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에와 시에미는 카린들과 합류했다. 카린들은 닌자로 추정되는 남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모두 무사해?"

"타에!"

"히나타는?"


카린이 한쪽을 가리키자 보호 결계 속 쓰러져 있는 히나타가 보였다.


"히나타를 살펴보고 싶은데 주위가…."

"응. 일단 정리해야겠지." 

"…멍청한 아가씨들이군."


한 남자가 말했다.


"친구나 동료 따위를 버리고 먼저 도망갔다면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멍청하군."

"뭐?"

"돈도 안 되는 친구 놀음 따위나 하고 있을 정도로 인생은 만만찮은 게 아니라고 아가씨."

"곱게 자란 철부지 공주님들은 알 수 없겠지만 말이지."

"그렇다해서 돈과 밥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돼지 새끼에게 인생을 배울 입장은 아닌데."


타에가 날카롭게 말했다.


"하? 정신 차려 아가씨. 여기까지 잡혀 오고서도 꿈속에 사는 건가?"

"배부른 소리가 아니야. 우린 최소한 근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잊지 않는다고."

"동료는 걸림돌이 아니고 친구 놀음도 아니야."


사치코와 텐텐이 타에의 말에 덧붙였다.


"크하하! 나뭇잎 닌자들이 무르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크크, 그렇게 허술하니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도 모르고 이렇게 잡혀오기나 하는 거겠지. 한심한 녀석들."

"멍청하기 짝이 없어."


남자들은 보란듯이 그녀들을 비웃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여기서 팔려나간 닌자들 중 나뭇잎이 제일 많은 거다!"


기세등등 내뱉어진 말은 시에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 거짓없는 말에 시에미의 눈이 홱 돌아갔다. 잠시 후 복도는 피를 내뿜으며 쓰러진 남자들의 주검만 있었다.


"카린, 결계를 풀어."

"아… 응. 근데 네가 왜 여기 있어?"

"전에 그녀에게서 부적을 받았는데, 그걸 찢었더니 소환술로 나타난 거야."


타에가 거짓말을 했지만, 그걸 거짓말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에미의 거의 미래를 예견하는 직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걸 동기들이라면 알고 있었다.


"이런 걸 본 거야?"

"아니. 단지 위험에 처한 감각이 들었을 뿐이야. 예방차원으로 준 거지."


시에미는 타에의 거짓말에 타올라서는 히나타를 살폈다.


"히나타는 우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의식이 없었어. 근데…,"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눈을 뽑네 어쩌네 하면서 히나타에게 이상한 약을 잔뜩 놓으려고 했잖아. 최대한 방해한다고 했는데…."

"아마 한두 개는 들어갔을 거야."

"약인가…."


여러가지 조합된 거라면 채혈해서 진단표를 뽑아, 정확한 진찰을 해야하는데. 히나타는 숨소리는 일정하고 심박수도 문제없어서 잠시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뭔가 잘못된 거야?"

"의식이 안 돌아오는 약인가보네."

"치료 가능해?"

"원인이 뭔지 정확히 모르니까, 여기서는 무리야. 어서 탈출하고 나뭇잎 마을로 돌아가야 해."


텐텐이 고개를 툭 떨구었다.


"전부 다 내 탓이야."

"텐텐? 아니야!"


사치코가 빠르게 부정했다.


"애초에 내가 여기에 놀러 오자고 하지 않았다면…."


시에미는 자기혐오에 빠지려는 텐텐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시에미?"

"히나타는 잘못되지 않아, 절대로. 나뭇잎 마을로 돌아가면 5대째가 있어. 지금은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돌아갈 생각만 해. 돌아갈 수 있어, 우리는. 가족의 품으로 갈 수 있어."

"응!"


텐텐이 히나타를 짐짝처럼 한쪽 어깨에 짊어지자 그녀들은 움직였다. 

발소리를 죽이며 달려가는 도중에 시에미가 그녀들을 불렀다.


"근데 너희 사람은 죽일 수 있어?"

"그야, 닌자니까."

"살인을 한 적은 있고?"

"…."


침묵은 아니라는 소리겠지.


"살인이라는 죄는 엄청 무거워. 그러니까 내가 할게."

"시에미, 네가 그랬지?"


카린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열었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으면 비참해진다고. 싸우지 않아서 소용돌이 마을이 사라졌어. 고향을 잃어버린 닌자는 다른 곳에 숨어봤자 천대받고 특이체질이라며 평생 목숨이 노려져. 우리 엄마는 그 특이체질 때문에 평생을 타인에게 이용당하고 죽었어. 나 역시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을 때 네가 구해줬지. 그때 넌 이렇게 말했어. 설사 타인을 짓밟고 죽여 손에 피를 묻히게 된다해도 우선 순위를 착각하지 말라고."


