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별 19
당번이라서 일찍 학교를 나서려고 할 때, 리쿠오가 정원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설마 인간의 몸으로 요력을 사용하려는 것인가!!
"……하아."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연못 속으로 빠져버린 리쿠오를 보자 큰 한숨이 나왔다.
"푸하! 역시 무리인가!"
"하하하."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민 리쿠오의 귓가에 들려오는 웃음소리.
"뭘 하는 거냐, 리쿠오."
누라리횬이 카라스텐구와 함께 나타났다.
"그거 명경지수 '사쿠라'냐? 어렸을 때는 자주 흉내를 내곤 했지. 다시 그때처럼 '할아버지처럼 되고 싶어요~'라면서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을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다. 안 그러냐, 카라스?"
"네."
"응. 아직, 안 늦었겠죠?"
"그만두지 그러냐. 인간은 요력을 쓰지 못… 뭐? 뭣이?!"
리쿠오의 대답에 누라리횬은 경악한 얼굴로 자신의 손자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저 3대째가 되겠어요. 더 이상 누라구미 모두를 힘들게 하지 않을래요."
"초, 총대장… 이, 이건…."
"으음.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대체 규키가 무슨 짓을 한 게야?"
"어, 알고 계셨어요?"
"당연하지! 카라스 삼남매의 입을 막아 놓은 것 같지만…. 규키와 싸웠다면서?! 그 녀석, 예뻐해줬더만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그런 놈은 파문이야! 할복감이야!"
누라리횬은 팔불출 모습을 보이면서 날뛰며 외쳤다.
"자, 잠깐만요, 총대장. 아직 자세한 내용은 모르니 그렇게까지 심하게……."
"맞아요, 할아버지!"
누라리횬을 말리는 카라스텐구의 말에 동의한 리쿠오가 말했다.
"규키는 누라구미를 생각해 쿠데타를 일으킨 거라구요! 말하자면 내 탓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엉뚱한 처분을 내리면 안 돼요! 절대!"
"뭐…?"
누라리횬은 리쿠오의 말에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입을 헤 벌렸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학교 가야지!"
리쿠오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맞다. 학교! 오늘 당번인데!!
호시가 대문을 넘었을 때 서 있는 노조미를 발견했다.
"노조미?"
"안녕하세요, 아가씨."
노조미는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여기는 왜?"
누라구미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 함께 등교하고 싶어서요……."
"함께?"
"네. 가, 같이 등교해요."
용기를 내준 노조미를 보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래, 같이 등교하자."
노조미와 호시는 함께 아침 등교길에 올랐다.
한편, 누라구미 저택 내부는….
"갓파, 괜찮아?!"
"윽! 요명주가 전부 연못에 들어갔다!!"
"갠차나요~"
"전혀 안 괜찮아 보여!!"
술 취한 갓파에 미도리가 경악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부하를 징계하지 않겠다고? 이런, 아직도 물러터진 인간 그대로 아니냐…. 그런 순수한 요괴의 총대장이 어디 있냔 말이다!!"
"왜, 왜 화를 내고 그래요, 할아버지…."
리쿠오를 혼내는 누라리횬의 고함에 리오가 방 밖으로 나왔다.
"뭐야, 이 꼴은."
그는 보이는 광경에 내뱉었다.
미도리는 술 취한 갓파를 요명주가 들어간 연못에서 꺼내려고 했다.
"도와줄게, 미도리!"
외형은 어린 소녀인 미도리가 갓파를 혼자 옮기기가 힘들었기에 아오타보는 쉽게 그를 들어서 마루에 눕혔다.
"고마워, 아오타보."
미도리는 아오타보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갓파의 머리 위쪽에 앉아 손 부채를 그에게 부쳤다.
"그래서 열이 식히겠어?"
리오는 누라리횬의 손에 들린 부채를 "빌려요." 한 마디 말하고 가져갔다. 그리고 미도리에게 내밀었다.
"자, 이것으로 갓파의 열을 식히도록 해."
"감사합니다, 도련님."
"아니…."
리오에게 부채를 받아든 미도리는 갓파에게 시원 바람을 느끼게 하려고 쉬지 않고 부채를 쥔 손을 움직였다.
리오는 잠시 그 모습을 응시하다가 리쿠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리쿠오, 지각할 거야."
