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58
켄타우로스들이 전부 가버렸다.
"참으로 현명한 계획이었어."
부아가 치민 심정을 털어 버리려는 듯이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한마디 내뱉었다.
"정말 대단한 계획이었어.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지?"
"성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힘없이 말했다.
"우리가 거기 도착했을 땐 시리우스가 벌써 죽은 뒤일 거야!"
해리는 곁에 선 나무를 걷어찼다.
"음, 지팡이가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헤르미온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풀 죽은 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해리, 너 런던까지 도대체 무슨 수로 갈 작정이었니?"
"맞아, 우리고 그게 궁금했어."
헤르미온느의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깜짝 놀라 움찔 하고는 나무들 사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먼저 론이 나타나고, 지니와 네빌, 그리고 루나와 로우가 바로 뒤이어서 나타났다. 하나같이 몰골이 엉망이었다. 지니의 뺨에는 길게 긁힌 상처가 여럿 나 있고, 네빌의 오른쪽 눈 위에는 시퍼런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론의 입술에서는 더욱 더 많은 피가 흐리고 있고 로우의 입술은 찢어져서 피딱지가 붙어있었다. 그러나 다들 기분은 무척 좋은 것 같았다.
"괜찮은 생각이라도 있었어?"
낮게 드러운 가지를 젖히고 다가와서 해리에게 지팡이를 건네주며 론이 말했다.
"기절 마법과 무장 해제 마법을 썼지. 네빌은 장애 마법을 정말 멋지게 해냈어."
론이 몹시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하고는, 나와 헤르미온느에게도 지팡이를 건네주었다.
"지니가 최고였어. 말포이를 처치했거든. 박쥐 귀신 주문으로 혼내 줬다고. 정말 볼 만했어. 날개를 퍼덕이는 커다란 놈들이 말포이의 얼굴을 온통 덮어 버렸다니까. 그건 그렇고, 우린 너희들이 숲 쪽으로 가는 걸 창문으로 내다보고 따라왔어. 엄브릿지는 어떻게 됐어?"
"잡혀갔어."
해리가 말했다.
"켄타우로스들이 끌고 갔어."
"켄타우로스들이 너희들을 그냥 두고 돌아갔어?"
지니가 흠칫 놀라면서 물엇다.
"그게 아니고... 그 저 빛을 보더니 후다닥 도망치던걸."
나를 가리키면서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목걸이의 빛은 서서히 잦아들고는 우리 주위에 어둠이 내려왔다.
"포터, 간단히 들어보니 벽난로와 누군가와 대화를 했다는 데? 알아낸 것이라도 있니?"
로우가 물었다.
"그래. 그 사람이 시리우스를 잡아갔어. 그래도 난 아직 그가 살아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빨리 구하러 가야겠는데, 갈 방법을 모르겠어."
모두들 말이 없었다. 조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음, 당연히 날아가야 하지 않겠어?"
루나가 말했다. 날아가자고?
"너 잘 들어. 첫째, 네가 끼면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둘째, 트롤 경비원들이 지키지 않는 빗자루를 갖고 있는 사람은 론뿐이야. 그러니까-."
해리가 루나에게로 돌아서서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다.
"빗자루는 나한테도 있어."
"나도 있고."
지니가 말하자 로우가 빠르게 말했다.
"알아, 그렇지만 넌 안 돼."
론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미안해. 그렇지만 나도 시리우스가 너무 걱정된단 말이야!"
지니가 말했다. 꼭 다문 지니의 입 모양은 프레드와 조지를 꼭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너 너무-."
해리가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마법사의 돌을 놓고 그 사람하고 싸웠을 때보다 세 살이나 많아."
지니가 화를 버럭 내면서 말했다.
"말포이가 엄브릿지 교수의 방에 갇혀서 거대한 박쥐 날개한테 혼이 났던 것도 내 덕분이었고-."
"맞아, 그렇지만-."
"우리는 다같이 D.A.에서 방어술을 배웠어."
네빌이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가 그걸 배운 건 그 사람하고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그리고 지금이 바로 우리가 그걸로 무엇인가를 해야 할 첫 번째 기회라고 나는 생각해. 그게 아니라면, 모든 게 장난이었단 말이야?"
"아니야- 물론 그건 아니고-."
해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우리도 같이 가야 해. 우리도 돕고 싶어."
네빌이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옳으신 말씀이야."
루나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어쨌거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기까지 갈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해리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예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루나가 이젠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다
"날아가잔 말이야."
"이봐, 넌 빗자루 없이도 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날개가 돋아나게 할 재간이 없단-."
"빗자루를 타지 않고도 날아갈 방법은 있어. 왔다."
화를 간신히 참으면서 말하는 론의 말을 잘라버리고는 내가 외쳤다. 파충류처럼 생긴 머리를 연방 까닥거리며 검고 긴 갈기를 추켜세웠다. 그 모습에 해리가 한 손을 내밀어서 앞쪽에 선 놈의 반짝이는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세스트랄은 등에 탄 사람이 가려는 곳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지."
"미치광이 같은 말인가 뭔가 하는 그 괴물이야?"
론은 해리가 목덜미를 만져 주고 있는 세스트랄의 왼쪽 옆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누군가 죽는 걸 보지 못하면 볼 수 없다는 그 짐승들 말이지?"
"응."
해리가 대답했다.
"몇 마리야?"
"둘 뿐이야."
"음, 셋이어야 하는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넷이야, 헤르미온느."
지니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말했다
"난 다섯이라고 생각하는데?"
루나가 수를 세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멍청한 소리 집어치워. 다 같이 갈 수는 없어."
"괜찮아. 더 올 거야."
해리가 버럭 소리치자 내가 그를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세스트랄 다섯 마리가 오자 나는 그 중 한 마리에게 다가갔다.
"그럼, 해리, 넌 론과 함께 올라 타. 헤르미온느, 넌 나와 함께 타자. 루나는 지니와 함께 타고 로우와 네빌은 각자 타도 되지?"
"물론. 우리 둘은 보이잖아."
나와 해리, 루나, 로우, 네빌은 각자 가까이 있는 세스트랄의 갈기를 한 손으로 단단히 거머쥐고 올라탔다. 때마침 곁에 있던 나무 그루터기에 한 발을 딛고는 미끈미끈한 등에 엉거주춤 올라앉았다. 세스트랄은 싫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빨을 훤히 드러내고는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그리고는 헤르미온느를 내 등 뒤에 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세스트랄의 등에 엉덩엉리를 걸치고 앉아서 짧은 한쪽 다리를 등의 저편으로 넘기려고 끙끙거리는 네빌과 반대로 로우는 승마를 한 사람처럼 익숙하듯이 앉아 있었다. 루나도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게 차라리 다행일 거야."
해리의 등 뒤에 난 론이 말하자 해리가 조금 침울하게 말했다.
"자, 다들 준비됐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리는 번질번질 빛나는 세스트랄의 새카만 뒤통수를 내려다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는 조금 자신이 없는 것처럼 어물어물 말했다.
"런던, 마법부, 손님용 입구... 음... 하여간에 알아서 찾아가 봐..."
그의 세스트랄이 잠깐 동안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해리를 곧 떨어뜨릴 것처럼 크게 한 번 몸을 뒤척이더니, 세스트랄이 양쪽 날개를 쩍 펼치고 뒷다리를 굽혀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빠르고, 너무나도 가파르게,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해리의 세스타랄의 뒤를 쫓아서 다른 세스트랄도 날개를 펼치고 솟구쳐 석양 속으로 떠올랐다. 헤르미온느가 놀라서 내 허리를 꽉 끌어안은 것이 느껴졌다.
세스트랄은 거의 날갯짓을 하지 않으면서 성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
"정말 신기하다!"
호그와트를 지나 호그스미드 위를 날아가고 있을 때, 론이 외쳤다.
어스름이 내렸다.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 자줏빛 하늘에 작은 은빛을 내는 별들이 점점이 나타나기 시작햇다. 그리고 머지 않아서 머글들이 사는 작은 도시의 불빛만이 지금 얼마나 높이 떠서 얼마나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어둠이 더욱 깊어져갔다. 거센 바람 소리에 귀가 멀어 버린 것 같았고, 너무도 차가운 밤바람에 입이 바싹 마른 채 얼어 가고 있었다. 얼마나 멀리 날아왔는지조차도 감지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세스트랄의 머리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곧추 땅을 향했고, 그 바람에 몸이 앞으로 몇 센티미터쯤 쏠렸다. 드디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밝은 오렌지색 불빛들이 점점 커져 가고 점점 둥글어져 갔다. 세스트랄은 어둠에 잠긴 땅바닥에 마치 그림자처럼 소리도 없이 내려섰다.
해리가 등으로 미끌어져 내려가자 론도 내렸다. 론은 땅에 내려서면서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다시는 안 탈 거야."
