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한 호텔 식당에서 치세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른한 분위기와 퇴폐적인 페로몬을 뿜는 그녀를 남녀노소가 힐끔 보며 얼굴을 붉혔다.
"……머리 아파."
이 '내가' 미약에 당할 줄이야. 스쿠나의 손가락을 먹고 몸이 만독불침이 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게 바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건가. 치세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두통에 관자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치세짱!"
"자, 사 왔어."
콧노래라도 부를 기세로 들떠 보이는 두 남성이 앞에 앉았다. 동시에 더 많은 시선들이 쏠리자, 치세는 두 남성을 빤히 쳐다봤다.
"왜 그래, 치세짱?"
"우리 얼굴에 뭐 묻었어?"
"새삼스럽게 너희가 잘생기고 멋져 보이네."
어젯밤의 후유증 때문인가? 미약이 덜 빠져나갔던가.
"에?!"
"아?!"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처럼 두 남성의 얼굴에 순식간에 불이 붙였다. 정말로 화르륵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목 밑에서부터 빨갛게 달아올라, 결국 귀 끝까지 붉어졌다.
치세는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이 사 온 피임약을 먹었다.
'감히, 순진한 츠미키를 노렸다 이거지…….'
누군지 몰라도 후회하게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수전노인 메이메이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보니, 파티를 연 목적을 전부 달성했나?'
첫째, 유키미츠의 존재를 밝히고 주술계에 소개하기.
둘째, 도쿄와 교토 1학년들끼리 교류하기(이때 유키미츠는 메이메이 씨의 남동생인 우이우이와 통성명했다).
셋째, 토우지 일이 끝날 때까지 이나미 현 당주를 파티에 머물게 하기(덧붙여서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넷째, 주술사 개개인의 능력(+가능성) 확인하기.
마지막 다섯 번째……
"미안. 많이 기다렸니?"
긴 생머리의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혀요, 츠쿠모 씨."
마지막 다섯 번째, 츠쿠모 유키를 만나는 것. 원래라면 연회장에서 대화를 했어야 했는데, 하필 그 순간에 미약의 효과가 나타나서…… 처음으로 3P를 했다. 추태를 떠올리니 (애써 진정했던) 두통이 다시 밀려올 것 같았다.
"치세?"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왔으니 치세는 고죠와 게토에게 어서 일어나라는 눈짓을 보냈다.
"너무해, 치세짱……."
"먹고 버리다니……."
"뭘 새삼스럽게."
"못됐어."
"나쁜 여자네."
"너희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네."
치세가 뭘 새삼스럽게 말하냐는 투로 말했다. 원래부터 착한 사람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후시구로는 자신을 선인이라고 칭했지만, 스스로가 선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불쌍한 척하지 말고 어서 가. 너희들, 해외 출장이 있잖아."
쉭쉭 손을 휘젓으며 두 사람을 내보냈다. 츠쿠모는 축 늘어진 채 떠나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꽤나 아끼고 있네."
두 사람이 식당에서 모습을 감추자 츠쿠모가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응. 왜냐면 고죠 군이 하고 있는 눈가리개와 게토 군이 하고 있는 팔찌, 유메미테가 항상 몸에서 빼놓지 않던 주구였으니까. 너에게 소중한 물건 아니었니?"
모친은 천여주박 때문인지 조그만 달빛에도 눈이 타들어갈 듯이 고통을 느꼈으며, 음식을 먹으면 본연 재료와 들어간 양념의 맛이 너무 느껴서 차라리 어떤 맛도 느끼지 않길 바랬다.
그래서 주구를 만들었다. 자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저보단 육안과 주령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두 사람에게 필요해서요."
츠쿠모가 치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모친의 유품을 타인에게 넘겨도 미련 없이 구는 치세의 행동은 꼭…….
"잡담은 여기까지 하죠. 서로 바쁘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요."
치세는 샐쭉하게 웃으며 그 시선을 못 본 척했다.
