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보라빛 눈동자의 유혹 11

리틀 윙 2020. 3. 2. 01:27

그날은 아침부터 쿄코가 바빠보였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화장을 하고 머리도 매만지며 옷장 속의 봄옷을 여러 개 꺼내들고 살펴보고 있었다.


"뭐가 좋을까."


자신의 목 아래에 꺼내놓은 옷들을 가져다대며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안목 없는 거 아니었어, 엄마?"

"미안, 쿄야. 깨웠니?"


새벽부터 부시럭거렸으니까. 


"아니. 괜찮아. 그것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쿄야는 쿄코를 빤히 쳐다보고 난 후 말했다.


"흐음. 준코 씨에게 옷코디를 맡긴 진짜 이유는 코디 안목이 없는 게 아니라, 귀찮았던 거지?"

"하하하하;;"


예리한 아들의 말에 쿄코는 뜨끔했는지 시선을 회피했다.


"뭐 됐나. 그것보다 오늘은 엄마 생일이잖아. 3월 31일."

"그러니까 오늘은 1년에 단 한 번있는 생일이니까 유카리코를 만나러 가는 거야. 이상한 꼴을 보일 수 없잖아."

"그래서 평소보다 기합이 더 들어서, 주술을 걸어둔 머리색도 원래대로 되돌린 거야?"


평소에 새까만 머리색과 달리 지금 쿄코의 머리색은 검정 브릿지가 있는 황금빛 머리칼이었다.


"유카리코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해."

"!"


쿄야의 말에 쿄코의 오드아이가 크게 떠졌다.


"전생부터 쭈욱 말하고 싶었어. 엄마의 금발은 꼭 태양 같으니까! 나도 백금발보다 엄마처럼 황금빛이면 좋았을텐데."


쿄야는 투덜거리며 자신의 백금발 머리카락을 쭈욱 잡아당겼다. 쿄야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못 살게 굴자 쿄코는 말리기 위해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면 못 써. 엄마는 쿄야의 머리색을 좋아하니까."

"진짜?"

"그럼."

"내 금발과 그 남자의 백발을 섞어놓은 색이니까. 엄마는 좋아해."


그 말이 기쁜 건지 쿄야의 얼굴에 환한 꽃이 피워났다.


"빨리 준비 안 하시면 유카리코를 만날 시간이 줄어듭니다."

"아차!"


준코가 끼어들자 호와호와한 시간이 깨졌다. 쿄코는 아차, 라며 다시 치장 쪽으로 눈 돌렸다.

평소보다 배로 빛나는 쿄코는 거울 속에 있는 미녀인 자신 모습에 흡족하고 무후훗 미소를 띄운 채 현관으로 향했다. 코트와 한쌍인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기세좋게 열었다.


"생일 축하해, 엄마. 16살이 된 것을 축하해."

"…고마워."


쿄야가 축하하자 쿄코는 떫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가게 대문을 나섰다.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네."


쿄코를 배웅한 쿄야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길거리에 핀 벚나무들은 어느새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었다.


"벚꽃."

"이번에 다녀올까요?"


금색 팔찌에서 준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준코는 평소의 보디가드 인간형이 아니라 쿄야의 사역마 오사키처럼 몸에 부착된 악세사리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럴까…. 내일 생일 선물은 벚꽃구경이 좋을까나."


호즈미 신사에 벚꽃이 잔뜩 필 테니까.


"언젠가 유카리코에게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겁니다."

"응…. 유카리코를 구할 때까지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유카리코가 잠들어 있는 병원을 올려다보며 쿄코는 마음 속에 햇던 수 백번 다짐을 또 결의한다. 

여러 개의 링거팩의 주사바늘이 팔에 꽂아져있고, 입에는 산소호흡기가 달린 채 잠들어 있는 소녀의 옆에 쿄코는 섰다. 그리고 자신을 닮은 그 소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빛나는 알갱이가 쿄코에게서 유카리코에게 흘러들어갔다. 


