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가 6남매 프롤로그
학교폭력으로 한 사람은 평생 장애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고, 또 한 명은 의식불명으로 혼수상태다.
학교가 떠들썩하게 난리가 나도 모자란 상황이었지만 정작 가해자들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보호자가 사태가 커지길 원하지 않는다며 변호사를 보내 최대한 원만하고 조용히 처리하자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죄책감은커녕 손놓고 나몰라 하는 감독.
어떻게든 사태를 덮으려고 혈안이 된 교장.
가식적으로 걱정하는 척하며 정작 본인에게 불똥이 튈까 쉬쉬하며 외면하는 교사들.
조카가 다쳤다는데도 얼굴하나 비추지 않는 피해자 보호자가 보낸 돈만 밝히는 변호사.
제 아이들이 그럴 리 없다며 피해자를 욕하는 가해자 부모들.
“엿 같네.”
조사받은 종이를 보던 흑발의 청년이 이를 갈았다. 동시에 손에 들려있던 종이가 와그작 구겨졌다.
“조카가 다쳤는데 이따위로 했다, 이거지.”
“이제 동생들을 되찾을 수 있는 거지?”
“당연한 소릴. 그리고 이 사태를 만든 원흉도 만나러 가야지.”
“원흉?”
“배구부 전 주장인데, 토비오가 1학년일 때 따돌린 것 같아. 물론 토비오는 멍청하니까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미친. 상하관계 뚜렷한 운동부에서 주장이란 자가 어린 후배를 따돌렸으니 그 분위가 퍼지는 건 한순간일 텐데!”
주장의 무시, 부주장의 방치, 부원들의 외면과 시기어린 질투로 가득한 분위기 속에 천재는 고독해졌고, 결국엔…….
“그래서 저렇게 된 거야?!!”
“오빠! 꼭 한 대 갈겨줘!”
“한 대면 돼?”
“직접적인 원흉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만들었으니까, 눈탱이 밤탱이 눈으로 만들어줘.”
“그래.”
옆에 있던 갈색머리 미소녀들의 분노에 청년은 다시 한 번 더 다짐했다. 그 뒤로 바쁘게 움직였다.
*
키타가와 제1중학교 교문 앞에서는 기자들이 득실득실 모여 있었다.
“약발 장난 아닌데.”
모여 있는 카메라를 멀리서 보며 캡모자를 쓰고 있던 흑발의 청년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기자들을 뒤로 했다.
“동생들이 여기까지 도와 줄은 몰랐는데.”
연예계에 속해있는 셋 쌍둥이 동생들이 은퇴 선언을 하자, 소속사에선 “동생들의 건강 악화”를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쌍둥이들은 친했던 기자들에게 동생들이 다니고 있는 중학교를 찔러넣었고, 교장이 덮었던 부활동 폭력 사건은 수면 위로 올라와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동시에 피해 남매의 보호자가 가정폭력으로 신고되자 사건은 더욱더 불 지펴졌다.
“감독 처리는 막 끝났으니까. 가해자 처리와 전 주장 녀석과의 만남이 남은 건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청년의 호박색 눈동자가 모자 아래서 번득였다.
“폭력을 폭력으로 돌려줄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인적이 드문 공원, 반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입꼬리를 삐뚤이 말아 올렸다.
“그런 짓을 해놓고도 이런 사진을 지우지도 않고 낄낄거리며 돌려보는 개새끼들한테는 똑같은 개새끼가 되는 게 정답인 거 같더라고. 그렇지 않아?”
그는 키타가와 출신인 선배 둘, 오이카와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정말, 경멸스럽네.”
모자를 쓴 오이카와는 빠르게 보고 이와이즈미에게 핸드폰을 넘겨줬다. 그리고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동감이군.”
화를 내는 것보다 더 무기질적인 이와이즈미의 시선에 벌거벗은 가해자들, 키타이치 3학년이 흠칫 몸을 떨었다.
“돌려서 말하지 않을게. 혹시라도 폰에 찍힌 사진 외에 따로 저장되어 있는 거 있으면 당장 지워. 만약에 단 하나라도 저런 사진이 다른데서 보인다면 이유 불문하고 너희들도 똑같이 만들어 줄 테니까.”
