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해방된 별 34

리틀 윙 2018. 8. 26. 06:27

새하얀 날개 깃털을 정리하는 카나메는 함께 어울리고 지내온 카라스 삼남매에 대해 생각했다.


카라스텐구에게는 셋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통칭 '카라스 3인조(삼남매)'라고 불렸다.

무사같은 갑옷을 입은 흑발의 청년, 장남 쿠로우마루.

모히칸 머리스타일의 차남, 토사카마루.

안경을 쓴 여성, 사사미.

그들의 평소 임무는 조직 관할 상공을 순찰하는 것이다.


"2년인가…."


누라구미에 온 지 2년…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렇게 가까워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카나메는 점점 과거를 생각하면서 사노메 조직의 일원이지만 누라구미 요괴처럼 행동한 것에 대해 자괴감이 빠져들었다.


"왜 그런가, 카나메."


쿠로우마루가 다가와 한숨을 푹 내쉬는 카나메에게 물었다.


"카나메?"


생각에 빠져있는 카나메는 쿠로우마루가 가까이 다가온 것을 느끼지 못했다. 


"카나메!!"


쿠로우마루가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깃털을 정리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갑작스러운 온기에 카나메는 "으헉?!"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얼굴에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뭐, 뭐야."

"정신을 어따 빼놓고 있는 건가. 깃털이 엉망이 되었다."

"아악!!"


생각을 너무 깊게 하고 있었기에 깃털 정리는 어느새 깃털을 괴롭히는 걸로 되어 있었다. 카나메가 비명을 지르자 쿠로우마루는 잡고 있는 손목을 놓아주었다.

쿠로우마루는 고개를 돌리고 뱀을 타고 하늘을 가르며 밤산책 중이던 리쿠오를 발견한다.


"도련님."


그는 리쿠오를 불러세웠다.


"쿠로우마루. 오늘 우키요에 마을은 어떠냐."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냐? 오늘은 하오리도 안 뺏겼고?" 


리쿠오는 그렇게 물으며 살짝 웃었다.


"네. 괜찮습니다."


쿠로우마루는 표정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 녀석, 그 곰방대 아직 갖고 있으려나…."


리쿠오가 중얼거렸다.


"그 곰방대는 벌서 다른 물건과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쿠로우마루가 말했다.


"알아볼까요?"

"됐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리쿠오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넌 정말 범생이군."

"조사가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쿠로우마루 대답 역시 범생의 그것이라 생각했는지 리쿠오는 더 크게 웃음지었다.

쿠로무마루는 무척이나 성실하다고 카나메는 생각했다.


-난 누라구미의 안테나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사건이나 괴이 현상의 조짐, 불온한 기색, 안테나의 감도가 좋지 않으면 그런 거을 감지하지 못하고, 그 결과 외적의 침입을 허락하고 만다. 그러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 것. 안테나는 그럴 필요가 있다.


그래서인지 순찰은 그의 성격에 딱 맞는 임무였다. 

쿠로우마루가 비행을 멈추었다. 그의 안테나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다. 쿠로우마루의 시선을 따라가자 아래 빌딩 외벽에 적힌 기묘한 문자가 보였다.


"무엇일까요?"


외벽이라고 해도 상당히 높은 위치였다. 10층 건물의 최상층이다. 

컬러 스프레이로 쓰여있는 문자. 독특한 글씨였다.


"그래피티……?"


토사카마루에게 들은 지식을 중얼거렸다. 


"뭐야, 이건? 읽을 수가 없잖아."

"천(千)…이 아닐까요…."

"천?"

"네."


디자인은 기묘했지만 바탕이 되는 문자는 한자 '千' 같았다. 천의 가로획이 두 팔을 벌리듯 아치형으로 좌우로 펼쳐져있고, 그 두 팔 위에 각각 '10'과 '00'이라는 숫자가 올라타 있다. 

