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85
마법에 걸린 대연회장의 천장은 어둡고 별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그 아래로 네 개의 기다린 기숙사 테이블에는 머리가 부스스한 학생들이 여행용 망토를 걸치거나 잠옷 바람으로 줄지어 앉아 있었고, 군데군데 학교 유령들이 허연 진줏빛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산 자나 죽은 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주시하는 가운데, 맥고나걸 교수가 대연회장 위쪽의 높은 단상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맥고나걸의 뒤에는 나머지 교사들이 서 있었는데, 그중에는 켄타우로스인 피렌체와 싸움에 동참하기 위해 막 도착한 불사조 기사단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필치씨와 폼프리 부인이 학생들의 대피를 맡아 주십시오. 그리고 반장들은 내 지시에 따라 책임지고 질서정연하게 정해진 대피 장소로 자기 기숙사의 학생들을 인솔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깜짝 놀라서 돌처럼 굳어졌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찾기 위해서 해리와 함께 그리핀도르 테이블을 훑어보며 벽을 따라가고 있을 때 후플푸프 테이블에서 어니 맥밀란이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만약에 남아서 싸우고 싶다면요?"
약간의 박수갈채가 있었다.
"성년이라면, 남아도 좋습니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물건들은 어쩌죠? 저희 트렁크랑 부엉이는요?"
래번클로 테이블의 한 여학생이 큰 소리로 물었다.
"지금은 소지품을 챙길 시간이 없습니다."
맥고나걸이 말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곳을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어디 계시죠?"
슬리데린 테이블의 한 여학생이 외쳤다.
"그분은,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튀었습니다."
맥고나걸이 대답하자, 거대한 환호성이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래번클로 학생들로부터 터져 나왔다.
"우리는 이미 성 주위에 방어막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더욱 강화하지 않는 이상, 오래 버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반드시 부탁하고 싶은 것은, 빠르고 침착하게 이동하고 반장들의 말을 따르라는..."
하지만 맥고나걸의 마지막 말은 갑자기 대연회장에 울려 퍼지는 또 다른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 목소리는 높고 차갑고 또렷했는데, 어디서 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마치 벽 자체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너희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몇몇 학생들은 서로를 꼭 부둥켜안았다.
"하지만 너희의 노력은 전혀 부질없다. 너희는 나와 맞서 싸울 수 없다. 나는 너희를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호그와트 교사들을 대단히 존경한다. 나는 마법사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곧 연회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해리 포터와 로라 에반스를 내게 넘겨라."
볼드모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아무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해리 포터와 로라 에반스를 넘겨준다면 나는 학교를 건드리지 않고 떠나겠다. 내게 둘을 넘겨라. 그러면 너희는 보답을 받을 것이다. 자정까지 시간을 주겠다."
무시무시한 침묵이 또다시 또다시 그들 모두를 집어삼켰다.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는 모든 눈길이 나와 해리에게 쏠렸다. 슬리데린 테이블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섰다. 팬시 파킨슨이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들며 소리치려고 했다.
"그가-!!"
"닥쳐!"
실비아가 팬시의 입을 틀어막았다. 팬시는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렸다.
"교수님, 저희 슬리데린이 먼저 연회장을 떠나야겠습니다."
미셸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고마워요, 로시에르양. 필치씨와 함께 연회장을 떠나도록 해요. 로시에르양의 기숙사에 속한 다른 학생들도 따라가도록."
슬리데린 학생들이 무리 지어 움직이는 소리였고, 실비아는 팬시의 손을 놓아주었다.
"래번클로, 따라가세요!"
맥고나걸이 소리쳤다. 슬리데린 기숙사에는 로우, 미셸, 실비아만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너희는 미성년자잖아!"
로우가 둘에게 외쳤다.
"당장 일어나서 가지 못 해?!!"
"싫어!"
"우리도 싸울 거야!"
"미셸 로시에르! 실비아 라울!"
로우가 고함을 쳤다.
서서히 네 개의 테이블이 비어 갔다. 래번클로의 몇몇 상급생들은 친구들이 줄지어 나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후플푸프 학생들이 뒤에 남았으며, 그리핀도르의 학생들은 거의 절반 정도가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때문에 맥고나걸 교수는 단상에서 내려와 아직 미성년 학생들을 몰아내야만 했다.
"절대로 안 된다, 크리비! 그리고 너, 피크스!"
킹슬리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러 높은 단상 쪽으로 걸어나왔다.
"이제 자정까지 겨우 30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호그와트 교수님들과 불사조 기사단 사이에서 작전이 합의되었습니다. 플리트윅, 스프라우트, 맥고나걸 교수님은 싸울 사람들을 이끌고 가장 높은 세 개의 탑, 그러니까 래번클로 탐과 천문 탑, 그리고 그리핀도르의 탑으로 올라가세요. 거기서는 전체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주문을 걸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일 겁니다. 그동안, 리무스! 아서!"
킹슬리가 루핀과 위즐리씨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럼 이제 학교로 들어오는 각 통로들의 입구를 방어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건 저희 몫인 것 같은데요."
프레드가 자신과 조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킹슬리는 찬성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지휘자들은 이리 올라오십시오. 인원을 나눌 것입니다."
"포터! 에반스!"
단상으로 가득 몰려든 학생들이 앞 다두어 자리를 차지하고 지시를 받는 동안, 맥고나걸이 서둘러 나와 해리에게 다가왔다.
"지금 너희 뭔가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니?"
"네? 맞아요."
론과 헤르미온느가 사라져서 호크룩스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럼 어서 가 봐라, 포터, 에반스, 가!"
"알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대연회장을 달려 나갔고, 대피 중인 학생들로 여전히 붐비는 현관 복도로 들어섰다. 필요의 방으로 가는 길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소란스러워다. 반장들은 큰 소리로 지시를 내리며 자기 기숙사 학생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를 마구 밀치느라 난리였다.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제일 앞줄을 차지하려고 1학년생들을 줄줄이 넘어뜨리려는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어린 학생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한편 좀 더 나이가 많은 학생들은 형제자매나 친구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 틈에 휩쓸려서 대리석 계단을 올라갔다. 일단 계단 꼭대기에 올라서자, 텅 빈 복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해리!"
나는 해리를 잡아세웠다.
"난 래번클로의 유령, 회색 여인에게 사라진 보관에 들었어."
"뭐?"
"래번클로의 유령, 회색 여인에게 물어봤어. 그리고 추측한 거야. 볼드모트가 일자리를 구하러 온 날 밤, 그는 그 보관을 가지고 이곳에 숨긴 것 같아."
나는 헬레나 래번클로와 한 이야기를 해리에게 말해주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창문이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요라한 소리를 내며 부셔졌다. 거대한 몸뚱이가 창문을 통해 휙 뛰어들어오더니 반대편 벽에 부딪혔다. 새로 나타난 그 사람으로부터 뭔가 커다랗고 털이 난 것이 깨갱거리며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곧장 팽이 해리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해그리드!"
해리가 소리쳤다. 턱수염이 나고 몸집이 거대한 사람이 엉금엉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도대체...?"
"해리, 로라! 너희 여기 있었구나! 여기 있었어!"
해그리드는 허리를 숙이더니 다짜고짜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나와 해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깨진 유리창 쪽으로 다시 뛰어갔다.
"잘했다, 그로피!"
그는 창문에 난 구멍에 대고 소리쳤다.
"잠시 후에 보자, 착한 녀석!"
해그리드의 어개 너머로, 짙은 어둠이 깔린 바깥에서 멀리 섬광이 터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괴이하고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자정이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다.
"제기랄, 해리! 로라!"
해그리드가 헐떡거렸다.
"이제 그거지? 싸울 시간이 된 거지?"
"해그리드, 도대체 어디서 온 거예요?"
"저 위에 있는 우리 동굴까지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어."
