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뜨자마자 론의 침대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침대는 텅 비워있었다. 


"로라, 정신이 드니?"

"미안해, 로라. 우리가 네 몸 상태를 잊고 있었어."


헤르미온느가 나를 잔뜩 걱정하고 있었고 해리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 헤르미온느의 눈은 퉁퉁 붓고 새빨갛게 충혈이 되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일어나자 우리는 말없이 늦은 아침을 먹었다. 


짐을 꾸릴 때가 되자 우리는 뭉그적거렸다. 폭우 속에서 발소리라도 들은 착각이라도 들리면 헤르미온느는 몇 번이나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고 해리는 덩달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끝내 비가 할퀴고 간 숲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마다 혀를 찼다. 옆으로 탁한 강물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고, 머잖아 강둑 위로 흘러넘치는 기세였다. 이미 야영지를 떠나고 남을 시간이었지만 한 시간은 족히 더 서성거렸다. 구슬 백을 세 번이나 정리한 헤르미온느는 마침내 더 이상 머뭇거릴 구실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순간이동으로 사라졌다가, 히스로 뒤덮인 바람 부는 산중턱에 다시 나타났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손을 탁 놓아 버리더니 멀리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파르르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녀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원인 제공자인 내가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할까? 내가 가만히 있자 해리가 안전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행했을 주문들을 외웠다. 

그 뒤로 우리는 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서로 꼭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입을 다물었다(밤마다 헤르미온느는 숨죽여 흐느끼곤 했다). 그리고 우리에겐 방문객이 생겨났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해리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좀 더 알아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며칠에 한 번씩 눈이 가려진 채 다시 나타나는 데에 동의했다. 그는 호그와트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었다(물론 유용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슬리데린 출신의 교장인 세베루스를 존경하는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도록-만약 세베루스를 비판하거나 부적절한 질문을 한다면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즉각 자신의 초상화를 떠나버렸다- 호그와트의 소식이라면 무엇이든 기뻐하며 들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말에 따르면 세베루스는 골수분자 학생들로부터 끊임없이 경미한 수준의 저항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지니는 호그스미드 출입이 금지되었고, 세베루스는 세 명 이상의 학생들의 모임 및 비공식적인 학생 모임을 금하는 엄브릿지의 낡은 포고령을 복원시켰다. 그 소식을 통해서 지니가 (아마도)네빌과 루나와 함께 덤블도어의 군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다. 한 지역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된서리가 가장 큰 걱정거리인 영국의 남부 지방에 머무는 대신, 나라 안 여기저리르 정치 없이 떠돌아 다녔다.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산중턱도, 텐트에 차가운 물이 들이치는 드넓고 편평한 늪지대도, 밤에 눈이 텐트를 반쯤 파묻어 버리는 스콜틀랜드의 호수 한가운데의 작은 섬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몇 응접실 창문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헤르미온느와 함께 나는 덤블도어가 그녀에게 담긴 유품 《음유시인 비들 이야기》 책을 해독하고 있을 때 해리가 우리를 불렀다.


"헤르미온느, 로라?"

"왜 그래?"

"내가 생각해 봤는데..."

"해리, 나 좀 도와줄래?"


헤르미온느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책을 내밀었다.


"이 상징을 봐."


그녀는 어느 페이지의 윗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삼각형 모양의 눈처럼 보이는 그림- 그 눈의 눈동자에는 세로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내 손목시계에도 있는 문양이었다.


"난 고대 룬 문자 수업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어, 헤르미온느."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것은 룬 문자가 아니야. 문자표에도 없어. 난 죽도 눈을 그린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아닌 것 같아! 이건 잉크로 그려져 있어. 봐, 누구가 거기에 그려 넣은 거야. 이건 원래 책에 인쇄된 게 아니라고. 잘 생각해 봐. 너 예전에 이거 본 적 있지 않니?"

"제노필리우스 러브굿..."


내가 중얼거렸다.


"그건...."

"맞아!"


내가 말하려고 할 때 해리가 끼어들었다.


"루나의 아버지가 목에 걸고 있던 것과 똑같은 상징 아니니?"

"맞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로라의 초커 목걸이가 변형되기 전까지 하고 있던 모양이었지."

"말했잖아. 그건 우리 피브렐 가문의 문양이라고."

"하지만 크룸은 그게 그린델왈드의 상징이라고 했어."


해리가 말했다.


"뭐?"


헤르미온느는 입을 딱 벌린 채 해리를 바라보았다.


"크룸이 얘기해 줬어."


해리는 빅터가 결혼식장에서 해 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헤르미온느는 경악한 듯 했다.


"그린델왈드의 상징이라고?"


그녀는 괴상한 상징과 해리를 번갈아 가면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린델왈드의 상징 같은 걸 갖고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내가 그에 대해 읽었던 어느 책에도 그런 언급은 없었는데."


혹시 덤블도어도 관심이 있었던 건가? 죽음의 성물에? 젊은 덤블도어는 마법사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던 건가. 


"그것 참 이상하네. 만약 그게 어둠의 마법의 상징이라면, 동화책에 그게 왜 있지?"

"그러게, 이상하네."


