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77
온몸이 아파왔다. 낙엽과 나뭇가지 같은 데에 누워있는 것을 깨닫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론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키자 론의 왼쪽 몸 전체가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뭇잎이 무성하게 깔린 땅바닥에 잿빛이 되다시피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폴리주스 마법약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어 론은 캐터몰과 원래 자기 모습의 중간 상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서히 붉어져 가는 론의 머리맡에서 두 손과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 헤르미온느를 보고 론의 발치에 있는 해리를 응시했다.
"론이 어떻게 된 거지?"
"순간이동 중에 신체분리가 된 거야."
해리의 질문에 헤르미온느가 손으로 분주하게 론의 소매를 만지면서 대답했다. 그 부분이 검붉은 피로 가장 축축하게 물들어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론의 소매를 벗겨 내자 마치 칼로 말끔하게 도려낸 듯이 커다란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자리가 드러났다.
핸드백을 열어서 지팡이를 그 안에 겨누었다.
"아씨오 디터니!"
티터니 원액이 들어 있는 병이 백 속에서 슝 날아왔다. 나는 헤르미온느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이제 론은 눈을 절반쯤 감고 있었고, 눈꺼풀 사이로는 허연 흰자위만 보였다.
"기절했어."
머리카락은 아직도 여기저기 희끗희끗했지만 얼굴은 헤르미온느 본인이 파리한 안색으로 말했다.
"이것 좀 열어줘! 손이 떨려서 안 되겠어."
병의 뚜겅을 비틀어 열었다. 헤르미온느가 그것을 받아들더니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 부위에 물약을 세 방울 떨어뜨렸다. 초록색 연기가 소용돌이치며 피어올랏다. 연기가 가시고 나자 피가 멈추었다. 이제 상처는 벌써 며칠쯤 지난 것처럼 보였다. 방금 전까지 뻘건 살이 드러난 자리에 새로운 살이 자라고 있었다.
"우와."
해리가 감탄했다.
"론을 완전히 낫게 할 수 있는 주문들도 있지만, 도저히 시도해 볼 엄두가 안 났어."
헤르미온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해서 더 심한 부상을 입히기라도 한다면... 론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데..."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니? 난 그리몰드 광장의 문까지 봤어. 그런데 왜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거지?"
내가 질문을 하자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푹 쉬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이었다.
"이제 우린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그게 무슨...?"
"우리가 순간이동을 할 때, 악슬리가 나를 꽉 붙잡고 있었는데, 힘이 너무 세서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가 그리몰드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자도 여전히 붙어 있었던 거야. 그래, 내 생각엔 그자가 분명히 그 문을 본 것 같아. 그런데 악슬리는 우리가 거기서 멈추는 줄 알고, 잠깐 날 붙잡은 손의 힘을 뺐어. 그 틈을 타서 나는 간신히 그자를 떨쳐 버리고 너희를 데리고 여기로 온 거야!"
"그렇다면 그자는 어디 있어? 잠깐만... 설마 그자가 그리몰드 광장에 잇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자는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잖아?"
헤르미온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해리, 아마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반동 주문으로 그자가 강제로 튕겨 나가도록 했어. 하지만 내가 이미 그자를 피델리우스 마법의 보호막 안쪽으로 넣어 주었던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가 바로 비밀 파수꾼이잖아. 그런데 내가 그에게 그 비밀을 알려 준 거지, 안 그래?"
악슬리가 그리몰드 광장 12번지로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곳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피신처를 잃어버린 거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어. 잘못이 있다면, 나에게 있어..."
해리가 호주머니에서 손을 넣더니 매드아이의 마법의 눈을 꺼냈다. 헤르미온느가 기겁을 하면서 몸을 움츠렸다.
"엄브리지가 이걸 자기 사무실 문에 붙여 두고 있었어. 사람들을 감시하려고 말이야. 난 도저히 이걸 거기에 두고 올 수가 없었어... 그런데 이것 때문에 그자들이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았던 거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론이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아직도 잿빛인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좀 어때?"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불쾌해."
론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부상당한 팔의 통증을 느낀 듯 얼굴을 찡글렸다.
"우리가 어디 있는 거지?"
"퀴디치 월드컵이 열렸던 그 숲 속에 있어."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나는 어딘가 외지고 은밀한 곳을 원했는데 이곳이..."
"제일 먼저 생각났구나."
해리가 말을 받았다. 적막하기 짝이 없는 숲 속 공터를 둘러보았다.
"우리 이제 그만 이동해야 하지 않니?"
론이 물었다. 여전히 창백하고 축 늘어져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네 꼴로는 몸이 먼저 무너질 거야. 해리, 헤르미온느, 텐트를 쳐. 나는 보호 마법을 주위에 걸게."
나는 헤르미온느에게 말을 했다. 그리고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입으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면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의 주위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걸었다.
"살비오 헥시아... 프로테고 토탈룸.... 레펠로 메글레톰... 머플리아토...."
복잡한 여덟 가지 동작을 하면서 주문을 외웠다. 주위 공기가 파르르 진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에렉토!"
헤르미온느가 엉망인 텐트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러자 텐트가 단번에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솟아올르더니 완전한 모양을 갖추고 앞에 섰다. 말뚝이 붕 하고 떠오르더니 마지막으로 당김 밧줄 끝에 쾅 하고 박았다.
"케이브 이니미컴!"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멋지게 휘두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내가 할 수 잇는 건 다 했어. 적어도 그자들이 다가온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야. 물론 이걸로 다 막을 수 있다고 보장 할 수는 없어. 그리고 한 가지, 너희에게 말해 둘 것이 있어. 그 사람의 이름을 앞으로 입 밖으로 내지 마.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추적 마법에 걸리니까.... 꺼내지 마. 죽음을 먹는 자와 만나고 싶다면 말해도 좋아."
나는 그들에게 경고를 했다. 요즘 헤르미온느도 볼드모트라고 편안하게 부르고 있으니까. 주의를 둬야지.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론을 반쯤은 들고 반쯤은 끌다시피 해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은 욕실과 조그만 주방까지 완벽하게 갖춘 소형 아파트였다. 해리는 낡은 안락 의자를 옆으로 치우고 론을 조심스럽게 2층 침대의 아래쪽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 침대 위에 눕자 론은 눈을 감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차를 준비할게."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리고 백 안에서 주전자와 머그잔을 꺼내더니 부엌으로 갔다. 따뜻한 차가 담긴 머그잔을 받아들고 잠시 후에 론이 침묵을 깼다.
"캐터몰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운이 좋으면, 도망쳤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위안 삼아 따듯한 머그잔을 꼭 감싸 쥔 채 말했다.
"캐터몰씨가 재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동반 순간이동으로 캐터몰 부인을 데리고 나왔을 거야. 그리고 당장 가족을 데리고 이 나라를 떠났겠지. 해리가 부인에게 그렇게 하라고 충고했거든."
"제기랄, 꼭 도망쳤어야 하는데."
