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반요(1부) 04

리틀 윙 2019. 5. 15. 23:41

이타쿠가 실종된 지 1년 반 개월 동안-그를 찾기 위해 닌자들이 움직였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조차 없었다-, 나뭇잎 마을 내부에는 크게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1. 암살전문특수부대 통칭 암부 육성기관인 뿌리 수장 교체.

2. 고독술(蠱毒術1)족, 혼쇼 일족과 와타나베 일족의 멸족 사건.

3. 우즈마키 시에미의 뿌리 입단


우즈마키 시에미는 생존 소식을 알리고, 뿌리의 2대 수장 메이코가 권력을 잡자마자 뿌리에 입단했다. 아니, 정확히는 메이코에 의해 입단되었다.


"메이코여."


3대 호카게는 짙은 검은 베일을 쓰고, 검은 망사천으로 얼굴을 가려 하관(下觀)만 보이게 한 붉은색이 옅어 주홍색으로 보이는 머리칼을 지닌 아이를 불렀다. 노란 오비의 치마 길이가 무릎까지 오는 주홍색 기모노를 입고 붉은 꽃무늬가 들어간 흰색과 검은색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하오리를 겉입은, 눈앞에 있는 시에미와 비슷한 또래(로 추정되는) 소녀가 단조의, 뿌리의 권력을 손에 넣은 2대 수장 메이코였다. 


"무리라고 말했잖아, 호카게."


하오리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메이코는 단호히 거절했다.


"시에미를 다시는 상처 입히게 두지 않아."


메이코는 본인이 후원하는 불의 나라 고아원에서 시에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시에미를 뿌리로 입단시켜서 곁에 두겠다고 선언한 거다. 3대가 메이코를 설득시키려고 했지만…….


"고아원의 시스터인 렌카가 그 동안 아픈 시에미를 쭉 보살폈어. 이제야 멀쩡해진 그녀를 빼앗아가는 것 아니야."

"시에미에겐 가족이 있다."

"가족?"


메이코는 기가 차다는 웃음 소리를 냈다.


"방치하고 모른 척한 것이 가족인가. 호카게. 꼭 피가 흘러야지만 가족이 되는 건 아니고, 피가 흘러도 가족이 아닐 수 있는 것처럼 시에미에게 가족은 남동생 뿐이야. 그녀에게 친척은 없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돌아가. 시에미는 돌려주지 않아."

"……."

"아."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메이코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칸나!"


메이코가 부르자, 어두운 갈색 머리칼을 가진 여암부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부르셨나요, 메이코님."

"호카게에게 그걸 넘겨."


여암부는 3대에게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무엇이냐."

"보면 알아. 줄 테니까 마음대로 사용해."


호카게가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뿌리의 암부 리스트라고 적힌 종이에 호카게는 고개를 들어 메이코를 보았지만, 그곳엔 그 혼자만 있을 뿐이었다. 


"메이코님."

"왜.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가면을 벗어! 사람을 대면할 때는 눈동자를 똑바로 봐야 하는 거야!"

"암부에게 가면을 벗으라니. 그런 억지를 부리지 마세요."

"그런 건 호카게 앞에서만 해. 벗지 않으면 대화도 하지 않을 거야."


칸나는 잠시 말을 하지 않고, 가면을 벗었다. 흑갈색 군데군데 새치인 것처럼 백발 브릿지의 앞머리를 지닌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좋아."


얼굴이 드러나자 메이코는 흡족한 얼굴을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어, 칸나?"

"뿌리 쪽 암부 리스트를 호카게에게 줘도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난 권력에 관심없거든."

"그럼 왜……."

"왜 단조의 권력을 빼앗았냐고?"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메이코가 말하자 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지에만 있기 싫으니까."

"저희들로만 부족하세요? 메이코님을 엄청 좋아하는 저희가 있는데요?"

"부족해…라면 어쩔래."


그렇게 말하는 말 속에는 장난끼가 잔뜩 느껴졌다.


