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블도어의 개인 수업을 받기 위해서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몹시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그을리고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또 다시 책상 위에는 펜시브가 천장에 반짝거리는 은색 불빛을 반사하며 놓여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꽤 바빴던 모양이구나.”
덤블도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케이티가 당한 사고를 직접 목격했다고 하던데...”
“예, 교수님. 케이티는 좀 어떤가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지. 하지만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단다. 살갗이 목걸이에 아주 살짝 스쳤던 것으로 밝혀졌지. 장갑에 눈곱만 한 구멍이 나 있었거든. 만약 그 목걸이를 걸었거나 맨손으로 집어 들었다면, 케이티는 바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게다. 다행히도 스네이프 교수가 급속도로 저주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왜 그자가 한 거죠? 왜 폼프리 부인이 하지 않았나요?”
해리가 즉시 물었다.
“해리!”
그의 무례한 발언에 내가 작게 그를 불렀다.
“건방진 녀석 같으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팔을 베고 엎드려 자는 척하던 시리우스의 고조부인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블랙이 고개를 들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있던 시절에는 호그와트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감히 학생들이 따지고 들게 내버려 두지 않았어.”
“그래요, 고맙구려, 피니어스.”
덤블도어가 얼른 진정시켰다.
“스네이프 교수는 폼프리 부인보다 어둠의 마법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단다, 해리. 어쨌든 성 뭉고 병원의 치료사들이 한 시간마다 나에게 진료 결과를 보내고 있으니, 조만간 케이티가 완쾌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단다.”
“이번 주에 어딜 다녀오셨어요, 교수님?”
해리가 너무 주제넘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등 뒤에서 쯧쯧 혀 차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던 것이다.
“지금 당장은 말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적당한 때가 되면 너에게 말해 주마.”
덤블도어가 말했다.
“정말이세요?”
해리가 놀라서 반문했다.
“그래, 그럴 생각이다. 로라는 그런 것에 궁금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말이지.”
“말해주신다면 저야 좋죠. 하지만 교수님의 생각이시니까 믿고 있을 뿐이에요.”
“나를, 믿는다고?”
“교수님이 하시는 일에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교수님은 절대로 해리를 죽게 하실 분이 아니잖아요. 전 단지 그 감을 믿고 있을 뿐이에요.”
덤블도어가 나를 쳐다보자 나는 그를 보면서 입꼬리를 올려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다른 것은 전혀 믿지 않지만... 일부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덤블도어는 옷 안쪽에서 또 다른 은빛 기억이 담긴 병을 꺼내더니 지팡이 끝을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그런데 교수님, 호그스미드에서 먼던구스를 만났어요.”
“아, 그래. 나는 먼던구스가 네 유산을 우습게 보고 슬쩍 빼돌리고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단다.”
덤블도어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스리 브룸스틱스 박에서 그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 먼던구스는 잠적해 버렸단다. 아마 나를 보는 게 두려웠던 모양이야. 하지만 더 이상은 시리우스의 옛 재산을 빼돌리지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니, 그 지저분한 잡종 영감탱이가 블랙 가문의 유서 깊은 가보들을 훔쳐 내고 있었단 말이야?”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발끈해서 소리치더니 액자 밖으로 걸어 나가 버렸다.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에 있는 자신의 초상화를 찾아간 것이 분명했다.
“교수님...”
잠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해리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맥고나걸 교수님께서 케이티가 부상을 당한 후에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렸는지 이야기하지 않으시던가요? 드레이코 말포이에 대해서요?”
“그래, 맥고나걸 교수가 네가 의심하는 바에 대해서 말해 주시더구나.”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럼 교수님께선...?”
“나는 케이티의 사건에 조금이라도 연루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모든 적절한 방법을 동원해서 조사할 작정이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나의 관심사는 우리의 수업이지, 해리.”
덤블도어는 펜시브에 새로운 기억을 부어 넣었다. 그는 또 다시 긴 손가락으로 돌 대야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물론 너희도 기억하고 있을 게다. 우리는 지난번에 볼드모트 경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들 중에서, 그 잘생긴 머글인 톰 리들이 그의 마녀 아내인 메로프를 버리고 리틀 행글턴에 있는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간 대목까지 보았었지. 메로프는 홀로 런던에 남아서 장차 볼드모트경이 될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메로프가 런던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카락타쿠스 버크의 증언 덕분이지.”
“카락타쿠스... 버크? 보진과 버크 가게의 설립자 중 한 명인가요?”
“눈치가 빠르구나, 로라. 그래, 그 가게를 설립하는 데 일조한 사람이란다.”
덤블도어는 펜시브에 담긴 내용물들을 마치 사금 찾는 이들이 금을 체에 걸러 내듯이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러자 은빛 소용돌이 속에서 왜소한 노인의 형체가 떠오르더니 서서히 펜시브 안을 맴돌았다. 그것은 유령처럼 은백색이었지만 투명하지 않았고, 무성한 머리카락이 완전히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소. 우린 아주 흥미로운 상황에서 이 물건을 손에 넣었소. 크리스마스 바로 직전에 한 젊은 마녀가 가지고 왔지. 오, 벌써 수년 전 일이로군. 그 마녀는 돈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햇소. 그건 딱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지. 다 떨어진 누더기차림에 꽤.... 게다가 곧 아기를 낳을 몸이었소. 그 마녀는 이 목걸이가 슬리데린의 것이라고 말했지. 물론 그런 말은 우리가 만날 듣는 소리였소. ‘오, 이건 멀린의 것이에요. 그가 제일 아끼던 찻주전자였죠.’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내가 그 물건을 보았을 때, 거기에는 틀림없이 그의 표식이 찍혀 잇었소. 그리고 몇 가지 간단한 주문이면 진실을 털어놓게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지. 어쨌든 그 물건은 거의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이었소. 그런데 그 마녀는 그 물건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눈치였소. 10갈레온을 받더니 좋아서 돌아가더구먼. 그야말로 우리 가게 역사상 최고의 흥정이었지!】
덤블도어가 또다시 펜시브를 세게 흔들자, 카락타쿠스 버크는 소용돌이치는 기억 속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그 마녀에게 겨우 10갈레온밖에 안 주었단 말인가요?”
해리가 분개했다.
“카락타쿠스 버크는 관대하기로 소문난 인물이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장사치들이 다 그렇지... 어떻게든 이익을 많이 내려고 했고, 손해를 적해 보려고 하는...
“그래서 우리는 산달이 가까워 온 메로프가 런던에서 혼자 지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단다. 몸에 지니고 있던 단 하나의 소중한 재산, 마볼로가 목숨처럼 아끼던 가보들 중 하낭니 그 목걸이를 팔아야 할 만큼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상태로 말이야.”
“하지만 그녀는 마법을 할 줄 알잖아요?”
해리가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음식이며 필요한 물건들이면 마법으로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마녀이면서 마법을 버렸기에 두 번 다시는 사용하고 싶지 않는 것이겠지.”
내가 말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나서 더 이상 마법을 쓰고 싶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보답 받지 못한 사랑과 그에 따른 절망감 때문에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모르겠지만... 메로프는 마녀이면서 마법을 버린 거야.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지팡이를 드는 것조차 끝내 거부했지.”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볼드모트와 나와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비슷하면서도 우리는 확연히 틀렸다. 같은 사랑의 묘약에서 태어났는데 말이지....
“그럼 아들을 위해서 살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그 말을 듣자 덤블도어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혹시 볼드모트경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해리가 재빨리 부인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었잖아요, 안 그래요? 우리 어머니와는 다르잖아요.”
“네 어머니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단다.”
덤블도어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메로프 리들은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자식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지. 하지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그녀는 오랜 고통으로 너무나 허약해졌을뿐더러 해리의 어머니인 릴리나 로라의 어머니인 루치아와 같은 용기가 없었단다. 자, 그만 자리에서 일어서렴.”
“이번에는 어디로 가나요?”
덤블도어가 책상 앞에 우리와 나란히 섰을 때, 그가 물었다.
“이번에는 나의 기억 속으로 함께 갈 거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굉장히 상세하고, 만족스러울 만큼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될 게다. 먼저 가거라, 해리, 로라.”
해리가 먼저 펜시브 위로 몸을 숙였다. 그의 뒤를 이어서 펜시브 위로 몸을 숙였다. 얼굴이 차가운 기억의 표면 속으로 들어가자,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불과 몇 초 후에 발이 단단한 땅에 닿았다.
우리는 번잡한 옛날풍의 런던 거리에 서 있었다.
“나는 저기에 있단다.”