론이 베개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따뜻한 차를 마신 덕분에 기운을 꽤 회복된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도 약간씩 핏기가 돌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레그 캐터몰이 그렇게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 내가 그 사람이었을 때, 다들 나에게 하는 말투가 그랬거든. 오, 제발 무사히 도망쳤으면 좋겠다. 만약 우리 때문에 두 사람이 결국 아즈카반이라도 가게 된다면...."
캐터몰 부부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는 론을 그윽이 바라보고 잇는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어찌나 부드럽고 다정하던지, 마치 론과 키스를 하고 있는 헤르미온느를 기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헤르미온느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은 없어. 내가 직접 그들에게 외쳤는데, 거기서 움직이지 못하고 잡힌다면...."
진짜 레그 캐터몰은 머리가 엄청나게 나쁘다는 것이겠지.
"그래, 그건 갖고 있니?"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갖고 있느냐고? 뭐... 뭘?"
헤르미온느가 살짝 놀라며 말했다.
"우리가 뭐 때문에 이 모든 고생을 했는데? 로켓 말이야! 로켓은 어디 있어?"
"그러 손에 넣었어?"
나와 론이 동시에 외쳤다.
"그런데 너희 둘 다 우리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제기랄, 한마디쯤 해 줄수도 있었잖아!"
론이 베개에서 몸을 약간 일으키며 고함을 질렀다.
"우린 죽음을 먹는 자들을 피해서 죽어라 도망치는 중이었잖아,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여기 있어."
그녀는 망토 호주머니에서 로켓을 꺼내어 론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거의 달걀만 했다. 수많은 작은 초록색 보석으로 새겨넣은, 화려한 문양의 S라는 글자가 텐트의 캔버스의 지붕을 통해 새어 들어온 햇빛을 받아서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크리처가 가져온 이후로 누군가 이걸 파괴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론은 그러길 바라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제 아직도 호크룩스인 게 확실하냔 말이야."
"내 생각에는 그래."
헤르미온느가 론에게서 그걸 다시 받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만약 마법의 힘으로 파괴되었다면, 틀림없이 손상된 흔적이 남았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그걸 해리에게 넘겨주었다. 해리의 손에 든 로켓은 손상된 흔적이 전혀 없었다. 흠 하나 없이 완벽하고 말끔해 보였다. 바실리스크의 송곳니에 의해서 파괴된 일기장의 잔해와 덤블도어가 호크룩스 반지를 파괴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크리처 말이 맞는 것 같아."
해리가 말했다.
"이걸 파괴하기 전에 먼저 이걸 어떻게 열지 그 방법부터 연구해 봐야 할 거야."
해리가 손가락으로 로켓을 비털어 열어 보려고 했다. 그런 다음에는 지팡이를 꺼내서 주문을 외워 시도했다. 어느 쪽도 소용이 없었다. 론과 헤르미온느와 나도 제각기 최선을 다해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아무도 그걸 여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너희는 이게 느껴지니?"
로켓을 손에 꼭 쥐고 있는 론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론이 호크룩스를 나를 통해서 해리에게 돌려주었다. 잠깐 로켓을 집었을 때, 로켓 내부에서 심장 박동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역시 어둠의 물건!
"이제 이걸 어떻게 하지?"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어떻게 파괴하는지 방법을 알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해야지."
해리가 대답했다. 그는 로켓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지 않도록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교대로 텐트 밖에서 망을 봐야 할 것 같아."
해리는 벌떡 일어나서 기지개를 쭉 펴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먹을 걸 어디서 구할지도 좀 생각해야 해."
"론, 너는 얌전히 있어."
론이 일어나 앉으려고 하다가 새파랗게 안색이 변하자 내가 재빨리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스니코스코프를 조심스럽게 텐트 안의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뒤로 나와 헤르미온느 그리고 해리가 번갈아가면서 망을 보았다. 하지만 스니코스코프는 온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하게 똑바로 서 있었다.
나와 헤르미온느는 그날 밤에 바로 그리몰드 광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법의 백 안에 음식이 전혀 챙기지 않았다. 하지만 로우에게 이른 생일 선물로 받은 허니 듀크의 과자가 있었기에 그걸로 간단하게 시장기를 없앴다.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는 나랑 헤르미온느 그리고 해리는 교대로 망을 보기 시작했다.
열 시쯤, 해리와 교대를 한 헤르미온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에게 쉬라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헤르미온느가 침낭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해리?"
너무 조용한 밖의 분위기에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텐트의 옆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옆으로 쓰러져 있는 해리의 몸을 흔들었다.
"해리!"
해리가 숨을 헉헉거리며 눈을 번쩍 떴다.
"... 꿈을 꿨어."
바닥에 쭉 뻗어 있는 해리는 발딱 일어나 앉으면서 변명을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니?"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는 그의 식은 땀이 흐르고 있는 이마를 닦아주면서 물었다.
"어둠의 마왕이 또 무슨 짓을 했는데?"
"그가 그레고로비치를 찾아냈어. 그리고 죽인 것 같아. 하지만 그레고로비치를 죽이기 전에, 그가 그의 머리속을 들여다보았는데.... 나는 한 젊은이가 창턱에 앉아 있는 걸 보았지. 그자는 그레고로비치에게 주문을 쏘고는 훌쩍 뛰어내려 사라져 버렸어. 그자가 훔친 거야. 그 사람이 쫓고 있는 게 뭐든, 그자가 그걸 훔쳤어. 그런데 왠지 그 젊은이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단 말이야..."
"그래, 피곤하겠구나. 어서 들어가서 쉬렴."
"로라, 난 보초를 마저 설 수 있어!"
"아니야, 넌 완전히 지쳤어. 어서 가서 누워."
내가 말을 하고는 그를 억지로 텐트 안으로 들여다보냈다. 그리고 내가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는 별이 총총히 박힌 하늘과 박쥐가 날고 있는 하늘을 보면서 보초를 섰다.
다음날, 해리는 일찍 일어나서는 잠이 깬 우리에게 앞으로 할 일을 의논했다. 나와 론은 어디든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게 제일 좋겠다는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생각에 동의했다. 론은 베이컨 샌드위치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래서 내가 숲 속 공터 주변에 걸어 놓았던 마법을 해제하자 헤르미온느와 해리는 그동안 여기서 야영했다는 증거가 될 만한 흔적들을 모두 지웠다. 그런 다음 시장이 서는 작은 도시의 외각으로 순간이동했다.
일단 작은 잡목 숲을 피난처 삼아 텐트를 치고 주변에 새로 보호 마법을 두르고 나자, 해리는 투명 망토를 쓰고 식량을 구하러 모험을 나섰다. 하지만 그 모험은 뜻하지 않게 일찍 끝내야 했다. 해리는 빈손으로 텐트로 돌아왔고 숨이 턱에 차서 겨우 "디멘터"란 말 한 마디만 내뱉었다.
"하지만 넌 멋진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있잖아"
해리의 말을 듣자마자 론이 버럭 화를 냈다.
