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는데,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이런 적은 또 처음이네.
"....."
침대 위에서 멍하니 있을 때, 밖에서 헤르미온느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나중에 생각이 나겠지,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마법의 수업 시간 때,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어젯밤에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말해 주었다(덕분에 가까이에 있는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머플리아토 주문을 사용한 해리). 두 사람 모두 해리가 얼마나 교묘한 방법으로 슬러그혼으로부터 기억을 빼냈는지를 듣고 크게 감탄했다. 그리고 볼드모트의 호크룩스에 대한 이야기와, 덤블도어가 또 다른 호크룩스를 발견하면 해리와 자신을 함께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탄해 마지 않았다.
"우와!"
마침내 해리가 모든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론이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심코 지팡이를 들어 천장을 향해 휘둘렀다.
"우와! 너흰 정말로 덤블도어 교수님과 함께 가겠구나. 그걸 파괴하려고... 우와!"
"론, 네가 눈을 내리게 하고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참을성 있게 한마디 던지고는 그의 손목을 탁 잡고 천장 쪽을 향하고 있는 그의 지팡이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과연 하얗고 커다란 눈송이가 막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책상에 있는 책상에서 라벤더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헤르미온느를 험악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얼른 론의 팔을 놓아 버렸다.
"어, 그랬구나."
론은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자기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 우리 넷 다 끔찍하게 비듬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는걸."
론이 헤르미온느의 어깨에서 눈을 털어 주자, 라벤더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론은 죄책감으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얼른 라벤더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녀와 헤어졌어."
론은 옆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슬쩍 상황을 설명했다.
"어젯밤에 말이야. 헤르미온느와 내가 침실에서 나오는 걸 라벤더가 보았잖아. 당연히 네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라벤더는 우리 두 사람만 거기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아, 그렇구나."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끝났으니 너한테 잘된 거잖아, 안 그래?"
"그건 그래."
론이 솔직하게 인정했다.
"라벤더가 마구 소리를 질러 댈 때엔 정말 끔찍했지만, 적어도 내가 먼저 끝내야만 할 필요는 없게 되었으니까."
"겁쟁이."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헤르미온느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한 마디로 어젯밤은 연인들에게 아주 불운한 밤이었어. 지니와 딘도 헤어졌대."
"어쩌다가?"
내가 질문을 던졌다.
"오, 정말 말도 안 되는 한심한 일로 갈라섰어.... 지니가 말하길, 딘이 지니가 초상화 구멍을 지나갈 때마다 마치 혼자서는 도저히 기어 오르지 못하는 사람 취급 하면서 도와주려고 했다는데... 그게 기분 나빴나 봐. 사실 두 사람 관계도 오래전부터 위태위태했어."
교실 저편에 앉아 있는 딘은 굉장히 우울해 보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일로 인해 해리, 네가 조금 난처해지겠구나,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해리가 재빨리 물었다.
"퀴디치 팀 말이야. 지니와 딘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내게 되면..."
헤르미온느가 설명했다.
"아, 그거.... 그렇지."
해리가 우물거렸다.
"플리트윅 교수님이다."
론이 재빨리 경고를 했다. 플리트윅 교수가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식초를 포도주로 바꾸는 마법 수업 시간이라서 재빨리 지팡이를 흔들어서 포도주로 바꾸자, 플라스크에 담긴 갈색 빛의 액체가 짙은 붉은색 액체로 변했다. 헤르미온느는 진작에 성공했다.
"이봐, 이봐, 거기 남학생들!"
플리트윅 교수가 나무라듯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은 그만 하고 행동으로 좀 보여 주도록... 어디 자네들이 어떻게 하는지 좀 볼까..."
론과 해리는 동시에 지팡이를 들고 플라스크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순간 해리의 식초는 얼음으로 변하고 론의 플라스크는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좋아... 숙제로... 연습해 와요."
책상 밑으로 숨었다가 다시 기어 나온 플리트윅 교수가 모자 위에서 유리 파편을 털어 내면서 말했다.
마법 수업이 끝난 후, 오래간만에 다 함께 수업이 없는 자유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는 휴게실로 향했다. 론은 라벤더와 관계를 끝내서 무척이나 홀가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헤르미온느도 꽤 즐거워보였다. 도대체 뭐가 좋아서 싱글벙글하냐고 묻는 말에 그저 "날씨가 좋잖아" 하고 간단하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해리는 지니와 딘이 헤어졌다는 소리에 이상하게 들떠보인다 말이지....'
햇살이 비치는 휴게실로 들어가자 7학년 학생들이 한곳에 우르르 몰려 있었다. 그 중심에는...
"케이티!"
내가 외쳤다.
"케이티! 너 돌아왔구나! 괜찮니?"
케이티 벨이 환호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제 멀쩡해!"
케이티가 유쾌하게 대답했다.
"월요일에 성 뭉고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엄마 아빠랑 집에서 이틀 동안 지내다가 오늘 아침 학교로 돌아온 거야. 린느가 지금 맥클라건과 지난번 시합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는 중이었어, 해리...."
"그래."
해리가 말했다.
"이제 네가 돌아왔고 론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니까, 우린 반드시 래번클로를 격파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도 계속해서 우승컵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는 뜻이지. 그런데 케이티...."
케이티의 친구들이 각자 자기 짐을 챙기고 있자, 해리가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 목걸이 말인데... 누가 너에게 그걸 주었는지 이젠 기억 할 수 있겠니?"
"아니."
케이티가 유감스러운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들 나에게 그걸 물어보는데, 난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어.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내가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는 것뿐이야."
"그럼 분명히 화장실로 들어간 거지?"
헤르미온느가 확인했다.
"글쎄... 문을 열고 들어간 것까지는 알겠어."
케이티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건 사람은 바로 문 뒤에 서 있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성 뭉고 병원에서 퇴원하기 2주일 전까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 이봐, 난 그만 가 봐야겠다. 맥고나걸 교수님은 내가 학교에 돌아온 첫날이라고 해도 능히 벌을 주실 분이거든..."
