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시끄럽다. 방문을 부실 것 같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옥견!!"
"!!"
[유우우-타아아르을~ 괴롭히지~ 마아아!]
쾅. 소파에서 잠들어 있던 치세가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살폈다.
"아이구야……."
뚫려진 벽……, 방의 참혹한 모습에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리카짱! 진정해!"
그리고 한 남학생이 날뛰는 주령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엉망진창이네.
"리카, 그는 유타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정말?]
"물론이지. 날 믿고 물러나 줄래?"
[……알았어.]
치세는 옷코츠 유타에게 붙어 있는 주령, 오리모토 리카를 진정시킨 후 복도로 나갔다. 거기엔 벽의 잔해와 함께 후시구로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메구미, 괜찮아?"
"컥……. 저, 저 사람, 뭡니까?"
피를 토해낸 후시구로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새로운 훈련생인 옷코츠 유타야. 어제 늦은 밤 데려와서 오늘 소개시켜주려고 했어."
치세는 대답하면서 반전술식으로 후시구로를 치료했다.
야가 학장과의 면담이 끝나고 그를 발견했다.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주령를 알아차리자마자 식신을 붙였다.
'사토루보다 많은 주력량…….'
그리고 어젯밤, 식신이 보내오는 신호에 치세는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움직였다.
식신이 신호를 보내온 걸 보면 상태가 안 좋을 것이 분명했다.
"!"
아무도 없는 놀이터 구석에 웅크려 앉아있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치세는 혀를 찼다. 주력이 불안정하게 날뛰고 있었다.
"안녕?"
"가까이…… 오지 마, 세요…… 당신도 다칠, 거예요."
똑같이 다치고 날 혐오하게 될 거예요. 작게 이어지는 뒷말에 치세가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불안과 공포에 떨리는 빛 하나 들지 않는 검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모순적이네. 오지 말라 하면서 눈은 누구보다 구해달라 외치고 있어, 너."
그렇다면 구해야지. 그게 일이니까.
'상태가 말이 아닌걸.'
퍼져나오는 많은 양의 주력을 보며 치세는 장막을 쳤다.
치세는 천천히 주력을 풀어 상대의 마구잡이로 날뛰는 주력을 억눌러갔다.
"저주받았구나, 너."
흠칫. 하얗게 질린 안색의 남학생이 화들짝 놀라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랑 가자. 도와줄게. 너처럼 저주받은 아이들을 알고 있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조곤조곤 이어지는 달콤한 말에 소년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와 같은……."
"그래. 너와 같은."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춘 치세가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했다. 이리저리 날뛰며 퍼져 나가는 주력이 점차 줄어들었다. 완만한 반달을 그리는 눈꼬리와 함께 치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위로 휘어 올라갔다.
갑작스러운 폭주 때문인지 조금 멍해 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은 그에게 치세는 다정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다정한 그 웃음에 홀리기라도 한 듯한 멍한 표정으로 내밀어 진 손에 그가 손을 얹었다. 얹어진 손을 꽉 잡으며 치세가 그를 일으켰다. 치세의 손안에 붙잡힌 손이 움찔거렸다.
"이름이 뭐야?"
"옷코츠…… 유타, 입니다."
"그래. 나는 사카즈키 치세. 편한 대로 불러. 저 애는 이름이 어떻게 되니?"
한껏 경계심을 보이는 주령을 보며 물었다.
"리카예요. 오리모토 리카요."
옷코츠 유타의 애원 탓인지 죽일 듯이 살기만 피우고 직접 나서지는 않고 있었다.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소리네. 뭐 특급이니 당연하겠지만.
"리카짱이 보이시나 보네요."
"주술사니까. 그리고 이젠 너도 주술사야. 너와 같이 저주를 볼 수 있는 사람을 주술사라고 부르거든."
"주술사……."
주술사라는 단어가 어색한 듯 입 안에 넣고 굴리는 옷코츠를 보며 치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특급 주술사 싹이라 상당히 기대된다. 얼마나 성장해주려나.
'리카는 정말 어마어마한 존재감이네. 이 정도 존재감이니 다른 주력을 감지 못하지. 옷코츠가 주술사 재능을 가지고도 주령을 감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
옷코츠 유타는 저주받았다.
2010년, 6년 전 어린 나이에 차에 치여 눈앞에서 죽었던 오리모토 리카는 특급 과주원령이 되어 옷코츠에게 들러붙었다.
풋내나는 첫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이 되었다. 로맨스 소설의 한 장면 같지만 실제는 호러물이다(애초에 켄토 말처럼 주술사는 인생이 빌어먹을 호러물이지만).
'기구하네, 주술사답게.'
주령이 된 리카는 난폭했고 그 공격 대상은 여성, 연상의 남자, 그리고 옷코츠에게 적대적인 것 모두였다.
옷코츠가 해치고 싶지 않아도 그 셋에 해당하는 모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 피해자는 점점 늘어났다.
저 대상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는 것보다 해당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쉬우니까.