"그... 그럴 수가 없었어."
해리는 숨을 헐떡거렸다.
"나... 나오질 앉았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동시에 낙담한 우리들.
"결국 우린 아직도 먹을 걸 못 구했잖아.'
"입 다물어, 론."
내가 그를 구박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어째서 완벽하게 패트로누스를 불러내지 못한 거 같으니? 어제만 해도 완벽하게 불러냈는데!"
"나도 몰라."
헤르미온느의 질문에 답하면서 해리가 퍼킨스의 낡은 안락의자에 주저앉았다. 론이 의자 다리를 툭툭 걷어찼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론이 으르렁거렸다.
"난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피를 절반이나 흘리고 죽을 뻔했다고!"
어제 네가 허니 듀크의 과자를 제일 많이 먹었거든. 당당히 배가 고프다고 주장하는 론의 모습에 내가 기가 차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어디 네가 가서 디멘터들과 맞서 싸워 보든가."
해리가 쏘아붙였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인데, 난 지금 팔에 붕대를 감고 있거든."
"그거 참으로 편리한 구실이구나."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그럼 그렇지!"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고함을 지르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때리는 바람에, 우리 모두 깜짝 놀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해리, 그 로켓을 이리 줘! 어서!"
해리가 멀뚱히 보고만 있자, 헤르미온느가 손가락을 딱딱 튕기면서 성화를 부렸다.
"호크룩스 말이야, 해리. 너 아직도 그걸 걸고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손을 내밀자 해리가 황금 줄을 목에서 벗었다.
"좀 낫니?"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응, 훨씬 좋아!"
"로켓이 사람을 사로잡듯이 홀리기 때문에 패트로누스가 안 나온 거였구나."
나는 이해가 되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흠."
헤르미온느는 묵직한 황금 로켓을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이걸 걸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텐트 안에 보관하는 게 좋겠어."
"하지만 호크룩스를 그냥 텐트 안에 널브러져 있게 둘 수는 없어."
해리가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러다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한다면..."
"좋아, 알았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리더니 로켓을 자신의 목에 걸고 눈에 뜨지 않도록 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돌아가면서 걸도록 하자. 누구 한 사람이 너무 오래 걸고 있지 않도록 말이야."
"아주 좋아. 이제 그 문제는 해결했으니, 어서 음식을 좀 구하면 안 될까?"
론이 안달이 나서 말했다.
"좋아. 하지만 음식을 찾아보려면 어디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디멘터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줄 뻔히 알면서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
우리는 어느 외딴 농장의 소유지인 멀리 떨어진 들판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농가에서 계란과 빵을 간신히 구할 수가 있었다.
"도둑질은 아니야, 그렇지?"
다 함께 스크램볼드에그를 얹은 토스트를 와구와구 먹으면서 헤르미온느가 양심에 찔리는 듯 물었다.
"닭장 밑에 돈을 좀 두고 왔으니 된 거지."
그러자 두 볼이 터질 듯이 불룩한 론이 눈알을 굴리며 구박을 했다.
"에르... 미... 니, 거쩡도 많다. 마음 푹 놔!"
"너는 너무 놨어."
배불리 실컷 먹고 나니 훨씬 쉽게 긴장이 풀렸다. 그날 밤 디멘터에 대한 논쟁 따위는 한바탕 웃음으로 까맣게 잊어버리고 해리는 우리들 중 제일 먼저 망을 서기로 했다.
배가 부르면 기운이 솟는 반면, 배가 텅 비면 언성이 높아지고 우울해진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더즐리 가족과 살면서 거의 굶어 줄을 뻔했던 지설을 가지고 있는 해리와 어릴 때 마을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받은 나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다. 한편 헤르미온느는 평소보다 약간 더 성미가 날카로워지고 뚱하니 말수가 적어지긴 했지만, 산딸기나 상한 비스킷 말고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던 근래 며칠을 그런대로 잘 참아 냈다. 하지만 어머니나 호그와트의 집요정들 덕분에 매일 맛있는 세끼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데 익숙해져 있던 론은 굶주리게 되자 그만 이성을 잃고 사나워졌다. 게다가 우연히도 먹을 게 똑 떨어졌을 때마다 호크룩스를 목에 거는 차례가 되면 론은 더욱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럼 다음엔 어디로 가?"
론이 입버릇처럼 물었다. 그는 자기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처럼, 그저 부족한 음식 타령이나 하고 앉아서 우리가 계획을 세우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디서 또 다른 호크룩스를 찾을 수 있을지, 이미 손에 넣은 호크룩스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을지, 그리핀도르의 칼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헛되이 시간만 보냈다.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얻지 못하자 대화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똑같은 말의 반복이 되어 버렸다.
"그래, 그럼 알비니아로 가자. 나라 전체를 살펴보는 데 고작 해야 반나절밖에 더 걸리겠냐고."
론이 빈정거렸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자는 추방당하기 전에 이미 다섯 개의 호크룩스를 만들었어. 그리고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 뱀이 여섯 번째 호크룩스일 거라고 확신하셨잖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 뱀은 알바니아에 없어. 그건 항상 볼드..."
"그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니?"
"좋아! 그 뱀은 항상 그 사람과 함께 있지. 이제 됐니?"
"글쎄."
"그렇다고 보진과 버크 가게에 뭘 숨겼을 것 같지도 않아."
해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지적했던 사실을 다시 꺼냈다.
"보진과 버크는 어둠의 마법 물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야. 호크룩스라면 당장 알아봤을 거야."
론이 길게 하품을 했다.
"난 여전히 그자가 호그와트에 뭔가를 숨겨 놓았을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덤블도어 교수님이 벌써 찾아내셨겠지, 해리!"
"덤블도어 교수님은 직접 내 앞에서, 자신도 호그와트의 모든 비밀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어. 내가 계속 말해 왔듯이, 만약 딱 한 군데 볼드..."
"어이!"
"좋아, 그 사람말야!"
해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사람에게 정말로 중요한 장소가 딱 한 군데 있다면, 그건 바로 호그와트라고!"
"오, 그만해."
론이 코웃음을 쳤다.
"그자의 학교라서?"
"그래, 그의 학교라서! 그곳은 그자의 첫 번째 진정한 집이었고, 그에게는 특별한 곳이었어! 거긴 그에겐 모든 걸 의미한다고. 심지어 호그와트를 떠난 후에도 딱 한 군데..."
"우리가 지금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 맞지, 그렇지? 네 이야기가 아니라?"
"론!!! 그거 이리 내."
론이 따졌다. 그리고 나는 재빨리 그의 목에 걸린 호크룩스 줄을 확 잡아당겨서 그의 목에서 호크룩스를 뺐다. 로켓을 걸고 있지 않으면 론의 태도가 약간 나아졌다.
"그 사람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 덤블도어 교수님께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는 말은 우리도 이미 들었어."
헤르미온느가 얼른 나섰다.