해그리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소리가 거기까지 들리지 뭐냐? '자정까지 나에게 포터와 에반스를 넘겨달라.' 그래서 너희가 분명 여기 있을 거란 걸 알았지. 뭔가 벌어지고 잇다는 걸 알았단 말이야. 앉아 있어, 패이. 그래서 우리가 합세하러 왔지, 나랑 그로피랑 팽이 말이다. 우린 숲으로 둘러싸인 경계선을 뚫고 들어왔어. 그로피가 우리를, 그러니까 팽과 나를 태워 줬어. 그 녀석에게 성에 내려 달라고 말했더니, 글쎄 나를 창문을 통해 밀어 넣지 뭐냐, 대견한 녀석. 정확히 내가 뜻한 대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데 론이랑 헤르미온느는 어디 있냐?"
"그거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어서 가요."
우리는 함께 서둘러 복도를 따라 달렸다. 팽은 곁을 통통거리며 쫓아왔다. 사방 복도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달리는 발소리와 비명 소리들, 창문 너머로 캄캄한 운동장에서는 더 많은 불꽃이 터졌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지?"
쿵쿵 바닥을 울리며 해리의 뒤를 쫓아오던 해그리드가 헐떡거리며 물었다.
"너도 정확히는 몰라서요."
해리는 또다시 닥치는 대로 방향을 틀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론과 헤르미온느는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저 앞쪽 통로에는 이미 최초의 전투 부상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평상시에는 교무실 입구를 지키던 두 마리의 이무기 석상은 또다른 부서진 창을 통해 날아든 주문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들의 잔해는 마룻바닥 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석상이 신음하며 말했다.
"오오, 나는 신경 쓰지 마라... 난 그저 여기 누워서 부서질 테니...."
못생긴 그 석상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달려가는 해리의 뒤를 쫓아갔다.
네빌과 대여섯 명의 다른 학생들을 이끌고 쿵쿵거리며 지나가는 스프라우트 교수. 그들 모두 방한용 귀마개를 한 채, 커다란 화분에 심은 식물처럼 보이는 것을 나르고 있었다.
"맨드레이크야!"
네빌이 달려가면서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이것들을 담 너머로 던져 버릴 거야.... 그자들이 이걸 반기지는 않을걸!"
갑자기 속력을 내어 달려가는 해리. 뒤이어서는 나와 해그리드와 팽이 껑충껑충 따라가고 있었다. 초상화들을 차례차례 지나쳤고, 그림 속의 인물들도 덩달아 우리를 따라서 달렸다. 높은 주름 깃을 달고 승마용 반바지 차림을 하거나, 갑옷이나 망토를 입은 마법사와 마녀들이 성의 다른 구역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을 높이 외치며, 서로 다른 캔버스 속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성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폭발의 여파로 인해 거대한 항아리가 받침돌에서 굴러 떨어졌다.
"괜찮아, 팽... 괜찮다니까!"
해그리드가 고함을 질렀지만, 깨진 도자기의 은칠된 조각들이 포탄의 파편처럼 허공에 흩날리자, 덩치 큰 사냥개는 그만 꽁무늬를 뺐다. 해그리드는 겁에 질린 개를 쫓아서 쿵쾅거리며 달려갔다.
지팡이를 든 채, 우르르 진동하는 통로들을 계속 지나갔다. 복도 하나를 지나가는 동안 내내, 그림 속의 캐도간 경은 그림들을 차례차례 통과하면서 우리와 나란히 질주했다. 그는 갑옷을 철거덕거리며 연방 격려의 말을 외치면서 작고 통통한 조랑말을 타고 쫓아왔다.
"허풍선이들과 악당들, 개망나니들과 불한당들, 그런 놈들을 몰아내라. 해리, 그놈들을 내쫒아!"
쏜살같이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프레드와 리 조던, 한나 아보트를 포함한 한 무리의 학생들이 텅 빈 받침돌 옆에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그 받침돌 위으 동상은 비밀 통로를 가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지팡이를 뽑아 든 채, 숨겨진 구멍 쪽으로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멋진 밤이야!"
성이 다시 흔들리자, 프레드가 소리쳤다. 그의 말에 기운이 났다.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 사방으로 부엉이들로 가득한 복도를 질주했다. 노리스 부인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부엉이들을 앞발로 후려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포터!"
"로라!"
그때 애버포스와 엘리하가 지팡이를 치켜든 채 복도를 가로막고 섰다.
"내 술집으로 수백 명의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도 알아요. 우린 대피 중이에요."
"볼드모트가..."
"공격하고 있지."
엘리하가 말했다.
"그들이 너흴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귀먹지 않았어. 호그스미드 전체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지. 그런데 너희 중 아무도 슬리데린의 학생들 몇 명을 인질로 잡겠단 생각은 못했단 말이냐? 그냥 무사히 내보낸 죽음을 먹는 자들의 아이들이 있던데... 그 녀석들을 여기 잡아 놓는 게 좀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그런 걸로 볼드모트를 막지는 못했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당신의 형님이라면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으셨을 테고요."
해리가 말하자 애버포스는 툴툴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멀어져 갔고 엘리하는 내 머리를 쓰담고 애버포스의 뒤를 쫓아갔다.
마지막 모퉁이를 미끄러지듯 돌아왔을 때 론과 헤르미온느를 발견했다. 두 사람 모두 커다랗고 구부러지고 더러운 노란 바실리스크의 송곳니를 각기 품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론은 겨드랑이에 빗자루를 끼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해리가 빽 소리쳤다.
"비밀의 방."
론이 대답했다.
"모두 다 론의 생각이었어. 론이 했다고!"
헤르미온느가 숨 가쁘게 말했다.
"너무 멋지지 않니? 너희가 떠나고 나서 우리 둘이 남았을 때 말이야, 내가 론한테 말햇어. 설령 우리가 또 다른 호크룩스를 찾는다해도, 그걸 어떻게 없애지? 우리는 아직 이 잔도 제거하지 못했잖아! 그런데 그때 론이 그 생각을 해낸 거야! 바실리스크!"
"뭐?"
"호크룩스를 없앨 수 있는 것 말이야."
론이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거기엔 어떻게 들어간 거야?"
"파셀통그를 해야 하잖아!"
"론이 했어."
헤르미온느가 낮게 말했다.
"보여 줘, 론!"
론이 목이 졸린 듯이 무시무시하게 쉭쉭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건 로켓을 열 때 네가 낸 소리야."
그는 해리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걸 제대로 해내기가지 연습을 몇 번이나 해야만 했어. 그래도 결국 우린 거기에 들어갔지."
그가 겸손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끝내 줬다니까!"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정말 대단했어1"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호크룩스를 또 하나 없앴지."
론이 그렇게 말하더니, 외투 속에서 부서진 후플푸프의 잔의 잔해를 꺼냈다.
"헤르미온느가 그걸 찔렀어.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 헤르미온느는 아직 그 기쁨을 못 누려 봤잖아."
"천재적이야!"
해리가 외쳤다.
"아무것도 아니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론 역시 무척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너흰 뭐 새로운 소식 없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머리 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져 내리면서 아득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난 보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냈고, 어디 있는지도 알아."
해리가 재빨리 말했다.
"그자는 그걸 내가 옛날에 마법약 교과서를 숨겼던 바로 그곳에 숨겨 났어. 수 세기 동안 모두가 물건을 숨겨 온 곳이지. 그런데 그자는 자기가 그곳을 찾아낸 유일한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거야. 어서 가자."
벽이 다들 흔들렸다. 필요의 방으로 들어가자 그 방은 텅 비어 있었고 여자 다섯 명과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지니, 통스, 아빌 그리고 늙은 마녀인 네빌 할머니와 네빌의 부모님이었다.
"아, 포터."
할머니는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카랑카랑 목소리로 말했다.
"만나서 반갑다, 해리 포터. 난 프랭크 롱바텀이다."
"난 네빌의 엄마, 앨리스라고 해."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자기 소개를 한 네빌의 부모님에게 호통을 치는 네빌의 할머니는 해리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서 말해 보렴."
"다들 무사해?"
지니와 통스가 동시에 물었다. 아빌도 나를 바라보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아직까지 우리가 알기론 그래요."
해리가 대답했다.