그 탓에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는데다 친구도 사귈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은 예삿일. 리카가 그 가해자를 응징하고 그는 더 고립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어디로 보든 이건 명명백백한 저주였다.
악순환의 고리를 강화시키고 대상을 고립시키는 저주.
"그렇다면 전 리카짱을 해주하고 싶어요."
옷코츠의 말에 치세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더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이자 옷코츠가 입을 한 번 꾹 다물었다가 말을 꺼냈다.
"……리카짱 때문에 주변에 피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해요."
"넌?"
"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넌 어쩌고 싶니? 네가 원하는 건 뭐야?"
고요한 보랏빛 눈동자가 옷코츠 유타를 담아냈다. 그 시선에 옷코츠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전……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어요. 가족과 지내고 친구도 사귀고……."
"흐음."
쉬운 일이지만 주술사로서는 까다로운 일이었다. 특급이 될 게 뻔한 강자라서, 가만 안 놔둘 테니까.
"어려울까요……?"
"아니, 할 수 있어. 다만 네가 좀 강해져야겠지. 지금보다는."
자신이 도와줄 테니 걱정 말라며 한쪽 눈을 찡긋한 치세가 말했다.
"우선 리카 좀 꺼내볼래?"
"여기서요?"
"괜찮아. 근처에 사람 다 치웠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던 옷코츠가 치세의 자신에 찬 미소에 눈을 질끈 감으며 리카를 불렀다.
"리카짱."
[유우타아―!]
주령 특유의 늘어진 목소리가 넓은 공터를 울렸다. 반쯤 고장 난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불안정하고 기괴해진 음악 같았다. 본신을 현현한 게 아닌 반쯤만 보이는 그 흐릿한 형상임에도 존재감이 어마어마해서 치세가 입매를 느슨히 올리며 눈을 둥글게 휘었다.
"역시 특급이라는 건가."
특급 과주원령임을 뽐내듯 압도적인 위압감이 공간을 짓눌렀다. 치세가 가볍게 흘려내자 그 압박감이 더 진해졌다.
"안녕, 네가 리카지?"
[너, 너어는- 뭐야……?! 유우타한테, 서어 떨어져어-!]
본능적으로 치세가 위험한 존재임을 알아챈 걸까 리카가 적의를 강하게 드러냈다. 강자가 강자를 알아보듯 리카는 단번에 치세가 자신을 위협할만한 강자임을 알아챘다.
[아, 아- 죽일거야?!]
그저 웃고만 있는 치세의 모습에 목소리를 한 톤 올린 리카가 소리쳤다. 옷코츠가 어쩔 줄 모르며 허둥지둥거리자 치세는 웃으며 그에게 진정하라 손짓했다.
"날 죽이게?"
치세가 콧소리를 내며 씩 웃었다.
특급 주령의 살기에 눈 하나 깜짝 않으며 담담한 태도를 보이는 그녀에 오히려 옷코츠가 식은땀을 흘렸다. 주술사는 원래 겁이 없는 걸까? 옷코츠의 머릿속에선 주술사는 안전불감증에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이들이 되어버렸다.
"리카는 옷코츠를 정말 좋아하네."
능청스레 웃으며 말하는 치세에 장막 안에 매섭게 맴돌던 살기가 한순간에 훅 사라졌다.
[어어-?]
조금 어리둥절해 보이는 리카가 하악질 하는 고양이마냥 잔득 부풀렸던 덩치를 줄였다.
"아니, 사랑하는 건가?"
[마앚아아- 리카, 느은. 유우타를 사랑해-!]
"멋지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알아. 그 사람만 봐도 행복하고 어떤 보물보다 귀하고 소중하지?"
[으응, 유타 좋아. 보물 같아.]
"맞아맞아. 옆에서 지켜주고 싶고."
[리-카가 유타 지켜어~!]
"멋지네."
어느 새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치세와 리카의 모습에 옷코츠만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었다.
"그럼 결혼하기로 약속한 거네."
[리카! 유우타랑 결혼!]
"로맨틱한걸."
주술사답게 딱히 정상인은 아닌 치세가 활짝 웃었다.
꺄르륵 웃으며 사랑 이야기에 빠진 둘은 꼭 10대 소녀 같았다.
"거봐, 괜찮지? 이래 봬도 난 좀 능력 있어?"
"신기하네요……. 리카짱이 저를 제외하고 이렇게 호의적으로 구는 사람은 처음 봐요."
어떨떨한 목소리로 옷코츠가 조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니 주령이나 어떤 면에서는 비슷해. 주령은 감정이 훨씬 적어지고 좀 맹목적이게 되는 것뿐이니까."
옷코츠는 치세의 미소가 번져있는 얼굴을 응시했다. 곱게 흰 눈꼬리를, 바람에 작게 흩날리는 머리칼을, 살짝 찡그려 주름이 그려진 오똑한 콧대를, 도자기 인형처럼 하얀 뺨을,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 입꼬리를, 그 아래로 보이는 고른 치열을. 하나하나 곱씹듯 차례차례 눈으로 훑었다. 제 인생에 나타난 갑작스러운 행운을 기억에 새기기 위해서였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뭔지 아니?"