한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결합한 것으로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그 오른쪽 하단에는 작게 'A-1'이라고 적혀 있다.


"흐음."


리쿠오는 쿠로우마루의 설명에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였다.


"그보다 굉장히 높은데 그려놨군."

"그러네요."


리쿠오가 시선을 돌렸다.


"사실은 네 짓이라거나?"

"제가 화를 내야 하는 겁니까, 도련님?"


리쿠오의 장난을 무시한 채, 쿠로우마루는 그래피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호시 아가씨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지켜보고 있던 카나메가 말했다.


"아가씨에게?"

"아가씨는 여러 지식에 능하시거든."


사노메의 후계자로서 키워져서 그 후계 수업을 어린 나이에 받아오신 분이었다.

그녀는 사노메 일가의 자랑이였다. 자랑이고 보물이셨다. 그녀가 어서 자라 성인이 되길 기다리신 사람도 많았다. 성인이 된 그녀는 분명 역대 대장들을 뛰어넘는 훌륭한 대장이 될 거라고 모든 요괴들은 입을 모아 칭찬하며 말했다. 기후현 사건과 세대교체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천과 관련되서 뭐가 생각나냐고?"

"네."

"너무 많은데."


호시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얼굴을 살짝 찡그린 것조차 그녀는 아름다웠다).


"조금 더 정보가 필요해."

"…알겠습니다."


카나메는 호시를 곤란할 생각이 없었기에 물러났다.

그 후, 새로운 그래피티가 나타나서 카라스3인조와 카나메는 공중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피티 오른쪽 하단에는 B-2라고 적혀있었고, 이것으로 발견된 천 자 그래피는 모두 4개였다. A-1이 최북단, 거기서 남서방향에 A-2, A-2에서 남서 방향에 B-1. 오늘 발견된 B-2는 B-1의 동쪽방향에 있다. A-1를 남북으로 가르는 대칭축이 있다고 치면,  B-2와 B-1은 선대칭 위치에 있었다.

발견한 것은 토사카마루였다. 전령을 맡은 까마귀에게 전해 듣고 현장으로 달려왔지만 그려진 후 시간이 꽤 지났는지 단서를 잡을 수가 없었다.


"대체 이건 누가 그리는 거냐? 이 위에 畏라고 덧그려버릴까보다."


토사카마루가 짜증난다는 듯이 모히칸 머리를 긁적이자,


"뭐하러. 품위없는 적의 레벨에 맞춰줄 필요는 없어."


홍일점 사사미가 냉정하게 대답했다.


"뭐 그건 그렇지만…. 사실은 요물의 소행이 아닐지도."


토사카마루가 의견을 냈다.


"습격받은 건 10대 소년이야. 그리고 그래피티를 그린다는 행위 자체도 유치하고. 이 일련의 사건은 비슷한 또래의 인간이 벌이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래피티와 병행해 스프리트 갱 연속 습격 사건도 일어나고 있었다. 확인된 것은 총 5건으로, 그 습격현장에도 '천' 자 그래피티가 남겨져 있었다. 

토사카마루의 의견에 쿠로우마루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아. 왜 그런 높은 곳에 문자를 그릴 필요가 있지? 인간이 어떻게 그런 높은 위치에 뭔가를 그릴 수가 있냐고. 그리고 공격받은 애들의 증언도 있어. 난 이번 사건은 요괴의 소행이 틀림없다고 봐."

"공격받은 애들의 증언이라면,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공중에 떠있다는 것 말이지?"


쿠로우마루가 사사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식들, 느닷없이 4층 창문을 깨부수고 들어왔단 말야. 사다리도 없이 로프도 없이 말이지. 말도 안 되지 않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갑자기 옥상철망 너머에 빡빡머리 놈이 서 있었거든.

-5층으로 도망쳐서 안심하고 있는데,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가고. 그 자식들, 하늘을 날 수 있는 거 아냐?