케이티는 가방과 책을 집어 들더니 서둘러 친구들 뒤를 따라갔다. 뒤에 남은 우리는 창가에 있는 탁자에 둘러앉아서 케이티가 한 말을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떤 여학생이나 여인이 케이티에게 그 목걸이를 준 게 틀림없어. 여자 화장실 안에 들어온 걸 보면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아니면 여학생이나 여인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지."
해리가 반박했다.
"잊지 마. 호그와트에는 폴리주스 마법약이 한 통 가득 들어있다는 걸 말이야. 그 일부가 도난당하기까지 했고... 아무래도 펠릭스 펠리시스를 한 모금 더 마셔야 할 것 같아."
해리가 제안했다.
"그리고는 필요의 방을 다시 찾아보는 거야."
"미쳤어? 그런 중요한 약을 낭비하지 마."
내가 기겁하면서 외쳤다.
"행운은 거기까지야, 해리."
헤르미온느가 가방에서 방금 꺼낸《주술사의 문자표》책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딱 잘라 말했다.
"슬러그혼 교수님과의 상황은 이거랑 달랐어. 넌 항상 교수님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다만 환경이 약간 변화만 주면 되는 거였어. 하지만 행운만 가지고 강력한 마법을 뚫고 들어갈 수 없어. 괜히 남은 약을 낭비하지 마! 만약 덤블도어 교수님이 데리고 가신다면, 네게 있는 행운을 다 동원해도 부족할 판이라고..."
헤르미온느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속삭였다.
"우리가 더 만들 수는 없을까?"
론이 헤르미온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물었다.
"행운의 약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굉장히 좋을 거야... 책을 한번 뒤져봐."
"소용없어."
해리가 가방에서 그의 마법약 책을 꺼내 들자 내가 말했다.
"펠릭스 펠리시스를 만드는 방법은 까다롭고 오래 걸려. 여섯 달이나 걸리다고. 소용 없어."
"....그럴 줄 알았어."
론이 말했다.
케이티 벨이 돌아오자 딘 토마스는 더 이상 그녀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추격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해리는 퀴디치를 할 때마다 펄펄 날아다녔다.... 가끔 지니를 멍하니 바라보고, 지니에게 자꾸만 말을 걸고, 함께 웃으며 연습이 끝난 다음에 그녀와 나란히 휴게실로 들어오는 해리의 모습에 나랑 헤르미온느는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 사랑인가?"
천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하늘의 별을 보기보다는 해리의 행동을 유심히 생각했다.
"뭐가?"
로우가 질문을 던졌다.
"해리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 같아서."
"흐응... 포터에게?"
"응."
"나는 긴 짝사랑을 끝내려고 하거든."
로우의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는데, 더 욕심을 부르기 전에 그만 두려고. 나는 이 관계가 무너지니는 것이 싫기도 하고... 내가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은 내가 잘 알거든."
덤블도어는 사랑이 가장 큰 무기라고 말을 했지만... 사랑만큼 사람을 절망에 빠트리고 아프게 하는 것이 없다. 사랑은 양면성이다. 무슨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늘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5월의 화창한 날들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
호그와트는 그리핀도르 대 래번클로의 시합으로 지대한 관심을 쏟아붓고 있었다.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우승의 향방이 이번 경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핀도르가 300점 차이로 래번클로를 이긴다면, 그때는 그리핀도르가 우승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만약 300점보다 적은 차로 이긴다면, 래번클로 다음으로 준우승을 하게 된다. 하지만 100점 차이 내로 지게 되면 후플푸프에 이어서 3위를 하게 되는 것이고, 1000점 이상의 점수를 내주고 진다면 꼴찌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200년 만에 처음으로 그맆니도르 팀이 골찌 자리를 차지했을 때 그 팀을 이끈 주장이 바로 해리였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될 정도로 모두들 난리를 피울 거라고 예상된다.
이 결정적인 시합의 날이 다가옴에 따라 으레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이 벌어졌다. 경쟁 기숙사의 학생들은 복도에서 상대편 팀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고, 선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들 개개인에 대해서 기분 나쁜 말들을 공공연히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선수들 또한 거들먹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거나, 아니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수업 시간 사이사이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하기 일쑤였다. 론은 후자에 속해있었다.
래번클로와의 시합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휴게실로 나와 해리와 함께 식사를 하러 내려가고 있었다. 론은 또다시 토하러 가까이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고, 헤르미온느는 지난번 산술점 작문에서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면서 벡터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허둥지둥 달려가 버렸다. 해리는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살펴보았다. 그는 아직도 말포이에 대해서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해리?"
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자, 해리를 바라보았다.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열심히 보고 있던 해리가 갑옷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그는 대리석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갔다.
"해리!!"
필치가 달려올 것을 걱정하면서 그 자리를 도망쳐서 해리의 뒤를 쫓았다.
남자 화장실로 조용히 들어가는 해리의 모습에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들어간 것은 알고 있지만, 내가 들어가기에는 뭐가 음....
"안 돼! 그만!!"
머우닝 머틀의 비명 소리가 화장실 안에서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벽에 달린 등잔은 산산조각이 나고, 쓰레기 통은 폭발한 상태였고, 물탱크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크루시...."
"섹튬셈프라!"
해리는 바닥에 쓰러진 채, 미친 듯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말포이의 가슴과 얼굴에서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이 단번에 그를 베어 버린 것 같았다. 말포이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더니 물이 흥건하게 고인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힘없이 축 늘어선 그의 오른손에서 지팡이가 데구루루 굴러 덜어졌다.
"말포이!!! 미쳤구나, 해리!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다니!!!"
나는 말포이에게 달려가고는 해리에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에서 나오는 피를 손으로 누르면서 지혈했다.
"아니... 나는... 이럴 생각이...."