“으으…….”
“난 한다면 하는 인간이거든. 부디 내가 이 추잡한 사진을 다시 보는 일이 없도록 처신 잘해야 할 거야.”
그가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가해자들이 흐느끼며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악귀같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피해자가 당했던 굴욕적인 사진을 자신들에게 똑같이 찍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무섭지 않겠는가. 거기다 그 주변에는 그들의 선배들 및 다른 학교 운동부 사람들까지 내려다보고 있으니 두려움에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미야기가 넓다고 한들 학교는 한정되어 있고 자신들이 한 짓이 알음알음 소문을 타 어디를 가더라도 안 좋은 이미지가 박혀버린다면 고등학교 생활까지 끝장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너희보다 1년 먼저 태어난 선배로서 마지막 충고 하나 할게.”
그런 생각을 눈치 챈 듯 그가 나긋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아오바죠사이의 마츠카와가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져 발로 짓밟았다.
“앞으로 편안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면 미야기를 떠나는 걸 추천할게. 너희 같은 쓰레기가 혹시라도 다른 학교에 가서 똑같은 짓을 일으킬까 봐 근처 배구부 사람들을 손수 데려왔거든. 겸사겸사 도움도 좀 받고 말이야. 참고로 네 또래인 녀석도 있으니까 재수 없게 같은 학교에 걸리면 3년 내내 같이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치?”
조각난 핸드폰을 남김없이 뒤꿈치로 잘근잘근 부스러트리는 소리 뒤로 그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오오토리 사쿠야의 말을 무시하고 지내다가 운 좋게 나랑 같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면 기대해도 좋아. 아----주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게 해 줄 테니까.”
죽고 싶을 만큼 말이야.
섬뜩하게 울리는 마츠카와의 마지막 말에 기어코 그들이 울다 못해 잘못을 빌며 무조건 전학 가겠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 중 그 누구도 하쿠호 슈이치에 대한 폭력을 미안해하며 사과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고하지 않을까?”
카라스노의 사와무라는 눈 돌아간 그의 협박이 끝나고, 질질 짜는 놈들을 돌려보내고 나니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면 스스로가 가해자라고 인정할 테니, 못할 거야.”
어른들끼리 암묵적으로 이번 일을 덮은 이상(다시 파헤쳐지긴 했지만), 가해자가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할 맹점을 이용한다는 말을 들은 아오바죠사이의 하나마키가 말했다.
“끝났네. 그딴 짓을 한 거 치고는 완전 쫄보였지만.”
“저런 놈들은 원래 뭉치면 지들이 강해지는 줄 알아서 그래. 멍청한 생각이지만.”
후타쿠치와 다테 공고의 카마사키가 말을 이어가다 문득 서로를 바라보고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뒤늦게 서로 제대로 인사를 안 한 게 떠오른 탓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하기에는 조금 꺼려지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모두, 도와줘서 고맙다.”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 되기 전에 청년, 사쿠야가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아까 전 야차 같이 화를 내던 사람과 같은 모습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꽤나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 후타쿠치가 자연스레 뒤로 물러나자 그나마 안면이 있는 카마사키가 인사를 받았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무엇보다 저런 새끼들이 내 후배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치가 떨리니까 그냥 서로 그 뭐시기냐 상모거시기 한 걸로 치자.”
“상부상조겠죠 선배라면서 그것도 모르나…….”
“다 들리거든? 이 건방진 자식아!”
“윽, 무식하게 왜 때립니까!”
둘이 아는 사이도 아닐 텐데 익숙하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사와무라가 하하 웃으며 외면했다.
“나도 때릴 걸 그랬다.”
“손을 더럽히는 건 나만으로 충분해. 와카토시.”
사쿠야는 시라토리자와의 우시지마의 축 쳐진 어깨를 토닥였다.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야? 이타치야마랑 시라토리자와는 현이 다르잖아.”
카라스노의 스가와라가 물었다.
“쥰페이 씨에게 같이 배구를 배웠다.”