론이 뒤뚱뒤뚱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그는 어서 세스트랄과 멀리 떨어지고 싶다는 듯이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나, 물론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는 세스트랄의 엉덩이에 부딪혀서 또 넘어질 뻔했다.
"다시는, 다시는 안 탈 거야... 정말 최악이야-."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내려섰다. 둘 다 론보다는 훨씬 더 맵시 있게 땅에 내려섰지만 다시 땅을 딛고 섰다는 안도의 표정만은 론과 크게 달르지 않았다. 네빌은 폴짝 뛰어내려서 부르를 몸서리를 치고, 루나는 탈 때처럼 태연하게 내려섰다. 그리고 로우는 내 옆으로 와서는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잠시 바라보고는 그 손을 잡았다. 로우의 도움을 받아서 세스트랄 등에서 내려왔다.
"이제 여기서는 또 어디로 가지?"
루나가 해리에게 물었다. 무슨 신나는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은 목소리였다.
“다 왔어.”
해리가 버럭 대답했다. 그리고는 타고 온 세스트랄을 얼른 한 번 토닥여 주고, 험하게 부서진 공중전화 박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문을 열어젖혔다.
“뭐 하고 있어!”
그가 쭈뼛거리고 서 있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론과 지니가 얼른 다가왔다. 그러자 헤르미온느, 네빌, 루나가 서로 앞을 다투어 그들의 뒤를 따라왔다. 맨 뒤로 나와 로우가 다가갔다. 해리가 안으로 들어가고 로우가 들어간 후 내가 맨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전화 박스 문을 닫았다.
“전화기 옆에 선 사람, 6, 2, 4, 4, 2 눌러!”
해리가 말하자 론이 이상하게 팔을 구부려서 번호판을 눌렀다. 윙 하는 신호음이 울리더니 여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전화 박스 안을 울렸다.
“마법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명과 방문 목적을 말씀해주십시오.”
“해리 포터, 론 위즐리, 로라 에반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지니 위즐리, 네빌 롱바텀, 루나 러브굿, 로우 레스트랭...”
해리가 속사포처럼 이름을 읊엇다.
“우리는 친구를 구하러 왔습니다. 마법부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셨으면 더 좋겠고요!”
“감사합니다.”
여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손님 여러분, 배지를 집으신 다음 가슴에 달아 주십시오.”
반환되는 동전이 나오는 구멍에서 배지 여덟 개가 주르르 쏟아졌다. 헤르미온느가 그걸 손바닥에 주워 담아서 지니의 머리 너머로 해리에게 내밀었다. 해리는 로우와 나에게 배지를 넘겨주었다.
“구출 특명단...?”
배지에 적힌 목적에 로우가 작게 비웃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법부에 오신 손님 여러분께서는 보안 검색대에서 지팡이를 등록하시고 검색에 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안 검색대는 중앙 홀 제일 아래층에 있습니다.”
“됐어!”
해리가 소리쳤다.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거죠?”
전화 박스의 바닥이 흔들리고, 주위의 보도가 위로 솟아올랏다. 쓰레기 더미를 쑤셔 대면서 썩은 음식을 우적우적 먹고 있는 세스트랄들이 머리 위로 사라지고, 칠흑의 어둠이 머리 위를 덮었다. 몹시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땅 속의 마법부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느다란 한 줄기 황금 불빛이 발을 비추고, 그 불빛은 점점 더 넓어지면서 몸을 비추었다. 해리는 그 좁은 곳에서도 지팡이를 능숙하게 잡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유리 틈에 눈을 대고 중앙 홀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주앙 홀은 텅 비어 있었다. 깜깜한 밤인데도 빛은 낮보다도 더 흐릿했다. 벽의 곳곳에 설치된 벽난로들 어디에도 불은 지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승강기처럼 땅속으로 내려가던 전화 박스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그럼 즐거운 저녁 시간 되시길 빕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박스의 문이 활짝 열렸다. 밖으로 내리자마자 지팡이를 손에 움켜쥐었다. 원래 이렇게 조용한 곳이 아닌데 말이지.... 중앙 홀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황금 분수대에서 쉬지 않고 물이 내뿜는 소리뿐이엇다. 마법사와 마녀의 자핑이, 켄타우로스의 화살, 도깨비의 뾰족한 모자와 집요정의 뾰족한 두 귀에서 뿜어 나오는 물이 잠시도 끊이지 않고 수반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쪽이야.”
해리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홀을 달려갔다. 해리가 앞장 서서 분수대를 지나 경비 마법사가 앉아 있었던 책상 쪽으로 달려갔다. 그 책상은 지금 비어 있었다.
“이상해. 원래 이렇게 조용한 곳이 아닌데.”
“동감이야.”
로우가 말하자 내가 동의했다.
황금색 문들을 지나서 승강기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해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하강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승강기 한 대가 덜컹거리며 나타나, 아주 크고 요란하게 철커덩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황금 창살문이 열렸다. 우르르 승강기 안으로 들어가서 9층 버튼을 눌렀다. 창살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서 닫히고는 딸랑거리고 덜커덕거리면서 승강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부서입니다.”
승강기가 멈추고 여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곧 창살문이 열렸다. 복도로 나서자 거기에서도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승강기 근처의 횃불 몇 개가 승강기가 멈추면서 일으킨 바람에 일렁거릴 뿐이었다.
“가자.”
해리는 아무 장식도 없이 밋밋한 검은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그 문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있잖아....”
해리가 그 문에서 2미터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말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두어 명은 여기서 망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망을 본다가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알리지? 까마득히 멀리 가 있을 텐데...”
지니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다 함께 가는 거야, 해리.”
네빌이 말했다.
“부딪쳐 보는 거지 뭐.”
론이 단호하게 말했다. 해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한 번 짓더니 다시 검은 문 쪽으로 돌아서서 앞으로 나갔다. 그가 다가가자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문턱을 넘어 들어가고, 친구들이 그의 뒤를 바싹 붙어서 따라 들어갔다. 우리는 넓고 둥근 방 안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이 검었다. 바닥도 검고 천장도 검었다. 아무 표지도 없고 손잡이도 없는, 다 똑같이 생긴 문들이 사방의 검은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었고, 벽에는 촛불들이 드문드문 걸려 있었다. 검은 대리석 바닥에 촛불 불빛이 빛나는 모습은 마치 바닥이 검은 물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아무나 문 좀 닫아.”
해리가 소리쳤다. 맨 뒤에 서 있던 네빌이 돌아서서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복도에서 기다란 띠처럼 비쳐 들어온 횃불 불빛이 사라지자 실내가 너무나 캄캄해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벽에서 가늘게 일렁이고 있는 푸른 촛불들과 그 불빛이 바닥에 되비치는 희미한 잔영뿐이었다. 그리고 방의 벽에는 문이 열두 개나 있었는데 갑자기 요란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나고 촛불들이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둥그런 벽이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벽이 더 빨리 돌자 촛불들이 잠깐 동안 네온사인 막대기처럼 길게 늘어지고 흐릿해졌다. 그리고 처음에 움직이기 시작할 때처럼 갑자기, 요란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뚝 그치더니 벽도 멈추고 모든 것이 다시 고요해졌다.
“방금 그게 뭐 하는 수작일까?”
론이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우리가 조금 전에 들어온 문을 찾지 못하게 하려는 게 분명해.”
지니가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네빌이 몹시 불안한 듯이 말했다.
“그런 건 생각할 필요도 없어.”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시리우스를 찾을 때까지는 여기서 나가지 않을 거야.”
“너 여기서 그 이름을 그렇게 크게 부르면 어떻게 해!”
헤르미온느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해리?”
론이 물었다.
“나도 몰라.”
해리가 입을 열었다가 이내 도로 삼켰다.
“꿈속에서는 내가 승강기에서 내려서 복도 끝에 잇는 문으로 들어가면 캄캄한 방이었어. 거기가 바로 이 방이야. 그리고 그 방에서 또 어떤 문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방이 나오는데, 그 방은.... 그래, 맞아,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빛이 있는 방이었어. 아무 문이나 몇 개 골라서 들어가 보자.”
그가 조금 다급하게 말했다.
“내 눈으로 보면 그 방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야.”
해리가 그의 바로 앞에 잇는 문을 향해서 걸어가고, 친구들이 바싹 붙어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무계획적이네.”
“그만 말해, 로우.”
로우가 해리에 대해서 비꼬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방의 문을 열었다. 천장에서부터 드리워진 황금 사슬에 매달린 등불들이 켜져 있었다. 기다란 사각형의 그 방도 그리 밝지는 않았지만, 첫 번째 방이 워낙 캄캄했던 탓인지 아주 밝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상 몇 개가 있고 정확히 한가운데에 유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수조가 놓인 것 이외에는 거의 텅 빈 방이었다. 짙은 초록색 물이 채워진 수조는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들어가서 헤험을 쳐도 될 만큼 거대했다. 짙은 초록색 물 속에는 진주처럼 하얀 물체들이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다.
