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로즈와 회색 여왕 06
소동이 벌어진 직후, 나미에는 머리를 갖고 연구소를 빠져나갔다. 그녀의 예측대로 간발의 차로 검은 오토바이-듀라한의 신체가 연구소를 습격했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그녀는 큰 아버지에게 의지하려고 휴대전화를 걸었을 때,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했다. 긴급 중역회의에서 '네브라와의 합병이 지금 막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밤의 소동만이 아니라 최근 며칠 간의 연구소 관련 분규를 본사는, 혹은 네브라는 빠짐없이 관찰해서-어느 쪽이 먼저 제안했는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추태가 외부로 드러나기 전에 합병을 추진한다는 형태의 합의했다.
나미에는 집어던지듯 전화를 끊고서는 차를 U턴시켰다. 두 번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머리를 감출 수 있는 조직을 찾기로 했다.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지? 불법 입국자 리스트가 도움이 되었나?"
오리하라 이자야가 사는 아파트에서 나미에는 발을 집어넣었다. 츠지루는 관심 없는 얼굴로 노트북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도 바보 같은 짓을 했어. 동생의 뒤틀린 연심 때문에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다니 말이야. 아니, 오히려 동생에 대한 뒤틀린 연심이라고 해야 하나?"
이자야는 그렇게 읆조리며 오셀로 돌을 판 위에 놓았다. 의식과 말은 정면에 앉은 나미에를 향하고 있지만 눈은 판 위에서 한순간도 움직이지 않았다.
"윗대가리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네브라 하면 외국계 대기업, 아니 초우량기업이잖아. 미국에서 큰 소리 떵떵치는."
돌을 하나 더 놓자 두 개의 검정 돌 사이에 장기의 보병이 끼는 형태가 되었다.
"자, 승진."
그대로 보병을 뒤집어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왕을 집는다.
"근데 말이야, 위험하지 않아? 마피아 같은 게 오는 거 아냐? 아니면 초일류 저격수 같은 걸 스위스 은행 경유로 고용해서 내 미간을 탕 이라든가. 장군이오."
왕을 한 칸 앞으로 밀어 상대의 왕 앞에 대고 장군을 부른다.
"왕들끼리 일기토를 시키는 건 안 되려나."
그러고는 비로소 처음으로 나미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몹시 초췌해 보이는 것이 이자야의 말장난에 대꾸할 기력도 없는 듯했다. 이자야는 장기판 옆에 놓인 특수 상자를 열고는 안에 든 머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나미에에게 기묘한 견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마 네 아버지도 나와 같은 거라고 생각해. 저 세상을 누구보다도 믿지 않고 누구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누구보다도 천국을 갈망하지. 하지만 확신했어. 나도 확신했어. 저세상은 있어. 그런 걸로 해두자고."
"…?"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한 세르티의 머리. 그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이자야는 조용히 읆즈렸다.
"듀라한이란 기본적으로 여자들밖에 없다고들 하지. 어째선지 알아?"
"…아니요. 부하직원 중에는 신화를 연구한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소용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합리주의자로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전 세계의 신화에서는 공통점이나 연관성이 많이 있는데 발할라라는 천국…. 뭐 정확하게는 다르지만, 그런 것이 북유럽 신화에는 있거든. 켈트 신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존재가 있지. 그리고 북유럽 신화에서는 발키리라는 갑옷을 입은 여자 천사가 발할라까지 용감한 전사의 혼을 이끌어준다고 해. 갑옷을 입은 여성이 죽은 자를 맞이하러 간다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나?"
나미에는 이자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의 표정에 서린 웃음이 점차 가면처럼 예민해진다.
"일설에 의하면 발키리들이 지상을 헤매는 모습이 바로 듀라한이라고 하더군. 때문에 듀라한에게는 여자밖에 없고, 갑옷 차림으로 그려지는 일이 많아. 그렇다면 이 머리는 아마 기다리는 걸 테지. 각성을. 전쟁을. 발할라로 맞아 들일 성스러운 전사를 찾기 위해서―――― 이 머리가 살아있음에도 눈을 뜨지 않는 이유는 여기가 전쟁터가 아니기 때문이지. 가능하다면 나도 그 전사로 뽑히고 싶군 그래. 하지만 이것을 중동 같은 곳에 가져간다 해도, 나는 그러한 전장에서 싸우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해."