*
이나미가의 당주 자리에 제 조카를 앉혔지만, 사카즈키 치세가 그 가문을 장악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주술계에 없었다. 이나미가는 상전술식 소유자 사카즈키 치세를 광신도처럼 떠받았다.
치세가 가문으로 들어오자, 몇몇 원로들이 실종되었지만 소리소문없이 묻혔다. 전대 당주의 세 번째 부인의 아들-이나미 미나토는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 주변 눈치를 열심히 보는 중이었다.
"고모."
"응?"
"엄마는 오늘도 바쁘데?"
"그런 것 같더라."
토우지가 불법 암시장에서 가져온 것들 전부 공방으로 보냈기에, 공방은 현재 주구 재료들이 넘쳐날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공방에 소속된 주구사-미츠에 포함-들은 현재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유키미츠는 엄마가 없다고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사물을 잘 파악하는 총명한 아이다. 유키치와 미츠에를 닮아 머리도 뛰어나고 두뇌회전도 빨랐다.
"응."
역시나. 제 엄마가 없을 틈을 타서 하고 싶은 말이라던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나 보다.
"고모는 왜 가주가 되지 않는 거야? 아니 애초에 고모는 가문을 싫어하면서 왜 남겨둔 거야? 차라리 없애버리면 되잖아."
자신이 당주직에 앉아도 되냐고 유키미츠가 물었다.
"……누구에게 들었어?"
"미나토 씨."
"아직 덜 맞았군. 당주에게 그딴 망언을……."
열심히 눈치를 보면서 얌전히 있길래 내버려 뒀더니. 치세가 세차게 혀를 찼다.
"고모."
미나토에게 내릴 벌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유키미츠에게 답을 줘야겠지.
"'속박'에 대해 배웠니?"
"응."
설명할 수고가 덜 들게 되었군.
"고모는 '이나미'를 파멸시킬 수 없다는 속박을 걸었어. 그러니 망하게 하거나 없앨 수 없어."
그 속박을 맺고 이나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나미'가 아닌 '사카즈키'의 성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주직은 혈통이 아닌 가문 내에서 제일 강한 힘을 지닌 주술사가 앉는 자리야. 당연히 이나미 유키미츠의 자리야."
미나토보다 유키미츠가 주력량도 많고 강하다. 물'만' 다스릴 수 있는 미나토보다는 물을 지배하고 얼음으로 만들어내는 유키미츠쪽이 당주직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주님."
문 밖에서 어린 시종이 유키미츠를 불렀다.
"카모 노리토시 님이 오셨습니다."
"벌써?"
치세가 몸을 일으키자 유키미츠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치세는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어하는 올망졸망한 눈동자를 모른 척한 후 방문을 열어젖혔다.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하렴."
유키미츠에게 말하면서 치세의 시선은 그 목에 둘러져 있는 뱀 식신에게 향해져 있었다. 뱀 식신은 치세의 시선을 알아쳤는지 유키미츠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까닥 고개만 작게 움직였다.
"-쳇."
복도를 나오자 뒤로 혀를 차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다과시간이 끝나자 치세는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로 돌아왔다. 현재 치세는 전 당주가 어질러놓은 걸 정리하고, 이나미가를 부흥시키려고 바빴다.
"오셨습니까, 치세 님."
갈색 머리칼의 남자가 안경을 치켜 올렸다.
그의 이름은 이나미 테루. 유키미츠에게 붙어 있는 시종, 코우의 형으로, 현재 치세를 도와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전 당주가 어지럽힌 것이 많다보니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오야의 동급생인 테루는 그 역할에 딱 맞았다. 이나미 원로와도 가까운 사이가 아닌 실력자니까.
"테루, 미나토에게 2급 임무를 줘."
"에?"
"말을 듣지 않는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지."
"하지만, 나나가……."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
"……아뇨."
미나토의 (자칭) 약혼녀가 날뛰는 게 이쪽과 무슨 상관있다고. 치세에겐 미츠에와 유키미츠의 안위만 중요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