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을 나간 하쿠와 호시의 뒤를 쫓아가듯 리오와 노조미 역시 옥상을 떠났다.
교문을 나서는 두 사람의 시야에 포착된 호시와 하쿠 그리고 시호. 세 사람은 몇 마디를 나누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노조미, 지금 나랑 같은 생각 해?"
"아마도."
리오와 노조미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따라갈까."
"당연!"
리오와 노조미는 한 마음이 되어서 하쿠, 호시, 시호의 뒤를 쫓아 우키요에 역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 말소리가 들을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말, 확실해?"
시호가 먼저 말했다.
"물론. 원한다면 네가 보는 앞에서 이행하도록 할게."
"…믿을 수가 없어."
"이누가미는 죽었어. 타마즈키의 손에 말이지. 죽은 이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환생을 앞당길 수는 있지."
"환생술…. 엄마가 아빠를 만날 때 썼다고 들었어."
"응. 사람, 아니 생명체는 태어나고 죽어. 그리고 다시 태어나지. 엄마가 죽은 카게이씨를 환생시켜 아빠를 만난 것처럼, 우리 사노메 종손은 그게 가능하지."
"그 환생은 3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이뤄졌잖아.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어!"
"그건 엄마가 환생술에 조건을 걸었으니까. 사람으로 다시 환생하는 것. 그 조건만 아니면 엄마는 환생한 카게이씨를 더 일찍 만났을 거야. 난 조건을 걸지 않아. 원한다면 네가 바로 만날 수 있도록 술법을 걸게. 그치만 이누가미는 사람으로 태어나지는 않을 거야."
호시의 말에 시호는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 원하는 게 뭐야."
"타마즈키에게서 떨어져. 거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내가… 인간이라서?"
호시는 당연하다는 눈동자로 시호를 바라보았다.
호시의 시선에 시호는 발끈했다.
"거절이야!"
"…시호. 네가 아무리 신통력을 부릴 수 있어도 넌 인간이야. 요괴들과 얽히면-."
"누구는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줄 알아!!"
시호가 버럭 외쳤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호시에 대한 원망, 질투가 뒤섞여 있었다.
"왜 내가 아닌 건데! 왜 나만 달라서 교토에서 지내야 했던 건데!!"
"시호…."
"넌 몰라! 엄마와 아빠의 자식인 것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왜 나만! 버림을 받아야 하는 건데!"
"그게 무슨 소리야, 시호. 부모님은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 그들은 너를 사랑하셨는걸."
"웃긴 소리 마!"
시호가 쾅 테이블에 주먹을 내려쳤다. 주위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그들 쪽으로 잠깐 시선을 주었다.
"네가 깨어나자마자 엄만 더 이상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 그래, 그건 괜찮아. 아빠가 있었으니까. 근데 아빠가 죽기 전에 나를 어딘가로 보낸다고 했어! 내가 걸리적거렸던 거겠지! 나는!!"
"오해야, 시호."
호시는 시호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내가 태어난 게 죄야?! 그러 거냐고?!"
시호는 울음을 엉엉 터트렸다. 그녀는 주위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엉엉 울었다.
"시호, 부모님은 널 사랑하고 계셨어. 난 알아."
"…무슨 소리야? 날 놀릴 생각이니?"
"전혀 그런 생각 없어. 내 얘기를 일단 들어줘."
시호가 눈물방울이 맺힌 눈동자로 호시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얘기를 들어줘.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아."
"…좋아. 얘기해봐."
호시의 간청에 시호는 고개를 끄덕여 귀를 열었다.
"일단, 엄마는 카게이씨를 되살린 적이 없어."
"뭐?"
"물론 엄마가 카게이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심한 중상을 입은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어."
"그럼 엄마는 누굴 되살린 거야?"
"너."
"?! 나?"
"그래."
시호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넌 태어나고, 그러니까 호타루가 출산하고… 숨을 쉬지 않아 죽었다."
"하지만 난 살아 있어."
"그래. 그 자리에서 호타루가 널 되살렸으니까. 하지만 그 힘의 반동으로 호타루는 3년간 잠들어버렸어."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어…."
"물론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나기뿐이다."
하쿠가 말했다.
"되살아난 넌 약했다. 요괴소굴에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지. 그래서 호타루는 널 교토에 있는 하나미치에게 보낸 거다."
