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보라빛 눈동자의 유혹 10

리틀 윙 2020. 2. 25. 17:04

고운 기모노를 입고 새하얀 화선지 앞에 앉아있는 쌍둥이들과 마사히로를 보며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기모노를 유녀처럼 흐트러지게 입은 쿄코는 소파에 늘어져있었다.  


"엄청 고민하네. 고작 본인을 증명하는 사인을 가지고."

"그야 화압은 부적도 겸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엄마의 말은 너무 깊게 고민할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 대개 이름 가운데 한 글자나 자연물을 도안화해서 쓰는 게 일반적이죠."

"꼭 자연물을 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돼요. 제가 아는 술사의 화압은 고양이 발바닥이었으니까요."


쿄코가 늘어져있는 소파 아래에서 쿄야가 단정히 앉아 차를 마셨다. 그리고 코야의 무릎에 은빛 여우 오사키가 누워있었다.


"쿄코 씨의 화압을 보여줄 수 있나요?"

"내 것 참고하게?"

"네."


쿄코는 소파에서 내려와 마사히로 옆으로 가 앉았다.


"별로 참고될 만한 건 아니지만."


먹이 묻지 않게 소매를 걷어올리자 흰 손목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손목은 화선지 위에서 유연하게 움직였다.


"바람개비…."

"그래. 내 화압은 바람개비야."

"왜?"

"?"

"왜, 바람개비로 정하신 건가요?"

"별 이유는 없는데, 듣고 싶니?"

"네."


너무 빠르게 대답한 마사히로에 쿄코는 콧등을 긁적였다.


"…처음 받아본 선물이야."

"네?"

"그러니까, 첫 번째 선물로 준 게 바람개비의 머리장식이었어. 마츠리 노점상에서 상품으로 따서 주었거든."


쿄코는 쑥스러운지 말을 빠르게 이어나갔다.


"이렇게 추억를 기념하기 위해 물건을 화압으로 삼는 사람도 있어. 내가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추억이라…."

"그럼 쿄야 군의 화압은?"


시오리코가 물었다.


"저도 추억을 기념하기 위해서에요. 전생의 아내가 등꽃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제 화압은 등꽃이에요."


쿄야의 말에 누군가 세차게 차를 내뿜는 소리가 들리고, 연속적인 기침소리가 터졌다. 


"괜찮은가, 시나즈가와!!"

"사네미!"

"이거 참, 화려하게 뿜었구만!"


쿄코는 품에 있던 손수건을 내밀었다.


"닦아."

"고-맙다."


전생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 쿄야의 용기(?)에 감화되었는지 전생 기억 보유자들은 각자 스스로가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밝혔다. 그래서 쌍둥이들과 마사히로는 쿄코들이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호즈미 신사에는 역대 지주들 사진이 놓여있거든."

"?"

"쿄야는 호즈미 신사의 1대 지주거든. 그러니 쿄야의 결혼식 사진도 놓여 있어. 궁금하면 나중에 보러 가든지."

"…넌 본 거냐?"


사네미는 쿄코가 내민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고는 물었다.


"물론. 굉장히 아름답고 청조한 야마토나데시코(요조숙녀)야."

"며느리로 맘에 들었나요?"

"엄마는 쿄야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다 좋아."

"좋아했으니 결혼을 했겠죠."

"그럼 다행이네."


그 말에 진심으로 쿄코는 안도했다.


"여우비가 내리네."


맑은 하늘에 내리는 비를 발견한 쿄코와 쿄야는 정원 마루쪽으로 나갔다.


"이것도 필연인가."

"그러게요."

"뭐가?"

"이런 날은 말야, 경청을 할 수 있어."


쿄코가 말했다.


"경청?"

"뭐야?"

"거울을 품에 넣고 눈을 감아 처음에 들었던 말을 전조로 삼는 거야. 간단히 말하면 츠지우라1의 다른 버전이지."


마사히로가 두 사람에게 경청에 대해 말해줬다.


"어떤 거울이든 상관 없어요. 손거울이든 콤팩트든."

"여우비가 내릴 때의 경청은 태양 아래서의 비의 힘으로 정밀도가 높지. 보다 깊이있고 확실한 전조를 들을 수 있어. 맨 처음 듣는 말을 화압을 정하는데 전조로 삼는 거지. 해볼래?"

"어…."