"호그스 해드로 가는 통로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있나요?"
필요의 방 안에 여전히 사용자가 있을 때에는 다른 용도로 전환이 될 수 없다.
"내가 그곳을 마지막으로 지나왔지."
롱바텀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통로를 막아 놓았단다. 애버포스가 술집을 비운 마당에 통로를 열어 놓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내 손주 녀석은 보았니?"
"네빌은 한창 싸우고 있어요."
"당연히 그렇겠지."
노부인은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실례하마. 나는 어서 가서 그 애를 도와야겠다."
"그럼 또 보자, 네빌의 친구들!"
프랭크가 자신의 부인을 끌고 놀랄 만큼 빠른 걸음걸이로 돌계단을 향해 사라진 롱바텀 부인의 뒤를 쫓아갔다.
"통스, 아빌, 당신들을 친정에 있지 않나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
통스는 몹시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아이는 어머니가 돌봐 주실 거야... 그런데 혹시 리무스 봤니?"
"루핀은 싸울 사람들을 이끌고 운동장으로 나가기로 되어 있어요."
그러자 통스는 한마디 대답도 없이 쌩하니 가 버렸다.
"지니!"
해리가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너도 이 방을 나가야겠어. 잠깐 동안만 말이야. 그런 다음에 다시 돌아와도 돼."
지니는 이 은신처를 떠나는 게 마냥 기쁘기만 한 것 같았다.
"이따가 넌 다시 돌아와야 해! 반드시 다시 돌아와야만 해!"
지니가 통스를 따라서 신나게 층계를 뛰어 올라가자 해리는 그녀의 등에 대고 외쳤다.
"쌍둥이란다."
"네?"
"내 이름과 그의 이름을 그대로 땄어. 엄마가 보살펴 주고 있어. 대모가 되어줄래?"
"하지만..."
"로라만이 할 수 있어. 되어줄 거지?"
아빌은 간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고마워! 그럼 나도 싸우러 가야겠어. 마리안느와 베아트리체 아보트와 그의 남편은 진작 와서 전투에 참가하러 갔단다. 프레드와 조지는 어디로 갔지?"
"그들은 통로를 막으러 갔어요."
아빌은 내 말을 듣고는 후다닥 가버렸다. 이제 우리가 방에 남아 있었다.
"잠깐만 멈춰 봐!"
론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들을 깜빡했어!"
"누구?"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집요정들 말이야. 모두 아래층 주방에 있을 거야, 안 그래?"
"그러니까 너는 집요정들까지 이 싸움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거니?"
해리가 물었다.
"아니."
론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 말은 그들에게 어서 여기서 나가라고 알려 줘야 한다는 거야. 그들에게 우리를 위해 죽으라고 명령할 수는 없...."
그때 덜커덕 소리와 함께 헤르미온느의 품에서 바실리스크의 송곳니가 툭 떨어졌다. 헤르미온느는 론을 향해 와락 달려들더니 두 팔로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그에게 열렬한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론 역시 들고 있던 송곳니와 지팡이를 모두 내던지고 헤르미온느를 땅에서 번쩍 들어 올리면서 열정적으로 응답했다.
"지금이 그럴 때야?"
해리가 주저하며 물었다. 하지만 론과 헤르미온느는 서로를 더욱더 단단히 껴안으며 제자리에서 비틀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전쟁 중이야! 그 키스는 끝나고 마음껏 해!!!!"
내가 언성을 높였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제야 서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두 팔은 여전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나도 알아, 친구."
론이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는 없을 기회잖아, 안 그래?"
"그건 됐고, 호크룩스는 어떻게 할 거야?"
해리가 소리쳤다.
"보관을 찾을 때까지 너희 두 사람은 그저... 그저 그것만 안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 맞아.... 미안..."
론이 대답햇다. 그리고 론과 헤르미온느는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빨개져서 송곳니를 다시 주워 모았다. 우리가 다시 위층 복도로 올라갔을 때, 필요의 방에서 몇 분을 보내는 동안에 성안의 상황은 몹시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벽과 천장은 전보다도 훨씬 더 심하게 흔들렸고, 공기 중에는 먼지가 자욱했다. 가까운 창문 너머로 성의 발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초록색과 빨간색 불빛을 목격하고서, 죽음을 먹는 자들이 머잖아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밑을 내려다보니, 거인 그롭이 지붕에서 떨어져 나간 이무기 석상처럼 보이는 것을 마구 휘두르며, 골이 나서 으르렁대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롭이 몇 놈 밟고 지나갔으면 좋겠네!"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자 론이 말했다.
"그게 우리 편만 아니라면 말이지!"
웬 목소리가 외쳤다. 뒤를 돌아보니 지니와 통스가 유리창이 부서져 나간, 바로 다음 창문 앞에서 나란히 지팡이를 뽑아 들고 서 이썽ㅆ다. 심지어 보는 와중에도 지니는 밑에 있는 전사들의 무리 속으로 정확히 주문을 쏘았다.
"잘했다!"
누군가가 먼지 속을 뚫고 달려오며 소리쳤다. 애버포스는 회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소규모의 학생들을 이끌고 지나갔다.
"그놈들이 북쪽 흉벽을 뚫고 들어올 모양이야. 자기네 편 거인들을 데리고 왔어!"
"혹시 리무스를 보셨어요?"
통스가 그를 쫓아가며 외쳤다.
"돌로호브와 결투를 하고 있었어."
애버포스가 소리쳤다.
"그 후론 못 봤네!"
"통스!"
지니가 말했다.
"통스, 분명히 그는 무사할 거예요."
하지만 통스는 애버포스를 쫓아서 먼지 속으로 달려갔다. 지니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괜찮을 거야."
해리가 말했다.
"지니, 우리는 잠시 후에 돌아올 거야. 무조건 피해. 무사해야 해. 가자!"
해리가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쭉 뻗어 있는 벽 너머에서 다음 입장자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필요의 방으로 다시 달려갔다. 벽 앞을 세 번 왔다갔다 하자, 문이 나타났다.
문턱을 넘는 등 뒤로 문을 닫는 순간, 모든 전투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방이 고요했다. 마치 하나의 도시처럼 보이는, 거의 대성당 크기만 한 방에 들어와 있었다. 오래전에 떠나간 수천 명의 학생들이 숨겨 놓은 물건들이 우뚝 솟은 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자는 누구든 여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단 말이야?"
론이 물었다.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며 울려 퍼졌다.
"그는 자신이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해리가 대답했다.
"나 역시 이런 식으로 물건을 숨겨야만 했었던 게 그자에겐 참으로 안된 일이지."
그가 덧붙였다.
"이 아래쪽이었던 것 같아."
해리가 박제한 트롤과 사라지는 캐비닛을 지나갔다.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들로 이루어진 통로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잠시 주저했다.
"아씨오 보관!"
헤르미온느가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아무것도 우리 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각자 흩어지자!"
해리가 우리에게 말했다.
"가발과 왕관을 쓴 노인의 돌 흉상을 찾아! 그건 수납장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확실히 이 근처 어딘가에 있어..."
우리는 각자 재빨리 주위의 통로들을 따라 달려갔다. 병과 모자, 나무 상자, 의자, 책, 무기, 빗자루, 박쥐 등 온갖 잡동사니 더미 너머에서 울려퍼지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래번클로의 보관을 찾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돌 흉상이 먼지가 뽀얗게 앉은 오래된 가발과 아주 오래되어 녹슨 왕관처럼 보이는 것을 쓰고 있었다. 그 왕관을 향해서 달려갔다. 래번클로의 보관을 손에 넣으려고 손을 뻗으려고 할 때...
"멈춰, 에반스!"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동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크레이브와 고일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지팡이를 겨눈 채 서 있었다. 싱글싱글 비웃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 사이로 드레이코 말포이의 얼굴이 보였다.
"로라?"
벽 너머에서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로라!!"
해리가 내 옆으로 달려왔다.
"네가 들고 있는 건 내 지팡이야, 포터."
말포이는 크레이브와 고일 사이로 지팡이를 겨누며 말했다.
