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어느 아파트, 이자야는 자신의 방문을 열자 자신의 것이 아닌 가죽구두 한 켤레와 나미에의 하이힐 외의 붉은 하이힐 한 켤레가 현관에 놓여 있었다.
"운명이란 실로 편리한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유미는 귀찮다는 얼굴로 입을 연 가스마스크를 쓴 신겐을 힐끗 바라보았다. 키시타니 신겐- 세르티의 목을 사이카로 베어서 그 머리를 숨긴 장본인. 그리고 동시에 세르티가 일본에 불법으로 들어올 수 있게 도와준 사람. 키시타니 신라와 키시타니 토야의 부친. 아유미는 간단히 신겐의 정보를 머리 속에서 기억해냈다.
신겐은 들어온 이자야에게 말하고 있었다.
"다양한 우연을 그야말로 필연인 양 바꿔 칠하는…. 논리적인 것 같기도 하고 비논리적인 것 같기도 한…. 그것을 자네 같은 인간에게 묻고 싶네. 과연 운명이라는 존재는 필연일까 라고 말이지."
"운명이란 낱말을 억지로 장식해봤자 별로 멋있지도, 머리 좋아 보이지도 않아요. 키시타니 신겐 씨."
"호오, 어떻게 나라는 걸 알았나? 목소리를 기억해주었는가?"
이자야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자 하얀 가스마스크를 쓴 남자와 지루하다는 얼굴을 해서 멋대로 끓인 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유미 그리고 벌레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미에가 보였다. 신겐은 왼손으로 권총을 들어 나마에의 옆구리에 대고 있었다. 또한 오른손으로는 이자야의 책상 위에 있던 십자말풀이를 멋대로 풀고 있었다.
"마스크 때문에 우물거리는 소리도 그렇지만. 그런 호들갑스러운 말투를 쓰는 사람은 제가 알기론 당신 뿐이니까요."
"흠. 그런데 이 십자말풀이 잡지는 마니아한 문제가 많아서 꽤 통쾌하구먼. 으음, 이 인명 십자말의 '신의 병을 고쳐 그리겠다고 호언장담한 서양 한의사 화가'는…. 아, 누구였더라. 제일 처음이 지고 제일 끝이 타. 알 것 같은가, 코지마?"
"몰라."
"이런이런. 자네는 여러 지식을 더 알 필요가 있어."
"닥쳐. 빨리 본론이나 얘기해. 나 돌아가야 해, 어서."
"패스-."
신겐은 아유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유미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재촉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로 열쇠 '독일의 그로바스 섬 출신 예술가'도 들은 기억은 있는데 생각이 안 나는군. 카르… 카르나…. 뭐였는지 아는가? 들어줄 테니 대답해보게나."
"멋대로 남의 잡지를 읽고 고민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이자야는 십자말풀이 잡지를 빼앗아서는 신겐의 맞은편 소파에 걸터앉았다.
"오른손으로 책을 읽고 왼손으로 총을 들이대다니 별 희한한 짓을. 그건 그렇고 모델건 따위를 나미에 씨에게 겨누고서 뭘 하는 겁니까?"
"호오. 잘도 간파했군."
"?!"
두 사람의 대화에 표정을 바꾼 것은 모델건으로 위협받고 있던 나미에였다. 보아하니 바로 이 순간까지 진짜 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속였군요."
"흐흥, 일본 국내에서 나 같은 일반인이 그리 쉽게 권총을 압수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권총 불법소지는 자네들의 상상보다 중죄거든? 하긴 나미에 양이 속아준 덕에 우리는 무사히 아파트 보안 장치를 돌파할 수 있었지만."
"다행이네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생글거리며 말로 잽 펀치를 내지르는 이자야에게 신겐은 가스마스크 너머로 웃으며 늘 하던 말을 읊었다.
