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요(3부) 99
전광판에 빛이 들어왔다.
"좋아. 이번에야말로 네 차례다. 자 가라, 리!"
"아뇨. 여기까지 온 이상 마지막이 좋습니다."
가아라가 아래로 내려갔다. 18회전, 가아라 vs 록 리.
"어떻습니까? 마지막이 좋다고 하니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전신추에 맞출 생각으로 던지면 맞지 않고 빗나갈 생각으로 던지니 맞는다는 법칙의 응용입니다."
"오우! 역시 내 제자!"
"전 마지막따윈 사양입니다. 훌륭히 걸려들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누가 걸렸는데…?"
이타쿠는 질린다는 얼굴로 아버지와 아들 같이 쏙 닮은 스승과 제자인 가이와 리를 보았다.
"그런 너에게 하나 나이스한 어디바이스를 해주지."
"옙!"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저 호리병이 수상하다."
"과연."
"메모는 관둬라! 전투 중에 그걸 볼 시간은 없다, 바보자식!"
"과연!"
진짜로 괜찮은 걸까? 타에는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좋아! 다녀와라, 리!"
리가 아래로 내려가 가아라와 마주보았다.
"처음부터 당신과 싸우게 되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겐마의 시작하라는 손짓에 리가 가아라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강하게 휘둘러진 리의 다리가 가아라의 호리병에서 흘러나온 모래들에 의해 막혔다. 가아라의 모래는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시행했다.
"저 빠른 리씨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거냐니깐?"
"저 녀석에겐 어떤 물리공격도 통하지 않아. 가아라의 의지와 관계없이 모래가 방패가 되어 몸을 지켜주니까 말이지. 그렇기에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도 없었다고, 가아라한테 상처 입힌 녀석 따윈."
칸쿠로의 설명에 나뭇잎 마을 일동은 침묵했다. 공포를 담은 이, 호승심을 담은 이, 걱정을 담은 이. 가지각색의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고요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일미의 능력은 아니라고?"
"뭐라고? 그니까…."
"이타쿠. 성은 없으니까 이타쿠라고 불러. 그리고 방금 전은 단순한 혼잣말이니까 신경 꺼."
칸쿠로는 단호히 거절하는 태도에 낮게 신음하고 다시 시합을 관전하기 시작했다. 한편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체술로만 공격하는 리의 모습에 타에는 의문을 느끼고 옆에 있는 가이에게 물었다.
"어째서 리는 체술만 쓰는 거죠? 접근전이 힘들면 조금은 거리를 두고 인술로 싸우는 편이…."
"쓰지 않는 게 아냐. 쓸 수 없는 거다."
"?"
"리에겐 인술, 환술 스킬이 거의 없다."
"거짓말!!"
사쿠라들은 깜짝 놀라워했다.
"내가 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완벽히 노센스. 아무런 재능이 없었다."
"믿을 수 없어…."
리가 모래를 피해 동상 위로 착지했다.
"확실히 인술도 환술도 쓸 수 없는 닌자라니 그렇게 많지는 않지. 그렇기에 닌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리에게 남겨진 길은 유일하게 체술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긴다. 리! 해제다!!"
"하지만 가이 선생님! 그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때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상관없다! 내가 허락한다!"
가이 말에 리는 자신의 다리에 달려있는 각반을 벗었다. 무슨 저런 허접한 수업을….
"좋아! 이걸로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겠어!"
땅으로 떨어진 각반은 마치 무거운 바위가 떨어진 것마냥 커다란 소음을 내며 지면을 흔들었다. 그 어마어마한 무게에 다들 입을 딱 벌렸다. 저런 무게를 달고 그런 스피드를 냈었다니. 그럼 벗으면?!!!
"가라, 리!!"
각반을 푼 리의 신형이 동상 위에서 사라졌다. 모래가 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막았고, 그마저도 퍽퍽 뚫리곤했다. 그 변화에 가이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인술이나 환술을 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체술에 더욱 시간을 투자하고 체술을 위해 노력하고 모든 것을 체술에만 집중해왔다. 설령 다른 술법은 쓸 수 없다 해도 녀석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체술의 스페셜리스트다. 청춘은 폭발이다!!"
엄청나게 빨라진 리가 가아라 모래 방어를 뚫고, 그의 안면을 때렸다.
"굉장해! 빨라! 직격이라구!"
"모래가드가 완전히 따라가지 못하네."
"괴, 굉장해."
"공격이 너무나도 빨라."
"눈으로 쫓아갈 수 없어."
"가아라!"
날아가는 가아라에 나뭇잎은 환호했고, 모래는 불안해했다.