해리는 자기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도 모른 채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말포이는 자신의 하얀 손으로 피가 쏟아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고, 덜덜 떨고 있었다.
"살인이야! 화장실에서 살인이 일어났어! 살인이야!!"
머우닝 머틀은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큰 소리로 악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세베루스가 사색이 된 얼굴로 황급히 뛰어들어와 해리를 옆으로 거칠게 밀쳤다.
"세, 세베루스...."
"진정하거라, 로라. 주문을 같이 외우면 된다."
내가 덜덜 떨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세베루스는 나를 안심시키듯이 말하고는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의 모습에 피가 잔뜩 묻은 손으로 지팡이를 꺼내고는 그와 함께 노랫가락 같은 주문을 흥얼거리며 섹튬셈프라의 저주 때문에 생긴 깊은 상처 위로 훑어갔다. 정신없이 솟구치던 피가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손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한 번 닦은 다음, 상처가 저절로 꿰매지는 주문을 외웠다. 모우닝 머틀은 머리 위에서 계속 흐느끼며 울부짖고 있었다.
세베루스는 세 번째로 저주 풀기 의식을 행하고는 말포이를 반쯤 일으켜 세웠다.
"병동으로 가야겠다. 흉터가 많이 남을 것 같긴 하지만, 빨리 디터니를 먹으면 그것도 피할 수 있을 게다... 어서..."
나는 말포이를 부축해서 화장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너, 포터... 넌 여기서 꼼짝 말고 날 기다려라."
세베루스는 해리에게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고 말포이와 나와 함께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에서 피투성이의 말포이를 보자마자 폼프리 부인은 놀라면서 뭐라고 했지만 세베루스가 폼프리 부인에게 냉정하게 말하자 그녀는 말포이에게 디터니를 주면서 간호했다.
"왜 그 책을 처분하지 않았던 거야?"
"설마 그 책이 포터의 손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으득."
병동 밖으로 나오자 나는 세베루스를 보지 않는 채 말했다. 그의 담담한 말투에 이를 갈았다. 화가 났다. 너무나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근데 이 화를 누구에게 풀지 모르겠어. 그 책에 그런 것을 써 놓아야 하는 대부? 아니면 그 책을 귀여워하는 해리?... 아니다. 그 둘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 책이 누구의 것 인줄 알면서도 입 다물고 있는 내가 나쁜 거였다. 어떻게든 그 책을 해리에게서 회수했어야 했다. 모른 척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 저주를 발명하지 말았어야 했어, 대부."
나는 화장실로 가는 세베루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을 했다.
오늘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소문이 퍼졌다. 모우닝 머틀이 성 안에 있는 모든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이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이미 병동에 있는 말포이를 병문안하고 돌아온 팬시 파킨슨은 해리에 대해 온갖 험담을 늘어놓는 데에 결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로우는 문 앞에 있는 나를 지나쳐서는 병동으로 들어갔다). 한편 세베루스는 교수님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해리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징계를 받게 되었다. 이번 토요일에 있을 퀴디치 시합에 해리는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지니가 해리를 대신 추격꾼으로 뛰고 딘이 수색꾼으로 합류할 것이다.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란 말은 굳이 하지 않겠어."
휴게실로 돌아가자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구박하고 있었다.
"그만 좀 해 , 헤르미온느."
론이 화를 냈다.
"그 왕자라는 사람, 뭔가 수상하다고 말했었잖아."
헤르미온느가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내 말이 맞았지, 안 그래?"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해리가 고집을 부렸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말을 이었다.
"넌 어떻게 아직도 그 책에 대해 미련을 가질 수가 있니? 그런 주문을..."
"그 책에 대해서 그만 좀 헐뜯어!"
해리가 소리를 꽥 질렀다.
"왕자는 그저 그 주문을 써 놓은 것 뿐이야! 다른 사람에게 한 번 해 보라고 권한 게 아니라고! 왕자는 그저 뭔가 써 놓기만 하건데, 그게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엉뚱하게 사용된 것뿐이잖아!"
"정말 기가 막히는구나!"
헤르미온느가 탄식했다.
"네가 진짜로 이렇게 그를 웅호하고 나설 줄은..."
"내가 한 행동이 옳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
해리가 재빨리 말을 막았다.
"나도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열두 번이나 징계를 받게 돼서 그러는 건 아니야. 너도 내가 그런 주문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잖아. 설사 말포이한테라도 말이야. 그렇다고 왕자를 비난할 수는 없어. 왕자는 '이 주문을 한번 써 봐, 아주 훌륭해!'라는 말 따위는 절대 써 놓지 않았어.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혼자 보려고 자기 생각을 좀 적어 놓은 것뿐이라고."
"그럼 넌 지금 다시 그 방에 가겠다는 말이니?"
헤르미온느가 따져 물었다.
"그래서 그 책을 다시 찾아올 거냐고? 그래, 그럴 거야."
해리가 당당하게 말했다.
"이봐, 왕자가 아니었다면, 난 절대로 펠릭스 펠리시스를 상으로 받지 못했을 거야. 독약을 마신 론을 살려 내는 방법도 몰랐을 테고, 게다가..."
"부당하게 마법약의 천재라는 명성을 얻게 되는 것도 절대 불가능했겠지."
헤르미온느가 심술궂게 물고 늘어졌다.
"이제 그만 좀 해, 헤르미온느!"
갑자기 지니가 빽 소리쳤다.
"얘기를 듣자 하니 말포이는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쓰려고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해라한테 그런 훌륭한 대비책이 있었다는 게 다행인 거 아니야?"
"당연히 나도 해리가 저주에 맞지 않은 게 기뻐!"
헤르미온느가 발끈해서 맞섰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섹튬셈프라' 주문을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지니, 그래서 결국 해리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좀 봐."
"그만 해, 둘 다."
내가 나서서 조용히 말을 하자 네 명의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았다. 깔끔해진 해리와 다르게 나는 아직도 말포이의 피가 온 몸에 묻어 있는 상태였다.