"맞아."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호크룩스를 몸에 걸면서 말했다.
"그리고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자가 오직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학교로 돌아오려고 한다고 생각하셨지. 어쩌면 또 다른 호크룩스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학교 창립자의 물건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해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자는 일자리를 얻지 못했잖아, 그치?"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그러니 창립자의 물건을 찾아내서 학교 안에 숨길 수 잇는 기회도 없었어!"
"있을 수도 있어. 그가 덤블도어 교수님을 뵈러 온 날, 오는 도중이거나 아니면 교장실을 나서고 호크와트를 빠져나가기 전까지의 시간이라면 가능하지 않겠어?"
내가 말했다.
"호그와트는 잊어버리자."
해리가 단념한 듯이 말했다.
더 이상의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우리는 런던으로 갔다. 그리고 투명 망토를 뒤집어쓴 채, 볼드모트가 자랐던 고아원을 찾아다녔다. 결국 헤르미온느가 도서관으로 몰래 잠입하여 그 고아원이 아주 오래전에 이미 헐렀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그 고아원이 있던 자리는 사무실로 가득한 높은 건물만이 서 있었다.
"저 건물 밑을 파헤쳐 봐야 하지 않을까?"
헤르미온느가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여기에 호크룩스를 숨겨 놓지 않았을 거야."
해리가 말했다.
"하긴 여기는 그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햇던 장소니까 말이지. 자신의 소중한 영혼의 일부를 감출리가 없겠지."
결국 새로운 사실은 전혀 발견하지 못한 채, 안전을 위해 매일 밤마다 다른 장소에 텐트를 설치하며 계속해서 교외를 옮겨다녔다. 아침마다 자신들이 남긴 모든 흔적드릉ㄹ 말끔히 지웠는지 확인했으며 그런 다음 또다시 인적이 드물고 외진 장소를 찾아 떠났다. 때로는 숲 속이나, 어두운 벼랑 틈, 붉은 황무지, 혹은 가시덤불이 뒤덮인 산등성이로 순간이동을 했으며 한번은 겨우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느 자갈 투성이의 산골짜기에서 지내기도 했다. 우리는 마치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꾸러기 돌리기 게임이라도 하는 듯이 열두 시간마다 교대로 호크룩스를 목에 걸었다. 이 게임에서는 모두 음악이 멈추는 순간을 두려워했는데(실제 꾸러기 돌리기 게임에서는 음악이 멈추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 걸리는 사람은 순간순간 커지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가득 찬 열두 시간을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또 뭐야? 뭘 봤어?"
론은 해리가 인상을 찡그릴 때마다 재빨리 물었다.
"얼굴이야."
해리는 매번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바로 그 얼굴. 그레고로비치에게서 물건을 훔친 도둑."
그러면 론은 실망감을 감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쌩하니 돌아서 버리곤 했다. 론이 듣고 싶은 소식은 자기 가족이나 다른 불사조 기사단 사람들의 소식이겠지만 그건 해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해리는 쾌활한 금발 청년에 대해서 다른 두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둑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다른 두 친구는 짜증만 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필사적으로 호크룩스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다니고 잇는 마당에 그들의 반응을 전적으로 비난만 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도 누군지 모르는 거야?"
"그런 거 같아. 넌 누굴 것 같니, 로라?"
"글쎄.... 왜 어둠의 마왕은 그를 찾는 걸까? 그가 찾는 것을 알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는데. 짐작 가는 게 없지?"
"응. 없어."
해리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말하자 나는 같이 고민을 해주었다. 나라도 그의 옆에 있어줘야지. 요즘 론과 헤르미온느가 해리가 없는 자리에서 해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계속 옮겨 다니는 동안, 교외 지역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지금 우리는 떨어진 낙엽 더미 위에 텐트를 세우고 있었다. 디멘터들이 몰고 다니는 안개에 자연적인 안개까지 더해지고 비바람까지 몰아쳐서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헤르미온느와 나의 식용 감별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계속되는 고립감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에 대한 결핍, 혹은 볼드모트와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답답함을 보상해 줄 수는 없었다.
"우리 엄마는 그냥 허공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도록 하실 수 있는데."
웨일스의 어느 강독에 텐트를 치고 앉아 있자 론이 중얼거렸다. 론은 시무룩하게 자신의 접시에 담긴, 많이 타버린 물고기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완전히 타버린 내 것보다는 낫은데 뭘.... 저 자식은 배가 아직 덜 부른 거구만.
"아무리 너희 어머니라고 하셔도 허공에서 음식을 만들어 낼 수는 없어."
헤르미온느가 반박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는 못해. 음식은 원소 변신술에 대한 겜프 법령의 다섯 가지 주요 예의 사항 중 첫 번째에 해당된다고."
"오, 제발 우리 말로 해 줄래, 응?"
론이 이 사이에 생선 가시를 빼내면서 쏘아붙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야. 뭔가가 어디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때 소환 마법을 할 수 있듯이, 이미 뭔가를 갖고 있을 때에만 그걸 변형시키거나 양을 늘리거나 할 수 있단...."
내가 설명해주었다.
"그래, 부탁인데 이건 양을 늘리거나 하지 말아 줘. 토할 것 같으니까."
론이 핀잔을 주었다.
"해리는 물고기를 잡았고 나와 로라가 그걸 가지고 최선을 다한 거야! 언제나 결국에 음식을 차리는 사람은 바로 우리란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헤르미온느가 폭발해서 외쳤다.
"우리가 여자이기 때문이지!"
"아니야. 그건 너희가 마법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론이 지지 않고 받아쳤다. 헤르미온느는 발딱 일어났다. 그 바람에 그녀의 양철 접시에 담겼던 구운 물고기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론, 내일은 네가 요리를 한번 해 봐. 어디 네가 직접 재료를 구해서 뭔가 먹을 만한 음식이 되도록 마술을 부려 보라고. 그럼 난 인상을 쓰고 여기 가만히 앉아서 징징거리나 할 테니까. 너도 알게 될 거야. 그게 얼마나..."
"그만해!"
해리가 벌떡 일어나면서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제 그만해!"
헤르미온느는 분을 못 이기는 표정이었다.
"네가 어떻게 론의 편을 들 수가 있니. 론은 생전 요리도 한 번 안 하면서..."
"헤르미온느, 조용히 좀 해. 말소리가 들렸단 말이야!"
해리는 여전히 손을 든 채, 우리에게 입을 열지 말라고 경고하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옆에서 세차게 흐르는 어두운 강물 너머로 또다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스니코스코프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머플리아토 주문을 걸어 놓았지, 그렇지?"
해리가 나에게 속삭엿다.
"모든 마법을 다 걸어 놓았어."
나도 속삭이며 대답했다.
"머플리아토 주문, 머글들을 물리치는 마법, 투영 마법, 전부 다. 저들이 누구든 우리를 보거나 우리를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어."
