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요(3부) 84
비오는데도 거리는 활기찼다. 물건을 파려는 상인들과,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들, 그리고 여행객들…. 시에미는 그 거리를 담 높은 건물 창문으로 내려다봤다.
지금쯤이면 마사키에게 카카시의 파도나라 임무에 대한 방심이 귀에 들어가겠지. 마사키에게 쩔쩔매는 카카시의 모습 보고싶었는데.
"들어가겠습니다."
노크소리가 들리자 시에미는 시선을 돌렸다. 방 안으로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방해했나요?"
미쿠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야?"
"가토 컴퍼니 말입니다, 저희가 인수했습니다."
"그래. 전부 갈아엎었고?"
"네. 자부자씨랑 하쿠군이 도와주었습니다."
"호오."
병을 제거했다고 하나 안정을 취하라고 말한 것이 4일 전이라고 생각하는데.
"메이코님?"
"잠깐 기다려줄래? 자부자랑 하쿠는 방에 있지?"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시에미는 미쿠모를 뒤로 하고 자부자와 하쿠의 방문을 노크했다.
"시에미양?"
"안으로 들어가도 되죠?"
웃고 있는 얼굴에서 한기를 느낀 하쿠는 비켜주려다가 멈칫했다.
"들어가겠습니다."
하쿠를 살짝 밀치고 시에미는 강제적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시에미냐."
자부자는 무기(대도)를 손질하고 있었다.
"병이 치료되어서 몸이 펄펄 날아다녔나보군요. 안정을 취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운동이다, 운동."
"환자가 의사 허락 없이 뭔 운동을 합니까. 당신이 제 환자로 있는 한 그런 몰상식적인 일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간단한 운동이라니까."
"운동이라도!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안 된다고요!!"
"시에미양, 진정하시고요."
"하쿠도 그래요! 자부자를 말려야지 같이 날뛰고 와요?! 언어도단입니다! 정말이지!"
"아…. 저기."
"당신들, 잘못한 짓을 했으면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에미가 분노해 외쳤다. 그제야 그녀가 화난 포인트를 안 자부자와 하쿠였다.
"죄송합니다."
"미안하다."
사과하자 시에미는 언제 화를 냈냐듯이 숨을 들이마쉬고 진정했다.
"저도 미안합니다."
시에미는 종이 뭉치를 꺼내들어 하쿠에게 내밀었다.
"뭡니까?"
"약물치료제조법입니다. 전직 헌터닌자이니 하쿠가 무리없이 만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쿠는 그것을 읽어내려갔다.
"네. 만들 수 있을 것 같군요."
"무기는 어떻습니까?"
"맘에 들어."
"다행이군요."
"시험해본 녀석들이 시시했지만."
"갱들에게 뭘 바라는 겁니까. 아무튼 그 무기에는 수절포정이 지닌 능력인 철분 흡수로 자기재생하는 능력을 집어넣으니까 사용하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도 알고 있다니."
그거야 당연하잖아. 그 닌자도를 만든 장인이 반요들 중 한 명이라고.
"이걸로 계약은 끝입니다. 츠쿠하네 상단에 있던지 여행을 떠나든 그건 당신들의 자유입니다. 그럼."
시에미는 아쉬움없이 뒤돌았다. 방으로 돌아온 시에미는 미쿠모와 함께 사업 얘기를 다시 얘기했다.
어두운 밤, 시에미는 만주사화가 핀 화단 앞에 서 있었다. 곧 그녀는 흰 꽃을 한 개 꺾었다.
"감기라도 걸릴 셈이냐."
어둠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에미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자부자는 밤산책입니까?"
모습을 드러낸 자부자에 시에미는 잔잔한 호수 표면같은 시선으로 보았다.
"어울리지 않는 청승이군."
"뭐 좀…."
좋지 않는 소식을 토비오가 가져왔으니까. 코스케가 유리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뒤, 강으로 투신자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애틋하게 아끼는지 알고 있기에 그게 거짓이란 것이 알았다. 코스케는 사비루에게 당했다.
"궁금하군."
"?"
"어쩌다 나뭇잎 같은 물러터진 곳에서 너 같은 놈이 나온 건지."
"나뭇잎은 무르지 않습니다."
"네 마을이라고 편 들어주기냐?"
"설마요. 대의를 위해서라며 구역질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썩은 상층부에, 그 상층부가 보여주는 것만 믿으며 짜증스럽게 구는 마을사람들까지. 마음에 드는 거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들의 썩은 부분을 아프다고, 피가 난다는 이유로 그냥 덮어놓기만 하는 어리석음에 질립니다. 정말 싫습니다, 그곳은."