"이제는 아니야."
해리는 산사나무 지팡이를 움켜쥐며 숨 가쁘게 말했다.
"이건 사람이 주인이지, 말포이. 그런데 누가 너한테 지팡이를 빌려 줬지?"
"우리 엄마."
드레이코가 대답했다. 전혀 우스울 게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큰 소리로 웃어 댔다.
"그런데 너희 세 사람은 어째서 볼드모트와 함께 있지 않는 거지?"
해리가 물었다.
"우린 상을 받을 거야."
크레이브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토록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깜짝 놀랄 만큼 나긋나긋했다. 그는 커다란 사탕 한 봉지를 약속 받은 어린아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돌아왔어, 포터. 가지 않기로 했지. 너희를 그분께 데리고 가기로 한 거야."
"거참 훌륭한 계획이구나."
해리는 잔뜩 비꼬는 어조로 칭찬을 해 주었다.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호크룩스를 잡기 위해서 흉상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넌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지?"
해리는 그들의 주위를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물었다.
"난 작년에 숨겨진 물건들의 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
말포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는 법은 잘 알지."
"우린 바깥 복도에 숨어 있었어."
고일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우린 이제 투영 마법을 할 수 있다고!"
고일은 아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 너희가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나서 보.... 보간을 찾을 거라고 말하더라! 근데 보간이 뭐지?"
"해리? 너 누구랑 대답하는 거야?"
론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휙 하고 채찍을 내려치는 듯한 동작과 함께, 크레이브는 지팡이로 온갖 고기구와 부서진 트렁크, 낡은 책들과 옷 그리고 정체 불명의 잡동사니들로 이뤄진 15미터 높이의 산더미를 겨누며 소리쳤다.
"디센도!"
벽이 휘청거리더니, 쌓여 있던 잡동사니 더미의 위쪽 3분의 1정도가 론이 서 있는 옆 통로로 쏟아져 내렸다. 로라는 몸을 돌려서 달려갔다.
"론!"
해리가 울부짖었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해리는 무너진 벽의 반대편 바닥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이 우르르 쾅쾅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벽을 향해 겨누고 "피니트!"라고 외쳤다. 그러자 그 벽은 잠잠해졌다.
"크루시오!"
로라가 달려간 것을 본 크레이브가 저주를 사용했고 로라는 낡은 왕관을 잡으면서 옆으로 몸을 데구르르 굴렀다. 흉상이 바닥에 쿵하고 부딪혔다.
"멈춰!"
말포이가 크레이브에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거대한 방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어둠의 마왕님께서는 그들을 산 채로 잡기를 원하셔."
"그래? 그들을 죽이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크레이브는 자신을 뜯어말리는 말포이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할 테야. 어둠의 마왕님께서는 하여간 저 녀석들이 죽길 바라잖아. 뭐가 달라?"
빨간 광선이 발사되더니 해리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이때 헤르미온느가 그의 등 뒤에 있는 모퉁이를 돌아서 달려왔다. 그리고 크레이브의 머리를 향해서 기절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말포이가 그를 끌어내는 바람에 그만 빗나가고 말았다. 그런 사이에 로라는 주머니 속에 래번클로의 보관을 집어넣고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바로 그 잡종이다! 아바다 케다브라!"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가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해리는 크레이브에게 기절 마법을 쏘았다. 하지만 크레이브는 재빨리 한쪽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그러면서 말포이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탁 쳤다. 그의 지팡이는 부서진 가구와 상자더미 아래로 굴러 들어가 버렸다.
"그들을 죽이지 마! 죽이지 마!"
말포이가 지팡이를 겨누고 있는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고함을 질렀다.
"엑스펠리아르무스!"
고일의 지팡이가 로라의 주문을 맞고 그의 손에서 쑥 빠져 날아가더니 옆에 잔뜩 쌓여 있던 물건 더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고일은 지팡이를 되찾으려고, 바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한편 말포이는 헤르미온느의 두 번째 기절 마법을 맞고 튕겨 나갔다. 그때 통로 끝에서 론이 나타나서 크레이브에게 동작 그만 주문을 쏘았지만, 그것은 아깝게 빗나갔다. 크레이브는 빙그르 몸을 돌리더니 다시 소리쳤다.
"아바다 케다브라!"
론은 초록색 광선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려 사라졌다. 이제 지팡이가 없는 말포이는 다리가 세 개뿐인 옷장 뒤에 움츠리고 있었다. 한편 헤르미온느느 고일에게 기절 마법을 쏘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빽 소리쳤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보니, 론과 크레이브가 전속력으로 통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뜨거우니까 좋지, 이 자식아?"
크레이브가 달리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도 갖지 못하는 듯했다. 어마어마한 불꽃이 양쪽에 쌓인 잡동사니 벽을 핥으며 쫓아오고 있었다. 잡동사니 더미는 불길에 닿자마자 새까만 숯덩이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아구아멘티!"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지팡이에서 뿜어 나온 물줄기는 허공에서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도망쳐!"
말포이는 기절 마법을 맞은 고일을 붙잡아 질질 끌고 갔다. 크레이브가 우리 중에서 제일 앞서 도망치고 있었는데, 완전히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화염은 마치 살아서 감각을 느끼며 죽이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끈질기게 쫓아왔다. 이제 불길은 이제 모습을 바꾸면서, 불타오르는 짐승들의 거대한 무리를 이루었다. 활활 타오르는 뱀, 키메라, 용들이 불길 속에서 솟구쳐 올라갔다가 다시 가라앉곤 했다. 그 짐승들은 수 세기 동안 쌓인 잡동사니 더미를 먹어 치우고 있었는데,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발로 잡동사니들을 허공에 높이 튕겨 올린 다음 송곳니가 난 입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면 잡동사니들은 순식간에 지옥불 같은 화염에 휩싸여 사라져 버렸다. 불타오르는 괴물들이 우리를 둥글게 에워싼 채, 발톱과 뿔과 꼬리를 휘두르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고 뜨거운 열기는 우리를 둘러싼 벽만큼이나 완강했다.
"우리 이제 어떡해?"
헤르미온느가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요란한 불길의 포효 속에서 소리쳤다.
"어떡하지?"
"여기!"
해리가 바로 옆에 있는 잡동사니 더미로부터 묵직해 보이는 세 자루의 빗자루를 낚아내 하나는 론에게, 또 다른 하나는 나에게 던져 주었다. 론은 헤르미온느를 끌어당겨 자기 뒤에 태웠다. 빗자루 위로 올라탄 론과 헤르미온느, 나, 해리는 힘차게 땅을 박찼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덥석 물듯이 달려들던 활활 타오르는 맹금의 구부러진 부리가 아슬아슬 우리를 비껴갔다. 연기와 뜨거운 열기는 점점 더 맹렬해지고 있었다. 발아래에서 저주의 불길은 추적에 쫓기던 학생들이 몇 대째 감추어 놓은 금지된 물건들과 금지된 실험의 떳떳하지 못한 숱한 결과물들, 그리고 이 방에서 은신처를 구했던 무수한 영혼들의 비밀들을 태워 없애고 있었다.
"해리, 나가자! 나가자고!"
론이 소리쳤다. 시커먼 연기 때문에 문이 어디 있는지 찾기란 불가능했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는 불길의 천둥 같은 굉음과 끔찍한 소란의 한가운데에서 희미하고 가련한 비명 소리를 들었다.
"너무 위험해!"
론이 소리쳤지만 나와 해리는 다시 빙 돌아 날아갔다. 살아있는 사람의 신호를 찾아서, 아직 숯덩이처럼 까맣게 타지 않은 팔다리 한 짝이나 혹은 얼굴이라도 찾기 위해서 불길을 헤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침내 찾았다. 크레이브는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고, 말포이가 의식을 잃은 고일을 팔로 감싸고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새카맣게 탄 책상들 탑 위에 앉아 있었다.
"이러다 저놈들 때문에 우리가 죽기라도 하면, 너흰 내 손에 죽었어, 해리! 로라!"