이들 피해자의 증언은 폭주족 대장을 맡고 있는 아오타보와 거기에 소속된 노조미를 통해 얻은 정보였다. 폭주족과 스트리트 갱끼리는 곰강대가 형성되어 있어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 모양이었다.


"실은 피해자의 증언과 관련해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어."


쿠로우마루가 검지를 들며 입을 열었다.


"건물 상층 또는 옥상에서 구타를 당한 피해자 3명은 모두 이렇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어. 먼저 빡빡머리가 리더일 것으로 추정이 돼. 아무튼 그 뒤를 이어 몇 명의 멤버가 같은 식으로 나타났지만 모두가 그렇게 나타나는 건 아니야. 계단을 통해 늦게 올라오는 놈도 있다고 했어. 바로 이 점이 걸려."

"즉 높은 곳에 홀연히 나타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군."


사사미의 말에 쿠로우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겉모습은 다 사람이라고 했지? 그 중에서 어떤 술법을 쓸 수 있는 놈과 없는 놈으로 나뉜다는 건가?"


토사카마루가 중얼거렸다. 

새로운 의견이 나오지 않자 모두 입을 다물었고 자리는 조용해졌다. 

침묵이 싫다는 듯이 토사카마루가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오래 끌면 안 되겠지. 인간 세상의 매스컴도 떠들어대기 시작했으니."

"그렇지."

"어제 TV 뉴스에도 나오더군. 뉴스에서는 외벽의 그래피티만 언급했지만, 조만간 습격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거야. 보도가 과열되면 호기심많은 인간들이 이 우키요에 마을을 얼쩡거리게 돼. 우리 영역 평화가 깨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하지만 그놈들이 정말로 끌어들이고 싶은 건 매스컴이 아니라 우리 누라무미겠지."


그렇게 말하는 쿠로우마루를 카나메가 쳐다본다.

쿠로우마루는 말을 이었다.


"이 우키요에 마을에서 저런 짓을 되풀이하고 있잖아. 놈이 누라구미 눈을 의식하고 있지 않을 리 없지. 놈들은 기다리고 있는 거야, 우리가 움직이기를."

"도발하고 있다는 건가."


사사미가 말했다.

쿠로우마루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千은 명백히 우리 누라구미에 대한 도발 행위야. 호기심 많은 인간들이 우리 영역을 어지럽히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누가 우리 영역 내에서 멋대로 괴이 현상을 만들며 날뛰고 있는 쪽이 더 문제인 거지. 놈들은 누라구미를 두려워하지도 경외하지도 않아."

"그래서 어쩔건데?"


카나메가 물었다.


"경계 레벨을 높인다. 까마귀를 부리자."


쿠로우마루가 말했다.

우키요에 마을 하늘을 나는 까마귀는 한 마리도 빠짐없이 카라스3인조가 조종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꺼림칙하게여기는 까마귀들도 카라스3인조에게는 귀중한 정보원이었다. 


"마을의 까마귀들을 총동원하여 고층 빌딩을 경계하게 하고,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통보하라고 해. 우키요에 마을의 총 건물 수를 따지면 까마귀의 수가 부족할 수 있겠지만, 동원하 ㄹ수 있을 만큼 동원하는 거야. 알겠지? 결코 우리 영역 내에서 날뒤게 둘 수는 없어."


쿠로우마루의 말에 토사카마루와 사사미는 강한 수긍을 표했다.

순찰을 끝내고 돌아온 카나메를 발견한 호시는 그녀에게 걸어갔다. 카나메는 굉장히 지쳐보였다.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습격 사건으로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딱히 이렇다 하는 진척이 없어서요."

"조사 진척이 없어서 기운이 없었구나."


위로해주듯 호시는 카나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술을 써봐서 알아봤는데…."

"힘까지 쓰신 거에요?"


호시의 말에 카나메는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카나메가 도와달라고 한 일이잖아. 당연히 힘이 닿는데까지 도와줘야지."


