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해방된 별 04

리틀 윙 2018. 4. 17. 12:14

호타루의 병수발을 하고 있는 나기가 바쁘게 복도를 달려가는 게 보였다.

 

나기.”

 

내가 부르자, 나기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가씨.”

엄마는 어때?”

어떤 약재들도 소용이 없어요.”

 

나기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7대째는 낫겠죠?”

…….”

아니, 낫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낫게 만들겠어요! 그 분은 사노메 대장의 자리를 약 400년 동안 해온 강한 여성이니까요! 병마에 지실 분이 아니죠!”

 

나기는 자문자답하고 의욕을 불태웠다.

 

계속 수고해줘, 나기.”

!”

 

나기는 나에게 인사하고 엄마의 처소로 바삐 걸어갔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병에는 이길 수 없는 거야.”

 

나기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엄마가 지금 안고 있는 것은 마음의 병. 남편을 잃고 아슬아슬하게 버텨왔던 게 친우의 죽음으로 무너져 내렸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면…… 몸은 빠르게 붕괴된다.

 

호시님!!”

까악!”

 

나기 쪽을 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은 스킨십에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른 호시님, 귀여워!”

!”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목을 돌리자, 약을 한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머리가 산발이 된 요괴가 보였다. 그의 이름은 야토리. 사람의 마음을 읽는 요괴 사토리와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장난치는 요괴 아미노자쿠를 부모로 두고 있는 요괴다.

 

야토리! 갑자기 끌어안지 마! 놀란다고!”

호시님이 좋아서 그런 거예요.”

머리, 정리 좀 해.”


언제나 산발이 되어 있는 그의 머리카락.


호시님이 해주세요.”

“싫어.”

호시님~!”

 

어린애처럼 나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야토리. 솔직히 말하면 이런 행동을 하는 그가 징그러웠다.

 

놓으라니까, !”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그는 끌어안고 있는 손에서 더 강한 힘을 줘서 빼지 못하게 만들었다. 풀어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절대로 듣지 않는다.

 

히이라기!!”

~

 

그의 이름을 부르자 야토리는 포옹을 풀었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호시님. 호시님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제 마음은 찢어지니까요.”

이런 짓을 하지 않으면 내가 널 노려보는 일은 없어.”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웃는 얼굴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야토리를 바라보았다.

 

으아아악!!”

 

곧 들려온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엄마가 있는 처소가 파괴되며 나타난 새까만 용.

 

나기? 나기!!”

 

야토리를 내버려두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설마, 기억이 돌아 온 건가?!'


용이 분노에 이성을 맡기며, 사룡 즉 강철이 된다. 새하얀 그의 몸은 검게 변하고, 목숨을 잃을 때까지 파괴의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강철이 된 용에겐 이성이 없어, 적도 아군도 알아보지 못한다.

 

나기!!”

안 돼요, 호시님!”

 

주위의 건축물에 자신의 몸을 부수며 괴로워하는 나기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내 앞을 막은 손이 있었다. 하쿠의 손이었다.

 

……하쿠.”

 

하쿠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그는 괴로운 얼굴로 내 손가락을 하나씩 자신의 옷자락에서 떼어냈다.

 

강철이 된 용은 되돌아가지 못합니다. 나기의 의식은 이미 자기 자신을 놔버렸어요. 물러나 계세요, 호시님.”

 

하쿠는 나에게 말하고 나기를 막기 위해, 그를 죽이기 위해 흰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검은 강철과 흰 용은 서로 죽이려고 몸을 얽히며 이빨을 드러냈다격렬하게 싸우는 흰 용과 검은 강철.

 

호시님, 이곳은 위험합니다.”

 

야토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 싸움터에서 멀리, 몸을 피하자고 속삭였다.

 

여긴 하쿠에게 맡기자고요. 그는 백룡, 시라누이 일족의 왕이잖아요. ‘누시(주인)’이잖아요.”

 

야토리의 말에 그에게 이끌려 이곳을 벗어나려던 발이 멈췄다.

 

주인……. 그러면 내가 해야 해.”

호시님?”

 

야토리의 손에서 벗어나 붉은 검집의 와키자시1를 쥐어들었다. 그리고 두 용이 싸우고 있는 싸움터로 발을 집어넣었다.

 

호시님!!”

 

호시는 강철의 몸에 올라타 그의 몸을 기어올랐다. 강철은 자신의 몸에 올라가는 개미를 알지 못하고, 호시의 존재에 경악해 틈을 보인 백룡의 몸에 자신의 이빨을 박고 물어 뜯었다.

백룡은 강철에게 밀리고 있었다. 호시는 와키자시를 들어 올려 강철의 이마, 미간과 미간 사이를 내려찍었다.

 

크아아아아악!”

 

강철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자, 백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백룡은 강철의 목을 물었다.

피투성이가 된 나와 하쿠 그리고 싸늘한 시신이 된 강철 모습인 나기.

 

무모하게 나서면 어떡하십니까!”

 

숨을 고른 후에 하쿠는 나에게 외쳤다.

 

하쿠는…… 나기를, 남동생의 목숨을 등에 짊어질 생각이잖아.”

그게 누시의 이름을 물려받는 용왕의 사명입니다. 사노메 일가에는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는 게 저희 시리아시의 백룡입니다.”

그래, 나도 그래서 움직였어. 하쿠의 주인으로써 나도 함께 짊어질 생각으로 움직인 거야.”

 

내 말에 하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호시!!”

 

급한 발소리와 함께 큰 외침이 들려왔다. 다른 요괴들과 함께 나타난 호시히코와 사쿠라.

 

호시히코 오빠, 또 늦었네. 이미 끝났어.”