해리가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피브렐 가문의 문장이라고 대체 몇 번을 이야기 해야 하는 건가? 약하게 기침을 하면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게다가 스크림저도 그걸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는 장관이었고, 분명 어둠의 마법 쪽으로 전문가였을 텐데 말이야."

"그래... 아마도 그는 나처럼 그게 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책에 있는 다른 이야기들도 제목 위에 작은 그림이 그러져 있거든."


헤르미온느는 말없이 괴상한 상징에 대한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었다. 이윽고 해리가 다시 말을 꺼냈다.


"로라, 헤르미온느."

"어?"

"줄곧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난.... 난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 싶어."

"그래."


헤르미온느가 대답햇다.


"나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해 왔어. 정말로 그래야 할 것 같아."

"너, 내 말 제대로 알아들은 거니?"


해리가 물었다. 웬일이래? 저번에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이야.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 싶다는 거잖아. 나도 동의해. 사실 꼭 가 봐야 할 것 같아. 내 말은, 거기 이외에는 달리 우리가 갈 곳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 위험하긴 하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거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

"어... 뭐가 거기에 있다는 거지?"

"해리, 농담하는 거지?"


해리가 묻자 내가 그를 바라보면서 되질문했다. 헤르미온느도 해리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칼 말이야. 고드릭 골짜기는 고드릭 그르핀도르의 출신지잖아."

"정말이야? 그리핀도르가 고드릭 골짜기 출신이라고?"

"해리, 넌 도대체 《마법의 역사》를 펼쳐 보기는 한 거니?"

"흠."


해리는 거의 몇 달 만에 미소를 지었다.


"그 책을 처음 샀을 때 아마 펼쳐 보기는 했던 것 같은데... 딱 한 번...."

"그 마을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거라서, 나는 네가 그 연관성을 알았나보다 생각했지."


헤르미온느가 떽떽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근래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예전 그녀의 말투에 가까웠다. 


"《마법의 역사》에 그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나와 있었어. 잠깐만...."


헤르미온느는 구슬 백을 열고 잠시 동안 뒤적이더니, 마침내 바틸다 백셧이 쓴 《마법의 역사》라는 교과서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책을 다급히 훑어보더니 마침내 원하는 대목을 찾았다.


1689년 국제 비밀 법령에 서명한 후, 마법사들은 머글 세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지역사회 내에서 마법사들이 그들만의 소공동체들을 형성하는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러 마을들과 작은 촌락들에는, 상호 협력과 보호를 위해 서로 단합한 몇몇 마법사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콘월의 틴워스, 요크셔의 어퍼 플래즐리, 영국 남해안의 오터리 성 캐치폴 마을 등은 너그럽거나 혹은 때로 혼동 마법에 걸린 머글들과 더불어 살았던 마법사 가족 집단의 주요 본거지였다. 이러한 준마법사 거주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위대한 마법사 고드릭 그리핀도르가 태어났고, 마법사 대장장이인 바우만 라이트가 최초의 골든 스니치를 만들었던 서부의 시골 마을, 고드릭 골짜기일 것이다. 그곳의 공동묘지에는 고대 마법사 가문들의 이름이 즐비하게 새겨져 있는데, 수 세기 동안 공동 묘지 옆의 작은 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유령 이야기들은 분명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너와 네 부모님 이야기는 언급돼 있지 않아."


책을 덮으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백셧은 19세기 말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알겠니? 고드릭 골짜기, 고드릭 그리핀도르, 그리핀도르의 칼. 덤블도어 교수님은 네가 그 연관성을 발견할 거라 기대하지 않으셨을까?"

"오, 그래...."


너무 쉬운 연관성인데? 마법부도 진작에 고드릭 골짜기에 오고 간 거 아니야? 


"뮤리엘 할머니가 했던 말 기억나?"


해리가 물었다.


"누구?"

"알잖아."

"위즐리 가족의 친척 할머니 말이야."


내가 말했다. 


"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해리는 그녀의 입에서 론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 할머니는 바틸다 백셧이 아직도 고드릭 골짜기에 살고 있다고 말했어."

"바틸다 백셧."


헤르미온느는 《마법의 역사》의 표지에 돋을새김된 바틸다의 이름을 집게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글쎄, 내 생각엔...."


다음 순간 헤르미온느가 어찌나 헉하고 놀라던지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리고 해리가 텐트의 출입구를 막고 있는 덮개를 강제로 걷어 올리며 들어오는 손을 반쯤은 예상하며 얼른 지팡이를 뽑아 들고 입구를 돌아보았다. 지팡이를 손에서 쥐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왜?"


화가 나고 안심이 되기도 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런 건데? 난 네가 죽음을 먹는 자가 텐트를 열고 들어오는 줄 보기라도 한 줄 알았잖아."

"바틸다가 그 칼을 갖고 있다면? 만약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걸 그녀에게 맡겼다면?"


그런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데... 고드릭 그리핀도르는 참된 그리핀도르의 앞에만 다시 나타난다고 하는 칼이잖아. 바틸다가 가지고 있어도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랬을지도 몰라!"


해리는 강하게 긍정했다.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그럼, 우리 고드릭 골짜기로 가는 거지?"

"응. 하지만 거기에 대해 신중하게 충분히 생각해야 할 거야, 해리."


헤르미온느는 똑바로 몸을 세우고 앉았다. 다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자 우리는 기운이 났다.