상냥하고 다정한 말….


'그런데 어째서 그런 짓을 벌인 거지?'


그녀는 일가에서 돌고 있는 소문의 주인공과 달랐다.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근데 자신 역시 자신에게 돌고 있는 소문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도,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진실도 말해주지 않고 계속 오해하게 내버려두고 있었다. 

계속 지켜보면서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굉장히 많을 거라는 거다.


"왜 그래, 카나메?"

"아뇨…. 그래서 무엇으로 나오셨습니까?"

"천(千), 주술로 본 그림자, 요괴……. 이 세 가지의 연관성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답을 찾은 것 같아."

"그래서요?"

"센비키오오카미야."

"네?"

"천 마리의 늑대. 각지에 전승되어 오는 늑대 무리야."


호시는 카나메에게 설명했다.

어떤 산에는 늑대무리 습격을 받은 자가 나무 위로 도망을 쳤다. 그러나 안심한 것도 잠시, 늑대들은 서로의 어깨를 발판 삼아 나무 위로 오른다. 서로 어깨를 밟고 올라가 늑대 사다리를 만든 것이다.


"센비키오오카미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각양각색이지만 최후의 전개만은 정해져 있어."


늑대는 사다리처럼 겹쳐서 나무 위의 사냥감을 잡으려 했지만 간발의 차로 사냥감을 잡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외친다.


-바바를 불러!


마지막에는 반드시 두목을 부른다는 늑대 무리 이야기.


"바바. 그게 센비키오오카미의 두목 이름…."

"야사부로바바라는 이름도 있지."


카나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이 사실을 쿠로우마루에게 알려줘야겠네요."

"그렇게 해."


카나메는 흰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날아올랐다. 


"…어서 이곳을 떠나야할지도 모르겠네."


날아가는 카나메를 보며 호시는 말했다. 

그 날, A-1보다 조금 남쪽에 있는 10층 짜리 아파트 꼭대기 층 외벽에 다섯번째 그래피티 C-1를 발견하게 되었다.


"센비키오오카미는 무슨 생각이지?"


그래피티에 대한 것을 풀지 못한 쿠로우마루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꼭 커다란 千을 그릴 생각인 것 같네."

"?!"


카나메의 말에 카라스3인조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갑작스러운 시선 집중에 카나메가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위치를 보고, A-1과 A-2를 연결하고, B-1과 B-2를 연결하면 한자 千의 1획과 2획이 되잖아."


그 말을 듣자마자 쿠로우마루는 어딘가로 날아갔고, 토사카마루와 사사미가 그 뒤를 따라 날아갔다.


"그럼 다음이 마지막이란 소리군."


그들은 상당한 속도로 날고 있다.

C-2 그래피티를 그리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 우키요에 마을 남쪽 건물을 향해서 말이다.


"다음이 마지막이라. 놀고들 있군."

"그나저나 그 거대한 천 자가 장난 정도의 의도로 끝나면 다행이련만."

"무슨 소리야?"


토사카마루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예를 들어, 그 거대한 천 자가 완성되는 순간 무슨 주술적인 결계로 가능한다거나 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거든…."

"야, 야, 설마."


토사카마루가 일소에 붙인다.


"그래피티가 결계가 된다? 그럴 리가 있나. 바보가 나대본 것 뿐이라구."

"주술적 의도가 있건 없건 상관없어."


쿠루우마루가 끼어든다.


"마지막 여섯번 째를 그리게끔 둘 수는 없다. 먼저 가서 어떻게든 저지해야 해."

"어떤 건물일지는 확실히 알아?"


사사미가 묻는다.


"대강은."


쿠로우마루가 대답했다.


"그리려는 천 자의 밸런스를 생각하면 대충 예상은 가. 지금까지 발견된 5개의 그래피티는 10층에서 15층 건물에 그려졌어. 어림잡아둔 위치 내에 있는 그 정도의 높이의 건물을 지키고 있으면 놈들이 나타날 거다."


