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공기를 마시자 짭짤한 소금기가 느껴졌다. 짭짤한 바다 냄새와 파도 소리가 밀려 왔다. 부드럽고 시원한 산들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랑거렸다. 달빛이 가득한 바다와 별들이 총총히 박힌 하늘, 불쑥 튀어나온 검은 바위 위에 우리는 서 있었다. 발밑에서는 파도가 포말을 뱉어 내며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깎아지른 듯이 매끈한 검은 절벽이 바로 뒤에 탑처럼 솟아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래 한 줌도 없이 바다와 바위만 있는 풍경은 황량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덤블도어가 물었다.
"고아원에서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데려왔단 말인가요?"
내가 물었다. 소풍을 나오기에 부적절한 장소라고 생각이 드는데...
"정확히 말해 여기는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우리 뒤에 잇는 저 절벽을 따라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마을이 하나 있지. 내 생각에 바닷바람도 좀 쐬고 파도 구경도 하기 위해 아이들을 거기로 데려갔던 것 같다. 아니, 이 장소를 찾아온 사람은 아마 톰 리들과 그의 어린 희생자들이 처음이었을 거야. 아주 뛰어난 산악인이 아니라면, 보통 머글들은 이 바위를 오를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배를 타더라도 저 절벽에는 가까이 갈 수가 없지. 주변의 물살이 아주 위험하거든. 리들은 절벽을 기어 내려 갔을 거라고 짐작된단다. 밧줄보다는 마법이 더 유용했겠지. 그리고 겁먹는 모습을 보고 즐기려고 다른 어린아이 두 명을 함께 데리고 갔던 거야. 그 여행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겁을 먹었겠지, 그렇지 않니? 하지만 그자의 최종 목적지이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여기서 조금 더 가야 한단다. 자, 어서 가자."
덤블도어는 우리에게 바위 가장 자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곳에서부터 바위가 들쭉날쯕하게 파인 틈을 딛고서 저 밑에 있는, 반쯤 물에 잠긴 바위들까지 내려가면 좀 더 절벽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려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덤블도어는 상처 입은 손 때문에 약간 어려움을 겪으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밑에 있는 바위들은 바닷물에 젖어 매우 미끄러웠다.
"루모스."
절벽과 가장 가까운 바위에 도달하자, 덤블도어가 주문을 외웠다. 순간 그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곳에서 몇 발자국 아래쪽에 있는 바다의 시커먼 수면이 수천 개의 노란색 불빛으로 반짝거렸다. 덤블도어의 옆에 있는 검은 바위의 표면도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보이니?"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좀 더 높이 치켜들며 조용히 물었다. 절벽의 갈라진 틈새로 검은 물살이 소용돌이치며 흘러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물에 좀 젖어도 괜찮겠지?"
"괜찮습니다."
우리가 대답했다.
"그럼 투명 망토를 벗고 마법을 풀으렴. 지금은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함께 물에 뛰어들자꾸나."
갑자기 덤블도어가 젊은 사람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바위에서 뛰어내려 바다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그리고 불이 켜진 지팡이를 입에 문 채 완벽한 평형으로 절벽의 틈새를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마법을 풀고 뒤를 따랐다. 해리도 망토를 벗어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다음, 바다 속으로 들어왔다.
바닷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절벽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서 작아져 가는 불빛을 쫓아서 헤엄쳐 갔다. 갈라진 틈새는 곧 어두운 통로로 이어졌다. 미끌미끌한 통로 사이의 간격은 겨우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빛을 발하는 덤블도어의 지팡이가 지나갈 때마다 젖은 타르처럼 번쩍거렸다. 조금 들어가다 보니, 통로가 왼쪽으로 휘어져서 절벽 깊숙한 곳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덤블도어가 물 밖으로 나가자, 물에 젖은 그의 은발 머리와 검은 망토가 번쩍거렸다. 곧이어 도착한 커다란 동굴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물 밖으로 나와 싸늘한 공기가 닿자 걷잡을 수 없이 온몸이 추위 때문에 덜덜 떨렸다. 달달 떨면서 입을 간신히 움직여 대답하면서 물 밖으로 나와 계단에 섰다. 흠뻑 젖은 옷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덤블도어는 동굴 한가운데에 서서, 지팡이를 높이 치켜든 채 몸을 천천히 돌리면서 벽과 천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래, 바로 여기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해리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알 만한 마법이 걸려 있구나."
덤블도어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 자리를 맴돌아서 나와 해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에 정신을 집중했다.
"여기는 단지 대기실, 입구일 뿐이야."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말했다.
"우린 더 안쪽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는 길에는 자연이 만든 장애물이 아니라, 볼드모트경의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덤블도어는 동굴 벽으로 다가가더니,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검게 변한 손가락 끝으로 벽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을 가능한 한 넓게 더듬거리며 동굴 안을 오른쪽으로 두 번 돌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걸음을 멈추고 한 지점 위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더듬던 그는, 마침내 우뚝 서서 손바닥으로 그 지점의 벽을 꽉 눌렀다.
"바로 여기다."
덤블도어가 말햇다.
"이리로 들어가야 한단. 입구가 숨겨져 있구나."