“저게 뭐지?”
론이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몰라.”
해리가 대답했다.
“물고기야?”
지니가 숨을 죽이고 물었다.
“저건 아쿠아바이러스 마곳이야. 마법부에서 저런 걸 키운다는 얘기를 아빠한테 들었어.”
루나가 대답했다.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이상야릇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수조 앞으로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뇌야.”
“뇌?”
“그래... 이런 걸 왜 갖다 놨을까?”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옆에 가서 그걸 들여다보았다.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어. 이 방은 아니야. 다른 방에-.”
해리가 말했다.
“여기도 문이 많은데?”
론이 사방의 벽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꿈속에서 난 캄캄한 방을 지나서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갔었어. 그 두 번째 방이 지금 우리가 찾는 방이야. 빨리 나가서 다른 방에 들어가 보는 게 좋겠어.”
다시 그 캄캄하고 둥근 방으로 나왔다.
“잠깐 기다려!”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온 루나가 막 문을 닫으려 할 때,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플래그레이트!”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를 쳐들고 휘두르자 그 문에 불이 활활 타는 X자가 그러졌다. 그리고 문이 닫자마자 또 요란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나고, 벽이 아주 빠르게 돌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네온사인 막대같이 길게 늘어진 푸른 불빛들 속에 엄청나게 밝은 붉은색과 황금색의 띠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멈추었을 때는 활활 타던 그 X자에 여전히 불꽃이 조금 만아서 방금 전에 들어갔다가 나온 문이 바로 그 문임을 가르쳐 주었다.
“정말 잘했어. 자, 이번에는 이 문으로-.”
해리는 또 다른 문으로 걸어가서 밀고 들어갔다. 좀 전의 방보다 훨씬 넓은 방이었다. 어두침침하고, 사각형이었으며, 한가운데가 6미터 정도 움푹 꺼진 거대한 돌 구덩이 같은 방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마치 원형극장처럼 한가운데의 구덩이를 향해서 완만한 경사를 이룬 둥그런 돌계단의 제일 꼭대기였다. 움푹 꺼진 바닥에 쇠사슬이 감긴 의자가 아니라, 돌로 쌓은 그리 높지 않은 제단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제단 위에는 역시 돌로 쌓은 아치문이 서 있었다. 군데군데 틈이 벌어져서 곧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그 아치문은, 어쩐지 고풍스러워보였다.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 주는 벽도 없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그 문에는 누더기같이 너덜너덜한 검은 베일이 드리워져 있었다. 몹시 차가운 방 안의 공기엔 한 점의 요동도 일지 않았지만 방금 누군가가 건드린 것처럼 베일이 가볍게 일렁이고 있었다.
“거기 누구지?”
내가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서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베일은 여전히 보일 듯 말 듯 일렁였다.
“조심해!”
헤르미온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서 움푹 거진 구덩이의 돌바닥에 내려섰다. 계단을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발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제단 위에 저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아치문은 계단 꼭대기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높았다. 거기에 드리워진 누더기 같은 검은 베일은... 그새 또 누군가가 들추고 지나간 것처럼 천천히 일렁이고 있었다. 꼭 아치문에 드리워진 베일 뒤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가자!”
헤르미온느가 계단 중간쯤에 서서 말했다.
“이 방은 아니야. 로라, 올라와... 해리, 너도...”
헤르미온느의 목소리에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 아치문이 비록 위태롭게 서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아름다워 보이는 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일렁이는 베일이 마음을 잡아끌었다.
“가자, 로라.”
로우가 옆에 나타나서 내 팔을 잡았다. 로우가 몸을 돌렸을 때, 아치문에서 무슨 소리를 듣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베일 뒤에서 누군가가 아주 작은 소곤소곤 중얼거리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뭐라고 했어?”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저 소리가 안 들린단 말이야?”
베일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나도 들려.”
루나가 숨을 토하면서 말했다. 그녀는 아치문 옆을 돌아와서 나와 해리와 함께 천천히 일렁이는 베일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저 안에 사람들이 있어!”
“‘저 안’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헤르미온느가 계단 맨 아래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안’이란 건 없어, 저건 단지 아치문일 뿐이야. 누가 있을 만한 공간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해리, 그만둬. 빨리 나가-.”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팔을 잡았지만, 해리는 돌아보지 않고 그 손을 뿌리쳤다.
“해리, 우린 여기에 시리우스를 찾으러 왔어!”
헤르미온느가 이제는 아주 화가 난 듯 앙칼지게 말햇다.
“시리우스.”
해리가 중얼거렸다.
“맞아...”
“가자, 어서. 러브굿!”
제단에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안간힘을 써서 그 베일에 붙들려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빨리 나가자.”
해리가 말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자, 빨리!”
헤르미온느가 서둘러 말하고는 제단 뒤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지니와 네빌이 넋이 빠진 게 분명한 표정으로 그 베일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가가서 지니의 팔을 잡고, 론은 네빌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서 문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넌 그 아치문이 뭐라고 생각해?”
캄캄한 둥근 방으로 다시 나오자마자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히 위험하다는 건 알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그 방문에도 불이 활활 타는 X를 그렸다. 벽이 또 빙글빙글 돌다가 멈추었다. 해리는 맨 먼저 눈에 띄는 문으로 다가가서 왼손으로 밀었다. 그러나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왜 이러지?”
헤르미온느가 의아해졌다.
“잠긴 거 같아..”
해리가 어깨로 문을 들이받았다. 그러나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 방이야, 그렇지?”
론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해리와 함께 어깨로 문을 들이받았다.
“틀림없을 거야!”
“물러서!”
헤르미온느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리고 여닫이문 같으면 자물쇠가 달렸을 만한 곳에 지팡이를 겨누고 외쳤다.
“알로호모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참, 시리우스의 칼이 있었지!”
해리가 망토 호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가지고 문과 벽 사이의 틈에 찔려 넣었다. 그가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그어 내리고 칼을 뺀 뒤 다시 어깨로 문을 들이받았다. 문은 여전히 끄덕도 하지 않았다.
“됐어. 이 방은 포기해.”
내가 말했다.
“그렇지만 이 방이 그 방이면 어쩌지?”
론이 불안과 기대가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리 없어. 해리의 꿈 속에서는 들어가지 못한 문이 없잖아.”
내가 말했다. 헤르미온느가 그 문에도 X를 그렸다. 그 사이에 해리는 자루만 달랑 남은 시리우스의 칼을 주머니에 집어넣엇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 어떻게 알아?”
벽이 다시 돌기 시작했을 때 루나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몰라. 뭐 별거 있겠어?”
내가 말하자, 네빌이 조금 뻣뻣하게 킥킥 웃었다. 벽이 다시 멈추었다. 해리는 다음 문을 밀었다.
“여기야!”
다이아몬드처럼 맑게 반짝이며 현란하게 춤추는 아름다운 빛을 보자마자, 외쳤다. 방에는 빛나는 시계가 가득했다. 큰 시계, 작은 시계, 괘종시계, 탁상시계들이 책상 사이사이 그리고 책상들 위에 수도 없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시계들이 분주히, 잠시도 쉴 새 없이, 째깍거리는 소리는 마치 수천 수만의 아주 작은 발들이 제멋대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다이아몬드처럼 맑은, 춤추는 듯 아름다운 그 빛이 반짝이는 곳은 방의 저쪽 끝에 선 엄청나게 높은 크리스털 등피이었다.
“이쪽이야!”
해리는 가지런히 늘어놓은 책상들 사이의 좁은 통로로 나아갔다. 저편 끝의 책상 위에 그의 키만큼이나 높다란 크리스털 등피가 놓여 있고, 등피 안에서는 무수한 빛의 입자들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아, 저것 봐!”
지니가 등피의 중심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빛의 입자들이 둥둥 떠다니는 등피 안에 보석처럼 맑고 작은 알이 잇었다. 천천히 떠오르던 그 알이 갈라지고 벌새가 나타났다. 벌새가 꼭대기까지 떠올랐다가 곧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깃털이 더러워지고 시작하더니 축축하게 젖었다. 그리고 바닥까지 내려가서는 다시 알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타임 터너...?”
“이게 몇 시간의 시간을 돌리는 모래시계 입자들이야?”
“글쎄...”
내가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로우가 질문을 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잘 모른다. 그 알에서 다시 새가 나오는지 지켜보고 싶은지 지니가 등피 곁에서 걸음을 멈추자 해리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계속 가!”
“너도 아까 그 방에서 꾸물거렸잖아?”
