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보라빛 눈동자의 유혹 06

리틀 윙 2020. 2. 20. 18:29

나루코도 시오리코를 도와 부엌으로 가자 쿄코는 험악해진 소리에 방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사히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전생의 동료에 곰방대를 던졌다. 곰방대가 벽에 박히며 파멸음을 선사했다.


"뭐 하는 거야."


그 소리에 마사히로의 멱살을 놓아주자 쿄코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시 물을게. 내 일족 아이에게 뭔 짓거리야."

"일족 아이?"

"그래. 그 애, 미케츠카미 일족의 아이야."


쿄코는 놓아진 마사히로를 자신의 뒤쪽으로 보내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마시하로, 나가 있으렴."

"…그치만."

"괜찮으니까."

"네, 쿄코 씨."


마사히로가 방을 나가자 쿄코는 사나웠던 기세를 잠재웠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 못 해."

"그 녀석이 누군지 알고도 곁에 데리고 있는 거냐."

"그게 나쁜 거야?"


순진한 목소리에 아주 잠깐동안 동료들은 침묵햇다.


"저 녀석이 널 죽인 것 잊은 거냐."

"나도 그를 죽였어. 쌍방이잖아."

"…."

"게다가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전생의 네가 이랬다 저랬다는 말을 해봤자 소용없지. 그러니 원망도 미움도 의미 없어."


쿄코는 소파에 털썩 앉고 와인잔에 든 적포도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빈 와인잔이 탁자 위에 놓여진다.


"왜냐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는 미친 개소리일 뿐이야."


쿄코는 시도했다가 지쳐버려 포기한 사람처럼 허망한 목소리로 읆조렸다.


"그럼…, 우린 왜 기억하고 있는 걸까?"


렌고쿠가 물었다.


"글쎄. 신의 농간인지 아니면 술사의 술법이겠지."

"신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신을 믿지 않는 사네미가 혀를 찼다.


"만약 후자라면 그 술사, 꽤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볼 수 있을걸?"

"너 정도 말이냐?"

"그런 사람을 딱 한 명 알고 있기는 한데."

"누구지?"

"쿄야."

"쿄야?"

"너희들에게는 이쪽 이름이 더 알기 쉬울걸. 전생의 내 아들, 호즈미(八月一日). 8월 1일 날 태어나서 가명으로 호즈미라고 부르고 너희에게 절대로 진명도 술사의 명도 알려주지 않았지. 쿄야는 내 아들의 술사 명이야."


그리고 약 100년간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호즈미 신사의 1대 주지이지.


"…하지만 모르겠어. 그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술법을 썼는지."


뭐 짐작이 아예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 태어난 거냐…? 어떻게?"

"타인의 배를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났어. 5년 전에 그의 별자리를 찾았으니까. 지금쯤 4~6살은 되지 않았을까."

"쿄, 쿄, 쿄-쿄코 씨!! 아이를 낳으신 겁니까!!!"


마사치카가 버럭 외쳤다. 어째서 얼굴이 새빨개진 거야? 마사치카의 순진한 반응에 쿄코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언제요?! 아니 그 전에 결혼을 하신 겁니까?!"

"결혼…? 안 했는데. 애당초 술김에 만들어진 아이니까. 게다가 남편은 필요없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듯이 무기질적한 생활이 계속될 때 카가야와 아마네의 자식인 다섯 쌍둥이를 만났다. 반짝이는 새 생명들을 본 순간! 죽어버렸던 공허한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어두운 그림자에 태양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살아가고 싶어졌다. 


"어째서…?"

"…이곳, 소원을 들어주는 가게는 말이야. 나의 미니어처 가든이야."

"네?"


난데없이 꺼낸 말머리에 마사치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었다.


"타인의 소원을 들어주고 대가로 삼는 거야. 내 평온한 삶을 위해서."

"…평온한 삶?"

"난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거든."

"!!"


그렇게 말하는 쿄코는 담담한 사실을 얘기한 어투였다. 있는 사실만 말한 억양의 그녀는 싱긋 웃었다.


"그렇지는!"

"그러니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마."

"쿄코!"

"난 상처받기도 싫어. 질색이야." 


상냥한 동료들을 거부하고, 그들의 반박의 말도 듣지도 않는 채 쿄코는 그 방을 나갔다.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간 쿄코는 눈을 감았다. 술사가 꾸는 꿈은 특별하는 경우가 많아, 의미없는 꿈은 꾸지 않는다. 만약 꿀 수 있다면…, 유카리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

오전 쯤 잠에서 깨어났다. 집안이 조용한 것을 보면 쌍둥이들은 보충수업에 나간 건가. 


"준코."

"네. 여기에 있습니다."


집에서는 편안하게 여우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준코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이틀간 잠들어 계셨습니다."

"…꿈에서, 아들을 만났어. 그 아이 오사키와 계약하고 있더라고."


옆에 은색 털빛의 여우신령이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고작 5살에 계약을 한 그의 영력과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에 슬펐고, 다시 술사로서 살아가야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요?"

"응. 나를, 엄마라고 불렀으니까…. 역시 그들에게 전생을 기억하는 술법을 건 쿄야라고 하더라고. 다시 한 번 더 내 아들로 태어나기 위해, 나를 구할 거래…. 그럴 필요는 없는데."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 어린 목소리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각오를 느껴졌다.


"어떻게 할까나…. 응? 손님이 왔군."


그것도 드문 손님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온 쿄코는 단정히 기모노를 차려입고, 긴 머리칼을 전부 올려 바람개비 비녀와 후지꽃머리장식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들어오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그녀가 말했다. 


"널 마중나올 존재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렴."


꼬마 아가유령 군. 쿄코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 미약한 바람이 그녀를 스쳐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