그리고 무언가를 기대하는 소년처럼 목소리를 높였고 그의 미소는 다른 이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죽은 후에 발할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나는 어떡하면 좋을까? 전쟁일까,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겠지. 허나 내가 중동 같은 데에 가서 활약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그렇다면- 나는 나밖에 할 수 없는, 나밖에 활약할 수 없는 전쟁을 일으키면 돼. 그렇지 않나?"
그는 오셀로와 장기와 체스말로 가득한 판의 모서리에 손가락을 대고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이라도 하듯 기세 좋게 회전시켰다. 판 위의 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 자리에는 판 중앙에 있던 보병만이 남는다.
"허나 여기 도쿄라면- 여기서 군과도 정치와도 상관없는 '전쟁'을 일으킨다면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어. 아아, 난 어쩜 이렇게 행운아일까! 천국을 믿지 않고 천국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내가- 그 덕분에 지상에 떨어진 죽음의 천사를 만날 수 있다니!"
표정 없는 미소로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기뻐하는 이자야. 그 웃음과 기쁨 속에는 타인이 파고들 여지라곤 털끝만큼도 없었다.
"전부 당신의 추측일 뿐이잖아."
"믿는 자는 구원받을 거야. 게다가 이것은 보험이라잖아. 그러니까 나는 가능한 한 '저세상'의 보험을 들어둘 거야. 그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괴로움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에 '내'가 존재한다면 상관없어. 물론 가능한다면 천국인 편이 좋겠지만. 나미에양, 다 함께 천국에 가자고, 응?"
이자야는 마치 식사에라도 초대한다는 듯 나미에에게 말을 걸었다. 이자야의 가면 같은 미소를 보고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은 가장 넘겨서는 안 될 인간에게 하늘의 사자를 넘기고 말았다는 것을….
"이 머리는 '다라즈'의 일원으로서 내가 맡을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세르티도 자신의 머리가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하겠지."
혼란에 빠진 나미에에게 이자야는 무척이나 즐거운 듯 악마의 유혹을 던졌다.
"너도 다라즈에 들어와. 우리 보스는 '오는 자는 억지로 끌어들인다'는 방침이거든. 무엇보다 중간부터 사람을 모으기 시작한 건 나지만."
그 목소리는 그녀를 깔보듯, 사랑스러워하듯, 혹은 축복하려는 듯-.
"지상에 떨어진 천사를― 우리 손으로 다시 날 수 있게 만들어 주자고. 응?"
이자야는 나미에에게 조용히 웃어주었다. 츠지루는 서랍 속에 넣어둔, 붉은 장미의 줄이 달린 휴대전화를 꺼내서 쭉 꺼두었던 전원을 켰다. 검은 장미 바탕화면이 눈에 들어오자 광기에 가까운 순수한 미소를 얼굴에 드러냈다.
'이제 놓치지 않아.'
바탕 화면의 검은 장미를 보면서 다짐했다.
사건 다음 날, 마치 유행하는 애니메이션을 본 초등학생마냥 마사오미의 얼굴은 순수한 미소로 가득했다.
"있잖아요, 누님! 인터넷으로 봤는데. 어제 다라즈의 집회가 있었대요! 그게 말이야, 놀랍게도 사이먼이랑 시즈오도 다라즈 일당이었다지 뭐예요! 그것도 그 검은 오토바이가 무슨 목이 없어서 벽을 달려서 큰 낫을 꺼내서 세상에 부웅 하는 느낌으로 엄청났대요!"
"지금 마사오미 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양호실은 놀러 오는 곳이 아니야."
마사오미에게 내가 말해줬다. 미카도와 둘은 점심시간이 되었을 즈음 양호실로 점심을 먹으러 왔다.
학생들 대부분은 사립대학 식당으로 오인할 만큼 멋진 구내식당으로 이동하든가, 아니면 번화가로 나가서 점심을 사 먹는 시간이었으나 별난 학생 몇 명은 손수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먹었다.