지니가 화가 나서 입을 숙 내밀고 얼른 해리의 뒤를 따라갔다. 등피의 뒤에는 문이 딱 하나뿐이었다.
“이 문이야. 이 문으로 들어가면-.”
해리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우리 모두는 지팡이를 치켜든 채 하나같이 심각하고 불안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해리는 다시 그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왼손으로 밀고 활짝 열었다.
성당처럼 천장이 높은 방이었다. 그 높은 천장에 고 땋을 것처럼 높다란 선반 진열장들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선반에는 먼지가 잔뜩 낀 작은 유리 구슬들이 놓여 있었다. 진열장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걸린 촛대에는 물론 촛불-뒤에 있는 둥근 방에서처럼 이곳에서도 촛불은 푸른색이었다-이 켜져 있었다. 구슬들이 그 불빛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해리는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가 진열장 사이의 어두운 통로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라고는 없었다.
“네가 97번째 줄이라고 했어.”
헤르미온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맞아.”
해리는 소리 없이 숨을 내쉬고, 바로 앞에 있는 줄의 끝을 쳐다보았다. 푸른 촛불 아래에서 은빛으로 희미하게 53이란 숫자가 빛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가야할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옆 줄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맞아... 이쪽이 54야...”
“지팡이를 잘 들고 있어야 해.”
해리가 말했다. 진열장 사이의 통로를 쳐다보면서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마다 저편 끝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선반에 놓인 구슬들 밑에는 작고 노란 딱지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꼭 액체인 것처럼 섬뜩하게 빛나는 것도 있고, 파열된 백열전구처럼 침침하고 시커먼 것도 있었다.
“97번이야!”
헤르미온느가 숨을 죽이고 말했다. 그 줄 앞에 멈춰 서서 통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저쪽 끝에 있을 거야.”
해리가 말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겠지만...”
해리가 앞장섰다.
“틀림없이 여기 어디 있을 거야.”
해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틀림없이 이 근처야... 거의 다 왔을 거야...”
“해리?”
헤르미온느가 머뭇거리면서 해리를 불렀다. 그러나 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여기가 바로 거기...”
해리는 계속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 통로가 끝나고 불빛이 훨씬 더 침침한 곳이 나왔다. 그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귀를 먹먹하게 하는 고요만 있을 뿐이었다.
“혹시...”
해리가 그 다음 통로 안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여기가 아니고.. 혹시...”
그는 얼른 또 그 다음 통로를 들여다보았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또 그를 불렀다.
“왜 자꾸 불러?”
해리가 짜증을 버럭 내었다.
“난... 난 시리우스가 여기 없다고 생각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해리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통로들을 들여다보면서 끝까지 뛰어가 보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서도 살펴보고, 그를 멍하니 쳐다보는 우리들 곁을 지나서 저쪽 끝까지도 가 보앗다. 그러나 통로는 모두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해리?”
론이 불렀다.
“왜?”
“너 이거 봤니?”
론이 말했다.
“뭔데?”
우리는 97번째 줄의 통로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해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먼지가 잔뜩 낀 구슬 두 개를 론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뭔데?”
해리가 몹시 불안한 목소리로 한 번 더 물었다.
“여기... 네 이름이 쓰여 있어. 로라의 것도 있어.”
론이 말했다. 몹시 희미하게 빛나는 구슬 하나를 론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랫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듯 먼지에 온통 뒤덮인 구슬이었다.
“내 이름?”
해리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그걸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지?”
론이 말했다.
“네 이름이 왜 여기 쓰여 있지? 로라의 것은 옆에 있잖아.”
론이 그 선반에 붙어 있는 다른 딱지들을 주르르 살펴보았다. 해리의 이름이 적인 유리구슬 옆에 내 이름이 적힌 유리구슬이 있었다.
“내 이름은 없어.”
론이 말했다. 그는 몹시 혼란스러워진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 것도 없어.”
“그건 내 예언이야.”
유리구슬을 향해서 천천히 손을 뻗자 헤르미온느가 흠칫 놀라면서 말했다.
“로라, 안 돼. 만지지 않는 게 좋겠어. 해리, 너도!”
“왜? 어쨌든 나와 관계있는 거잖아?”
해리가 말했다.
“안 돼, 해리.”
네빌이 갑자기 말했다. 네빌의 동그란 얼굴에는 땀이 조금 반짝이고 있었지만 실은 너무도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쓰여 있어. 이게 예언?”
“그래....”
나는 햇볕을 몇 시간쯤 받은 물건처럼 따뜻한 유리구슬을 집어 들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해리도 자신의 이름이 적힌 예언의 구슬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했다, 포터.”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어떤 낮은 목소리가 느릿느릿 들려왔다.
“자, 천천히 점잖게 뒤로 돌아서서 그걸 나에게 줘. 에반스, 너도 마찬가지다.”
시커먼 형체들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좌우로 길을 가로막았다. 얼굴에 뒤집어쓴 두건의 틈으로 눈동자들이 반짝이고, 끝에 불이 켜진 열두 개의 지팡이들이 우리의 가슴을 똑바로 겨누었다. 지니가 겁에 질려서 숨이 턱 막히는 소리를 냈다.
“이리 내놓아라, 포터, 에반스.”
“이모부...”
로우가 루시우스 말포이의 목소리에 지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손바닥을 펴서 내밀고 있었다.
“이리 줘.”
루시우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시리우스는 어디 있지?”
해리가 말했다. 죽음을 먹는 몇 명이 웃었다. 해리의 왼쪽에서 몹시 거친 여자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둠의 마왕께서는 늘 알고 계시지!”
“맞아.”
루시우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자, 예언을 이리 줘.”
“난 시리우스가 어디 있는지, 그것부터 알아야겠어!”
“난 시리우스가 어디 있는지, 그것부터 알아야겠어!”
해리의 왼쪽에서 거친 목소리의 여자가 해리의 말을 흉내 내었다. 그 여자의 목소리에 로우는 몸을 떨었다. 그 여자와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이 우리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
“당신이 시리우스를 잡아갔어. 난 알아. 시리우스는 여기 있어.”
“우리 꼬맹이 놀라 깨서 꿈이 진짜라고 생각했쪄.”
여자가 아기처럼 앵앵거리는, 몹시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론이 움직이려고 하자 해리가 중얼거렸다.
“아직은-.”
해리의 목소리를 흉내 내었던 여자가 발작하듯이 시끄러운 소리로 깔깔 웃었다.
“들었어? 들었어? 이놈이 지금 우리하고 싸울 작정인가 봐! 방금 자기 친구한테 뭐라고 몰래 지껄였어!”
“아, 당신은 나만큼 이 포터라는 인간을 잘 몰라, 벨라트릭스.”
말포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 녀석은 원래부터 자기가 무슨 대단한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아.그건 누구보다 어둠의 마왕께서 잘 아시지. 당장 예언을 이리 줘, 포터, 에반스.”
“난 시리우스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
해리가 말했다.
“당신이 잡아갔다는 걸 안단 말이야!”
죽음을 먹는 자들이 시끄럽게 웃어 댔다. 물론 여자의 웃음소리가 제일 요란스러웠다.
“이젠 너도 현실과 꿈의 차이를 이해할 때가 됐어, 포터. 어서 예언을 나한테 넘겨. 에반스 것도 가지고 이리 넘겨.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지팡이를 쓰지 않을 수 없어.”
루시우스가 말했다.
“맘대로 해.”
해리가 자기의 지팡이를 가슴 앞으로 치켜들면서 말했다. 그러자 우리도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로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죽음을 먹는 자들은 아직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예언만 나한테 넘겨주면 아무도 다치지 않아.”
루시우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번엔 해리가 깔깔 웃고 나서 말했다.
“그래, 좋아! 이게 뭐라고? 예언? 난 이걸 당신한테 넘겨주고, 그러면 당신은 우리를 곱게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 이 말이지?”
해리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는 순간에 죽음을 먹는 자들 중 여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씨오, 예-.”
해리는 그 여자가 주문을 미처 다 말하기 전에 해리가 소리쳤다.
“프로테고!”
그 바람에 예언은 빼앗기지 않았다.
“어쭈, 젖비린내 나는 어린놈이 제법인걸, 포터?”
미친 듯 이글거리는 눈빛을 두건 틈으로 번득이면서 여자가 말했다.
“좋아, 그럼-.”
“안 된다고 했잖아!”
루시우스가 여자에게 꽥 고함을 질렀다.
“만약 저게 깨지는 날엔-!”
여자가 앞으로 나서면서 두건을 벗었다. 아즈카반에서의 생활이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의 얼굴을 말라 빠진 해골처럼 만들어버렸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은 들뜬 홍조로 빛나고 있었다.
“좋은 말로는 해서는 안 되겠구나, 응?”
벨라트릭스이 말햇다.