"고등학생 동창생과 동창생의 아버지를 너무 매몰차게 대하지 말게. 생각해보면 아들 놈과 자네와 시즈오 군, 딸과 츠지루 군과 아스카 군과 아유미 군은 언제나 뭉쳐서 나쁜 짓만 하고 다녔지. 신라와 토야가 그런 식으로 삐뚤어지게 자란 이유는 오로지 자네들이라는 양극단적 인간들 사이에 끼인 탓이라고 분석하네만 과연 어떨는지."
"딱 봐도 당신을 닮은 거잖아."
"자기 자식을 지나치게 젖혀놓은 것 아닙니까? 그리고 시즈오와는 어울린 적 없습니다만."
"아차 그랬지. 언제나 사이에 신라가 들어 있는 형태로 자네들은 정말로 견원지간이었지."
"…그래서 뭘 하러 오신 건데요?"
옛날이야기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이자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신겐을 쳐다보았다. 신겐은 그러한 그의 태도를 보고 모델건을 흰 가운의 품 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음, 뭐, 내가 여기에 온시점에서 이미 예상은 했겠지만- 세르티의 머리는 대체 어디에 넣어두었나?"
나미에가 가져둔 홍차의 김과 향기를 가스마스크 너머로 빨아들이면서 신겐은 담담하게 지금까지의 경위를 설명했다. 아니, 적어도 마실려면 그 마스크라도 벗는 것이 좋을 텐데.
"나미에 아가씨가 달아난 직후에 야기리 제약이 네브라에 흡수 합병당햇잖느냐? 그후 머리라기보다 나미에 양의 행방을 네브라가 독자적으로 조사하던 중에, 근처 호텔에서 자네 집으로 출근하는 나미에 양을 발견했다는 소리지. 그래서 오늘 나미에 양이 올 때를 기다렸다가 마침 이 모델건으로 겁을 주어 함께 들어왔다는 것 아니겠나."
"이자야, 경찰을 불러야 하지 않아?"
"그런 짓을 했다간 난처해지는 건 너희들일 텐데?"
아유미가 말했다.
"내 증언을 근거로 수색하면 방에서 젊은 머리의 여자가…. 과연, 살인마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일대 센셔이션이 벌어지겠군. 나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필사적으로 자작자연을 반복함으로써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일조하도록 하지."
악의 어린 말을 거침없이 떠들어대는 신겐. 이자야는 냉정한 미소를 지으며 홍차를 마셨다.
"역시 신라의 삐둘어진 성격은 당신에게서 물려받은 거로군요."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얼른 머리를 내놓거라."
"대체 이 인간들은 뭐야…."
한눈에 혐오감을 드러내는 나미에와는 대조적으로, 이자야는 익숙하다는 듯 담담하게 신겐의 말에 대응했다.
"글쎄요, 내놓으라고 하시니 '글쎄요'밖에는 대답할 말이 없는데. 그랬다간 어찌 될지 마음에 걸리는군요."
"그리되면 머지않아 이 아파트에 집단 강도 사건이 발생할 뿐…이라고 말하면 어쩌겠나."
"그러면 당신과 아유미는 오늘 여기로 오실 게 아니었습니다. 그 경우 내일 아침에는 이곳은 깨끗한 빈 방이 되어 있을 테지요."
"흐흠. 뭐, 농담이었다. 솔직히 말로, 머리를 당장 돌려놓을 필요는 없으니."
"호오?"
"세르티의 영상이 실제로 TV에서 방영되었다는 사실에 우리 회사 상층부는 적지 않은 놀라움을 나타냈지. 한마디로 머리보다 몸을 먼저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결론이 나왔다 이 말이야."
담담하게 중요 기밀 비슷한 소리를 주워섬기는 신겐. 아유미는 말리지 않았다. 나미에는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이자야는 신겐의 말을 값을 매기듯 듣고 있지만, 역시 상대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머리의 행방은 목하 수색 중으로 보고해두고 있지. 보아하니 너는 우리와는 다른 식으로 머리에 접근하려는 눈치니까 말이다. 발키리가 듀라한이라는 설을 염두에 두고선 머리를 일종의 세력 간 항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놓고 독자적으로 각성시키려하다니, 꽤나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구나."
"어라…. 도청기는 전부 없앴다고 생각했는데요."