<채팅방>
-크롬 님이 입실했습니다-
크롬: <안녕하세요.>
히아바라: <처음 오시는 분인가요?>
크롬: <네. 칸라 님의 초대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세튼: <방가. 오늘은 졸려서 일찍 나갈게요.>
흑기사: <아, 수면부족? 밤이라도 새웠나요?>
세튼: <예, 좀요.>
크롬: <칸라 님은 아직 안 오시는 건가요?>
흑기사: <글쎄요. 전 개인적으로 안 오시면 좋겠지만요.>
크롬: <??>
세튼: <아, 죄송. 급한 일이 생겼어요.>
하이바라: <어라? 그래요?>
세튼: <죄송합니다. 먼저 실례할게요.>
하이바라: <네네, 수고하세요.>
흑기사: <다음에.>
크롬:<반가웠어요, 세튼 님.>
-세튼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하이바라: <그럼 저도 저녁쯤 다시 들어올게요.>
크롬: <기다리고 있을 게요.>
-하이바라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그래서? 둘은 왜 여기서 먹는 거야?"
"누님이 혼자서 쓸쓸할 것 같아서요!"
마사오미가 당당하게 말했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것보다 소노하라 양에게 미카도 군이 신경 좀 써줘."
"아, 노력은 해 볼게."
"부끄럼쟁이에게는 여자애에게 말 거는 것은 좀 어려운 일까나?"
"누나!"
내가 농담을 하자 미카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건 이튿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야기리 세이지와 하리마 미카가 출석했다. 소노하라는 인상이 약간 바뀐 얼굴을 보고 놀란 듯했으나 학생들 대부분은 그녀를 처음 보는 셈으므로 목의 붕대를 제외하면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세이지는 미카도에게 '"여러모로 미안하다"고 말했고, 미카는 "고마워"라고 말했다고 한다). 둘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찰싹 들러붙어있었다. 그것이 계기로 미카는 소노하라에게 어울리지 않게 된 듯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소노하라를 볼 수가 있었다.
사건이 있고 나서 모든 것은 되돌아갔다(과연 그럴까?). 검은 오토바이는 오늘도 달려간다. 그녀의 전투 장면을 본 자들은 그녀의 존재를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당당한 존재감이 오히려 현실감을 없애고 꿈이라고 생각하게 한 건지- 아니면 다들 그녀를 '거리'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인지. 개중에는 그 사건을 인터넷으로 올린 자도 있었으나, 당연하게도 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
-다라즈라는 이름이 어디서 나온 줄 알아?
-이 조직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안 해. 그런데도 이름만 팔린단 말이지. 그래, 아무것도 안 해. 다라다라(느릿느릿)하다고 '다라즈'. 실질적으로 이 조직에 내부 따윈 존재하지 않지. '다라즈'는 단순한 성벽에 지나지 않아. 안에 들어간 녀석들이 멋대로 나라를 만들어간다. 나머지는 성벽에 얼마나 화려한 허세의 그림을 내걸 수 있느냐지. 알맹이 같은 건 없어도 겉모양만으로 이름을 남기는 꼴이 꼭 인간 그 자체같잖아.
"이자야――――――!!! 이케부쿠로에는 오지 말라고 했잖아!!!!!"
천적(=이자야)을 발견한 시즈오의 관자에 핏줄이 돋아진다. 곧 그는 고함을 지르며 거리를 온통 난장판으로 뒤집어 엎어버린다. 자판기가 날아가고…. 표지판이 꺾여지고…. 도로가 박살나고 거리가 파괴된다. 저것이 바로 이케부쿠로의 전투 인형, 헤이와지마 시즈오. 그를 응시하고 있는 두 사람, 볕에 그을린 피부에 드레드 헤어를 한 남자, 타나카 톰과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유일하게 말릴 수 있는 괴력을 가진 인내할 수 있는 괴물이자 가족, 헤이와지마 아스카.
시즈오가 던진 자판기가 소화전을 파괴하고- 불행하게 그곳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소화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정면으로 받아버렸다. 그 운없는 참상의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아스카는 그쪽으로 걸어간다. 차라리 안 봤다면 모르지만 처음부터 다 본데다가 그 원인이 이쪽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한 이쪽에서 물기를 닦아줄 수건 정도는 주는 게 최소한의 도리였다.
"괜찮…. 마사키?"
"에?"
자신을 처음 본다는 얼굴로 보는 그녀의 표정에 아스카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사이에 마사키는 갑작스러운 물세례에 추워져서 연속적으로 재채기를 한다.