덤블도어가 밝은 목소리로 우리 앞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가리켰다. 그는 말이 끄는 우유 손수레 앞에서 길을 건너고 있었다. 젊은 알버스 덤블도어의 긴 머리카락과 수염은 적갈색이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화려하기 짝이 없는 고전풍의 짙은 보라색 벨벳 옷을 입고 있는 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옷이 참 멋지군요, 교수님.”
“하하.”
해리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덤블도어는 킬킬거렸다.
우리는 젊은 덤블도어를 가까이 따라갔다. 그는 마침내 철 대문을 지나서, 높은 난간이 둘러쳐져 있는 음침하고 네모난 건물 앞에 있는 황량한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 문을 한 번 두드렸다. 잠시 후에 문이 열리더니 앞치마를 두른 꾀죄죄한 젊은 여자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기 원장으로 알고 있는 코올 부인과 약속이 있습니다만...】
【어...】
덤블도어의 별난 옷차림을 보고 여자는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음... 자... 잠깐만요... 코올 부인!】
여자는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대답하는 것이 들려왔다. 젊은 여자는 다시 덤블도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부인은 나오시는 중입니다.】
덤블도어는 검은색과 흰색 타일이 깔린 현관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집 안 전체가 초라하기는 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듯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부인이 덤블도어를 향해 황급히 걸어왔다. 이모구비가 날카로운 부인의 얼굴은 못됐다기보다는 뭔가 걱정거리가 가득하다는 인상을 풍겼다. 부인은 고개를 돌려 또 다른 앞치마를 두른 보조원에게 연신 지시를 내렸다.
【이 요오드를 2층 마사에게 가져다줘요. 빌리 스텁스가 자꾸 딱지를 뜯어서 말이야. 에릭 왈리는 침대에 온통 오줌을 싸 놓았더군. 무엇보다도 수두가 제일 큰일인데....】
부인은 딱히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시선이 덤블도어에게 미치자, 부인은 우뚝 발걸음을 멈추고 마치 방금 기린이라도 한 마리 문지방을 넘어 들어온 것처럼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덤블도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코올 부인은 그저 입만 딱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 이름은 알버스 덤블도어입니다. 제가 약속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더니, 부인께서 친절하게도 오늘 저를 이곳으로 초대해주셧지요.】
코올 부인은 여전히 눈만 껌벅거렸다. 그러나 마침내 자기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는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오, 네. 저... 그렇다면.... 제 방으로 가시는 게 좋겠네요.】
코올 부인은 응접실 같기도 하고 사무실 같기도 한 작은 방으로 덤블도어를 안내했다. 그 방은 현관 복도만큼이나 초라했고, 가구들도 모두 낡아서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부인은 덤블도어에게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의자 위에 앉을 것을 권했고, 자기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책상 뒤에 앉아서 초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여기 온 것은, 편지에도 말씀드렸듯이, 테일러 리들과 톰 리들에 대해서 상의드리고 그들의 장래를 결정 짓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가족이신가요?】
코올 부인이 물었다.
【아니요, 저는 교사입니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저는 테일러와 톰에게 저희 학교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무슨 학교인데요?】
【호그와트라고 합니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어떻게 해서 테일러와 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저희 학교는 테일러와 톰이 저희가 원하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믿습니다.】
【졸업장 말씀인가요?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그 아이들은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않았는데요.】
【저... 테일러와 톰은 태어날 때부터 저희 학교 명부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누가 등록을 했지요? 부모님인가요?】
코올 부인이 까다로울 정도로 날카로운 여자라는 것은 분명했다. 덤블도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의 벨벳 저고리의 안주머니에서 지팡이를 슬쩍 꺼내면서, 동시에 코올 부인의 책상 위에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 한 장을 얼른 집어 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고는 코올 부인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분명하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코올 부인은 눈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ㅜ디로 젖혔다 앞으로 숙였다 하면서, 한동안 주의깊게 그 텅 빈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완벽하게 절차에 맞는 것 같군요.】
부인은 만족한 듯이 말하며 종이를 돌려주었다.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없었던 술병과 유리잔 두 개가 부인의 눈에 들어왔다.
【저... 한 잔 드릴까요?】
부인은 갑자기 너무나도 고상한 어조로 말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덤블도어가 활짝 우성ㅆ다. 코올 부인은 두 잔 모두에 꽉꽉 차도록 술을 따르더니 자기 것을 단숨에 꿀꺽 마셔 버렸다. 그리고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처음으로 덤블도어에게 미소를 지었다. 덤블도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혹시 테일러 리들과 톰 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저에게 좀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아이들이 여기 이 고아원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코올 부인이 술을 한 잔 더 마시며 대답했다.
【그 당시 일을 아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제가 여기서 막 이 일을 시작했을 무렵이었으니까요. 새해 전날이었는데, 매섭고 춥고 눈이 내리는 날이었어요. 지독한 밤이었죠. 그 당시의 제 나이 정도밖에 되지 않은 한 젊은 여자가 현관 계단을 비틀거리면서 올라왔어요. 물론 그런 사람이 처음은 아니었지요. 우리는 그녀를 받아주었고, 그녀는 몇 시간 후에 쌍둥이를 낳았어요. 그리고 불과 한 시간 만에 죽고 말았죠.】
코올 부인은 새삼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다시 술을 한 모금 꿀꺽 들이켰다.
【그 여자가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하지 남기지 않았나요?】
덤블도어가 물었다.
【예를 들어 그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라든가?】
【그거야 당연하죠. 그 여자도 그랬어요.】
코올부인은 이제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앞에서는 자기 아야기를 열심히 들어 주는 청중을 두고 완전히 신이 난 것 같았다.
【저는 그 여자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닮았어요 좋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 여자가 그러길 바라는 것도 무리도 아니었어요. 그 여자는 결코 미인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아이 이름을, 그의 아버지 이름에서 딴 ‘톰’과, 그녀의 아버지 이름에서 딴 ‘마볼로’를 넣어서 짓어 달라고 했어요. 그렇다니까요. 정말 웃기는 이름이죠? 우리는 그 여자가 혹시 서커스단 출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 했다니까요. 어쨌든 아이의 성은 리들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 숨을 거두었지요. 하지만 남자 아이의 이름만 지어서 우리는 톰을 여성스럽게 바꾼 이름, ‘테일러’와 그녀의 이름 ‘메로프’를 넣어서 여자 아이의 이름을 지었어요. 어쨌든 우리는 그 여자가 말한 대로 이름을 지었어요. 그 가엾은 여자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톰이든 마볼로든 리들이든 어느 누구도 그 아이들을 찾으러 오지 않았어요. 가족도 전혀 없었지요. 그래서 그 아이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고아원에서 자랐답니다.】
코올 부인은 거의 무의식중에 또다시 술을 한 잔 가득 따라서 마셨다. 높이 솟은 부인의 광대뼈가 불그스레하게 물들였다. 끄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들은 좀 이상한 아이예요.】
【그렇지요.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아기 때부터 좀 이상했죠. 절대로 우는 법이 없었어요. 그리고 조금 더 자라자, 좀... 괴상해졌어요.】
【괴상하다니 어떤 식으로 말씀입니까?】
덤블도어가 공손하게 물었다.
【그게...】
코올 부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 술잔 너머로 덤블도어를 캐묻듯이 쏘아보는 부인의 날카로운 눈빛은 조금도 흐려지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댁의 학교에서 테일러와 톰을 받아 주기로 한 거죠?】
【예, 분명히 그렇습니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그 결정을 바꾸진 않겠지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 아이를 데리고 가시는 거죠? 무슨 일이 있어도?】
【예, 무슨 일이 있어도요.】
덤블도어가 진지하게 다짐했다. 부인은 그의 말을 믿을지 말지 망설이는 듯이 한동안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펴보다가, 결국 믿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불쑥 말을 내뱉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들을 무서워해요.】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군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코올 부인이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좀처럼 그 아이들이 그러는 현장을 잡을 수가 없어요. 여러 가지 사고들이 있었죠... 아주 곤란한 일들이...】
덤블도어는 그 말에 몹시 흥미를 갖는 것 같았지만, 코올 부인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부인은 또다시 술을 한 모금 꿀꺽 삼켰다. 장밋빛으로 물든 부인의 뺨이 더욱 붉어졌다.
【빌리 스텁스가 토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물론 톰은 자기가 안 그랬다고 하지만, 그리고 저도 그 녀석이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통 모르겟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해도 설마 토끼가 스스로 대들보에 목을 매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덤블도어가 조용히 맞장구를 쳤다.
