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식이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누라구미에서 지내게 되었다. 

엄마는 누라구미 2대째와 할 말이 많은 건지 며칠째 계속되는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엄마, 괜찮을까?”

 

주위에 쓰러진 요괴들을 깨우면서 중단된 연회를 다시 즐기려고 하는 엄마의 모습에 난 걱정했다.

 

괜찮겠죠. 어차피 마셔도 취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으니까요.”

 

하쿠는 내 걱정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쿠는 엄마가 걱정되지 않는 거야?”

제가 지킬 사람은 호타루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호시님.”

그건 좋지 않아, 하쿠. 나만 괜찮다면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

산책이라도 하실래요? 저번에는 잘 못 보셨잖아요.”

 

하쿠는 내 말을 잘라버리며 제안했다.

 

……그래.”

 

더 이상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하쿠는 내 어깨 위에 연두색 하오리를 걸쳐주었다.

 

그럼 가볼까요?”

어디 가는 거냐, 호시야.”

누라리횬님.”

 

누라리횬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산책을 하러 나가볼 생각입니다.”

그러냐. 우키요에 마을을 좋은 곳이란다. , 시즈오, 마침 나갈 참이냐?”

 

누라리횬은 장바구니를 든, 매화가 핀 나뭇가지 무늬가 있는 주홍색 기모노를 입은 흑발의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 그럴 생각인데…….”

그럼 호시에게 우키요에 마을을 소개 시켜 주지 않겠느냐.”

뭐 상관없습니다만.”

 

누라리횬의 말에 남자는 귀찮다는 기색을 보였다.

 

이 아가씨가 리쿠오 도련님의 약혼녀인…….”

사노메 호시입니다.”

 

내가 자기소개를 하자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야마부키 시즈오라고 합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기모노의 무늬랑.”

 

황매화(야마부키)와 어울리는 성을 가진 남자를 칭찬했다.

 

, 감사합니다. 그럼 가볼까요, 호시 아가씨?”

말씀 편안하게 하세요, 시즈오씨.”

원래 이런 말투입니다, 호시 아가씨.”

 

시즈오가 딱딱하게 말했다.

그와 함께 저택을 벗어나서 우키요에 마을을 돌아다녔다. 장을 보는 그의 옆에서 내가 신기하듯 구경했다.

 

시즈오씨는 요리를 잘 하시나요?”

뭐 못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저에게 요리를 가르쳐주실래요?”

? 왜 저에게?”

전 앞으로 누라구미에서 지낼 생각인데 누라구미 입맛에 맞는 손맛을 만들고 싶거든요. 그게 아내의 일라고 책에 적혀있었거든요.”

굳이 저에게 배우지 않아도…….”

당신에게 배우고 싶어요.”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시즈오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피하지 않고 그의 시선을 계속 받아냈다.

 

저에게 꼭 배워야겠습니까?”

, 당신에게 꼭 배우고 싶어요.”

누굴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 잘 가르치지는 못하겠지만…… 알겠습니다.”

 

시즈오는 한숨을 내쉬고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고마워요, 시즈오씨.”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됩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즈오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 뒤로 약혼식 전날까지 나는 시즈오에게 집안일에 대해 배웠다. 오늘도 요리를 배우고 지내고 있는 방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하쿠가 서 있었다.

 

하쿠.”

……즐거워 보이십니다, 호시님.”

그래? 솔직히 말하면 즐거워.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거운걸!”

 

내 말에 하쿠는 뚱한 표정이었다.

 

왜 그래, 하쿠?”

전 전혀 즐겁지 않는데요. 왠지 호시님만 즐거워하니까 불만스럽습니다.”

! 지금 삐진 거야? 귀여워라~!”

귀여워?! 전 전혀 귀엽지 않습니다!”

나에겐 귀여운데?”

놀리지 마십시오!”

 

하쿠는 내가 자신을 놀린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그 모습에 나는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호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하쿠와 내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엄마!”

 

엄마는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시체처럼 차가운 온도에 손을 빼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야.”

모두들, 좋은 분들이니까. 와카나씨는 친절하고……. 요즘 시즈오씨에게 요리도 배우고 있어.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보람차다고 생각해. 예전의 나라면 분명 이런 보람을 알지 못했을 거야.”

즐겁니?”

.”