"위험한걸."
"어, 위험하지! 저 눈 밑에 기미 낀 녀석! 꽤나 무거운 공격을 먹었다니깐."
"그쪽이 위험하단 게 아니다."
가아라가 몸을 일으키자 그의 얼굴에서 후두둑 모래가 떨어졌다.
"뭐, 뭐야? 얼굴이 뚝뚝 떨어지잖아."
"전혀 상처 없는 건가."
"대체 뭐야, 저 녀석."
광기어린 가아라 표정은 몸에 다시 모래를 두르면서 사라져갔다.
"어이, 저게 뭐냐니깐? 방금 전 송충이 눈썹의 공격도 저걸로 가드한 거야?"
"그래. 저건 모래 갑옷이다. 평소엔 모래 방패가 자동으로 가아라를 지키고. 만일 하나 모래 방패가 무너졌다고 해도 모래 갑옷이 공격을 막아낸다. 저게 가아라의 절대방어다."
"그러면 어떻게 싸울 방법이 없잖아?! 약점 같은 게 없는 거냐구."
팔의 붕대를 푼 리가 모래 갑옷 위에 엄청난 데미지를 주기 위해서 연화를 사용한다. 가이는 조마조마한 모습으로 리를 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다. 그때 몸의 아픔에 잠깐 멈칫하고 리는 곧 아무렇지 않게 붕대로 가아라 몸을 감싸고 그대로 머리부터 낙화했다.
"연화1!!"
엄청난 소음과 함께 떨어진 가아라. 처참할 정도로 패어진 바닥 모습에 관중들은 경악하고 환호했다. 먼지가 걷히고 부스스 떨어지는 가아라 몸체. 그 안은 놀랍게도 텅 비워있었다.
"역시 그때, 모래분신으로 바꿔치기 한 걸까."
"언제!!"
"네가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을 때다. 리는 한순간 몸의 통증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때다."
등 뒤 모래 속에서 나타난 가아라가 인을 맺었다. 모래파도에 리가 피하지 못한 채 휩쓸렸다.
"왜? 왜, 리씨! 안 피하는 거에요? 리씨의 스피드라면 저 정도의 공격 빠르게 피할 수 있잖아요!"
"안 피한 게 아니다. 못 피한 거다."
"무슨 소리에요?"
"아까 연화란 기술은 양날의 검이란다."
"양날의 검이라니?"
"왜 연화라는 기술이 금술이 됐는지 아니? 연화는 인술이나 환술이 아냐. 고속이동을 통한 체술이야. 보통 몸으로 받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지. 지금은 몸 전부가 아픔으로 움직일 수 없을 거다."
가아라는 음산하게 웃으며 장난감처럼 리를 갖고 놀고 있었다.
"인술도 환술도 못 써."
"그나마 유일한 체술도 지금은 보통 이하."
"승산이 없다구."
"지금 이대로라면 가아라한테 농락당하다가 죽을 뿐이다."
"안 돼요, 리씨! 이 이상 싸웠다가 정말 죽는다구요!"
리가 가아라 공격을 피했다. 스피드가 돌아온 건가?
"리의 움직임이!!"
"돌아왔어!"
"리씨, 웃고 있어. 저렇게 몰리고 있는데."
"아니. 이번엔 이쪽이 반격할 거다. 나뭇잎 마을 연화는 두 번 핀단다."
가이의 말에 카카시와 마사키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가이, 너!"
"너희 상상대로다."
"그럼 하닌인 저 아이가 팔문둔갑의 체문을 열고 이연화(연화2)를?"
"그렇다."
"이럴 수가…."
"가이. 지금 저 아인 팔문둔갑 중 몇 개까지 열 수 있나?"
"5문이다."
가이 말을 이해한 사람들은 경악한 시선으로 리를 보았다. 고작 하닌인 팔문둔갑 체문을 연다고?!
"도대체 뭐에요! 그 팔문둔갑이라든가 이연화라든가!"
"팔문둔갑은 이연화에 가기 전 리미트 해제란다."
"그래. 차크라가 흐르는 경락계에는 머리부터 순서대로 몸 각 부위에 개문(開門), 휴문(休門), 생문(生門), 상문(傷門), 두문(杜門), 경문(景門), 경문(驚門), 사문(死門)이라 불리는 차크라 흐름을 관리하는 이것을 팔문이라고 부른다. 이 팔문은 몸에 흐르는 차크라 양을 적당히 제어하지만 연화는 그 제어를 무리하게 열어 본래 몇 배가 되는 힘을 내게 하는 거지."