"우선 우리는 함께 투명 망토를 쓴 채 순간이동으로 사라지는 법을 연습해야 해. 그리고 만약 우리가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폴리주스 마법약을 사용할 생각이 아니라면 투영 마법을 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폴리주스 마법약을 쓸 경우를 대비해서,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모아 두기는 해야 할 거야. 사실 나는 폴리주스 마법약이 더 나을 거 같아. 변장이 철저할수록 더 잘..."


헤르미온느가 얘기하도록 내버려두면서 내 머리속은 따른 생각으로 가득 찼다. 고향으로 간다. 내 부모님이 묻혀 있는 곳으로 또 가야 하다니... 해리는 좋겠지만, 난 거기서 끔찍한 기억밖에 없는데 말이지. 

고드릭 골짜기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장을 보고 있던 무고한 머글들의 머리카락을 몰래 뽑았고, 투명 망토를 함께 쓰고 순간이동하는 법을 연습했다. 그리고 고드릭 골짜기로 가자고 해리가 제안을 한 일주일 뒤,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어둠을 틈타 순간이동으로 마을에 들어갈 예정이었기에 늦은 오후 시간에 우리는 폴리주스 마법약을 마셨다. 해리는 우리 세 사람의 머리 위로 투명 망토를 덮었다. 이윽고 다시 한 번 숨 막히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푸른 하늘 아래의 눈 쌓인 골목길에 서 있는 우리. 하늘에는 초저녁 별들이 벌써부터 희미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좁은 골목 양편에는 창가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거리는 작은 시골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앞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금빛 가로등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마을의 중심가를 알려 주고 있었다.


"온통 눈이야!"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왜 우리가 눈을 생각을 못했지? 아무리 주의를 해도 발자국이 남고 말 거야! 우린 그것들을 지워야 해.. 너희가 앞서 가. 내가 해 볼게..."


우리의 발자취를 마법으로 지우기 시작하는 헤르미온느.


"망토를 벗자."


해리가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주위를 경계했다.


"제발 부탁이야, 아무도 우리를 못 알아볼 텐데 뭐. 게다가 근처에는 아무도 없잖아."


해리는 겉옷 속에 투명 망토를 집어넣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집들을 좀 더 지나자, 마을의 중심인 조그만 광장이 펼쳐졌다. 색색의 전구들이 사방에 둘러쳐진 광장 한가운데에는 전쟁 기념비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바람에 날려 휘어진 크리스마스트리가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가게와 우체국, 술집이 있었고 광장 너머에는 작은 교회가 서 있었는데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교회 창문들이 보석처럼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여긴 전혀 변하지 않았네."

"전에 온 적이 있는 거야?"


내 혼잣말을 들은 해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 어머니가 여기에 묻히고 싶어 했거든."

"로라의 부모님도 여기 묻혀있구나."

"아버지는 여기 묻혀 있었는데... 어머니는 원래 여기에 묻지 않으려고 했어. 하지만 본인이 그게 유언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여기에 묻은 거지."


그 뼈대만 남은 교회 건물에서 그녀의 뼈로 추정되는 것을 찾아 모아서 항아리에 담고 고드릭 골짜기 공동 묘지에 묻었다. 아버지의 옆 무덤에 말이지....

마을 주민들이 우리 앞을 오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잠깐씩 가로등 불에 환히 비쳤다. 술집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떠들썩한 웃음 소리와 유행가 소리가 흘러 나왔다. 곧이어 작은 교회 안에서는 캐럴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가 봐!"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그런가?"


몇 주 동안 신문 한 장 읽지 못해서 날짜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분명히 오늘이야!"


헤르미온느가 교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들은... 그분들은 저 안에 계실 거야, 그렇지 않니? 너희 엄마와 아빠, 로라의 부모님 말이야. 교회 뒤에 묘지가 보여."


묘지로 가기 싫어하는 나를 잡아 이끌어서 앞장을 서서 걸어가는 헤르미온느. 


"해리, 저것 봐!"


광장을 반쯤 가로질렀을 때, 헤르미온느가 딱 멈춰 서고 전쟁 기념비를 가리켰다. 그것은 우리가 그 앞을 지나는 순간 모양이 바뀌었다. 전사자들의 이름으로 뒤덮인 오벨리스크 대신, 그 자리에는 세 사람의 동상이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안경을 낀 남자와 긴 머리에 다정한 예쁘장한 얼굴의 여자,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긴 조그만 사내 아기-그 아이는 이마에 흉터가 없었다-였다. 솜털이 달린 하얀 모자처럼 그들의 머리 위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다. 


"그만 가자."


원 없이 동상을 바라보고 나서 해리가 말했다. 우리는 다시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 다가갈수록, 노랫소리는 더욱 커졌다. 

묘지의 입구에는 좁은 문이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가능한 한 소리 안 나게 문을 밀어서 열었고 우리는 그것을 통과했다. 교회 문 앞까지 이어지는 미끄러운 오솔길의 양옆으로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빛나는 유리창 아래에 드리워진 그늘을 따라 교회 건물을 빙 돌아갔다. 교회 뒤에는 눈 덮인 묘비들이 줄을 지어 푸르스름한 눈 더미 밖으로 솟아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눈부신 불빛이 비추는 곳마다 눈 더미는 빨간색과 금색, 초록색으로 현란하게 물들었다.