카린의 말이 끝나자 무거운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안 돼. 살인은 최후의 최후의 방법이야."

"지금 우선 순위는 살아남는 거야. 시에미."

"그래도 허용할 수 없어."

"어째서!"

"그럼, 내가 할게."

"우리는 안 되고 넌 되는 건데!!"

"난 이미 4살 때 손에 피를 묻혔으니까."

"!"

"인체실험하던 녀석들을 죽이고 연구소를 파괴하고, 유곽거리, 지하 격투장, 지하 옥션이 있는 뒷골목 시궁창을 진창 굴렀어. 그러니 난 괜찮아."

"""그게 어딜 봐서 괜찮은 건데!!!"""

"그렇게 소리지르면…."


타에, 사치코, 텐텐이 동시에 외쳤다.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켜버렸잖아."


곧 이쪽으로 우루루 달려오는 발소리와 기척에 시에미는 엄지를 송곳니로 물어 피를 내고 소환수를 불러냈다.


"모치즈키."


모치즈키가 인간 형태인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타에는 그녀를 보자마자 '아!' 작게 비명을 질렀다.


"또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 같군."


나오자마자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말에 시에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명령했다.


"이 녀석들을 나뭇잎으로 데려가."

"너는?"

"청소하고 돌아갈게. 여긴 내가 싫어하는 인간쓰레기가 있는 곳이거든."

"시에미!!!"


청소할 필요가 있어. 모치즈키는 시에미의 말에 장소를 금방 파악하고 차크라 사슬로 다섯 명을 각각 구속하고 끌고 달려갔다. 환자들인데…. 뭐 모치즈키는 의료술을 할 수 있으니까 괜찮겠지.


"자, 청소의 시간이다."


**

새벽이 밝아오는 시각, 마을 입구를 지키던 이즈모와 코테츠는 강한 땅울림에 졸음을 떨쳐내고 콰앙 소리가 들린 대문으로 나왔다. 


"거대 토끼?!"

"엄청 크네!!"


모치즈키는 모여든 닌자들을 보고 입안에 있던 무언가를 퉤 뱉었다.


"뱉었어?!"

"타에양!!"


하야테가 모치즈키가 뱉은 여성들 중 익숙한 존재를 알아보고 달려갔다.


"텐텐!"

"사치코!"

"휴우가 히나타!"

"우즈마키 카린!"


쓰러진 다섯 여성들에게 닌자들이 몰려들자 모치즈키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취했다. 인간과 다르게 머리 위로 솟아나있는 토끼 귀를 지닌 백발의 여자아이를 하야테는 금방 알아봤다.


"당신은 그때!"

"모치즈키!"


이타쿠가 모습을 드러냈다. 핏줄이 선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 갑자기 소환되어 사라진 시에미를 밤새 찾아다녔다는 걸 알게 해준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들, 지하 경매장에 납치된 것 같더군. 그걸 소환되어 시에미가 구출한 거지."

"무사한 겁니까?"

"일단 대충 치료하긴 했지만. 병원으로 데려가도록 해."

"그래서 그녀는!"

"청소를 하겠다고 남았다."

"장소는?"


이타쿠는 모치즈키에게 장소를 듣자마자 등 뒤로 새까만 날개를 펼쳤다. 


"여전히 아름다운 날개로군."


저 한 점의 더러움을 허용하지 않는 새까만 날개에 츠키카게가 반했지. 모치즈키가 중얼거렸다.


"…어딜 가려고, 이타쿠?"

"!!"


시공간 인술로 나타난 시에미는 보는 사람이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타인의 피를 잔뜩 묻힌 채 나타났다. 기절한 장정의 남자 둘을 데려온 시에미에 날아오르려던 이타쿠가 멈칫했다. 


"괜찮아?! 몸은 무사한 거야?"


이타쿠는 시에미의 옷에 묻은 피는 보이지 않는지 그녀를 걱정했다. 


"돌아왔어."

"아니, 그건 보면 아…!"


이중적 의미를 알아낸 이타쿠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과거의 소녀가 아니라 현재의 존재가 돌아온 거다. 


"쉿."


이타쿠 귓가에 속삭인 시에미는 그 말을 남기고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닌자들은 소녀들을 병원으로 데려가고 모치즈키가 말한 장소로 추적반이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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