"연화1은 제1문 개문만 열어서 몸 제어를 풀어 근육의 힘을 한계까지 올릴 수 있는 기술."
"그럼 연화2는?"
"제2문 휴문에서 무리하게 체력을 올려서 제3문 생문까지 열어야한다. 그후부터 연화2에 해당되지."
"그, 그런! 연화1만으로 저렇게 몸이 엉망이 되는데! 그 이상의 기술을 쓰면!!"
"그래. 팔문을 전부 열면 조금은 호카게님정도 힘을 얻게 되나 그 술사는 반드시 죽는다."
마사키의 말에 사쿠라들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카카시는 어느덧 서클렛을 똑바로 해서 사륜안을 드러냈다.
"저 아이가 너에게 있어서 어떤지 추궁할 마음도 없고, 사사로운 정을 주지 말라는 말도 아니지만. 한도라는 게 있다. 실망이다, 가이!"
"네가, 저 아이의 뭘 안다는 거냐! 저 아이에겐 죽어도 증명해야 할 소중한 게 있다. 그래서 나는 그걸 지킬 남자가 되길 바랬다. 그냥 그것뿐이다."
리가 팔문둔갑을 열고 있는지 피부색이 붉어지고 몸에서 푸른 증기가 흘러나왔다.
"생문을 열었군. 움직인다."
"아니, 아직이다."
제4문 상문을 열고 리가 움직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리가 폭풍처럼 가아라를 두들겨 팼다. 가아라의 모래 갑옷이 벗겨나가고 부셔지기 시작했고, 모래 방패는 아예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제5문 두문을 열고 연화1처럼 풀어진 붕대로 가아라 허리를 감아 그대로 끌어당겼다. 리는 온힘을 다해 팔과 다리로 가아라 복부를 공격했다.
"가아라!!!"
콰쾅! 시합장에 처박힌 가아라를 보며 사와코는 비명을 질렀다. 가아라가 떨어지고 모든 힘을 소진한 리도 그 옆에 떨어졌다. 팔문둔갑을 연 후유증으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리의 승리 확신을 깨고 먼지구름 속에서 모래가 튀어나왔다.
"헉…!"
가아라가 땅에 박힐 때 등 뒤에 있던 호리병이 모래로 변해 완충작용했다는 것에 사와코는 휴우 안도했다. 튀어나온 모래가 리의 한쪽 팔다리를 휘감았다.
"사박궤!!"
"끄아아아악!!"
쓰러진 리를 향해 쏟아지는 모래에 가이가 끼어들었다.
"왜…, 구해 준 거지?"
"이 녀석은 내 소중한 부하다."
"…그만둘래."
가아라는 흥이 깨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가이가 들어간 시점에서 리의 패배가 된 거다.
"승자, 가아라…어?"
팔다리에 피가 흘리는데도 리가 일어나 섰다.
"리, 이제 됐다. 시합은 끝났다. 넌 더 이상 설 수 있는 몸이……!!!"
가이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알아차렸다. 리는 이미 기절한 상태라는 것을….
"리! 너란 녀석은!! 의식을 잃고도 자신의 닌도를 증명하려고 하는 구나! 리, 넌 이미 훌륭한 닌자다!"
가이가 리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카카시가 서클렛을 비스듬히 해서 사륜안을 가렸다. 사와코가 내려와 다친 곳이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구석구석 가아라를 살폈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보이네. 혹시 모르니 코우시에게 진찰 받아볼래?"
"괜찮아."
곁에 누구도 내주지 않는 가아라는 사와코와 코우시에게만은 살짝 곁을 내줬다.
"저 아이…. 닌자로 두 번 다시 못 살겠구나."
코우시가 중얼거렸다. 마침 의료닌자에게 그 얘기를 들었는지 가이가 충격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런 말하면 송충이눈썹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이 녀석 낙제생이 천재를 노력으로 쓰러트린다고 말했었는데! 어떻게든 해보라니깐!"
카카시가 나루토의 입을 막아섰다.
"진정해라, 나루토."
"하지만 카카시 선생님…. 저 녀석 그렇게도 사스케와 네지랑 싸우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안 됐지만 그게 실수였다. 저 아인 금지된 기술까지 써서 이기려고 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저 아이는 사스케와 네지 그리고 나루토, 너희들과 한 약속을 위해 목숨 걸고 너희와 싸우는 무대를 목표로 했다. 그걸 잊지 마라."
카카시는 나루토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풀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카카시는 가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깐 잘난 듯이 얘기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내가 같은 입장이었더라도 역시 막을 수 없었던 것 같군."
