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요쥬지단 활동을 끝나고 석양지는 거리를 걸어가는 리쿠오들.


"결국 아가씨는 안 오셨네요."

"그러게. 대체 무슨 일일까나?"

"엄청 급해 보였는데."


노조미의 말에 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요츠구군, 오늘은 유난히 길었지."

"그러게. 해가 긴 계절이라서 다행이야."

"그렇지만 키요츠구의 요괴지식은 정말 놀라워."

"맞아. 덕분에 많이 배운다니까. 어디서 그런 것을 알아오는 걸까?"

"요괴를 싫어하는 이에나가양에게는 그건 뭐 귀찮은 이야기죠?"

"그렇지 않아. 여러가지 공부가 되는 걸…. 알면 알수록 무서워져. 하지만 그게 요괴인걸. 무서운 게 당연해. 그게 매력이고…."

"도-련-님!"


츠라라는 무서운 눈동자로 리쿠오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양, 집 이쪽이구나. 리쿠오군과 함께."

"그런데요. 몰랐어요? 이에나가양, 누라군의 소꿉친구인데."


리오는 앞쪽에서 츠라라와 카나의 눈싸움 사이에 들어가게 된 남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둘 다 왜 그러는 거야!"


리쿠오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외쳤다.


"누라… 리쿠오, 맞지?"


바로 그때 리쿠오의 앞에 선 고교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학생, 장신의 흑발의 남학생과 개처럼 혀를 내밀고 있는 남학생.


"누구?"

"리쿠오군, 아는 사이야?"

"아, 아니…."

"어이, 네놈들은 뭐냐."

"자, 잠간, 아오… 아니 쿠라타."


흑발의 남학생은 리쿠오를 보며 키득 웃었다.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었나. 이렇게 닮았으니까, 나와 너는. 젊고 재능이 넘치고 피를 이어받았지. 하지만 넌 처음부터 모든 걸 쥐고 있었고 나는 지금부터 모든 걸 쥘 거다."

"내가 처음부터…?"

"아닌가. 있기 편한 곳이 있다고 해서 언제까지 멍청하게 있는 건 어디 누구지?"

"너는 대체…?"

"보고 있어라. 나는 너보다 많은 경외를 모을 거니까. 나도 이 마을에서 활동을 할까 해."

"자, 잠깐!"


흑발의 남학생이 몸을 돌리자 리쿠오가 그를 불러세우려고 했다. 그때 카나가 "까악" 비명을 질렀다.

연갈색 남학생이 어느새 카나의 옆으로 와 있었다.


"양손의 꽃이라니. 역시 거물은 뭔가 다르네."


그는 긴 혀로 카나의 볼을 핥았다.


"히익?!"

"무슨 짓이야!!"


리오는 빠르게 카나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리고 그 남학생을 노려보았다.


"그만둬, 이누가미."

"!!"


그 남학생을 부른, 그들과 같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 그녀를 보자 누라구미요괴들은 깜짝 놀랐다.


"호, 호시?"


그 여고생은 사노메 호시와 쏙 닮아 있었다(긴 흑발을 가지고 있고 풍기고 있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지만).

'호시'라는 이름에 그녀의 우수에 젖은 녹안이 흔들렸다.


"호시, 그 교복은 뭐야."

"이건 무슨 장난이야?!"

"호시… 그리운 이름이네."

"인사는 그쯤이면 됐어, 이누가미, 시호."


남자의 말에 이누가미와 시호는 몸을 돌렸다.


"저건?!"

"뭐야, 저건…! 아까까지… 아까까지 저런 거 없었는데!"


카나는 남자의 뒤를 따르는 밀집모자 존재들을 보자 놀라며 무서워했다. 그녀는 리오의 옷자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칠인동행1…?"


호시가 나타났다.


"도착했군, 칠인동행. 아니, 팔십팔귀야행 간부들. 할 수 있어. 우리는 이 땅을 빼앗는 거다. 위로 올라가는 건 우리야."

