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그대를 만나기를 04
“하~암!”
쿄코는 크게 하품했다. 츠쿠요가 그녀 앞에 갓 내린 커피를 내놓았다.
“고마워.”
“쿄코 언니는 잠꾸러기야!! 12시간 넘게 잤으면서!”
“쿄코 언니, 오늘은 오전부터 있네? 항상 오후 늦게 나타났으면서!!”
“예약하신 의뢰인이 있으니까. 다른 애들은?”
“코스케 오빠는 카페!”
“히로 오빠랑 셋 쌍둥이 언니들과 요시는 학교 갔어.”
“공부하러 간 건가? 부지런하기도 하네!”
“언니도 가끔은 밖으로 나가는 게 어때? 아! 이후에 시간 있어?”
치유리가 물었다.
“손님은 1명뿐이니까.”
“잘 됐다! 그럼 쇼핑가자!”
“뭐 그럴까나. 필요한 물건도 사야하니까 말이지.”
“그럼 점심은 카마도 베이커리에서 빵 사서 코스케 오빠의 카페에서 먹자!”
“카마도 베이커리? 빵집?”
“교복점에서 만난 동갑내기 남학생인데 빵집을 하고 있대!”
교복점에서 카마도 탄지로와 만났다고 했지?
“나쁘지 않네.”
전생의 츠쿠요의 동기들의 기억은 있을까나? 츠쿠요처럼 없을까나? 코쵸 자매에게 한 번 물어볼 것을 그랬나. 카나오 혹은 아오이랑 만났는지……. 예약한 손님과의 상담(?)을 빠르게 끝내고 쿄코는 츠쿠하네 자매와 거리로 나섰다.
“역시 낮에는 활기가 넘치네.”
인기척이 거의 없던 심야의 거리와는 완전 분위기가 다르잖아. 사람들로 가득 찬 낮의 거리는 사람들의 활기로 북적였다.
“빨리! 빨리!”
치유리는 반짝반짝하는 눈동자로 쿄코와 츠쿠요를 끌면서 돌아다녔다. 5가게를 들어갔다가 나온 쿄코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에구구구~! 난 이제 지쳤어”
“벌써?”
“아직도 많이 남았다구!”
“무리. 너희들끼리 둘러보고 와. 난 조금 쉬어야겠어.”
쿄코의 말에 쿠즈노하 자매는 주춤거렸다.
“괜찮으니까.”
“쿄코 언니도 지친 것 같으니까 다음 가게만 들려보고 카마도 빵집에 가자, 유리 언니.”
“으응. 다녀올 테니까 어디 가면 안 돼!”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갔다 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두 사람이 떠나자 쿄코는 벤치에 늘어졌다. 항상 오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치유리는 집 밖으로 나가면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사람처럼 반짝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돌아다녔다. 그래서 그녀의 하이 텐션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에에~? 그거, 정말? 백엔 동전, 교환한 것만으로?”
“모르겠어. 그렇지만 그 애는 엄청났데!”
“그거 어디에 실려있어?”
“어제 말야….”
백엔 교환이라는 말에 섬뜩한 느낌이 든 쿄코는 여중생 그룹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갑자기 말을 건 어른 여성의 등장에 여중생들은 놀랐는지 동그란 눈동자로 말뚱말뚱 쿄코를 보았다. 쿄코는 웃어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미안해. 아까 전에 백엔 교환, 한다고 들었는데. 부적인가 그런 거야?”
“해보고 싶은 거야?”
“으, 응. 뭔가, 굉장한 것 같아서.”
“좋아요. 가르쳐 줄게요. 자기가 가진 벡엔 동전 3개를 누군가랑 교환하는 거야. 그러면 그 상대에게 3배로 굉장한 일이 일어난데!”
“!!”
“에에~ 일어나는 건 교환을 한 쪽 아냐?”
“그럼 자기는 관계없는 거야?”
“상관없잖아. 상대방한테 좋은 일이 일어나면 한턱 쏘라고 하면 되는걸.”
“언니~?”