"아유미에게 들었다. 그런 마이너적인 생각을."
이자야는 아유미를 힐끗 보았지만 아유미는 여전히 커피를 마시면서 귀찮다는 얼굴을 하면서 휴대전화 쪽을 자꾸 바라보았다. 이자야는 단념한 듯 한숨을 쉬며, 자신이 시도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냥 이것저것 실험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정말로 분쟁지역에라도 들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므로, 일시라도 협력태세가 가능하면 기쁘겠군요. 과학적인 변화의 관찰은 역시 설비가 없는 제쪽으로서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흠. 그럼 여러모로 시험해보거라. 나에게 부탁하면 우리 회사의 설비로 초대하겠다만. 당연하게도 너에게는 감시가 붙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도 포함해서 신화적인 시점에서 실험하려는 이는 주위에는 없는 고로 네 행동에는 흥미가 많거든."
"칭찬 감사합니다."
쓰게 웃고 홍차를 마신 이자야는 대담한 미소를 지으며 신겐에게 털어놓았다.
"이번에 마침 괜찮은 곳까지 갈 뻔했습니다. 팀 몇 개의 적대구조를 부채질해서 서로를 박살내게 만들려는 계획이었지요. 그것도 각자의 중심인물이 서로 간에 친구,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지 뭐겠습니까."
"호오."
"그들의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를 생각하면서 싸우는 운명으로 떨어진다…. 게다가 그중 하나는 세르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한발 격리된 존재이고요."
"사이카."
"그건 머리에 대한 실험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너 자신이 보고 싶은 것뿐 아니냐?"
"부정은 않겠습니다."
"흠…. 그런데 괜찮은 곳까지 갈 뻔했다고?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은 실패했다는 소리냐?"
신겐의 물음에 이자야는 여유 섞인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보나마나 아시겠지만…. 세르티가 그 셋 중 둘과 필요 이상으로 긴밀한 사이가 되어버렸거든요."
사이카의 어머니, 앙리와 다라즈의 창시자, 류가미네 미카도를 얘기하는군.
"과연. 세르티만 한 '힘'과 '연줄'을 가진 이가 셋 중 둘의 정체를 안다면…. 아닌 게 아니라 네가 바라는 수렁의 양상은 안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가스마스크 틈새로 빨대를 꽂아 식어가는 홍차를 쭉쭉 빨아 마시는 신겐. 장난치고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으나, 홍차를 다 마신 후에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자야에게 말했다.
"한 가지 충고를 하지."
"호오."
"만약 이곳 도쿄에서 의사적인 항쟁을 일으켜 세르티의 머리. 혹은 영혼을 자극하려 한다면, 다른 이들의 싸움에 그녀를 끌어들일 게 아니라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주변을 재앙으로 몰아넣는 편이 낫지 않겠나."
소름끼치도록 잔혹하고 냉철한 말 같지만 이자야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그럴 작정입니다"라고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신겐은 기분 나쁜 침묵만이 어슴푸레한 실내를 지배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 것은 아니나, 이자야는 그 침묵을 깨듯이 현재 자신이 관련되어 있는 사건에 대해 새삼스럽게 읊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정말 흥미가 깊습니다. 무척 사이가 좋았던 세 명이 실은 저마다 비밀을 갖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주 소스한 악의…. 뭐, 주로 저지만요. 그러한 것들이 겹치고 겹친 끝에 그야말로 이상에 가까운 형태로 서로의 비밀이 드러났다. 물론 항쟁이 수렁에 완전히 빠진 후였다면 정말로 '최악'이었겠지만요."
"최악은 네 성격이겠지."
나미에와 아유미가 동시에 합창하듯 중얼거렸지만 이자야는 일부러 듣지 않는 척했다. 한편 신겐은 어딘가 뻐기는 말투로 자기 나름의 의견을 내놓았다.
"과연. 악의 어린 우연이 겹치면서 오해가 오해를 낳는다. 아닌 게 아니라 그것은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안 어울릴 만큼 이 세상에 넘치고 깔렸지. 마치 그것이 인간의 천성이라도 된다는 양."