발을 질질 끄는 무거운 발소리와 뭔가 스치는 소리, 그리고 돌과 나뭇가지가 구르는 소리로 미루어 봐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지금 텐트를 치고 있는 이 좁은 강둑으로 이어지는 가파르고 나무가 우거진 비탈길을 기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지팡이를 뽑아 들고 기다렸다. 이렇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사방에 둘러쳐 놓은 마법들만으로도 머글이나 일반 마녀나 마법사들의 눈길을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만약 저들이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면....
사람들이 강둑으로 가까이 다가올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가방에서 늘어나는 귀 네 개를 꺼내서 헤르미온느와 론과 해리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얼른 그 살구색 끈의 한쪽 끝을 귀에 꽂고 다른 한 쪽 끝은 텐트 입구 바깥으로 내보냈다.
"여기쯤에 연어가 몇 마리 있어야 하는데. 아니면 아직 철이 너무 이른가? 아씨오 연어."
피곤에 지친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저 멀리서 풍덩하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리더니 물고기가 철썩 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투덜거렸다. 출렁거리는 강물 소리 사이로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쉰 소리가 빠르게 이어지는 투박하고 단조로운 소음...
"도깨비 언어 같은데."
내가 말했다. 그때 텐트 반대편에서 확 하고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빛과 텐트 사이로 커다란 그림자들이 어른거리더니 연어를 굽는 구수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솔솔 날아왔다. 곧이어 달그락달그락 접시에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자, 드시오. 그립훅, 고르눅."
"고맙소."
도깨비들은 동시에 영어로 말했다. 동족에게는 말할 때는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건가.
"그래, 그쪽 세 사람은 도망을 다닌 지 얼마나 되었나?"
나긋나긋한 쾌할한 새로운 목소리가 물었다.
"6주던가... 7주던가.... 잊어버렸어요."
피곤한 목소리의 남자가 대답했다.
"처음 며칠을 도망 다니다가 우연히 그립훅과 만나게 되었고, 그 후오래지 않아서 고르눅이 합세했죠. 함께 다니는 사람이 생기니 좋더군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이프로 접시 바닥을 긁는 소리와 양철 잔을 집었다가 내려놓는 소리만이 들렸다.
"당신은 어쩌다 떠나게 되었나요, 테드?"
그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자들이 날 찾아오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네."
상냥한 목소리의 테드가 대답했다.
"지난주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내가 사는 지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차라리 도망치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내렸다네. 원칙적으로 머글 태생 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에, 단지 시간문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 결국에는 떠나야만 한다는 걸 말이야. 내 아내는 괜찮을 걸세. 그녀는 순수혈통이니까. 그러다가 며칠 전에 여기서 딘을 만났지. 안 그러니, 얘야?"
"네, 맞아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다들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머글 태생인가 보지? 그런가?"
첫 번째 남자가 물었다.
"확실하진 않아요."
딘이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엄마를 버리고 떠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마법사란 증거가 전혀 없어요."
침묵이 찾아오고 한동안 우적우적 음식을 씹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테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더크, 난 자네를 만나서 깜짝 놀랐다네. 물론 기쁘긴 햇지만, 그래도 놀랐어. 자네가 잡혀갔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그랬었죠."
더크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즈카반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도망쳐 나왔어요. 도울리쉬에게 기절 마법을 쏘고 그의 빗자루를 훔쳤죠. 생각보다 쉬었어요. 당시에 도울리쉬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혼동 마법에 걸려 있었는지도 모르죠. 만약 그랬다면, 마녀인지 마법사인지 모르지만 혼동 마법을 건 그 사람과 악수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 사람이 내 목숨을 살린 셈이니까 말이죠."
또다시 침묵이 흐르고 딱딱 불꽃이 튀는 소리와 세차게 흐르는 강물 소리만이 들렸다. 이윽고 테드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거기 두 양반은 어느 편이오? 내가 알기론 도깨비들은 모두 그 사람의 편인 것 같은데."
"당신이 잘못 알았소. 우린 아무 편도 아니오. 이건 마법사들의 전쟁이니까."
목소리가 좀 더 날카로운 도깨비가 말했다.
"그럼 어쩌다 숨어 다니게 된 거요?"
"만약을 대비해서 그러는 거요. 내 보기에 가당치도 않는 요구를 거절하고 났더니,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소."
좀 더 목소리가 굵은 도깨비가 대답했다.
"그자들이 당신에게 무슨 요구를 했소?"
테드가 물었다.
"우리 동족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시켰소."
이 말을 할 때 도깨비의 목소리는 훨씬 더 거칠고 사납게 변했다.
"난 집요정이 아니오."
"그립훅, 당신은 어떻게 된 거요?"
"비슷한 이유였소."
날카로운 목소리의 도깨비가 말햇다.
"그린고트는 더 이상 우리 동족이 단독으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오. 그리고 나는 마법사 주인을 인정하지 않소."
그는 도깨비 언어로 중얼거리며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러자 고르눅이 껄껄 웃었다.
"무슨 농담이지요?"
딘이 물었다.
"저 도깨비 말이, 마법사들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구나."
더크가 설명해 주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전 못 알아듣겠어요."
딘이 말했다.
"내가 떠나기 전에 살짝 복수를 해 주고 왔소."
그립훅이 영어로 말했다.
"거참, 훌륭한 사람이구먼. 아니, 도깨비라고 해야겠군."
테드가 황급히 고쳐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 한 놈을 최고 보안 시설이 되어 있는 오래된 지하 금고에 처넣고 온 건 아닌가?"
"설령 그랬다고 해도, 그 칼은 그놈이 그곳을 탈출하고 나가도록 도와주진 않을 거요."
그립훅이 대답했다. 그러자 고르눅이 다시 껄껄거렸다. 더크조차 킬킬거리며 메마른 웃음 소리를 냈다.
"딘과 나는 아직도 잘 못 알아듣겠소."
테드가 말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도 그럴 거요. 비록 그자는 까맣게 모르지만."
그립훅이 말했다. 그러자 도깨비 두 명이 큰 소리로 악의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테드, 그 소식 못 들으셨어요?"
더크가 물었다.
"호그와트에서 학생 몇 명이 스네이프 사무실에 있던 그리핀도르의 칼을 훔쳐 내려고 했다는 소식 말이에요."
"금시초문인걸. <예언자일보>에는 그런 기사가 없었는데, 안 그런가?"
테드가 말했다.
"나올 리가 없죠."
더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여기 그립훅이 나에게 말해 주었어요. 그는 은행에서 일하는 빌 위즐리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칼을 훔쳐 내려고 했던 학생 중 한 명이 빌의 여동생이었대요."
지니!
"그 여자애와 다른 친구 두 명이 스네이프의 사무실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더군요. 그리고는 스네이프가 칼을 보관하는 유리 상자를 깨뜨렸대요. 그 아이들이 그걸 몰래 가지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 때, 스네이프가 붙잡은 모양이에요."
"아이고, 딱하기도 하지."
테드가 안타까워했다.