“쥰페이 씨?”
“내 아버지야.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아버지의 제자였고, 카게야마 토비오는 엄마의 제자였거든. 덧붙여서 카마사키와는 초등학교 동창이야.”
전학가고도 꽤 연락을 했으니까.
“토비오짱?!”
“아. 그래서 알고 있던 건가.”
사쿠야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오이카와는 깜짝 놀랐고, 이와이즈미는 이해가 되었다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터 후배에게 악질적인 별칭이 붙었더라? 독재자라고. 혹시 들어봤니?’
‘귀엽지 않는 토비오짱에겐 그런 별칭이 붙어진 게 내가 맞을 이유가 되지 않아!’
‘키타이치에서 그 녀석이 겉돌고 있으니까. 현재 3학년들이 카게야마와 별다른 접점이 없음에도 그를 싫어하지. 눈치가 없다고, 천재라고. 그런데 포지션이 다른 전혀 위협도 되지 않는 후배를 그렇게 싫어할 수 있는 걸까? 같은 키타이치에 있는데도?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단체로. 단체가 그 한 명에게 열등감을 가졌다고? 집단은 공공의 적만 생기면 뭉치기 쉬워. 카게야마 토비오는 키타이치의 공공의 적이 되었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언성이 높아지고 불화는 쌓여서 불명예스러운 왕관을 쓰고 있는 거야. 서론이 길어지면 입도 아프고 대충 눈치 챈 것 같으니. 간단히 말해줄게.’
‘…….’
‘키타이치 배구부의 천재혐오 시발점이 네 녀석이잖아. ……그래도 카게야마 토비오는 운이 좋았어. 포지션이 전혀 겹치지 않는 세터였으니까. 근데! 내 막내 동생은! 슈이치는! 스파이커야! 이래도 네가 맞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토리짱~ 이제 뭐할 거야?”
“한 번 더 애칭으로 부르면 다른 쪽도 눈탱이 밤탱이도 만들어 주마.”
“힉!”
“이타치야마로 돌아가는 건가?”
“아니. 휴학할 거다. 동생들을 돌봐야하거든.”
“그럼 이제 코트 위에서 널 보지 못하게 되는 건가?”
“3학년 전국 고교 종합 체육 대회(인터하이)랑 봄의 고교 밸리 전국 대회(봄고)에서 다시 볼 수 있어. 그때쯤 재활도 끝날 테고, 소란도 잠잠해질 테니까.”
사쿠야는 그들에게 작별 인사한 후 인적 드문 공원을 나섰다.
이틀 뒤, 프로 배구 스파이커 선수였던 고(故) 하쿠호 쥰페이(白鵬 淳平)와 스포츠 뉴스 아나운서 및 연예인이었던 고(故) 오오토리 히마와리(鳳 回日葵)가 집안 반대 때문에 법적 신고를 못하고 비밀 결혼식을 올린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둘의 슬픈 비극적 로맨스와 셋 쌍둥이의 연예계 은퇴 그리고 G중학교의 폭행 사건이 겹쳐지면서 미혼모 오오토리가(家) 4남매(오오토리 사쿠야(鳳 咲也), 오오토리 카에데(鳳 楓), 오오토리 쿠레나이(鳳 紅), 오오토리 카오리(鳳 香織))와 미혼부 하쿠호가(家) 쌍둥이 남매(하쿠호 유키나(白鵬 雪菜), 하쿠호 슈이치(白鵬 秀一))의 이름 또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6남매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잠적했다.
tip.
세이죠 배구부가 강호임에도 불구하고 매니저가 없는 주된 이유는 자칭타칭 인기인 오이카와 때문인데,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알량한 마음으로 지원했다가 인기인만 보느라 막상 일을 제대로 안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매니저는 팀 전체를 서포트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자리인데, 한 사람만 보고 견디기엔 일이 고되기도 했다. 결국 우르르 지원했다가 우르르 잘려나가거나 제풀에 관뒀고, 매번 등용하고 자라는 소모전을 하 바에 감독은 새로운 매니저를 받지 않기로 했다. 결국 잡무는 부원들이 나눠서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