"헤르미온느, 거기까지 해. 네가 자꾸 신경을 긁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해리도 충분히 고통스러워할 테니까 너까지 신경을 긁을 필요는 없잖아."
"로라..."
"그리고 해리, 그 책은 이제 네 머리 속에서 지워. 그냥 두려고 했지만 이번 사태를 보고 알았어. 그건 네가 가지고 있기에는 위험해."
"하지만...."
"그럼 난 올라가 볼게."
로라는 해리의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고는 말하고는 여자 기숙사로 올라 가버렸다. 해리의 소꿉친구인 로라의 냉담한 반응에 해리는 그녀가 간 방향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로라는 자신의 독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붉은 피가 묻은 게 짜증과 불쾌감을 가중시켰다.
다음 날부터 해리는 그리핀도르뿐만 아니라 슬리데린 학새들의 아유를 참고 견뎌야 했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이번 학기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팀의 주장이 출전 금지를 당했다는 사실에 몹시 분개했다.
래번클로와 그리핀도르의 퀴디치 시합 당일, 장미꽃 모양의 장식과 모자를 쓰고 깃발과 스카프를 휘두르며 햇빛 속으로 우르르 몰려 나가는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병동으로 향했다. 망가져 오는 몸의 아픔에 부인에게 진정제라도 받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병동의 문을 열었다.
"폼프리 부인...."
"부인이라면 없어..."
침대에 누워있는 말포이가 커튼을 젖히면서 말했다.
"응... 어쩔 수 없지."
나는 말포이의 침대로 가까이 걸어가서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뭐야."
말포이는 나를 의심스럽다는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상처는 어때?"
"...."
내가 질문을 하자 말포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말포이가 그럴 거라고는 예상했으니까 말이지.
"로우는?"
"이미 다녀갔어....."
말포이가 말했다. 그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이것은 마음의 병이라서 약으로 치료할 수는 없는 거네.
".... 넌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말포이가 조용한 침묵을 깨고는 물었다. 그의 질문에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포이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저, 저번에 피를 토했잖아... 그리고 네 얼굴, 창백해."
"글쎄. 죽어가고 있는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내 말에 말포이가 의아해서 물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드레이코!!!"
"이런, 여자친구가 등장하셨군."
팬시 파킨슨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병동을 나가려고 할 때, 팬시 파킨슨이 나를 노려보았다.
"왜 네가...?"
"병동은 슬리데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잖아. 누구든지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폼프리 부인이 안 계셔서 잠깐 말포이랑 대화 좀 했던 것 뿐이야."
"뭐?! 드레이코를 저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그 포터..."
"파킨슨, 목청 높이지 마. 여긴 병동이니까."
팬시에게 말하고는 병동을 나갔다. 슬슬 시합이 끝났을 테고, 몸도 어느 정도 회복했으니까 그리핀도르 휴게실로 올라갔다.
"퀴드 아지스(How are you라는 뜻의 라틴어)?"
해리가 뚱보 여인에게 암호를 댔다.
"들어가 봐."
뚱보 여인은 휙 길을 열어주자 구멍에서 요란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하고 여러 개의 손이 일제히 그를 휴게실 안으로 잡아끌었다.
"우리가 이겼어!"
안으로 들어가자 론이 튀어나와 은으로 된 우승컵을 휘둘러 보이며 소리쳤다.
"우리가 이겼어! 450 대 140으로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지니가 달려나와서 해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해리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지니에게 키스를 했다. 그 순간, 방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두 사람이 떨어지자, 몇몇 학생들이 늑대 울음 소리 같은 것을 냈고, 일제히 쑥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축하해, 지니...."
해리와 지니가 함께 손을 잡고 초상화 구멍을 나가는 보고는 두 사람의 뒷모습, 정확히는 지니의 뒷모습을 향해서 작게 중얼거렸다. 6학년이 되고 나서부터 해리가 지니를 여자로 보기 시작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드디어 해리가... 용기를 냈네!
해리 포터와 지니 위즐리가 사귄다는 소식은 수많은 사람들, 특히 주로 여학생들이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해리는 그 후로 몇 주가 지나는 동안, 에전과 달리 다행스럽게도 떠도는 소문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끔찍스런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일로 인해서가 아니라, 이때까지 그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행복한 일로 인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그를 멋지게 변화시켰던 것이다(지니와 사귄 다음부터 로라의 태도가 조금 부드러운 점도 한몫 했다).
"해리 오빠는 사람들이 차라리 이 문제를 가지고 떠들어 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겠지."
지니가 말했다. 그녀는 휴게실 바닥에 앉아서 해리의 다리에 몸을 기댄 채 <예언자 일보>를 읽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세 번씩이나 디멘터의 습격이 있었는데 로밀다 베인이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오빠 가슴에 히포그리포 문신이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냐고 나에게 물어보는 것뿐이니."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배꼽을 잡고 웃어 댔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사실은 헝가리 혼테일이라고 말해 줬어."
지니가 신문을 한 장 넘기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그게 훨씬 더 남자답잖아."
"눈물 나게 고맙다."
해리가 씩 웃었다.
"그럼 론한테는 무슨 문신이 있다고 했어?"
"피그미 퍼프. 하지만 어디에 새겼는지는 말 안 했어."
나랑 헤르미온느가 데굴데굴 구르며 정신없이 웃자, 론이 인상을 썼다.
"조심해."
론이 경고라도 하듯이 해리와 지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내가 허락은 했지만, 다시 취소할 수도 있으니까...."
"허락이라고?"
지니가 코웃음을 쳤다.
"도대체 언제부터 론 오빠가 내 일에 허락을 하고 말고 했지? 게다가 마이클이나 딘보다는 차라리 해리가 낫겠다고 말한 건 바로 오빠였잖아."
"그래, 그랬지."
론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서로 껴안거나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한해서야."