"이것 봐, 아보트 집안의 사람이야.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한나의 친적일지도 몰라."

"목소리 좀 낮춰."


헤르미온느가 애걸하듯이 말했다.

오래된 묘비에 적힌 묘비명을 자세히 보기 위해 연방 허리를 굽히면서, 혹시 미행당하고 있지 않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따금 사방을 둘러싼 어둠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눈밭에 깊은 구덩이를 만들면서, 점점 더 묘지 안쪽으로 깊숙이 헤치고 들어갔다. 


"해리, 로라! 이쪽으로 와 봐!"


헤르미온느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에게 걸어갔다.


"포터 부부의 묘?"

"아니, 하지만 이것 봐!"


그녀는 어두운 빛깔의 돌을 가리켰다. 얼어붙고 이끼가 낀 화강암 위에 '켄드라 덤블도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리에는 그녀의 출생일, 사망일과 더불어 '딸 아리애나와 함께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대의 보물이 있는 곳에 그대의 마음도 머물리라'라는 비문이 있었다.


"너희에게 아무 말씀도 안 하셨던 게 확실...?"


헤르미온느가 말문을 열었다.


"안 하셨어."


해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계속 둘러보자."


해리의 말에 켄드라 덤블도어의 무덤을 떠나고 다시 포터 부부의 묘지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야!"


잠시 후에 헤르미온느가 어둠 속에서 외쳤다.


"오, 아니야, 미안해! 포터라고 쓰여 있는 줄 알았어."


헤르미온느가 어느 무너져 가는 이끼 긴 묘비를 문질러 닦더니, 약간 인상을 찡그린 채 골똘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다시 와 봐."


나와 해리는 눈을 헤치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왜?"


해리가 퉁명스럽게 질문했다.


"이것 봐."


그 무덤은 아주 오래된 데다 심사헤 손상되어 이름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이름 아래에 새겨진 상징을 가리켰다.


"이건 책에 있는 그 상징이야!"

"그럼 이 묘지는 이그노투스 피브렐의 묘지일 거야."

"이그노투스 피브렐?"

"피브렐 가문의 중 한 사람으로, 이 사람의 손녀 이올랜시 피브렐이 포터 가문의 사람과 결혼했어. 그래, 해리- 포터 가문의 선조에 해당되는 분이야."

"난 계속 우리 부모님을 찾아볼게, 알았지?"


해리는 조금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포터 부부의 묘지를 찾고 있는데 갑작스레 어둠과 침묵이 더욱 깊어진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캐럴이 끝나고 교회 신자들이 다시 광장으로 돌아감에 따라, 재잘거리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소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교회 안에서 누군가가 막 등불을 껐다. 


"해리! 찾았어!"


내가 외쳤다. 그 묘비들은 켄드라와 아리애나의 묘비 바로 두 줄에 있었다. 덤블도어의 무덤과 마찬가지로 하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듯 했기 때문에 글씨를 읽기가 쉬웠다. 


제임스 포터 1960년 3월 27일 출생-1981년 10월 31일 사망

릴리 포터 1960년 1월 30일 출생-1981년 10월 31일 사망

파괴되어야 할 최후의 적은 죽음이다


"파괴되어야 할 최후의 적은 죽음이다."

"저건 죽음을 먹는 자들 생각 아니야? 왜 그게 저기 있지?"

"저건 죽음을 먹는 자들이 의미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격퇴한다는 뜻이 아니야, 해리."


헤르미온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너도 알다시피... 죽음 너머의 생을 말하는 거야. 죽음 이후의 삶."

"우리 부모님의 묘지는 바로 옆에 있구나."


나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조너선 에반스 1961년 5월 24일 출생-1981년 12월 25일 사망

루치아 이브 피브렐 1960년 11월 24일 출생-1984년 12월 25일 사망

사랑은 인간 생활의 최후의 진리이며 최후의 본질이다


5월 24일 탄생화는 헬리오트로프... 꽃말은.... 사랑이여, 영원하라.... 11월 24일 탄생화는 산분꽃나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거짓말쟁이들!"


둘의 생일을 알아차리는 순간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탄생화와 그 꽃말들.... 꽃말을 중얼거렸을 때, 가슴 속에서 무언가 활활 불타올랐다. 


"거짓말쟁이야, 당신들은- 진심으로 최악이었어! 좋은 부모가 아니었어!!"


이미 죽은 사람의 귀에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불구하는 나는 내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로라, 무슨 짓을?"


지팡이를 든 내 모습에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나는 두 사람의 묘지의 비문 아래에 한 문장을 더 덧붙였다.


"사랑은 미친 짓이다. 그게 당신들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비문이야. 그 미친 광기 같은 사랑 때문에 나 같은 사랑의 묘약을 태어나게 했으며, 그 광기 같은 사랑 때문에 당신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 미친 짓을-."


눈물샘이 터져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더 이상 입 밖으로 말을 할 수 없어서 흐느끼기만 했다.

헤르미온느가 나와 해리 사이로 끼어들어서 우리 두 사람의 손을 잡더니 꼭 쥐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가운 밤공기에 마르는 눈물 자국을 손가락으로 지웠다. 


