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요(2부) 47
"어째서냐고…."
이타쿠가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이타쿠!! 어서 안내해달라니깐!"
"맞아! 빨리!"
"직진하라고!"
나루토와 카린의 외침에 이타쿠가 버럭 외쳤다.
"계곡 근처면 시원하겠지."
"아카마루도 좋지?"
"멍!"
"좋은 장소면 사다하루도 나중에 데려와야겠다."
"그거 좋겠다."
"요즘 더웠는데 잘됐다. 벚꽃구경도하고 물놀이도 하고!"
"일석이조는 이런 것을 말하는 건가."
"물놀이…."
"시노, 원하지 않으면 물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돼."
"난 맛있는 것만 있으면 돼."
각양각색 개성이 있는 말들에 이타쿠는 절망했다.
'어째서 모두와 함께 가게 된 거지?'
카린, 츠카사, 유키무라, 카오리, 모미지, 후유미, 키바, 시노, 히나타, 시카마루, 이노, 쵸지, 사쿠라, 사스케, 나루토……. 카린과 사스케 녀석 어떻게 알았는지 가겠다고 말하고, 이노는 시카마루와 쵸지에게 들어서 쫓아왔다고 했고, 사쿠라는 나루토가, 시노는 후유미가, 히나타는 카오리가 데려왔다.
"왜 그렇게 침울해진 거야?"
"그치만 데이트가……."
"대련을 방해하니 벌 받은 거야."
타에가 가시 섞인 목소리로 이타쿠에게 말했다. 아까 전에 대련 도중에 방해받은 것에 앙금이 남았나보다.
"원래 데이트하기로 한 것이 먼저였거든."
이타쿠가 타에의 말에 짜쯩을 내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어차피 시에미가 이기고 있었잖아."
"그…! 승부는 끝까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였어!"
"아니, 끝까지 해보지 않아도 그건 명백히 시에미가 이겼어."
"타에, 이 도시락통을 들고 먼저 갈래?"
"나, 나도 도와줄게."
타에에게 시에미는 커다란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그러자 히나타가 타에의 옆에서 도와주겠다면서 나섰다.
"히나타님! 함께 들어요."
카오리가 낑낑거리는 히나타를 보자 바로 옆으로 달려갔다. 느리게 걸어서 동행하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시에미가 이타쿠의 손을 잡았다.
"둘이서만 오지 못해서 심통이 난 거야?"
"흥."
고개를 홱 돌리는 꼴이 정답이란 걸 말해준다. 시에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이타쿠" 이름을 불렀다.
"이타쿠, 나 안 볼 거야?"
그의 고개는 자신과 정반대에서 요지부동.
"호-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런 이타쿠의 태도가 시에미의 심기를 건들렸다. 시에미는 스산한 목소리를 내더니, 손을 그에게 뻗었다.
"이타쿠, 정말 나를 안 볼 거야?"
"이번엔 정말로 실망-!!"
시에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타쿠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시에미가 이타쿠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난데 없는 온기에 이타쿠는 너무 놀라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이걸로 풀도록 해."
그는 멀어지는 시에미를 잡지도 못한 채 입만 뻐금뻐금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했다.
"으아아아아악!!!"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모두들 뒤를 돌아봤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가린 이타쿠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뭐냐니깐."
"저런 건 보지 마."
"약빨이 너무 좋잖아."
어리둥절한 나루토에 카린이 냉정히 말했고, 시에미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뭔 짓 했냐니깐."
"했지만 부끄러우니까 안 가르쳐줄래."
시에미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를 나루토는 적응되지 않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봄이구나~!"
가까이서 들려온 마사키의 목소리에 시에미는 고개를 위로 올렸다. 어린아이 다섯 명이 손을 잡고 원을 만들 정도의 둘레를 지닌 벚나무 가지 위에 마사키가 앉아 있었다.
"마사키!"
"고모!"
"마사키씨."
시에미가 놀라 외치자, 나루토와 사스케가 바닥에 착지한 그녀를 알아봤다.
"너희들도 벚꽃구경?"
"응! 그렇다니깐!"
"이 안쪽에 계곡도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려고."
"지금 물놀이를 하겠다는 거야? 춥지 않을까?"
"괜찮다니깐!"
"그래도 함께 가는게…."
"혼자 온 거야?"
"동기들 중 벚꽃구경 가자는 애가 있어서."
"그럼 일행이 있잖아."
"뭐 아직 시간 남았고, 내가 일찍 왔으니까. 보고 가는 것쯤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무리인 것 같은데."
"뭐?"
마사키는 시에미의 눈동자가 움직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상닌들만 알 수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지각쟁이가 왠일로 일찍 왔지?"
"마사키, 우리는 그만 갈게. 자 도시락 줄게."
"괜찮아? 너희들도 많이 먹을 텐데."
마사키는 아키미치 일족인 쵸지를 힐끗 보았다.
"한 개 정도는 괜찮아. 다섯 개나 아직 남았는걸."
5단으로 되어 있는 찬합통을 본 마사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통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어차피 너무 많이 만들었을 뿐이야. 한통으로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충분할 거야. 다른 사람들도 가져올테니까."