【그 녀석이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가서 그 짓을 했는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제가 좋아서 춤이라도 췄을 겁니다. 제가 아는 거라고는 그 전날 톰과 빌리가 말다툼을 했다는 것뿐이지요. 그리고...】
코올 부인이 또다시 술을 홀짝 들이켰다. 이번에는 턱 밑으로 술이 조금 흘러내렸다.
【또 한 번은 여름 소풍을 나갔었지요. 저희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1년에 한 번 시골이나 바닷가로 소풍을 간답니다. 어쨌든, 소풍을 갔다 온 후부터 에이미 벤슨과 데니스 비숍이 비실비실하는 것이 영 시원치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반대로 테일러가 싱글벙글 웃는 것을 보니까 섬뜩하면서 오싹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두 녀석에게 캐물었죠. 아무리 캐물어도 리들 쌍둥이와 함께 동굴에 들어갔었다는 말밖에 안 하더군요. 테일러는 그냥 동굴 탐험이었다고 맹세를 했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요. 어휴,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수없이 많았지요. 정말 이상한 일들이...】
코올 부인은 또다시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뺨은 완전히 빨갛게 물들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또렷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떠난다고 해서 섭섭해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둘이 계속해서 학교에 있지는 않을 거라는 걸 부인도 알고 계시겠지요?】
덤블도어가 물었다.
【테일러와 톰은 적어도 매년 여름에는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 그래요. 녹슨 부지깽이로 코를 한 대 얻어맞는 것보단 그 편이 훨씬 낫지요.】
코올 부인은 딸꾹질을 하며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인은 술병의 3분의 2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걸음걸이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마도 테일러와 톰을 만나보고 싶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덤블도어여깃 일어서면서 말했다.
코올 부인은 덤블도어를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마주치는 보조원들과 아이들에게 쉬지 않고 이런저런 지시 사항과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돌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모양의 긴 회색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그런대로 나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자라기에는 참으로 음울한 환경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여깁니다.】
코올 부인은 두 번째 층계참을 돌아서 긴 복도의 첫 번째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똑똑 두 번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테일러? 톰? 손님이 오셨단다. 덤버트씨라고 하신다. 아니, 죄송합니다, 던더보어씨. 이분이 너희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오셨어. 자, 그럼 나는 그만 나가 보마.】
젊은 덤블도어의 뒤를 따라서 우리가 방으로 들어가자 코올 부인은 문을 닫고 나갔다. 낡은 옷장과 나무 의자, 그리고 쇠 침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아주 작고 쓸쓸한 방이었다. 한 소녀와 소년이 책을 손에 쥐고 두 발을 앞으로 쭉 뻗은 채, 회색 담요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의 얼굴에서는 곤트 가족의 흔적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메로프의 소원의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열한 살의 톰 리들은 그의 아버지의 축소판 같았고, 테일러 리들은 톰과 비슷할 정도의 큰 키를 가지고 있었으며 까만 머리에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테일러는 들어온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지 책에만 시선을 계속 집중했고 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덤블도어의 기묘한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반갑구나, 테일러! 톰!】
덤블도어가 손을 내밀며 앞으로 다가갔다. 테일러는 덤블도어를 보지 않았고, 톰은 망설이다가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덤블도어는 딱딱한 나무 의자를 리들 쌍둥이 옆으로 끌어다가 앉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꼭 병원의 환자와 문병객처럼 보였다.
【나는 덤블도어 교수란다.】
【‘교수’라고요?】
톰이 되물었다. 그는 약간 경계하는 것 같았다.
【그건 ‘의사’ 같은 건가요? 여기는 뭐 때문에 오셨죠? 원장님이 또 저희를 살펴보라고 보냈나요?】
소년은 그러면서 코올 부인이 방금 나간 문을 가리켰다.
【아니, 아니다.】
덤블도어가 빙그레 웃었다.
【난 그 말 안 믿어요. 날 감시하라고 보냈죠, 그렇죠? 진실을 말해!】
톰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명령을 외치자 테일러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는 덤블도어를 응시했다. 상황을 주시하는 눈빛이었다. 톰은 두 눈을 부릅뜨고 덤블도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다정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잠시 후, 톰은 노려보는 것을 멈추었지만 훨씬 더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테일러 역시 덤블도어를 보는 시선이 경계하는 것으로 변했다.
【당신은 누구죠?】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테일러가 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물었다.
【벌써 말했잖니. 나는 덤블도어 교수란다. 그리고 나는 호그와트라고 하는 학교에서 일을 하지. 나는 너희에게 우리 학교에 들어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찾아왔단다. 너희의 새로운 학교 말이지. 물론 너희가 원한다면 말이지.】
이 말을 들은 리들 쌍둥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덤블도어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졌다.
【교수라고? 우린 그런 말을 믿지 않아!】
【정신병원에서 왔지, 그렇지? 우린 절대 안 갈 거야. 알겠어?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바로 그 늙은 고양이야. 우리는 에이미 벤슨이나 데니스 비숏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 아이들에게 물어봐! 그럼 말해 줄 거야!】
【난 정신병원에서 온 것이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끈끼있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야. 너희가 진정을 좀 하고 자리에 앉는다면, 내가 호그와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마. 물론 너희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해도, 아무리 강요하지는 않을 게다.】
【강요해 보기만 하라지.】
【응...】
톰은 빈정거렸다.
【호그와트는...】
덤블도어는 톰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설명을 계속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학교로...】
【우린 안 미쳤어!】
【나도 너희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단다. 호그와트는 정신병자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야. 거기는 마법 학교란다.】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테일러와 톰은 무표정한 얼굴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시선은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잡아내기 위해 기를 쓰는 듯이 덤블도어의 두 눈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마법?】
【마법이라고요?】
둘은 중얼거렸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럼 우리가.... 하는 게... 마법인가요?】
【너희가 뭘 할 수 있지?】
【온갖 걸 다 해요.】
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둘의 얼굴에서 서서히 생기가 솟아나더니 홀쭉한 그의 뺨이 붉어졌다. 이제 그들은 마치 열에 들뜬 사람 같았다.
【저는 물건을 건드리지 않고도 움직이게 할 수 있어요.】
【저는 원하는 대로 동물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도 있고요. 물론 훈련을 시키지 않고서도 말이죠. 저를 못살게 구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쁜 일을 겪게 할 수 있어요. 제가 원하면 다치게 할 수도 있고요.】
갑자기 톰의 다리가 후들거리자 테일러가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둘은 비틀비틀 걸어와 다시 침대 위에 앉았다. 톰은 마치 기도를 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저와 테너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어요.】
톰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제가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뭔가가 있다는 걸 항상 알고 있었어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덤블도어는 더 이상 미소를 짓지 않고, 톰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흰 마법사거든.】
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얼굴이 전혀 딴판이 되었다.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인상이 더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각을 해 놓은 듯한 그의 이목구비가 더욱 거칠게 보이면서 마치 짐승처럼 잔혹한 분위기를 풍겼다.
【당신도 마법사인가요?】
테일러가 곙계와 흥미가 섞인 시선으로 덤블도어를 보며 물었다.
【그렇단다.】
【증명해 봐!】
톰이 즉시 명령을 내렸다. 덤블도어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만약 너희가 호그와트에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면...】
【물론 그럴 거예요!】
둘은 동시에 외쳤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나를 반드시 ‘교수님’이나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한단다.】
톰은 아주 잠깐동안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별로 달라진 기색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러니까 교수님, 부탁인데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머글들이 잔뜩 있는 건물 안에 있으니 조심해야 해서 거절할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덤블도어는 양복 윗도리의 안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더니 한쪽 구석에 있는 낡아빠진 옷장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가볍게 지팡이를 흔들었다. 옷장이 펑 하며 불길에 휩싸였다. 톰은 깜짝 놀라서 펄떡 일어났다. 테일로는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불타는 옷장을 바라보았다.