덤블도어는 동구 ㄹ벽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더니 지팡이로 바위를 겨누었다. 잠깐 동안 바위 위에 아치 모양의 선이 나타나면서 마치 갈라진 바위틈 뒤에서 강력한 빛이라도 새어 나오는 것처럼 하얗게 달아올랐다.
"해내... 셔, 셨군요!"
해리가 추위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치 모양의 선이 사라지더니 여느 때처럼 단단하고 거친 바위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덤블도어가 뒤를 돌아보았다.
"해리, 로라, 미안하구나. 깜박 잊고 있었단다."
덤블도어는 지팡이로 우리를 겨누었다. 순식간에 옷이 마치 타오로는 불 앞에 걸어 놓았던 것처럼 따뜻하고 보송보송해졌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인사를 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벌써 단단한 동굴 벽을 향해 돌아서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마법을 쓰려고 하지 않고, 바위 위에 뭔가 아주 흥미로운 글씨라도 쓰여 있다는 듯이 가만히 서서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집중하고 있는 덤블도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숨이 막힐 듯이 긴장된 2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덤블도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 믿을 수가 없군. 너무 유치해."
"어떻게 된 건가요, 교수님?"
"내 생각에는..."
덤블도어가 부상을 입지 않는 손을 망토 안에 넣더니 마법약 재료들을 썰 때 사용하는 것 같은 은으로 된 단검을 꺼냈다.
"이 문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뭔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할 것 같구나."
"대가라고요?"
해리가 되물었다.
"이 문에다가 뭔가를 바쳐야만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내 생각이 맞다면, 피를 바쳐야 할 것 같구나."
"피라고요?"
"그래서 너무 유치하다고 말했던 거란다."
덤블도어가 볼드모트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수준 이하의 인간임을 알고 몹시 실망한 것 같은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물론 너희도 알겠지만, 이런 생각은 적이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 힘을 약화시키도록 만들려는 의도에서 나온 거란다. 또다시 볼드모트경은 육체적인 손상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야."
"그렇군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피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때로는 피할 수 없는 법이지."
덤블도어가 소매를 뒤로 젖히고 부상당한 팔뚝을 드러냈다.
"교수님!"
덤블도어가 칼을 치켜드는 순간, 해리가 황급히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은 해리를 보면서 덤블도어는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이엇다. 순간 은빛 섬광이 번뜩이더니 붉은 피가 솟구쳤다. 바위 위에 번쩍거리는 검붉은 핏방울이 점점 뿌려졌다.
"고맙다, 해리."
덤블도어는 말하며 자신의 팔뚝에 깊이 베인 상처 위로 지팡이 끝을 갖다 댔다. 그러자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하지만 너의 피는 나의 피보다 훨씬 더 소중하단다. 아, 이제 이 장애물이 해결된 것 같구나, 그렇지 않니?"
하얗게 빛을 발하는 아치 모양의 선이 또다시 벽 위에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선 안쪽으로 피 묻은 바위가 사라지면서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내 뒤를 따라오너라."
덤블도어가 아치문을 걸어 들어가자, 지팡이를 꺼내어 불을 밝히는 해리를 보고 나도 똑같이 행동한 후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눈앞에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커다랗고 검은 호숫가에 우리는 서 있었는데, 그 호수가 어찌나 광대했던지 그 끝을 어디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동굴 또한 너무나 높아서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저 멀리 호수 한가운데쯤일 거라고 짐작되는 곳에서 신비로운 초록색 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거울처럼 고요한 호수 표면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 초록색 불빛과 세 개의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제외하면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잠시 둘러보자꾸나."
덤블도어가 속삭였다.
"잘못해서 물에 발을 디디지 않도록 조심해라.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덤블도어는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해리가 그 뒤를 따랐고 나는 해리의 등을 보면서 걸었다. 호숫가를 빙 둘러싸고 있는 좁은 바위 기슭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저벅저벅하는 발소리가 동굴 안에서 메아리쳤다.
"교수님?"
해리가 침묵을 깨뜨리며 말했다.
"여기에 호크룩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래, 분명히 있어. 문제는 그걸 어떻게 손에 넣느냐는 거지."
"그렇다면... 그냥 소환 마법을 써 보는 게 어떨까요?"
"물론 그래도 되겠지. 네가 직접 해 보지 그러니?"
"제가요? 아.... 네...."
해리는 목청을 가다듬고 지팡이를 높이 든 채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아씨오 호크룩스!"
순간 쾅 하는 폭발음 같은 소리와 함께 5~6미터쯤 떨어진 검은 호수 속에서 뭔가 커다랗고 창백한 것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뭔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첨벙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거울처럼 잔잔하던 수면이 일렁이며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저게 뭐였죠?"
"내 생각에는 아마도 우리가 호크룩스를 가져가려고 하면, 저런 것들이 작동되도록 되어 있는 것 같구나."
"교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내가 물었다.
"함부로 호크룩스에 손을 대려고 했다가는 분명히 무슨 일인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었지. 어쨌든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해리. 덕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간단하게 알아냈구나."
"하지만 아직도 그게 뭐였는지 모르잖아요."
"'그것들'이 뭔지 모른다고 말해야겠지. 틀림없이 하나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럼 계속 걸어가 볼까?"
덤블도어가 말했다.
"교수님?"
"왜 그러니, 해리?"
"혹시 호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호수 속으로? 그런 일은 우리가 아주 운이 나쁠 경우에나 일어나겠지."
