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하네가 07
눈을 뜨자 양호실 천장이 들어왔다. 분명 체육관으로 카라스노가 들어오고, 입가에 점이 있는 미인 매니저와 인사를 나눈 후….
'안녕하세요. 매니저인 1학년 하네 세츠카입니다.'
'매니저인 3학년 시미즈 키요코에요.'
'말 편안히 하셔도 괜찮아요.'
'그래…. 고마워.'
매니저님, 진짜 미인이던데. 언니들과는 다른 타입의 미인이었어.
'음, 혹 가지고 있는 물품이 부족하거나 찾는 곳이 있다면 알려드릴게요.'
그러자 시미즈는 웃으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대화를 끝맞히자 시미즈 뒤에 있는 카라스노 배구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까마귀 군단답게 새까만 져지를 입고 있었다. 그 중 제일 까마귀 같은…….
"읏!"
머리가 지끈 아프자 신음을 내뱉었다.
"셋짱! 이제 괜찮아?"
그 신음소리에 카에데는 세츠카가 누운 침대로 다가왔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네. 없어요…. 걱정했나요?"
"그거야 당연하지!"
자신을 끌어안은 카에데에 세츠카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양호실을 나와, 체육관으로 돌아가던 세츠카의 눈에 교문을 나가려는 카라스노가 보였다. 학교 밖으로 나가려는 카라스노 선수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무언가 재수없는 표정으로 도전장이라도 내밀 듯 이야기 하는 오이카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럽게 귀여운 후배를 공식전에서 같은 세터로 정정당당하게 쓰러뜨려 주고 싶거든."
"그건 무리에요."
카게야마가 멍청하게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툭 내뱉었다.
"오이카와 씨, 그거 이제 무리입니다."
""""!?""""
"엣!? 잠깐 토비오, 그게 무슨 뜻?"
"배구는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 아닙니다. 6 대 6 싸움이죠. 그러니까 더 이상 '저' 개인을 쓰러뜨리겠다는 건 무리입니다."
카게야마는 과거에 하루토가 자신에게 해준 말을 되새기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카라스노의 배구부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저 혼자를 쓰러뜨리겠다는 건 무리입니다. 팀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이번 시합 세터로 절 지목하셨더군요. 카라스노에는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정식 세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저는 아직 그걸 따내지도 못했습니다. 분명 스가와라 씨보다는 제가 더 잘합니다. 실력의 차이가 분명합니다. 그렇더라도 그는 카라스노의 세터입니다. 세터로서의 자긍심이 있었습니다. 오이카와 씨는 그걸 짓밟았어요. 실망했습니다."
"!!"
세츠카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카게야마의 말을 들은 오이카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동시에 카라스노 부원들의 얼굴이 히죽거렸다.
"토비오짱?! 실망했다는 거,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습니다."
"그럼 갈까?"
"우스!"
"망할카와!!!!!"
멀리서 오이카와를 부르는 험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력 있는 발소리는 덤이다.
"후배 괴롭히지 마!!!!"
하루토는 오이카와를 순식간에 땅바닥에 앉히고, 그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오이카와는 그 악력에 비명을 질렀다.
"아, 아파!!! 손! 손 좀 놔줘!!"
"죽어――!"
"사, 살려줘!! 하루짱이 주장님을 죽이려고 해!! 이와짱! 맛층! 맛키!!!"
뭉친 부위를 꾹국 눌러가며 어깨를 주무르자 아프다는 비명이 어느새 확 줄어들고 고롱고롱해진 오이카와에 하루토는 그를 옆으로 치우고 카게야마와 대면했다.
"오랜만입니다, 하루토 씨."
"아아, 그래. 카게야마."
"네."
"다음엔 정식전에서 만나자."
"우스. 저기…."
"세츠카는 무사해. 단지 기억상실증이라서 아무것도 기억 못 해. 나도 너도 슈이치도."
"…그렇군요."
카게야마는 뒤쪽에 서 있는 세츠카를 발견했다.
"셋짱."
오이카와를 회수(?)하려고 몸을 돌린 하루토도 그녀를 발견했다.
"괜찮아?"
"네. 빈혈이 일어난 것 같더라고, 캇짱이 그랬어요."
"그럼 카게야마. 오늘 하루 수고했어. 푹 쉬어라."
오이카와를 질질 끌고 하루토은 체육관으로 걸어갔고 세츠카가 그 뒤를 따랐다.
"셋짱!"
체육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세츠카는 쿠레나이와 히마와리에게 끌어안겨졌다. 곧 카에데와 하루토도 세츠카를 에워싸듯 끌어안았다. 서로의 온기에 안정을 찾아가는 남매들을 세이죠 배구부원들이 다들 아닌 척 힐끔거렸다. 그 중 몇 명은 아주 흐뭇하게 다섯 사람을 지켜봤다.
"에엣, 하네 남매짱들 염장질이야? 신성한 체육관에서 뭐하는 짓일까~! 민폐네, 정말!"
오이카와는 체육관에 돌아오자마자 남매가 부둥거리는 것부터 보게되자 잔뜩 심통 난 얼굴을 했다. 그의 목소리에 쿠레나이가 그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오이카와 선. 배. 님."
쿠레나이의 붉은 적안이 싸늘하게 빛나자 오이카와는 움찔했다. 눈을 데록데록 굴리다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쿠짱? 역시 아까 서브 미스 때문에 화났어? 그거라면 진짜 미안."