둘이 덤블도어를 돌아보는 순간, 불꽃이 사리지면서 멀쩡하게 서 있는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테일러와 톰은 얼빠진 표정으로 옷장과 덤블도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덤블도어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그런 건 어디서 어딜 수 있나요?】
【때가 되면 다 생길 거란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런데 너희 옷장에서 뭔가가 나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옷장 안에서는 뭔가가 희미하게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테일러는 톰을 힐끗 바라보았고, 톰은 처음으로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문을 열어 보렴.】
톰은 조금 망설이다가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더니 옷장 문을 열었다. 낡아 빠진 옷들이 걸려 있는 가로대 위의 선반에 작은 종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공포에 질린 생쥐라도 몇 마리 들어있는 것처럼 상자가 달그락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꺼내 보렴.】
덤블도어가 지시했다. 톰은 흔들리는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는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 상자 안에 뭔가 가져서는 안 될 물건이라도 들어 있니?】
덤블도어가 물었다. 톰은 뭔가를 열심히 계산하는 듯한 표정으로 덤블도어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마침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교수님.】
【열어보렴.】
덤블도어가 말했다. 테일러는 자신의 남동생에게조차 더 이상 흥미가 떨어진 사람처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톰은 뚜껑을 열고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린 채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침대 위에 쏟아 놓았다. 요요, 은으로 만든 골무, 녹슬어 버린 하모니카 따위의 잡동사니였다. 일단 상자 밖으로 나온 물건들은 달달 떨리는 것을 멈추고 얄팍한 담요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원래 주인들에게 사과하고 물건들을 돌려주거라.】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다시 옷 속으로 집어넣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네가 돌려주었는지 아닌지 나는 다 알 수 있단다. 그리고 명심하거라. 호그와트에서는 절대 도둑질을 용납하지 않는단다.】
톰은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냉정하게 따져 보는 듯한 시선으로 덤블도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 감정도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네, 교수님.】
【호그와트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는 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제하는 법도 가르친단다.】
덤블도어가 계속 타일렀다. 그 말에 테일러는 덤블도어를 감정하는 시선으로 흩어보았다.
【너희는 틀림없이 우리 학교에서 절대 가르치지도 용납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너희 마법의 힘을 사용해 왔을 것이다. 물론 마법의 힘을 제멋대로 쓴 사람이 너희가 처음도 아니고, 또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이걸 반드시 알아야만 한단다. 호그와트에서는 학생들을 강제로 퇴학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마법부, 그래, 마법부라는 것이 있단다. 그 마법부에서는 앞으로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훨씬 더 혹독하게 벌을 주기로 했단다. 모든 새로운 마법사들은 일단 우리 세계에 들어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법을 준수하겠다는 맹세를 해야 하지.】
【네, 교수님.】
톰이 또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란 불가능했다. 훔친 물건들을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는 리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교수님. 우리는 돈이 한 푼도 없어요.】
테일러는 뻔뻔하게 말했다.
【그건 금방 해결될 수 있단다.】
덤블도어가 호주머니에서 가죽 돈주머니를 꺼냈다.
【호그와트에는 교복이나 책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학생들을 위한 기금이 있단다. 너희는 아마 마법책이나 물건들을 중고로 사야만 할 거야. 하지만...】
【마법책은 어디서 사죠?】
톰은 도중에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덤블도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묵직한 돈주머니를 받아 들고 두꺼운 금화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사지.】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너희에게 필요한 책과 학용품들의 목록을 가져왔단다. 너희가 이 물건들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마.】
【저희랑 함께 가실 건가요?】
테일러가 돈주머니에 관심도 갖지 않은 채 물었다.
【물론이지. 너희만 괜찮...】
【필요없어요.】
톰이 말했다.
【뭐든지 혼자서 하는 데 익숙해져 있거든요. 저희는 런던 시내도 항상 혼자서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그 다이애건 앨리라는 곳은 어떻게 가죠.... 교수님?】
덤블도어의 눈빛을 알아채고 톰이 뒤늦게 덧붙였다. 덤블도어는 둘에게 필요한 물건들의 목록이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고아원에서 리키 콜드런까지 가는 길을 정확하게 알려 준 다음, 말했다.
【너희는 찾을 수 있을 게다. 물론 머글들, 그러니까 마법사가 아닌 인간들은 찾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술집 주인인 톰을 찾아라. 톰이라는 이름이 같으니까 기억하기 아주 쉬울 거야.】
톰이 갑자기 성가신 파리를 쫓아내려는 사람처럼, 짜증스럽게 팔을 휙 내저었다.
【너는 그 이름이 싫으냐?】
【톰이란 이름은 너무 흔해요.】
톰은 중얼거렸다.
【제 아버지가 마법사였나요? 아버지의 이름도 톰 리들이었다고 하던데.】
【미안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덤블도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마법사일 리는 없어. 그렇지 않으면 죽었을 리가 없으니까.】
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틀림없이 아버지가 마법사였을 거예요. 그럼... 제가 필요한 물건들을 다 사고 나면... 언제 그 호그와트에 가는 거죠?】
【자세한 내용들은 그 봉투에 든 두 번째 양피지에 다 적혀 있단다.】
덤블도어가 알려주었다.
【9월 1일에 킹스 크로스 역에서 출발할 거다. 그 안에 기차표까지 다 들어 있단다.】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악수를 청했다. 테일러는 이번에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테일러는 그가 아직 나가지 않았는데도 이미 양피지를 보고 있었고, 톰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는 뱀이랑 말을 할 수도 있어요. 시골로 소풍을 갔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됐죠. 테너는 못하는 것 같지만요... 뱀들이 저를 찾아와서 저에게 속삭였어요. 마법사들은 원래 다 그런 건가요?】
톰은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자신이 지닌 가장 이상한 능력을 마지막 순간까지 말하지 않고 일부로 참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드문 일이란다.】
잠시 망설이다가 덤블도어가 말했다.
【하지만 가끔 그런 마법사가 있기도 하지. 잘 있거라, 톰. 호그와트에서 보자꾸나.】
덤블도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말했지만 눈으로는 톰의 얼굴을 흥미롭게 쳐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한동안 서로를 빤히 쳐다보던 둘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덤블도어는 문가에 가서 섰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구나.”
머리가 하얗게 센 덤블도어가 우리의 옆에서 속삭였다. 우리는 순식간에 또다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둥둥 떠오르더니, 현재의 사무실 바닥에 안전하게 내려섰다.
“앉거라.”
덤블도어가 말했다. 우리는 그의 말에 따라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저보다 훨씬 더 빨리 그 사실을 믿었군요. 그러니까 교수님께서 그에게 그가 마법사라고 말씀하셨을 때 말이에요.”
해리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처음에는 해그리드의 말을 믿지 못했거든요.”
“그래. 리들은 자신이, 그러니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특별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럼 그때 아셨나요?”
해리가 물었다.
“역사상 가장 위험한 어둠의 마법사를 만났다는 사실을 그때 내가 알고 있었느냐는 말이냐?”
덤블도어가 말했다.
“아니란다. 나는 그 아이가 장차 자라서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단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사실이었지. 나는 호그와트로 돌아와서도 계속 그 아이를 주시했단다. 혹시 그 아이가 외톨이가 되거나 친구 없이 지내게 되면 뭔가 해 줘야만 할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그 아이를 위해서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너희가 들었던 대로, 리들의 능력은 그토록 나이 어린 마법사로서는 깜짝 놀랄 만큼 발전된 상태였지.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롭고 불길하게도 그 아이는 벌써 자신이 그런 능력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그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어. 그건 너희가 보았던 대로, 철없는 마법사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수준이 아니었어. 그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 맞서서, 그들을 조종하고 벌주고 겁주는 데 마법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던 거야. 목이 졸려 죽은 토끼나, 그가 동굴로 유인하여 끌고 간 어리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대단히 암시적이었지....”
“저를 못살게 구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쁜 일을 겪게 할 수도 있어요. 제가 원한다면 다치게 할 수도 있고요...”
내가 톰이 말했던 말을 따라 말했다.
“게다가 파셀마우스였어요.”
해리가 불쑥 말했다.
“그래, 그랬어. 그건 아주 드문 능력이야.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거지. 물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위대한 사람과 선한 사람들 중에도 파셀마우스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뱀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보다는, 그가 보여 준 잔인성과 지배욕, 은밀함에 대한 본능이 더 신경 쓰이더구나... 시가닝 벌써 이렇게 됐구나.”
덤블도어가 창문 너머로 캄캄해진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헤어지기 전에 말해 둘 것이 있는데, 해리, 로라, 우리가 방금 본 몇몇 장면들에 대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장차 우리의 수업에서 토의하게 될 문제들과 커다란 연관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첫 번째로 내가 리들에게 ‘톰’이라는 그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말했을 때 그가 보인 반응을 너희도 주목했는지 모르겠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리들은 그와 다른 사람드링 연겨로디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분노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자신을 평범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말이다. 그 나이에도 벌써, 그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어 이름을 떨치고 싶어 했어. 그래서 너도 알다시피, 그자는 그 대화가 있는지 불과 몇 년 후에 자기 이름을 버리고 ‘볼드모트경’이라는 가면을 만들어서는 오랫동안 자신의 진짜 이름을 감추고 다녔단다. 또한 톰 리들이 이미 대담히 오만하고 음흉하며, 무엇보다도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겠지? 그 애는 내가 다이애건 앨리까지 함께 가 주거나 도와주는 것도 원하지 않았단다. 모든 걸 혼자서 하는 편을 더 좋아했지. 어른이 된 볼드모트도 똑같아. 많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저마다 자기가 볼드모트의 심복이라고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을 게다. 자기만이 그자와 가장 가깝고 그자의 심중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야. 볼드모트경은 절대로 친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친구를 갖고 싶어 하지도 않았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졸려서 이 말을 그냥 흘려보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데, 어린 톰 리들은 전리품을 수집하는 걸 좋아했단다. 너희도 그 아이가 자기 방에 감추어 놓은, 훔친 물건 보관함을 보았겠지? 그것은 자기가 특히 못된 마법을 써서 못살게 군 희생자들로부터 빼앗은 것인데, 일종의 기념품인 셈이지. 이런 까치 같은 습성이 있다는 걸 잘 명심하거라. 이 사실은 나중에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거다. 자, 이제는 진짜로 자야 할 시간이 된 것 같구나.”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볼로 곤트의 반지는 전에 놓여 있던 그 탁자 위에 없었다.