"호크룩스가 호수 바닥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오, 아니다.... 호크룩스는 저 한가운데에 있을 게다."
덤블도어는 호수 중앙에서 빛나고 있는 신비로운 초록색 불빛을 가르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기로 가기 위해서 호수를 건너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럴 것 같구나."
얼마 전에 꾼 꿈의 단편적인 기억을 되살렸다. 검은 호수 밑바닥으로 끌려 들어가는.... 흑발의 호그와트 남학생....
"오호라."
덤블도어가 멈추고 해리가 그의 등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바람에 해리는 시커먼 호수 가장자리에서 휘청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나랑 덤블도어가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겨주었다.
"미아하구나, 해리. 내가 미리 주위를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벽 쪽으로 꼭 붙어 서도록 해라. 드디어 그 장소를 찾은 것 같구나."
덤블도어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텅 빈 허공을 손으로 마구 더듬기 시작했다.
"오호!"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만족스런 탄성을 질렀다. 그의 손은 뭔가를 허공에서 꽉 잡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호수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한 손으로 허공에서 뭔가를 꼭 쥔 채, 다른 손으로 지팡이를 들어서 그 끝으로 주먹 주니 손을 탁 쳤다. 그 즉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굵은 청도색 쇠사슬이 나타났다. 덤블도어가 붙잡고 있는 그 사슬은 호수 깊숙한 곳에서 뻗어나온 것이었다. 그가 지팡이로 사슬을 딱 치자, 사슬은 뱀처럼 그의 손 안에서 스르르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더니 땅 위에 똬리를 틀며 내려앉았다.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바위 벽에 부딪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시커먼 호수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뭔가가 끌려 나왔다. 그것은 작은 배였다. 작은 배 한 척이 유령처럼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지켜ㅗ았다. 사슬처럼 청동색 빛을 발하는 그 배는 잔물결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우리가 서 있는 기슭을 향해서 조용히 다가왔다.
"교수님은 이 배가 거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해리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나도 그 대답이 듣고 싶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마법은 언제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란다."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그때 배가 기슭에 살짝 부딪혔다.
"때로는 아주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 나는 톰 리들을 직접 가르쳤던 사람이야. 누구보다도 그의 방식을 잘 알고 있지."
"저... 저 배는 안전할까요?"
"오, 내 생각에는 안전할 것 같구나. 볼드모트는 언제라도 자신의 호크룩스를 찾으러 오거나 없애 버리려고 할 때를 대비해서, 저 호수 밑에 자신이 넣어 둔 괴물들의 분노를 사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호수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놓아야만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저 볼드모트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기만 하면, 물속에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어느 순간 저들이 우리가 볼드모트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덤벼들 위험성이 있다는 걸 각오해야겠지. 하지만 지금까지는 잘해 온 셈이야. 어쨌든 배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저들은 왜 우리가 배를 끌어올리도록 내버려 두었을까요?"
해리가 물었다.
"볼드모트는 틀림없이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마법사가 아니라면 이 배를 발견할 수 없을 거라고 자신했을 게다."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게다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배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극히 희박한 가능성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겠지. 저 앞에 오직 자신만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장애물들을 설치해 놓았다는 걸 염두해 두고서 말이지. 그럼 어디 그의 생각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해 보도록 할까?"
배는 몹시 작았다.
"세 사람이 탈 수 있는 배가 아닌 것 같은데요?"
"교수님과 저희가 함께 탈 수 있을까요? 그럼 너무 무겁지 않을까요?"
나랑 해리가 걱정하자 덤블도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볼드모트는 무게가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강력한 마력이 이 호수를 건너가는냐 하는 데에 신경을 썼을 게다. 아마 이 배는 한 번에 오직 한 명의 마법사만 배를 타고 건널 수 있도록 마법이 걸려 있을 게다."
"그렇다면....?"
"해리, 로라, 너희는 마법사 축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구나. 아직 미성년인 데다 자격도 얻지 못했으니까. 볼드모트도 설마 열어섯 살짜리 꼬마들이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겠지. 나의 능력에 비한다면 너희 능력은 감지되지도 않을 게다."
왠지 덤블도어 같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급 자존심이 깎아져 내리는 것 같은데....
"볼드모트가 실수를 한 거지."
덤블도어는 우리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실수한 게야... 원래 나이가 들어 젊은이들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어리석고 부주의해지는 법이란다... 이번에는 너희가 먼저 가도록 해라. 물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덤블도어가 한쪽 옆으로 비켜서자, 내가 먼저 올라탔고 그 다음에 해리가 올라탔다. 뒤어이 배에 오른 덤블도어는 사슬을 배 바닥 위로 감아올렸다. 세 사람이 타기에는 배가 너무 비좁았다.
배는 마치 투명한 밧줄에 의해 호수 가운데로 연결된 것처럼 빛을 향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동굴의 벽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파도가 없다는 사실을 한 가지만 빼면 꼭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배는 유리처럼 매끄러운 수면 위에 깊은 골을 만들며 커다란 물살을 일으키고 있었다. 뱃머리가 부드러운 수면을 가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수님!"
해리가 수면 아래에서 대리석처럼 하얀 것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겁에 질린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호수 위에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왜 그러니, 해리?"
"물속에서 손 하나를 본 것 같아요. 사람의 손이었어요!"