충격 받은 듯 침묵한 쿄코에 단발머리 여중생이 그녀를 불렀다.
“3배로 굉장한 뭔가가 일어난다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거든. 게다가 준다는 게 아니라 교환한다는 것도….”
“언니도 해볼래?”
“에?”
“나 어제 3백엔 교환했거든!”
“그럼 언니랑 교환할까?”
“응!”
쿄코는 긴 생머리 여중생과 3백엔을 교환했다. 아까 전의 느낀 한기는 ‘이거’였던가. 쿄코는 손에 들린 3백엔을 내려다보았다.
“…한 가지 더 물어도 될까?”
“??”
“근처에 가까운 신사가 있을까? 꼭 새전함이 있는 곳이어야 하거든.”
“신사?”
“사요 짱, 사요 짱의 집 절이라고 했지?”
“스미 짱?”
“으응! 하지만 우리 절은 새전함은 없는데. 아! 우리 절 근처 여우 신사가 있어요!! 거기라면 새전함이 있을지도 몰라요!”
“고마워! 절 이름은?”
“히메지마 사찰이에요!”
“쿨럭!”
“언니?!”
왜 하필, 히메지마?! 그럼 이 앤 교메이 씨의 친척이라는 소리잖아! 자세히 보니 교메이 씨가 귀살대로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던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애랑 닮았잖아. 전생의 연 때문에 교메이 씨의 친척으로 태어난 건가.
“아무튼 고마워.”
여중생 그룹에 인사하고 쿄코는 히메지마 사찰로 향했다. 물론 갑자기 사라져 걱정할 여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택시를 이용해 히메지마 사찰에 도착하자 마당 청소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자 그쪽으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네~? 아! 쿄코 짱!!”
“카나에?! 왜 여기에-가 아니라! 이 절 근처의 여우신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쪽!”
카나에는 자신이 알려주고 싶은지 쿄코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문을 나가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걷다보니 낡은 여우신사가 있었다.
“여기야!”
“고마워.”
쿄코는 손에 들고 있는 삼백엔을 새전함에 집어넣었다. 이것으로 그 여중생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을 거다.
“쿄코 짱은 신앙심이 깊구나.”
“그건 절대 아냐. 길 가다 3백엔 교환하는 걸 봤거든. 오싹한 한기가 들어서 끊어버린 거야.”
“끊어…?”
“응. 이거 저주거든. 자신이 들고 있는 삼백엔을 누군가가 들고 있는 삼백엔과 교환한다. 즉 누군가 최초로 ‘저주’를 건 삼백엔이 계속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는 거야.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난다는 걸 기대하는 사람의 기분을 휩쓸어 버리듯이. 그것이 여러사람 손을 거쳐서 더욱 더 기대하는 마음을 불려나가며 곧 어디선가 그 때가 올 거야. ‘굉장한 일’이 일어나. 하지만 그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는 알 수 없어. 아니 그런 경우에 정석은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거지. 이 저주는 참가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않고 그렇게 바라고 있으니까.”
백엔 동전 3개를 교환한다는 건 본래 저주와는 다르지만 세 개라고 하는 숫자는 맞아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건 십엔 동전이다. 구리를 사용하는데 의미가 있기에 백엔 동전이랑 조금 틀리니까. 교환하는 이유도 '굉장한 일이 일어난다'라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상대방의 운과 자신의 운을 교환한다'는 거다. 즉 구리에 운을 담아서 자기 것을 교환한다. 안 좋은 운을 누군가에게 대신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주술이다.
“역시 자세히 아는구나, 쿄코 짱! 나도 메시지로 받았어.”
유행하고 있네. 하긴 요즘 시대는 정보도 소문도 빠르게 퍼지는데, 이런 게 빠르게 안 퍼질 리가 없지.
“3백엔 교환 같은 저주는 본인도 피해를 입겠지만 가장 거추장스러운 건 확산이야. ‘재미있어 보여’라며 참가해 점점 넓어지는 거지. 하지만 자기자신이 위험한 상황이 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한 번 관련되면 문자 그대로 무관계로 돌아갈 순 없어. 관련되었다면 거기에 표시가 남아. 그 표시가 인연이 되지. 이어진 인연은 끊을 수 없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넌 하지 않으면 좋겠다, 카나에.”