론이 울부짖었다. 바로 그때 이글이글 불타는 거대한 키메라가 우리를 덮쳤다. 론과 헤르미온는 고일을 그들의 빗자루로 끌어올린 다음 빙글빙글 돌고 흔들거리며 또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한편 말포이는 해리의 뒤로 기어올랐고, 크레이브는 내 뒤로 기어올랐다. 우리는 검은 연기를 뚫고 문으로 날아갔다. 자욱한 연기 너머로 벽에 난 직사각형 모양의 문이 보았고 빗자루 속력을 높였다. 잠시 후 맑은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복도 건너편 벽과 그대로 충돌하고 말았다.
빗자루에서 굴러 떨어진 크레이브와 말포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 헐떡거리며 기침을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해리는 나동그라졌다가 다시 일어나 앉았다. 나도 엎어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필요의 방은 문이 닫혔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고일 옆에 앉아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고일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나는 크레이브의 멱살을 잡고는 그를 들어올렸다.
"제대로 제어도 못하는 마법은 사용하지도 말았어야지!!!"
바로 멱살을 쥐지 않고 있던 또 다른 손을 주먹을 쥐어서 바로 크레이브의 안면을 때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코에서 흘러내린 피에 기겁하자 짜증나서 기절 마법을 쏘아버리자 크레이브는 기절해버렸다.
"휘~ 멋지다, 로라."
론이 옆에서 환호하듯이 말했다. 수없이 많은 굉음들이 연달아 성을 뒤흔들었고, 투명한 형상들로 이뤄진 거대한 기마 부대가 말을 타고 달려갔다. 그들의 머리는 갑옷 아래에서 피를 부르며 악을 쓰고 있었다. 목이 없는 사냥꾼들이 지나가고 나자, 아직도 전투는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머니에서 래번클로의 보관을 꺼냈다.
"송곳니는?"
"아. 여기."
헤르미온느가 나에게 송곳니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해리에게 내밀었다.
"네가 없애."
"네가 하면 되잖아?"
"나는 일기장을 없앴잖아. 로켓은 론이 없앴고, 잔은 헤르미온느가 없앴어, 반지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했지. 네가 해."
내가 말하자 해리는 송곳니과 래번클로의 보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는 보관을 향해서 송곳니를 내려찍었다. 그 순간 타르 섞인 검은색 피처럼 보이는 물질이 보관에서 흘러나오면서 깨져버린다.
"그건 틀림없이 악마의 화염이었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부서져 버린 보관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신음하듯이 말했다.
"뭐라고?"
"악마의 화염, 저주받은 불이지. 그건 호크룩스를 파괴할 수 있는 물질 가운데 하나야. 그렇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감히 그걸 사용할 엄두를 못 냈어. 그건 너무 위험하거든. 도대체 크레이브가 그걸 사용하는 법을 어떻게...?"
"캐로우 남매에게서 배운 게 분명해."
해리가 말했다.
"그 불길을 멈추는 법을 가르쳐 줄 때, 그 녀석이 집중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게 정말 유감이군."
론이 대답했다. 우리는 온통 그을려 있었고, 얼굴을 새카맸다.
"이제 우리가 그 뱀만 잡을 수만 있다면...."
헤르미온느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 그리고 틀림없이 결투의 소음이 복도를 가득 채우는 바람에, 헤르미온느는 말얼 멈추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본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호그와트 안으로 침입한 것이다. 그제야 프레드와 퍼시, 아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 사람 모두 가면과 두건을 쓴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돕기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발사된 광선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퍼시와 한창 결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이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그의 두건이 흘러내렸고, 불룩 튀어나온 이마와 희끗희끗한 머리키락을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장관님!"
퍼시가 곧장 씨크니스를 향해 주문을 날리며 외쳤다. 씨크니스는 지팡이를 떨어뜨리고 몹시 불편한 듯이 망토의 앞자락을 움켜쥐었다.
"제가 사표를 냈다는 말씀을 드렸던가요?"
"농담을 다 하네, 퍼스!"
결투를 하고 있던 죽음을 먹는 자가 각기 날아온 네 방의 기절 마법을 못 이기고 쓰러지자, 프레드가 외쳤다. 한편 씨크니스는 온몸에 작은 가시들이 돋아난 채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성게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프레드가 씩 웃으며 퍼시를 바라보았다.
"형이 정말로 농담을 다 하다니.... 퍼스.... 도대체 마지막으로 형이 농담하는 걸 들어 본 게...."
바로 그때 쾅 하고 폭발이 일어났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와 아빌, 프레드와 퍼시 그리고 나는 다 함께 한곳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발치에는 기절한 죽음을 먹는 자 한 명과 성게로 변한 다른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손에 쥐고 있는 유일한 무기를 움켜쥐고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고통과 어슴푸레한 어둠에 싸인 채, 세상이 다시 돌아왔다. 끔찍한 공격을 당한 복도의 잔해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성의 측면이 폭파된 모양이었다. 이마에서는 느껴지는 뜨겁고 끈적거리는 느낌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빌!"
프레드가 외치는 소리에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부서진 돌과 나무 더미를 넘어갔다.
"아빌!!!"
프레드를 보호한 아빌, 프레드는 무사했지만 아빌은....
-대모가 되어 줄 거지? 너 밖에 없어. 응? 부탁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소름 끼치는 울부짖음, 그 어떤 뜨거운 불길이나 저주로도 불어일으킬 수 없는 처절한 고뇌의 울부짖음이목소리를 통해서 나왔다.
"안 돼.... 안 돼! 아빌!!!"
눈물 범벅이 얼굴인 로라가 아빌을 끌어 안고 잡아 흔들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폭발로 인해 뚫린 구멍을 통해 학교 건물 안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저주가 날아오더니 그들의 머리 뒤쪽 벽에 맞았다.
"숙여!"
해리가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더 많은 저주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해리와 론은 양쪽에서 헤르미온느를 붙잡고 바닥으로 끌어당겼고 퍼시와 프레드도 피했지만 로라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로라!!!"
프레드가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 잡아끌었다.
"아빌은 이미 죽었어. 이제 네가 그녀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린 가야...."
해리가 말했다. 이때 헤르미온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소형 자동차만큼이나 거대한 괴물 거미가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서 기어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론과 해리가 동시에 주문을 외쳤다. 두 사람의 주문이 부딪혔고, 괴물은 끔찍하게 다리를 꿈틀거리며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그놈이 친구들을 데려왔어!"
해리가 저주에 맞아 폭파된 벽의 구멍 너머로 성의 가장자리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그는 무리를 이끌던 거미들을 향해 기절 마법을 쏘았다.
"어서 가자, 지금이야!"
론과 함께 헤르미온느를 먼저 떠밀어 보낸 후에 해리는 몸을 숙여서 아빌의 시신을 옆구리에 꼈다. 해리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아채고 퍼시도 그를 도아주었다. 두 사람은 운동장에서 날아오는 저주들을 피하기 위해 낮게 몸을 숙인 채 아빌을 함께 끌고 갔다. 프레드가 로라를 데리고 그 뒤를 쫓았다.
"프레드, 놔줘. 이제 괜찮으니까."
정신을 차렸는지 로라는 프레드가 잡고 있는 자신의 손목을 빼내려고 했다. 해리와 퍼시는 이전에 갑옷이 서 있는 자리에 아빌의 시신을 내려놓았다.
"가자, 해리. 나 반드시 살게, 아빌."
로라는 아빌에게 속삭이듯이 말하고는 론과 헤르미온느의 뒤를 쫓아서 달려가는 해리의 뒤를 쫓았다.
"해리, 넌 볼드모트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 해. 그자는 그 뱀을 자기 곁에 두고 있을 테니까. 그걸 해 봐, 해리.... 그자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라고!"
론과 헤르미온느를 벽걸이 양탄자 뒤에서 발견하자 로라가 해리에게 말을 했다. 해리는 그녀의 명령에 따라서 눈을 감았다.