"그래, 그랫을 게다."
덤블도어는 태연하게 말했다.
"혹시 그게 물속에서 불쑥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지팡이 불빛이 수면의 또 다른 부분을 비추며 지나가는 순간, 이번에는 얼굴을 위로 한 채 둥둥 떠다니는 사람의 시체가 바로 물 아래에 보였다. 그의 부릅뜬 두 눈은 거미줄이라도 쳐진 것처럼 희멀건 했고, 그의 머리카락과 긴 망토는 안개처럼 시체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여기 시체들이 있어요!"
해리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매우 날카로워서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그렇구나."
덤블도어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것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지금은'이라니요?"
"그것들이 그저 우리 밑을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는 한은 괜찮다는 말이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한낱 시체를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단다, 해리. 그건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지. 물론 내심 어둠과 죽음 모두를 두려워하는 볼드모트라면 내 말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또다시 볼드모트의 어리석음이 드러났구나. 우리가 죽음과 어둠을 두려워하는 건 그것이 미지의 것이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다."
"이것들 중 하나가 불쑥 덤벼들기라도 하면..."
해리는 가능한 태연하고 흔들림 없는 어조로 말하려고 애를 썼다.
"혹시 제가 호크룩스를 불러내려고 했을 때, 호수에서 시체 하나가 튀어나왔던 게 아닐까요?"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아마 우리가 호크룩스를 손에 넣고 나면, 저것들은 지금처럼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게다. 하지만 어둠과 추위 속에서 사는 대부분의 생물들이 그러하듯이, 저것들도 빛과 열기를 두려워한단다. 그러니까 필요한 순간이 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게다."
"불 말이야, 해리."
"아... 그렇군요."
배는 여전히 거침없이 초록색 불빛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단다."
덤블도어가 활기찬 어조로 말했다.
배가 뭔가에 살짝 부딪히더니 멈추어 섰다. 호수 가운데에 매끄러운 바위로 이루어진 작은 섬에 도착했다.
"물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라."
내가 배에서 내릴 때, 덤블도어가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었다. 그 섬은 덤블도어의 사무실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넓적한 검은 돌 위에는 초록색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받침돌 위에 펜시브와 아주 흡사하게 생긴 돌 대야가 놓여 있고, 거기에서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돌 대야에 가까이 다가가자 나랑 해리도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돌 대야를 들여다보았다. 대야 안에는 인광(燐光)을 발하는 에메랄드 빛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뭐죠?"
해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덤블도어가 대답햇다.
"어쨌든 피와 살보다도 훨씬 더 꺼림칙한 것 같구나."
덤블도어가 검게 변한 손 위로 망토의 소맷자락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화상을 입은 손가락 끝을 뻗어서 그 액체의 표면을 만지려고 했다.
"교수님..."
"안 돼요, 만지지 마세요!"
"만지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단다."
덤블도어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니? 이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구나. 너희도 한번 해보렴."
덤블도어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안에 담긴 액체를 만져보려고 했다. 하지만 뭔가가 손길이 닿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아무리 세게 손을 밀어 넣어 보아도, 손가락은 단단하고 강력한 공기 같은 것에 부딪힐 뿐이었다.
"해리, 로라, 저리 비켜서거라."
덤블도어는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더니 액체의 수면 위로 이리저리 복잡하게 흔들며 소리 없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액체가 약간 더 밝게 빛나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덤블도어가 마법을 거는 동안 우리는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내려놓자 비로소 말을 걸어도 될 것 같았다.
"교수님은 호크룩스가 이 안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단다."
덤블도어는 대야 안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에메랄드 빛 액체의 매끈한 수면 위에 거꾸로 비쳤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찾을 수 있을까? 이 약 속에 손을 넣을 수가 없으니 말이야. 사라지게 하거나 반으로 가르거나 떠내거나 빨아들일 수도 없고, 변신술을 쓰거나 마법을 걸 수도 없고, 그 밖에 다른 어떤 수를 써도 이 약의 성질을 바꿀 수가 없구나."
"마셔야 하는 건가요?"
덤블도어는 내 질문에 거의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다시 들더니 허공에 대고 한 번 휘두르자 어디선가 크리스털 잔이 그의 손 안에 나타났다.
"그럴 수밖에 없구나."
덤블도어의 말에 착찹한 마음으로 그의 손에 든 크리스털 잔을 바라보았다.
"뭐라고요?!"
해리가 소리쳤다.
"안 돼요!"
"아니, 내 생각은 그렇단다. 대야 밑바닥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걸 전부 마셔 버리는 수박에 없어."
"하지만 혹시... 그러다가 목숨이라도 잃게 되면...?"
"오, 그런 일은 없을 게다."
덤블도어는 태연하게 말했다.
"볼드모트경이 이 섬까지 온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교수님. 교수님, 우리가 지금 상대하는 자는 바로 볼드모트예요..."