"타마즈키!! 시호!!"

"호시…."


금발의 단발머리와 흑발의 긴생머리, 쏙 닮은 두 존재가 서로를 보고 있었다.


"시호…. 사, 살아 있었네…. 근데 왜?"


네가 요괴들과 함께 있는 거야?

호시는 혼란스러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왜 네가 타마즈키랑 함께 있어?"

"…갈래."

"기다려!!"


시호는 신통력을 부려 나뭇잎으로 내 시야를 가린 후 사라졌다. 그리고 타마즈키들 역시 사라져 있었다.

타마즈키들이 사라진 그 자리를 응시한 채 호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툭툭,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에 의아하게 생각한 카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소나기?!"

"호시!"


리오는 어서 비를 피하기 위해 호시를 끌고 달려갔다.

누라구미 저택으로 돌아온 호시는 젖은 몸을 닦지도 않은 채 자신의 방 앞에 있는 마루에 앉아 있었다.


"아가씨!"


노조미가 그녀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미도리와 카나메가 준비한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두 사람은 목욕탕에서 나왔다.


"노조미, 자고 갈래? 방을 준비할게."


리오가 호시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는 노조미를 보면서 말했다.


"그럼 신세지겠습니다."


방을 준비하러 리오가 자리를 떠자 노조미는 여전히 멍하니 있는 호시에게 말을 걸었다.


"비가 멈춰서 다행이에요."

"……."


호시는 무릎을 세우고 그 속으로 얼굴을 묻었다.


"아가씨…."


심하게 우울해하는 호시의 모습은 처음이라서 미도리들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누라구미 본가는 새로운 적들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이미 그 적들은 마을 여기저기서 날뛰고 있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라니깐!"

"어디서 온 거지?"

"무얼 하러 온 게야?"

"당연한 걸 왜 물어? 우리 영역을 차지하려는 거잖아!"

"벌서 곳곳에서 날뛰고 있대!"

"그, 그렇다면!"

"우린 쫓겨나겠네!"

"히익!"

"다들 진정해."


조무래기 요괴들이 새로운 적의 등장에 아비규환이 되어 벌벌 떨었다(카라스텐구 역시 "총대장, 어디 계십니까!!"하며 애타게 울부짖고 있었다).


"어떻게 진정해!"

"우리 같은 토지신한테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구! 안 그래도 요새는 사람들이 경외하지도 않는데!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냔 말이야! 누라구미가 왜 있는 건데요!"

"서쪽이야! 서쪽 놈들이 틀림없어!"

"히히님을 죽인 실력자! 지금쯤 총대장도!"

"으아악! 누라구미는 끝장이야!"


호들갑을 떠는 잔챙이들을 메즈마루, 고즈마루, 요루이치, 우메하루 그리고 카나메는 차게 식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제발 다루마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알고 있다."


쿠비나시가 벌벌 떨며 호들갑을 떠는 요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루마에게 구조요청한다.


"들어라!"


다루마가 목소리 높여 소리쳤다.


"지금부터 누라구미는 내가 대리를 맡겠다! 아무리 총대장이 없다해도 정신 차리지 못할까!"

"역시 안 계셨어!"

"총대장!"

"살 곳이 없어져!"

"난 도망갈 거야!"

"불에 기름을 붓어버렸구나."


다루마의 외침에 더욱 아비규환이 된 광경에 리오가 다루마에게 말했다.


"요―괴가!! 허둥대서 어쩌자는 거야!!!"


리쿠오가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사람들이 경외하는 존재 아니었어? 할아버지는 어디선가 놀고 계실 거야. 그런 분이시니까. 분명한 건 적이 흙발로 우리의 영역을 짓밟고 있다는 것."

"도, 도련님?"

"들어왔으면 물리치면 되는 거야."


카라스텐구가 리쿠오를 감동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다루마. 네가 대리를 맡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 일. 누라구미는 지금부터 내가 맡는다!!"

"멋지다, 리쿠오!"