그는 헉하고 숨을 들이쉬더니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 있어. 그 뱀도 함께 있는데, 일종의 마법 보호막에 감싸여 있어. 그가 방금 루시우스 말포이를 보내서 스네이프를 불러 오라고 했어."
"볼드모트가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 앉아 있단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발끈해서 말했다.
"그자는... 그자는 심지어 싸우고 있지도 않단 말이야?"
"그는 직접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
해리가 대답했다.
"내가 자기를 직접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거든."
"어째서?"
"내가 호크룩스를 쫓고 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으니까. 그자는 내기니를 계속 자기 옆에 두고 있잖아. 결국 그 뱀에게 접근하려면, 내가 그자를 찾아가야만 하는 거지."
"맞아."
론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가면 안 돼. 그게 바로 그자가 원하고 기대하는 일이잖아. 넌 여기 남아서 헤르미온느와 로라를 돌봐 줘. 내가 가서 그걸..."
해리가 론을 가로막았다.
"너희 셋이 여기 남아 있어. 내가 투명 망토를 쓰고 갔다가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안 돼."
헤르미온느와 로라가 말했다.
"내가 망토를 쓰고 갔다 오는 게 훨씬 더 합당한..."
"그런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마."
론이 헤르미온느를 윽박질렀다.
"론, 나는 할 수...."
헤르미온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우리가 서 있는 계단 꼭대기의 벽걸이 양탄자가 쫙 갈라지면서 활짝 열렸다.
"포터! 에반스!"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 두 명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글리세오!"
로라가 소리치자 발밑에 있던 계단들이 쭉 펴지면서 미끄럼틀이 되었다. 그들은 그 밑으로 몸을 던졌다. 미끄러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죽음을 먹는 자들의 기절 마법이 머리 위로 한참 빗나가 버렸다. 그들은 계단 밑에 있는 비밀 출입구를 감추고 있던 양탄자를 뚫고 나갔다. 그리고 복도를 데구루루 굴러서 맞은편 벽에 부딪혔다.
"듀로!"
헤르미온느가 양탄자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소리쳤다. 그러자 양탄자가 단단한 돌로 변하면서 뭔가 세게 부딪히는 기분 나쁜 소리가 두 번 들렸다. 죽음을 먹는 자 두 명이 돌로 변한 양탄자와 충돌한 것이다.
"물러서!"
론이 고함을 질렀다. 론과 해리, 로라,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어느 문에 바싹 등을 붙이고 섰다. 겅중겅중 뛰는 한 때의 책상들이 천둥처럼 요란하게 그들 앞을 지나갔고, 뒤이어 맥고나걸이 양치기처럼 그것들을 몰면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맥고나걸은 그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구 흘러내렸고, 뺨에는 깊이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맥고나걸이 모퉁이를 돌아갈 때 그들의 귀에 그녀의 외침이 들려왔다.
"돌격하라!"
"해리, 너는 어서 투명 망토를 입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하지만 해리는 네 사람 모두의 머리 위로 투명 망토를 씌웠다. 비록 망토에 비해 그들의 덩치가 너무 크긴 했지만, 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돌 조각이 비처럼 쏟아지고 사방에서 주문들이 번쩍번쩍 터지는 이런 와중에, 밑으로 드러난 그들의 발을 발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서둘러 다음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복도는 한창 맞붙어 싸우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들의 양편 벽에 걸린 초상화들 속에서는, 초상화의 인물들이 빽빽이 모여서 저마다 조언과 격려의 말을 던지느라 난리였다. 한편 죽음을 먹는 자들은 가면을 쓴 자나 쓰지 않는 자나 할 것 없이 학생들과 교사들과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딘은 돌로호브와, 패르바티는 트래버스와 일대일로 싸우고 있었다. 피브스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스네어갈러프 씨주머니를 투하했다. 그러자 갑자기 통통하게 살찐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초록색 씨앗들이 그들의 머리를 꿀꺽 삼켜 버렸다.
"이크!"
한 줌의씨앗들이 론의 머리를 덮고 있는 투명 망토 위에 떨어졌다. 그 끈적이는 초록색 씨앗들은 한동안 거짓말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론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떼어 버리려고 했다.
"저기 눈에 안 보이는 누군가가 있다!"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 가운데 한 사람이 손가락을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딘이 그 죽음을 먹는 자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놓치지 않고, 기절 마법으로 그자를 쓰러뜨렸다. 돌로호브는 보복하려고 했지만, 패르바티가 그에게 동작 그만 주문을 날렸다.
"그만 가자!"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로라와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투명 망토를 바싹 여미고 머리를 낮게 숙인 채, 싸우는 사람들 사이를 돌진했다. 도중에 스네어갈러프 즙이 고인 웅덩이에 살짝 미끄러질 뻔했지만, 어쨌든 현관 복도로 가는 대리석 계단 꼭대기로 향했다.
"난 드레이코 말포이예요! 드레이코라고요! 난 당신들 편이라니까요!"
드레이코가 층계참 위에서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에게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때 로우가 죽음을 먹는 자를 향해서 기절 마법을 쏘았다. 말포이는 자신의 구원자를 향해 활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너 어디서 뭐하는 거야! 도망쳐야지!"
"로우!"
로우는 성큼성큼 말포이에게 다가가서는 그의 목덜미를 잡아채고는 그를 피신시키려는 건지 복도를 달려갔고 우리는 올라갔다. 계단과 현관 복도에는 싸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있었다. 악슬리는 현관문에 바싹 붙어서 플리트윅과 싸우고 있었으며, 바로 그들의 오른편에서는 가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 한 명이 킹슬리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몇 명은 부상당한 친구들을 들거나 끌고 가고 있었다. 네빌은 베네무스 텐타큘라를 한 아름 안고 휘두르고 있었는데, 덴타큘라는 신이 나서 제일 가까이 있던 죽음을 먹는 자를 덥석 붙잡더니 꽁꽁 휘감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리석 계단을 전속력으로 달려 내려갔다. 기숙사의 점수를 기록하던 슬리데린의 모래시계가 박살이 나더니 에메랄드 알이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글러갔다. 그 때문에 달려가던 사람들이 미끄러지거나 비틀거렸다. 해리, 로라, 론, 헤르미온느가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위쪽 발코니에서 두 명이 굴러 떨어졌다. 뒤이어 네 발 달린 짐승 같은 회색 뭉치가 현관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오더니, 발코니에서 떨어진 사람 중 한 명을 덥석 물려고 했다.
"안 돼!"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고 날아온, 수많은 박쥐 떼가 사람 형체를 갖추더니 늑대인간을 발로 차버렸다. 늑대 인간은 라벤더 브라운의 몸에서부터 휙 뒤로 나가떨어졌고 대리석 난간에 부딪히더니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눈부신 하얀 섬광과 함께 딱 소리를 나면서 수정 구슬 하나가 그의 머리 위로 쿵 떨어졌다. 늑대인간은 바닥에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도 더 있다!"
난간 위에서 트릴로니가 빽 소리를 질렀다.
"원하는 놈은 누구든, 얼마든지 더 주마! 여기..."
트릴로니는 마치 테니스에서 서브를 날리는 듯한 동작으로, 가방에서 커다란 수정 구슬을 꺼내어 허공에 대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수정 구슬은 빠르게 현관 복도를 가로질러 날아가 유리창을 박살 냈다. 바로 그 순간, 육중한 나무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더 많은 괴물 거미들이 현관 복도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공포에 찬 비명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호그와트 사람이든 죽음을 먹는 자들든 할 것 없이, 싸우는 사람들은 흩어졌다. 그리고 점점 더 다가오는 괴물들의 한가운데를 향해서 초록색과 붉은색 불꽃들이 쏟아졌다. 거미들은 부르르 몸을 떨더니 뒷다리를 번쩍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그 모습이 전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했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론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너머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해리나 헤르미온느, 로라 셋 다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해그리드가 분홍색 꽃무늬 우산을 마구 휘두르며 요란하게 계단을 내려온 것이다.
"해치지 마! 해치지 마!"
해그리드가 소리를 질렀다.
"해그리드, 안 돼요!"