시에미는 거침잆이 독설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용케도 탈주 안 했군."
"나루토는 좋아하거든요, 나뭇잎. 동생 옆에 있고 싶은 마음이 나뭇잎을 싫어하는 마음보다 크고, 그 아이들 옆에 있고 싶거든요."
"동생인가…."
자부자는 작게 중얼거렸다.
"가족, 있으십니까?"
"있다. 동생이 말이지. 그 앤 마을에 있겠군."
"두고 나오신 겁니까?"
"아니. 내 이상에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약해서 버린 거다."
빗방울은 세차게 흘러내린다.
"후회하나요?"
"난 내 이상을 위해 움직였다. 후회할 리가 없다."
"그럼 됐잖아요. 가족이라도 자기 자신이 아니니 결국 남에 불과하죠."
"…."
"언제나 저도 후회하지 않을 길을 선택할 겁니다. 혹 뒤늦게 탈주를 선택하게 된더라도 그건 분명 제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코스케 쪽이 먼저겠지. 시에미 손에 들린 흰 만주사화가 붉은 피안화로 변했다.
**
메이코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나타나타 호카게들은 놀란 눈이 되었다.
"메이코?"
"기별없이 나타나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번 안건은 흥미로워서 말이죠."
"흥미로워도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면서 항상 피해왔던 너가 말이냐?"
그래. 회의장에 들어가려면 베일을 벗어야했다.
"끔직하게도 싫지만, 최악보다는 차악이 낫죠."
베일을 벗는 건 싫지만 유리의 복수를 하지 못하게 되는 건 더 싫다.
"메이코님!"
한 닌자를 뒤에 대동한 채 걸어오던 하지메가 메이코를 발견하자 달렸다.
"오랜만이에요, 메이코님! 불쑥 나타나신 건 여전하시네요!"
비꼬는 거냐? 오랜만에 나타났다고 지금 비꼬는 건가.
"안건이 흥미로워서. 네가 낸 안건이야?"
"아뇨. 사비루, 인사드려라. 츠쿠하네 메이코님이셔."
하지메가 뒤에 있던 한 남성을 소개했다.
"사비루라고 합니다!"
사비루가 메이코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장래가 유망하군요. 하지메, 이러다가 부장 자리 빼앗기겠군요."
"아하하, 그럴 지도 모르죠."
넉살 좋게 웃는 하지메. 대체 무슨 생각일까? 부하를 시켜 사비루를 감시했다는 걸 머리 좋은 그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뇨! 부장이 저보다 더 뛰어납니다!"
사비루는 겸손을 떨었다.
"내가 가진 술법은 전부 메이코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거든."
"에?"
"나보다 메이코님이 더 뛰어나셔. 메이코님도 우즈마키 일족 피가 흐르시거든."
"!!"
"아쉽게도 혼혈이라서 붉은 머리칼이 아니라 주홍빛이지만."
"닌자라면 실력이지 피가 뭐가 중요해?"
꼭 붉은 머리칼만이 우즈마키 일족이라는 것도 아닌데.
"메이코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남들이 부러워하는 혈통은 전부 가지고 있으면서!"
"메이코님도 닌자 일족이십니까?"
"그럴 리가. 난 화류계 출신이니까."
"또 그런 소리를 하시네요. 조부모님이 나뭇잎을 세운 두 창립자-악!!"
더 이상 말하지 말라듯이 메이코가 세게 하지메의 발을 잘근잘근 밟았다.
"회의에 늦겠군요. 들어가죠."
발을 움켜쥐고 방방 뛰는 하지메를 무시하고 메이코가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회의가 시작되자 사비루는 자신이 생각해낸 안건에 대해 말했다.
"지금부터 사비루가 제안한 안건 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안건에 찬성하신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츠쿠요 히메, 호카게, 시카쿠, 하지메, 메이코를 제외하고 손을 든 사람들. 불의 나라 영주는 부채를 흔들며 회의 내용을 지켜봤다.
"그럼 다수가 찬성하였으므로-"
"이의있습니다!"
회의장에 난입한 코스케에 메이코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넌? 의외가 있다는 건 무슨 의미지?"
"코스케."
하지메는 메이코의 눈동자가 점점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것에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안 되요, 메이코님!"
하지메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메이코를 말렸다.
