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별 06
누라리횬은 자신의 아들 성묘를 위해, 아들 묘지가 있는 반요의 마을로 찾았다.
인간과 요물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신비로운 반요의 낙원, 반요의 마을에서 호시와 누라리횬은 재회하게 되었다.
“호시……?”
“누라리횬님……. 성묘 오신 겁니까?”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습니다. 아니, 떠돌 수밖에 없었군요.”
누라리횬의 질문에 호시는 피식 웃어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라리횬은 그녀가 고생했다는 것을 연륜의 눈치로 알 수가 있었다.
“심란해 보이는구나.”
“목적도, 정치도 없이 떠돌아다녀서 그런 것일지 모르겠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호시야.”
누라리횬이 부르는 목소리에 호시는 후지 수해를 보고 있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너만 괜찮다면 앞으로 누라구미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느냐.”
“누라구미…… 말입니까?”
“그래. 너는 엄연히 누라구미의 예비 안주인인 몸이지 않느냐. 어떠냐, 나쁘지 않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는구먼.”
“폐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폐라니?”
“그, 그게……!!”
누라리횬에게 사정을 설명하려고 할 때, 검은 허깨비들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혀를 크게 찼다.
나보다 한 발 앞서 누라리횬이 움직여 허깨비들을 베어버린다. 그러자 허깨비들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쫓기고 있는 거로구나.”
“네.”
“수호용은 어찌 되었느냐.”
“현재 크게 다쳐 이곳에서 치료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지 못한 사노메는 연약하다. 그래서 연약한 사노메(종가)를 지키기 위해 수호용이 있는 거다. 그들이 사노메를 지킬 방패고 싸울 검이다.
우리 두 사람의 사이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왼 손목에서 붉은 실타래로 만들어진 족쇄 같은 팔찌가 바람에 흔들거렸다.
“호시야.”
누라리횬은 한참 후에 나를 불렀다.
“함께 가자구나. 우리 누라구미가 너희를 지켜주도록 하마.”
“……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괜찮다. 우리 누라구미는 무적이니까.”
누라리횬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후지 수해(樹海)에서 나온 백룡. 백룡은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인간의 형태를 취했다.
“하쿠!”
“누라리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겁니까?”
“응, 그렇게 되었어.”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쿠는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우리는 누라리횬의 뒤를 쫓아서 누라구미로 향했다. 누라구미……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 저택을 나왔는데. 결국 누라구미가 내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버렸다. 이래서 사람의 앞은 한 치도 모른다고 누군가 말한 건가.
**
사노메 호시가 누라구미에서 지내게 되자, 그 소식을 들자마자 여행을 가 있던 리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큰 도련님!!”
대문을 열고 들어온 리오를 반겨주는 누라구미 요괴들.
“돌아오신 건가요, 큰 도련님?!”
“리오 도련님!”
“큰 도련님이 돌아오셨다!!”
누라구미 요괴들은 리오의 귀환을 크게 반겨주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리오는 마루를 걸어오는 발소리에 곧 나타난 인간을 눈에 담았다. 빨랫감이 든 통을 들고 서 있는 호시.
“리오, 오랜만이야.”
“……그래.”
호시가 인사를 건네자 리오는 그녀의 녹안을 피하며 인사를 받아줬다.
“어딜 갔던 거야?”
“여행을……. 마음 정리랑 강해지기 위한 수행 좀 하고 왔지. 그건 그렇고-.”
리오는 호시를 힐끗 보고 입을 열었다.
“안 어울리네.”
“뭐가?”
“빨랫감을 든 네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어. 사노메 일가의 아가씨가 말이지.”
“그래? 하지만 차차 익숙해질 거야.”
리오의 비꼬는 목소리에 호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방으로 가자.”
“하지만 난…….”
리오는 호시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하쿠가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자, 호시의 손에 들린 통을 그에게 넘겨줬다.
“그거 부탁해.”
리오는 하쿠에게 말하고 호시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갔다.
“호시님! 야, 리오! 누라 리오!!”
하쿠가 부르는 소리에도 리오는 듣지 않고 나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앉아.”
리오가 말하자 편안히 자리에 앉았다.
“누라구미에 왜 들어온 거야?”
앉자마자 리오는 본론을 꺼내들었다.
“너는 누라구미 3대째 예비 안주인의 자리에 관심 있는 것도 아니잖아. 대체 무슨 생각이야?”
“……피난처가 필요해서.”
“피난처?”
“지금 쫓기는 몸인데 이곳밖에 남지 않았어. 이기적으로 들리지 몰라도, 나는 죽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죽어서 안 되고, 죽을 수도 없다.
리오가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나에게 언제든 말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도와줄게.”
리오는 상냥하게 말했다.
“……저번부터 이상해, 너.”
“?”
“상냥해졌잖아. 나를 싫어하던 너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걸.”
“이제는 싫지 않아. 오히려 나는 네가-.”
“호시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존재에 리오는 입을 다물었다.
“네 방 찾는 거 시간 걸렸다, 누라 리오! 감히 내 앞에서 호시님을 납치 했겠다?!”
“납치라니…….”
“문답무용!”
“그만둬, 하쿠!”
실력행사하려는 하쿠를 내가 말렸다.
“하지만…….”