“왜 그러느냐, 해리?”
해리가 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고 덤블도어가 물었다.
“반지가 사라졌어요.”
해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하모니카나 뭐 그런 걸 갖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덤블도어가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해리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아주 예리하구나, 해리. 하지만 그 하모니카는 그냥 평범한 하모니카였단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고 덤블도어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날 아침 첫 시간, 약초학을 듣기 위해서 온실로 가면서 채소밭을 지나는 동안, 해리는 덤블도어와의 수업을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다(아침 식사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엿들을까봐 얘기해 줄 수 없었다). 주말 내내 사납게 불던 바람은 마침내 기세가 꺾이고 기분 나쁜 안개가 다시 사방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온실을 찾는 데 평소보다 조금 애를 먹었다.
“우와, 생각만 해도 으스스하다. 소년 시절의 그 사람이라니.”
이번 학기의 연구 대상인 비틀린 스네어갈러프 나무 토막을 둘러싸고 앉아서 각자 보호용 장갑을 끼기 시작했을 때, 론이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희에게 이 모든 기억들을 보여 주는 지 잘 모르겠어. 물론 굉장히 흥미롭고 다 좋긴 한데,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이지?”
“그야 모르지.”
해리가 고무 보호막을 끼우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은 이 모든 게 아주 중요하고, 나중에 내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어.”
“나는 아주 멋진 일인 것 같은데.”
헤르미온느가 진지하게 말했다.
“볼드모트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은 걸 알아야 한다는 건 너무나 지당한 일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의 약점에 대해서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어?”
“지난번 슬러그혼 교수님의 파티는 어땠니?”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오, 꽤 재미있었어. 정말이야.”
헤르미온느는 이제 보호용 안경을 쓰고 있었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저명한 졸업생들에 대한 한참을 떠들었어. 그리고 눈꼴이 실 정도로 맥클라건에게 아양을 떨더라. 그게 다 그 아이의 인맥이 빵빵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교수님이 내놓으신 음식은 진짜로 맛있었어. 참, 그웨녹 존스와 인사도 시켜주었어.”
“그웨녹 존스?”
보호용 안경을 쓴 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웨녹 존스 말이야? 홀리헤드 하피스 팀의 주장인 사람?”
“그래, 맞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여자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거기! 이제 그만 떠들고 입 다물어요!”
스프라우트 교수의 팔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주한 걸음으로 가까이 온 스프라우트 교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너희들은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지? 다른 학생들은 모두 시작했는데 말이야. 네빌은 벌써 첫 번째 씨주머니를 땄단 말이야!”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에 얼굴 한쪽을 여기저기 심하게 긁힌 네빌이 입술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기분 나쁘게 펄떡펄떡 고동치는, 포도송이만 한 크기의 초록색 물체를 손에 움켜쥐고 앉아 있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저희들도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론이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스프라우트 교수가 다시 돌아서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머플리아토’ 주문을 써 보자, 해리.”
“아니, 그럼 안 돼!”
늘 그렇듯이 헤르미온느는 혼혈 왕자와 그의 주문 이야기만 나오면 강하게 반발하며 즉시 반대하고 나섰다.
“자, 어서... 이제 그만 우리도 시작하는 게 좋겠다...”
헤르미온느가 한심스런 눈길로 다른 두 명을 바라보자, 론과 해리는 일제히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운데 놓여 잇는 비틀린 나무토막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무토막은 순간 갑자기 되살아나더니, 꼭대기에서부터 길고 가시가 있는 들장미 넝쿨 같은 줄기들이 뻗어 나와 휙휙 허공을 내려쳤다. 줄기 하나가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에 칭칭 감기자, 론이 정원용 가위로 탁 쳐서 쫓아 주었다. 해리는 한 쌍의 줄기들을 유인해서 서로 뒤엉키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촉수처럼 생긴 줄기들의 한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헤르미온느가 용감하게 그 속으로 팔을 집어넣자, 구멍은 마치 덫처럼 그녀의 팔을 꽉 물었다. 우리가 다시 구멍을 열려고 줄기를 당기고 비틀고 한 끝에, 헤르미온느는 네빌의 것과 똑같이 생긴 씨주머니를 손에 쥔 채 다시 팔을 뺄 수 있었다. 동시에 가시가 달린 줄기들이 순식간에 안으로 움츠러들더니, 그저 평범한 죽은 나무둥치 같은 것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중에 내 집이 생기게 되면, 난 정말이지 절대로 이런 것을 정원에서 기르지 않을 거야.”
론이 보호용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그릇 좀 줘.”
헤르미온느가 펄떡거리는 씨주머니를 쥔 손을 멀리하면서 말했다. 내가 그릇을 넘겨주자, 그녀는 역겹다는 표정으로 씨주머니를 얼른 그릇 안으로 떨어뜨렸다.
“토할 것처럼 굴지 말고, 다들 즙을 짜내도록 하세요! 신선할 때 제일 효과가 좋으니까 말이에요!”
스프라우트 교수가 소리쳤다.
“그런데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조금 전에 중단했던 대화를 다시 이어갔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모양이더라. 해리, 이번에는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재간이 없을 거야. 로라, 너도! 왜냐하면 나더러 너희가 한가한 저녁이 언제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거든. 그러니 반드시 너희가 올 수 잇는 날 밤으로 파티 날짜를 잡겠지.”
“쯪.”
헤르미온느의 말에 혀를 찼다. 처음에 몇 번만 가고 난 후로부터 민달팽이 클럽에는 잘 가지 않았다. 보충 수업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말이다.
해리가 신음 소리를 냈다. 한편 양손으로 씨주머니를 붙잡고 그릇 안에서 터뜨리려고 애를 쓰던 론은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온 힘을 다해서 마구 씨주머니를 짓누르면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것도 순전히 슬러그혼이 총애하는 제자들만을 위한 파티겠네, 안 그래?”
“그래. ‘민달팽이 클럽’만을 위한 파티야.”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순간 씨주머니가 론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끈 빠져나가더니 온실 유리에 철썩 부딪힌 다음, 다시 튕겨 나가 스프라우트 교수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그녀의 낡고 누덕누덕한 모자를 날려 버렸다. 해리가 얼른 달려 나가고 헤르미온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침묵을 지키면서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살짝 떨어져 있었다. 해리가 씨주머니를 주워 제자리로 돌아왔다.
“론, 민달팽이 클럽이란 이름은 내가 지은 게 아니야!”
“민달팽이 클럽이라....”
론은 비웃음을 실실 흘리며 말을 되풀이했다.
“그거 참 안됐구나. 부디 즐거운 파티가 되길 바란다.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아예 맥클라건이나 꼬셔 보지 그러니? 그럼 슬러그혼이 너희를 한 쌍의 왕 달팽이와 여왕 달팽이로 만들어 줄 텐데....”
“슬러그혼 교수님이 손님을 데려와도 된다고 했어.”
헤르미온느는 발그스레하게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난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 작정이었는데, 네가 정 그렇게 한심하게 생각한다면 굳이 부탁하지는 않을게!”
해리는 씨주머니가 담겨 잇는 그릇을 붙잡고서 씨주머니를 열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고 나는 둘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나를 초대할 생각이었다고?”
론의 목소리가 180도 달라졌다.
“그래.”
헤르미온느가 토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맥클라건과 잘해 보라고 했으니까...”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옆에서 모종삽으로 탄력 있는 씨주머니를 열심히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론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 순간 옆에서 와장창 소리가 들렸고 옆을 보자, 그릇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레파로.”
해리는 황급히 지팡이로 깨진 조각들을 툭툭 치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릇은 다시 멀쩡하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와장창하는 소리에 비로소 론과 헤르미온느는 나와 해리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칫!”