"그리고 아빠 역시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해. 넌 기억이 안 나서 모르겠지만, 요괴의 독에 당해 사경을 헤맨 적이 있어. 그래서 아빠는 네가 안전한 곳에 있어주길 원했던 거지."
"그런 건, 억측이잖아?!"
"네가 신통력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엄마의 구슬이 너에게 있어서 그래. 사경을 헤맬 때 그 구슬로 널 구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몸 속에 있어. 독에 사경을 헤맬 때 엄마가 너에게 넘겨주는 것을 내가 직접 봤어."
시호의 녹안이 흔들거렸다.
"나, 나는…."
"넌 사랑받고 있었어, 충분히. 가족이란 게 그런 거잖아. 멀리 있어도 마음은 이어져 있는 거잖아. 나는 네가 위험한 곳에 있어서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시호가 다시 눈물을 흘리자, 호시는 그녀의 옆으로 가 앉아,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
그때 눈동자에 들어온 존재들이 있었다.
"지금 아가씨랑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설마, 착각이겠지!"
리오와 노조미는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며 속삭였다.
"불안한데 그만 나갈까요?"
"그럴까."
"들켰어."
하쿠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위에서 들려왔다.
"하, 하, 하쿠!"
"당장 꺼져!"
하쿠가 말했다.
리오와 노조미가 카페를 나가는 것을 보면서 호시는 시호의 눈물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자, 뚝 해야지."
"흐윽-"
"울지 마. 이제라도 오해를 풀면 된 거잖아."
"이거라도 마시고 진정해라."
하쿠는 음료수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고, 마워. 코하쿠."
시호는 훌쩍거렸다.
"그렇게 부르지 마라."
"왜. 네 이름은 코하쿠잖아."
"하쿠라고 불려지는 게 익숙해졌다."
하쿠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누라구미에 익숙해진 거네."
"불쾌하게도 말이죠."
그가 눈쌀을 찌푸렸다.
시호가 음료수를 마시고 진정을 되찾자 호시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시호는 언제부터 시코쿠 요괴들과 어울린 거야?"
"고교 입학 후… 이누가미 앞에 타마즈키가 나타났어."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줄래?"
시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이누가미는 학교에서 왕따였어. 그치만 그의 단짝인 나는 평범한 생활이 가능했지."
"그거 이상하네."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알게 된 거야. 타마즈키가 전부 주도한 거라고. 학교 내부에서 타마즈키는 군림하는 왕이었어. 인간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타마즈키는 때로는 무력으로 짓눌러 학생들을 지배했어. 학생회장에 머리도 좋고 그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누가미를 때리도록 시킨 거야. 가능한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려던 이누가미의 힘을 알아채고 그것을 끌어내도록 타마즈키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희생물로 삼았어."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잠재 된 마도를 깨우기 위해 타마즈키는 이누가미를 묶어놓고 때렸어. 그의 추종자들은 이누가미를 짓밟았지. 그리고 강한 증오심으로 이누가미는 요괴로써 자신의 힘을 발휘했어. 타마즈키를 제외한 인간들은 이누가미 손에 죽은 거야.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정체를 숨길 수 있는 엄청난 너구리야. 내가 사노메의 핏줄을 잇고 있다는 것을 타마즈키가 알았기 때문에 그는 내가 이누가미와 함께 있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지…. 그런데… 이누가미가 불쌍하게……."
시호가 울먹였다.
"엄청 소중한 친구였는데……."
"변해도 너무 변했어."
타마즈키의 변화가 쉽사리 받아들이지가 않았다.
"시호, 혹시 타마즈키가 지니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무슨 소리야."
"힘의 증폭시키는 아이템? 그런 것이 있나해서 말이야. 분명히 타마즈키가 이곳을 공격한 자신감의 근원이 있을 거야. 그게 뭔지 모르는 거야?"
"음…. 그리고 보니 타마즈키가 어떤 칼을 가지고 있단 소리가 있어. 그게 엄청 좋은 거래!"
"그거다!"
"칼?"
"응. 시코쿠에 전해 내려오는 보물이래. 아니 신보라고 했던가."
시코쿠에 전해 내려온 보물? 신보?
"그런 것이 있었던가."
"자세한 것은 몰라. 하지만 엄청 소중히 여기고 있어."
한 번 봐야겠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하쿠, 시코쿠의 증원부대가 언제 올 것 같아?"