“응!”
“…내 말, 믿는 거야? 고작 감으로 말하는 건데? 불확실하잖아.”
“쿄코 짱의 말이잖아? 분명 우릴 걱정해서 하는 말이잖아!”
카나에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쿄코는 짧게 침묵했다.
“용건도 끝났으니 그럼 가볼게, 카나에."
"벌써 가려고?"
"여동생들과 쇼핑 도중에 급하게 온 거니까."
어째서 카나에가 출근도 하지 않고 히메지마 사찰에서 마당 청소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묻지 않기로 했다. 뭐 휴가나 반차라도 낸 거겠지.
"근데 카마도 빵집이 어디 있는지 알아?"
"어머! 마침 카나오랑 아오이도 거기에 간다고 했는데, 안내해달라고 할까?"
"부탁해. 다만…."
"왜 그래?"
카나에가 상냥히 물어왔다.
"두 사람과 무슨 관계라고 물으면 실례일까."
“사촌이야. 카나오도 아오이도 사촌 여동생이야. 둘에겐 전생의 기억은 없는 것 같지만.”
“그게 좋은 거야.”
“그럼 옷 갈아입고 올게!”
카나에가 가 버리자 하늘을 쳐다보며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츠쿠요도, 츠쿠요의 동기들도 기억이 없길 바란다. 떠오르지 않길 원한다. 하지만 영원과 불멸은 없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으니 늦던 빠르던 츠쿠요와 동기들은 기억하게 될 거다.
“만나지 않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데. 맺어진 인연은 사라지지 않으니 그럴 수도 없나.”
“기다렸지!!”
옷을 갈아입고 온 카나에가 뒤쪽에 귀여운 소녀 둘을 동행한 채 달려오는 게 보였다.
“조금 더 오래 기다릴 줄 알았는데. 금방 왔네.”
“여동생들이 빨리 도착해줬기 때문이야!”
“안녕? 아니면 처음 만나서 반가워? 카나에의 친구인 쿄코라고 해.”
푸른 나비장식의 트윈테일 여자애, 칸자키 아오이와 붉은 나비장식의 사이드테일 여자애, 츠유리 카나오에게 인사를 건넸다.
“미인…!”
아오이는 쿄코를 보자마자 감탄했다.
“고마워. 두 사람도 귀여워.”
칭찬에 웃어주자 아오이는 볼에 홍조를 새겨졌다.
“그럼 카마도 베이커리, 안내 부탁해도 될까?”
“이쪽이에요!”
“카나오!!”
어서 가고 싶은지 카나오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번에도 그녀는 탄지로에게 반한 걸까. 아오이가 카나오 옆으로 달려갔다. 쿄코는 카나에와 함께 그녀들 뒤를 따라 걸어갔다.
“정말이지, 카나에의 말이 맞았어. 좋아하는 남자애가 저 아이를 꽃으로 만들었어.”
“기쁘네~! 하지만 그때 쿄코 짱이 말했잖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변할지도 모른다고.”
“그랬던가….”
“그랬다구! 난 똑똑히 기억한다고!”
왜 저렇게 열을 내는 건지……. 열변을 토하는 기세의 카나에에 쿄코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쿄코 짱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변했다고! 그렇게 말했잖아! 그건 즉 러브잖아!”
“진정해. 너 그렇게 연애에 관심이 많았던가?”
“여자애인걸!!”
“……관계있는 거야?”
“물론!”
순간적으로 카나에가 미츠리로 보였다. 칸로지 미츠리는 연주라는 이명답게 연애이야기에 엄청 관심이 많았지. 이성에도 관심이 많았고, 자신의 짝을 찾으러 귀살대에 입대할 정도였다.
“전생의 쿄코 짱의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어?”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는 남자.”
“에?”