"계속 고민하는 것보다 그게 낫겠지. 나 할래! 시오리도 하자!"


나루코가 시오리코를 끌어당기자, 쿄코의 손짓에 준코가 두 사람에게 손거울을 내밀었다. 여우비 내리는 정원에 쌍둥이들은 품에 손거울을 들고섰다.


"눈을 감고 귀를 맑게 한 후 아무 생각도 하지 마세요. 처음에 듣는 소리만 듣는 거에요."


쿄코가 사람들을 조용히 시킬 때 쿄야는 두 사람에게 경쳥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잠시 후에 들었는지 나루코가 번쩍 눈을 뜨고 호들갑을 떨었다.


"들었어! 무슨 노랫소리 같았어."

"요모야! 들었는가! 무슨 말이었지?"


렌고쿠가 궁금증에 물었다. 


"그러니까…, 돌은 흐르고, 나뭇잎은 가라앉고, 물고기가 새가, 바람은 흙이 된다?"

"음? 무슨 뜻이지?"

"글쎄요?"


시오리코는 쿄코의 얼굴이 싸늘히 굳어진 것을 보았지만 때맞침 방으로 들어온 사람들에 물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부엌 잘 빌렸어! 쿄코 짱!"

"멋대로 빌렸는데 괜찮아, 쿄코 짱?"


때맞침 칸로지가 코쵸 자매와 함께 손에 커다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신경 안 써. 쿄야가 원했으니까."

"쿄코 짱, 여전히 쿨해! 멋져!"


칸로지의 호감 어린 시선을 받게 되자 이구로가 뱀처럼 질투어린 시선으로 노려봤다. 


"미츠리-"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마라."

"네네. 아무튼 네 약혼녀는 건들지 않을 테니까 안심해, 오바나이."

"!!"


약혼녀라고 말해주자마자 바로 이구로는 할 말을 잃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가 아무리 남녀 상관없이 추파를 던졌다고 하지만 아들이 생긴 후부터는 아들만 봤는데 말이지. 바로 오해해버리면 슬프다구."

"넌 미망인이라도 화려한 미망인이었으니까."

"화려한 미망인은 또 뭐야? 난 미망인이 아니라 과모거든."


우즈이는 쿄코를 보며 씨익 웃었다. 쿄코가 머리 위로 의문부호를 대량 생산하는 사이에 칸로지와 코쵸 자매는 앉은 사람들 가운데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단 것으로 보충이 필요한 것 같아서 팬케이크를 만들어봤어요."


시노부가 커다란 팬케이크를 조각을 잘라 나눠주었다.


""감사합니다. 칸로지 선생님! 카나에 선생님! 시노부 선생님!""


화압에 대해선 잊어버렸는지 쌍둥이들은 반짝어린 눈동자로 푹신푹신한 팬케이크를 보았다.


"맛있군, 쿄쵸."


히메지마가 자상하게 웃자 카나에가 얼굴을 붉히며 쿄코 쪽으로 접시를 내밀었다.


"난 됐어."

"엄마는 술이지?"

"꺅~!"


쿄야는 술을 꺼내들었다. 술병에 적힌 술 이름을 보자 쿄코는 감탄하며 눈동자를 반짝 빛냈다.


"이거 맛있는 술인데! 역시 내 아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가져왔어!"


쿄코는 술병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쿄코, 너 16살이지?"

"맞아. 하지만 난 성인식을 치룬 성년이야. 미케츠카미 가문은 13살이 되면 어른으로 취급했거든. 그 성인식도 유카리코랑 내 성인식 이후에 사라졌지만."

"왜 13살?"


13이라는 숫자 발음이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 '마쇼'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에 아야카시 세계에서는 13살은 성년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미케츠카미 일족은 여우 요괴 후손이니까 13살에 성인식을 치루는 전통이 생겨났다.


"글쎄."


창고에 술 가져다 놔야지~! 쿄코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을 나갔다. 

창고로 들어간 쿄코의 표정은 무표정하게 변했다.


"돌은 흐르고, 나뭇잎은 가라앉고, 물고기가 새가, 바람은 돌이 된다."


세계의 이치 혹은 섭리를 뒤집는 존재가 서서히 깨어난다는 전조. 쿠우겐의 봉인이 서서히 풀려나가고 있었다.

  1. 옛날 화양목빗을 가지고 길거리에 서서 왕래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길흉을 점쳤던 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