"그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자기들이 그 칼을 가지고 그 사람한테 써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스네이프에게 써먹으려고 했을까?"
"글쎄, 그 아이들이 그걸 가지고 뭘 하려는 생각이었든 간에 스네이프는 그 칼이 거기 있는 게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대요."
더크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틀 뒤에, 내 생각에는 일단 그 사람으로부터 승낙을 얻었겠지만, 그걸 런던으로 보내어 그린고트에 보관하도록 했다는군요."
도깨비들이 또다시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게 왜 웃기는지 모르겠는걸."
테드가 말했다.
"그건 가짜요."
그립훅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핀도르의 칼이!"
"오, 그렇소. 그건 복제품이오. 사실 아주 잘 만든 복제품이긴 하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사가 만든 거요. 진짜 칼은 수 세기 전에 도깨비들이 만들었고, 그러므로 오직 도깨비들이 만든 무기만이 지닐 수 있는 특별한 특성들이 깃들어 있소. 진짜 그리핀도르의 칼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린고트 지하 금고에 이는 건 아니오.'
"그렇군."
테드가 말했다.
"물론 그 사실을 괜히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알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지?"
"내가 그런 걸 알려서 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이유가 뭔가 있소."
그립훅이 점잔을 빼며 말했다. 이번에는 테드와 딘까지 고르눅과 더크와 함께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지니와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나요?"
딘이 물었다.
"그 칼을 훔치려고 했던 아이들 말이에요."
"오, 그 아이들은 벌을 받았지, 그것도 잔인하게."
그립훅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무사하겠지, 안 그렇소."
테드가 재빨리 물었다.
"위즐리 집안의 아이들이 더 이상 다치거나 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안 그렇소?"
"내가 아는 한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하진 않았소."
그립훅이 대답했다.
"천만다행이구먼."
테드가 말했다.
"스네이프의 과거 행적을 생각하면, 그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할 일이지."
"그럼 당신은 그 이야기를 믿는가 보군요, 테드?"
터크가 물었다.
"스네이프가 덤블도어를 죽였다고 믿는 건가요?"
"당연히 믿고말고."
테드가 대답했다.
"설마 자네, 사실은 포터와 그 일에 연루된 게 아니냐고 말할 작정은 아니겠지?"
"요즘은 뭘 믿어야 할지 통 알 수가 없어서 말이죠."
더크가 중얼거렸다.
"저는 해리 포터를 알아요."
딘이 불숙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진짜 그거라고 생각해요. 선택받은 자 말이에요. 아니,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요."
"그래, 그 아이가 바로 그거라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얘야."
더크가 말했다.
"나도 그중 하나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지? 상황을 보건대, 달아났어. 만약 그 아이가 우리는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거나 수행해야 할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지금쯤은 나와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숨어 있는 대신, 저항 세력을 다시 모아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너도 알겠지만, <예언자일보>는 그 아이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꽤 많이..."
"<예언자일보>라고?"
테드가 비웃었다.
"아직도 그런 쓰레기를 읽고 있다면 자넨 거짓말을 들어도 싸네, 더크. 진짜 사실을 알려거든 <이러쿵저러쿵>을 읽어 보게나."
그때 갑자기 컥하고 숨이 막히는 소리가 나더니 탁탁 등을 치는 소리와 더불어 왝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로 미루어보아, 더크가 생선 가시를 삼킨 모양이었다.
더크가 마구 침을 튀기며 따지고 들었다.
"<이러쿵저러쿵>이라고요? 제노 러브굿의 그 정신 나간 헛소리 말인가요?"
"요즘엔 그렇게 헛소리만은 아니라네."
테드가 말했다.
"자네도 그걸 한번 읽어 보게나. 제노는 <예언자일보>에서 무시하는 모든 사건들을 기사화하고 있어. 지난 호에는 크럼플 혼드 스놀캑스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네. 사실 그자들이 제노를 얼마나 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지 모르겠어. 하지만 제노는 매번 잡지를 낼 때마다 1면에다가 그 삶과 맞서 싸우기를 원하는 마법사는 누구든 최고 우선 순위로 해리 포터를 도와야만 한다고 쓰고 있네."
"도무지 깜짝같이 사라진 아이를 도와줄 재간이 있어야 말이죠."
더크가 투덜거렸다.
"내 말 좀 들어 보게나. 그자들이 아직까지 그 아이를 붙잡지 못하는 것만도 정말이지 대단한 일 아닌가?"
테드가 말했다.
"난 기꺼이 그 아이에게 한 수 배울 걸세. 그거야말로 우리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 아닌가? 자유로운 몸으로 지내는 것 말일세."
"그래요, 맞는 말씀이에요."
더크가 우울하게 말했다.
"마법부 전체와 모든 정보원들이 그 아이를 찾고 있으니, 나도 지금쯤이면 붙잡힐 거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말이죠, 그자들이 벌서 그 아이를 붙잡아 죽이고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요?"
"오, 그런 소리 말게나, 더크."
테드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나이프와 포크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들이 다시 대화를 시작한 것은 강둑에서 자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나무가 우거진 산비탈로 돌아가는 게 좋은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숲 속이 몸을 숨기기에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들은 모닥불을 끈 후에 비탈길을 기어 올라갔다. 그와 더불어 그들의 목소리도 점차 멀어졌다.
우리는 늘어나는 귀를 되감았다.
"그렇지."
내가 재빨리 백을 열고 곧장 겨드랑이까지 팔을 쑥 집어넣었다.
"여기... 어디... 있는데..."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이윽고 백의 제일 깊숙한 곳에서 뭔가를 꺼냈다. 화려하게 장식이 된 액자의 모서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자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얼른 뛰어와서 도와주엇다. 백에서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빈 초상화를 꺼내고 나자 헤르미온느는 지팡이를 겨누고 당장 주문을 걸 자세를 취햇다.
"만약 그 칼이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는 동안 누군가 진짜 칼을 가짜와 바꿔치기했다면."
초상화를 텐트 벽에 기대어 세워 놓으면서 헤르미온느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분명히 보앗을 거야! 그는 바로 유리 상자 옆에 걸려 있으니까!"
"자고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해리가 중얼거렸다. 나와 헤르미온느가가 텅 빈 초상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헤르미온느는 지팡이로 캔버스의 한가운데를 겨누고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 말했다.
"어... 피니어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헤르미온느가 또다시 불렀다.
"블랙 교수님, 잠깐 저희랑 말씀 좀 나누실 수 있나요? 부탁드립니다."
"부탁입니다라는 말은 항상 효과가 있지."
싸늘하고 심술궂은 목소리가 흘러나왓다. 곧이어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초상화 속에 나타났다. 그 즉시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옵스큐로!"
검은 눈가리개가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와 날카롭고 까만 눈을 휙 덮어 버렸다. 피니어스는 액자에 쿵하고 부딪히면서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가... 감히 이런 짓을... 이... 이게 무슨 짓....?"
"정말 죄송합니다, 블랙 교수님."