"호시님."
"조사해줄래? 직접 보러 가야겠어."
호시의 말에 "위험해(요)!"라고 두 사람은 외쳤다.
그 후, 호시는 시호를 데리고 누라구미 본가의 저택 앞에 섰다.
"시호?"
시호는 누라구미 저택으로 들어가는 것을 엄청 꺼려했다.
"내가… 들어가도 될까?"
"그치만 갈 곳이 없다면서."
"그래도…."
"당장 시코쿠에 내려갈 거면 안 들어와도 돼."
"그건…."
시호는 사태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했기에 지금 당장 시코쿠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책임은 내가 질게. 들어가자."
호시는 시호의 손을 잡고 대문을 넘어섰다.
"아가씨!"
"다녀왔어. 리쿠오는?"
"간부 회의를 하고 계십니다만……."
"뒤에 있는 분은……?"
"리쿠오에게 먼저 사정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 말하고 싶어. 하쿠, 시호를 내 방으로 데리고 가줄래?"
"네."
하쿠와 시호가 방으로 데리고 가자 총대장 대리의 허락을 받기 위해 리쿠오를 만나러 갔다.
"리쿠오, 안에 있어? 잠시 할 말이 있는… 아니, 부탁이 있어."
"들어와."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 중이라고 해서 나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문을 열었다.
"회의 중 아니었어?"
"끝났어. 무슨 일이야? 호시가 나에게 부탁이라니, 드문 일이잖아."
"며칠만 내 여동생을 누라구미 본가에서 지내게 해도 될까?"
"여동생이라면…."
"시호. 하나미치 시호, 내 여동생 말이야. 그녀는 시코쿠 팔십팔귀야행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 해. 단지 이누가미가 소꿉친구라서 함께 있었던 것 같아. 부탁할게."
리쿠오는 잠깐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알겠어."
"고마워, 리쿠오!'
호시는 얼굴을 활짝 펴고 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복도를 달려갔다.
복도 앞에서 시호의 앞에 선 하쿠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쿠는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보라색 눈을 가진 여성(미인), 란구이가 하쿠의 앞에 서 있었고, 그의 눈총을 받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란구이 녀석이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해서 경고 좀 했습니다."
"이상한 짓?"
"맛있는 냄새가 나서 무심코……. 인육을 끊었어도 사노메의 맛있는 냄새는 참을 수가 없어서."
"란구이!"
시호는 "인육?!"이라며 란구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란구이는 조로구모1니까."
"안주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타난 장신의 남성.
선홍색 브릿지의 백발을 지닌 남성은 붉은 후드를 쓰고 있었다.
"누구?"
"오랜만입니다, 쇼에이입니다."
"뭐?"
소년 티가 남아 있는 청년을 올려다 보았다.
"우와, 멋있어졌구나. 그런데 모습이 이랬었나?"
"있는 그대로면 너무 커서요."
"지금도 충분히 크긴 하지만……. 쇼에이는 대요괴 히히의 아들이니까. 무슨 일이야?"
"쇼에이가 오오자루회 2대 회장이 되었거든요."
"리쿠오님의 부름을 받았어요."
란구이의 말에 이어서 쇼에이가 말했다.
"지금까지 이제 본가에 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죠. 요괴세계에서 해나갈 일도….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자 제 피가 끓는게 느껴지더군요."
쇼에이가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땅에 왔어요.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놈들을, 똑같이 만들지 않으면 피가 진정되지 않을 테니까요!"
시호는 쇼에이의 기백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 그럼 또 보자, 쇼에이."
"네, 안주인."
"그런 호칭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 약혼만 했을 뿐 결혼을 한 것은 아니니까."
쇼에이와 란구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들어갔다. 하쿠는 소룡들에게 연락이 왔는지 살피러 나갔고, 시호에게 내 옷을 빌려주었다.
"옷이 크지는 않지?"
"응."
시호가 옷을 다 갈아입었을 때 하쿠는 돌아왔다.
"증원부대가 오늘 모입니다."
"어디서?"
"진짜 갈 생각이야? 위험해."
"그래도 보고 싶어."
"저도 함께!"
"하쿠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 하쿠의 요기는 이질적이니까 시코쿠 요괴들이 금방 알아차릴 거야."
"위험하다니까!"