해리는 다른 모든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투명 망토 밑에서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그리고 현관 복도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잇는 저주들을 피하기 위해 허리를 잔뜩 숙인 채 달려갔다.
"해그리드, 돌아와요!"
해그리드가 있는 곳까지 절반도 채 못간 채 해리는 그가 거미들 속으로 사라진 것을 보았다. 거미들은 흉측한 떼를 이루며 허둥지둥 종종걸음을 쳤고 맹렬한 저주의 공격을 받으며 후퇴했다.
"해그리드!!!"
"해리!"
해리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게 적이든 친구들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전력을 다해 어두운 운동장으로 현관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거미들은 그들의 먹익감을 가지고 떼 지어 몰려가고 있었다.
"해그리드!!"
해리가 서둘러 거미들을 쫓아가려는 순간, 터무니없이 커다란 발 하나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둠 속에서 불쑥 내려온 그 발은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해리 앞에 쿵 하고 놓였다. 해리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키가 6미터 정도 되는 거인 한 명이 그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거인의 머리는 어둠 속에 완전히 감추어져 있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성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불빛에 비친, 나무만큼 굵고 털이 무성한 거인의 두 정강이 뿐이었다. 단 한 번의 사납고 유연한 동작으로, 거인은 위층 유리창을 뚫고 거대한 주먹 하나를 쑥 집어넣엇다. 그러자 유리 조각이 비처럼 해리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해리는 어쩔 수 없이 현관 입구 쪽으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오, 이런!"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해리를 겨우 따라잡은 론과 헤르미온느, 로라는 이제 위층 창문 너머로 사람들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거인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안 돼!"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를 치켜들자, 론이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저놈을 기절시켰다가는 성의 절반이 짓뭉개질 거야."
"해거?"
그때 그롭이 성의 모퉁이를 돌아서 비틀비틀 다가왔다. 거인이 휙 고개를 돌리더니, 으르렁거리며 노호를 내질렀다. 그롭의 삐뚤어진 입이 떡 벌어지면서, 벽돌 절반만 한 노란 이빨이 드러냈다. 이윽고 두 거인은 사나운 사자처럼 서로를 향해 덤벼들었다.
"달려!"
해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캄캄한 밤은 두 거인이 맞붙어 싸우면서 내는 무시무시한 괴성과 퍽퍽 때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해리는 로라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향해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내려갔고 론이 헤르미온느의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라왔다.
숲에 절반쯤 다가왔을 때, 주위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어둠 속에서 어떤 형상들이 나타났다. 새까만 암흑이 응집된 듯한 소용돌이치는 그 형상들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성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디멘터들이 정적이 주위를 감쌌다.
"패트로누스를 불러, 해리, 로라!"
헤르미온느와 론이 소리쳤다. 론의 은빛 테리어가 허공으로 튀어나오더니, 희미하게 깜박거리다가 꺼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또한 헤르미온느의 수달이 공중에서 몸을 비틀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은빛 토끼와 멋돼지, 흰발타마린, 알락꼬리여우원숭이 그리고 여우가 해리와 로라, 론, 헤르미온느의 머리 위를 휙 지나갔다. 그것들이 다가가자 디멘터들이 뒤로 물러섰다. 어둠 속에서 다섯 사람이 나타나더니 그들 옆으로 다가와 섰다. 앞으로 쭉 뻗은 그들의 지팡이에서는 계속해서 패트로누스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루나와 어니, 미셸, 실비아 그리고 시무스였다.
"바로 이거야."
루나가 씩씩하게 말했다. 마치 필요의 방으로 되돌아가서, 단순히 D.A. 주문 연습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바로 이거야, 해리, 로라... 어서, 뭔가 행복하 걸 생각해 봐!"
"뭐가 행복한 거?"
로라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우리 모두가 아직 여기 있잖아."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어, 언니."
루나가 속삭이고 실비아가 말했다.
"우린 여전히 싸우고 있어."
미셸이 덧붙였다. 그녀의 말에 가슴 속에서 불이 붙었다. 지팡이에서 은빛 불꽃이 팍 튀더니 일렁이는 한 가닥 빛줄기가 뿜어 나왔다. 곧이어 수사슴과 암사슴이 앞으로 달려갔다. 디멘터들은 정신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어둠이 다시 옅어지고 주위에서 벌이지는 전투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뭐라고 고맙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겟다."
론이 그들을 돌아보며,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방금 내 목숨을 구해..."
이때 엄청난 포효와 땅을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숲이 있는 방향에서 또 다른 거인이 어둠을 뚫고 불쑥 나타났다. 거인은 그들보다도 더 커다란 곤봉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뛰어!"
해리가 소리쳤다. 하지만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뿔뿔이 도망쳤다. 해리, 로라, 론, 헤르미온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시 싸움터로 돌아갔다.
"여길 벗어나자!"
론이 고함쳤다. 거인은 또다시 곤봉을 휘둘렀고, 거인의 울부짖음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어두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운동장에서는 쉴 새 없이 터지는 붉은색과 초록색 광선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커다란 버드나무로 가자!"
로라가 외쳤다. 그들은 어둠 속 여기저기에서 슝슝 날아다니는 불꽃들과 바다처럼 철썩거리는 호수의 소리와 바람 한 점 없는 밤인데도 술렁거리는 금지된 숲의 소리를 모두 무시한 채,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커다란 버드나무는 채찍처럼 휙휙 내려치는 나뭇가지들로 그 뿌리에 감추어진 비밀 통로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 두꺼운 밑동을 살펴보았다. 이 늙은 나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나무에 붙어 있는 단 하나의 옹이를 찾기 위해서다.
"어떻게... 어떻게 들어가지?"
론이 헉헉거리며 말했다.
"저기... 그곳이... 보여.... 이번에도... 크룩생크만 있다면..."
"크룩생크?"
헤르미온느가 가슴을 움켜쥔 채 허리를 구부리고 씩씩거렸다.
"너, 마법사 맞니?"
"오.... 맞아.... 그렇지...."
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땅 위에 떨어진 잔가지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잔가지는 땅에서 붕 떠오르더니 마치 돌풍에 휘날리듯이 허공에서 뱅그르르 맴돌았다. 그리고는 사납게 내려치는 버드나무의 나뭇가지들 사이를 지나서 곧장 밑동을 향해 날아갔다. 잔가지가 뿌리 근처의 한 지점을 콕 찌르자, 날뛰던 나무가 당장 조용해졌다.
"완벽해!"
헤르미온느가 헉헉거리며 탄성을 질렀다.
"잠깐 기다려!"
쾅쾅 부서지고 펑펑 터지는 전투의 소음이 주변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는 동안, 해리는 한순간 주저했다.
"해리, 어서 가야지. 이리로 들어가!"
로라가 해리에게 말하며 그를 앞으로 떠밀었다. 해리는 나무뿌리 밑에 감추어진 지하 통로 속으로 몸을 비틀며 들어갔다. 그리고 로라가 그 뒤를 이어서 들어갔다. 지난번에 들어갈 때보다 통로는 훨씬 더 비좁아졌다. 통로의 천장이 낮았기 때문에 4년 전에도 몸을 완전히 숙인 채, 지나가야만 했다. 그러니 이제는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해리가 지팡이에 불을 밝힌 채 제일 먼저 기어갔다.
"투명 망토! 투명 망토를 써!"
위로 비스듬한 경사가 시작되자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해리가 뒤족을 더듬었다. 그러자 로라가 매끄러운 천 뭉치를 그의 빈손에 쥐여 주었다. 해리는 힘들게 망토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녹스"라고 중얼거리서 지팡이 불빛을 끈 다음,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계속해서 기어갔다. 통로 끝의 입구가 낡은 상자 같은 것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래도 누가 말하지는지는 들렸다.
"주인님, 저들의 저항이 약해지고 있...."
"그래, 네 도움 없이도 그렇게 되고 있지."
볼드모트가 높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베루스, 네가 비록 솜씨 좋은 마법사이긴 하지만 이제 와서 크게 상황을 바꿔 놓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거의 도달했다.... 거의."
