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별 10
그곳에서는 녹색의 열매를 모티브로 한 보석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노란색 꽃이 달린 나뭇가지가 곁들어 있는 게 보이자 나는 천천히 그 꽃가지를 집어 올렸다.
“산수유……. 호시히코 오빠의?”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불멸의 사랑. 그건 산수유 열매입니다.”
“이게 산수유 열매라는 거야? 하지만 산수유 열매는 붉잖아.”
카나메의 말에 리오가 선물상자에 들어있는 열매를 보고 의아함을 나타냈다.
“호시히코님의 힘으로 시들지 않는 그 열매를 붉게 만드는 게 호시 아가씨와 그 약혼자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카나메의 말에 내 미간을 찌푸려졌다.
“그런 일은 절대 없어.”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의 사이에서 사랑이 꽃 피우는 일은 없다. 없어야만 한다.
“호시 아가씨, 호시히코님도 할머님의 능력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8대째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카나메의 말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해머로 누군가 내 머리를 친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오빠가…… 할머님의 능력을 이어받았다고?”
그래서 안 돼! 호시히코가 사다 히메의 능력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그 말은, 그도…….
호시는 매우 혼란스러워하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산수유 꽃가지가 눈 위에 떨어진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럴 리가…… 아니, 믿지 않을래. 믿고 싶지 않아.”
“호시님.”
“아니어야 해……. 그래야지만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내 계획이…….
“진정하세요, 호시님. 그래서 8대째가 뭐라고 했어?”
하쿠가 혼란스러운 호시를 진정시키며 그녀가 궁금한 것을 대신 질문했다.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아직은 괜찮은 거로군.
“호시?”
“쉴래. 쉬고 싶어졌어.”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문 호시는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녀는 눈 위에 떨어진 산수유 꽃가지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쿠가 호시의 뒤를 쫓아가자 카나메는 그 꽃가지를 주워들었다.
“호시 아가씨는 붉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8대째는 당신이 그 열매를 붉게 만들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누라구미 3대째 후계자인 누라 리쿠오 도련님.”
카나메가 리쿠오의 손에 꽃가지를 움켜주었다.
시로텐구인 카나메가 누라구미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나갔을 때, 다급한 발소리가 함께 문이 열렸다. 수를 놓은 천을 내려놓고 급하게 들어온 하쿠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하쿠?”
“호시님!! 8대가, 호시히코가 왔습니다!!”
“?!”
하쿠의 말에 빠르게 방을 벗어나서 복도를 달렸다.
마당에는 새하얀 용이 있었다. 그리고 백룡 옆에 있는 금발을 지닌 청년과 그의 백귀야행.
“오랜만이야, 호시. 마침 떠나려고 한 참이었는데, 너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뻐.”
엄마와 쏙 닮은 얼굴을 가진 호시히코가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노란 산수유가 그려진 짙은 녹색의 기모노를 입고 사노메의 문양과 대문이 새겨진 연두색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붉은 다이아몬드 문양이 있었다. 성인이 되었다는 증표와 사노메 종가의 피를 이었다는 증거인 이마의 붉은 문양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5년만인가?”
단 5년 만에 백귀야행을 저 정도로 키우다니……. 호시히코의 능력에 속으로 감탄했다.
“호시?”
“…….”
그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에게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은 그와 담판을 지어야 했으니까. 그가 전부 알아차리기 전에 해결해야 했다.
“오빠……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사다 히메의 능력으로 어디까지 본 거야? 그리고 어째서 이제야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고 말하는 거야? 내 계획에서는 그가 사다 히메의 능력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차질이 생길 수는 없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서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단 말이야.
“놀랐어, 호시.”
바로 본론을 꺼내자 호시히코는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우리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의 크기로 말했다.
“괜히 나를 제치고 네가 8대째가 될 거라고 엄마의 백귀야행들이 입을 모아 말한 게 아니었어. 넌 정말로 영리해. 3살 머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 없겠어. 네가 아니면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이겠지. 사노메의 저주를 풀 생각을 하다니…….”
“그래서?”
난 지금 칭찬을 듣고 싶지 않는데 말이야.
“그렇게 살기 띄우지 마. 아직은 나밖에 모르는 일이야.”
“믿을 수가 없군. 할머님의 능력을 물려받은 것은 나 혼자만인 줄 알았는데.”
“나도 놀랬어. 성인이 되고 나서 갖게 된 힘이라서…… 앞을 알게 되는 것은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호시히코.”
일부로 경칭을 붙이지 않고 그를 불렀다.
“네가 본 것들은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 영원히.”
“……호시.”
“난 멈추지 않을 거야. 아니, 절대로 멈출 수도 없어. 5년 전부터 시작한 계획에 네가 어떤 미래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멈출 것 같아?!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이건 이제 멈출 수 없어. 비탈길을 굴러가는 돌멩이처럼 과속도가 붙으면 붙었지, 절대로 멈추지 않아.”