“난폭한 남자였어. 항상 폭력을 일삼았지. 술을 마시면 더욱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어. 손발목이 묶인 채 밤새도록 맞는 일도 허다했고. 겁에 질려하면 기분 좋은 듯 소름끼치게 큰 소리로 웃었어. 근데 바깥에서는 그렇게 좋은 남자는 없다고 마을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악담을 하면 악처라고 비난 받을 뿐이었지. 그래서 애첩을 들일 때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그 남자를 축복했지.”
“어째서 결혼한 거야?”
“일족끼리의 정략결혼이었거든.”
그 남자는 내 일족을 증오할 정도로 싫어했고, 일족 사람들은 그와 결혼할 사람이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알았기에 일부러 도망자의 자식을 찾아 여자애란 사실에 팔아넘겼다.
“일족을 지키기 위해선 누군가는 희생해야 했고…, 재수없게도 내가 당첨된 거야.”
“…….”
“그래도 아주 나쁜 점만 있던 건 아니었어. 날 바꿔줄 운명,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슬픈 얼굴하지 마.”
쿄코는 카나에의 머리를 쓰담고는 바로 앞에 보이는 카마도 베이커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카마도 베이커리 안에는 이미 츠쿠요와 전생의 동기들이 있었다.
“실례해요.”
“아! 어서오세요!”
“쿄코 언니! 여기 있는 모두들 키메츠 학원에 입학한대! 소개시켜줄게!”
츠쿠요가 자신의 새로운 친구들을 소개시켰다.
“붉은 빛이 감도는 머리칼과 눈색을 지닌 아이가 카마도 탄지로. 그 옆에 있는 미소녀는 중3인 탄지로 여동생인 카마도 네즈코. 번개에 맞아 금발이 되었다는 아가츠마 젠이츠. 검은 머리칼에 녹안의 얼굴만 미소년인 하시비라 이노스케. 그리고 험악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쑥맥인 시나즈가와 겐야! 코스케 오빠랑 히로 오빠 친구인 시나즈가와 씨의 동생이래!”
“쑥맥이라니!”
“후후후, 난 그런 점이 더 좋아!”
“떠, 떨어져!!”
츠쿠요는 삼백안에 눈매가 찢어지고 오른볼에 큰 흉터가 있는 모히칸 머리 남성 옆으로 가 팔짱을 끼었다. 그러자 겐야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새빨개진 얼굴도 귀여워~!”
“부러워어어어어~!!!”
여전히 겐야는 여자에게 약하구나. 현생에도 늦은 사춘기인가. 그리고 젠이츠 역시 여전한 것 같았다. 인기남(이케맨)을 싫어하는 모습은 전생과 다를 봐가 없네.
“처음 뵙겠습니다! 츠쿠요의 누님!”
“쿄코라고 편히 불러도 돼.”
역시 동기들도 츠쿠요처럼 기억이 없는 것 같네. 대면했을 반응을 살펴봤지만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다행이다.”
“““뭐가요?”””
“아무것도 아냐. 그것보다 츠쿠요, 유리는?”
“카페.”
“단단히 화났나보네. 탄지로 군, 네즈코 짱. 맛있는 빵 추천 받을 수 있을까?”
“쿄코 언니, 그거 뇌물이야?”
“기분 풀라는 선물이지. 절대 뇌물이 아냐! 게다가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풀릴지도 모르잖아?”
“뭔가 아시네요!! 우리 집 빵은 최고에요!”
“응응!”
그게 그거잖아, 라는 표정을 한 츠쿠요에서 카마도 남매가 말하는 추천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네즈코짱이 선택한 것이 제일 짱이야~!”
“확실히 맛있어보이네.”
젠이츠는 네즈코 옆에서 추근덕거렸다. 근데 왜 네즈코는 바게트빵을 물고 있는 걸까? 네즈코를 보며 고개를 기우뚱했다.
“탄지로, 나도… 추천….”
“몬지로!”
“진정해주세요, 이노스케 씨!”
“겐야는 무슨 빵이 좋아?”
“아! 좀 떨어져줘!”
시끌벅적한 베이커리 내부에서 피워나는 넷 커플을 쿄코는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