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별 07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무슨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 시…… 님…….”
“?! 까아아아악!!”
호시의 등 뒤에 나타난, 강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에 리오는 본능적으로 호시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검은 그림자가 호시를 한 입에 삼켜버렸다.
"호시!!"
누라 형제는 비명을 질렀다.
“이제, 호시님과 난…… 한 몸이야…… 하, 하하하하하!”
“호시!!!!!”
“야, 호시를 뱉어내!”
형제는 검은 형체를 향해 외쳤다.
“방해, 하지 마! 나랑, 호시님의 사이를, 방해 하지 말란 말이야!!”
야토리가 버럭 외치자, 강한 돌풍이 불며 형제는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무슨 일이야?! 호시님의 비명이 들려오는……!?”
호시의 비명을 들은 하쿠가 달려오는 것을 본 야토리는 도망칠 준비를 했다.
“어딜 도망 가!!!”
리오는 벌떡 일어나 서서히 사라지려고 하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자신의 몸을 날렸다.
“형!!”
“호시님은?!”
“으읏, 저 안에…….”
리쿠오가 상체를 일으키며 도망치는 야토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야토리!!!”
하쿠는 백룡이 되어 하늘로 날아 검은 구름을 향해 비상했다. 백룡은 검은 구름을 쫓아갔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폭풍이 올 것처럼 세상은 어두워지며 구름 사이로 번개가 치는 게 리쿠오의 눈에 보였다.
“형…… 호시…….”
그는 마당에 혼자 남아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이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편 호시는 검은 물 위에 떠있는 부유감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이대로 있으면 분명 물속에 끌려가 잠겨버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시!!!”
“……리오?”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리오의 목소리. 결국 그 녀석 내 뒤를 쫓아온 것인가.
“그 바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이동했다.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쉽게 움직일 수 있어서 조금 당혹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셔지고 있어…….”
밖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내부로 들어오니까 보였다. 야토리의 몸이 서서히 부서지고 있었다. 이 반년 동안 허깨비들이 조용했던 것은 술사의 몸에 온 이상 현상 때문이었구나.
【너 혼자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친숙한 목소리가…….
【혼자구나.】
【…….】
【왜 혼자 있는 거야?】
【내가 괴물이래.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혼자는 싫어.】
이것은 과거의 기억이다.
【그럼 나랑 함께 가자! 아니, 나에게 와! 난 비와호에 자리 잡은 사노메 일가의 8대 후계자 중 한 명인 사노메 호시. 우리가 네 동료가 되어줄게!】
【진짜?】
【물론이지! 웃으니까 정말 예쁘잖아.】
【예, 예쁘다고?】
【그래. 예뻐.】
【예쁘다고 처음 들어봐…….】
야토리와 만난 과거의 기억을 제 3자의 눈으로 보니까 왠지 모르게 엿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야토리의 소중한 기억…….
지금 그의 몸은 한계를 넘어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야토리는 나에 대한 집착인지 애정인지 모를 감정에 집착하고 있어서 자신의 몸이 한계를 넘은 것도 알지 못했다.
“바보.”
그가 계속 웃고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칭찬했어도 난 자연스러운 웃는 얼굴이 좋았던 거야. 가면적인 웃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가슴에 먹먹한 감정이 울컥 차올랐다.
리오는 웅크리고 있는 호시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달려왔다.
“호시……?”
“…….”
“왜 그래, 호시? 어디 다친 거야?”
아무런 말도 없이 침울해 보이는 호시의 모습에 리오는 당혹스러워하며 그녀를 걱정했다.
“아픈 거야? 응?”
계속되는 리오의 질문에 한참 후에 호시는 말이 아니라 고개를 양쪽으로 젓는 행위로 대답했다.
“근데 우리 어떻게 나가야 하는 걸까? 탈출할 수 있을까?”
리오가 어떤 말을 해도 호시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라니…….”
“……이제 물러날 수 없나 봐.”
“호시?”
“사실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몸을 일으킨 호시는 큰 숨을 들이마시며 내쉬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화혼접』
길을 거슬러 돌아왔으나
몸은 부서져 먼지가 되고
혼은 산산이 흩어져 보이지 않네.
흩어진 혼은 어디로 갔는가?
혼은 부셔져도 마음은 남으니
마음은 투명한 날개가 되어
그리운 사람들에게 날아간다.
그녀가 부르는 애절한 분위기의 노래가 그 검은 공간 안에 가득 울렸다.