해리의 행동에 내가 크게 혀를 찼다. 조금만 더 조용히 있으면 둘이 사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텐데! 뭐처럼 헤르미온느가 용기를 냈는데! 나는 해리를 흘겨보았다.
헤르미온느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되더니, 당장 스네어갈러프 씨주머니의 즙을 짜내는 올바른 방법을 찾겠다며 《세계의 식육 나무》 책을 뒤지느라 난리였다. 한편 론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왠지 흐뭇한 것 같았다.
“그걸 이리 좀 줘 봐, 해리.”
헤르미온느가 부산스럽게 말했다.
“여기 보면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라고 되어 있어.”
해리가 씨주머니가 담긴 그릇을 헤르미온느에게 넘겨주고 론과 함께 보호용 안경을 쓴 다음, 다시 나무토막가 씨름하는 데 몰두하였다.
“방해하면 안 되었잖아.”
“로라.”
“아쉬워라.”
나는 해리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하고는 론이 씨주머니를 꺼낼 수 있도록 가시 넝쿨과 싸웠다.
“좋았어!”
론이 소리쳤다. 헤르미온느가 간신히 첫 번째 씨주머니를 터뜨리는 순간, 론이 나무토막 안에서 두 번째 씨주머니를 꺼냈다. 이제 그릇 안에는 연한 초록색 애벌레처럼 보이는 씨앗들이 바글거렸다. 나머지 수업 시간은 더 이상 슬러그혼의 파티에 대한 말을 하지 않고 지나갔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평소보다 약간 서로에게 예의를 차렸다.
해리는 성 뭉고 병원에 들어가고 나서 전혀 퇴원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케이티 벨의 대타를 딘 토마스로 선정했다. 변신술 수업이 끝난 후에 딘 토마스를 한쪽 구석으로 부른 해리. 학생들 대부분 교실을 떠나고, 붉은 새와 노란 새 서너 마리만이 짹짹거리며 교실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건 전부 나와 헤르미온느의 작품으로, 다른 학생들은 누구 하나 허공에서 깃털 하나도 불러내지 못했다.
“혹시 아직도 추격꾼을 하고 싶니?”
“물론이지! 그럼!”
딘이 흥분해서 말햇다. 그 순간, 딘의 어깨 너머로 시무스 피니간이 뿌루퉁해서 책을 가방 속에 마구 쑤셔 넣는 것이 보였다. 선발 테스트 때 딘이 시무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여 주었다.
“그래, 그럼 하는 거다. 오늘 저녁 일곱 시에 연습이 있어.”
해리가 말했다.
“알았어.”
딘이 소리쳤다.
“잘 가라, 해리! 우와, 당장 지니에게 말해 줘야지!”
딘은 해리와 시무스 그리고 해리를 기다리고 있는 나만 남기고 쏜살같이 교실을 달려 나갔다. 헤르미온느의 카나리아들 중 한 마리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휙 스치고 지나가면서 시무스의 머리 위에 새똥을 똑 떨어뜨렸지만, 어색한 침묵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해리의 선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시무스 뿐만이 아니었다. 해리가 자기 반 친구들 두 명을 퀴디치 팀 선수로 선발한 사실을 두고, 휴게실 여기저기서 다들 입방아를 찧었다.
그 날 저녁 그들이 연습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 나는 하늘을 날고 있는 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니와 드멜자와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몰이꾼인 피크스와 쿠트도 괜찮았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론이 문제였다. 론은 자존감도 부족하고 초조감에 시달리는 기복이 심한 선수라서, 시즌 개막전이 서서히 다가오자 그의 지병이 다시 도지는 것 같았다. 여섯 골을 연달아 허용한 다음부터-대부분 지니가 날린 골들이었는데-론의 솜씨는 점점 더 거칠어지더니, 끝내는 다가오는 드멜자 로빈스의 입을 주먹으로 갈기고 말았다.
“사고였어. 미안해, 드멜자. 정말 미안해!”
사방에 피를 뚝뚝 흘리며 지그재그로 땅을 향해 내려가는 드멜자의 등에 대고 론이 큰 소리로 외쳤다. 곧 지니가 드멜자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서 퉁퉁 부은 그녀의 입술을 살펴보았다.
“론, 이 멍청아, 드멜자가 어떻게 됐는지 좀 보라고!”
“내가 치료해줄게.”
두 여학생 옆으로 내려온 해리는 드멜자의 입술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주문을 외웠다.
전체적으로 이번 연습은 그 동안 했던 연습들 중에서 최악이었다. 시합은 이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탈의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지니와 딘이 함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아, 언제쯤 해리는 지니를 론의 여동생이 아니라 여자로 볼까나?”
나는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리고는 론과 해리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둘이 나오자 우리는 함께 성으로 향했다. 해리는 성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론의 용기를 복돋아 줄 수 있는 말들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마침내 2층에 도달했을 쯤에는, 론도 약간 기운을 되찾은 기색이었다. 벽걸이 양탄자를 열고 늘 지나가던 그리핀도르 탑으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갔을 때, 뜻밖에도 딘과 지니가 마치 접착제로 붙여 놓은 듯 서로 바싹 달라붙어서 열렬하게 키스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순간 나는 레질러먼시로 해리의 머릿 속을 읽었다. 딘을 흐물흐물한 젤리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는 잔인한 충동에 나는 짙은 미소를 짓는 순간, 론이 소리치자 깜짝 놀랐다.
“야!”
딘과 지니가 서로 몸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지니가 말했다.
“나는 내 여동생이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얼싸안고 뽀뽀하는 꼴은 눈 뜨고 못 봐!”
“오빠들이 훼방 놓기 전까지 여기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통로였어!”
지니가 쏘아붙였다. 딘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며 우리를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해리는 싸늘하게 바라만 보았고 나는 딘의 시선을 피했다. 다른 사람이 키스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라서....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모르겠다.
“저... 지니... 그만 휴게실로 돌아가자....”
딘이 말했다.
“너나 가! 난 우리 잘난 오빠와 얘기 좀 해야겠어!”
딘은 그 자리를 모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듯 얼른 그곳을 떠났다.
“좋아.”
지니가 긴 빨간색 머리카락을 휙 뒤로 젖히면서 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다시 한 번 이 점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내가 누구랑 데이트를 하든, 누구랑 무슨 짓을 하든, 그건 오빠가 전혀 상관할 문제가 아니라고.”
“그렇지 않아!”
론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사람들이 내 동생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다니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어?”
“뭐라고 떠드는데?”
지니가 지팡이를 꺼내 들고 고함을 질렀다. 은근히 론 녀석, 시스콤이냐?
“똑바로 말해! 뭐야?”
“지니, 론의 말에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야...”
해리가 말했다.
“아니, 아니야!”
지니는 해리에게 발끈 화를 냈다.
“자기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구랑 키스 한 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저러는 거라고! 자기가 해 본 키스라고는 고작해야 뮤리엘 이모랑 한 게 전부였으니까!”
“입 닥치지 못해!”
론은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서 아예 흙빛이 되었다.
“싫어, 그렇게는 못하겠어!”
지니는 이성을 잃고 악을 써 댔다.
“플렘을 볼 때마다 혹시 그 여자가 뺨에 키스라도 해 주지 않을까 하고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꼴 다 봤어. 불쌍하기도 하지! 자기가 한 번이라도 누구랑 데이트를 하고 포옹이라도 해 봤으면, 남들이 그러는 걸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론까지 자기 지팡이를 뽑아 들자, 해리는 재빨리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앗다.
“자기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르면서 까불지 마!”
론은 씩씩거리면서, 이제 두 팔을 쫙 벌린 채 지니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해리를 피해서 지니를 똑바로 쳐다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단지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하지 않을 뿐이라고!”
지니가 별 웃기는 소리 다 듣겠다는 듯이 깔깔 웃으며 해리를 옆으로 밀쳐 내려고 했다.
“그래서 피그위존이랑 키스했어? 아님 베개 밑에 감추어 둔 뮤리엘 이모 사진이랑 키스했어?”
“너!”
해리의 왼쪽 팔 밑으로 한 줄기 주홍색 불빛이 쭉 뻗어 나가더니 아슬아슬하게 지니를 살짝 비켜 갔다.
“론!!”
해리는 론을 벽 쪽으로 밀쳤다.
“바보같이 굴지 마.”
“해리는 초 챙이랑 키스했어!”
지니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악을 썼다.
“그리고 로라는 프레드 오빠랑 키스했고, 헤르미온느는 빅터 크룸과 키스했다고! 그게 무슨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듯이 구는 사람은 론 오빠빡에 없어! 그러니까 오빠의 경험 수준이 겨우 열두 살짜리 꼬마 정도밖에 안 되는 거라고!”