신겐은 모든 상황을 위해서 내려다보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는 이만 돌아가겠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하게나, 정보통."
"뭘 말입니까?"
"우연의 도미노는 결코 나쁜 방향으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말을 끝으로 신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아유미는 붉은 하이힐을 신고는 먼저 이자야의 집을 빠져나갔다.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급하게 통화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너는…… 기가 막힐 만큼 비겁한 사내로군."
떠날 때 구두를 신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신겐이 말했다.
"헌데 어제 오늘 사이 네 과거를 이것저것 조사해보았는데. 2년 전의 항쟁도 실은 모조리 네가 조종했던 게지?"
"무슨 말씀이신지."
"두 개의 젊은 팀. 말하자면 일본판 컬러 갱인가? 그들 양쪽에 빌붙어 꽤나 약삭빠르게 처신했더구먼. 너 자신은 손을 더럽히지 않고 정보통으로서 확실하게 재미있는 부분만을 가져갔지."
"……."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이자야를 돌아보고 신겐은 히죽 웃었다.
"너를 신봉하는 여자아이를 소년들에게 파견했고. 듣자하니 그 소녀 중 하나가 중상을 입음으로써 사건이 매듭지어졌다고 하는데."
일단 숨을 멈추고 빈정거리는 목소리를 섞어 하나의 추측을 내놓았다.
"나는 그것마저도 네 지시가 아닐까 생각한단 말이야. 적대조직에 납치되는 부분까지 포함한 지시를 사건에 소녀에게 내려둔 것은 아닐까 하고. 심하게 다칠지도 모르는 지시에 따를 여자가 있을지는 불명이지만."
한 순간 침묵. 이자야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소녀들에 대해 웃음이 섞어가며 설명했다.
"그 애들은 그건 가엾은 아이들이에요. 그만큼 사랑스럽고요."
"그 애처로운 네 마리오네트 말인가. 고교생 무렵부터 너는 그런 짓만 했지. 신라가 자주 '그 녀석은 진짜 사랑을 몰라'라고 투덜거린 기억이 나는군."
"머리 없는 여자에게 환장하는 변태한테서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인데. 그건 그렇다 치고. 사키를 포함한 그 아이들은 가족과 애인에게 심한 학대를 강요받던 애들이거든요. 그건 정말이지 상상 이상으로 엄청 났죠."
이자야는 연민과 황홀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뒷말을 이었다.
"그래도 가족을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모르던 아이들뿐이었어요. 바로 그렇기에 간단하게 조종할 수 있었죠. 그 애들은 가족과 애인을 사랑하다기보다는 일종의 신앙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그 신앙을 내 쪽으로 전환시켰을 뿐입니다. 만약 내가 죽음을 바라면 망설이면서도 끝내는 죽어줄…."
"흠……. 가볍게 말하는군. 목적을 바꾸어 만드는 것이 간단한 일인 것처럼 착각할 것 같구먼."
통화를 끝내고 아유미는 인간쓰레기 같은 시선으로 이자야를 바라보았다.
"라낭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라낭시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민담에 나오는 요정 말이지? 마음에 든 남자를 죽인다는."
"예. 남자를 유혹해서 그가 사랑을 받아들이면 재능을 주고 생명을 빼앗지만, 남자가 사랑을 거부하면 그가 돌아설 때까지 싹싹한 노예로 존재하는 여자 요정. 그 소녀들은 그런 존재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사키는 키다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네요. 그러므로 키다군은 전설에 나오는 시인처럼 목숨을 깎이겠지요. 지금까지, 앞으로도."
"그래도 불행하지는 않았겠지. 그 요정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아유미가 끼어들면서 말하자 이자야는 놀랍다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놀랍네, 네가 그런 소릴 하다니. 사랑 같은 것은 믿지 않는 것 아니었어?"
"아닌데. 나도 사랑을 믿고 있어. 단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뿐- 구역질 나잖아."
시즈오를 사랑하고 있는 마사키는 굉장히 예쁘게, 아름답게 반짝였으니까.
