쿄야는 쿄코의 치료를 끝내고 객실로 돌아와 나루코가 내민 엽차를 후루룩 마셨다.


"맛있네요."

"고, 고마워? 그러니까…."

"쿄야. 술사이기 때문에 진명은 밝힐 수 없지만. 호즈미 쿄야라고 불러줘요, 나루코 씨."

"에?! 내 이름!"

"엄마의 가족이니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쪽 청안의 여성 분이 시오리코 씨! 맞죠?"

"으응. 엄마?"

"쿄코 언니를 가리키는 말이야, 그거?"

"네. 미케츠카미 쿄코 씨는 전생의 다이쇼 시대에 제 어머니이니까요."


너무 확고한 대답에 경악한 쌍둥이들와 너무 시원스럽게 밝혀서 놀란 귀살대원들과 달리 쿄야는 태평스럽게 엽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거짓말이지?"

"진담이에요.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만,"


쿄야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부정(否定)하지는 마세요. 환생할 때마다 전생을 기억하는 저에겐 그건 틀림없이 진실이에요."


저런 괴로운 얼굴,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분명히 굉장히 무서운 악몽을 꾸었을 때 쿄코 언니는 저런 표정으로 자신에게 사과했다. 잘못한 것은 언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알겠어.""


쌍둥이들이 동시에 말했다.


"믿는 거야?"

"아니."

"하지만 진실을 말하고 있는 얼굴이니까."

"…역시 엄마의 쌍둥이 동생이시네요."


쌍둥이들의 말에 쿄야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늘이 펴졌다.


"근데 쿄야 군은 왜 온 거야? 애당초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아?"

"없어요. 그래서 엄마를 만나러 왔어요. 항상 엄마가 절 먼저 찾아주었으니 이번에는 제가 먼저 찾으러 왔죠. 보이지 않는 아이를 쫓아온 검은 손 때문에 결계가 깨져서 이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맞어! 그 보이지 않는 아이는 어떤 아이였어?"


쿄야는 그 질문에 슬픈 눈빛을 했다.


"그 아인, 태어나지 못했어요. 병이나 사고가 아니 누군가의 사정으로 인위적으로 지워졌죠.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뱃속에서 이 세상에서 나오길 한껏 기대하고 있었는데…."

"!"

"그래서 엄마는 당신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거에요. 모습을 보게 되면 괴로워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치만 그 아이는 엄마의 가게에 도달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어요."

"다행?"

"네. 그렇게 줄곧 헤매는 아이는 붙잡히기 쉬우니까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죽어버린 아이는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요. 누가 하는 말을 들으면 좋을지,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모르니까 헤매게 되죠. 그리고 헤매는 동안 외로워서 부르고 말죠."

"부른다? 그 새까만 손들을?"

"언제나 손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요."

"그건 뭐지?"


마사히로가 물었다.


"글쎄, 뭘까요? 여러 가지 것들이 모여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힘든 존재임에 결코 좋은 건 아니죠. 결계를 찢고 들어온 거라면 상당한 힘을 지녔다는 건 분명하죠. 괴로움. 고통. 슬픔. 미움. 원망. 그러한 것들이 모여 덩어리를 이루고 같은 것을 붙잡아 점점 커지고, 점점 더 커져서 누군가가 똑같은 일을 겪게끔 만들고자 하죠."

"그래서?"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었던 거겠죠. 갓 태어난 아기는 그저 새로워서 나쁜 마음이라고 무엇 하나 없는 상태. 하지만 그보다 무구한 것이 태어나기 전의 아이들이죠. 그러니 그 아이들의 생각은 간절해요. 하지만 그 검은 것에 붙잡혔다면 다음은 없어요."

"다음?"

"다시 한 번 더 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

"다리를 건너서 어디로 가는 걸까?"

"글쎄요. 죽다 살아난 사람이 다리를 건너 돌아왔다는 설이 있죠."

"저승과 이승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는 설도 있지."