"…애야, 리쿠오."
누라리횬이 그를 불렀다.
"진짜로 뒤를 이을 생각이라면 후계자 책봉을 위해 간부회를 소집해주마. 그 자리에서 규키 건을 처리해봐라. 만약 그 자리를 정리하지 못하면 넌 그 정도 그릇밖에 안 되다는 얘기겠지."
"응."
리쿠오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꾀병을 피워서("배가,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서, 아아아악! 학교에게 못 가겠어!!") 학교를 쉬었다.
"속은…… 괜찮냐, 리오."
리오는 지금 누라리횬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요, 할아버지."
그는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정리했는데도 불구하고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총회가 열렸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그 총회가 열린 방 밖, 복도에서 요괴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 요괴들을 보자 누라 형제의 모친, 와카나가 물었다.
"와카나님…."
"그게 오늘은 리쿠오님께 중요한 날이잖아요. 3대가 될 수 있을지가 달린…."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어머, 그랬구나. 오늘 팥밭으로 하길 잘했네!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니 다행이야! 찹쌀이 남아있었거든!"
전혀 걱정 없다는 얼굴로 활짝 웃는 와카나에 호시는 "역시…."라고 중얼거렸다.
누라리횬의 옆에 앉아서 누라 형제가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에 간부들은 수군거렸다.
"리쿠오님이 출석을? 상당히 오랜만이네."
"규키도 있어."
"소문으로는 파문에 해당되는 죄를 지었다던데."
"리쿠오님께 칼을 겨누었다면서 어째서 이 총회에 얼굴을 내민 거지?"
"이 자리에서 처벌할 생각인가?"
리오는 식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간부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무카데 족장, 오오무카데1. 미츠메당 당주, 미츠메 야즈라2. 키조파 두목, 아사지가타의 귀녀(鬼女). 고문 및 다루마회 회장, 모쿠교다루마. 오바케3파 두목, 못타이나이오바케. 야쿠시 일파 두목, 젠. 규키파 두목, 규키. 도쿠간키파 두목, 히토츠메뉴도4. 요괴상인연합회장, 소로반보…….
'어라? 오오자루회 회장, 히히5는 결석인가.'
식사를 끝내자 히토츠메뉴도가 입을 열었다.
"오늘의 총회의 목적은 뭡니까. 내가 아는 이유라면 팥밭이 나올 까닭이 없는데요."
"이봐, 히토츠메…."
"나는 조직을 위해 얘기하는 거야. 안 그래도 서쪽 세력에 밀리고 있는데 여기서 제대로 해야지. 더 약해지면 곤란하잖아!"
"그렇지!"
히토츠메의 말에 누라리횬이 동의했다.
"그래서 조직의 강화를 위해 이 총회에서 누라 리쿠오를 정식 후계자로 책봉할까 한다."
"네?"
"지금까지 적당히 넘겼지만. 그래서 규키 건은 리쿠오에게 맡기겠다."
"잠깐만요, 총대장! 이제와서 리쿠오님께 무슨 기대를 건다는 말씀입니까, 하하하…."
"리쿠오."
"네."
리쿠오가 간부들에게 인사를 올린다.
"길일인 이 좋은 날에 누라구미 총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소개를 받은 누라 리쿠오입니다. 이러한 높은 자리에서 아뢰는 것은 실례라 사료되오나 후계자의 호칭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금후에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이 잔을 뒤집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허나 아직 요괴의 길을 공부 중인 풋내기에 불과한 몸인지라 말실수나 여러분께 결례되는 말씀을 드릴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부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리쿠오의 태도 변화에 간부들은 어리둥절했다.
"리쿠오님, 그럼 규키건은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응."
다루마가 규키 사건에 대해 다른 간부들에게 말했다.
"일전 규키는 리쿠오님의 친구분을 이용해 리쿠오님을 자신의 땅인 네지레메 산으로 끌어들여 칼을 겨누고 살해하려고 했습니다. 또, 파문당한 큐소를 조종해 리쿠오님에게 즉위포기 회장을 돌리도록 협박한 바 있습니다."
간부들이 규키 사건에 대해 술렁거렸다.
"리쿠오님, 처분을 내리시지요."
"응. 무죄!"
"네에?! 뭐라구요?!"
