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블랙 로즈와 회색 여왕 08

리틀 윙 2017. 5. 10. 20:32

아스카는 자신의 일하고 있는 사무실-조그만 건물이지만 세든 가게가 자주 바뀔 것 같은 건물로 밖에는 아무런 간판도 달려있지 않았다-을 방문한 서른을 넘긴 것을 보이는 삼류 잡지 기사를 응시했다. 


"저와 시즈오를 만나러 왔다고요."


아스카는 그를 보면서 조용히 질문을 했다.


"네, 실은 이 거리에서 싸움 넘버 원은 누구인가 하는 기획 취재를 하는 중이라서요."

"아, 당신네 잡지는 그런 걸 좋아했지. 전에는 폭주족 랭킹 같은 걸 해서 랭킹에서 밀려난 녀석이 건물에 화염병 같은 걸 집어 던지지 않았나?"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 좌우간 개중에는 당신들이 최강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건 나랑 상관없는 얘기인데."


아스카는 감정 없는 표정으로 그에게 냉정한 말을 내뱉었다.


"뭐, 저보다는 시즈오가 더 세지만."


일단 남자니까.


"시즈오를 만나고 싶단 게 아저씬감?"


톰이 밖으로 나왔다.


"놈이라면 위에 있으니 부르면 오겠지만. 절대 열 받게 하면 안 돼."

"예."


톰은 잡지 기자에게 자신의 이름과 직업("요금 징수원")과 시즈오와의 관계에 대해서 짧게 말해준다.


"알겠어? 절대 열 받게 하지 마. 농담 아니고 귀찮아지거든."


톰은 같은 말을 거듭 되풀이했다. 


"한 가지 충고해두겠는데. 지껄이지 마. 처음에 묻고 싶은 말만 한 다음 녀석의 말을 얼빠진 낯짝으로 듣고 있음 돼. 그리고는 마지막에 '고맙습니다'라고 덧붙이면 아무리 녀석이라도 화내진 않을 거라고."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한 남자를 뒤로 하고 아스카는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시즈오가 건물 밖으로 나간다.


"안녕하세요. 제가 헤이와지마인데요."


남자는 눈 앞에 나타난 시즈오를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첫 인상으로 사람을 파악하면 귀찮아지는데. 호리호리했고 얌전해 보이는 얼굴에 고급 브랜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시즈오.


"헤이와지마, 시즈오씨?"


곤혹스러워하는 그의 질문에 시즈오는 무표정한 얼굴로 끄덕였다.


"으음…. 저기요, 시즈오씨에게 두세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예에."


시즈오는 힘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저런 소문을 들었는데, 시즈오씨는 싸움이나 시비에 자주 얽혀드는 편입니까?"

"아뇨?"


시즈오는 '왜 이런 걸 묻냐?' 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폭력 같은 건 싫어하거든요.

"최근의 이케부쿠로를 어떻게 보십니까?"

"별루….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어, 소문의 '검은 오토바이'와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요?"

"아아…. 세르티는 좋은 녀석이죠."


시즈오는 발걸음을 휙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남자가 그를 붙잡았다.


"자, 잠깐, 어디로…?"

"이제 질문 끝났잖아요?"

"예?"

"'두세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잖아요. 벌써 세 가지 질문은 끝났고 저는 아무것도 할 말이 없으니까."

"잠깐, 그럼 한 가지만 더 부탁하겠습니다. 전에 경찰과 시비가 붙었을 때 자판기를 던졌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터놓고 말해 그건 거짓말이지요?"

"…."

"결국 당신은 이자야에게 속아서――."


아, 금구인데. 시즈오의 앞에서 이자야라고 말하는 것은.

아스카는 남자를 들어 올려서 던져 버린 시즈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 억! 커허어억, 크억…."


격통과 함께 비명을 지르는 남자. 시즈오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사라지려 한 이유는,"


분명 조용한 소리이긴 했지만 무섭도록 오싹한 목소리였다. 마치 액체 질소가 소리를 내며 들끓는 것처럼 차가운 속에 펄펄 끓는 무언가를 내포한 그런 목소리였다.


"시시한 낯짝으로 질문하는 꼬라질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뚜껑이 열릴 것 같아서 그래서 당신을 죽여버리지 않도록 냉큼 자리를 뜬 거라고."


말에 힘을 부여하는 시즈오의 목소리. 그는 지금 살의로 들끓고 있었다. 아까 전과 다르게 그의 공기는 바뀌어졌다. 


"누가 누워도 된다고 했어?"


시즈오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멱살을 잡아 그를 땅에서 잡아 일으켰다.