서두르자면서 쿠로우마루는 속력을 높였다. 토사카마루와 사사미 역시 뒤처지지 않고 그 뒤를 따라갔다.

번화가도 아니고 사무실이 즐비한 곳도 아닌, 10층에서 15층짜리 건물 가운데 거대한 천 자의 마지막 획으로 적절한 건물은 세 군데였다. 2개동이 있는 고층 아파트와 그곳으로부터 50미터 정도 남쪽에 있는 단독 건물이었다.

세 건물을 내려볼 수 있는 상공에서 카라스3인조는 멈추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자, 감시하고 있던 영역 인적도 드물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토사카마루가 중얼거렸다. 쿠로우마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상공에 머무른지 2시간 가량 되었을 때, 아파트 뒷길로 서른 명의 소년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카라스 3인조는 시선을 교환한 후, 요기를 숨기고 살작 고도를 낮추었다. 아파트 뒷길에는 가로등 불빛이 드리워져 있어 소년들의 옷차림이 잘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스프리트 갱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탄탄한 체격의 한 소년이 아파트 벽에 두 손을 짚고, 두 발을 어깨 폭으로 벌렸다. 탄탄한 소년의 어깨 위에 다른 소년이 올라탔다. 그리고 두 번째 소년도 그 아래 있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두 손으로 벽을 짚었다. 그러자 도 다른 소년이 두 소년의 몸을 타고 올라 가장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벽을 손으로 짚고 네 번째 소년을 기다린다. 그렇게 소년의 어깨 위에 소년이 올라타고, 그 어깨 위로 또 다른 소년이 올라타고 하는 식으로 인간 사다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스프레이를 든 소년이 사다리 끝으로 올라가 그래피티를 완성하는 게 틀림이 없었다.


"쿠로우마루."

"알아."


스프레이를 든 소년이 사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순간, 사사미가 쿠로우마루를 불렀다.

쿠로우마루는 한쪽 손으로 들고 있던 석장을 고쳐들고, 사다리의 시작점인 소년의 발끝을 향해 던졌다.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 석장이 소년의 발꿈치에 박혔다. 그 순간, 완성 직전이었던 사다리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러나 공중에 흩어진 소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훌륭히 착지해 당에 곤두박질하지 않았다.


"누구냐!?"


무리에서 튀어나와 빡빡머리 소년이 으르렁거렸다.


"토사카마루, 사사미. 청소 시간이다."


쿠로우마루는 그렇게 말하고 고도를 낮췄다. 


"여긴 좁고 인간들 눈에 듼다. 따라와."


카라스 3인조를 본 빡빡머리가 말했다.

두 무리는 근처에 있는 폐교 운동장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기다리고 있었다, 누라구미 녀석들. 자기소개를 하지. 우리는 호쿠리쿠에서 온 센비키오오카미파다. 난 거기 후계자고."

"누라구미 본가 쿠로우마루라 한다. 이쪽은 토사카마루, 그리고 사사미."


쿠로우마루가 상대방의 자기소개에 이름을 밝혔다.


"확실히 말해두지."


쿠로우마루가 석장 끝으로 땅을 쳤다.


"이곳은 누라구미 영역이다. 쓸데없이 낙서도, 폭력행위도 용납하지 못한다."


빡빡머리 후계자는 코웃음을 친다.


"쓸데없는 낙서? 이왕이면 쿨한 아트라고 말해줘."

"그 말투도 불쾌하기 짝이 없군."


사사미가 말했다.


"눈에 거슬리는 낙서를 지운 뒤, 너희도 신속하게 우키요에 마을을 떠라."

"와우, 아가씨 한 성깔 하는데?"


빡빡머리는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머리를 스다듬었다. 그리고 갑자기 래퍼처럼 말을 이었다.