“그 끝이 산산조각난다고 해도?”
“처음부터 산산조각난다는 것을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어.”
“왜?”
호시히코는 순수하게 의구심이 들어서 나에게 질문했다.
“완전히 본 것은 아닌가 봐…….”
호시히코의 질문에 든 생각은 그거였다. 그가 전부 다 안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미래에 내가 어떤 짓을 하는 것은 알아도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는 것이로군.
“호시, 왜야? 솔직히 할머님의 능력은 완전하지 않아. 그래서 전부 다 봤다고 할 수는 없어. 근데 왜 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야?”
“내가 8대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사건 기억해?”
“물론이지. 그 사건을 어떻게 잊어버리겠니? 그 사건으로 너는 사노메 일가에서 사랑 받는 존재에서 공포의 존재로 바뀌었어.”
“그게 내 인상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야. 그리고 이 도박에 난 지금 내 목숨을 걸었어.”
호시히코는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오빠에게 말할 수는 없어.”
호시히코에 내가 차갑게 대꾸했다.
“만약-.”
“오빠는 언제나 한 발자국 늦었어.”
호시히코가 말하려는 것을 눈치 채고 답변을 주었다. 당신이 지금 알아도 변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획은 계속해서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오빠에게 부탁하는 것은 단 하나야.”
“?”
“사노메 일가의 부흥. 나머지는 내 문제로, 오빠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한 마디만 하면 되잖아.”
호시히코가 내 손을 잡았다. 엄마가 내 손을 잡았을 때와는 달리 그의 손에는 따뜻함이 감돌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증거인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도와 달라고 해, 호시. 우린 남매잖아. 이제 가족은 우리 둘 밖에 남지 않았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오빠. 가족이 우리 둘 밖에 안 남았다니……. 사노메 일가는 붕괴해도 그 요괴들은 죽지 않았어. 사노메 일가를 부흥시켜 그들이 있을 곳을 만들어줘야지. 그게 오빠가, 아니 사노메 8대째로 해야 하는 일이야.”
“엄마랑 똑같은 말을 하네. 하지만 나는 너를 도와주고…….”
“호시히코 오빠, 그만둬.”
잡고 있는 그의 온기를 뿌리쳤다. 그가 잡고 있는 손에서 내 손을 빼냈다.
“호시…….”
“그만 돌아가. 난 괜찮아.”
“너의 그 "괜찮다"는 소릴 믿지 못하겠어, 난. 어째서 너는 단 한 순간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거야?”
“……믿을 수가 없으니까.”
도움을 청하면 뭐가 달라지지? 섣불리 도와 달라고 말하면, 물귀신 작전으로 함께 죽는다.
“호시!!”
“그만! 백귀야행이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 날 정말로 돕고 싶다면 날 내버려둬! 그리고 오직 사노메 일가의 부흥에만 신경써줘!”
나에게 관심을 꺼버리고 사노메 일가의 부흥만 신경 쓰도록 해야 한다.
“그게 내가 제일 원하는 것이니까!”
“……알겠어.”
내가 신경질적으로 외치자 호시히코는 포기하듯 한숨이 내쉬며 말했다.
“돌아간다!”
호시히코는 자신의 백귀야행에게 외치고, 그의 수호용 위에 올라탔다. 선홍색 눈을 지닌 백룡이 날아오르자 그녀의 뒤를 따르는 호시히코의 백귀야행.
강한 바람에 휘저어진 금발을 정리하려고 할 때 내 등 뒤에 선 존재가 내 손목을 잡았다.
“하쿠?”
“손으로 빗으면 더 엉킬 경우가 있어요. 이리 앉으세요.”
하쿠는 나를 데리고 마루에 앉힌다. 어디서 가지고 온 지 모를 빗을 꺼내 들더니 내 금발을 조심스럽게 빗어준다.
“……고마워.”
“아뇨.”
“약혼녀와 얘기는 했어?”
“아뇨.”
“어째서?”
“꼭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애정도 없는 약혼인데.”
“사쿠라 정도면 멋진 여성이잖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이상형은 아닙니다.”
하쿠의 사랑을 원하는 호시히코의 수호용인데…….
“사쿠라가 들으면 슬퍼하겠다.”
하쿠는 대답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도 입을 다물었고…….
그는 조용히 내 금발을 빗고, 머리 정리를 완료했다.
“오빠가 사다 히메의 능력을 물려받았을지 몰랐어.”
“드문 일이지만 없는 경우는 아닙니다. 사노메 종손이 성인식을 치루면 힘이 이동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호시님의 고모할머니, 호즈미가 그 경우에 해당하죠. 호오즈키보다 약한 호즈미는 성인이 된 후, 호오즈키의 힘을 흡수한 것처럼 힘이 강해졌죠.”
“언젠가 내 힘도 호시히코에게 넘어가게 되는 걸까?”
호시가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은 아주 드문 경우니까요. 이동 될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쿠가 말하자 호시는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