"난 이제 괜찮아, 헤르미온느."


나는 그녀에게 말하고는 잡고 있는 손을 뺐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휘둘러서 크리스마스 장미 화환을 피어나게 했다. 해리는 그것을 주워들어서 자신의 무덤 위에 놓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더 지팡이를 들어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푸른 꽃의 화환, 수레국화의 화환이 생겨났다. 나는 그 두 화환을 내 부모님 묘지 위에 올려놓았다.


".... 그 미친 사랑을 나도 하니까, 당신들을 이해할 수 있어. 방식은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지."


마지막으로 말을 하고는 우리는 묘지를 떠났다. 불 꺼진 교회와 저 너머의 좁은 문을 향해 눈을 헤치며 걸어갔다.


"해리, 로라, 멈춰."

"왜 그래?"


아보트 가문의 무덤 앞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저기 누군가 있어. 누가 우릴 지켜보고 있어. 분명해. 저기, 저 덤불 너머에서."


우리는 서로를 꼭 붙잡은 채, 꼼짝않고 서서 시커먼 묘지 주변을 응시했다.


"확실해?"

"뭔가 움직이는 걸 봤어. 맹세할 수도 있어..."

"우리는 머글처럼 보일 거야."


해리가 지적했다.


"그래, 하필이면 방금 해리 포터의 부모님 묘에 꽃을 놓고 간 머글이지! 해리, 분명히 저기에 누군가 있다고!"


바로 그때, 헤르미온느가 가리킨 덤불 쪽에서 쌓여있던 눈이 가볍게 소용돌이치는 것이 보였다.


"저건 고양이야."


잠시 후 해리가 말했다.


"아니면 새든가. 만약 죽음을 먹는 자라면 우린 지금쯤 벌써 죽은 목숨이겠지. 어쨌든 여기서 나가자. 그럼 다시 투명 망토를 쓸 수 있어."


우리는 묘지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계속 두를 흘끗 돌아보았다. 

묘지 입구까지 와서 미끄러운 포장도로에 이르자 우리는 다시 투명 망토를 썼다. 술집은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잇었다. 술집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이쪽으로 가자."


헤르미온느가 속삭이고는 마을로 들어온 길과 반대 방향으로 난 컴컴한 거리로 잡아끌었다. 


"바틸다의 집을 어떻게 찾지?"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그녀는 몸을 살짝 떨면서 어깨 너머로 계속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해리? 어떻게 생각해, 해리?"


헤르미온느가 물었지만 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리는 집들이 줄지어 늘어선 거리 끝에 서 있는 커다랗고 검은 형체를 보고 우리를 잡아당기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 바람에 얼음 위에서 살짝 미끄러졌다.


"해리..."

"봐.... 저걸 봐, 로라, 헤르미온느..."

"난 안 보여... 오!"

"세상에."


해그리드가 부서진 건물 잔해 속에서 해리를 구해 낸 이래, 16년 동안 산울타리는 무성하게 자라나 잇었다. 허리 높이까지 자라난 수풀 사이에는 그때의 잔해들이 흩어져 있었다. 비록 검은 담쟁이와 눈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긴 했지만 집은 대부분 여전히 건재했다. 제일 꼭대기 층의 오른쪽 부분만이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우리는 대문 앞에 서서 한때는 이웃한 짐들과 똑같은 모양의 짐이었을 것이 분명한 폐허 더미를 올려다보았다.


"왜 아무도 다시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헤르미온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다시 지을 수가 없었을 거야."


내가 대꾸했다.


"어둠의 마법으로 인해서 입은 부상과 마찬가지겠지. 그 손상은 고칠 수가 없잖아?"


해리는 망토 아래로 슬며시 손을 뻗어 녹이 잔뜩 슨, 눈 덮인 대문을 움켜쥐었다. 


"집 안에 들어가진 않을 거지? 위험해 보여. 어쩌면.... 해리, 저기 봐!"


해리가 대문을 만진 것 때문에, 웬 표지판이 땅에서부터 마치 빠르게 자라는 괴상한 꽃처럼 뒤엉킨 쐐기풀과 잡초를 뚫고 솟아나왔다. 황금색 글자들이 나무판 위에 나타났다.


1981년 10월 31일 밤 이곳에서 릴리 포터와 제임스 포터가 목숨을 잃다. 그들의 아들 해리는 살인 저주로부터 살아남은 유일한 마법사이다. 머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 집은 포터 일가에 대한 기념비로서, 그리고 그 가족을 짓밟은 폭력에 대한 경고로서 훼손된 상태로 보존되었다.


갈끔한 글씨로 새겨진 이 문장 주변에는 '살아남은 아이'가 탈출한 장소를 보기 위해 방문한 마녀와 마법사들이 써놓고 간 낙서들이 가득했다. 어떤 이들은 영구 보존 잉크로 자신들의 이름을 서명해 놓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자기 이름의 머리글자를 새겨놓기도 했으며 메세지를 남겨 놓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쓴 낙서들이 16년에 걸친 마법 낙서 위로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는데, 전부 해리를 응원하는 글이었다.


"표지판 위에 이런 걸 쓰면 안 되잖아!"


헤르미온느가 몹시 분개했다.