호시…….”

“7대째의 장례를 준비해주고…… 뒤처리를 부탁할게.”

 

엄마 시신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채 호시히코에게 말했다. 다른 요괴들은 나기의 피를 뒤집어 쓴 내 모습에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나며 길을 비켜주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부딪히지 않고 그 곳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호시가 가고 나자 호시히코는 뒤처리와 장례식 준비를 요괴들에게 명령했다.

 

칼을 든 아가씨는 무서워…….”

, 1년 전의 세대 교체를 보는 것 같았어.”

근데 아가씨는 망설이지 않는 걸까?”

무슨 소리야?”

 

야토리는 뒤처리를 하며 떠드는 요괴들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난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

넌 들어오기 전의 일이었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해.”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고.”

나기가 호시 아가씨의 첫사랑이라는 소리는 사노메 요괴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을 걸! 나기만 몰랐을 거야.”

맞아. 나기가 둔하잖아.”

자신을 위해 호시 아가씨가 자신의 힘을 사용했는데 말이지. 나기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더라고.”

어이!”

 

떠들고 있는 요괴들을 부른 하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치우기나 해.”

 

하쿠의 사나운 어조와 흉흉한 눈빛에 요괴들은 허둥거리며 그곳에서 멀어졌다.

야토리는 하쿠의 눈을 피해 호시를 찾아 저택을 돌아다녔다.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

 

뒤쪽 마당에서 야토리는 호시를 발견했지만, 평소처럼 그녀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도 내지 않은 채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야토리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아름다워…….”

 

슬퍼서 조용히 혼자 울고 있는 호시를 보며 야토리는 저도 모르게 말이 흘러 나왔다. 그는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 방울이 별사탕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의 눈물은 별똥별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7대 죽음 이후, 사노메 일가는 급속히 빠른 속도로 약화되었다. 대장 대리인 호시는 어떻게든 일가를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사노메 일가는 몰락했다.

불타오르는 건물과 도망치는 요괴…… 그리고 그 도망치는 요괴를 베어 죽이는 검은 허깨비들. 붉은 핏방울들이 허공에 치솟으며 흩날렸다. 바닥에는 죽은 요괴들의 시체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요괴들이 잔뜩 있었다. 그 속에서는 사노메 분가들이 있었다.

 

아가씨…… 어서, 피하……!!”

 

지키지 못한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 불에 타오르면서 재가 되어버린다…….

 

……?”

 

흔들리는 눈동자로 눈앞에 있는 상대를 보며 질문했다.

 

호시님.”

어째서……?”

 

지금 일어난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대체, ……?”

 

눈앞에 있는 야토리에게 다시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그의 주위에는 유독 금발을 지닌 요괴의 시체가 많이 쌓여 있었다.

 

분가라고 해도 사노메는 사노메로군요.”

 

야토리는 자신의 무기에 묻은 사노메의 붉은 피를 혀로 핥으며 말했다.

 

“‘사노메의 피를 마시면 요력이 증가하고, 그 살을 먹으면 수명이 연장된다. 그리고 사노메를 배우자를 맞이하면 일족의 번영을 가져온다.’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군요. 분가가 이 정도면 종가의 힘은, 피는, 살은 어떨까……? 싶습니다.”

고작, 고작…… 그런 이유로 내 가족에게, 내 친척들에게, 사노메 일가에 손을 댄 거냐?”

고작이 아닙니다. 저에겐 필요했습니다.”

나에겐 하찮은 이유로밖에 보이지 않아.”

 

어떤 이유에서든 그는 내가 지킬 것에, 내 소중한 것에 손을 대었고…… 파괴했다는 거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난 지금부터 너를 적으로 간주하겠어.”

그거 슬프네요. 호시님에게 미움 받는 것은 싫은데요.”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마!”

바보 취급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과장된 몸짓에 놀란 척하는 야토리.

 

그게 바보 취급하는 거다!”

호시님은 저를 오해하고 계시네요.”

오해? ?”

저에게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고요.”

어떤 이유가 있어도 나와 무슨 상관있다고!”

 

분노하며 힘을 사용했다. 땅에서 식물을 피워냈다. 그러자 순식간에 굵은 식물 줄기가 자라나 야토리를 공격했다

야토리는 싱긋 웃더니 자신의 창으로 줄기를 베어버린다.

 

약하시네요.”

 

턱 밑 바로 차가운 금속의 기운이 느껴졌다. 주도권은 저쪽이 쥐고 있다는 건가?

 

제가 이러는 이유를 아시겠나요?”

알고 싶지도 않아.”

전세가 불리한 이때조차 여유롭다니! 굴복하지 않는 호시님을 경외하고 있어요!”

 

야토리는 자신의 무기를 땅에 떨어뜨렸다.

 

“?”

전 호시님을 죽일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호시님!!”

 

강한 바람이 나와 야토리 사이에 끼어들었고, 곧 난 용으로 변한 하쿠의 손 안에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하쿠, 호시히코 오빠는?”

분가 생존자 4명인 하이자키, 하고로모, 히나타, 히로미와 함께 몸을 피신했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호시님, 혀 깨물지 않게 주의하세요.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

쫓아오고 있습니다.”

 

하쿠의 말에 뒤를 돌아보자, 야토리의 허깨비들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검은 존재들은 어두운 하늘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었다.

 

하쿠, 이곳 사노메 일가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자!”

!”

 

하쿠는 내 말에 비행하는 속도를 올렸다.

  1. 날 길이는 1척(30.3cm)에서 2척(60.6cm)사이, 보통 40~50cm 정도로 타치나 우치가타나에 비해서 다소 짧은 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