"부디 제가 그 아이들을 찾아내도록 해 주십시오. 제 손으로 포터를 주인님 앞에 대령하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반드시 그 녀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주인님, 부탁입니다."
"문제가 하나 있다, 세베루스."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님?"
"어째서 이 지팡이가 나를 위해 움직이지 않느냐, 세베루스?"
"주.... 주인님? 저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그 지팡이로 비범한 마법을 부리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다. 그저 평범한 마법을 행했을 분이다. 물론 나는 비범한 마법사이다. 하지만 이 지팡이는.... 그렇지 않아. 기대했던 그 어떤 경이로운 힘도 보여 주지 못했다. 나는 오래전에 올리밴더에게 구한 지팡이와 이 지팡이 간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차이가 없어."
세베루스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세베루스... 너는 내가 왜 너를 전투에서 불렀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주인님. 하지만 부디 저를 다시 돌려보내 주십시오. 제가 포터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넌 꼭 루시우스처럼 말하는구나. 너희 두 사람이 모두 나만큼 포터를 잘 알지 못한다. 그 녀석은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포터는 스스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포터의 껌딱지처럼 움직이는 에반스도 당연히 나를 찾아올 것이다, 포터의 뒤를 쫓아서 말이지. 나는 그 녀석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 녀석들의 한 가지 커다란 결점을 말이다. 그 녀석들은 자기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무엇보다 싫어할 것이다. 바로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 녀석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일을 막고 싶어 할 것이고, 결국 제 발로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주인님, 어쩌면 주인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우연히 그 녀석들을 죽이게 될지도 모릅..."
"나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아주 분명하게 명령을 내렸다. 포터와 에반스를 사로잡으라고. 그의 친구들은 죽여 버려라.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더 좋다. 하지만 그 녀석들은 죽이지 마라. 하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해리 포터와 로라 에반스가 아니라, 바로 너, 세베루스에 대해서이다. 그동안 너는 나에게 참으로 귀중한 존재였다. 귀중한 존재였지."
"주인님께서는 제가 오직 주인님을 섬기기만 원한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를 보내시어 그 아이들을 찾도록 해주십시오, 주인님. 제 손으로 그 아이들을 주인님 앞에 대령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분명히 할 수 있습..."
"내가 이미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볼드모트가 호통을 쳤다.
"세베루스, 지금 나의 관심사는 내가 마침내 그 아이들을 만났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주인님, 그건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분명히..."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세베루스. 분명히 있어. 어째서 내가 사용했던 지팡이 두 개가 모두 해리 포터를 겨냥했을 때 실패하고 말았을까?"
"저... 저는 그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그러냐? 주목나무 지팡이는 내가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했다, 세베루스. 해리 포터를 죽이는 것만 빼놓고 말이지. 그 지팡이는 두 번이나 그 일에 실패했지. 올리밴더는 고문에 못 이겨서 똑같은 지팡이 심에 대해서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지팡이를 사용하라고 충고했지.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루시우스의 지팡이는 포터의 지팡이와 맞부딪히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저.... 저는 아무런 설명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나는 세 번째 지팡이를 찾았다, 세베루스. 딱총나무 지팡이, 운명의 지팡이, 죽음의 지팡이를 말이다. 나는 예전 주인으로부터 그것을 빼앗았지. 바로 알버스 덤블도어의 무덤에서 이 지팡이를 가져왔다."
"주인님, 부디 제가 가서 그 아이를..."
"이 기나긴 밤 내내, 승리를 바로 눈앞에 둔 이때에 나는 이곳에 앉아 있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어째서 이 딱총나무 지팡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전설이 전하는 대로 지팡이의 정당한 주인을 위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인지... 그리고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세베루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느냐? 어쨌든 너는 대단히 영리한 자니까, 세베루스. 그동안 너는 착하고 충실한 종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감스럽구나."
"주인님...."
"딱총나무 지팡이는 나를 제대로 섬길 수가 없었다, 세베루스. 왜냐하면 나는 이 지팡이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총나무 지팡이는 이전 주인 마법사의 소유가 된다. 그런데 네가 알버스 덤블도어를 죽였다. 세베루스, 네가 살아 있는 한 딱총나무 지팡이는 진정한 나의 소유가 되지 못한단 말이다."
"주인님!"
세베루스의 목소리에 놀람과 당혹함이 섞여 있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구나."
볼드모트가 말했다.
"나는 반드시 이 지팡이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세베루스. 이 지팡이를 지배해야 결국에는 포터를 지배할 수 있다."
볼드모트가 쉭쉭거리는 파셀통그로 명령을 내렸다.
【죽어】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감스럽구나."
볼드모트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상자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상자는 공중으로 2~3센티미터쯤 붕 떠오르더니 조용히 옆으로 비켜놨다. 해리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몸을 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로라가 목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세베루스의 모습에 입을 두 손으로 막아버렸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벗었다. 그의 부릅뜬 까만 눈이 해리를 발견했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해리가 그의 몸 위로 허리를 숙였다. 세베루스는 그의 망토 앞자락을 움켜잡더니 바싹 끌어당겼다.
"이걸.... 받아.... 이걸... 받아...."
피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세베루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고 은빛 광택이 감도는 그것은 기체도 액체도 아니었는데, 그의 입과 귀와 눈에서 분출되고 있었다. 멍하니 있는 해리의 손에 헤르미온느가 플라스크 하나를 나타나게 해서 그의 손에 날아들게 했다. 해리는 지팡이를 가지고 그 은색 물질을 플라스크 안에 담았다.
"나를... 보아라...."
그가 속삭였다. 초록색 눈동자와 까만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 다음 순간, 새까만 두 개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 있던 무언가가 깜박 사라져 버렸다. 뒤에 남은 것은 오직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멍하고 텅 빈 눈알뿐이었다. 해리를 붙잡고 있는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세베루스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안녕히... 대부, 조용히 잠드세요."
그의 옆으로 가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후 날카롭고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볼드모트가 호그와트와 인근 지역 전체를 향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대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날카롭고 싸늘한 목소리가 말했다.
"볼드모트경은 용기를 존중할 줄 안다. 하지만 그대들은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다. 이대로 계속해서 나에게 저항한다면, 그대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모두 죽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흘러 떨어지는 마법사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두 크나큰 손실이요 낭비다. 볼드모트경은 자비롭다. 나는 나의 군사들에게 즉각 후퇴할 것을 명령한다. 그대들에게 한 시간을 주겠다. 그동안 너희 전사자들을 예를 갖춰 매장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해라. 이제부터 해리 포터, 바로 너에게 말하겠다. 너는 직접 나와 맞서지 않고, 네 친구들이 너를 위해 목숨을 잃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금지된 숲에서 한 시간동안 기다릴 것이다. 만약 한 시간 후에도 네가 에반스를 데리고 나를 찾아와서 항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전투가 재개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직접 이 싸움에 참여할 것이다. 남자, 여자, 어린 아이를 가리지 않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조리 벌할 것이다. 한 시간이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자의 말은 듣지 마. 전부 다 괜찮을 거야."
론이 말했다. 헤르미온느도 정신없이 떠들었다.
"어서 성... 성으로 돌아가자. 그 사람이 숲에 가 있다면 우린 새로운 작전을 짜야 해!"
네 사람은 다시 통로 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성 앞의 잔디밭에는 여기저기에 작은 무리들이 흩어져 있는 것 같았다. 동이 트기 전까지는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주위는 아직도 칠흑같이 어두웠다.
돌계단으로 향하는 네 사람 중 로라가 주저앉았다.
"로라?"
"아....!! 콜록!!"
그녀는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가슴을 부여잡은 채 그녀는 피를 토해냈다.
"로라!!!"
세 사람은 기겁하면서 그녀의 옆으로 달려갔다.
"나, 한계가 온 것 같아... 미안..."
"당장 폼프리 부인에게!"
론이 재빨리 그녀를 업어서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성 안으로 향했다. 로라의 금안은 서서히 눈꺼풀이 닫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