다행이다.”

 

엄마의 손은 이제 내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온기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차가움만 있었다.

 

엄마는 호시가 사노메의 저주라든가, 운명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

그것들은 호시를 가두는 새장이 될 거야. 엄마는 갇혀버린 별의 구속을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되면 분명, 별은 제 빛을 잃어버리고…… 죽어버릴 테니까. 엄마는 그게 걱정이야.”

 

호타루의 말에 호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괜찮을 거야, 엄마. 반드시 별은 해방돼서 찬란한 빛을 되찾을 테니까.”

진짜, 그렇게 될까?”

분명히 그렇게 될 거야. 아니, 그렇게 되도록 만들 거야.”

……, 믿을게. 호시가 그렇게 말하면 분명 그렇게 될 테니까.”

 

호타루는 호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하쿠는 두 사람의 모습을 모른 척 하며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날, 호시는 시즈오의 손에 신부로 꾸며지고 있었다.

 

대체 어제 뭘 하셨기에 눈이 이렇게 퉁퉁 붓는 겁니까?!”

 

, , 귀가 없고 계란처럼 매끈한 맨 얼굴만 있는 놋페라보 요괴인 무온나가 호타루의 팅팅 붓은 눈가를 냉찜질을 시키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제 호시를 못 볼 생각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서 펑펑 울었더니…….”

그게 자랑입니까?!”

가라앉아야 하는데…….”

 

호타루는 자신의 붓은 얼굴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자, 호시는 작게 웃었다.

 

시즈오씨, 그 다음에는 이걸 꽂아주세요.”

 

호시는 거울 속에 있는-실제로는 자신의 뒤쪽에 있다.- 시즈오를 바라보며 자신의 신부 복장을 꾸미는 것을 지시했다. 시즈오는 그녀가 내미는 나비로 세공 된 금색 머리장식을 받아 들고, 그녀의 금발에 꽂았다.

 

사노메 일가에는 나비 문양이 많이 들어가는군요.”

 

시즈오는 그녀가 입고 있는 신부복장과 머리장식을 힐끗 보며 호시에게 말을 걸었다.

 

나비는 여행의 표시, 변화의 전조를 뜻하고…… 우리 사노메를 나타내는 문양이기도 해요. 대문 ()’도 그 문양에서 따왔는걸요.”

그렇군요.”

아가씨, 아름다우세요.”

 

하쿠는 아름답게 꾸며진 신부 모습인 호시를 보자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그건 하쿠 뿐만 아니라 다른 요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머, 예뻐라!”

 

와카나도 붉은 신부로 꾸며진 호시를 보자 들뜬 목소리로 감탄했다.

 

진짜, 예쁘네.”

 

찜질팩을 내려놓고 호타루가 호시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가씨의 외모가 사노메 일가에서도 특출했으니까요.”

 

호타루의 말에 무온나가 동의했다.

 

“7대째, 마무리를.

 

나기가 말하며 붉은 연지와 붓을 내밀자 호타루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연지를 칠한 붓을 들고 호시의 입술을 붉게 칠했다.

 

그건 뭐예요?”

신부의 미래에 해가 없기를 바라며 붉은 연지를 신부의 모친이 칠해주는 사노메 전통 의식이지. 붉은색은 악귀를 쫓아주는 색이기도 하니까. , 다 되었다.”

 

호타루는 말하며 연지와 붓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꼬마 신랑 앞에 선 붉은 신부. 두 사람의 약혼식이 시작되고(구경하는 요괴들은 신부의 외모에 감탄했다), 먼 곳에서 그 약혼식을 구경하는 금발의 녹안의 소년이 있었다.

 

가까이서 안 보십니까? 축복해야 할 좋은 일이 아닙니까?”

 

백발에 선홍색 눈을 가진 여성, 코하쿠누시의 약혼녀인 사쿠라자와(사쿠라)가 자신의 주인, 사노메 호시히코에게 질문을 던졌다.

 

뭘 축복하라고.”

여동생인 호시 아가씨의 약혼식입니다. 당연히 축복할 일이죠.”

그렇게 좋은 게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축복할 것이 아니지.”

 

호시히코는 거짓미소를 짓고 있는 호시를 바라보았다.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호시…….’

 

호시히코는 3살 어린 여동생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은 아름다운 호시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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