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요에 마을에 자리잡은 관동지역 요괴들을 총괄하는 요괴일가, 누라구미.

누라구미 2대 총대장의 소꿉친구, 모란이 그려진 주홍색 기모노를 입고 등에는 검은 다디아 테두리 안에 매(魅)라고 적힌 연두색 하오리를 어깨에 걸친 금발을 지닌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은 자신의 수행원 요괴들을 끌고 누라구미 본가의 저택을 방문했다.


"호타루야."

"잘 지내셨나요, 누라리횬님?"


길쭉하게 뻗은 후두부를 지닌 노인, 누라리횬1에게 호타루라고 불려진 여성은 인사를 건넸다.


"이제 괜찮은가."

"……."


누라리횬의 질문에 그녀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는 굉장히 메말라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은 시간 밖에 해결할 수 없는 것 같네요."


여성의 이름은 사노메 호타루. 관서와 관동의 사이에 자리잡은 요괴일가-비와호를 낀 시가현에 자리잡고 있다.-의 7대 대장으로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노메 일가와 누라구미와 동맹을 유지하고 있었다.


"근데 혼자 온 것이냐? 자식들과 함께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네?"


누라리횬의 말에 호타루는 크게 놀라워하고 고개를 재빨리 뒤쪽으로 돌렸다. 맨 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어린 딸이 보이지 않았다.


"없다?!"

"에?!"

"너희들, 당장 찾도록 해!"

"……."


호타루의 말에 그녀의 백귀들은 우물쭈물거리며 꺼리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표정은 대체 뭐야."


부하들의 반응에 호타루는 눈을 치켜 떴다.


"아가씨는 충분히 강하신 분이잖아요."

"게다가 아가씨의 곁에는 시라누이님도 계시고요."

"저희가 굳이 찾지 않아도 누구도 아가씨를 건드릴 존재는 없어요."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리한."


장신의 미남으로, 감고 있는 한쪽 눈과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는 흑발의 남성이 호타루 쪽으로 걸어왔다. 호타루는 그를, 누라구미 2대 총대장인 누라 리한을, 자신의 소꿉친구를 보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집에 있었구나."

"뭐 이런저런 이유로 말이야. 근데 사실이야? 요즘 너희 쪽에서 들려온 소문……."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리한의 말을 자르며 호타루가 말했다.


"너희는 내 딸을 찾도록 해!"


호타루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리한에게 시선을 주고, 그와 함께 방 내부로 들어갔다.

한편 우키요에 마을을 걷고 있는 금발의 소녀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거리가 신기한지 녹색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났다. 


"호시님."


소녀의 뒤를 졸졸 쫓고 있는 푸른 기모노를 입고 푸른 구름이 그려진 흰 하오리를 걸친 백발의 금회안을 지닌 남성. 

청년은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녀가 멈추면 자신도 발걸음을 멈췄고, 그녀가 다시 걸으면 걸음을 옮기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소녀의 뒤를 어미오리처럼 졸졸 따랐다.


"호시님."


청년이 부르자 소녀의 걸음이 뚝 멈췄다.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어서 돌아가셔야 해요."


소녀, 사노메 호시는 청년 쪽으로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하쿠."

"네."


하늘에 속한 고대부터 존재했던 비구름과 번개를 부르는 요괴, 백룡 시라누이 코하쿠누시(하쿠)가 호시를 걱정했다.


"바깥은 위험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난 앞으로 바깥에서 살아가야 해. 위험해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계 정도는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호시님……."


하쿠는 안타까운 눈동자로 호시를 응시했다.


"난 괜찮으니까 그런 괴로운 표정 짓지 마."


그런 하쿠의 시선을 알아차린 호시가 그를 위로하고 다시 발을 옮겼다.


어느 한 곳의 토지신인 황룡과 연리지가 된 불로초의 정령, 호노카.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신의 힘을 지닌 식물요괴인 사노메 호나미는 자신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다. 그게 시가현 비와호에 자리해, 후쿠이현, 시가현, 미에현을 다스리는 사노메 일가의 기원이다.


"아, 금년에는 기후현까지 영토를 넓혔지."

"그 일 때문에 호시님은 8대 후계자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쿠가 분통하며 말했다.


"난 후회 없어. 원래 내 자리도 아니었고."

"호시님의 자리입니다! 사노메의 종가 후손이 가진 이마의 붉은 문양은 힘과 비례합니다. 힘이 크면 클수록 문양은 큰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호시님의 문양은 붉은 다이아몬드 4개가 큰 다이아몬드를 이루고 있죠. 그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는 2대째 호노카님 이후 처음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8대는 호시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미치란 말이지?"

"!!"


하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그게 아닙니다! 전 단지……!!"


본인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하쿠는 황급히 부정했다.


"하쿠."


호시가 부르자 하쿠는 입을 다물고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사노메 대장이 되는 존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극이야. 그들은 죽을 때까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미쳐버렸지. 근데 이례적으로 내가 그 저주를 물려받았고, 난 이제 후계자가 아니야. 그 의미가 뭔지 알아?"

"……."

"내가 그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거야. 오직 나만이 사노메를 얽매이고 있는 저주의 연쇄를 풀 수 있다는 소리라는 거지."


호시는 활짝 웃었지만 하쿠는 괴로운 표정을 했다.


"그 저주는……, 괴로운 겁니다. 천 년 가까이 사노메의 종가를 수호해온 저희 시라누이 백룡들은 압니다. 그게 얼마나 잔혹한 저주인지……. 그게 역대 사노메의 대장을 자살로 이끈 원인이니까요."

"알고 있어."

"누구도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하쿠는 점점 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반대로 호시의 표정은 태평했다.

호시는 하쿠의 앞으로 걸어왔다.


"하쿠, 조금만 숙여봐."


호시의 말에 하쿠는 몸을 숙였다. 

시선의 높이가 같아지자 호시는 하쿠의 얼굴에, 볼에 자신의 두 손을 올려 감쌌다.


"하쿠는 굉장히 오래 살았으면서도 순진하다니까. 네가 아무리 괴롭다고 해도 난 멈추지 않아. 원하는 것을 이를 때까지 죽을 생각도 없고. 그러니까- 너는 절대 나를 배신해서 안 돼. 절대!"

"네!!"


자신의 어린 주인의 명령에 하쿠는 힘차게 대답했다.


"전 당신의 검이며 방패입니다. 이 길고 긴 싸움이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함께 할 겁니다. 약속합니다. 제 이름을 걸고!"


'어떤 희생을 치른다고 해도,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어떤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어도 반드시, 이 싸움을 끝낼 생각이다.'


굳게 다짐한 호시의 눈동자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1. 멋대로 남의 집에 들어가는 등 자기 집인 마냥 행동하는 요괴 총대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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