이 말을 남기고 지니는 요란하게 발소리를 쿵쿵 내면서 사라져버렸다. 론의 얼굴 표정은 당장 살인이라도 저지를 기세였다. 우리는 서로 침묵하면서 숨소리만 내고 있던 그 긴장을 필치의 고양인 노리스 부인이 모퉁이 뒤에서 나타나면서 깨뜨렸다.
“가자.”
필치의 질질 끄는 발소리가 들려오자 내가 재촉했다. 우리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 7층 복도를 걸어갔다.
“야, 저리 비켜!”
론이 한 꼬마 여자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이가 겁에 질려 펄쩍 뛰면서 두꺼비 알이 든 병을 떨어뜨렸다. 유리병이 와장창 깨졌다. 그 순간 꼬마 여자의 뒤에서 어떤 덩치 큰 남성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웃기는 짓이군.”
그 꼬마 여자의 귀에도 잘 들릴 정도로 내가 말하고는 뚱보 여인의 초상화 쪽으로 걸어갔다. 딜리그라우트, 암호를 말하고는 초상화 구멍을 통해서 휴게실로 들어갔다. 휴게실에는 론과 해리의 모습이 없었다. 아마도 자러 간 것인지 남학생 기숙사 쪽 계단을 한 번 바라보고는 나도 내 방으로 향했다.
다음날, 론은 지니와 딘을 완전히 무시할 뿐 아니라 얼음처럼 싸늘하고 조소 어린 무관심으로 아무 영문도 모르는 헤르미온느의 마음까지 상하게 했다. 게다가 하룻밤 사이에 폭탄 스크루트처럼 까다롭고 툭하면 성질을 내는 사람으로 완전히 변해 버렸다. 하루 종일 론과 헤르미온느를 화해시키려고 별짓을 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헤르미온느는 잔뜩 열이 받아서 침실로 가 버렸고 론도 겁에 질린 몇몇 신입생들에게 왜 자기를 쳐다보냐며 괜한 트집을 잡으면서 신경질을 부리다가 남학생 침실로 휙 들어가 버렸다.
“멍청한 로널드 위즐리...”
한숨을 토해내면서 내가 론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새롭게 나타난 론의 공경성이 며칠이 지나도 가라안지 앉았다. 설사가상으로 론의 파수꾼 실력은 갈수록 더 형편없어졌고, 론은 그럴수록 점점 더 사나워져서 마침내 시합 전날 가진 마지막 퀴디치 연습 경기에서는 추격꾼들이 친 골을 단 한 개도 막아 내지 못해 놓고서 괜히 모든 사람들에게 온갖 포악을 다 떠다가 끝내는 드멜자 로빈스를 울게 만들었다.
“입 다물고 걔 좀 가만히 내버려 둬!”
키가 겨우 론의 3분의 2정도밖에 안 되는 피크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만들 둬!”
해리가 악을 썼다. 그리고 더 이상 일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 재빨리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미련이 없다는 얼굴로 퀴디치 운동장을 나왔다.
“왜 그런 표정이야, 로라?”
천문학 수업 시간 내내 좋아하는 밤하늘을 보고 있어도 표정이 좋지 않자 같은 수업을 듣고 있던 테리 부트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에, 진짜 표정이 좋지 않네, 로라.”
로우도 내 어두운 표정을 발견하고는 망원경으로 별들을 관찰하는 것을 멈추고는 다가왔다.
“별거 아니야.”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사기(士氣)와 관련이 있으니까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를 걱정하는 테리 부트와 로우의 시선에 나는 대답을 회피하면서 그 문제를 넘겨버렸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을 해.”
“왜 너에게 로라가 자기 고민을 얘기해야하는 건데, 부트?”
“그거야…….”
로우가 사납게 질문하자 테리 부트의 얼굴이 붉어진다. 곧 수업이 끝났다는 종이 울리자 가방을 챙겼기에 테리 부트는 뒤의 말을 잇지 않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가방을 챙긴다.
퀴디치 시합 날의 아침 식사 시간에는 늘 그렇듯이 한바탕 소란이 벌여졌다. 슬리데린 학생들은 그리핀도르 팀의 선수들이 대연회장에 들어설 때마다 휘파람을 불며 야유 섞인 함성을 질렀다. 온통 붉은색과 황금색 일색인 그리핀도르 테이블은 해리와 론이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기운 내, 론!”
라벤더가 소리쳤다.
“넌 끝내 주게 잘할 거야, 난 알아!”
론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잘 잤니?”
내가 둘에게 질문을 던지자 해리는 론의 눈치를 살폈다. 론은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차 마실래? 커피? 호박 주스?”
해리가 론에게 물었다.
“아무거나 줘.”
론은 우울하게 토스트 조각을 한 입 베어 먹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잠시 후, 헤르미온느가 식탁을 향해 걸어오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동안 론의 쌀쌀맞은 태도에 완전히 질려 버린 헤르미온느는 우리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었다.
“오늘 두 사람 기분은 어때?”
헤르미온느가 론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좋아.”
한창 론에게 호박 주스를 건네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던 해리가 대답했다.
“자, 여기 있어, 론. 쭉 마셔.”
방금 전에 해리가 저 호박 주스 안에 무언가를 넣지 않았던가? 론이 주스를 막 입에 가져다 대려고 하는 순간,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론, 그거 마시지 마!”
론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래?”
론이 물었다.
“해리가 그 안에 뭔가를 넣었어.”
“뭐라고?”
내 말에 해리가 딴청을 부렸다.
“못 들은 척 하지 마. 지금 방금 론의 주스에다 뭔가를 넣었잖아. 지금도 네 손에 그 병을 쥐고 있으면서!”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해리가 얼른 작은 병을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해리! 아무리 론의 사기를 복돋아 주려고 해도 네가 한 행동은 금지야!”
시합에서 펠릭스 펠리시스를 마시게 하는 것은 금기라고!
“론, 내가 경고했지. 마시지 마!”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라며 또다시 만류했다. 하지만 론은 잔을 들어 올리더니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헤르미온느,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마.”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와 해리의 귀에만 들리도록 깊숙이 허리를 낮춘 채 속삭였다.
“그러다가 퇴학을 당할 수도 있단 말이야. 네가 이런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해리!”
“그렇게 말하는 넌?”
해리가 나지막이 쏘아붙였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혼동 마법을 걸지 않으셨던가?”
헤르미온느는 사납게 쿵쿵거리며 식탁 저쪽으로 가 버렸다.
“시간이 다 댔어.”
해리가 활기차게 말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퀴디치 관람석으로 헤르미온느와 함께 걸어갔다. 슬러데린의 추격꾼인 베이시가 어제 연습을 하다가 블러저에 머리를 맞아서, 오늘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말포이도 아파서 나오지 못하고, 대신 5학년 하퍼가 대타로 들어왔다.
“일이 너무 잘 풀려....”
“이게 전부 해리가 론에게 마신 그 주스 때문이야.”
헤르미온느는 아직도 론에게 무언가 넣어진 호박 주스를 마시게 했다는 것에 화가 나있었다. 주장이 서로 인사를 하고 후치 부인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서 빗자루에 올라탄 선수들이 하늘로 박차오른다.
“네, 저기 가는군요. 포터 선수가 올해에 구성한 팀을 보고 모두들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널드 위즐리 선수가 지난 해에 파수꾼으로서 변변치 않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당연히 팀에서 탈락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은 예건했었지요. 아, 물론 팀의 주장과 개인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유리하게 작용했겠지만....”
슬리데린들은 야유와 박수로 이 말을 열렬하게 반응했다. 중계석에는 들창코에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금발 머리 소년, 후플푸프의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그곳에 서서, 한때 리 조던의 것이었던 마법 확성기에 대고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오, 슬리데린이 골을 넣으려는 첫 번째 시도를 하고 있군요. 어쿠하트 선수가 운동장을 질주합니다... 그리고 슛!..... 위즐리 선수가 막아 냈습니다. 네, 저 선수는 가끔 운이 정말 좋군요...”
경기 시간이 30분즘 지났을 때, 그리핀도르는 60대 0으로 앞서 가고 있었다. 론은 골 몇 개의 거의 장갑 끝으로 아슬아슬하게 막아 내기도 하면서 완벽한 방어를 하고 있었고, 지니는 그리핀도르가 득점한 여섯 골 중에 혼자서 네 골을 집어넣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위즐리 남매가 오직 해리와 친하다는 이유 때문에 선수가 되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큰 소리로 떠들어 대던 자카리아스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대신 피크스와 쿠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실 쿠트는 몰이꾼이 될 만한 그런 체격이 아닙니다.”