히메지마가 말하자 쿄야가 그들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방에 들어온 다음부터 쭈욱 외면하고 있었는데. 


"시오리코! 나루코! 마사히로!"


침묵 속의 아이컨택이 계속되는 가운데 준코가 셋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이 방을 나가고 시노부가 입을 열었다.


"호즈미 군, 맞죠?"

"귀살대…. 처음 보는 얼굴도 있으니 다시 한 번 더 소개하겠습니다. 미케츠카미 쿄코의 아들, 호즈미 쿄야라고 합니다."

"어머! 어머!"


카나에가 쿄야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유심히 살폈다.


"저기…. 좀 떨어주세요."


근접한 거리에 미녀가 있자 쿄야는 쑥쓰러워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나즈가와 군과 닮았네!"

"?!"

"!!"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뜬 마사치카와 달리 쿄야와 사네미는 잔잔한 연보라색 눈동자를 했다. 


"확실히 닮았군."

"그건 상관없는 얘기니까 절로 넘기죠."


쿄야는 옆으로 이동시키는 손짓을 했다. 사네미에게 관심없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술법으로 당신들을 전생을 기억하게 한 이유는 단 하나에요.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그건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 엄마는 곧 죽어요. 엄마가 곧 16살이 되니까 빠르면 17살, 늦으면 20살, 그 안에 죽을 거야. 게다가 본인에게는 살려는 의지가 없어."

"!!"

"그러니 당신들이 그녀가 계속 살길 바라는 마음을 갖도록, 그 사람을 붙잡길 바래요. 부탁드립니다."


쿄야는 전 귀살대 소속에게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


쿄코는 눈을 뜨자 보이는 어린 소년의 잠든 얼굴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


그리고 바로 욱씬 몸의 아픔이 느꼈다.


"아야야…."


마지막에 보였던 광경이 환상이 아니었구나. 옆에서 자고 있는 쿄야의 얼굴을 찬찬히 매만졌다. 


"이번엔 네가 먼저 찾아와줬구나…."


쿄야가 찾아와줬으니까 밥 해줘야지. 먼저 깨진 결계부터 다시 치도록 할까? 쿄코는 잠옷 위에 하오리를 걸치고 침실을 나왔다. 마루를 걷고 있자 새벽 공기가 몸으로 스며들었다.


"쿄코 씨."


마루를 걷던 마사치카가 정원에 서있는 쿄코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내려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 하룻밤 숙박하기로 한 거니?"

"네. 저랑 사네미만요."

"가족이 걱정하지 않니?"

"저 성인이에요. 게다가 피를 흐리고 쓰러진 당신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고요."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걱정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마사치카가 외쳤다. 그 말은 전생에서 들었던 말과 똑같아서 쿄코는 무심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마사치카는 변함없이 귀엽구나."

"노, 놀리지 마세요!! 귀엽다는 말은 여자애들에게 보통 어울리는 말이죠!"

"귀엽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인 거야. 그리고 보통이란 게 뭔데? 대부분과 똑같이 생각해야 하는 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말하는 보통이 아니다라는 선택에 문제 없어. 안 그래? 그러므로 내가 귀엽다고 느꼈으니까 마사치카는 귀여운 거야."


쿄코는 킬킬거리며 담장의 결계를 다시 쳤다. 마사치카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쿄야 군의 부친이 누군지 안 궁금하세요?"

"관심없어."

"네?"

"관심 없다고. 꼭 알아야 해? 전에도 말했잖아. 남편, 필요 없다고."

"쿄야 군은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잖아요."

"난 엄마만 있으면 돼!"


정원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목소리에 두 사람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네미와 쿄야가 마루에 서 있었다. 쿄야는 맨발로 정원으로 내려와 쿄코의 치마자락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니까 죽지 말아줘! 제발!!"


울지 않았지만 울상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애원하는 쿄야에 쿄코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미안하면 죽지 않겠다고 말해줘!! 제발! 부탁이야! 엄마!!"


끝까지 쿄코는 사랑스러운 제 아들의 애원에 고개를 끄덕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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