헤르미온느가 사과를 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이럴 수밖에 없어요."
"당장 이 더러운 물건을 치우지 못해! 당장 치우라고 했어! 넌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망치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여기가 어디냐? 도대체 무슨 일이지?"
"저희가 어디 있는지는 전혀 신경쓰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그림 위로 칠해진 눈가리개를 벗겨 내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이건 포터군의 사촌인 에반스양의 목소리가 아닌가?"
"어쩌먼요."
해리가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호기심을 계속 끌기 위해서 모호하게 대답했다.
"교수님께 여쭤 볼 게 좀 있어요. 그리핀도르의 칼에 대해서 말이죠."
"아하."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어떻게든 해리의 모습을 보려고 소리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 그 멍청한 여학생은 정말 현명하지 못한 짓을 했지."
"내 동생에 대해 그따위로 말하지 말아요."
론이 사납게 소리쳤다.
"여기 또 누가 있는 거지?"
그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네 녀석의 말투가 아주 못마땅하구나! 그 여학생이랑 그 친구들은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었단 말이다. 감히 교장 선생님의 물건을 훔치려고 하다니!"
"훔치려고 한 게 아니에요."
해리가 반박했다.
"그 칼은 스네이프의 것이 아니니까요."
"그 칼은 스네이프 교수님의 학교 물건이야."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흥분해서 말했다.
"더구나 위즐리 집안의 계집애가 그 칼에 대해 무슨 권한이 있단 말이냐? 그 계집애는 벌을 받아 마땅해. 그 천지같은 롱바텀과 괴짜 러브굿도 마찬가지야!"
"네빌은 천지가 아니고 루나도 괴짜가 아니에요!"
헤르미온느가 분개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게냐?"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또다시 눈가리개를 벗겨 내려고 기를 쓰며서 물었다.
"날 어디로 데려온 거야? 어째서 나를 우리 조상님들의 집에서 가지고 나온 거냐?"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스네이프가 지니와 네빌 그리고 루나에게 어떤 벌을 주었죠?"
해리가 다급하게 물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그 아이들을 금지된 숲으로 보냈다. 그 저능아 해그리드 밑에서 일을 하라고 말이다."
"해그리드는 저능아가 아니에요!"
헤르미온느가 빽 소리쳤다.
"스네이프야 그걸 벌이라고 생각했겠죠."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지니와 네빌 그리고 루나는 아마 해그리드와 배꼽을 잡고 웃었을걸요. 금지된 숲이라니... 그 아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련도 많이 겪었다고요! 훨씬 더 많이!"
"블랙 교수님, 저희가 진짜 알고 싶은 거요,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 칼을 벌써 가지고 나간 건 아닌가 하는 거에요. 혹시 청소나 뭐 다른 걸 하기 위해서 가져갔을 수도 있잖아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눈가리개를 풀려는 몸부림을 잠시 멈추더니 킬킬거리고 웃었다.
"역시 머글 태생이란..."
그는 말을 이었다.
"도깨비가 만든 무기는 청소 따위 할 필요 없어, 이 무식한 아가씨야. 도깨비들이 만든 은 제품은 원래 세속의 더러운 것들을 밀어내고 오직 자신의 힘을 더욱 강하게 해 주는 것만 빨아들인단 말이다."
"헤르미온느를 무식하다고 하지 마세요."
해리가 발끈했다.
"꼬박꼬박 말대꾸를 듣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난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말했다.
"그만 나는 교장실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눈가리개를 한 채, 그는 호그와트의 초상화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액자를 더듬거렸다.
"덤블도어 교수님! 덤블도어 교수님을 이리로 불러 주실 수는 없나요?"
"뭐라고 그랬냐?"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물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초상화 말이에요. 그분을 이쪽으로 모시고 오실 수는 없나요?"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해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봤더니 머글 태생들만 무식한 게 아니로군, 포터. 호그와트 안에 있는 초상화들은 서로 교류할 수 있지만, 다른 어딘가에 자신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호그와트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어. 그러니까 덤블도어를 이리로 데리고 올 수는 없다. 게다가 네 녀석들로부터 이런 몹쓸 대접을 받았는데, 내가 여길 두 번 다시 찾아올 것 같으냐!"
"눈가리개 일은 정말로 죄송해요, 블랙 교수님. 저희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자 피니어스 나이젤로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블랙 교수님, 학생의 사정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누가 벨라의 피를 어린 소녀를 아내로 맞은 길버트의 손녀 아니랄까봐 사람을 잘 구슬리는군."
"세베루스에게는 저희를 봤다는 것은 비밀로 해주세요. 현직 교장에 봉사하기로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을 꺼내지 말아주세요, 블랙 교수님."
"스네이프 교수님은 알버스 덤블도어의 수많은 엉뚱한 짓거리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쓰고 계신다. 잘 있어라!"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약간 비꼬듯이 말하고는 액자 밖으로 나가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음산한 배경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나도 알아!"
해리도 소리쳤다. 그는 도저히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허공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는 텐트 안을 이리저리 성큼성큼 돌아다녔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것에 대한 기쁨인가?
"생각해 보자.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 칼을 어디에 두셨을까?"
내가 말하자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같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봐! 생각해 보라고!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 칼을 어디에 두셨을까?"
"호그와트는 아니야."
"호그스미드 어딘가에 두신 건 아닐가?"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 거긴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스네이프는 거길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 그러니 그건 좀 위험한 일이 아니었을까?"
"덤블도어 교수님은 스네이프를 믿고 계셨어."
"하지만 스네이프에게 그 칼을 바꿔치기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주실 정도는 아니었어."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렇다면 호그스미드로부터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칼을 숨기셨을까? 론, 네 생각은 어떠니? 론? 론?"
해리가 뒤를 돌아보았다.론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아래쪽 침상에 누워 있었다.
"오, 이제 내 생각이 났니? 그래?"
론이 빈정거렸다.
"무슨 소리야?"
론은 콧방귀를 뀌며 위쪽 침상의 밑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희 셋이 계속 잘해 봐. 괜히 내가 끼어서 너희의 흥을 깰 필요가 없지."
우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때문에 그러니?"
해리가 물었다.
"뭐 때문이냐고? 물론 아무것도 아니야."
론이 대꾸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리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쨌든 너희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지."
텐트 지붕에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어."
해리가 말했다.
"어서 솔직히 털어놔."
론이 긴 다리를 휙 하고 침대에서 내려놓으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평소의 론답지 않게 몹시 야비해 보였다.
"좋아. 그럼 솔직히 말하지. 우리가 찾아내야 할 빌어먹을 또 다른 뭔가가 생겼다고 해서, 내가 좋아서 텐트 안을 겅중겅중 뛰어다닐 거라고 기대하지 말란 말이야. 이건 그냥 네가 모르는 물건의 목록이 하나 더 늘어난 것뿐이라고."
"내가 모른다고?"
해리가 되풀이했다.
"내가 모른다고?"