리오가 휘파람을 불어 자신의 남동생을 응원했다.


"3대째로써 자각하는 걸까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조미가 호시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가씨, 그 여자는 누굽니까."


노조미가 대답이 들려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물었다.


"나도 궁금해."


리오가 그녀들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대체 누구길래 너와 쏙 닮은 거지? 물론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지만."

"맞아요. 아가씨가 만개한 꽃이라면 그쪽은 시들기 전의 꽃 같다고 할까요? 아니, 아가씨의 분위기가 봄과 여름이라면 그쪽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는 분위기를 지녔어요. 사람 맞죠?"

"…응, 인간이야."


호시가 고개를 올렸다.


"리오와 같은 케이스인 인간이야."

"나랑…. 그럼 그녀도…."

"근데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 어쩌면… 엄마 뱃속에서 내가 빼앗은 것일 수도 있지."

"?!"

"그 말은…!!"

"시호는 내 여동생이야."


내 말에 듣고 있는 이들의 얼굴에 경악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아가씨의 여동생?"

"아니, 그쪽이 더 나이 많아 보였는걸!"

"맞아요! 언니 아니에요?!"

"아가씨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데요!"


미도리가 외쳤다.


"시호는 교토에 있었어. 그녀는 요괴 일가에서 살 수 없어서 아빠의 손에서 자랐거든. 9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빠가 돌아가시고 시호는 사라졌어."


이렇게 재회하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때 찾아서 내 옆에, 아니 호시히코 옆에 두는 편이 더 좋았을 텐데. 아니, 좋았을까나.


"혼란스러워……."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어째서 타마즈키의 편에 붙은 거냐고….


"아가씨!!"

"쿄코?"


쿄코가 급하게 달려와 내 앞에서 숨을 골랐다.


"도와주세요, 아가씨! 사부로네코를 살려주세요!"

"살려…?"

"아가씨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안 돼요."


쿄코의 부탁을 거절하는 냉정한 목소리.


"하쿠…."

"안 돼요, 호시님. 당신의 힘은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돼요."


하쿠가 말했다.


"죽어가는데."

"그래도 안 됩니다."

"냉혈한!"

"생판 모르는 요괴보다 호시님이 더욱 소중합니다!"


호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시님!"

"다녀올게."

"안 됩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존재를 내버려둘 수 없어."

"그치만-!!"

"금방 다녀올게. 쿄코, 안내해줘."


쿄코의 뒤를 따라 호시는 바케네코야로 달려갔다.

바케네코야에 오자마자 쿄코는 사부로네코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


문을 연 순간 독에 의해 죽어가는 병자의 특유 냄새가 흘러 나왔다.

호시는 사부로네코의 머리말로 다가가,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이마에 붉은 다이아몬드 문양이 나타났고, 그녀가 내뿜은 작은 황금 알갱이 빛들이 사부로네코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사부로네코의 얼굴빛이 서서히 제 색을 되찾아갔다.


"으, 누…님?"

"사부로네코! 정신이 들어?!"


사부로네코가 정신을 차리자 호시는 옆으로 비켜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쿄코는 안도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하는 료타네코의 모습에 손사래를 쳤다.


"나에게 감사할 게 뭐가 있어. 됐어. 부하를 잘 챙기도록 해."


밖으로 나오자, 비가 와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동이 틀 때인가."

"아가씨!"

"사사미?!"


카라스 삼남매의 홍일점, 사사미가 내 앞에 나타났다.


"무, 무슨 일이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처럼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사사미에게 물었다.


"아가씨의 힘이 필요합니다! 카오리히메가!"

"?"

"소데모기에 당하셨습니다."

"소데모기라면! 그 신 앞에서 넘어지면 소매를 찢어서 줘야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하는!"


시코쿠에 내려오는 신앙 요괴. 약한 토지신을 공격하고 그 신앙심을 빼앗아 자신을 향한 경외심으로 삼는다. 지금 그 녀석들은 누라구미 영역을 근본부터 빼앗을 생각을 한 건가.