"쉿. 괜찮아. 잠시 자고 있으면 될 테니까."
"호, 시…!"
시호를 잠재웠다.
그 후 호시는 머리카락을 검게 변하게 했고, 양귀비의 붉은 꽃을 머리에 단 것으로 환각술을 펼쳤다. 자신의 모습을 시호처럼 보이게 했다.
"말려도 가실 거죠?"
"당연한 소릴 하네. 타마즈키가 지니고 있는 신보를 보고 싶어."
시코쿠 요괴 증원 부대에 섞여 거대한 빌딩으로 들어갔다.
"제군들! 여기까지 잘 와주었다!"
냉혹한 눈을 한 타마즈키가 위에서 외쳤다. 그의 뒤쪽에는 시코쿠 팔십팔귀야행 간부들이 서 있었다.
"멀리 시코쿠에서, 혹은 각지에서 활약하고 잇는 시코쿠 출신의 요괴들이여! 드디어 우리가 주인의 자리를 빼앗을 때가 온 것이다!"
"타마즈키! 우리가 진출할 때가 온 거야1"
"그래! 마침내 우리가 빛을 볼 기회다! 그러나 우리 시코쿠 동지 중에는 이미 세상을 등진 자도 있다. 무치는 바람이 되었고 소데모기는 재가 되었다."
"뭐?"
"마, 말도 안 돼!"
"그리고 이누가미는, 맹우 이누가미는 저주스러운 적장에게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말도 안 돼! 그들은 시코쿠를 대표하는 요괴!"
"우리, 이길 수 있는 거야?! 승산은 있는 건가, 타마즈키?!"
"당황하지 마라!"
역시 너구리 요괴…. 사람이든 요괴든 현혹하는 것을 매우 잘한다.
"우리에게 이 '패자의 증표'가 있다!"
"오오!"
타마즈키의 손에 들린 칼을 보자 요괴들이 환호한다.
"제군들! 우리는 떠나간 그들의 의지를 이어받아야 한다! 시코쿠의 요괴들은 몇 백 년 동안 멸시받고 억눌러 왔다! 허나 이제 참을 필요 없다! 우리는 힘을 얻었다!"
"오오오! 옳소!"
"타마즈키가 정말로 갖고 있었구나! 그 신보를!"
"역시 타마즈키가 주인이야!"
"이 패자의 증표가 놈들에게 피의 사죄를! 우리에게는 영광을 안겨줄 것이다!"
설마 저건…!! 아니…… 아직 확정해서는 안 된다.
칼을 자세히 보기 위해 요괴들의 시선을 피해 위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 검은 타마즈키의 방에 있겠지.
"어이 거기! 어디 가냐!?"
목소리가 들려오자 벽에 몸을 찰싹 붙었다. 그리고 고개만 살짝 내밀어 살펴보았다.
"이곳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간기코조2가 누군가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너구리 요괴인가.
그때 너구리 가죽이 떨어지고 말머리 뼈가 나타났다.
'고즈마루? 메즈마루?!'
들켰다!!
"네놈들 정체가 뭐냐."
"그만둬, 간기코조. 그 녀석들은 내가 아는 요괴들이야."
"시호."
모퉁이에서 나와 말했다. 간기코조는 둘에게 달려는 것을 멈추고 뒤돌아 보았다.
"안 보인던데. 돌아와 있었군."
"그래. 호시를 만나러 갔거든."
겉으로는 태연스럽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간기코조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무심한 눈빛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런가. 시호의 지인이라면……."
간기코조가 안도하는 순간, 그를 공격했다.
"무슨?!"
"얌전히 자고 있어!"
간기코조가 기절하자 고즈마루와 메즈마루를 바라보았다. 양귀비 꽃을 머리에서 떼어내자 둘은 내가 누군지 눈치챘다.
"왜 너희가 여기 있어?!"
"호시?!"
"약혼녀야말로 뭐 하는 거야."
"그런 사정이 있어. 너희는?"
"그 칼에 조사하려고."
고즈마루의 말에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런가. 너희도 그 칼에 호기심을 가진 거로구나."
"너희도? 너도 그 칼을 보러 가는 건가."
"응. 어쨌든 도와주는 건 이번 한 번 뿐이야. 방해하지 마!"
"그건 이쪽이 할 말이다, 약혼녀!"
"보기만 한다고 했잖아!"