"난 여기서 난생처음으로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잇는 것 같군."
론이 말을 이었다.
"팔은 절단 나고, 먹을 것은 하나도 없고, 밤마다 차가운 바닥에서 자느라 등은 뻣뻣해 죽을 지경으로 말이야. 사실 난 우리가 몇 주일 정도만 열심히 돌아다니면 뭔가를 해낼 거라고 기대했어."
"론."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론은 이제 사나운 기세로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파묻혀서 그 조용한 목소리를 못 들은 척 했다. 론의 말에 내 표정은 단번에 굳어져 버렸다.
"난 네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해리가 말했다.
"그래,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글머 도대체 네 기대에 그토록 못 미치는 게 뭐야?"
해리가 따졌다.
"우리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라도 묵을 줄 알았니? 이틀에 한 번씩 호크룩스를 찾아낼 줄 알았어? 크리스마스쯤에는 엄마 곁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거야?"
"우리는 네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론이 벌떡 일어나서 고함을 질렀다.
"우린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에게 앞으로 할 일을 모두 일러 주신 줄 알았단 말이야. 너에게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줄 알았다고!"
"나와 해리는 처음부터 솔직했어. 덤블도어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걸 전부 말했다고. 혹시나 네가 모를까 봐 하는 말인데, 우리는 호크룩스를 하나 찾아냈고..."
"그래, 그 밖의 나머지 호크룩스들을 찾아내는 일만큼이나 그 하나를 없애는 일에도 굉장한 진척을 보이고 있지.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우린 그 근처도 못 가고 있잖아!"
"론, 그 로켓을 벗어."
헤르미온느가 평소와 다르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어서 벗어. 그걸 하루 종일 걸지 않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거야."
"아니, 그래도 했을 거야."
이번에는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네가 일곱짜리 꼬마야? 먹을 것이 없으면 하루 종일 투덜대고! 매일 우리에게 의견을 묻기나 해서 넌 생각이 없니?! 바보 천지야?! 자기 감정 하나 못 컨트롤 하냐고! 이럴 정도의 고생을 생각하지 못했니?!"
"로라!!!"
헤르미온느가 울면서 내 이름을 외쳤다.
"난 너의 그 투정까지 받아줄 여유따위 없어!!"
이럴 시간에도 내 몸은 서서히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내가 왜 여기서 네 투정까지 받아줘야 하는 거지?!
"누가 그러라고 했니?!!"
론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리고 나를 향해 몇 발자국 다가갔다. 나는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앞에 선 해리.
"....너희 두 사람이 내 뒤에서 속닥거리는 걸 내가 눈치 못 챘을 것 같아? 너희 둘이서 줄곧 그런 생각을 해 왔다는 걸 내가 짐작 못했을 것 같아?"
"해리, 우린 절대..."
"거짓말할 것 없어!"
론이 헤르미온느에게 소리쳤다.
"너도 그렇게 말했잖아. 너도 실망스럽다고, 해리에게 뭔가 계획이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잖아..."
"해리,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부르짖었다. 이제 빗줄기는 텐트를 마구 두들기고 있었다.
"그런데 왜 넌 아직 여기 있는 거니?"
해리가 론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론이 대답했다.
"그럼 집으로나 가 버려."
해리가 쏘아붙였다.
"그래, 그럴 거야!"
론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론과 해리는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내 동생에 대해서 하는 말을 너는 못 들었어? 그런데도 넌 개똥만큼도 신경 쓰질 않는군. 고작 금지된 숲이라고? 그래, 그보다 더 심한 시련을 겪은 해리 포터께서는 거기서 내 동생이 무슨 일을 당하든 상관없겠지. 그래, 대왕 거미들이나 그 정신 나간 것들이 뭘 하든..."
"난 단지.... 지니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있다고 말했을 뿐이야. 해그리드와 함께 있다고..."
"그래, 알았어. 넌 아무런 관심도 없겠지! 게다가 나머지 우리 식구들에 대해서 뭐라고 했지? '위즐리 집안 아이들이 더 이상 다치거나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너도 그 말 들었지?"
"그래, 나도..."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신경 쓸 생각도 안 했지?"
"론!"
헤르미온느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면서 소리쳤다.
"그렇다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는 뜻은 아닐 거야.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말이지. 생각해 봐, 론. 빌은 벌써 상처를 입었고, 너는 스팻터그로이트 병에 걸려서 죽을 지경이 된 줄 알 것 아니야. 그러니 그 사람이 한 말은 분명히 그런 뜻이..."
"분명히 그렇다고 네가 장담할 수 있어? 좋아, 그렇다면 나도 괜히 가족 걱정을 하며 속 끓이지 않을게. 너희 셋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 너희 부모님은 안전하시니까."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잖아!"
나와 해리가 소리를 꽥 질렀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 역시 그렇게 될지도 몰라."
론이 맞받아쳤다.
"그럼 가 버려!"
해리가 호통을 쳤다.
"당장 그분들께 돌아가라고! 그래서 스팻터그로이트 병이 나은 척해. 그럼 엄마가 해 주는 음식도 실컷 먹을 수 있을 테고..."
론이 갑자기 휙 동작을 취했다. 해리가 재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호주머니에서 미처 지팡이를 뽑기 전에 헤르미온느가 먼저 자신의 지팡이를 들었다.
"프로테고!"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그러자 우리들이 서 있는 쪽과 론 사이에 보이지 않는 방어벽이 펼쳐졌다. 동시에 마법의 힘 때문에 우리 모두 뒤로 조금씩 떠밀렸다. 해리와 론은 투명한 장벽 사이를 두고 무섭게 노려보고 서 있었다.
"호크룩스는 두고 가."
해리가 명령했다. 론은 머리 위로 줄을 벗더니 가까운 의자 위에 로켓을 휙 던졌다. 그리고는 헤르미온느를 향해 돌아섰다.
"넌 어떻게 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여기 남을 거야, 아니면?"
"나, 나는...."
헤르미온느가 괴로운 얼굴을 햇다.
"그... 그래, 난 남을 거야. 론, 우린 해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어. 우린 그를 도와서..."
"알았어. 넌 해리를 선택했다 이거지."
"론!"
"론, 제발, 그러지 마. 돌아와, 제발 돌아와!"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방어 마법을 해제했지만 론은 어두운 밤 속을 폭풍처럼 사납게 뛰쳐나갓다. 헤르미온느가 흐느끼며 숲을 향해 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시야가 아득해진다.
잠시 후에 헤르미온느가 돌아왔다. 비에 흠뻑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론.... 론이 가 버렸어! 순간이동으로 사라졌어!"
헤르미온느가 의자에 몸을 던지더니, 잔뜩 웅크린 채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순간 입술에서 무언가 흘러나왔다.
"컥!"
속에서 무언가 역류하고 내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냈다.
"로라!!!"
피를 토한 로라는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있는 그 상태로 그대로 피가 묻은 바닥 위로 쓰러져 버렸다.
"로라!!!"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