사사미에게 안겨서 아메와라시 신사에 날아오게 되었다. 신사에는 카라스 삼남매 말고도 밤의 리쿠오와 쿠로타보가 함께 있었다.


"내가 뭘 하면 돼?"

"아가씨라면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모히칸 머리 스타일을 한 카라스텐구의 차남, 토사카마루가 쓰러져 있는 카오리히메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토지신의 경외를 회복시키는 거라면 할 수 있어."


내 몸에 무리가 많이 가겠지만… 이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토리이의 치료도 가능하는가."

"왜? 토리이가 다쳤어?"

"소데모기의 저주에 걸렸다."

"!?"

"병원 토지신이…."

"센바 츠루말이야?"

"아십니까?"

"응. 학 천마리를 접으면 병을 낫게 해준다는, 병원 근방의 토지신 말이지? 근데 센바님의 사당에는 참배객이 찾아오는 꼴을 못 봤는데…."

"…."

"신은 인간의 바람이 응축하여 만들어지는 것. 그들의 마음이 신을 이루고 있기에 인간에게 잊혀진 신은 사라지게 되어있어. 사람의 마음의 크기가 신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고 약하게 만들기도 하지. 그래서 우리 사노메는 약자들을 지키는 거야."


호시의 요기가 짙어지더니, 사당 내부는 빛을 내는 나비들, 화혼접으로 가득 찼다.

그 나비들은 두 갈래로 나눠졌다. 어딘가로 날아간 나비떼와 남아 있는 나비떼들로 나눠졌다. 남아있는 나비들은 호시의 두 손 사이로 들어가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구성 되어갔다.


"됐다."


호시는 손을 펼쳐서 금빛이 감도는 환약을 보여줬다.


"이걸 먹이면 돼."


작은 구슬 크기의 환약을 토사카마루의 손에 올려줬다.


"근데 왜 저에게?"

"토사카마루는 카오리히메와 친하다고 릿카에게 들었는데. 아니야?"


그녀의 순진한 질문에 쿠로타보는 헛기침을 하며 신사를 나갔다.


"저, 저, 그러니까…."

"네가 먹이면 돼. 그럼 내가 할까?"

"아뇨!"


토사카마루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버럭 외쳤다.

호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리쿠오가 재빨리 쫓아나갔을 때는 호시는 코마이누 석상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호시?"

"토리이는 괜찮다고…, 하더라."

"너 괜찮은 거야? 안색이 안 좋아.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다고."

"힘을 과다 사용해서 그래…."

"괜찮아?"

"괜찮…우욱!"

"호시!"


헛구역질이 나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속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괘, 괜찮-쿨럭!!"


호시가 피를 토하자 리쿠오의 눈동자가 부릅 떠졌다.


"괜찮긴! 어서 돌아가자! 젠을 부를게!"


리쿠오는 호시를 안아들었다.


"차가워지기 시작했어…."


호시의 얼굴빛이 창백해질 수록 그녀의 입에서 나온 피의 양도 많아졌고, 체온이 서서히 떨어졌다.


"젠!!"


본가로 돌아오자마자 리쿠오는 젠을 찾았다.


"아가씨!"


미도리는 창백한 낮빛의 호시와 그녀의 옷에 묻은 피를 보자 새파랗게 안색이 질렸다.

리쿠오는 미도리가 깐 이부자리 위에 호시를 눕혔다.  


"세상에!"

"호시, 괜찮은 거야?"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하셨어. 몸에 무리가 가신 거야."


그녀의 몸 속에 있는 저주가 힘을 쓸 수록 호시를 내부에서 갉아먹고 있었다.

리쿠오는 아픈 호시 옆을 떠나지 않으며 하쿠를 도와 호시를 간호했다.

  1. 시코쿠 요괴,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죽거나 불행해진다고 하는 밀집모자를 쓴 존재들 일반인 눈에 보이지 않으나 소의 가랑이 사이나 무언가 틈새를 통해 보면 보인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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