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코의 내조.]


본가의 도움을 빌려 재건한 집은 복도도 기둥도 모두 새로웠다. 

야쿠시 일파. 레이코는 그곳에 있었다.

약사 일파를 이끄는 젠이 우두머리로 있는 일파로, 격투파는 아니지만 '약짐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의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었다.


"레이코님, 본가에서 오보로구루마가 도착했습니다."


부하가 다가와 말했다.


"그래."


레이코는 거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젠이 약초에 대한 고서를 보고 있었다.


"젠, 들어갈게요."


레이코는 장지문을 열었다.


"젠, 본가에서 오보로구루마가 도착했다고 하네요."

"지금 갈게."


고서를 책장에 도로 꽂은 젠의 어깨에 레이코는 겉옷을 걸쳐주었다.

젠이 마당에 있는 오보로구루마에 타려는 순간, 집사가 달려나왔다.


"젠님! 이렇게 이른 시간에 더리 가십니까?! 몸이 해롭습니다!!"


얼굴이 개구리인 그 요괴는 짙은색 기모노를 입고 젠과 레이코와 같은 날개 문양이 들어간 하오리를 입고 있었다.


"산에 간다. 내가 말 안 했냐?"


젠은 뒤돌아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산이요? 못 들었습니다!"

"방금 들었으니 됐네. 난 산에 간다."

"아니됩니다! 몸도 안 좋으신데! 자리에 드셔야 합니다! 어서요!"


행동도 빠릿빠릿하고 셈에도 능한 집사는 잔소리가 많은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원래 기본적으로 난 몸이 안 좋아."

"그러니까 안정을 취하셔야지요."

"가야 되는 날이라고. 그런 날이 일년에 몇 번은 있다고 했잖아."


젠은 그렇게 말을 던지고 오보로구루마에 올라탔다.


"잠깐만요, 젠님!"

"야, 출발해!"


밖에서 떠드는 집사를 무시한 채 오보로구루마에게 젠은 명령을 내렸다.


"젠님!!"


젠을 태운 오보로구루마가 둥실 떠올랐다.

오보로구루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집사는 레이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안 말리신 겁니까!"

"젠은 의사이자 약사니까."


그는 약의 재료를 직접 구하는 그런 약사이자 의사였다.


"게다가 아침 산책은 몸에 좋다고 하잖니, 후훗."

"레이코님!"


레이코는 자신의 편이 없다는 것에 절망한 집사를 두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게다가 아침 이슬을 맞은 것이 아니면 약효가 없는 종류의 것도 있으니까…. 젠이 직접 가는 것이 낫지.'


레이코는 야쿠시 일파에서 지낸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약초에 관해서는 서툴렀다(본인의 기준으로는).

젠이 산책 겸 채취로 산에 간 지 2시간 동안, 레이코는 거실에서 고서를 읽으며 약초를 공부했다. 


"천칭초…의 씨는 약해진 요괴들의 장양강장에 좋다…."


줄기 끝이 두 갈래로 갈라져 그 각각의 줄기에 커다란 청자색 꽃을 피우는 약초를 보고 있을 때, 거실의 문이 열렸다. 


"벌써 돌아오셨나요, 젠."


책을 덮고 레이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 아니면…."

"술."

"근데 그 붉은 것은 뭔가요?"


붉은 천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젠의 손을 가리키며 레이코가 물었다. 


"쓰레기다."

"또 인간들 짓인가요."


요 몇 년동안 산에 올라갔다가 인간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들고 내려오는 일이 많아졌다.

옛날에 비해 산은 더러워지고 있다. 산기슭에 커다란 도로가 놓여, 등산을 좋아하는 인간들이 올라가기 좋게 된 탓이다. 사람과 요괴의 경계가 침식 당하고 있다.


'산중타계1'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예로부터 산은 선조의 영혼이 깃든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는 곳으로 생각해왔다.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는 곳, 그것은 곧 요물의 숨이 닿은 곳이었다. 잘못 발을 들이면 요물의 소리가 들리고, 요물의 바람이 불고, 뭔가에 씌게 된다. 

산이란 그런 곳임을 옛날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보아서 안 된다.

만져서 안 된다.

들어서서 안 된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범해서는 안 될 금기라는 것이 있으나, 그럼에도 인간은 설마하는 생각에 무심코 그 금기를 범해버린다.