"미안하구나, 해리. 내가 말을 잘못했다. 그자가 이 섬까지 온 사람을 단번에 죽이려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했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덤블도어는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틀림없이 그들은 가능한 한 오래 살려 두어서, 자기가 설치해 놓은 방어막을 어디까지 뚫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 했을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들이 이 대야를 그토록 비우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을 거야. 볼드모트경은 자신의 호크룩스에 대해서 자기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해리가 뭔가 말하려고 하자 덤블도어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살짝 이마를 찌푸린 채, 에메랄드빛 액체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틀림없이 이 약은 내가 호크룩스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쪽으로 작용하겠지. 나를 마비시키거나, 내가 여기 왜 왓ㄴ느지 그 이유를 잊어버리도록 만들거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아니면 다른 어떤 식으로든 나를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지. 해리, 로라, 혹시 그런 경우가 생기면 내가 반드시 이 약을 다 마시도록 도와주는 것이 너의 임무다. 설사 내가 싫다고 거부하는 한이 있어도, 넌 이 약을 내 입에 다 쏟아 부어야만 해. 알겠니?"
우리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묘한 초록색 불빛이 우리의 얼굴을 파리하게 빛나게 했다.
"명심해라."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데려올 때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지."
"하지만 만약게..."
해리가 머뭇거렸다.
"너흰 내가 내리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니?"
"그랬습니다. 하지만...."
"혹시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고 내가 미리 너희에게 경고하지 않았니?"
"그랬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럼 됐다."
덤블도어는 또다시 소매를 뒤로 젖히더니 빈 잔을 들었다.
"내 명령대로 하거라."
"왜 저희가, 아니 제가 대신 그 약을 마시면 안 되는 거죠?"
내가 물었다.
"그건 내가 훨씬 나이가 많고, 더 지혜롭고, 더 쓸모 없기 때문이란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다, 해리, 로라. 너희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서 내가 이 약을 끝까지 마실 수 있게 도와줄 것을 약속하는 거지?"
"그렇지만..."
"해리."
나는 해리를 작게 불렀다.
"해리, 약속해라."
"저... 저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해리가 무언가 더 말을 하기도 전에, 덤블도어는 마법약 속으로 크리스털 잔을 집어넣었다. 크리스털 잔은 그 어떤 것도 통과하지 못했던 수면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잔이 가득 태워지자, 덤블도어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갓다.
"해리, 로라, 너희의 건강을 빌며."
그리고 덤블도어는 잔을 비웠다. 우리는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덤블도어가 빈 잔을 내려놓자, 걱정스럽게 불렀다.
"기분이 어떠세요?
덤블도어는 두 눈을 꼭 감고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다시 크리스털 잔을 대야 속에 집어넣고 약을 떠서 들이켰다.
덤블도어는 말 없이 세 번째 잔을 비웠고, 다시 네 번째 잔을 절반쯤 마시다가 비틀거리며 대야 위에 쓰러졌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서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 저희의 말이 들리세요?"
덤블도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깊은 잠에 빠져 무시무시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잔을 잡고 있는 손이 풀리면서 약이 쏟아질 것만 같자 얼른 손을 뻗어 크리스털 잔을 똑바로 붙잡았다.
"교수님, 제 말 들리세요?"
해리는 큰 소리로 그를 다시 한 번 불렀다. 그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 메아리쳤다. 덤블도어는 숨을 헐떡거리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싫어... 그러지 마... 싫어... 그만두고 싶어..."
덤블도어가 신음했다.
"그만두면 안 돼요, 교수님."
내가 말했다.
"계속 마셔야만 해요. 기억나세요? 계속 마셔야만 한다고 저희에게 말씀하셨잖아요. 여기 있어요...."
덤블도어가 남은 약을 다 마실 수 있도록 억지로 잔을 그의 입에 갖다 대고 약을 쏟아 부었다. 그가 다 마시자 나는 잔을 해리에게 내밀었다. 그러가 해리가 잔을 대야에 집어넣었을 때, 덤블도어가 애원하며 말했다.
"싫어.... 싫어... 날 보내 줘...."
"괜찮아요, 교수님."
해리에게 내미는 잔을 받아들고는 말을 했다.
"괜찮아요, 저희가 옆에 있잖아요."
"그만 해. 그만해."
덤블도어가 신음 소리를 냈다.
"괜찮아요, 교수님."
덤블도어의 벌어진 입 속으로 또다시 잔에 담긴 액체를 쏟아 부었다. 덤블도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죽음 같은 시커먼 호수르르 가로질러 텅 빈 공터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안 돼, 안 돼, 안 돼.... 난 할 수 없어, 할 수 없다고.... 제발 그만둬.... 싫단 말이야...."
"괜찮아요, 교수님! 괜찮아요."
덜덜 떨고 있는 해리에게서 또다시 잔을 받아들고는 덤블도어의 입에 가져다 댔다.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무사하실 거라고요. 이건 현실이 아니에요. 이건 분명히 현실이 아니라고요. 자, 이걸 드세요. 어서 이걸 드세요."
해리가 소리 높여 말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최면과도 비슷했다. 다 마시고 나자, 덤블도어의 몸은 겁잡을 수 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모두 내 잘못이야. 모두 내 잘못이라고."
덤블도어가 흐느끼며 말했다.
"제발 그만 멈춰 다오. 이제 보니 내가 틀렸어. 오, 제발 멈춰 다오. 절대로... 절대로... 그걸 다시...."
"이것만 마시면 끝나요."
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일곱 번째 잔을 기울여 덤블도어의 입 속으로 약을 부여 넣으며 말했다. 덤블도어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온몸을 잔뜩 움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손을 마구 휘두르는 바람에 하마터면 해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잡고 있는 잔을 엎을 뻔했다. 내가 그의 팔을 잡아 채자 덤블도어가 신음하며 중얼거렸다.