자카리아스는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몰이꾼들은 대개 근육이 훨씬 더 많죠...”
그 순간, 쿠트는 하퍼를 향해 블러저를 날렸고 블러저는 하퍼를 맞췄다.
그리핀도르는 경기를 술술 풀어 나갔다. 그들은 차근차근 점수를 올려 갔고, 론이 여유 있게 골을 막아 내고 있었다. 관중들이 ‘위즐리는 우리의 왕’이라는 옛날 애창곡을 큰 소리로 다 함께 부르며 특별히 멋지게 막아 낸 골에 대해 환호하자, 이제 론은 미소까지 지으면서 하늘에 높이 떠서 지휘를 시늉까지 했다. 하퍼가 일부로 세게 와서 부딪히는 바람에 해리가 하마터면 빗자루에서 떨어질 뻔하자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화가 나서 아우성을 쳤지만 때마침 후치 부인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부인이 다시 돌아섰을 때는 이미 하퍼가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슬리데린의 하퍼 선수가 스니치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포터 선수가 보지 못한 뭔가를 발견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해리도 스니치를 발견했는지 속력을 내서 날아갔다. 그리고..... 하퍼가 움찔하면서 스니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놓치더니 그대로 쭉 지나가 버렸고 해리가 펄쩍 날아서 그 팔락거리는 조그만 공을 붙잡았다. 그는 한 손에 스니치를 높이 치켜든채, 빙그르 돌아서 다시 땅을 향해 돌진했다. 상황을 파악한 관중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와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마저 삼켜 버렸다.
달려와 해리를 부둥켜안은 다른 선수들. 하지만 오직 지니만은 그들 옆을 지나 전속력으로 날아가더니 온 힘을 다해서 중계석에 쾅 부딪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웃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고 자카리아스는 무너진 나무 더미 밑에 깔려서 버둥거렸다.
“탈의실로 가자, 헤르미온느.”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헤르미온느를 보면서 내가 말하고는 그녀를 끌고 갔다. 나에게 끌려가면서 느릿느릿 걷는 헤르미온느.
탈의실로 들어갔을 때에는 해리와 론만 남아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손으로 그리핀도르 스카프를 비비 꼬면서 몹시 초조하지만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리, 너하고 할 말이 있어.”
헤르미온느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슬러그혼 교수님이 불법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잖아.”
“그래서 뭘 어쩌려고? 일러바치기라도 할 거야?”
론이 덤벼들었다.
“너희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해리는 뒤를 돌아 옷걸이에 망토를 걸었다.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너도 잘 알잖아!”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너는 아침 식사 시간에 론의 주스에 행운의 마법약을 탔다고 펠릭스 펠리시스를 말이야!”
“아니, 난 안 그랬어.”
해리가 우리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틀림없이 그랬어, 해리. 그래서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린 거라고. 슬리데린 선수들이 시합에 못 뛰는 일이 생기고, 론은 모든 골을 다 막아 내고 말이야!”
“난 안 집어넣었어!”
해리가 활짝 웃으면서 윗도리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더니 나와 헤르미온느가 오늘 아침에 해리의 손에서 봤던 그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병 안에는 황금색 약이 가득 들어 있었고, 코르크 마개는 여전히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에? 밀랍으로 봉인되어있네?”
“그래. 난 그저 내가 그랬다고 론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너희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약을 타는 척했지.”
해리가 론을 바라보았다.
“넌 행운을 따를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골을 박아 낼 수 잇었던 거야. 사실은 모두 너 혼자 해낸 거지.”
“내 호박 주스에 진짜 아무것도 안 들어 있었던 거야?”
론이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날씨도 너무 좋고... 베이시도 경기에 못 나오고... 그래서 내가 정말로 행운의 마법약을 안 마셨단 말이지?”
해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론은 한동안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헤르미온느에게 얼굴을 홱 돌리더니 그녀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너는 오늘 아침에 론의 주스에 펠릭스 펠리시스를 탔어. 그래서 론이 모든 골을 막아 냈던 거야!”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거봐! 난 혼자서도 얼마든 골을 막아 낼 수 있어, 헤르미온느!”
“나는 네가 못할 거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어. 그리고 론, 너도 그 약을 마셧다고 생각했잖아!”
하지만 론은 이미 어깨에 빗자루를 멘 채 헤르미온느를 지나 문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 버린 후였다.
“어...”
“그, 그럼.... 우리도 파티에 갈까?”
“너희나 가!”
헤르미온느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이제 정말 론에게 질렸어.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더니 헤르미온느도 요란하게 탈의실을 나가 버렸다.
“우리도 휴게실로 가자.”
축하한다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 틈을 헤치며 성을 향하여 운동장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휴게실 안은 그리핀도르 축하 파티로 이미 한창 무르익어 있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리가 나타나자 또다시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축하 인사를 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를 둘러쌌다. 해리는 세세한 경기 분석을 하려고 덤벼드는 크리비 형제들과, 그를 빙 둘러싸고서 해리가 무슨 말만 하면 자지러지게 웃으며 눈을 연신 깜빡거리는 수많은 여학생들을 뿌리쳐주고 론을 함께 찾았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음료수 테이블을 향해서 가던 중, 어깨 위에 피그미 퍼프인 아놀드를 얹고 지나가는 지니와 딱 마주쳤다. 지니의 뒤쪽에는 크룩생크가 기대에 찬 울음소리를 내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론을 찾고 잇는 거야?”
지니가 조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론은 저기 있어. 비열한 위선자 같으니라고!”
지니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방 전체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론은 누구 손이 누구 손인지 구별하지 어려울 만큼 라벤더 브라운과 바싹 붙어 있었다.
“아예 얼굴을 먹어 버릴 기세야, 그치?”
지니가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능숙해지려면 노력깨나 해야 할 것 같아. 어쨌든 훌륭한 경기였어, 해리.”
지니가 그의 팔을 톡톡 두드리고 버터 맥주를 더 마시러 가 버렸다. 크룩생크는 샛노란 눈을 아놀드에게서 떼지 못하며 그녀의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갔다. 론을 쉽사리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몸을 돌린 그 순간 초상화 구멍이 닫히는 게 보이면서 덥수룩한 갈색 머리털이 눈앞을 휙 지나간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
잽싸게 달려가 뚱보 여니의 초상화를 열고 나갔다. 바깥 복도는 텅 빈 것 같았다. 해리는 로멜다 베인을 잽싸게 피해서 내 뒤를 쫓아왔다.
“헤르미온느?”
문이 잠겨져있지 않은 첫 번째 교실에서 그녀를 찾았다. 교탁 위에 홀로 앉아 있는 헤르미온느의 머리 주위에는 짹짹거리는 노란 새들이 작은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어, 안녕, 해리, 로라.”
헤르미온느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연습 중이었어.”
“그래... 정말... 음... 멋지다....”
“헤르미온느.”
내가 그녀를 부르자 헤르미온느가 어색할 정도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론은 축하 파티가 꽤 즐거운 모양이더라.”
“어... 그래?”
해리가 머뭇거렸다.
“괜히 론의 모습을 못 본 척 하지 마. 아예 감출 생각도 하지 않던걸, 안 그래?”
그때 뒤에서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깔깔 웃으며 라벤더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론.
“오.”
론이 우리를 보더니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런 론을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머나!”
라벤더는 키득거리며 얼른 교실 박으로 나가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무시무시하게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헤르미온느는 그녀를 외면하는 론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론은 어색함과 허세가 뒤섞인 묘한 태도로 큰소리를 쳤다.
“어이, 해리! 네가 어디 갔나 했지!”
헤르미온느가 교탁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노란색의 작은 새들이 아직도 짹짹거리며 그녀의 머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라벤더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말했다.
“네가 어디로 가 버렸나 궁금해할 거야.”
헤르미온느가 천천히 문을 향해서 똑바로 걸어갔다. 론은 더 이상 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옵푸그노!”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를 론에게 겨누고 주문을 외치자, 순간 작은 새 떼들이 통통한 황금 총알처럼 론을 향해 돌진했다. 론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새 떼들은 닥치는 대로 론의 살점을 물어뜯고 할퀴었다.
“이것들 좀 떼어 줘!”
론이 안타깝게 부르짖었지만, 헤르미온느는 마지막으로 원망에 가득 찬 시선을 힐끗 던지더니 문을 열고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런 론을 보지 못한 척 하고 헤르미온느의 뒤를 쫓아갔다.
“헤르미온느!!!”
화장실로 숨어서 우는 것은 여전하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아서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녀의 옆으로 가서는 어깨에 팔을 올려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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