"네가 시즈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상관없지만- 그것으로 마사키가 다치면 각오하는 편이 좋을 거다."
때마침 온 한 통의 메세지를 보자마자 아유미는 표정을 와락 구겨버리고는 그대로 달려가버린다.
그 뒤로, 이케부쿠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아픈 몸으로 집에서 나온 마사키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황건적이 모여 있다는 공장 부지로 가던 도로에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시즈오와 마사키를 보자 아유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토바이가 먼 곳에서 세워졌다.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해."
기억은 없어도 마음은 그에게 가는 마사키, 소중한 그녀가 다칠까 봐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를 유지한 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시즈오의 마음을 보면서 아유미는 중얼거렸다. 서로를 서로가 아끼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감정을 검게, 그저 검게 칠하는 것이었다. 예쁘게 핀 붉은 장미(=사랑)를 새까맣게, 검게 칠해버렸다.
**
마사오미는 그대로 입원을 했고 면회시간이 지났고 미카도와 앙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호라다 일행에게 습격을 당해서 병원에 입원한 마모리가 자신의 남동생의 병실로 찾아왔다. 하지만 살짝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소녀의 모습에 들어가지 못했다.
"냉정히 생각하니. 정말 답이 안 나오는 말종이네. 사키는 내 어디를 보고 멋잇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솔직한 부분이려나."
"으악?!"
방 옆에서 혼잣말에 대한 대답이 들려왔다. 미카지마 사키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뭐, 뭐야…. 너 언제 들어온 거야."
"아까. 깨우면 안 되겠다 싶어서. 카도타 씨에게서 이야기 들었어. 전부."
"뭐야…. 역시 원망하는 거야? 너 때는 도망친 내가 오늘은 혼자서 적진에 뛰어들었다는 것 때문에. 하긴 기적적으로 이 정도로 그치긴 했지만."
"바보구나. 넌 정말로 바보야."
"그렇다는 건 옛날부터 잘 알면서."
"있지……. 너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그날 밤… 사실 나… 이자야씨의 지시로 그 사람들에게 잡혔어. 내가 어떤 일을 당할지 알고 있었어. 그치만…. 그치만 그러면 전부 해결될 거라고 이자야씨가 말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날 밤! 스스로 그 사람들의 아지트… 옆… 에 그리… 고… 이자야씨가… 그 사람들에게… 정보를… 홀…려…서…."
"뭐야, 겨우 그 소리야."
"…뭐?"
"알고 있었어. 난 에스퍼거든. 이자야 녀석에게서 들었지…? 나를 붙들어놓기 위해. 계속 못 걷는 척을 하라고. 그 녀석으로선 나를 장기짝으로 쓰고 싶었을 테니까. 그런가, 일종의 실험이었나. 제기랄, 병원을 호텔 대용으로 쓰지 말라구. 빈 방이 많았으니 망정이지."
"처음으로 이자야씨의 말을 거역했네."
"지금이라면……, 겨우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뭘?"
"도와주러 가지 못해서…… 미안. 하지만…… 나는 역시 너를 좋아해."
"……."
"부탁이야, 헤어지지 말아줘."
대체 몇 분이 지났을까 마사오미의 몸 위에 사키가 상반신을 밀어붙였다.
"꾸엑!"
충격이 전신을 강타하는 바람에 그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야, 무슨 짓…."
"역시…. 넌 정말 바보야…. 엄청난 바보야…."
"할 수 없잖아. 결점 하나 정도는 눈감아주면 기쁘겠는걸."
"본인이 알고 있다면 고치자. 같이…… 고쳐나가자."
마모리는 두 사람의 사랑에 속으로 축복하면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야, 설마 남동생에게 질 줄이야."
마모리는 중얼거리면서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물방울만이 그녀가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후, 사키와 마사오미는 똑같은 날에 퇴원을 하고 마사오미는 자퇴를 하고 그녀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마모리는 진작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퇴원을 해 병원을 빠져나갔다. 자신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자고 생각하면서 이케부쿠로 거리를 걸어갔다.