"그들을 해치지 마라. 그들을 해치지 마. 부탁이야. 부탁이야. 내가 잘못했어. 대신 나를 해쳐라..."
"여기, 이걸 드세요. 어서 드세요. 괜찮아지실 거예요."
해리는 절망적으로 잔을 권했다. 덤블도어는 눈을 꼭 감은 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벌렸다. 그는 또다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주먹으로 땅을 마구 내리치려고 하자 못 하게 막아섰다. 해리는 다시 아홉 번째 잔을 채웠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안 돼... 그건 안 된다..... 그건 안 돼. 내가 뭐든 다 할 테니..."
"교수님, 이건 현실이 아니에요."
"그냥 마시세요, 교수님. 단숨에 들이켜세요."
내가 덤블도어를 말리고 있었고 해리가 덤블도어에게 잔을 내밀었다. 덤블도어는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 어린 아이처럼 그 잔을 들어벌컥벌컥 마시더니, 몸속에서 불이 나는 듯 다시 비명을 질렀다.
"이제 더 이상 싫어, 제발 그만 해..."
"이제 거의 다 되었어요, 교수님. 이걸 드세요. 어서요..."
해리는 덤블도어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덤블도어는 다시 잔을 들어 약을 들이켰다.
"차라리 죽여 다오! 나를 죽여 줘! 그만 해, 그만 하라니까. 차라리 죽고 싶구나!"
"교수님, 여기 있어요. 어서 드세요..."
덤블도어는 잔을 비우자마자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나를 죽여라!"
"여기... 이거면 끝나요."
해리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것만 드세요. 이제 곧 끝날 거예요.... 끝날 거라고요!"
덤블도어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벌컥벌컥 잔을 들이켜더니,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그대로 얼굴을 땅에 박고 고꾸라졌다.
"교수님!!!"
나는 재빨리 그를 일으켜 등을 대고 눕게 했다. 덤블도어는 안경을 비스듬하게 걸치고서 입을 헤 벌린 채, 힘없이 눈을 감고 잇었다.
"교수님!"
"안 돼요!"
또다시 잔을 채우려고 일어섰던 해리가 잔을 대야 속에 떨어뜨리고서 소리를 지르며 덤블도어 옆으로 달려왔다.
"안 돼요!"
그는 덤블도어를 흔들며 깨우며말했다.
"안 돼요! 돌아가시면 안 돼요! 이건 독약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정신 차리세요, 정신차리세요"
"레너바이트!"
주문을 외쳤다. 반짝하고 붉은 섬광이 튀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레너바이트!"
"교수님, 제발...."
덤브로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교수님, 어떠세요...?"
"물...."
덤블도어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이요... 알았어요."
해리는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해리는 벌떡 일어나서 대야쪽으로 향했다.
"아구아멘티!"
해리가 주문을 외웠고 덤블도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의 머리를 받치고는 잔을 그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하지만 잔이 텅 비어 있었다. 덤블도어는 신음 소리를 내며 숨을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히... 잠깐만요... 아구아멘티!"
해리는 다시 지팡이로 잔을 겨누며 소리쳤다. 순식간에 맑은 물이 또다시 잔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덤블도어의 입가로 가져가자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아구아멘티... 아구아멘티.... 아구아멘티!"
다시 한 번 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졌다. 이제 덤블도어의 숨소리는 점차 희미해졌다. 그리고 머리 속에는 적색 신호가 켰졌다. 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단 하나였다. 해리의 손에 들려 있는 잔을 빼앗듯이 가져가서는 바위 가장자리로 황급히 몇 발자국 나가 잔을 호수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잔 가득히 담았다. 그 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리!"
"교수님, 여기요!"
해리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갔고 곧 얼음장 같은 물에서 나온 축축한 하얀 손이 내 손목을 꽉 잡아당겼다. 그 손의 주인은 바위 너머에서 천천히 끌어당겼다. 이제 호수의 수면은 더 이상 거울처럼 잔잔하지 않았다. 호수는 마구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시선이 닿는 어디에서나 하얀 머리와 손들이 검은 물 밖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었다. 움푹 꺼지고 허연 눈을 부릅뜬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들이 바위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검은 호수 전체에서 시체 군단, 인페리우스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해리가 주문을 외치고 나를 뒤에서 끌어당겼다. 그러자 내 팔을 움켜잡고 있는 인페리우스가 검은 물속으로 풍덩 떨어져 버렸다. 수많은 인페리우스들이 바위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뼈만 남은 앙상한 손가락으로 미끄러운 바위를 악착같이 움켜쥐면서, 얼어붙은 텅 빈 눈으로 오직 우리만 응시한 채, 물에 흠뻑 젖은 누더기 옷을 질질 끌며 다가왔다. 훌쭉한 그들의 얼굴은 기괴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임페디멘타!"
나와 해리가 뒷걸음질 치면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예닐곱 명의 인페리우스들이 풀썩 쓰러지거나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뒤이어 더 많은 인페리우스들이 우리를 향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뒤를 이어 바위를 기어 올라온 다른 인페리우스들은 쓰러진 시체들을 그냥 밟고 다가왔다. 그 모습에 나는 질색하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섹튬셈프라! 섹튬셈프라!"