"아스카!"
멍하니 있는 아스카를 부르는 중학교 시절의 선배이자 직장 상사인, 톰. 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아스카가 멍청하게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갈아…… 입어야겠다."
자신을 쳐다보지 못한 채 말을 한 바텐더 복장의 여성은 자신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디로 도망치게 하지 못하게 강하게 잡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저랑 만난 적이 있나요?"
앞장서서 걸어가는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기억상실증이라서요. 만난 적이 있다면… 죄송하지만, 알려주실래요?"
내가 묻자 그녀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말 편안하게 해…. 우린…, 같은 고교에 다니는…… 친구였어."
그녀가 그렇게 내뱉고는 다시 걸어갔다.
거리에 파괴의 흔적을 남기고 온 시즈오가 징수업의 사무실로 들어오자 보이는 광경에 멈칫해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툭 떨어뜨렸다. 마사키가 불안하다는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 입구에서 멈칫한 거였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자신의 와이셔츠 한 장밖에 입고 있지 않았다.
"?!!"
시즈오는 자신의 바보 같은 머리를 굴렸지만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시즈오, 왔네."
안쪽에서 아스카가 모습을 나타나자 마사키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를 본 순간, 심장이 뛰었다. 온몸을 폭력으로 무장한 비일상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아스카는 김을 내뿜고 있는 찻잔을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왜 여기에…?"
"피해자야. 너와 이자야가 싸워서 소화전이 터지면서 물을 뒤집어 써버렸거든."
"에취!"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시즈오는 재채기를 한 마사키의 눈치를 살피더니 아스카를 바라보았다.
"내 옷은 없어."
무표정한 얼굴로 아스카는 시즈오의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네 옷은 너무 커. 그래서 톰씨에게 옷 좀 사와달라고 부탁했어."
잠시만 밖에서 시간을 떼우고 와달라고 우회적으로 말했다(이 말을 했을 때, 마사키는 아유미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옷을 가지고 와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와 자신 그리고 시즈오가 얘기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사러 갈 거면 네가 가면 되잖아."
"나는 마사키랑 할 대화가 있으니까. 시즈오, 너도 앉아."
아스카는 더 이상 시즈오를 보지 않고 말했다.
"마셔도 돼."
머뭇거리는 마사키의 행동에 아스카가 상냥하게 말했다.
"마사키.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우리에 대해서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한대."
시즈오에게 말을 한 아스카. 그 말은 그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것이 뭐가 있어. 그리고 동갑이니까 말 놔도 돼. 난 헤이와지마 아스카, 저쪽은 시즈오. 시즈오랑 넌…."
말하기 괴롭다는 얼굴을 한 아스카.
"아스카."
말하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 시즈오. 그 시선을 알아차린 마사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꽤 친한 사이였나요, 우리?"
내가 질문을 하자 시즈오는 내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냥…… 알고 지내던 선후배 사이였다."
시즈오의 말에 담담이 그 사실을 받아들인 자신에게 솔직히 놀라웠다.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 거릴 줄 알았다. 전투 인형과 같은 학교에 나왔다는 것 자체도 심장이 뛰는데. 알고 지내던 선후배 사이라니…. 거기서 왠지 모르게 실망감이 느껴졌다. 어째서? 어째서일까? 난 그에게 무슨 사이라는 것을 듣고 싶었던 걸까?
시즈오의 대답에 아스카는 안타까움 감정이 마음 속에 차올랐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했다.