"치사해요."

"그러는 칸나야말로 왜 날 따르는 거야? 난 너의 부친에게서 권력을 빼앗은 사람이라고."


시무라 칸나는 단조와 와카나의 딸로, 칼바람 별칭이 붙을 정도로 강한 풍둔술사다. 쓰리맨셀 팀원으로는 3대 호카게의 장녀이자 아스마의 여동생, 쇼우카와 미타라시 앙코의 여동생, 아리아가 있다. 


"비밀입니다."


칸나가 말하자 메이코는 픽 웃었다. 


"그게 뭐야. 그게 더 치사하잖아."

"어디 가실 겁니까."

"료를 데리러 갈 거야."


메이코는 지지하는 세력, 받쳐주는 세력- 이렇게 두 개 세력 덕분에 2대 자리에 앉았다. 하나는 츠쿠요 히메란 귀족의 권력이고, 또 다른 하나는 료의 강함(에서 오는 공포)와 메이코를 위한 맹목적 충정(衷情)이다. 그 두 개가 메이코를 받쳐주기 때문에 그녀는 뿌리의 2대 수장이자 나뭇잎 마을 수뇌부의 한 자리를 장악할 수 있었다.


"메이코님."

"왜."

"…아뇨. 아무것도."

"싱겁긴."

"잘 다녀오세요."

"응, 다녀올게."


메이코는 칸나의 인사를 받자마자 순신의 술을 사용했다. 

뿌리는 지하에 있는 조직이라서 지상으로 가는 출입구가 여러 개 있다(물론 숨겨져 있지만). 메이코는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숲으로 나가는 출입구를 써서 지상으로 나왔다. 동굴을 통해서 지상으로 나온 그녀의 모습은 변해 있었다.

허리까지 기른 금발 직모, 푸른 하늘과 숲의 녹음을 품은 청록색 눈색을 지닌 여자아이가 동굴에서 나왔다. 검은 나시 원피스를 입은 우즈마키 시에미는 숲길을 걸어 버려진 저택에 도착했다.


"먼지……."


문에 손을 대자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던 문이 쿵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문이 쓰러지자 먼지덩어리들이 날아올랐다가 후두둑 떨어진다. 여기서 살 건데…….


"시에미님!!"


시에미는 또 다른 자신의 이름을 부른 소리에 기겁하며 정원에 나타난 소녀 2명를 맞이했다.


"모미지! 후유미! 님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흑녹색 머리칼에 녹안을 지닌 소녀가 혼쇼 모미지고, 회색 머리칼에 진보라색 눈색을 지닌 소녀가 와타나베 후유미다. 눈 앞에 있는 두 소녀가 자신들의 일족을 멸족시켰다.


"시에미님."

"그 '~님'는 붙이지 말고."

"그럴 수는 없어요!"


후유미가 단호히 말했다.


"시에미님은 은인인데 어떻게 저희가 감히!"


모미지가 이어서 말했다. 


"말 놔. 명령이야."

"윽!"

"이런 걸로 명령하지 마세요!"


모미지와 후유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게나 편안하게 부르는 것이 싫은 건가.


"그럼 '~씨'라고 높여 부르던가."

"네!"


꾹 입을 다물고 있는 두 사람을 보자, 두 사람이 영원히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 발 물러나서 제안했다.


"시에미씨,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앞으로 살 집 리모델링을 해야해서 왔어."

"이 집에서 사시는 건가요?"

"응."

"마을 중심가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인데요?"

"이런 곳이 마음이 편해."


자연과 가깝고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


"리모델링 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그 동안은 어디서 지내게요?"


모미지와 후유미가 물었다.


"불의 절."

"?!"

"아직 그쪽의 일이 끝나지 않았거든. 그도 거기에 있고, 나뭇잎 마을은 잠깐 들린 거야."

"많이 바쁘세요?"


시에미는 그저 미소로 답했다.


"시에미씨!"


후유미가 갑자기 시에미의 두 손을 잡고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 뭐, 뭐야."