"잘 모르겠어요."
"'인정'이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덤덤했고 표정은 무언가를 회상하듯 아득한 옛날을 떠올리는 듯 모호했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는다는 게 그 사람을 그렇게 기쁘게 만들고 맹목적이게 만들어. 리카에게 필요했던 건 그런 걸지도 모르지."
"인정……."
"물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방법이 안 통했겠지만. 이걸 하는 상대가 나 아니었으면 그냥 죽었을걸?"
해맑게 말하는 치세의 모습에 옷코츠는 울상을 짓다가도 눈을 내리깔며 인정했다.
"사카즈키 씨."
"응."
"……고마워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래. 근데 말 놔도 되는데."
제게로 닿는 온정적인 시선에 옷코츠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뚝뚝 떨구고 싶어졌다.
*
후시구로 남매에게 옷코츠는 훈련소 안내를 받았다.
"주술계에 대해서는 아는 거 있어?"
"아니……."
"좋네요. 이상하게 알고 있는 것보단 백지가 차라리 낫죠."
옷코츠가 시선을 떨구자 츠미키가 허리 펴라며 등을 팡팡 두드렸다.
"훈련소의 선생님이 지식이나 체술을 알려주실 거야. 치세짱도 체술을 봐줄 거지만 바빠서 대부분은 다른 애들이랑 대련하는 걸로 실력을 키울 거야."
"사카즈키 씨는 많이 바쁘나 보네."
"치세 씨는 특급이니까요."
"특급?"
"엄청 강하다는 소리야."
"그렇구나."
그럴 것 같았다며 옷코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축 처진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츠미키가 얘도 치세짱 팬인가 고민했다. 팬이면 다행인데 괜히 쓸데없이 연정 같은 걸 품는 쪽이면 나중에 두 특급-고죠 사토루, 게토 스구루-에 의해 억지로 정리 당할 테니까. 딱히 상관은 없지만 치세짱이 마음에 들어한 애니까 걱정은 좀 됐다. 알아서 하겠지만.
"애들이랑 대련하는 것만으로도 실력은 꽤 오를 거야."
츠미키가 잔잔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이 훈련소에선 각자의 재능을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게 새로운 신입생이냥?"
"주인이 말한 놈이지왕?"
"!!"
옷코츠는 눈앞에서 나타난 강아지와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하는 것에 눈을 부릅 떴다.
"이 식신들이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야."
"식신?"
"앗, 이거 말 안 했나? 치세짱은 식신을 조형할 수 있거든. 제한이 없어서 얼마든 만들 수 있어. 그걸 다른 주술사와 싹이 보이는 아이들을 위해서 쓰는 중이고."
"식신은 정확히 어떤 거야?"
"치세 씨의 주력으로 만들어져서 그녀와 감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급에 따라서 제한이 되긴 하지만."
"각자의 자아가 있고 능력도 있어서 그냥 일반 주술사와 다를 바 없어. 주로 친근한 동물의 겉모습을 취하고 있어. 개나 고양이 같은."
들뜬 얼굴로 치세에 대해 조잘조잘 말하는 후시구로 남매에 옷코츠가 중간중간 맞장구 쳐주며 반응했다.
"시설이 많네. 시청각실까지……."
"옷코츠 씨는 여기서 특급 과주원령을 다루는 법이나 해주 하는 방법, 체술 훈련을 할 겁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할 때가 되면 주술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고등학교로 갈 거고, 치세 씨의 후배가 되겠죠."
"사카즈키 씨, 학생이구나……. 그런데도……, 대단하네."
"주술계의 구원자라는 게 괜히 나온 게 아니거든."
츠미키는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짓다 우울한 표정은 금방 지우고 다시 밝게 돌아왔다.
"그래서 난 열심히 노력해서 그 옆에 설 거야. 치세짱이 지고 있는 짐들을 나도 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멋지네."
옷코츠는 탄성을 뱉듯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반짝이는 츠미키의 눈에 바위처럼 단단한 의지가 비쳐 보이는 게 멋져서 옷코츠는 조금 동경을 담아 바라봤다.
"옷코츠 씨도 노력해줘야줘."
후시구로가 말했다.
"어?"
"당신도 치세 씨의 옆에 서고 싶은 게 아닙니까? 치세 씨가 직접 데려왔으니 분명 그럴 텐데요."
"……맞아, 나도 그러고 싶어."
"당신은 재능이 있으니 옆에서 일할 기회가 생길지 모릅니다. 고죠 씨랑 게토 씨처럼."
"아버지는 빼는 거야?"
"그 인간은……."
질색하는 후시구로에 츠미키가 키득 웃었다.
"경쟁자가 엄청 많긴 하지만 우리 힘내자!"
"응!"
"그 누구에게도 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이 있는 공간에는 훈훈한 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