소년,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몸의 이상을 안 것은 초등학생 3학년 때였다. 아주 사소한 일로 동생, 카스카와 싸웠다. 울컥한 시즈오는 식당에 자신의 키보다도 큰 냉장고를 집어던지려 했다. 물론 당시의 그가 들어올릴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결과적으로 온몸의 힘줄이 늘어나고 관절 몇 군데가 탈구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상은 그후로도 연이어 발생했다. 학교 교실에서 친구와 싸웠을 때 상대는 그에게 컴퍼스을 냅다 던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운 일이었으나 시즈오의 행위는 그것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정당방위라는 말이 맨발로 달아날 만큼이나. 아홉 살인 시즈오는 교과서가 빼곡히 든 책상을 들어올려- 몸을 반회전시키면서 있는 힘껏 집어던졌던 것이다. 상대방 소년은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팔이 살짝 긁으며 거대한 질량이 자신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고, 다음 순간 뒤에 있던 벽에서 무언가가 파열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년이 다리를 덜덜 떨며 돌아보자, 교실 벽에 꽂힌 채 공중에 떠 있는 책상이 보였다(그 후, 자신에게 시즈오와 똑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괴력이 생겨났다).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언제나 진짜 전력을 낼 수 있다. 뇌가 전력을 제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관절과 근육을 지키기 위해서다. 한계란 글자 그대로 한계이며, 그러한 부하가 주었다가는 근육과 뼈가 부서진다는 뜻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는 그 능력과 맞바꾸어 힘을 억제한다는 능력을 잃었다. 말인즉슨- 무언가에 전력으로 힘을 담으러 하면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도 상관없이 한계까지 힘을 쥐어짜버린다는 소리다. 그리고 넘치는 힘은 그를 분노의 화신으로 바꾸었다. 힘이, 억제할 수 없는 근육의 힘이 분노를 느낀 순간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힘에 조종된 뇌는 힘을 휘두를 것을 신체에 요구했다. 파괴, 그 본능에 시즈오는 따르게 되었다. 절대적인 파괴를 지향했고 언제나 자신의 힘이 먼저 부서졌다. 부서지는 몸과 억제할 수 없는 힘. 이 두 가지에 끼여 소년의 마음도 서서히 부셔져갔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분노를 억제한다는 행위를 잊었다.
'어차피 조절할 수 없다면, 어차피 자신이 먼저 부서진다면 마음도 함께 해방할 수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소년은 참을 성을 버렸다. 자신의 인생마저도 버릴 각오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해방했다. 그 결과 그는 더더욱 부서지게 되었다. 철저하게 파괴했다. 자기 자신의 몸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서지는 매일. 자신의 몸이 부서졌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고 날뜀으로써 또다시 자신의 몸을 부순다. 한마디로 다람쥐 쳇바퀴였다. 얻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파괴의 흔적만이 축적되었다. 근육은 자기 파괴를 거듭했고 보다 강하게 재생하기도 전에 또다시 파괴되었다. 소년은 자신이 만들어낸 지옥 속에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렸다. 아무리 버둥거리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자신에게 벗어날 희망도 없는 채-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럴 때, 사람들이 피하는 자신들의 앞에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류가미네 마사키라고 해요! 헤이와지마 아니, 시즈오 선배라고 불러도 되나요? 아스카랑 친구거든요. 그래서 선배에 대해서 여러가지 소문을 들었어요. 친하게 지내요, 우리.
헤이와지마 시즈오와 오리하라 이자야가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도 그녀는 전혀 무서워하는 것 없이 자신에게 다가갔다. 츠지루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자야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시즈오에게 다가갔다.
-넌, 내가 무섭지 않아?
함께 하교를 하는 시즈오랑 나랑 마사키(항상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 함께 하교를 했다; 아유미가 없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 시즈오가 마사키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섭다고요? 음, 확실히. 시즈오 선배의 힘은 무섭긴 해요. 처음에….
-아, 그래.
무섭다고 하는 마사키의 말에 시즈오는 상처 받은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을 본 마사키는 겁없게도 자신의 양손을 뻗어 시즈오의 얼굴을 강하게 잡고 자신과 시선을 맞추게 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요! 시즈오 선배는 상냥하잖아요. 그래서 무섭지 않아요, 전. 시즈오 선배가 상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의 그 힘도 무섭지 않아, 이제는.
꿰뚫어 볼 것 같은 시선으로 시즈오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그 곁을 계속 남아 있는 마사키. 그렇기에 시즈오가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마사키는 자신과 다른 타입으로 시즈오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시즈오는….
-응?
오랜만에 둘만 돌아가는 하교 길에서 동생과 마찬가지로 말이 아끼는(=잘 하지 않는) 스타일인 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사키의 앞에서는 개 같아져.
-개?
-좀 언어순환를 하면… 멍멍이같아져. …충견? 번견? 음, 번견이 더 가깝네.
-무슨?
-자각 못한 거야? 저번에 마사키의 말에 싸움 멈췄잖아.