"쳇. 이것도 안 되는 건가."


여러 방법의 주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유카리코가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쿠우겐을 쓰러트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그 요괴를 이길 확률은 50% 미만이다. 소원을 들어주면서 주술의 힘을 상승시키고 있지만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술법을 사용한 후 쿄코는 유카리코의 옆에 앉아서 그녀의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어서 일어나줘, 유카리코…. 나의 반쪽."


여러 주술을 사용해서도 널 깨울 수 없기에 기적을 바란다. 그녀가 스스로 일어나는 기적을…. 


"역시 여기 있었군!"


짜증어린 목소리가 열린 문으로 들어왔다. 색소 연한 민트색 머리칼의 남자 간호사가 쿄코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시로 씨."

"타마요 씨가 기다린다! 자 검사하러 가자!"

"오늘 만나기로 약속 안 잡았는데."

"어차피 계속 안 잡을 생각이잖아!"

"이야~~! 유카리코~! 떨어지기 싫어!"


쿄코는 남자 간호사, 유시로에게 끌려 나가서 몰랐다. 유카리코의 손가락이 움찔거리며 꿈틀거렸다는 걸.

검사 후 쿄코는 타마요라는 미인의 여의사와 대면했다.


"쿄코 씨. 더 늦기 전에 수술합시다."

"…싫습니다."

"고집 피우지 말아요."

"죄송하지만 싫습니다."


사과하는 자신의 말에 미인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약한 한숨을 내쉬고 타마요가 말했다.


"그럼 약이라도 잘 먹어주세요."

"…네."


쿄코는 처방전을 가방 속에 처박고, 다시 유카리코의 병실로 들어갔다.


"유카리…코?"


들어간 병실에는 기적이 펼쳐지고 있었다. 


"유카리코!!!"


눈을 뜬, 깨어난 유카리코에 다가간 쿄코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일어나줘서 고마워! 내가 누군지 알겠어?"


유카리코, 이름을 부르며 쿄코의 눈동자에서 한 줄기 눈물을 흘렀다. 유카리코의 보라색 눈동자가 쿄코를 담았다. 부릅 떠진 보라색 눈동자에는 경악의 빛이 떠오른다.


"아…."

"유카리코?"

"아아아아아악!!!"


쿄코를 알아본 유카리코가 비명을 지르며 쿄코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태어나서, 안 되는…, 저주받은 아이!"

"!!"


-우르릉 쾅쾅!


커다란 천둥소리가 들리고, 내리는 비가 창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탕탕, 꼭 심장에 못질을 하는 것 같이 들려왔다.


*


전생기억 보유자들은 다들 한 마음이 되어서 쿄코의 소원을 들어주는 가게로 향했다. 


"내 가게는 집합 장소가 아니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산을 쓴 그들은 몸을 반 회전시켰다. 거기에는 비를 쫄딱 맞은 쿄코가 서 있었다.


"쿄코(짱/씨)?!"

"뭐 하는 거야!"

"비를 다 맞지 않았는가!"


우산도 쓰지 않는 그녀에 그들은 각자의 우산을 내밀었다.


"오늘은 돌아가. 너희를 상대하기엔 너무 피곤하거든."

"선물이 있다구? 나리님이 전해달라고 하셨는걸."

"…필요 없어."

"딸기 케이크인데?"

"왠지 모르겠지만 생일 케이크라고 하더라고."

"쿄코 씨, 생일이신가요?"

"…생일 따위 안 챙겨도 되는데. 어쨌든 잘 받았어."


쿄코는 케이크 상자를 받아들고 현관문을 쾅 닫았다. 


"살인자의 생일은 축하받을 가치도 없어."


일족 어른들이 말한 것처럼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불길한 4쌍둥이에, 13번째 아이로 태어나고, 날 때부터 재앙을 부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자신은…. 현관문에 등을 기댄 채 주르륵 주저앉은 쿄코는 곧 무릎을 세워 그 속에 울쌍인 얼굴을 묻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