"멋지잖아! 그 사람들이 이런 걸 써 놓아서 난 기뻐. 난...."


해리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겹겹이 옷으로 몸을 감싼 사람의 그림자가 저 멀리 광장의 밝은 불빛에 윤곽을 드러낸 채, 골목길을 따라 우리를 향해 절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엇다. 그녀는 눈 쌓인 땅에 미끄러질까 봐 겁이 났는지,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꼬부라진 허리와 펑퍼짐한 몸, 발을 질질 끌며 걷는 걸음걸이 등을 미루어 보아 그녀는 굉장히 나이가 많은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녀가 다가오는 동안 우리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과연 그녀가 계속 지니치고 있는 저 집들 중 하나로 들어가는지 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우리들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얼어붙은 길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노파는 우리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지 장갑 낀 손을 들더니 손짓을 했다. 


"어떻게 아는 거지?"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 노파는 다시, 더 기운차게 손을 흔들었다. 


"당신이 바틸다인가요?"


마침내 해리가 입을 열자, 헤르미온느는 헉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랐다.

옷을 겹겹이 입은 형체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손짓을 했다. 투명 망토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해리가 눈썹을 치켜세우자, 헤르미온느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우리는 노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즉각 노파는 돌아서더니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서 절뚝절뚝 걸어갔다. 몇 개의 집을 그냥 지나친 노파는 어느 집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노파를 쫓아서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풀이 무성하게 자란 정원을 지났다. 노파는 잠시 동안 현관문에서 주섬주섬 열쇠를 찾더니 곧 문을 열고는 우리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물러섰다.

투명 망토를 벗고 노파 옆을 지나쳐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노파에게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왠지 어디서 맡아본 기억이 있는.... 어디서였더라? 우리가 들어오자 노파는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 

노파가 좀이 슨 검은 숄을 풀자 숱이 적은 흰머리가 드러났는데, 듬성듬성한 희머리 사이로 두피가 훤히 보였다. 동시에 노쇠한 몸과 먼지, 빨지 않는 옷, 그리고 섞어 가는 음식물에서 비롯된 악취는 더욱 심해졌다.


"바틸다?"


해리가 되풀이해서 물었다. 노파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바틸다는 마치 헤르미온느는 보지 못한 것처럼 그녀를 옆으로 밀치고 발을 질질 끌며 곁을 지나 응접실처럼 보이는 곳으로 사라졌다.


"해리, 난 이게 잘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어."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쉬었다.


"저 노파의 몸집을 좀 봐. 혹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우리는 저 노파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야."


해리가 대답했다.


"내 말좀 들어 봐. 진작 말해 주었어야 했는데, 난 저 노파가 제정신이 아닌 걸 알고 있었어. 뮤리엘 할머니가 '망령이 들었다'고 했거든."

【오너라!】


바틸다가 건넛방에서 소리쳤다. 그러자 헤르미온느가 소스라치게 해리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괜찮아."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안심시키며 응접실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자."


헤르미온느와 나는 서로에게 붙은 채 해리의 뒤를 쫓았다. 응접실을 매우 더러웠다. 발밑에서는 두껍게 쌓인 먼지가 버석거렸고, 눅눅하고 곰팡이 핀 냄새와 더불어 고기가 섞는 듯한 끔찍한 냄새가 진동했다. 

불을 피우기 위해서 장작을 주섬주섬 모우는 바틸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사실도 잊어버린 건가? 헤르미온느가 벽난로에 불을 피웠다. 해리는 은 액자 안에 든 사진을 바틸다 앞에 내밀었다.


"이 사람은 누구죠?"


바틸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 누군지 아세요? 이 사람 말이에요. 그를 아세요? 이름이 뭐죠? 이 남자가 누구지요?"

"해리, 뭐 하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이 사진 말이야, 헤르미온느. 이 사람이 바로 그레고로비치의 물건을 훔친 도둑이야!"


해리는 바틸다에게 애원했다.


"제발요! 이 사람은 누구죠?"


그러나 바틸다는 그저 그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왜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하셨죠? 백셧 부인... 아니 백셧 선생님?"


헤르미온느도 나름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혹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거라고 있으세요?"


하지만 바틸다는 헤르미온느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해리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비틀며 거실 안쪽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떠나길 바라세요?"


해리가 물었다. 바틸다는 아까와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는데, 이번에는 우선 해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다음엔 자기 자신을, 그리고 나서는 천장을 가리켰다.


"아아, 알았어요... 헤르미온느, 로라, 이분은 내가 자기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길 바라는 것 같아."

"알았어. 가 보자."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몸을 움직이는 순간, 바틸다는 갑자기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처음에는 해리, 그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이분은 나와 단둘이 가길 바라시나 봐."

"왜?"


헤르미온느가 따지듯이 물었다.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는 촛불 켜진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노파는 이 시끄러운 소리에 머리를 몇 번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면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그녀에게 그 칼을 내게 주라고 했을지도 몰라. 오직 나한테만."

"넌 정말로 저 노파가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응, 그런 거 같아."

"좋아, 그럼 알았어."

"하지만 서둘러, 해리."

"앞장서세요."