이 '설마', '무심코'라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런 장애없이, 아무 망설임없이 인간이 산을 드나들고, 그곳에 인간의 흔적을 남기게 되면 그곳은 이미 요괴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요괴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지게 된다.


"역시 사람은 무섭군요…."


친절했다가 한 순간 돌변하는 것도 사람이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무서워하고 기피하는…… 그런 종족. 그런 주제에 멋대로 어둠의 경계에 들어온다. 

술을 받아든 젠이 산에 올라가 본 광경을 집사와 레이코에게 들려주었다. 레이코와 집사의 것은 차였다.


"대체 뭘 짓는 거래요?"


대체 뭐를 짓길래 계곡을 없애버린 건가.


"산폐물을 짓는다고 하더군요."

"산폐물?"

"네. 산업폐기물입죠. 그건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인 산업폐기물 처리장입니다."

"산업폐기물이라면 곧…."

"네. 공장 등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말합니다."

"그런 걸 만들겠다고? 그 계곡에?"

"소문은 그 전부터 있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산업폐기물 처리장이 생길 것이라는. 그렇군요, 계곡 표면이 벌써 깎였군요."


집사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얼굴로 차를 마셨다.


"말하자면 커다란 쓰레기통인 셈이군. 그런데 그 산에 그딴 걸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그곳은 약의 보고라고."

 

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자, 집사는 이해에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고 마을 한가운데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시설은 보통 산속 깊숙이 만들게 되죠."

"달관했네, 달관했어. 산이 짓밟혀도 좋은 거냐?"

"좋지는 않지만, 저희로서는 어쩌할 도리가 없잖습니까."

"살짝 손을 봐주는 수도 있지. 그 공사 현장에 가서 겁 좀 주는 거야. 그럼 공사도 중지될 것 아니겠냐."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부질없군요."


집사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젠님의 능력은 그러기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안다구. 그런 짓은 안 해."


집사의 너무나도 달관한 태도에 젠은 아이같은 소리를 한 거다. 본인 스스로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공사하는 인간들을 놀라게 해 철수시키는 건 가능할 겁니다. 그 쯤은 본가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저희끼리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인간은 도 다른 산에 처리장을 만들겁니다. 악순환도 아니고 그게 뭔가요. 요괴의 영역은 조금씩 사라져갈겁니다. 숙명일지도 모르지요."


알고있으면서도 못마땅을 느낀 젠이 술잔을 들어 거칠게 털어놓자, 집사가 헛기침을 했다. 


"젠님. 오늘은 좀 과하신 게 아닙니까?"

"괜찮아. 그리고 술은 팔아도 남을 정도로 쌓여있다구."


집을 신축했기 때문에 요 며칠 동안 당분간 술은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신축 축하주가 속속 도착했다.


"술이 많고 적음을 논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취하시기 전에 오늘은 이것을 봐주셔야겠습니다."


집사가 곁에 두었던 종이를 건넸다.


"뭔데, 이게?"

"약짐당 영업재개를 알리는 전단지입니다."


젠은 대충 보고 레이코에게 넘겨주었다.


"문제없다하시면 인쇄를 돌릴 예정입죠. 원래는 신축공사가 끝남과 동시에 돌리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잖아. 일이 많았으니까."

"네. 어떻습니까? 그 전단지."

"응, 괜찮은데? 인쇄 맡겨."

"제대로 보지도 않으셨잖습니까!"


레이코는 유심히 전단지를 바라보았다.

그런 레이코를 보고 난 후 집사가 젠을 보고 고쳐앉으며 말한다.


"젠님."


평소보다 엄격한 목소리였다.


"왜…?"

"산과 요괴의 거취에 대해 걱정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이런 일에도 조금은 눈을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당신께서는 이 약짐당의 의사이자 약사이자 동시에 사장님이십니다."

"사장!?"


뿜어지는 소리에 레이코는 전단지에서 시선을 뗐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집사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제가 이 약짐당에 신세를 지고 있는 이상, 선대, 그 선대 때보다 번성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번성이라니…. 의사가 한가하면 좋은 거 아닌가? 그만큼 요괴들이 건강하다는건데."

"그런 방심이 바로 금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약짐당은 본가전용 응급실이 아닙니다. 아니, 그런 측면이 있어도 좋다고 하나, 조금 더 이익을 올리는 일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익…이란 말이지."