“좋아. 그럼, 제일 어린 것부터 맛을 보여 줘야겠군.”
여자가 바로 곁에 서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명령했다.
“내가 저 어린 계집애를 고문할 테니까, 너희들은 이놈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해.”
죽음을 먹는 자들이 지니에게로 다가가는 것이 느껴지자 해리는 유리 구슬을 쥔 손을 가슴팍까지 들어 올리고 옆걸음질을 쳐 지니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 중 누구라도 공격하면 구슬을 깨뜨리겠어.”
해리가 벨라트릭스에게 말했다.
“이걸 깨지면 너희들 대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걸?”
벨라트릭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면서 해리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예언이란 게 도대체 무슨 예언이지?”
해리가 물었다.
“무슨 예언인지 모른다고?”
벨라트릭스가 말했다. 여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 갔다.
“농담이겠지, 해리 포터?”
“아니야, 농담이 아니야.”
해리가 말했다.
“볼드모트가 어떻게 알고 이걸 원한다는 거지?”
죽음을 먹는 자들 몇몇이 흠치 놀라는 소리를 냈다.
“감히 그분의 이름을?”
벨라트릭스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내가 그자의 이름을 부르면-.”
“입 닥쳐!”
벨라트릭스가 빽 소리를 질렀다.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그분의 이름을 들먹이다니, 더러운 잡조의 혓바닥으로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하디니, 감히-.”
“그자도 잡종이라는 걸 알아?”
해리가 태연하게 말했다. 헤르미온느가 짧게 신음을 토했다.
“볼드모트, 그자의 엄마는 마녀지만 아빠는 머글이야. 그런데 너희들한테는 자기가 순수혈통이라고 속여 왔나 보지?”
“스투페-.”
“안 돼!”
벨라트릭스의 지팡이 끝에서 빨간 빛이 튀어나왔으나, 말포이가 황급히 방향을 꺾었다. 말포이의 주문에 막혀서 방향이 꺾인 그 밝간 빛이 해리의 바로 왼쪽에 있는 선반에 꽂히자 유리구슬 몇 개가 박살이 났다. 바닥에 쏟아져 내린 유리 조각에서 진주처럼 허옇고 연기처럼 흐물흐물한, 유령의 모습을 한 두 형상이 나타나서 제각기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유령 같은 두 형상들이 서로 앞을 다투듯이 말을 했지만, 루시우스와 벨라트릭스가 고래고래 질러 대는 고함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안 된다고 했잖아! 예언을 뺏어야 해!”
“저놈이 감히... 저 자식이 감히....”
벨라트릭스는 대중없이 악을 써 댔다.
“저 더러운 잡종이...”
“예언을 뺏을 때까지 기다리란 말이야!”
루시우스가 고함을 질렀다. 깨진 유리 구슬에서 나온 두 형상들이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들만이 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 모습에 내가 로우의 팔을 잡았다. 로우가 나를 응시했다.
“선반을 부숴, 내가 신호를 주면-.”
로우는 내가 옆 사람에게 전해 달라고 눈치를 네빌과 지니에게만 들리도록 몸을 숙였다.
“이 예언이 그렇게 특별한 거야? 설명이나 해주고 나서 뺏든지 말든지 해.”
내 목소리를 들은 해리가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하고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마, 포터.”
“난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야.”
“미스터리 부서의 어딘가에 네 이마의 흉터가 생긴 이유가 숨겨져 있다는 걸 덤블도어가 말해 주지 않았나?”
루시우스가 비웃듯이 말했다.
“뭐라고? 내 흉터가 어쨌다고?”
“그렇게 된 건가?”
루시우스가 아주 흡족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 몇 명이 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덤블도어가 말하지 않았어?”
루시우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음, 그렇다면 네가 왜 더 일찍 오지 않았는지를 이제야 알겠군, 포터. 어둠의 마왕께서도 네가 왜 달려오지 않는지 궁금해하셨지. 예언이 숨어 잇는 곳을 네 꿈속에서 가르쳐 줬을 때 말이야. 그분은 네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호기심에 당연히 곧장 달려올 거라고 생각하셨지...”
“그랬어?”
해리가 말햇다.
“그래서 그자가 내가 곧장 달려올 거라고 생각해산 말이지? 이유가 뭐지?”
“이유?”
루시우스가 이번에는 더욱더,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흡족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터리 부서에서 예언이 적힌 구슬을 껴낼 수 있는 자는 말이야, 포터, 그 예언에 해당되는 장본인뿐이기 때문이야. 어둠의 마왕께서 다른 자들을 시켜서 훔치려고 했을 때 그 사실을 알아내셨지.”
“그런데 그자가 나에 관한 예언을 갖고 싶어하는 이유가 뭐지?”
“너만이 아니야, 포터. 거긴 그분의 관한 예언도 있어... 에반스의 예언에도 너와 그분의 예언이 있지.... 네가 어렸을 때 어둠의 마왕께서 널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뭔지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나?”
“그럼 누군가가 볼드모트와 나에 과한 예언을 했단 말이야?”
해리는 유리구슬을 쥔 손에 좀더 힘을 주고 루시우스의 회색 눈을 빤히 노려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그자는 내가 와서 대신 이걸 꺼내 주길 기다렸다는 말이야? 왜 자기가 직접 하지 않았지?”
“직접 하신다고?”
벨라트릭스가 미친 듯이 찢어지는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어둠의 마왕께서 돌아오신 줄을 마법부 놈들은 고맙게도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그분께서 마법부에 직접 행차를 하신다고? 그 인간들이 내 귀여운 사촌한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어둠의 마왕께서 직접 오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다고?”
“그래서 자기의 더러운 일을 너희들한테 시켰군 그래? 그래서 스터지스나 보드를 시켜서 그걸 훔치려고 했단 말이지?”
해리가 말했다.
“똑똑해, 포터. 아주 똑똑해...”
루시우스가 말했다.
“그러나 어둠의 마왕께서는 네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잘 아시-.”
“지금이야!”
내가 고함을 질렀다.
“리덕토!”
나를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이 주문을 외우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일곱 개의 주문이 일곱 방향으로 날아가고, 맞은편 선반들이 폭발했다. 높다란 진열장들이 휘청 넘어지고, 수백 개의 유리 구슬들이 깨지고, 진주 빛의 허연 형상들이 허공에 나타나서 떠다녔다. 깨진 유리 조각들과 부서진 나무 조각들이 소낙비처럼 바닥에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 속에서 그 형상들의 목소리가 마치 아득한 먼 옛날로부터 울려 오는 메아리처럼 웅웅거렸다.
“뛰어!!”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진열장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훨씬 더 많은 구슬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조각과 유리 조각이 파묻어 버릴 것처럼 쏟아졌다. 죽음을 먹는 자 하나가 먼지구름을 뚫고 해리에게로 돌진했다. 해리는 두건을 뒤집어쓴 그자의 얼굴을 팔꿈치로 강타했다. 휘청 넘어진 선반들이 바닥에 부딪히며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고함과 고통의 비명을 질러 대고, 구슬 속에 갇혀 잇다 세상으로 나온 예언자들이 한꺼번에 무어라 주절거리는 소리들이 아득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우리는 달려갔다.
“스투페파이!”
우리에게 달려오는 죽음을 먹는 자를 향해서 로우가 주문을 외웠다. 기절 마법에 명중한 죽음을 먹는 자가 휘청 쓰러지면서 바닥을 굴렀다. 우리가 들어왔던 그 문이 저만치 앞에서 반쯤 열려 있고 밝게 반짝이는 크리스털 등피가 보였다. 우리는 그 문으로 달려 나갔다.
“콜로포터스!”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외쳤다. 그러자 곧 찌그러지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혔다.
“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지?”
해리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말했다. 론과 루나와 지니가 먼저 그 문을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엉뚱한 데로 갔나 봐!”
내가 말했다.
“가만!”
네빌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방금 닫힌 그 문 뒤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우스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고일과 노트는 그냥 내버려둬. 그들은 내버려 두란 말이야. 고일과 노트는 다친 건 문제도 아니야. 어둠의 마왕님의 관심은 예언뿐이야. 적슨, 너 이리 나와. 조를 짜야겠다. 둘씩 짝을 지어서 수색하는 거야. 그리고 예언이 우리 손에 들어올 때까지 해리 포터와 로라 에반스를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는 걸 명심해. 다른 것들은 죽이든지 살리든지 맘대로 해... 벨라트릭스, 로돌푸스, 왼쪽으로... 크레이브, 라바스탄, 오른쪽,,, 적슨, 돌로호브, 저 문으로 나가... 맥네어와 애버리는 여기를 두지고... 록우드는 저쪽으로... 뮬시버, 넌 날 따라와!”
“이젠 어떻게 할 거야?”
헤르미온느가 머리끝까지 발끝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물었다.