해리가 바틸다에게 말했다. 바틸다는 그 말을 이해했는지 비틀거리며 그의 옆을 빙 돌더니 문을 향했다. 해리는 바틸다의 뒤를 따랐고 우리는 촛불로 밝혀진 난장판 속에서 책장 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 이거 리타가 쓴 그 책인가 봐."

"《알버스 덤블도어의 삶과 거짓말》초판본이네. 여기 리타 스키터가 바틸다 백셧에게 보낸 편지가 있어."


헤르미온느는 초판본에 리타 스키터가 바틸다 백셧에게 보낸 편지를 꽂아넣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정말이지... 안 치우고 산 지 꽤 며칠은 흐른 것 같았다. 


"이 냄새.... 분명 어디서 맡았는데..."

"왜 그래, 로라?"

"불쾌한 고기 섞는 냄새.... 고기 섞는... 그래!"


교회에 있을 때 몇 번 맡아본 냄새였다. 사람이 썩어가는 냄새였다. 


"해리가 위혐해!"


내가 외치는 동시에 위층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헤르미온느는 책을 백 안에 집어넣고 우리는 재빨리 위층- 소리가 들려오는 그녀의 침실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자 해리의 몸통을 칭칭 감고 숨통을 조이고 있는 커다란 뱀의 모습에 바로 지팡이로 뱀을 공격했다. 뱀은 공격을 받자 흥분하면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헤르미온느와 내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커튼이 쳐진 창문이 그녀의 빗나간 주문에 맞아서 산산조각났다. 바로 이어진 내 공격에 뱀은 쿵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빨간 불빛에 맞아 허공으로 붕 날아올랐다가- 날아가는 방향에 있는 해리의 얼굴을 정통으로 철썩 때리고 달아났다. 뱀은 묵직한 똬리를 칭칭 틀면서 천장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가 다가오고 있어! 헤르미온느, 로라, 그가 다가오고 있어!"


해리가 외쳤다. 뱀이 거칠게 쉭쉭 소리를 내며 기어 내려왔다.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뱀은 벽에 걸린 선반들을 부숴 버렸고 깨진 도자기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그리고 해리와 헤르미온느 쪽으로 달려갔다. 

뱀은 몸을 곧추세우며 돌진했다. 뱀이 공격을 가하는 순간 헤르미온느가 "콘프링고!"하고 소리쳤다. 주문은 방을 가로질러 옷장 거울을 폭파한 후에 바닥과 천장에 부딪히며 다시 우리를 향해 튕겨 나왔다. 유리 조각이 뺨을 스쳤다. 그리고 헤르미온느를 잡아당긴 해리가 침대에서 부서진 화장대 위로 풀쩍 뛰었다. 그리고 곧장 깨진 유리창을 통해 텅 빈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의 모습에 나도 재빨리 뛰어내렸다. 공중에서 몸부림치는 동안 헤르미온느의 비명 소리가 어둠을 뚫고 메아리쳤다. 나는 재빨리 지팡이를 집어넣고-헤르미온느가 우리에게 달려오는 뱀을 향해서폭발 마법을 사용했다- 둘의 목덜미를 양 손으로 잡고는 순간이동을 시행했다. 


고드릭 골짜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오자마자 해리는 쓰러져버렸다.


"해리!!!"


그의 이마에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헤르미온느, 해리를 치료해줘! 나는 텐트를 설치하고 보호 마법을 걸게!"


지팡이를 가지고 해리를 치료하는 헤르미온느의 주위를 원으로 돌면서 보호 마법을 걸고 구슬 백 안에서 텐트를 꺼내서는 "에렉토!" 마법으로 조립했다.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목에 걸려 있는 호크룩스를 벗기기 위해서 잘라내기 마법을 썼다. 그리고 뱀에 물린 상처를 포함해서 호크룩스 때문에 생긴 상처를 소독하고 디터니 원액을 발라주었다. 그 후 난 공중 부양 마법으로 해리를 들어올리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침대에 눕혔다. 해리 몸 위로 담요를 겹겹이 덮어주었다. 

우리는 새벽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해리를 보살폈다. 헤르미온느는 조그만 스폰지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안 돼!"

"해리, 괜찮아, 넌 괜찮다고!"

"안 돼.... 내가 그걸 떨어뜨렸어.... 내가 떨어뜨렸어..."

"해리, 괜찮아. 일어나, 일어나!"


아파서 헛소리를 하는 해리를 깨웠다. 그러자 그는 눈을 번쩍 떴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괜.... 괜찮은 거야?"

"응."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도망쳤구나."

"그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널 침대에 눕히기 위해서 공중 부양 마법을 써야 했어. 널 들어 올릴 수가 없었거든...."


내가 설명했다.


"넌 아팠어."

"많이 아팠어."


나와 헤르미온느가 말을 맺었다.


"우리가 떠난 지 얼마나 됐지?"

"몇 시간쯤. 이게 거의 아침이야."

"그리고 그동안 난... 뭐야, 의식이 없었다고?"

"정확히 그런 건 아니고."


헤르미온느가 주저하며 말했다.


"넌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신음하고... 뭐 그랬어."


내가 그를 불안한 눈동자로 바라보며 말했다.