시에미는 바보처럼 표정이 풀어저 헤헤거리는 이타쿠가 입고 있는 후드티를 잡아 끌고갔다. 그가 "커억!" 소리를 냈지만 시에미는 신경쓰지 않았다.
"시에미! 조금 조심히 다루라고!"
"충분히 조심해서 다루고 있는데."
"어딜 봐서!!"
이타쿠에게 하는 행동에 카린이 외쳤다.
"난 시에미라면 어떤 취급이든 행복해."
"그렇다는데?"
"그래도 불쌍하잖아!"
카린의 말에 시에미는 손에서 잡고 있는 이타쿠의 후드티를 놨다.
"두 사람은 사귀는 사이야?"
이타쿠가 몸을 일으키고 시에미가 그의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자연스러운 행위를 본 사쿠라가 물었다.
"아니. 커플이 아니라,"
"우린 부부야."
시에미가 말하고 이타쿠가 이었다.
"아직 미성년자라서 법적 부부는 아니지만."
계곡에 도착했다, 이타쿠는 시에미와 함께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았다. 흐르는 강물 옆에 피워나있는 벚나무들….
"명당이구나!"
"그치? 좋은 장소를 찾다가 발견했어. 어이, 왜 그렇게 멍청하게 있어?"
굳어져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이타쿠가 어서 오라듯이 외쳤다. 타에와 유키무라와 츠카사가 제일 먼저 정신차리고 돗자리 위에 도시락을 내려놨다. 시에미는 돗자리 세 개 정도 펼쳤다.
"한 개 더 필까?"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좀 넓은 것이 좋겠지."
시에미는 돗자리를 하나 더 펼치고 모서리에 돌멩이를 올려놨다. 서서히 정신차린 아이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특히 사스케의 옆자리에 앉으려는 이노와 사쿠라의 싸움이 굉장히 치열했다.
"사쿠라짱! 내 옆에 앉으라니깐!"
"싫어!"
나루토는 사쿠라에게 애원했다가 바로 차였다. 그런 나루토의 말에 히나타의 눈동자가 지진이 오는 것처럼 흔들렸다. 나루토는 사쿠라를 좋아하고 있는 건가? 좋아하는 건 맞지만… 사랑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사스케의 라이벌 의식에 첨가된 질투심 비슷한 것이겠지.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남녀간 사랑이 아니라도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건 좋은 거니까.'
시에미는 사스케와 나루토를 눈에 담았다.
"어서 먹자!!"
쵸지가 큰 목소리로 외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도시락통을 바라보았다. 다들 뚜껑이 열리고 내부를 보자 환호성을 질렀다. 눈동자가 반짝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던 시에미는 무언가를 감지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마실 것을 안 사왔다. 너희 먼저 먹고 있어."
시에미가 주먹밥 3개를 챙겼다.
"여기 있는… 데……?"
시카마루가 말했지만 이미 시에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에미는 품에 주먹밥을 소중히 안고 숲길을 걸었다.
"나와도 돼."
"눈치챘습니까?"
걸음을 멈춘 그녀의 앞에 새하얀 안색을 가진 흑발 소년이 나타났다.
"감지타입을 얕보는 거야? 당연히 알지."
그에게 주먹밥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소년은 시에미가 만든 주먹밥을 받아들었다.
"밥 잘 먹고 있는 거야?"
"네. 잘 먹고 있습니다. 안 먹었다면 누군가씨가 항상 잔소리를 했으니까요."
"비꼬는 거야?"
"아뇨, 감사드리는겁니다."
"너가 말하면 고맙다는 말도 그런 뜻으로 안 들려서 큰일이야. 자기도 모르게 어그로를 끌고 있다니…."
"네?"
"아니, 아니야. 임무 나가려는 거야?"
"네. 나가는 길에 당신이 타에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보여서 저도 모르게 따라와버렸습니다."
임무라는 소리에 시에미는 그의 얼굴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이마를 맞댔다.
"여전히 스킨쉽 거리감 제로네요, 당신은."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거야?"
"책입니다."
"당장 그 책 버려."
"보통 이렇게 거리감이라면 얼굴이 붉어진다고 하던데요."
"그거야 이성과 이성 관계고."
"그럼 저흰 무슨 관계인데요?"
"부모와 자식?"
그와 자신과의 관계는 부모과 자식 관계가 아닐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죽어버린 감정을 다시 키워내는 일 역시 부모의 마음으로 키워냈으니까.
"아들을 귀여워하는 엄마의 스킨쉽…일까나."
"모르겠네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아무튼 임무 무운을 빌게."
너의 형처럼 죽어버리지 말고…. 시에미는 맞댄 이마를 떼어냈다.
"몸 무사히 다녀와야 해."
시에미의 인사를 받은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휙 사라졌다.
"거둔 만큼 좋은 곳에서 자라나게 하고 싶었는데…."
단조와 메이코는 자신의 부하들은 각자 파벌에 스파이로 잠입시켰다. 나뭇잎 마을에서 서로를 없애기 위해 물밑 작업으로 말이다.
"미안."
그의 앞에서는 절대로 하지 못할 사과를 바람소리에 묻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