은 남자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철 같은 것을 넘겨주었다. 중년의 남성은 받아든 차트를 팔랑팔랑 뒤로 넘겼다.

 

"휴우가는 그렇다 치고, 다른 두 명은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았군. 백안은 작업이 필요하니 시간이 좀 걸리지만 다른 여자애들과 넌 오늘 밤에 팔리게 되어있다."

"팔린다고…?"

 

인신 매매단…?

 

"그래. 셋 다 제법 값이 될 것 같군. 정발 대박이지 뭔가. 특히나 휴우가 종가의 상품이 들어온 건 흔치 않는 기회지. 분명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을 거야."

 

남자는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카린! 우즈마키 카린!"

"붉은 머리! 그 우즈마키인가. 그녀는 좀 다르게 사용될 거다. 11년 전에 이 조직을 거의 괴멸로 몰아간 그 꼬마여자랑 같은 일족이니까!"

 

조직? 지하 경매장! 특이한 체질, 동술이나 혈계한계의 능력을 가진 일족의 사람들, 혹은 비전 인술의 두루마리, 희귀한 보구, 독과 마약, 심지어 유명한 닌자의 사체까지 온갖 것이 다 거래되는 곳. 환전소처럼 자하 경제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곳도 있는 반면, 위치를 옮겨 다니며 게릴라로 열리는 경매장도 있었다. 아마 그 한가운데에 타의로 발을 들이고 만 것 같았다.

 


"이제 백안 안구를 적출하러 작업하러 가지."

"네."

 

…뭐? 타에의 경악을 눈치채지 못한 채 두 사람은 아무 경계 없이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은 왜 뽑는답니까. 연구재료로 쓸 거면 온전한 상태가 낫잖습니까?"

"그 백안 아가씨는 눈도 눈이지만 다른 부분도 훌륭하거든."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단련이 잘 된 어리고 튼튼하고 예쁜 여자애가 필요한 녀석들이 많다는 거지."

"아. 이 방에 있는 아가씨처럼 말이죠?"

"그렇지. 눈만 경매에 부치고 나면 몸만 따로 팔릴걸세."

"개소리 작작 해. 미친놈들아!"

 

타에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약물에 취한 몸은 되려 남자들에게 퍼억 맞았다. 

 

"얌전히 있으라니까. 상품에 흠집을 만들었잖아."

 

맞은 뺨이 욱씬욱씬 아파왔다. 

 


"교육이 필요한 것 같군."

 

중년 남성의 말에 젊은 남자가 움직였다. 타에는 엉덩이걸음으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에 공포감이 배로 불어났다. 적어도 쿠나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무기가 있다. 메이코의 소환술. 다행이도 유카타 그대로 입고 있었다. 

 

'차크라를 날카롭게 해서, 베는 이미지야.'

 

손에 차크라를 두르고-마비향 때문에 컨트롤이 꽤 불안정했기에 시간이 꽤 걸렸다- 소매의 밑단을 잘랐다. 

 

"어떤 발버둥도 헛수고야."

 

아주 작은 틈을 뒤적거리고 타에는 종이를 붙잡고 꺼냈다. 그러자 펑,하고 소환 연기가 피워올랐다.

 

"어?"

"!"

 

흰 연기가 사라지자 보이는 금발의 여성…!!!

 

"메이코…가 시에미…였던 거야?"

 

타에가 충격받은 목소리에 멘마, 아니 시에미의 눈동자가 부릅 떠졌다. 

 

"하필 이때 돌아오다니."

 

조금 더 늦게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시에미는 혀를 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지하 경매장…. 11년 전 괴멸까지 몰았는데. 아직도 운영하고 있을 줄이야."

"너는!"

"내 동료들은 돌려받겠어.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너희들 전원 괴멸시키겠어."

 

시에미는 둘을 패서 기절시켰다. 

 


"타에, 괜찮아? 마취당한 거야?"

"손-대지 마!"

 


타에는 억지로 몸을 움직여, 다가오는 시에미의 손을 찰싹 쳐 냈다.

 

"그 동안 내 꼴을 보고 즐거워했어?! 네가 메이코인줄도 모르고!"

"…속인 건 미안해. 근데 메이코면 다가가게 하지 못하니까 시에미로 다가간 거야. 너를 좋아하니까."

"!!"

"이 참에 밝힐게. 츠쿠하네 메이코, 이미츠키, 멘마, 우즈마키 시에미는 동일인물이야. 뿌리 암부에게 이름은 무가치하지. 임무에 따라 코드네임이 변경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렇게 교육받았잖아. 뿌리의 닌자가 지닌 것은 오직 임무 뿐이라고."

"…."

"하지만 난 버리지 못했어. 버리지 못해서 뿌리의 실패작이 되었고, 내가 살기 위해 네 할아버지와 적이 되기로 한 거지."

"나를, 좋아하면! 할아버지랑은!"

"안 돼. 널 정말 좋아하지만 단조와 난 서로 어울릴 수 없어. 이제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어. 단조의 집착인지 꿈인지 모를 욕심은 폭주말 같아서 계속 두고 볼 수 없어. 제압해도 소용없다면 결국 죽일 수밖에 없지."

"할아버지를, 건든다면…! 내가 널 죽일 거야!"