"이 비열한 위선자! 오빠랑 라벤더는 어땠는데! 한 쌍의 뱀장어처럼 아무데서나 나뒹굴었으면서!"
지니가 따졌다.
하지만 6월이 되면서, 론의 관용을 시험할 일도 별로 없게 되었다. 해리와 지니는 함께 있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바로 지니는 자신의 O.W.L.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틀어박혀 밤늦도록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저녁, 휴게실 창가에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을 때- 헤르미온느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의 사이를 끼어들어 앉았다.
"해리, 너랑 할 말이 있어."
"뭔데."
해리가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소위 혼혈 왕자란 자에 대해서야."
"오, 또 시작이야."
해리가 신음 소리를 냈다.
"제발 그 이야기를 좀 그만둘 수 없겠니?"
아직까지 필요의 방에서 마법약 책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해리의 마법약 성적은 현저하게 나빠졌다. 하지만 지니를 좋아하고 있는 슬러그혼은 우스갯소리로 그걸 모두 해리가 사랑의 열병에 걸린 탓으로 돌렸다.
"그만 못 두겠는걸."
헤르미온느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때까지는 말이야.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어둠의 마법 주문들을 취미 삼아 만드는지, 요새 내가 알아보는 중이야."
"그는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아."
내가 말했다. 그는 그런 용도로 만들 생각은 없었을 거다. 분명히....
"그라고? 그란 말이야? 누가 그 사람이 '그'라고 했지?"
"그 점에 대해서는 벌써 다 이야기 끝냈잖아."
해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왕자라고, 헤르미온느! 왕자란 말이야!"
"바로 그거야!"
헤르미온느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호주머니에서 아주 오래된 신문 한 장을 꺼내어 해리가 앉아 있는 탁자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이걸 봐! 이 사진을 좀 보라고!"
해리의 옆으로 가서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 노랗게 변색된 움직이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빼빼 마른 여학생의 사진이었다. 길쭉하고 파리한 얼굴에 눈썹이 짙은 그녀는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는데, 어딘지 뚱하면서도 무뚝뚝해 보였다. 사진 밑에는 '에일린 프린스, 호그와트 곱스톤 팀의 주장.'이라는 설명이 씌어 있었다.
"이게 뭐?"
해리가 사진에 딸려 잇는 짤막한 기사를 대충 훑어보며 물었다.
"이 여학생의 이름은 에일린 프린스였어. 프린스(=왕자)라고, 해리."
해리는 비로소 헤르미온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말도 안 돼."
"뭐가?"
"넌 이 여학생이 혼혈 왕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 제발 그만 좀 해라."
"왜 안 되는데? 해리, 마법사 세계에는 진짜 왕자 같은 건 존재 하지 않아! 그건 그냥 별명이거나 누군가가 스스로 붙인 호칭이 아니라면, 진짜 이름일 수도 있다고, 안 그래? 아니, 내 말 좀 들어 봐! 만약 이 여자의 아버지가 프린스란 성을 가진 마법사고, 이 여자의 어머니가 머글이라면, 그럼 그때는 이 여자가 진짜 혼혈 왕자일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 정말 천재적이다, 헤르미온느..."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어쩌면 이 여자는 자신의 반쪽이 프린스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걸 자랑스러워했을 수도 있어!"
"에일린 프린스는 순수혈통이야. 할아버지가 프린스 가는 순수 혈통의 가문 중 하나로 말씀한 기억이 나."
내가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것보다 이 여자에 계속 조사를 하기 시작하면 대부의 출생에 대해서 눈치챌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 여학생은 아니야. 도대체 이 사진은 어디서 난 거니?"
"도서관에서."
역시나. 헤르미온느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것이 생기면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간다니까.
"거기에 옛날 <예언자일보>들이 다 보관되어 있거든. 어쨌거나 난 틈나는 대로 에일린 프린스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거야."
"마음대로 해."
해리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럴 거야."
헤르미온느가 대꾸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마법약 과목의 역대 수상 기록부터 살펴볼 거라고!"
헤르미온느는 초상화 구멍으로 다가가며 쏘아붙였다. 해리의 손에서 기사를 빼앗아서는 대부의 모친의 (학생 시절의) 외모를 바라보았다.
"쯪...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이라니까."
알면 더욱더 큰 실망감을 얻을 뿐인데. 정말로 쓸데없는 짓이다.
"헤르미온느는 마법약 수업에서 네가 자신보다 잘하는 걸 도저히 두고 봐 줄 수가 없는 거야."
론이 약초학 책을 들여다보며 한 마디 던졌다.
"넌 내가 다시 그 책을 가져오고 싶어 하는 걸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론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왕자, 그 사람은 천재였어... 게다가 위석에 대한 그의 언급이 없었더라면..."
론은 손가락으로 목을 쓱 긋는 시늉을 했다.
"난 지금 여기 앉아서 너랑 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을 거야, 안 그래? 물론 네가 말포이에게 쓴 그 주문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말포이는 말끔하게 나앗잖아, 안 그래? 금방 다시 일어설 거야."
"맞아. 스네이프 덕분이지..."
"그런데 이번 토요일에도 계속 스네이프에게 징계를 받아야하니?"
"그래, 그 다음 토요일에도, 그리고 그 다음다음 토요일에도."
해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심지어 스네이프는 이번 학기 말까지 그 서류 상자들을 다 정리하지 못하면 내년까지 계속할 거라는 암시까지 주고 있다니까."
해리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작문 숙제의 끝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미 피크스가 나타나서는 해리와 나에게 양피지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고마워, 지미.... 이거 봐, 덤블도어 교수님이 보내신 거야!"
해리가 흥분함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재빨리 두루마리를 펼쳐서는 훑어보았다.
"교수님께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교장실로 오라고 하셨어."
"맙소사."
론이 속삭였다.
"설마... 교수님께서 그걸 찾으신 건.... 아니겠지?"