"나를 일부러 열 받게 하려고 했지. 어엉? 나도 바보는 아니야. 그 정도는 안다고.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화나지 않는 건 아니거든. 도발당해 화내면 진다? 그래, 져도 좋아. 져도 좋다고. 이 승부에서 져도 나한텐 아무런 손해가 없거든? 게다가 나에게 이긴 너를 죽이면 되니까.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폭력은 싫다고 말했잖아악! 어엉?! 나한테 폭력을 쓰게 만들다니! 네놈은 뭐냐? 뭐 하는 작자냐? 신이냐, 신인 척하는 거냐? 어엉?!"


그런 것은 억지잖아. 아스카는 다시 한 번 더 공중으로 난 남자를 보면서 조용히 생각했다. 

남자는 몇 미터 가량 날아서 단순에 땅바닥과 접촉, 그대로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안 말리냐?"

"귀찮은데."


시즈오는 폭력을 주체할 수 없다. 아니, 정확히는 참아내지 못한다. 인내하지 못한다. 그는 참을성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리고 보니, 슬슬 3분 다 되었죠?"


아스카는 톰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어, 그래."


아까 전 사무실에서 시즈오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는 기억을 기억해 낸 톰이 아스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오."


아스카가 그를 불렀다.


"왜."

"네가 아까 물 부운 컵라면 슬슬 3분 됐어."


그 말에 시즈오는 쓰러진 남자를 무시하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쓰러져 꼼짝 않은 남자에게 다가간 톰.


"아- 아-. 그래서 열 받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긴 저 녀석은 끓는 점도 낮지만 식는 것도 빨라서 살았어, 아저씨. 이제 절감했으면 녀석을 경찰에 고소할 생각일랑은 집어치우라구."


남자는 톰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톰은 그에 만족했는지 아무 말도 않고 건물 안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겨진 남자는 큰 대자로 몸을 굴려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는 몸의 아픔으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쓰고 싶어졌다. 헤이와지마 시즈오란 남자의 공포를 세상에 퍼뜨리고 싶어졌다. 그는 즉시 몸을 일으켜 굳은 결의를 품고 주먹을 불끈 쥐어서 한 걸음――――.


<채팅방(같은 날 심야)>


칸라: <알고계세요? 오늘의 피해자는 '도쿄 워리어'에서 도쿄재시기라는 코너를 맡은 사람이라나봐요!>

하이바라: <헤에, 잡지사 기자군요.>

세튼: <어, 정말요?>

칸라: <어머머-, 제가 언제 거짓말 한 적 있나욧?>

세튼: <무사하대요?>

크롬: <그게그게-, 의식불명의 중태라나봐요! 잘은 모르겠지만 창상 말고도 온몸에 찰과상이 있었다나, 그치만 그 상처는 이미 딱지가 앉았으니틀림없이 낮 무렵에 입은 상처일 거라더군요!>

흑기사: <소문에 능한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네요.>

세튼: <그렇군요-.>

타나카 타로: <? 아는 사람이에요?>

세튼: <아, 아니. 그 코너의 팬이었거든요-.>

타나카 타로: <헤에. 담에 한번 읽어볼까.>

타나카 타로: <그건 그렇고 살인마라니 정말 무섭네요.>

칸라: <누가 아니래요! 무서워서 바깥도 못 다니겠어요!>

흑기사: <경찰들이 바쁘겠어요.>


-사이카 님이 입실하셨습니다-


흑기사: <또?>

칸라: <왔다――――!>

하이바라: <?>

세튼: <아.>

사이카: <베었다>

사이카: <오늘, 베었다>

타나카 타로: <어라?>

칸라: <베어내고 싶은 건 이쪽이라구요! 으이그!>

타나카 타로: <대체 무슨 일에요? 로그를 보긴 했는데.>

칸라: <요즘 들어 이케부쿠로 관련 게시판이랑 채팅방을 어지럽히는 녀석이에요!>

세튼: <사이카 님, 방가.>

사이카: <사람, 베었다, 하지만, 아직, 안돼.>

크롬: <소용없어요, 세튼 님. 우리 말에는 반응도 안 한다구요.>

하이바라: <프로그램 같은 게 아닐까요>

사이카: <더, 사랑해야>

세튼: <그럴지도 모르죠.>

사이카: <강한 사람, 좋아. 그러니. 강한 사람, 사랑하고 싶어>

타나카 타로: <어째 으스스하네요.>

흑기사: <전보다는 약간 문장이 되었네요.>

타나카 타로: <차단 같은 건 안 되나요?>

칸라: <응-. 이미 했는데. 소용없네요.>

사이카: <더, 베어야.>

세튼: <아, 그래요?>

칸라: <원격 호스트에서 차단시켜도 금세 다른 호스트를 통해 들어오거든요.>

크롬: <프록시일까요?>

사이카: <접근해야.>

칸라: <응-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칸라: <다만 공통점은 전부 이케부쿠로 주변 호스트에서 접속한다는 거죠.>

칸라: <그러니까 범인은 이 근처에 사는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칸라: <어쩌면 피시방을 이용한 건지도.>