"그러기 위해서 먼저 이겁니다. 여러 전단지를 널리 베포하여, 요괴업계에 우리 약짐당을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전단지 말고도 <누라구미통신>에 신문광고를 내고 있으며, 조만간 온라인 사이트도 오픈할 예정이지요."

"온라인…? 에라이, 모르겠다. 레이코랑 상의해."


레이코는 술병과 술잔을 들고 젠을 올려다보았다.


"젠…."

"젠님! 응급환자가!"

"그래, 지금 간다."


절박한 부하의 목소리에 젠이 장지문을 열었다.


"인쇄 그대로 진행해도 돼."

"그럴까요."

"그리고 광고도 괜찮을 것 같네."

"네."


레이코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집사가 방을 나갔다.

응급환자는 말라죽기 직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온몸의 혈액이 빼앗긴 상태라고 했다.


"신종 요괴의 짓일까요?"


요괴의 종류는 천을 넘는다. 그리고 항상 동일하지 않다. 있을 곳을 잃어 홀연히 사라진 요괴도 있고, 현대사회에 생겨난 신종요괴도 있다.


"몰라. 그치만 지금 갖고 있는 지식, 서적 속에 그 답이 잇을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어."


도쿠간키2파 요괴가 약짐당에 실려온지 사흘 뒤, 새로운 피해자가 나왔다.


"완전 똑같은 수법이로군요."


도깨비의 처지가 끝나자 레이코는 젠에게 말했다. 


"젠님 이건 본가에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집사가 말을 걸어왔다.

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를 내린 후에도 젠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젠님.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쓰, 쓸데없는 생각이라니?"

"젠님은 치료에만 전념해주시면 됩니다. 흡혈요괴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본가의 카라스 3인조에게 맡기면 되지요. 제 말이 틀립니까?"

"안다구, 그쯤은."


젠을 바라보는 집사의 눈에는 의심의 기색이 역력했다.


"뭐야, 기분 나쁘게."


젠은 입을 꾹 다물고 집사에게서 눈을 돌렸다.

토라진 아이 같은 젠의 모습에 레이코는 미소를 지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의사에게는 연구자의 일면이 있는 법이지. 어떤 병이 유행했는지, 어떤 약이 효과적인지, 새로운 정보에 탐욕적이 일면이 있는 것이다. 흡혈요괴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연구자로서의 욕구가 굼틀거리나보네.'


"젠."

"왜."

"조사할 생각은 접도록 해요."

"너까지 그러는 거냐, 레이코."

"당연하죠."


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조직의 존속이 위태롭다.

무소속 도깨비가 실려온지 사흘이 지났다. 젠이 혹시라도 나갈까봐 집사는 현관 옆에 있는 방에서 장부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그곳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레이코는 젠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젠이 나갈 곳마다 앞질러서 기다리고 있었다.


"젠."

"쳇-!"

"…그렇게 나가고 싶은건가요?"

"나가고 싶다. 현장을 둘러보기만 할 건데. 건질 게 없으면 금방 돌아올 거고. 누라구미 영역에서 날뛰고 있는 기묘한 요괴가 있다는데 이대로 얌전히 있으라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요구야!!"


레이코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역시 내 아내라니까!"


젠은 집사에게 들킬까봐 서둘러 저택을 나섰다.


"부군을 믿고 기다리는 것도 아내의 내조 중 하나지요."


레이코는 작게 중얼거리며 마당을 슬기 시작했다. 

그후 젠은 흡혈요괴와 만나 한판 붙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왔다고, 조만간 그 녀석이 손님으로 찾아올 거라는 얘기를 웃으며 했다.


"웃을 상황입니까?! 어쩌면 이렇게 사람을 걱정하게 하고…."


집사가 잔뜩 열이 올라 소리쳤다.


"레이코님은 어째서 말리지 않으신 겁니까!"


설교가 길어질 것 같아 젠은 귀를 막고 "아우- 시끄러워-"하며 복도로 도망쳤다.


"젠님, 본가의 리쿠오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리쿠오라는 이름을 듣자, 젠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그는 현관으로 향했다.

  1. 죽은 자의 영혼이 머무는 다른 세상이 산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 [본문으로]
  2. 외눈박이 요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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