가이는 들은 리의 상태에 충격받아서 움직이지 못했다.
"…시에미라면 고칠 수 있을 지도 몰라."
코우시가 가이들에게 말했다. 그 말에 가이가 번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뭐?!"
"그녀의 의료술 실력은 너희 나뭇잎 민달팽이 공주와 동급이거든."
"민달팽이…. 츠나데님과?!!"
"본인은 부정하지만. 내 눈동자로는 확실해. 시에미 실력은 츠나데와 비등해."
화장실에서 돌아온 시에미를 보자 가이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시에미!!!"
"으헉?!"
난데없이 달려온 가이에 시에미는 깜짝 놀라워했다.
"시에미! 리를! 리를 살려주렴!!"
가이가 엎드려 머리를 숙이며 청했다. 코우시를 힐끗 보다 그가 자신을 향해 눈을 찡끗하는 것이 보였다. 의사는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없이 사람을 살리고 싶은 천성을 지니고 있다. 그치만 공사는 구별해야 했다. 코우시는 지금 모래마을 닌자니까. 모래마을 서클렛을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대신 구해달라는 건가.
"하-아. 알겠으니까 머리를 드세요."
"시에미, 가려고?"
이타쿠가 내려와서 물었다.
"7번째가 부탁했으니까."
"넌 정말 정에 약하다니까."
그는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했다.
"금방 다녀올게."
시에미가 나가고 나서 19회전 대전자를 발표했다.
"귀찮아……."
이타쿠는 지루하다는 눈동자로 눈앞에 선 나기히코를 바라보았다. 슈스이의 동생들…. 나기히코와 나데시코는 분명 시에미가 본인 눈앞에 나타나면 죽이겠다고 경고했는데도 그 경고를 뻔뻔히 무시하고 나타났다. 그렇다는 건 죽어도 되겠다는 소리겠지?
"19회전 개시!"
겐마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이타쿠는 눈앞의 상대가 무언가를 먹는 걸 보고, 그림자에서 검은 손들을 꺼내들어 공격을 시작했다.
한편, 시에미는 나나와 함께 리의 수술실로 들어갔다.
"진짜로 고칠 수 있는 거야?"
"전신 세포 활성술을 사용할 겁니다."
"세포 활성술을? 아니 전신이 가능해? 각각 부위라면 다들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전신이라면 조금 어려운데."
"그것보다 나나가 수술실로 들어올 수 있게 도와줘서 다행입니다."
"네 실력은 칸나에게 듣고 대충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수술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의료닌자들이 안 된다고 고지식하게 주장해서 기절이라도 시킬까 생각할 때 나나가 나타났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테니까 수술실로 들여보내.'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다른 사람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해서 리의 수술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큰 수술이 끝내자 나나는 시에미를 칭찬했다. 마무리 부분은 다른 의료닌자에게 맡기고 두 사람은 수술실을 나섰다.
"엄청나 실력이잖아. 병원에서 일할 생각 없어? 너 정도라면 당장이라도 병원에서 일하게 해줄게."
"아뇨…. 됐습니다."
"전신 세포활성술 응용이라…. 당장 가서 논문을 써야겠어. 이런 획기적인 것은 다른 의료닌도 알아두면 좋겠지."
"가이 선생님에게는 안 알립니까?"
"맞다! 리가 가이의 제자였지."
나나는 근처에 있는 의료닌에게 대신 전달해달라는 명을 내렸다.
"직접 안 가시게요?"
"지금은 논문이 더 급해."
연구자 눈동자가 되어 반짝이는 그녀에 시에미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시에미, 당장 탑으로 안 돌아가도 되지? 그럼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해줄래?"
"…좋아요."
"좋아, 그럼 당장 가자!"
나나는 시에미를 데리고 자신의 진료실로 향했다. 그녀와 한 10분동안 전신 세포활성술에 대해서 문답하며 떠들었을까? 목덜미가 욱신, 아파왔다.
"-!!"
"시에미?"
그 아픔에 시에미의 손에 있던 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그 소리에 나나는 그녀를 불렀다.
"아윽!!"
"시에미, 왜 그래? 아픈 거야?! 아프면 나에게 보여줘봐!"
목덜미를 쥐어뜯을 것처럼 손톱을 세운 시에미가 나나가 상처를 살펴보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바닥에 뜯어진 초커목걸이에 신경도 쓰지 않고 시에미는 달려갔다.
예선전이 벌어진 그 장소에서는 불길한 차크라가 새워나오고 있었다. 출입구에 들어선 시에미는 보이는 광경에 헛숨을 들이켰다.
"!!"