너의 그림자가 별처럼 아침에 녹아 사라져가
갈 곳을 잃은 채로 마음은 흘러넘치네
강함도 약함도 이 마음은 서로 마주봤어
너와 함께라면 어떤 내일이 온다 해도 두렵지 않는데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간 시간을 믿어주길 바래
진실도 거짓도 없이 밤이 밝고 아침이 와
밤하늘이 아침에 녹아버려도 너의 반짝임은 알 수 있어
작별을 모른 채 꿈을 꾼 것은 혼자뿐
그 때 너의 눈엔 무엇이 비춰지고 있었어?
두 사람을 이었던 시간은 누구도 지울 수 없어
고독이나 아픔이라던가 어떤 너라도 느끼고 싶어
다시 한 번 더 서로 마주 볼 수 있다면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져
그녀의 노래에 반응을 보은 검은 내부……. 파문이 일어나면서 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내는 물체들이 하나둘씩 증식해갔다. 그 빛들은 그녀의 몸 주위로 모여들었다.
“나비……?”
리오는 호시의 주위를 떠돌고 다니는 빛을 자세히 응시했고……, 그것들이 빛을 내는 나비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동 트기 전에 옅은 졸음에 빠져들어 바람이 볼을 흘러 지나가고
너의 목소리 너의 향기가 전부 감싸 채워져 가네
추억을 날갯짓하여 너의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별 하늘이 아침에 녹아버려도 너의 반짝임은 알아볼 수 있어
사랑한다는 단지 그것만으로 두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어
백룡은 도망치는 검은 구름이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
검은 구름 내부에서 황금색 빛이 내뿜어져 나왔다. 백룡은 뒤로 물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크아악?!”
그 빛이 점점 더 강해질수록 야토리는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야토리의 몸을 뚫고 나타난 황금빛을 내뿜는 나비들.
“우욱! 괴로워, 그만, 싫어!!”
비명을 지르고 야토리는 팡하고 터졌다. 갇혀있던 빛은 해방되어, 나비들은 그 어두운 세계를 비추어 별처럼 반짝였다.
“호시님!!”
하쿠는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야토리의 존재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검은 바닥이 사라지자 중력에 의해 추락하는 사람 쪽으로 몸을 날렸다.
낙하하는 리오를 받아준 백룡. 호시는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나비들 때문에 은하수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게 호시의 힘……?”
“그래. 나비의 힘이다.”
누라구미의 마당으로 내려온 하쿠와 리오.
하쿠와 리오가 누라구미 본가 저택의 마당에 내려오자, 달 같은 둥근 빛 덩어리가 뒤를 이어서 마당에 내려왔다. 그 빛은 땅에 호시를 내려놓자, 빠르게 산산 조각나 흩어졌다. 모두들 제 할 일을 멈춘 채 호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노메는 식물 요괴라서 식물의 힘을 지니고 있지만 가끔 나비의 힘을 지닌 존재가 태어나기도 해.
-나비의 힘? 호즈미처럼 말이냐?
-호즈미는 나비가 아니야. 나비에는 가깝지만 나비는 아니야. 언젠가 너도 볼 수 있을 거야, 누라리횬. 그래서 너에게 부탁이 있다.
-호오즈키?
-나비의 힘을 지닌 사노메를 따뜻하게 대해줘. 그들은 다른 사노메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나거든. 지금은 아니라 먼 미래, 넌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보는 순간, 알아차릴 거야. ‘아, 나비의 힘을 지니고 있구나.’라고……. 부탁한다.
“나비의…… 힘…….”
누라리횬은 호시를 보며 과거의 친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녹안이 빛을 잃고 호시가 휘청거리며 쓰러지자, 하쿠는 빠르게 그녀에게 달려갔다.
“호시님!!”
하쿠는 기절한 호시를 안아 올리고 빠르게 방으로 향했다.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난 후의 호시는 열이 펄펄 나서, 누라구미의 산하 중 약사 일파인 야쿠시 일파의 의사를 불러 들어야 했다.
“괜찮으세요, 아가씨?”
푸른빛 도는 백발을 지닌 여성이 호시의 이마에 놓인 물수건을 새로운 물수건으로 갈면서 그녀에게 질문했다.
“레이코……?”
붉은 얼굴의 호시는 거친 숨과 함께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 아가씨.”
전 사노메 일가 소속(현 누라구미 산하 중 하나인 야쿠시 일파 소속), 새요괴 레이코가 그녀의 부름에 답했다.
“약해지셨네요, 아가씨.”
“란구이…… 왜 네가 여기 있어?”
“아가씨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오오자루회에서 달려왔죠. 오오자루회의 도련님과 함께 왔어요.”