"어서 가서 뵙는 게 좋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짐들을 가방 속에 쓸어담듯이 넣었다. 그리고 휴게실을 빠져나간 나와 해리는 7층 복도를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감히... 네 녀석이이이이이!!!"
소동 시간이 겨우 15분밖에 안 남아 있을 때, 복도에서 비명 소리와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나는 쪽으로 가자 바닥에 큰대(大)자로 뻗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트릴로니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늘 겹겹이 걸치고 다니는 숄 중 하나가 그녀의 머리를 덮고 있었고, 옆에는 싸구려 세리주 병 대여섯 개가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깨져 있었다.
"교수님!"
나랑 해리는 얼른 앞으로 달려가서 트릴로니 교수를 일으켜 세웠다. 반짝이는 구술 목걸이들이 그녀의 안경과 뒤엉켜 있었다. 트릴로니 교수는 큰 소리로 딸꾹질을 하면서 엉클어진 머리를 매만지고 우리의 팔에 의지한 채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죠, 교수님?"
"질문 한번 잘했다!"
트릴로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우연히 본 불길한 징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걷고 있었는데..."
"교수님, 혹시 필요의 방에 들어가려고 하셨나요?"
해리가 주위를 살펴보고는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계시된 그 불길한 징조들은.... 뭐.... 뭐라고?"
트릴로니는 갑자기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필요의 방이요."
해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혹시 거기에 들어가려고 하셨던 게 아닌가요?"
"나... 나는.... 이런.... 학생들이 그 방을 알고 있는지 몰랐구나."
"모두 다 아는 건 아니에요."
그녀를 얼른 안심시켰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교수님께서 비명을 지르셨던 것 같았는데... 꼭 다치신 것 같았어요..."
"나는.... 그러니까...."
트릴로니 교수는 방어적으로 어깨 위에 걸친 숄을 단단히 여미었다.
"나는.... 그 방에.... 뭐... 좀 개인적인 물건들을... 놓아두려고...."
그러더니 그녀는 '악의적인 비방'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몇 마디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 방에 들어가서 저것들을 숨기실 수가 없었던 거로군요?"
"아니, 그 방에 들어갔었단다."
트릴로니 교수가 빈 벽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데 벌써 누군가가 그 방에 있었어."
"누가 있었다고요? 누가요?"
해리가 물었다.
"그 방에 있었던 사람이 누군가요?"
"전혀 모르겠다."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가 너무나 다급한 목소리로 따져 묻자,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그 방에 들어갔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 내 평생 물건을 숨겨.... 아니, 그 방을 이용해 왔지만, 이런 일은 정말이지 처음이야."
"목소리라고요? 무슨 말을 하던가요?"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그 목소리는.... 함성을 지르고 있었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고요?"
"그것도 아주 신이 나서 말이야."
트릴로니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남자던가요, 여자던가요?"
"언뜻 짐작하기에 남작 같앗어."
"즐거워하는 목소리였나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였지."
트릴로니 교수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뭔가를 축하하는 것처럼 말인가요?"
"그래, 그거였어."
"그런 다음에는요?"
"그런 다음에 내가 '거기 누구요?'하고 소리쳤지."
"교수님 정도 되시면 굳이 묻지 않아도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마음의 눈이라는 건 말이야..."
트릴로니 교수가 숄과 주렁주렁 매달린 반짝이는 구술 목걸이를 똑바로 매만지면서 위엄있게 말했다.
"함성 소리 같은 그런 세속적인 영역 너머의 문제들만 보는 법이란다."
"알았어요. 그래서 그 목소리가 누구라고 대답하던가요?"
"아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 갑자기 모든 게 캄캄해졌고, 그 다음에 정신을 차려 보니, 내가 방 밖으로 곤두박질쳐 있지 뭐냐!"
"그럼 꼼짝없이 당하기만 했단 말이에요?"
해리는 도저히 따져 묻지 않을 수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내가 말했잖니, 갑자기 모든 게 캄캄해졌다고..."
트릴로니 교수는 갑자기 말을 둑 멈추더니 수상쩍은 눈을 해리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교수님께서 덤블도어 교수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해리가 제안했다.
"덤블도어 교수님도 말포이가 뭔가를 축하하고 있었다는 걸... 아니, 그러니까 누군가가 교수님을 그 방에서 내동댕이쳤다는 걸 아셔야 해요."
내가 노려보자 해리는 재빨리 말을 바꿔서 말했다. 이 제안을 듣자, 트릴로니 교수는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자주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넌지시 밝히셨단다."
트릴로니 교수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굳이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억지로 찾아다니지 않아. 덤블도어 교수님이 내 카드가 보여 준 경고들을 무시하기로 했다면..."
트릴로니 교수의 뼈만 앙상한 손이 갑자기 내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
"하고 또 해 봐도... 카드를 어떻게 늘어놓아 봐도..."
트릴로니 교수는 숄 밑에서 과장된 몸짓으로 카드 한 장을 뽑아 들었다.
"바로 이 벼락 맞은 탑 카드가 나왔지."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벼락 맞은 탐....? 그런 꿈을 꾼 것 같기도 한데....
"엄청난 불행이야. 재앙 말이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그렇군요."
해리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더욱더 교수님께서 교장 선생님께 그 목소리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모든 게 캄캄해지면서 방 밖으로 내던져진 것 하며..."
"그렇게 생각하니?"
트릴로니 교수는 잠시 동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저흰 지금 교장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이에요."
해리가 말했다.
"교장 선생님과 약속이 있거든요. 저와 함께 가시면 되겠네요."
"오, 정 그렇다면."
트릴로니 교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더니 빈 셰리주 병들을 다 주워서 근처 벽의 우묵하게 들어간 벽감 속에 세워 놓은 푸른색과 하얀색이 섞인 커다란 꽃병 속으로 휙 던져 버렸다.
"너희들이 내 수업을 들을 때가 그립구나, 해리, 로라."