그림자에서 나온 새까만 거대한 손은 이타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청자색빛 사슬을 한 번 움켜쥐는 것으로 부셔버렸다. 사슬이 부서지자 불길하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섬뜩한 차크라는 댐둑이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흘러나왔다. 닌자들은 그 차크라에 공포 먹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야타…!"
사토리의 봉인이 풀려서 야타가라스가 봉인을 비집고 풀려고 하는 건가. 역시 그에게 봉인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욱신거리며 목덜미에 박힌 주인이 언제 다시 날뛰지 모르지만 지금은 저것을 다시 봉인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겠지.
"9번째!!"
사와코와 코우시가 시에미 앞으로 착지했고, 이타쿠의 그림자를 모래로 막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기히코? 그 녀석이, 까마귀의 상대 역할이 사토리 모조품을 지니고 있어서 거기에 공명해 폭주중이다."
"흑단으로 사토리 복제품을 만들려고 한 건가?"
"생각은 나중에! 저 녀석 공격은 우리라도 몇 분 밖에 못 버텨!"
코우시 설명을 듣고 사와코가 다급히 외쳤다. 시에미가 인을 맺자 거대한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거기서 생겨난 백금빛 사슬들이 원을 그리며 지면에 박혔다.
"!!! 쿨럭!""
"시에미?!"
그때 주인이, 몸 속에 있는 주인이 날뛰기 시작한다. 그녀가 엎드려 피를 연속적으로 토했다. 놀란 코우시가 몸을 숙여 시에미를 살폈다. 그녀의 왼쪽 반신을 뒤덮는 반점들.
"이게 뭐야…?"
시에미가 입가를 손등으로 닦고, 손을 이타쿠 쪽으로 뻗고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자, 백금빛 사슬은 힘을 얻어 거대한 손을 사라지게 했다.
불길한 차크라가 사라지자 이타쿠가 풀썩 앞으로 쓰러졌다.
"시에미, 설 수 있겠어? 못 서겠다면 손을 빌려줄게."
"…됐어. 사와코나 살펴봐줘."
거친 호흡을 하며 시에미가 끙,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차크라를 다스려 주인이 물러나가게 했다.
"머리 아파…."
이타쿠가 중얼거렸다. 정신을 차린 건가? 시에미는 그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들어? 너 폭주했어."
"!!!"
그 말에 이타쿠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에미의 양팔을 움켜쥐었다.
"너는!! 넌, 괜찮은 거야?"
"차크라를 많이 쓴 것을 제외하면 문제……."
차크라 고갈로 시에미가 기절하자 이타쿠가 재빨리 그녀를 받아줬다. 이타쿠는 그녀를 소중하듯이 끌어안았다. 가아라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타쿠의 그 힘은 두려움을 주는 힘인데, 어째서 저 녀석은 사랑 받는 거지? 가아라는 두 사람을 예의주시했다.
시에미가 들것에 실려가고, 이타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시에미양, 주인술이 박혀있었군요. 그래서 인술보다 체술 위주로 그 동안 싸워왔던 거군요."
"어."
"봉인열쇠라는 건 거짓말이야?"
"거짓말은 아니야. 그걸로 주인을 봉인하고 있었거든. 이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마지막 20회전이 재개되었다.
"그럼 최종전 마지막 대전자 앞으로."
아키미치 쵸지와 도스 키누타가 앞으로 나왔다.
"힘내!"
"뚱보!"
"저 자식들!! 두고 보자! 이 시합이 끝나고 요리해주마!"
"그럼 놀지 말고 빨리 끝내주마, 뚱보야."
쵸지 앞에서 '뚱보'라는 말은 금지어인데.
"붕대로 칭칭 감은 미라 같은 녀석이!"
발끈한 쵸지가 아키미치 일족 비전인술 배화술로 몸을 커다랗게 만들었다. 그리고 팔다리, 얼굴을 몸 아래로 집어넣고 그 커다란 몸을 도스를 향해 공처럼 굴렀다.
"육탄전차!"
회전하고 있는 쵸지 몸이 벽에 박히자 도스가 주먹을 질렀다.
"그래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거기를 노린다."
"귀를 막았으니까 소용없다!"
"아니, 이제 끝이다."
도스가 공격하자 쵸지가 으아아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인체의 70% 이상은 소리를 전도하는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네 몸 전체가 귀나 마찬가지."
"승자, 도스 키누타."
기절한 쵸지를 본 아스마가 "지긴 했지만 고기 뷔페에 데려다주마."라고 말했다.
"그럼 이것으로 제3차 예선전을 끝마치겠습니다."
드디어 예선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