"저는 코스케라고 합니다! 특명을 받아 나뭇잎마을에 잡입한 스파이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
"애당초 누가 명령을 내렸다는 거냐."
"제가 명했습니다."
메이코가 말했다.
"제가 코스케에게 스파이로 의심 중인 사비루를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
"그러니 이 결정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죠."
메이코의 말에 귀족들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메이코는 수뇌부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권력이 있다. 그렇기에 결정을 뒤집게 할 수 있었다.
"메이코 의심을 사는 자라면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츠쿠요 히메가 말했다.
"젠장!"
사비루가 휙 도망쳤다. 메이코의 눈짓에 암부 젠이츠가 사비루를 쫓았다. 메이코는 코스케를 데리고 회의장에서 나섰다. 숲으로 들어오자 메이코가 발을 멈췄다.
"그래서 넌 누구니? 코스케는 죽은 자. 그런 자로 변신하다니…."
"헤헤."
변신을 풀자 나루토가 나타났다.
"도와줘서 쌩큐라니깐, 메이코 누나!"
"아니, 메이코면 충분하다고 했-!"
"메이코 누나!!"
위에서 사비루가 나타나 메이코의 몸에 올라타 목에 쿠나이를 겨눴다.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전부 네 년만 없었다면!!"
"나뭇잎의 방위권 실권을 잡아서 뭘 하려는 생각이었지?"
"지금 누가 위인지 모르겠냐."
"고작 쿠나이를 목에 겨누고 있으면 내가 덜덜 떨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천한 창기가!!
사비루는 알 수 없는 힘에 날아가 반대편 나무에 부딪쳐 바닥을 굴렀다.
"쿨럭! 뭐, 뭐지?"
"누가 천하다는 거야?"
살인을 하는 닌자에게 듣고 싶지 않는걸. 메이코가 몸을 일으켰다.
"기녀는 비록 몸을 팔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타인의 더러운 말에, 무자비한 손길에 농락당할 지라도 웃음을 잃지 않는 건 자존심을 버렸기보다 긍지를 지키는 행위! 자신들의 처지를 확실히 자각하고 그 어떤 불합리함 일지라도 순응한 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도 강함이다. 게다가 인간의 임무란 애초에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목숨을 이어가는 자가 이기는 법이야."
메이코의 분노어린 말에 나뭇가지 위에 있는 카카시는 끼어들 수가 없었다.
"특별히 내 동술을 보여주지. 엄청 사이 나쁜 센쥬와 우치하가 결합하면 과연 어떤 괴물이 나오는지 아니?"
"그, 그 눈동자는 뭐냐!!"
"윤회안. 육도선인의 눈동자로, 우치하와 센쥬의 피 결합을 하고도 아주 극소수만 개안할 수 있는 신의 눈동자. 그러니 너따위가 내 상대가 될 리가 없어."
메이코 뒤에서 금빛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빛의 파동 속에서 창검 무기들이 나타나 사비루에게 날아갔다. 아니, 쏟아졌다.
"들어야 할 것이 있으니 죽이지는 않으마. 그치만 널 곱게 심문부대로 넘기면 마루보시 부부가 눈을 편히 못 감지 않겠느냐!"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사비루에 메이코는 무기를 거뒀다. 동술의 힘은 그녀의 몸을 갉아먹는 힘이었기 때문에 많이 사용할 수가 없었다. 메이코가 동술의 고통에 주저앉았을 때, 카카시가 내려왔다.
"카카시 선생님!! 이 녀석이 스파이라니까!"
"안다."
"조심해!!"
메이코가 무언가 느끼고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사비루는 어딘가로 날아온 독침에 처리되었다.
"입 막음 당했군."
"메이코님!"
"젠이츠. 뭘 했길래 지금 나타났지?"
"죄송합니다."
"됐어…. 문책하기도 피곤하군."
"힘을 사용하신 겁니까?"
"조금."
메이코는 눈동자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고마워, 우즈마키 나루토."
"누나?"
"덕분에 부하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어. 그 안건이 통과되었다면 마을에 어떤 피해가 나왔을지…. 아무튼 고마워."
"아니, 아니라니깐! 난 어쩌다 아저씨 영혼이 봉인된 부적을 떼버려서 그런 거러니깐. 메이코 누나가 코스케 아저씨랑 아는 사이인줄 몰랐다니까!"
"내가 아는 건 마루보시 부인 쪽이야. 이젠 못 만나겠지만……."
메이코는 베일을 써서 슬픈 눈동자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