사이카: <강한 사람에게.>

칸라: <다른 곳도 대응에 애를 먹고 있나보네요.>

타나카 타로: <근데 사람을 벴다느니 하는 걸 보면.>

하이바라: <아, 타로 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흑기사: <살인마.>

칸라: <아하하하. 그거 나이스.>

세튼: <하지만 그 생각도 이해는 가네요. 이 상황은 아무리 봐도 이상한걸요.>

사이카: <벤다 계속.>

타나카 타로: <계속 벤대요.>

사이카: <강해, 진다.>

세튼: <정말로 살인마와 관계가 있는 거 같은데.>

크롬: <그리고 보니 피해자가 나왔다고 한 날엔 반드시 출볼하네요.>

흑기사: <반드시라 봤자 이제 두 번이잖아요.>

칸라: <그럼 역시 요도인 거예요! 요도가 키보드를 타닥타탁 두드리는 거죠!>

세튼: <괴물은 인터넷 따위는 안 하잖아요-.>

칸라: <어머머, 세튼 님도 참! 저주의 메일도 모르세용?>

세튼: <아니, 아느냐고 물어보셔도.>

사이카: <더더더더더더더>

하이바라: <저, 진정될 때까지 일단 이 방에서 나가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흑기사: <아, 좋은 생각이시네요.>

칸라: <괜찮아요. 이제 슬슬 퇴실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사이카: <마지막으로, 접근해서, 벤다, 나, 사랑해.>

사이카: <목적, 발견했다, 사랑해, 발견했다.>

세튼: <그렇담 좋겠지만.>

사이카: <시즈오.>

사이카: <헤이와지마.>

하이바라: <뭐?!>

사이카: <헤이와지마, 시즈오>

사이카: <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

사이카: <시즈오시즈오시즈오시즈오시즈오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헤이와지마>

사이카: <사랑하는 시즈오벤다헤이와지마내가헤이와지마에게벤다시즈오사랑해.>

사이카: <사랑을위해사랑을위해사랑을위해사랑을위해사랑을위해사랑을위해사랑을위해>

타나카 타로: <어? 시즈오씨랑 아는 분인가요?!>

사이카: <시즈오, 시즈오, 시즈오>

하이바라: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하이바라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사이카: <엄마.>

사이카: <엄마의 바람, 그거, 내 바람, 같아.>

사이카: <엄마가 사람을 사랑하니까, 나도 사랑해.>

사이카: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그때문에그때문에그때문에그때문에태어났다태어났다태어났다만들어졌다난난나나나.>

타나카 타로: <그럼 일단 끊을게요-.>

세튼: <아, 그럼 저도-.>


-사이카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타나카 타로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세튼: <어라, 마침….>

칸라: <어쨌거나 오늘은 이만 해산하죵.>

크롬: <그래요.>

세튼: <즐쿰-.>

흑기사: <안녕히.>

크롬: <잘 자요.>

칸라: <안녕히 주무세요~.>


-세튼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흑기사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크롬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칸라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아유미는 방으로 나온 마사키를 바라보았다.


"어디 가게?"

"시즈오씨를 잠시 만나고 올게."

"요도, 사이카는 진짜로 존재해."


아유미의 말에 멈칫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뭐?"

"실제로 신주쿠에 존재했다고 하더라고."

"5년 전의 츠지기리 사건도 사실은 요도가 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응."

"농담도 심해라."

"진짜야."


5년 전, 츠지기리 사건-마지막 사건에서 집 안에 들이닥친 츠지기리가 두 명가량 베어서 죽은 사람이 나왔다. 그리고 그 죽은 사람은 소노하라의 부모님으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사이카라는 요도는 마음을 가졌고 몸을 빼앗는다는 전설이 있어. 게다가 피해자들은 모두 흐릿한 의식 속에서 붉은 눈을 보았다는 거지."

"즉 그 요도에게 마음이 빼앗기면 붉은 눈이 되어서 조종되어서 사람을 벤다는 건가? 실제로 이미 벤 사람들은 전부 그 요도에게 조종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마도 우리 채팅방에 들어온 녀석을 이자야가 차단해도 다른 호스트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설명이 되겠지. 아직은 이 정도밖에 조사를 못 했어."


무언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하면 전혀 믿을 수가 없는데.


"그러니까 일단은 사태를 보자. 응?"


아유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아쉬운 사람은 나니까. 


"근데 왜 시즈오를 걱정하는 거야?"

"어?"

"그가 걱정되는 거 아니었어?"

"아, 응. 그랬지. 그냥 걱정이 들어서, 무사한지 보고 싶어서…."


마사키의 말에 아유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를 생각하는 마음은, 몸은, 여전한 건가. 정말이지- 싫은 남자다. 


"어서-"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아유미?"

"아무것도 아니야."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을 하면 마사키는 싫어하니까, 그녀 앞에서는 내뱉을 수가 없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