"경기에 최선으로 임한 결과니까 별로 뭐라 할 생각은 없어요. 배구는 원래 유탄이 많기도 하고. 하지만…."
쿠레나이가 팔짱을 끼고 도발하듯 요염한 미소를 짓었다.
"사과해야 할 대상은 제가 아닐 텐데요?"
왠지 모를 압박에 오이카와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쿠짱, 난 괜찮으니까."
"히짱이 괜찮아도 내가 안 괜찮아."
"네…."
말리려다가 도리어 깨깽한 히마와리는 안쓰럽다는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보았다.
"오이카와 씨. 왜 말이 없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셨나요?"
"히짱, 미안. 아니, 미안합니다."
"좋아요, 그럼."
오이카와가 사과하자 쿠레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풀었다. 쿠레나이가 물러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루토가 바통을 건네받듯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여동생들은 그걸로 쉽게 용서해줬을지 몰라도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하루토가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한 대만 때리자."
"하루짱?!"
마츠카와가 하나마키에게, 하나마키가 여상스러운 얼굴로 하루토에게 배구공을 넘겨줬다.
"맛층?! 맛키?!"
이번엔 이와이즈미가 뒤에서 오이카와의 겨드랑이 밑으로 양팔을 끼어 구속시켰다.
"가라, 하루토!"
"이와짱까지?!"
애통한 외침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하루토는 배구공을 손에 쥐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구속에서 벗나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헛수고였다. 이윽고 하루토는 씨익 웃으면서 오이카와의 복부에 배구공을 던졌다.
"끄앍!"
괴상한 비명소리가 나왔다. 다칠 정도로 세진 않지만 충분히 큰 소리가 날 정도론 세게 던진 공에 오이카와는 한껏 엄살을 부렸다. 이와이즈미가 이제 볼 일 없다는 양 미련 없이 오이카와를 놓자 오이카와는 힘없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하루토는 마츠카와랑 하나마키랑 "웨이-"하며 하이파이브를 했고, 이윽고 다가온 이와이즈미와도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자신만 빼고 장난으로 똘똘 뭉친 다른 3학년들을 억울하게 바라본 오이카와는 지은 죄가 있어서 이번엔 차마 평소처럼 떽떽거리진 않았다. 대신 한껏 불쌍한 인상을 지은 채 세츠카에게 시선을 돌렸다.
"셋짱, 매니저 일 해야지."
"아 네!"
"도와줄게."
오이카와가 세츠카랑 눈이 마주칠까봐 미리 차단하는 셋 쌍둥이었다.
"진짜 다들 너무해."
오이카와는 투덜거리며 스스로 바닥에서 일어났다. 셋 쌍둥이들은 세츠카가 지시도 하기 전에 알아서 매니저 일을 도우기 위해 휙휙 움직였다.
"눈이 호강하고 있어…. 체육관이 빛나고 있어…."
야하바는 체육관 내부에 있는 4명의 미(소)녀들 모습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부원들은 야하바 말에 세차게 수긍했다.
"익숙해 보이네."
하나마키가 드링크를 회수하는 히마와리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전학 오기 전까지 배구부 매니저였고, 쿠짱도 캇짱도 방학때 일본으로 항상 와서는 합숙 때 도와주었거든요."
"네코마…라고 했던가?"
"네. 카라스노가 네코마와의 인연을 기억하고 있어서 기뻤어요."
아까 전에 카라스노 배구부원과 통성명을 했던 것을 떠올리며 히마와리는 웃었다. 네코마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서 괜히 기뻤다. 히마와리의 싱글벙글 웃음에 괜히 부루퉁해진 하나마키는 주제를 돌리기로 했다.
"어제 준 슈크림 잘 먹었어. 맛있었어."
"입에 맞으셨다면 다행이네요."
언니들의 도움으로 태반의 일이 사라진 세츠카는 기록지를 펼쳤다. 미조구치의 보충을 들으며 기록지를 채웠다.
"걱정이네."
"뭐가?"
하루토의 중얼거림을 들은 마츠카와가 물었다.
"마츠카와. 오이카와가 입부한 다음부터 매니저가 없다고 했잖아."
"그렇지."
"지금이서야 매니저가 생기면 오이카와 팬들이 가만 있을까?"
"……."
"질투에 눈 돌아간 사람은 무섭거든."
"…막내 동생이 걱정되는 거야?"
"일단 같은 반인 쿠니미에게도 말해두긴 했지만……. 걱정되잖아. 키다이치의 감정없는 버림받은 여왕이란 악질적 소문도 있고. 쌍둥이들은 당하면 되갚는 성격이라도 있지. 셋짱은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순둥이니까 더 걱정돼."
하루토는 미조구치에게 칭찬을 듣자 퐁퐁 꽃을 날리는 세츠카를 보며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하- 진짜 걱정이네. 대체 누굴 닮았는지…."
"누굴 닮았는데?"
"역시 아빠일까나. 아빠는 얼굴은 무뚝뚝하면서 속은 여리고 쑥맥이었거든. 반대로 엄마는 천사 같은 외모에 독설 잘 하는 소악마계로 계획적으로 순둥이 아빠에게 접근하여 손에 거머쥔 인생 승리자야."
"아…. 왠지 네가 누굴 닮았는지 알 것 같군."
"아하하! 뭐 여동생들을 괴롭히면 학교 한 번 뒤엎어버려야지."
후후후 하루토가 씨익 웃자 마츠카와는 오싹함을 느껴 거리를 벌렸다. 그날 저녁 히마와리는 네코마들에게 카라스노에 대해 전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