해리가 미친 듯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들의 누더기 옷 사이로 얼어붙은 살갗 여기저기에 쫙쫙 깊이 베인 상처들이 드러났지만, 피는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시들어 빠진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민 채, 무감각하게 저벅저벅 걸어올 뿐이었다.
"해리!!!"
해리의 등 뒤에서 시체처럼 싸늘하고 뼈만 남은 가느다란 팔이 불쑥 나와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 해리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천천히 호수를 향해 끌고 가는 것을 보자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외쳤다.
"인센디오!!!"
지팡이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어둠 속에서 팍 하고 불길이 치솟았다. 빨갛고 노란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바위 주위를 감싸자, 인페리우스들이 비틀거리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난 덤블도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인페리우스들만큼이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키가 크고 당당했다. 그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지팡이를 횃불처럼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 마치 거대한 올가미처럼 우리 모두를 뜨거운 열기로 휘감고 있었다. 내가 뿜어낸 불로는 차원이 틀렸다. 인페리우스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불길로부터 달아나려고 좌충우돌 서로 몸을 부딪히며 필사적으로 몸부림 쳤다.
덤블도어는 돌 대야 바닥에 있는 황금 로켓을 집어 들더니 망토 안에 감추었다. 그리고 말없이 우리를 향해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배로 돌아가는데도, 불길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인페리우스들은 그들의 사냥감이 도망치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황한 인페리우스들은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불길에 둘러싸인 채 호수 가장자리에 이르자, 앞을 다투어 검은 호수 속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해리는 덤불도어를 붙잡고 배에 앉을 수 있게 부축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올라타자 배는 섬을 떠나 검은 호수 위를 가로질러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불길이 배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물 밑에서 우글거리는 인페리우스들은 다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교수님...."
해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깜박 잊었어요. 불 말이에요. 저것들이 자꾸 다가오니까 그만 겁에 질려서..."
"그럴 만도 하지."
덤블도어가 꺼질 듯이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쿵 하고 살짝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배가 기슭에 닿았다. 해리는 얼른 배에서 뛰어내린 후 서둘러 돌아서서 덤블도어를 부축해 주었다. 땅에 올라서자 덤블도어는 힘없이 지팡이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인페리우스들은 더 이상 호수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눈치채자 지팡이에서 불길을 꺼버리고는 배에서 내렸다. 작은 배는 다시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배와 연결된 사슬 또한 쨍그랑쨍그랑 소리를 내며 호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덤블도어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동굴 벽에 몸을 기댔다.
"힘이 없구나..."
덤블도어가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내가 얼른 위로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모시고 갈게요. 저에게 기대세요... 교수님."
해리는 덤블도어의 성한 팔을 자신의 어깨 위에 걸치고, 그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한 채 호숫가를 따라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아주 잘 만든 보호 마법이었어..."
덤블도어가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아주 잘했다, 해리, 로라... 정말 잘했어."
"지금은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힘을 아끼세요, 교수님.... 곧 여기서 나갈 거예요...."
"아치문이 다시 닫혔을 거다... 내 칼..."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까 바위에 긁혀 상처가 났거든요."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딘지만 말씀해 주세요..."
"여기다...."
해리는 아까 긁혀서 상처가 난 팔을 바위에 문질렀다. 피의 제물을 받자, 아치문이 즉시 열렸다. 우리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절벽 틈새 안으로 가득 밀려 들어온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교수님, 우린 무사할 거예요."
해리는 자꾸만 되뇌었다.
"거의 다 왔어요. 제가 순간이동을 해서 모시고 갈 수 있어요.... 아무 걱정도 하지 마세요...."
"난 걱정하지 않는다."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물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았다.
"너희가 내 곁에 있잖니."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로 다시 나오자, 바위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덤블도어를 도와주었다. 바위에 올라오자 지팡이를 휘둘러서 젖은 우리의 옷을 말렸다. 그리고 해리의 옆으로 가서 그의 팔을 잡았다. 해리가 덤블도어 교수님의 팔을 꽉 잡는 것을 보자 호그스미드로 순간이동을 했다.
더 이상 찝찔한 소금 냄새와 바닷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호그스미드의 어두운 하이가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서 있었다. 고요한 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가로등 몇 개와 2층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이외에는 오직 깜깜한 어둠 속에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우리가 해냈어요, 교수님. 우리가 해냈어요! 호크룩스를 가져왔어요!"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기댄 채 비틀거리자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저 멀리서 비치는 가로등 불빛을 통해 덤블도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식은땀이 비 오는 듯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단다."
경련을 일으키는 덤블도어의 입술 사이로 희미하게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 마법약은... 별로 몸에 좋은 게 아니었어..."
그 순간 덤블도어가 땅 위에 털썩 쓰러졌다.
"교수님... 괜찮아요, 교수님. 곧 나아지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학교로 돌아가야만 해요, 교수님... 폼프리 부인이..."
"아니다."
덤블도어가 속삭였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스네이프야.... 하지만 잘 모르겠구나... 학교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알겠어요, 세베루스를 데리고 올 게요. 해리, 교수님을 봐줘."