“음, 여기 그냥 서서 그들이 우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우선 이 문에서 멀어지고 봐야 해.”
해리가 말했다. 우리는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 가며 달렸다. 계속 갈라졌다가 다시 닫히는 작은 알이 들어 있는 반짝이는 크리스털 등피 곁을 지나 둥글고 캄캄한 복도로 나가는 문 근처에 거의 도착했을 때, 방금 헤르미온느가 마법을 걸어서 닫았던 그 문을 아주 크고 무거운 것이 찧어 대는 소리를 들었다.
“옆으로 비켜서!”
거친 목소리가 말했다.
“알로호모라!”
문이 활짝 열렸다.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네빌은 황급히 책상 밑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로우는 문을 열고는 빠져 나갔다. 나는 그런 로우의 뒤를 쫓아갔다. 뒤에서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리고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의 방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어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론? 지니? 루나?”
“해리!”
“로라!”
“옆으로 들어가자!”
아무 문이나 들어가자고 나는 로우를 재촉했다. 또 다른 문이 열리면서 죽음을 먹는 자 두 명이 우리를 향해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스투페파이!”
나는 주문을 외쳤다. 곧 문을 통해서 나오는 해리, 헤르미온느, 네빌.
“찾았다! 여기야, 바로 옆-.”
“실렌시오!”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그 사내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얼굴에 뒤집어쓴 두건에 뚫린 구멍으로 여전히 입을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죽음을 먹는 자가 그를 옆으로 밀어젖혔다.
“페트리피쿠스 토탈쿠스!”
그 죽음을 먹는 자가 지팡이를 치켜드는 순간에 로우가 외쳤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동시에 꺾이면서 앞으로 쓰러진 그는 바로 양탄자 바닥에 얼굴을 찧고 몸이 마치 널빤지처럼 굳어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잘 했어, 레스-.”
그러나 헤르미온느가 방금 말 못하는 주문을 걸었던 그 죽음을 먹는 자가 돌연 지팡이를 휘저었다. 그러자 자주색 불꽃같은 것이 허공에 날았다. 그 불꽃이 헤르미온느의 가슴에 곧바로 꽂힌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랄 것처럼 ‘아!’ 하는 짧은 소리를 토하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헤르미온느!!”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곁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네빌이 급히 그쪽으로 가기위해서 달려갈 때, 죽음을 먹는 자가 발로 그를 걷어찼다. 그는 쓰러진 네빌보다 먼저 지팡이를 두 동강 낸 다음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네빌이 고통의 신음을 토하며 입과 코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 죽음을 먹는 자가 두건을 벗어 버리고 지팡이를 똑바로 해리에게 겨누고 있었다. 길고 창백하고 잔뜩 뒤틀린 얼굴, 프레웨트 가문의 사람들을 살해한 안토닌 돌로호브였다. 돌로호브가 능글맞게 히죽 웃었다. 그는 지팡이를 잡지 않는 손으로 해리의 손에 단단히 쥐어진 예언과 자기 자신과 헤르미온느를 번갈아 가리켰다. 입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뜻은 뻔한 것이었다. 예언을 나한테 넘겨주지 않으면 헤르미온느와 같은 꼴이 될 거라는....
“내가 이걸 너한테 주면 우리를 죽이진 않겠지!”
해리가 말했다.
“머하는 거야, 해리.”
네빌이 사납게 소리쳤다. 그가 두 손을 내리자 엉망으로 깨진 코가 드러나고 입과 턱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젓대 두면 안 돼!”
바로 그때 문 저쪽에서 또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돌로호브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아기 머리의 죽음을 먹는 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그 작은 입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커다란 두 팔을 정심없이 마구 휘둘러 대고 있었다.
“스투페파이!”
“페트리피쿠스 토탈쿠스!”
해리와 로우가 동시에 주문을 외워 돌로호브를 강타했다. 그는 먼저 바닥에 쓰러진 죽음을 먹는 자 몸 위로 쓰러졌다.
“헤르미온느.”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흔들었다.
“헤르미온느, 정신 차려...”
“저노미 헤으미를 어떠케 한 거지?”
네빌이 우리 곁으로 다가왓다. 퉁퉁 부어오른 그의 코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나도 몰라...”
네빌이 헤르미온느의 손목을 짚어 보았다.
“맥바기 띠고 이써, 해리...”
“살아 있구나!”
“어, 그런 거 가타...”
“해리,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가 해리에게 물었다.
“.....네빌, 여기서 출구가 멀지 않아. 지금 우린 둥근 방 바로 곁에 있어. 죽음을 먹는 자들이 또 나타나기 전에 그 방을 지나서 문을 제대로 찾기만 하면, 넌 헤르미온느를 데리고 복도로 나가서 승강기를 타고... 누구든지 찾아봐... 경보를 울려...”
“넌 어떠케 하려고?”
네빌이 피가 철철 흐르는 코를 소매로 슥 닦으면서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해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친구들을 찾으러 갈 거야.”
해리가 말했다.
“음, 나도 너하고 가치 가 꺼야.”
네빌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마법부는 텅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사람이 없을 거야.”
로우가 상황을 냉정히 분석해서 말했다.
“그럼 헤르미온느는-.”
“데리고 가는 거지 머.”
네빌이 또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업으게- 싸움은 니가 나보다 잘하니까-.”
그가 일어서서 헤르미온느의 한 팔을 잡고 해리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머지 한 팔을 잡고, 축 늘어진 헤르미온느를 네빌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집어서 네빌의 손에 쥐어 쥐었다.
“네가 이걸 쓰는 게 좋겠다.”
네빌이 두 동강 난 그의 지팡이를 발로 차 버렸다. 그리고 우린 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머니가 아시면 나 죽일 거야.”
네빌이 침울하게 말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코에서 피가 튀었다.
“저거 우리 아버지가 쓰시던 거야...”
해리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아기 머리의 죽음을 먹는 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아무 데나 머리를 들이받고, 괘종시계들을 쓰러뜨리고 책상들을 뒤엎고, 미친 듯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 유리문이 달린 캐비닛은 아직도 넘어져서 박살이 났다가 다시 뒤로 벌떡 일어서서 멀쩡하게 벽에 서 있는 걸 되풀이하고 있었다.
“저자는 우릴 보지 못해. 빨리... 내 뒤를 바싹 따라와...”
“로라의 말대로 타임 터너였네.”
“쉿!”
방을 빠져나와서 캄캄한 복도로 나가는 문 쪽으로 갔다. 지금 복도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네빌은 등에 업은 헤르미온느가 무거운지 조금 비척거리며 걸었다. 뒤에서 시간의 방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벽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벽이 멈추었다. 헤르미온느가 문에 남겨 놓았던 X자 표시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 어느 문으로 나가지?”
나갈 문을 결정하기 전에 오른쪽 문이 활짝 열리면서 세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론!”
해리가 목멘 소리로 부르면서 그들에게로 뛰어갔다.
“지니- 너희들 모두-.”
“해리.”
론이 힘없이 킥킥 웃으면서 앞으로 다가와 해리의 망토 앞자락을 움켜잡고 초점이 풀린 눈으로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여기 있었구나.... 하하하.... 너 우습다, 해리.... 꼴이 말이 아니야...”
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에서는 아주 짙은 색의 액체가 한쪽 옆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론의 두 무릎이 제 풀에 푹 꺾였다. 그러나 그가 해리의 망토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해리의 몸도 엉거주춤 숙여졌다.
“지니? 어떻게 된 거야?”
해리가 겁이 나서 물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지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서 바닥에 주저앉더니 숨을 헐떡거리면서 한쪽 발목을 움켜잡았다.
“발목이 부러진 거 같아. 뭔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어.”
루나가 지니에게로 몸을 숙이며 작게 말했다.
“네 명이 우릴 쫓아왔어. 우리는 어느 캄캄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행성들이 가득한 방이었어. 정말 이상한 방이었어. 우리가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해리, 우린 천왕성을 바로 옆에서 봤어!”
론이 말했다. 그는 아직도 힘없이 킥킥 웃고 있었다.
“들었어, 해리? 천왕성을 봤단 말이야... 하하하..”
론의 입가에 피거품이 일었다가 사그라졌다.
“한 놈이 지니의 발목을 잡았어. 그래서 내가 분해 주문을 싸서 명왕성을 그놈의 얼굴 앞에서 터뜨렸지. 그런데...”
루나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지니를 가리켰다. 지니는 두 눈을 감은 채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론은 어떻게 된 거야?”
론이 해리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계속 킥킥 웃자 해리는 겁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놈들이 뭘로 공격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론이 조금 이상해졌어. 나도 쟤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 듣겠어...”
루나가 침울하게 말했다.
“해리, 너 이 계집애가 누군지 알아, 해리? 루우니야... 루우니 러브굿... 하하하....”