"우리는 안 꺼져, 못 떠! 우리는 처부수러 왔다, 누라구미를! 요괴! 총대장? 우린 몰라, 인정 못 해, 곰팡내 나는 과거의 영광 다위 관심없어! 그리고 도착! 그리고 도달! 그리고 완성! 늑대의 탑! 긍지탑! 우리가! 새로운! 지배자! 새로운! 지배자! 센! 비키! 오오카미!"


무슨 발작처럼 펼쳐지는 랩에 쿠로우마루는 인관되게 무반응이었다.


"극히 불쾌하군."


사사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얼빠진 새끼."


토사카마루는 혀를 찼다. 

카라스 3인조의 극히 냉담한 반응을 빡빡머리는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도리어 어딘지 모르게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저 쓸데없는 낙서에 대해 한 가지 확인해두겠다. 너희가 오늘 저 자리에 그리려던 건 마지막 그래피터였지?"

"오오, 용케 마지막이란 걸 알았네. 그럼… 우리의 목적도 눈치챘냐?"

"목적…."

"아앙? 몰랐던 거야?"


빡빡머리는 씨익 웃으몀 말을 이었다.


"여섯 개의 천으로 무엇이 완성되느냐…. 그건 말이지."


긴장감이 고조시키려는 듯, 빡빡머리가 잠시 틈을 두었다. 


"그건 바로! 우키요에 마을 위에 커다란 천 자가 완성되는 거다!"

"…그래서?"

"그래서라니…뭐가?"


입을 삐죽이며 빡빡머리가 물었다.


"그러니까 완성된 다음 말이다. 거대한 천자가 완성된다느 건 우리도 알고 있어. 그 뒤에는 어떻게 되지? 그 거대한 천 자가 결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거냐?"

"겨… 결계?"


순간 새된 소리를 지르고 나서, 빡빡머리는 거칠게 말을 이었다.


"그, 그럴 생각 없다구! 커다란 천 자는 큰 것 뿐이야!"

"그저 크다. 그뿐인 거냐?"

"그래! 뭐 불만 있냐?"

"불만은 없어. 확인 차원이다."

"냉정하게 뭐라는 거야?! 크기만 한 게 뭐가 어때서! 그레이트한 아트잖아! 뭐야, 이 반응!"


빡빡머리는 상당히 불만스러워했다.

쿠로우마루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단다. 토사카마루, 이건 네 말이 맞았군."


토사카마루가 코로 웃었다.


"역시 애송이들 장난이었군."

"야! 지금 여유 부리냐?! 이자식들! 죽고 싶어?!"


빡빡머리가 소리를 지르며 땅을 찼다.


"그럼 덤벼라."


쿠로우마루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확인할 사항은 없다. 남은 건 네놈들에게 격의 차이를 가르쳐주는 것뿐."

"좋다, 망할 까마귀들! 얘들아!"


빡빡머리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봐줄 필요 없어. 세마리 몸땅 깃털을 뽑아 프라이드 치킨으로 만들어 버리자구! 이얏호오오오―!"


빡빡머리가 괴성을 질렀다.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는 것이 마치 늑대의 울부짖음 같다.

동료들도 목청껏 워어어, 워어어 하울링한다. 

늑대들의 울부짖음이 한바탕 이어진 뒤, 빡빡머리가 목소리를 내려깔며 말했다.


"그럼 시작해보자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빡빡머리는 엎드려 네 발로 땅을 짚었다. 옷이 찢어지며 단단한 털이 온몸을 덮기 시작했고, 얼굴도 늑대를 더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변화해갔다.

센비키오오카미 전원에서 그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늑대로 변신했다.

카라스 3인조도 사람의 형상을 풀고 부리가 있는 카라스텐구 본연의 모습이 되었다. 들고 있는 석장 끝에 달린 쇠고리가 찰랑거린다.

늑대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격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