트릴로니 교수는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활기차게 말했다. 벼락 맞는 탑.... 벼락 맞는 탐.... 탑에서 떨어지는 벼락... 추락하는 사람....
"해리, 넌 절대로 대단한 예언가는 아니었지만.... 정말 멋진 예언 대상이었지."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트릴로니 교수는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그 늙은 말.... 아니, 미안하다, 그 켄타우로스가 카드 점에 대해서 과연 하나라도 아는 게 있을지 염려스럽구나. 나는 그자에게 예언자 대 예언자로서, 점차 다가오고 있는 대재앙의 분명한 징조들을 느끼고 있느냐고 물었어. 하지만 그자는 날 웃음거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 웃음거리 말이야!"
트릴로니 교수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높아졌다.
"아마도 그 말은 내가 우리 고조 할머니의 능력을 물려받지 못 했다고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겠지. 날 질투하는 자들이 몇 년 동안이나 그런 소문들을 퍼뜨려 왔어. 그런 자들에게 내가 뭐라고 말하는지 아니? 만약 내가 내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었다면, 어떻게 덤블도어 교수님이 이 위대한 학교에서 내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겠느냐고 반박한단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나를 굳게 신뢰하면서 말이지."
그건 당신이 해리와 볼드모트에 관한 예언을 면담 중에 말했기 때문이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덤블도어 교수님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녀가 감정에 북받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때 덤블도어 교수님은 내게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어. 당연하지.... 아주 깊은 감명을 말이야.... 그때 난 호그스 해드에 묵고 있었는데, 사실 난 그 여관을 그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단다. 빈대가 있었거든. 어쨌든 숙박비가 아주 싸니까.... 덤블도어 교수님이 예의 바르게도 직접 내 방을 방문했었어. 그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 솔직히 말해서 그는 처음에 점술이란 분야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런데 갑자기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지. 그날 별로 많이 먹지 못했거든.... 그랬는데... 무례하게도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우릴 방해했지 뭐냐!"
"뭐라고요?"
"그렇다니까.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어. 그런데 그 무뚝뚝한 술집 종업원이 스네이프와 함께 서 있는 거야. 스네이프는 계단을 잘못 올라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횡설수설하는군. 하지만 난 그자가 나와 덤블도어 교수님의 면담 내용을 엿듣고 있다가 붙잡힌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어. 그때는 스네이프도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이었거든. 그러니 틀림없이 무슨 힌트라도 얻고 싶었을 거야! 어쨌든 그 후로부터 덤블도어 교수님은 나에게 자리를 주려고 확실히 마음을 먹은 것 같더군. 아마도 나의 겸손하고 침착한 재능과 문 뒤에서 남의 말이나 엿들으려고 하는 그 무례하고 뻔뻔스런 애송이가 너무 현전하게 비교되어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얘야?"
해리는 걸음을 멈춰있었다.
"해리?"
내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의 얼굴이 어찌나 창백하게 질려 있던지, 트릴로니 얼굴이 걱정스럽고 두려운 표정으로 변했다.
"교수님, 덤블도어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은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얘야..."
"세속적인 것에 너무 신경을 쓰이면 영적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요."
나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그녀의 영적의 눈을 걱정하는 척을 했다.
"오, 그래. 그렇지...."
"그럼."
해리를 데리고는 트릴로니를 두고는 덤블도어 교수의 사무실로 향했다. 해리는 이무기에게 암호를 외치고는 곧장 움직이는 나선형 계단을 한 번에 세 칸씩 올라갔다. 빠르게 올라가는 해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내가 끼어들어서 안 되는 것....
교장실 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 들려오는 해리의 큰 목소리.
"스네이프 때문이에요! 모두 다 스네이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요! 그자가 문밖에서 엿듣고 볼드모트에게 그 예언에 대해서 말해 주었던 거예요. 트릴로니 교수님한테서 다 들었어요!"
"... 그 사실을 언제 알게 된 거냐?"
"방금요! 그런데 교수님은 그자가 여기서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내버려 두셨군요! 그자가 볼드모트에게 제 엄마와 아빠를 쫓으라고 말했는데도 말이죠!"
들어가야 하는 건가? 말아야 하는 건가?
"해리, 제발 내 말 좀 들어 보렴."
덤블도어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스네이프 교수는 끔찍한..."
"그게 실수였다는 말씀은 저에게 하지 마세요. 그자는 문 뒤에서 엿듣고 있었단 말입니다!"
"제발 내 말을 끝까지 좀 들어 보렴."
덤블도어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해리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스네이프 교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단다. 트릴로니 교수가 한 예언의 앞부분을 엿듣던 그날 밤까지만 해도, 그는 여전히 볼드모트경의 수중에 있었어. 그러니까 당연히 주인에게 달려가서 자기가 들은 내용을 전했던 거야. 무엇보다도 자기 주인과 깊은 연관이 있는 예언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어. 아니, 알 수가 없었지. 볼드모트가 그때부터 뒤를 쫓는 그 소년이, 혹은 그 추적 과정에서 죽이게 될 소년의 부모들이 바로 스네이프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말이야. 그 사람들은 네 어머니와 아버지였지."
해리의 냉소적인 웃음이 약하게 들려왔다.
"그자는 시리우스를 미워했던 것처럼 제 아버지도 증오했어요! 교수님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스네이프가 증오했던 사람들 모두 결국에는 목숨을 잃었다는 걸?"
"볼드모트경이 그 예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았을 때, 스네이프 교수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넌 전혀 모를 거다, 해리. 그거야말로 스네이프에겐 일생일대의 커다란 회한이 되었을 거야.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가 돌아온 거란다..."
"하지만 그자는 오클러먼시에 아주 능하잖아요. 안 그런가요, 교수님? 게다가 지금까지도 볼드모트는 스네이프가 자기편이라고 믿고 잇지 않은가요?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게 스네이프가 우리 편이라고 확신하실 수가 있는 거죠?"