론이 해리의 귀를 잡아당겨서 입을 갖다 대고 여전히 힘없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보자. 루나, 너 지니를 부축할 수 있겠어?”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응.”
루나가 지팡이를 귓등에 끼우고, 한 팔로 지니의 허리를 감아 일으켰다.
“발목만 다쳤을 뿐이야. 나 혼자 걸을 수 있어!”
지니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에 옆으로 휘청 넘어지면서 얼른 루나가 붙잡았다. 해리는 론의 한 팔을 자기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고는 론을 부축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까지 불과 몇 미터 남지 않았을 때 저족에서 또 다른 문이 활짝 열리고, 세 명의 죽음을 먹는 자가 뛰어 들어왔다. 벨라트릭스가 맨 앞에서 달려왔다.
“저기 있다!”
그 여자가 찢어지는 소리로 외쳤다. 곧이어 기절 마법이 날아들어왔다. 해리는 바로 앞에 있는 문을 발로 차서 론을 거칠게 떠밀어서 밖으로 내보내고, 로우가 그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와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업고 있는 네빌을 도왔다. 벨라트릭스가 바로 등 뒤에까지 쫓아왔을 때 우리 모두 문턱을 넘었다.
“콜로포터스!”
해리가 외쳤다. 문 저편에서 세 개의 몸이 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들어가는 문은 얼마든지 있어! 우리가 잡았다! 여기야, 여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다시 뇌의 방에 들어와 있었다. 사방의 벽이 보였다.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그자가 외친 소리를 듣고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해리! 어서 움직여!”
나는 멍하니 있는 해리를 툭 건들어서 문에 마법을 걸었다.
“루나, 네빌, 로우 레스트랭, 도와줘!”
나를 포함한 다섯 사람은 흩어져 뛰어다니면서 문마다 마법을 걸었다.
“콜로포터스!”
문 뒤에서 요란한 발소리들이 들렸다. 육중한 몸으로 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나고 문짝이 곧 떨어질 듯이 요동을 쳤다.
“콜로- 아아아아...”
“루나!”
루나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홱 돌렸다. 루나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루나가 미처 마법을 걸지 못한 문으로 죽음을 먹는 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책상 위에 떨어진 루나는 책상 너머로 바닥에 굴러 떨어져, 아까 헤르미온느가 그랬던 것처럼 축 늘어져버렸다.
“포터와 에반스를 잡아!”
벨라트릭스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치고는 나와 해리에게 달려들었다.
“이봐.”
론이 해리를 불렀다. 이전까지는 조금만 비틀거렸던 그가 이제는 꼭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면서 해리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여전히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해리, 이 방엔 뇌가 있어. 하하하, 징그럽지, 해리?”
“론, 저리 비켜, 엎드려-.”
그러나 론은 이미 그의 지팡이로 수조를 겨냥하고 있었다.
“괜찮아, 해리, 저건 뇌야- 잘 봐-. 아씨오, 뇌!”
실내가 잠깐 얼어붙은 것 같았다. 우리는 죽음의 먹는 자들과 함께 멍하니 수조의 꼭대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수조에서 뇌 한 개가 튀어나왔다. 마치 물고기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허공에 걸려 있는 듯하더니, 아내 론을 향해서 날아갔다. 뇌가 팽그르르 돌면서 가느다란 띠들이 꼬불꼬불 풀려 나왔다. 마치 필름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하하, 해리, 저것 좀 봐-.”
물기가 촉촉한 내장을 풀어내는 뇌를 쳐다보면서 론이 말했다.
“해리, 이리 와서 이것 좀 만져 봐, 정말 징그러-.”
“론, 안 돼!”
뇌에서 풀려 나온 그 생각의 촉수에 론의 손이 닿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해리가 론에게로 몸을 날렸지만, 이미 론은 두 손으로 뇌를 잡은 뒤였다. 론의 살갗에 촉수가 닿는 순간 마치 밧줄철머 그의 두 팔을 감아 대기 시작햇다.
“해리, 이것 좀 봐- 엇, 안 돼- 안 돼, 싫어- 안 돼- 그만 해- 그만-.”
그러나 이제는 가느다란 촉수들이 론의 턱을 감고 있었다. 마치 문어 발처럼 몸에 달라붙은 뇌의 촉수들은 론이 마구 잡아뜯었다.
“디핀도!”
해리가 론의 몸을 칭칭 감은 촉수들을 떼려고 주문을 외쳐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론이 털썩 쓰러져서 몸에 감긴 촉수를 두 손으로 마구 두들겼다.
“해리, 저러다가 숨 막혀 죽겠어!”
부러진 발목을 움켜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지니가 소리쳤다. 바로 그때 한 죽음을 먹는 자의 지팡이 끝에서 빨간 빛이 튀어나와서 지니의 가슴에 정통으로 꽂혔다. 지니가 옆으로 픽 쓰러지며 까무라쳤다.
“스투비파이!”
네빌이 휙 돌아서서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겨냥하고 외쳤다.
“스투비파이, 스투비파이!”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 중 한 명이 네빌에게 기절 마법을 날렸다. 그 주문이 네빌을 스치듯 빗나갔다. 두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날린 은색 빛이 화살처럼 날아와서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 등 뒤에 있는 벽에 꽂혔다. 벽에 분화구 같은 것이 파였다. 나는 해리의 손목을 잡고는 그 벽을 향해서 뛰어갔다. 나와 해리가 친구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지면 죽음을 먹는 자들을 따라올 거다. 생각대로 되는 것 같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우르르 우리의 뒤를 쫒아갔다. 의자를 쓰러뜨리고 탁자를 뒤엎으면서 허겁지겁 뒤를 쫓았지만 예언을 깨뜨릴까 봐 누구도 감히 마법을 쏘지는 못했다. 나는 잡고 있는 손을 놓자 해리도 달렸다. 우리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들어왔던 그 문을 향해서 뛰었다.
몇 걸음도 채 못 달려서 바닥이 사라져 버렸다. 곧 우리는 가파른 돌계단을 떼굴떼굴 구르고 계단참에서 공처럼 튀어올랐다가 또 떼굴떼굴 굴러 떨어졌다. 이윽고 푹 꺼진 바닥에 돌로 쌓은 제단이 있고, 그 위에 돌로 지은 아치문이 있는 바로 그곳에, 철퍼덕 부딪히며 멈추었다.
“아야....”
발목이 시큰거리면서 아파왔다. 뇌의 방에서 보았던 다섯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은 계단을 내려오고 다른 문들을 통해서는 훨씬 더 많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우리를 향해서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포터, 에반스, 경주는 끝났어.”
루시우스가 두건을 벗으면서 낮은 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자, 이제 순순히 예언을 나한테 넘겨줘...”
“다- 다른 친구들을 돌려보내면 이걸 당신한테 주겠어!”
해리가 절박하게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 몇 명이 킥킥 웃었다.
“넌 지금 나하고 거래를 할 처지가 아니야, 포터.”
루시우스가 말햇다. 얼마나 흡족한지 그의 창백한 얼굴이 조금 불그레해져 있었다.
“봐, 우린 열 명이고 너와 에반스 두 명이야... 아니, 덤블도어가 그렇게 간단한 셈조차도 가르치지 않았단 말이냐?”
“나도 이써!”
저만치 위에서 어떤 목소리가 외쳤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빌이 비틀거리면서 그들을 향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한 손에는 헤르미온느의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네빌, 안 돼- 론한테 돌아가-.”
“스투비파이!”
네빌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차례로 지팡이를 겨누면서 소리쳤다.
“스투비파이! 스투비-.”
유난히 덩치가 큰 어느 죽음을 먹는 자가 뒤에서 네빌을 붙잡고 그의 두 팔을 마치 새의 죽지를 꺾듯이 뒤로 모아 잡았다. 네빌이 버둥거리며 발길질을 했다. 곳곳에서 죽음을 먹는 자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롱바텀 아냐, 응?”
루시우스가 코웃음을 치듯이 말했다.
“흠, 네 할머니는 우리 때문에 자식, 손자들을 잃는 데는 아주 익숙해졌을 거야... 네가 여기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그리 놀라지는 않을 거라고...”
“롱바텀?”
벨라트릭스가 말했다. 그 여자의 음산한 얼굴에 악의에 찬 미소가 환히 번졌다.
“이런, 이제야 인사를 하는군, 네 어미 애비를 만났을 땐 정말 즐거웠어.”
“가만 안 두 꺼야!”
네빌이 뭐라고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거세게 발버둥을 치자, 그의 두 팔을 움켜잡고 있던 죽음을 먹는 자가 소리쳤다.