 

타에는 이를 까드득 갈며 땅에 기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넌 여전히 할아버지 인형 같구나. 착한 아이인 너를 좋아하지만, 그건 착한 아이가 아냐. 단지 자기 생각이 없는 인형일 뿐이지."

"난 인형이 아냐!"

"그럼 직접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결의를 내리지 못하는 겁쟁이인가?"

"시-에-미!!"

"인형이 아니면 똑똑히 보도록 해! 그리고 결단을 내려! 그리고 결단을 내리면 날 죽이러 와. 난 네 할아버지인 단조를 죽일 거야, 반드시. 그리니 나에게 복수해, 시무라 타에."

"!"

"뭐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야지 뭔가를 할 수 있겠지. 그러니 지금은 얌전히 치료받아."

 

타에는 시에미의 치료를 얌전히 받아들었다. 치료가 끝나자 시에미는 변신술로 어려진 모습을 취했다.

 

"설마 마을로 돌아갈 생각이야?"

"그런데."

"왜?"

"아직 전해야 할 말을 못 전했으니까. 그러니 비밀이야."

 

나루토에게 미수를 원망하지 말라고 전해줘야하니까. 타에는 뭔가 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시에미가 질문을 던지자 거기에 대한 건 잊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납치된 건 너 혼자?"

"아니. 텐텐이랑, 사치코, 히나타랑 카린…. 히나타의 백안을 적출한다고…."

"빨리 찾아야겠네. 설 수 없어도 근성으로 서도록 해. 못 일어나면 죽어."

"알아."

 

어린 모습인 시에미는 더 이상 타에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방 밖으로 나갔다. 복도와 방들이 상당히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내부 구조는 굉장히 복잡해보였다. 아마 탈출을 하더라도 쉽게 밖으로 빠져나가기 힘들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뭐 그 덕분에 감시하는 사람이나 경매장 측 인물들도 띄엄띄엄 있을 뿐,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다. 

 

"감지로 살펴보면 타에, 너만 혼자 따로 떨어졌나본데."

"다들 무사해?"

"글쎄."

 

거리가 꽤 멀다. 네 사람의 차크라가 움직인다. 멈췄다가 움직였다가, 다시 섰다가 이동하고. 중구난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꼭 길을 헤매는 것 같았다.

 

"저쪽도 탈출한 모양이네."

 

시에미는 뒤를 따라오는 타에를 힐끗 한 번 본 후 새로운 방문을 열었다.

 


"우윽."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약품 냄새에 타에는 황급히 팔을 들어 코를 막앗다. 어두운 가운데 은은한 초록빛이 비치는 방안 광경은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마치 가축 도축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방안은 온갖 신체 부위들로 가득 차있었다. 주인 잃은, 아니 혹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팔, 다리, 눈…. 신체 개조를 했던 것인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것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미쳤군. 완전히."

 

타에는 주변을 자세히 보지 않으려 애쓰며 걸음을 빨리 했다. 다음 방문을 벌컥 열자 강한 비린내가 훅 끼쳤다. 잔뜩 상처입고 다친 짐승들의 적대적 눈이 두 사람에 쏟아졌다. 

 

"타에. 빨리 걸어."

"넌 아무렇지 않아?"

"…이런 건 뒷골목에서 지내다보면 비일비재로 일어나. 인신매매, 불법 실험 등등. 눈에 익숙하다보면 비명을 지르는 것도 허무해져."

"!"

 

그녀들이 지나갈 때마다 우리 속에 있는 괴생명체들은 쇠사슬에 목이 조여지면서도 몸부림치며 달려들었다. 우리에 쿵쿵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필사적인 몸부림에 타에는 괴로운듯 찌푸린 얼굴을 가렸다. 

 

"상처입은 저 짐승들은 자신을 풀어준 존재마저 죽일 거다."

"…알아."

 

길게 울부짖은 소리들을 애써 뒤로 하고 방을 통과하자 다른 아이들과의 거리가 제법 가깝게 느껴지고 있었다.

 

**

과거로 돌아온 멘마는 숲속에 있었다.

 

"멘마."

 

자신을 부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여우-나쯔히가 있었다. 감금되기 전에 료에게 구출을 응했는데.

 

"나쯔히…. 무사했구나!"

"몸은 괜찮은 거냐?"

"료는?"

"곧 만나게 될 거다. 그리고 미래의 네가 이걸 전해달라고 하더군."

 

나쯔히가 내미는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 멘마는 빠르게 읽고 난 후 그걸 불태웠다.

 


"뭐지?"

"지라이야의 행방소식이야."

"지라이야? 지라이야는 왜지?"

"아마도 나루토 문제 때문이겠지."

 

새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지라이야에게서 그 봉인 열쇠를 빼앗고….

 

"나쯔히. 다른 반요들도 불러야겠어."

"새의 나라 멸망은 너랑 료만으로 충분하지 않는 건가?"

"그게 아니야. 나는 더이상 지켜보는 건 싫어졌어."

 

앞으로 그들 곁에서 간섭하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러니 다른 반요들에게 이 뜻을 전하기 위해서 불러야 했다. 

 

"가자."

 

손목에 있는 봉인구를 파괴한 멘마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녀의 은회안이 각오로 반짝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