리쿠오의 결정에 간부들은 큰 소리로 놀란 소리를 냈다.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간부들이 벌떡 일어나 누라리횬의 앞으로 우루루 몰려들었다.
"총대장! 이건 좀 이상한 거 아닙니까?!"
"리쿠오님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 분이 후계자라니 제정신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누라리횬은 코를 후벼 파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됏어! 나를 단련시키기 위해 그런 거야. 그치, 규키!"
"되긴 뭐가 돼!"
"불만 있어?"
"당연하지! 최소한 해산은 시켜야 할 거 아니야!"
총회실 내부가 시끄러워졌다.
"걱정이 되세요?"
미도리가 옆에 있는 호시에게 물었다.
"조금……."
"바보같은 녀석, 저렇게 당당하게……."
"?!"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4사람은 분명!!
"고, 고즈마루랑 메즈마루?!"
"우메하루, 요루이치!"
그들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어, 어째서…!!"
"여어, 유키온나. 도움도 못 되면서 아직도 측근 노릇을 하고 있냐?"
"뭐라고! 랄까 어째서 여기에?!"
"한 동안 본가에 맡겨진 몸이 됐어."
"뭐, 그렇게 됐으니 잘 부탁한다."
"뭐, 뭐라고?!"
"그럼."
4명은 황당해 하는 츠라라를 지나쳐 가버린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에요! 도련님!!"
츠라라가 외쳤다.
방 내부에서 리쿠오는 성난 간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 대신 규키파 후계자 후보와 그 후계자 심복들을 본가에 맡겨서 충성을 보여준다잖아! 규키는 정말 성실해."
"물러터졌어!"
"그런가. 하지만 규키파를 해산시키면 서쪽에 있는 요괴들에 대한 방어막이 없어지는 거 아니야?"
"으윽…. 그건 그렇지만…."
"조직을 생각하면 그쪽이 더 문제잖아? 게다가 규키는 약속했는걸. 내가 제대로 하면 지금 이상의 충성을 다하겠다고."
"그 부분이 제일 문제인 거 아니냐고!"
"어이, 히토츠메."
"말리지 마!"
히토츠메가 울그락불그락되어서 버럭 외쳤다.
"이런 놈을 어떻게 3대 자리에 앉혀?! 이래서는 조직이 약해지기밖에 더하겠어?! 조직을 위해 한 일이니 무죄라고? 도리어 충성심이 흐려지는군! 그럼 나도 조직을 위해 땡땡이칠래!"
"히토츠메."
젠이 그를 불렀다.
"뭐야?! 새파란 게!! 너는 이런 애송이를 지지하겠다는 거냐?! 주위를 봐! 분위기를 보라고! 누구 하나…."
히토츠메는 혼자였다. 그를 제외한 간부들은 "아무 말 안 했어…."라고 작게 말하며 자리로 슬금슬금 돌아갔다.
'히토츠메, 어리석은 놈. 리쿠오의 페이스에 휘말려 고립됐군.'
리오는 선해보이는 외향과 다르게 능글거리며 만만치 않은 남동생을 힐끗 바라보았다.
"히토츠메. 어디까지나 조직을 위해서 하는 말이란 거지…? 그렇다면 너도 나를 시험해보겠나? 규키처럼."
"-윽!"
"아하하. 자, 이제 회의를 계속해볼까?"
지켜보던 다루마가 누라리횬과 시선을 교환했다.
'승부났군.'
리오가 그 둘의 시선 교환을 보았다.
"다들 잘 들어라!!"
다루마가 누라구미 규범을 보이며 외쳤다.
"누라구미 규범 제2조!! '총대장의 조건'에 따라 후계자 책봉을 통해 정식으로 리쿠오님을 3대 후보로 삼는다! 요괴의 성인 연령인 13세가 될 때까지 다른 후보가 나타나지 않으면 누라구미 3대 총대장이 된다!"
리쿠오는 무사히 후계자로 책봉되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이후에도 규키 조직은 우리 일가다!!…이상 오랫동안 실례했습니다."
누라리횬은 자신의 손자를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엿듣고 있던 츠라라들 역시 리쿠오가 3대째 후보가 된 것을 기뻐했다.
'넌 이제 망설이지 않는구나.'
리오는 남동생의 태도를 보며 흡족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