“누가 이놈을 어떻게 좀 해봐!”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벨라트릭스가 말했다. 그 여자는 모처럼 되살아난 생기를 어떻게 감당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네빌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야, 그럴 게 아니라, 롱바텀이 얼마나 오래 견디다가 제 어미 애비처럼 되는지 구경이나 하자고... 물론 포터와 에반스가 예언을 곱게 넘겨주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젓대로 두면 안 대!”
네빌이 고함을 질렀다. 그는 아주 정신이 나간 것처럼 발길질을 하고 몸을 비틀었다. 벨라트릭스가 그와 그를 붙잡고 있는 자를 향해서 천천히 다가갔다.
“젓대로 두면 안 돼, 해리!”
벨라트릭스가 지팡이를 추켜올렸다. 그 모습에 움직이려고 했지만 다리의 아픔에 바로 비틀거렸다.
“크루-.”
“임페디멘타!”
누군가가 주문을 외쳤다. 그리고 네빌을 붙잡고 있는 죽음을 먹는 자를 발로 차서 네빌을 구해준 존재.
“로우!!”
“내가 적절할 때 왔나 보네. 롱바텀, 위즐리를 나한테 맡기고 가면 어떻게 해!? 나도 걱정된다 말이야!”
네빌을 부축하면서 로우가 외쳤다. 네빌, 귀가 윙윙하겠는걸.
“로우 프로키온 레스트랭!!!”
루시우스가 그의 행동에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그때 두 개의 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일곱 명이 뛰어 들어왔다. 시리우스, 루핀, 무디, 통스, 킹슬리, 아빌, 애드밀이였다.
루시우스가 고개를 돌리고 지팡이를 쳐들었다. 그러나 통스가 이미 그에게 기절 주문을 날려 보낸 뒤였다. 느닷없이 나타난 기사단의 단원들이 움푹 파인 바닥을 향해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 내려오면서 주문을 퍼부어 대자 죽음을 먹는 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댔다. 휙휙 나는 몸들과 번쩍번쩍하는 빛들 사이로 로우와 네빌이 우리 쪽으로 기어왔다.
“가자, 어서!”
로우가 내 허리를 자신의 팔로 감쌌다. 한 개의 주문이 머리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론은?”
“괜찮아. 여전히 뇌와 싸우고 있지만.”
네빌과 해리 사이의 바닥에 빛이 꽂혔다. 그들은 깜짝 놀라서 뒷걸음칠 때, 난데없이 두툼한 손 하나가 나타나서 해리의 목을 움켜잡고 치켜 들었다.
“해리!”
해리의 두 발이 땅바닥에서 떠 간들거렸다.
“위험해, 로라!”
로우가 이쪽으로 날아온 붉은 빛을 피하게 도와주었다. 나와 로우는 바닥을 굴렀다. 모두들 죽음을 먹는 자들과 상대하고 있어서 해리의 숨이 곧 끊어질 지경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해리의 목을 잡고 있는 그 죽음을 먹는 자는 다른 한 손으로 예언을 찾고 있고 있었다.
“아아악!!”
느닷없이 네빌이 그자에게 돌진했다. 주문을 또렷하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네빌은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로 죽음을 먹는 자의 눈이 있는 뻥 뚫린 두건의 구멍을 푹 찔렀다. 죽음을 먹는 자가 해리의 목을 움켜잡고 있던 손을 놓고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스투페파이!”
해리가 휘윅 돌아서서 막혔던 숨을 토하며 외쳤다. 죽음을 먹는 자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의 두건이 벗겨졌다. 맥네어였다. 그 자의 한쪽 눈이 퉁퉁 부어오르고, 벌겋게 피가 맺혀 있었다.
“고마워.”
우리 근처로 시리우스와 죽음을 먹는 자가 결투를 벌이며 바로 곁에 다가왔다. 그러자 해리는 네빌을 옆으로 잡아당겼다. 무디가 우리 옆에 쓰러져서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리고 있었다. 무디가 쓰러뜨린 자, 돌로호브가 해리와 네빌을 덮쳐오고 있었다. 그의 길고 창백한 얼굴이 승리의 기쁨으로 잔뜩 뒤틀려 있었다.
“타란탈레그라!”
돌로호브가 네빌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소리쳤다. 그러자 네빌이 마치 뜨거운 불덩이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두 발을 허둥거리다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멍하니 있지 마, 로라!!”
로우가 자신이 할 일을 깨달은 사람처럼 나에게 외치고는 해리와 네빌은 신경 쓰지 않고는 나를 데리고는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계단으로 끌고 올라갔다. 우리가 있었던 자리에 빛이 꽂혔다.
“로라, 어서 가!”
아빌이 근처로 와서는 이쪽으로 날아오는 주문을 방어해주면서 나에게 외쳤다.
“아씨오, 예언!”
“안 돼!!”
누군가 외치는 주문에 내 손에 움켜쥐고 있는 예언의 구슬이 빠져 나갔다.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예언의 구슬이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 맞은편의 후드를 눌러쓴 존재가 예언의 구슬을 잡았다(계단 중간쯤에서 통스가 떼굴떼굴 굴러 떨어지고, 벨라트릭스가 의기양양하게 뒤를 따라 뛰어 내려오는 게 보였다).
“해리, 예언을 꼭 쥐고 네빌을 데리고 뛰어!”
시리우스가 소리치고는 벨라트릭스를 향해서 내달렸다(두건을 벗어던진 곰보 록우드와 맞서 싸우는 킹슬리가 잠깐 보였다). 나는 그 후드를 내려서 얼굴을 보이는 티파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로라, 어서 가자!”
“해리 쪽을 도와.”
로우를 해리와 네빌 쪽으로 밀치면서 내가 말했다. 그리고 다리의 아픔도 잊어버리고는 도망치는 티파니의 뒤를 쫓았다.
“티파니!!!”
“로라, 안 돼!”
뒤에서 부르는 로우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로라는 휘청거리면서 달려갔다.
“애드밀, 로라가!!”
크레이브를 기절 시킨 애드밀은 로우의 외침과 손가락질에 로라의 뒷모습을 보고는 곧 문 뒤로 사라지는 익숙한 뒷모습에 그쪽으로 달렸다.
한편, 예언을 발로 차서 부셔버린 네빌과 그런 네빌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노력하는 해리.
“점말 미안해, 해리. 일부여 그런 게 아니었셔-.”
“괜찮아! 빨리 일어나기나 해. 빨리 여기서 나가야-.”
“더블도어!”
네빌이 말했다. 해리의 어깨 너머를 쳐다보는, 땀방울이 송송 맺힌 네빌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뭐라고?”
“더블도어!”
해리는 네빌이 쳐다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 바로 위에, 뇌의 방으로 통하는 문틀을 마치 액자인 양 뒤로 하고, 알버스 덤블도어가 떡하니 서 있었다. 지팡이를 높이 치켜든 그의 하얀 얼굴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빨리 거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어느새 잊어버린 네빌과 해리를 향해서 덤블도어가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가 계단 아래까지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죽음을 먹는 자들은 그가 나타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방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저편에서 어느 죽음을 먹는 자가 원숭이처럼 허우적대며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덤블도어의 주문이 휙 날아가고,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낚시바늘에 꿰인 것처럼 그의 몸이 너무나도 가볍게 휘익 뒤로 날아왔다.
덤블도어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시리우스와 벨라트릭스만 싸우고 있었다. 곧 폭발 소리와 함께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티파니.
“이리 내놔, 티파니 프레웨트.”
입가에 흘린 피를 소매로 거칠게 닦으면서 로라가 분노를 띈 금안으로 천천히 티파니를 향해 걸어 내려갔다.
“누가, 하아.... 줄 주... 알아?!”
거친 숨을 내쉬면서 뒤로 물러나는 티파니. 시리우스가 벨라트릭스가 쏜 빨간 빛을 피하고 그녀를 보고 껄걸 웃었다.
“또 해보시지, 실력이 형편없군!”
그의 고함 소리가 움푹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벨라트릭스가 다시 날려 보낸 빨간 빛이 시리우스의 가슴에 정통을 꽂혔다. 시리우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의 두 눈이 충격으로 커졌다. 해리는 네빌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 지팡이를 앞에 쳐들었다. 시리우스의 몸이 아주 보기 좋게 휘청 휘어지면서 뒤로 넘어가더니, 아치문에 걸린 너덜너덜한 베일 속으로.... 베일을 덮치면서 그 낡은 아치문 안으로 쓰러진 시리우스의 몸이 베일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잠간 스치고 지나간 돌풍에 펄럭였다가 다시 가라앚는 것처럼 천천히 일렁였다. 벨라트릭스의 의기양양한 고함 소리가 울렸다.
“시리우스!!!”
해리가 소리쳤다.
“시리우스!”
해리가 제단으로 뛰어오르려는 순간에 루핀이 뒤에서 두 팔로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챙-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로라의 반지가 깨지면서 그 파편이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