“그만둬.”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하쿠는 뿌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리오, 쉬도록 해. 여행의 피로를 풀어야 하잖아?”
“어.”
리오가 쉴 수 있도록 자리에서 일어나고 방문을 열었다.
“호시.”
“응?”
“누라구미에 잘 왔어. 앞으로 잘 부탁해.”
“응, 잘 부탁해, 리오.”
우리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리오가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빠르게 누라구미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누라구미 내부에서 시즈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야마부키 시즈오는 2대째 사후,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은 조금 더 지나고였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면서, 누라구미에서 지내게 된 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랑 리오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불만스럽게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형이 빼앗긴 질투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두 사람이 붙어 있으면 꼭 리쿠오가 다가왔다.
“나도 같이 놀아!”
그는 외쳤다.
“그래, 뭐하고 놀까?”
리오는 웃으며 1살 어린 남동생의 어리광을 받아줬다.
“호시도 함께 하자.”
형제의 놀이에 나까지 굳이 끼어 넣을 필요가 있는 건가?
“난 바빠. 집안일 해야 하거든.”
“다른 요괴들도 있으니까 조금 논다고 해서 일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야!”
리오는 언제나 내가 거절해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거절한 이유를 막아섰다.
“알았어.”
오늘도 내 패배로 누라 형제와 함께 놀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내가 술래 할 테니까 숨어!”
리오가 말했다.
“이쪽이야, 호시.”
멍하니 있는 나를 끌고 가는 리쿠오. 그의 손에 이끌려서 숨었다.
리쿠오는 헤실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 거야?”
“호시랑 함께 노는 게 기뻐서. 넌 언제나 집안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거야 당연하잖아. 난 여기서 식객인걸.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어. 일을 하는 게 당연해.”
“그치만!”
리쿠오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우린 운명이라고 생각해. 나는 널 처음 본 순간부터…….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넌 다시 그 선택을 할 거지? 바꿀 생각이 없는 거지? 그래서 내가 네 옆에 있어야 하는 거야. 왜나면 나는 널 좋아하니까.
이런 리쿠오가 나중에 커서 멋진 남성이 된다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네.
“호시는 형이랑 함께 있는 게 더 즐거워 보이는 걸…….”
리쿠오는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옆에 있는 나에겐 그 목소리는 충분히 들릴 정도였다.
“질투하는 거야, 리쿠오?”
“질투?”
“내가 너의 형하고 너무 사이가 좋아서 나를 시샘을 느낀 거잖아. 그렇게 안 봤는데, 너 브라콤이구나.”
“아, 아니야!”
“리쿠오, 그런 것은 대인배 답지 못해. 3대째를 목표로 하고 있으면 넓은 아량을 먹어야지!”
“그러니까 아니라니까!”
리쿠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외쳤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리, 리쿠오, 그렇게 일어나면!”
“리쿠오, 호시, 찾았다!”
리오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발견했다.
“리쿠오, 그렇게 벌떡 일어나면 안 되잖아. 우린 지금 숨바꼭질 중이었다고.”
“미안.”
나는 리쿠오를 흘겨보았다.
“무슨 얘기를 했는데 리쿠오가 저렇게 풀이 죽은 거야?”
“아, 리오! 들어 봐, 리쿠오가 말이지!”
“호시!!”
“리쿠오가 왜?”
“나랑 너랑 너무 함께 붙어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질투…….”
“안 돼!!”
리쿠오는 호시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리오는 짧은 대화 속에서 전부 이해했다는 얼굴이 돼서 씨익 웃었다.
“질투……. 그래서 어느 쪽을 더 질투한 거야, 리쿠오?”
“형!”
“나랑 호시 둘 중 누군데?”
“…….”
“웃지 않을 테니까 어서 말해 봐.”
“진짜?”
“진짜.”
“진짜로? 진짜 웃지 않을 거야?”
“그렇다니까.”
리쿠오는 리오에게 몇 차례의 확인 질문을 했다. 리오는 귀찮다는 기색을 애써 감춘 채 리쿠오를 안도시키기 위해 그의 계속되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
리쿠오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린 나였다.
“왜? 호시는 네 약혼녀잖아. 그러니까 굳이 나를 질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리쿠오.”
“호시는 내 약혼녀잖아?”
“그래, 난 네 약혼녀지만 결혼한 것은 아니야. 멋대로 너의 것이라는 주장은 하지 말아줘.”
리쿠오에게 내가 말했다.
“그럼 언제 나랑 결혼해줄 건데?”
“왜 이야기 진행이 그 쪽으로 가는 건데?”
리오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리쿠오가 3대째에 어울리는 남자가 되면, 내가 기꺼이 시로무쿠를 입어 너의 아내가 되어줄게.”
“진짜? 약속하는 거야!”
리쿠오는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약속해.”
나는 그의 손가락에 내 약지를 걸었다.
“어- 비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두 사람의 약속을 보지 못한 척하던 리오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약속한 손가락을 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드는 게 보이고…….
“이 비 특이해, 형, 호시. 검은색이야.”
“검은색?”
리쿠오의 말에 재빨리 손을 펼쳐서 빗방울을 받았다. 손바닥에 맺히는 검은색 물방울……. 이건 설마?
“불길한 색이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검은 비에 리오는 리쿠오와 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