-그거야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아서….
-게다가 이자야에게 그녀를 가까이 가지 않게 지키려고 하고.
-이자야 녀석은 존재 자체가 해충이잖아. 당연히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해야 해. 게다가 그 녀석은 덜렁거려서 옆에서 지켜줘야 할 것 같거든.
-번견이구만.
하지만 마사키를 지킬 사람은 그녀의 주위에 많이 있었다. 충견을 자처하는 후배도 있었고 그녀의 나이트이자 그림자 무사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촌 녀석도 있었다. 자신도, 토야도, 츠지루도 그녀가 원하면 힘이 되어줄 생각이었다.
-그녀를 좋아해?
자신이 묻자 시즈오가 걸음을 멈췄다. 어렸을 때 카스카가 말해서 알아차린 것처럼, 그는 자신이 말을 하고 나서야 또 깨닫게 되었다. 연심이라는 감정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알아차렸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은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었다. 마사키는 소중한 친구지만, 시즈오는 내 소중한 가족이다. 친구보다 가족이 소중한 것은 당연했고, 난 시즈오가 또다시 상처받지 않길 원했다. 그는 저 괴물같은 힘에 모든 것을 체념하게 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기에.
그 후, 우역곡절 둘은 사귀게 되었다. 시즈오의 괴력같은 힘의 피해자가 된 마사키였지만, 그녀는 시즈오와 헤어지지 않았다. 마사키가 다치는 것에 아유미는 시즈오를 더욱더 싫어하게 되었지만.
"아스카?"
마사키는 멍하니 있는 아스카를 불렀다.
"어? 왜?"
"번호를 알려달라고. 방금 전에 시즈오 씨와도 교환했어."
"시즈오?"
내가 말하자 아스카는 놀란 목소리를 냈다.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한데.
"넌, 헤이와지마라고 부를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쳐다보자 그녀가 말했다. 아까 전에 안 그래도 그에게 그렇게 부르려고 했는데. 슬픈 눈동자로 바라봐서 호칭을 고쳤다.
"번호라고 했지? 시즈오는 메세지는 전혀 안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화를 하는 편이 빨라."
아스카는 말하고는 휴대전화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등록시킨다.
"츠지루는…, 이미 만났나 봐?"
"얼마 전에 만났어. 세르티 씨랑 함께."
"그래? 그럼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안 만나본 거야?"
"키리사키 씨랑 유마사키 씨는 만났지만 통성명은 아직. 아는 사람은 일단 전화부에 등록된 사람들뿐이야."
아스카에게는 이상하게 말이 쉽게 놓아졌다.
"그래. 이자야 녀석이 다가오면 우릴 불러. 바로 해충 퇴치하러 갈게."
"걱정하지 마. 이자야 녀석이 오면 내가 먼저 그 녀석을 죽일 테니까."
아스카가 하는 말에 대답하는 이는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시즈오도 아니었다. 입구에 쇼핑백을 들고 서 있는 아유미가 있었다.
"돌아가자, 마사키."
"빨리 왔네."
"괴물들이 있는 곳에 굳이 내 소중한 사람을 놔둘 수는 없잖아."
"아유미, 말이 심해!"
사람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자."
아유미는 나에게 쇼핑백에서 꺼낸 코트를 걸쳐주고는-꼼꼼히 단추를 잠가주었다.- 데리고 나왔다.
"내 옷…."
"내가 가지고 올 테니까, 넌 차에 가 있어."
차키를 나에게 넘겨주면서 말하는 아유미는 도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차가 세워진 곳으로 가서는 차에 들어갔다. 한편 아유미는 아스카에게 마사키의 젖은 옷을 받아 들고 쇼핑백에 집어넣었다.
"솔직히 말할게."
그녀는 나가기 전에 말을 했다.
"난 마사키의 앞에 너희가 나타나는 것이 싫어."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유미는 사무실을 나갔고 친절하게 문을 닫아주었다.
마사키는 옷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사무실에 한 번 더 방문을 했다. 그리고 아스카와 시즈오랑 가끔 밥을 먹을 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가는 곳은 언제나 러시아 초밥집이었지만.
"왠지 비일상적 같아."
전투 인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내 앞에서는 저렇게 온순하다니. 마사키는 작게 중얼거리며 거리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