"앞으로."
<채팅방>
-칸라 님이 입실하셨습니다-
칸라: <하이하~이! 여러분의 아이돌 칸라양에용~.>
사이카: <안녕하세요.>
세튼: <방가.>
흑기사: <방가요.>
칸라: <어라?! 다들 말꼬리 안 잡으세요?!>
세튼: <그럴 기력도 없어요.>
흑기사: <오늘은 약간 그런 억지 말투에 진심으로 살의를 느끼고 있으니 하지 마세요.>
칸라: <넘하네~.>
바큐라: <아, 난 첨 왔는데.>
바큐라: <이 사람한테 맘대로 말꼬리 잡아도 되나요.>
크롬: <시간 낭비예요.>
바큐라: <인간이 사는 시간은 90퍼센트나 낭비니까 문제없음이라는 고로,>
바큐라: <내 낭비로 이 방을 가득 채우고 싶을 정돈데요.>
바큐라: <그러한 고로,>
바큐라: <미친 듯이 말꼬릴 잡고 싶어요.>
세튼: <또 이상한 사람이!>
칸라: <이 방은 저 외엔 이상한 긴장감을 가진 사람들뿐이네요우.>
바큐라: <상대 안 할래요.>
칸라: <어멋?! 이야기가 달라?!>
-타나카 타로 님이 입실하셨습니다-
-하이바라 님이 입실하셨습니다-
타나카 타로: <안녕하세요.>
하이바라: <안녕하세요.>
세튼: <방가.>
사이카: <안녕하세요.>
크롬: <어서와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하이바라 님. 그동안 왜 안 오셨나요?>
흑기사: <방가요.>
하이바라: <좀 아팠습니다.>
사이카: <괜찮으세요?>
하이바라: <네, 이젠 괜찮습니다.>
세튼: <다행이네요.>
흑기사: <건강 주의하세요.>
하이바라: <감사합니다.>
타나카 타로: <어라, 새로 오신 분이 계시네요.>
바큐라: <할룽,>
바큐라: <첨 뵙겠습니다. 바큐라입니다.>
타나카 타로: <처음 뵙겠습니다.>
바큐라: <칸라 님이 꼬셔서 왔습니다.>
사이카: <그러셨군요.>
세튼: <헤에, 저는 인터넷에서 알게 됐는데, 바큐라 님도 그런가요?>
바큐라: <아뇨, 오프에서 아는 사이죠.>
칸라: <직장 동료 같은 거예요! 물론 표면상이지만…. 깍!>
바큐라: <칸라 님은 언제 죽나요?>
칸라: <예상 외로 사정없는 태클?!>
흑기사: <칸라 님, 짜증납니다.>
세튼: <츤데레조차 아니군요.>
칸라: <현실에서 만나고 있으니까, 이 참에 바큐라 님께선 제 매력을 저 분들에게 가르쳐주세요!>
바큐라: <그러네요,>
바큐라: <예를 들면,>
바큐라: <칸라 님의 점수로 매기면-,>
바큐라: <√3점.>
하이바라: <루트라니.>
칸라: <예? 그건 제가 나눌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뜻인가요?>
흑기사: <짱나>
바큐라: <초등학생에게는 아직 어려우니까 보여주지 않는 편이 좋다는 뜻입니다.>
크롬: <흑기사 님?!>
흑기사: <아, 마음 속에서 생각하던 것이 무심코.>
칸라: <예?!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는데?!>
흑기사: <제 귀에는 욕으로 들리는데요.>
바큐라: <아,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갈게요~.>
세튼: <예~.>
칸라: <수고하셨어용-!>
크롬: <수고하셨어요.>
사이카: <수고하셨습니다.>
타나카 타로: <저어, 바큐라 님!>
타나카 타로: <또 오세요! 환영할게요!>
흑기사: <또 놀러오세요, 바큐라 님.>
바큐라: <또 올게요-, 그럼!>
하이바라: <안녕히 주무세요.>
세튼: <즐쿰.>
칸라: <잘 자용.>
-바큐라 님이 퇴실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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