"난 도저히 호크룩스를 네게서 벗길 수가 없었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게 달라붙었어. 네 가슴에 말이야. 그 바람에 흉터가 생겼어. 미안하지만, 그걸 떼어 내기 위해서 잘라 내기 마법을 써야했거든. 그리고 넌 뱀에게 물리기도 했어. 하지만 내가 상처를 소독햇고, 거기에 디터니 원액을 발라 줬어...."


해리는 입고 있던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앗다. 로켓이 불로 지진 듯이 달라붙었던 곳, 바로 그의 심장 위쪽에 새빨간 타원형의 흉터가 보였다. 팔뚝에서는 반쯤 치유된 물린 자국도 볼 수 있었다.


"호크룩스는 어디에 뒀어?"

"내 백 속에. 잠시 동안 그걸 따로 보관해야 할 것 같아."


해리가 베개 위에 드러누웠다.


"우리는 고드릭 골짜기에 가지 말았어야 했어. 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도 가고 싶어 했잖아."

"난 정말로 덤블도어 교수님이 널 위해 그곳에 칼을 남겨 두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 그렇다면.... 우리가 잘못 짚은 거구나,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해리? 바틸다가 널 위층에 데리고 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뱀이 어딘가에 숨어 있었니? 그게 그냥 튀어나와서 그녀를 죽이고 널 공격했니?"

"아니야."


그가 대답했다.


"그녀가 뱀이었어.... 아니면 뱀이 그녀였던가... 애초부터 말이야."

"뭐... 뭐라고?"


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바틸다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던 게 분명해. 그 뱀은... 그녀의 몸속에 있었어. 그 사람이 그 뱀을 고드릭 골짜기에 두었던 거야. 기다리도록 한 거지. 헤르미온느, 네가 맞았어. 그는 내가 그곳으로 돌아갈 거란 걸 알았던 거야."

"뱀이 바틸다의 몸속에 있었다고?"


나와 헤르미온느는 불쾌하고 역겨워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루핀은 우리가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마법이 존재할 거라고 했잖아."


해리가 입을 열었다.


"바틸다는 너희가 있는 앞에서는 절대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건 파셀통그였기 때문이야. 전부 파셀통그였어. 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지. 물론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어. 일단 우리가 그 방에 올라가자, 뱀은 그 사람에게 전갈을 보냈을 거야. 난 내 머리속에서 그 일이 벌어지는 소리를 들었어. 그자가 흥분하는 것도 느꼈어. 그자는 나를 거기에 잡아 두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녀는 변했어. 뱀으로 변하더니, 공격했지. 그 녀석은 날 죽이려던 게 아니었어. 그냥 그 사람이 올 때까지 날 붙잡고 있으려던 거였어."


해리는 낙심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담요를 밀쳤다.


"해리, 안 돼 넌 충분히 쉬어야 한단 말이야."

"잠이 필요한 건 너희야. 기분 나쁘게 듣지 마. 하지만 지금 너희 모습은 정말 형편없어. 난 괜찮아. 내가 잠깐 망을 보고 있을게. 내 지팡이 어디 있니?"


우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해리만 바라보기만 했다.


"내 지팡이 어디 있어?"


헤르미온느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넘쳤다. 나는 해리의 시선을 피해버렷다.


"해리..."

"내 지팡이 어디 있냐고!"


내가 침대 옆으로 손을 뻗어서 서양호랑가시나무와 불사조 깃털 지팡이의 두 조각을 해리에게 보여주었다. 연약한 불사조 깃털 한 가닥만이 부러진 두 조각을 간신히 이어 놓고 있었다. 해리는 마치 그것이 끔찍한 부상을 당한 생명체인 양, 두 손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그는 지팡이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고쳐 봐, 부탁이야."

"해리, 내 생각에, 이렇게 부셔졌을 때엔...."

"제발, 헤르미온느, 시도라도 해 봐."

"레... 레파로."


덜렁거리는 지팡이 반쪽이 다시 붙였다. 해리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루모스!"


지팡이에서 약하게 불꽃이 튀더니 곧 꺼져 버렸다. 


"엑스펠리아르무스!"


해리는 나를 향해서 주문을 외웠다. 지팡이는 약간 움찔했지만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법을 부리려던 그 미약한 시도조차 해리의 지팡이에게는 무리였는지, 그것은 다시 두 조각이 나 버렸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조용히 속삭였다.


"너무, 너무 미안해. 아마 내가 그런 것 같아. 우리가 거길 떠날 때, 너도 알다시피 뱀이 쫓아왔잖아. 그래서 내가 폭발 저주를 쐈는데, 그게 사방으로 튀는 바람에, 그래서 그게... 그게 맞은 게 분명해..."

"미안해, 해리."

"그건 사고였어."


해리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아... 아마 고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해리, 그럴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기억나니?.... 론 말이야. 론이 차와 부딪혀서 지팡이를 부러뜨렸을 때 기억 나? 그 지팡이는 두 번 다시 예전처럼 되지 않았잖아. 그래서 결국 론은 새걸 사야만 했어."

그렇다면..."


해리는 억지로 덤덤한 목소리를 지어내며 말했다.


"그럼, 지금 잠시 네 걸 빌리지 뭐. 내가 보초를 서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눈물로 번들거리는 얼굴로 지팡리르 해리에게 건넸다. 그리고 해리는 우리에게 도망치듯이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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