"바보야! 규키님이 기대한다고 하셨잖아! 보여주겠어! 본가의 허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규키님은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란 말이야! 안 돼! 돌아가자!"
"그냥 돌아가지 그래?"
"시끄러!"
우리는 옥신각신하며 타마즈키의 방으로 올라갔다.
"이 방인가?"
고즈마루는 문을 벌컥 열었다.
"고즈마루, 조금 정도는 긴장하지 그래? 여긴 적진이라고."
"맞아. 규키님께 야단맞을 거라구!"
"흥! 이대로 전멸시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칼이다."
"7대 3가르마는…… 없나."
조용한 내부로 들어선 우리들은 그 칼을 향해 다가갔다.
"이게 대체 뭘까?"
"뭐라고 적혀 있어. 마왕…… 소환?"
"!!! 왜 이 칼이?!"
칼을 살핀 호시는 깜짝 놀랐다.
"으악!"
"꺅!"
머리를 짓누르는 힘에 고즈마루, 메즈마루와 함께 바닥에 짓눌려졌다. 위쪽을 올려다보자 테아라니오니3가 있었다. 그리고 작은 요괴들이 우루루 몰려 우리를 구속한다.
작은 요괴들이 우리를 누르고 있자 테아라니오니는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제길, 우글우글 기어나와서는!"
"알고 있었지. 슬슬 그쪽에서 움직일 거라는 걸."
"왜 네가 저 칼을 갖고 있는 거야!"
저 칼은 이누가미교부 다누키를 몰락시킨 그 칼이잖아!
"아… 이거? 그렇게 이 칼이 궁금했나? 좋아. 마침 잘됐으니 보여주지."
타마즈키는 칼을 들어서 섬뜩하게 웃었다.
"!!!"
그는 망설이지 않고 침입자들을 누르고 있던 아군까지 베어버렸다.
"어째서… 타마즈키님…."
"우리는… 동지가… 아니었나요…. 어째서… 우리까지… 함께, 베는 겁니까…."
"대신할 자는 얼마든지 있다. 강한 녀석 외에는 필요없어. 너희는 말에 불과하니까."
"미친…, 놈."
"이런, 아직 살아 있군. 그렇게나 궁금한가? 말해두는데 난 남을 아프게 하는 걸 좋아해. 한 방에 죽는다면 0.9의 힘으로 친다. 그 다음은 0.09의 힘으로, 다시 0.009의 힘으로…. 몇 번이라도 이 칼을 맛보게 해주지. 마지막 일격은 가하지 않아. 아주 약간의 목숨만, 마음이 꺾이면 사라질 만큼의 목숨만 남겨 갖고 놀아주마."
이렇게까지 변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코타로가 죽을 때, 그건 네 짓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너는 단지 야토리에게 씌인 것 뿐이라고….
-전 마음을, 욕망을 조금 더 밖으로 이끌 뿐이에요. 그러니까 저에게 씌인 상태로 한 악행은 모두 숙주가 하고 싶었던 행위라는 거죠.
지금의 모습을 보면… 이것이 너의 본성이라고 믿게 되버린다. 내가 알던 타마즈키는 없는 사람이었던가. 나의 소꿉친구는…….
"시, 러…."
칼이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싫어."
눈앞에서 누군가가 다치는 모습은, 이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무슨?!"
황금 나비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나타났다.
"누라 리쿠오를 위해 움직인 건가."
"그것을, 너에게 말할 이유는 없어. ……하쿠!!"
호시의 부름에 흰 용이 창문을 깨트리며 내부로 들어왔다.
흰 용과 함께 깨진 창문으로 들어온 카라스 삼남매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즈마루와 메즈마루를 챙겼다.
"가자!"
쿠로우마루가 외쳤고 우린 빌딩을 떠났다.
"어처구니 없는 녀석이군. 야! 정신차려, 고즈마루!"
토사카마루가 말했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아군까지 개의치 않고 베어버리다니!"
사사미의 경악한 느낌이 그녀의 목소리에 잘 담겨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카나메가 말했다. 있었던 건가?
"호시님!"
하쿠가 날 애타게 불렀다.
"호시님! 정신 놓으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다쳐 본 게 얼마만일까. 누라구미에서 지낸 후로는 다친 적이 거의 없으니까……. 패했다. 패배했다. 이런 지독한 것을, 또 겪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