갑자기 얼굴을 들이내밀면 심장이 쿵쾅거리잖아! 놀래라!


"집 리모델링을 저희에게 맡겨주실 수 있나요?"

"누구에게?"

"저랑 모미지에게 말이죠!"

"왜? 아카데미에 안 가?"


묻자 두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아카데미에 가게 되었다고 기뻐하지 않았던가.


"뭐…, 사람이 가기 싫을 때도 있지. 마음대로 해."


수락하자 두 사람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쓸데없는 취향 집어넣지 말고 그냥 전통식 가옥으로만 리모델링 해."

"네. 잘 알겠어요."

"들어갈 돈은 메이코 쪽으로 청구하고."

"네."

"그럼 불의 절로 돌아간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연락하고."

"걱정마세요."


시에미는 자신들에게 안심하라고 맡기라는 표정을 짓은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시, 에미씨?!"

"빨리 끝내고 돌아올 테니, 을 부탁해."


모미지와 후유미는 집이 '나뭇잎 마을'을 뜻하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구미 인주력이 있는 나뭇잎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뿌리의 메이코가 된 그녀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뿌리 내부에, 메이코의 부하에는 없었다. 


"맡겨주세요!"


"고마워."라고 말하고 시에미는 펑, 흰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

불의 절에 닌자승이 아닌 어린 아이 두 명이 있었다. 단정한 기모노를 입은 소녀가 마루에 앉아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다. 미소녀에게 이타쿠가 다가왔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그냥 좀…. 구름 좀 보고 있었어."

"구름을 보지 말고 날 봐줘!"

"이타쿠는 언제든 보고 있는데."

"눈꼴 시려워."


단발머리의 소년승이 시에미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소라."

"멘마, 나 노래 불러줘."

"갑자기?"

"너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그래."


소라가 얼마나 차가운 냉한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멘마는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무릎베개는 내 것!"


이타쿠가 잽싸게 그녀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웠다.

 

(おど)(つか) (ねむ)(そら)

춤추다 지쳐 잠든 하늘

やがて()ちる 桜木(さくらぎ)

이윽고 스러지는 벚꽃나무의

()()ちる花弁(はなびら)

춤추듯 떨어지는 꽃잎의 

行方(ゆくえ) 辿(たど)れば

행방을 더듬어보면

(ひと)運命(さだめ)(はかな)夢幻(ゆめ)

사람의 운명도 덧없는 꿈과 같죠

(まぶた)(うら)宿(やど)

눈꺼풀 뒤에 깃든

(いと)しき あなた(おも)

사랑스러운 당신을 생각해요

(まも)りたくて

지키고 싶어서

(まも)りたくて

지키고 싶어서

この刹那(せつな)(いざな)約束(やくそく)

이 순간이 이끄는 약속으로

何度(なんど)()まれ(かわ)っても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木漏(こも)()()ちる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가득한

あなたの(もと)

당신의 곁으로

たとえ(とお)

설령 멀리

(はな)れてても

떨어져 있더라도

あなたを ずっと

당신을 계속

(あい)しています

사랑하고 있어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음색에 바람이 하늴하늴 불었다.


"네 노래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져. 왜 그럴까……."


소라가 피곤하듯 하품을 했다.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잠들 것처럼 감겨갔다.


"소라, 여기서 잠들면 안 돼."


이타쿠가 말해지만 소라에게 닿지 못했다.


"좀 있다 깨우자."


멘마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라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다.


"여전히 효과 발군이네. 멘마 노래는 언령(言靈)이니까. 마음 상처를 치료하기에 따뜻해지는 것은 당연하잖아."


이타쿠가 훗하고 웃었다.

  1. 뱀, 지네, 두꺼비 등의 독으로 만든 독약을 사람에게 몰래 먹여서 배앓이, 가슴앓이, 토혈, 하혈, 부종 등의 증세를 일으켜 점차 미치거나 실신하여 죽게 만드는 사악한 저주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