".... 나는 확신한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확실히 믿는다다."
"전 아니에요! 지금 그자는 드레이코 말포이와 뭔가 일을 꾸미고 잇단 말이에요. 바로 교수님의 코앞에서 말이죠. 그런데 교수님은 여전히..."
"해리,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애기가 끝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했다."
"교수님은 오늘 밤에 학교를 떠나 계실 거잖아요! 스네이프와 말포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채 말이죠!"
"무슨 짓을 한단 말이냐? 그들이 정확히 무슨 짓을 한다고 생각하지?"
"전.... 그자들이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단 말이에요! 트릴로니 교수님이 셰리주 병을 감추려고 방금 전의 필요의 방에 들어가셨었는데, 말포이가 함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소리를 들으셨대요! 그 녀석은 거기서 뭔가 대단히 위험한 물건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제 생각에, 그 녀석은 마침내 그걸 고치는 데 성공한 거예요. 그런데 교수님은 그냥 학교를 떠나시려고 하시니..."
"그만 됏다."
덤블도어의 조용한 어조에 해리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너는 올해에 내가 아무런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학교를 비운 적이 있다고 생각하니? 절대 그렇지 않다. 오늘 밤 내가 떠나고 나면, 또다시 별도의 보안 조치가 취해질 거야. 부디 내가 우리 학생들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말아 다오, 해리."
"전 그게 아니라..."
덤블도어는 당황한 해리의 중얼거림을 딱 잘랐다.
"난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구나."
더 이상 논쟁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나는 노크를 하고는 교장실로 들어갔다.
"늦었구나, 로라."
"죄송합니다, 교수님."
"해리, 오늘 밤에 나와 함께 가고 싶으냐?"
"네."
해리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좋다. 내 말을 잘 듣거라."
덤블도어가 몸을 곧게 폈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단다. 너희는 내가 어떤 명령을 내리든지 그 말에 즉시 복종해야 한다. 절대 질문을 해서도 안 돼."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리, 로라, 내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뛰어' '숨어' 혹은 '돌아가' 같은 사소한 명령에도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내 말을 알아듣겠니?"
"네, 물론입니다."
"저는.... 네, 물론입니다."
"내가 너희더러 숨으라고 하면 숨을 거지?"
"네."
"도망치라고 하면 도망칠 거지?"
"네."
"내가 너희더러 날 두고 너희 목숨부터 구하라고 하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
"...."
"해리, 로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나와 해리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겠습니다."
덤블도어의 푸른 청안에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대답을 했다.
"좋다. 그럼 이제 가서 해리, 네 투명 망토를 가져오거라. 5분 후에 현관 입구에서 만나자꾸나."
덤블도어는 돌아서서 불타는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태양은 지평선 위에서 루비처럼 붉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해리는 재빨리 교장실로 걸어 나가서 나선형 계단을 내려갔다. 덤블도어 교수를 한 번 바라보고는 나도 준비를 위해서 교장실을 나갔다. 어차피 준비할 것도 없으니까 바로 현관 입구로 향했다.
현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덤블도어가 여행용 망토를 입은 채 다가왔다. 그와 떡갈나무 문 옆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해리가 숨을 헐떡이며 돌계단 꼭대기에서 겅중겅중 뛰어 내려왔다.
"망토를 쓰도록 해라."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의 말에 지팡이를 꺼내 들고는 투영 마법으로 스스로에게 걸었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썼다. 우리를 기다렸다가 덤블도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가 볼까?"
덤블도어는 즉시 돌계단으로 내려갔다. 바람 없이 잔잔한 여름 공기에 그의 여행용 망토는 거의 펄럭이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떠나시는 걸 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요?"
해리가 물었다.
"한잔하러 호그스미드에 가는 줄 알겠지."
덤블도어가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가끔씩 로즈메르타에게 특별 주문을 하러 가거든. 아니면 호그스 해드에 가거나... 혹은 가는 척하기도 하지. 진짜 목적지 숨기기에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지."
점점 더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교수님."
길 앞쪽에 학교 교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해리가 조용히 속삭였다.
"순간이동을 할 건가요?"
"그렇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이젠 순간이동을 할 줄 알겠지?"
"네."
"하지만 아직 테스트를 통과하지는 못했어요."
"괜찮다. 이번에도 내가 도와주마."
덤블도어가 우리의 대답에 말했다.
교문을 나와서 호그스미드로 가는 어둑어둑하고 인적 없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아 하이가에 도착했을 때에는 완전히 밤이 되어 있었다. 가게들의 창문 너머로 불빛이 반짝거렸다.
스리 브룸스틱스에 가까이 다가가자, 시끄러운 고함 소리가 들렸다.
"당장 나가!"
로즈메르타 부인이 지저분하게 생긴 마법사 한 명을 강제로 끌어내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오, 안녕하세요, 알버스... 늦게 나오셨군요..."
"멋진 저녁이군요, 로즈메르타. 멋진 저녁이오.... 미안하지만 난 지금 호그스 해드로 가는 길이라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하지만 오늘 밤에는 좀 더 조용한 곳에 있고 싶구려."
잠시 후에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서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도 호그스 해드의 간판은 삐거덕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술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 같구나."
덤블도어가 주위를 살펴보며 속삭였다.
"우리가 오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니.... 이제 로라, 해리의 손을 잡으렴. 해리, 이제 네 손을 내 팔 위에 올려놓아라. 너무 꽉 잡을 필요는 없다, 해리. 나는 단지 네가 가는 길을 인도하는 것뿐이니까. 셋을 세겠다. 하나... 둘... 셋..."
빙그르 돌았다. 순간이동을 시도하는 그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71 (0) | 2017.03.17 |
---|---|
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70 (0) | 2017.03.17 |
블랙 로즈와 회색 여왕 02 (0) | 2017.03.11 |
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68 (0) | 2017.03.10 |
블랙 로즈와 회색 여왕 01 (0) | 2017.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