약이 놓인 쟁반을 바닥에 놓는 보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흑발의 매혹적인 여성. 전 사노메 일가 소속(현 오오자루회 소속) 조로구모, 란구이가 웃으며 말했다.
“호시 아가씨가 의식을 치렀다고 본가 내부에서 소문이 자자해요. 그걸 보지 못해서 아쉽네요. 굉장히 예쁜 광경이었을 텐데.”
“그렇게, 좋은…… 콜록, 아니야.”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힘을 사용하는 게 몸에 얼마나 무리가 되는지 이번에 똑똑히 깨달았다. 감기 걸린 것처럼 몸이 무겁고 축 쳐진 상태였다. 방출되지 못한 열이 몸을 뜨겁게 달구면서 내면을 괴롭혔고, 목은 목소리를 낼 때마다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아가씨, 약 먹고 더 쉬도록 하세요.”
레이코는 내가 일어나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란구이는 자신이 가지고 온 약을 나에게 먹여주었다.
약을 먹고 난 다시 누워버렸다. 다시 잠이 쏟아졌기 때문에 눈을 감았다.
“……물.”
갈증이 나서 눈을 떴다. 한 번 일어나고 대체 몇 시간이 지나갔을까? 바깥은 어두컴컴했다.
방에 놓여 있는 물 주전자로 목 마른 것을 해결했다. 갈증을 해결하고 나자 몸이 찝찝한 것을 깨달았다.
‘땀을 많이 흘러서 그런 건가.’
실컷 자서 가뿐히 움직이는 몸을 움직여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복도는 매우 캄캄했다. 늦은 시각에 일어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불이 켜진 욕실의 문을 열었다.
불이 켜진 욕실 내부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
“깍!”
“으악!”
나와 리오는 서로를 보자 짧게 비명을 질렀다.
“미, 미안해!”
리오에게 빠르게 사과하고 눈을 피하며 욕실의 문을 도로 닫으려고 할 때, 보았다. 그의 어린 가슴에 있어서 안 될 칼자국…….
“리오.”
“호, 호시, 아직 안 나간 거야?”
“가슴…… 그거 웬 상처야?”
“이건…… 아무것도 아냐.”
리오는 얼버무리며 등을 돌린 채 재빨리 반쯤 벗고 있는 옷을 입었다.
“호시는 씻으려고?”
“아, 응. 땀을 흘려서 몸이 찝찝해서……. 넌?”
“난 막 끝낸 참이었어. 그, 그럼 난 나가볼게.”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호시.”
리오는 나가려다가 나를 불렀다.
“으응?”
“우리 아버지, 죽었을 때……. 넌 그 자리에 없었지?”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리오를 바라보았다. 진지한 눈빛으로, 리한을 닮은 눈동자와 얼굴로 리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없지 않았어?”
물음표가 가득 한 내 대답에 리오는 눈동자를 치켜 떴다.
“어째서 물음표?”
“왜냐면…… 기억이 없기 때문이야.”
“기억이 없다고?”
“그래.”
리오는 내 말에 놀라워했다. 하쿠까지 대화한 것은 기억한다. 하지만 그 다음의 일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어. 꼭 다른 이가 내 몸을 조종한 것처럼 말이야.”
누군가가 내 몸을 조종했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아서, 그게 더 무서웠다.
“이거…… 호시가 한 거야.”
리오가 유카타 사이로 보이는 가슴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말했다.
"내가……?"
"그래. 난 거기서 널 봤어. 너는 조종 당한 것처럼 눈동자에 초점이 맞지 않은 채로 움직였어. 그 날의 내 부상은 네가 했다고…… 말하면 어쩔래."
“미, 미안해.”
“호시, 난 이 부상으로 너에게 요괴로써 경외를, 요력을 전부 빼앗겨 요괴가 될 수 없게 되었어. 완전히 인간이 된 거지.”
고개가 밑으로 숙여지면서 리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네가 굉장히 미운데, 그럴 수 없더라.”
리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베어진 사람보다 더 서럽게 울고 있는 널 보니까, 미워할 수가 없었어. 너에게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난 너를 지키고 싶어졌어.”
이어지는 리오의 고백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렀다.
“물론 호시의 마음은 알아. 난 호시의 왕자님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적어도 난 네 기사가 되고 싶어! 널 지키는 기사가 말이지!”
“……마음대로 해.”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그거 뿐이었다.
“그래, 내 마음대로 할게.”
리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다리의 힘에 빠져버려 주르륵 주저앉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백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뜨거워…….”
리오를 다치게 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그에게 기대고 싶다는 마음이 교차하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펌프질을 해서 그런지 온몸이 뜨거웠다(어쩌면 목욕탕의 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