움직이기 전에, 황급히 달려오고 있는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용이 수놓인 비단 실내복을 입고 굽 높은 털 실내화를 신은 로즈메르타 부인이 우리를 향해 어두운 거리를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침실 커튼을 치다가 너희가 순간이동으로 나타나는 걸 보았단다! 정말 다행이구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그런데 알버스가 어디 편찮으신 거니?"
로즈메리트 부인이 걸음을 멈추고 숨을 헐떡거리며,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덤블도어를 내려다보았다.
"다치셨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로즈메르타 부인, 제가 학교에 가서 도움을 청하고 오는 동안, 교수님과 해리를 스리 브룸스틱스에 좀 모셔가 주실래요?"
"너 혼자서 학교에 갈 수는 없어! 넌 아직 모르고 있구나. 아직 보지 못해...?"
"교수님을 부축하게 좀 도와주세요."
해리는 부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저와 함께 교수님을 안으로 모시고..."
"무슨 일이 생겼나요, 로즈메르타 부인?"
내가 물었다.
"로즈메르타, 뭐가 잘못되었소?"
덤블도어가 물었다.
"알버스, 그... 그게 어둠의 표식이..."
로즈메르타 부인이 호그와트가 있는 쪽 하늘을 가리켰다. 그 말을 듣자마자 돌아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의 표식이, 뱀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초록색의 번쩍이는 해골이 학교 위의 하늘에 걸려 있었다.
"저게 언제 나타났소?"
덤블도어가 물었다. 그는 내 팔과 해리의 어깨를 아플 정도로 꽉 움켜쥐면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몇 분 전쯤에 나타난 게 분명해요.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낼 때만 해도 없었는데, 2층으로 올라갈 때 보니..."
"당장 학교로 돌아가야겠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로즈메르타..."
덤블도어는 아직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지만, 이 상황을 통제하려는 듯 말했다.
"이동 수단이 필요하오. 빗자루라든가..."
"술집 뒤에 세 자루가 있어요."
로즈메르타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얼른 가서 가져올까요?"
"아니오. 해리와 로라가 할 겁니다."
우리는 지팡이를 당장 들어올렸다.
"아씨오, 로즈메르타의 빗자루!"
1초도 안 돼서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술집 문이 벌컥 열렸다. 뒤이어 빗자루 세 개가 서로 경주하듯이 우리를 향해서 쌩 날아왔다. 그리고 해리의 허리 높이쯤에 딱 멈추어 서서 공중에 둥둥 뜬 채 부르르 떨었다.
"로즈메르타, 마법부에 전갈을 좀 보내 주시오."
덤블도어가 가까이에 있는 빗자루에 올라타면서 부탁했다.
"어쩌면 호그와트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니... 해리, 투명 망토를 입도록 해라. 로라는 투영 마법을 쓰도록."
덤블도어의 말에 나는 투영 마법을 나에게 스스로 시행했고, 해리는 투명 망토를 꺼내어 뒤집어 썼다. 그리고 빗자루에 올라타고는 땅 위에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로즈메르타 부인은 벌서 가게 안으로 종종걸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성을 향해서 빠르게 날아갔다. 덤블도어는 빗자루 위에 몸을 숙인 채, 어둠의 표식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의 긴 은빛 머리카락과 수염이 밤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자신이 성 주변에 쳐 놓았던 마법을 해체했는지 우리는 무리 없이 빗자루를 타고 그대로 성을 둘러싼 담을 넘어서 운동장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어둠의 표식은 성에서 제일 높은 천문탑 바로 위에서 번쩍거리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벌써 요철 모양의 성벽을 넘어서 착륙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옆에서 내린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성벽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성 안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으로 들어가는 문을 굳게 잠겨 있었다. 몸싸움을 벌이거나 목숨을 내건 싸움을 했던 흔적도, 쓰러진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해리가 물었다.
"저게 진짜 어둠의 표식일까요?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교수님?"
덤블도어는 검게 변해 버린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가서 세베루스를 깨우거라."
덤블도어는 희미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에게 설명하고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 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리고 절대 망토을 벗지말고 마법을 풀지 말도록 해라. 난 여기서 기다리마."
"하지만...."
"내 말을 따르겠다고 맹세했었지. 어서 가라!"
재빨리 나선형 계단으로 들어가는 문을 향해 달려갔다. 문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문 저쪽에서 마구 달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덤블도어는 우리에게 물러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조용히 물러났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왔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즉시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옆에서 미약하게 성벽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해리도 나처럼 동작 그만 주문에 걸린 것 같았다. 그때 어둠의 표식이 비추는 불빛 아래에서 덤블도어의 지팡이가 성벽 너머로 포물선을 그리며 휙 날아갔다. 덤블도어는 무언 주문을 걸어서 우리를 움직일 수 없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문을 날리느라, 간발의 차이로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덤블도어는 종잇장처럼 새하얀 얼굴로 성벽에 몸을 기대서 서 있었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기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지팡이를 빼앗아 간 상대를 조용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좋은 저녁이구나, 드레이코."
말포이는 재빨리 다른 사람이 없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눈길이 또 다른 빗자루들에 쏠렸다.
"여기 또 누가 있지?"
"그건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말이구나. 혼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
말포이의 시선이 덤블도어에게 향했다.
"아니."
말포이가 대답했다.
"내 뒤에는 동지들이 있다. 오늘 밤 당신의 학교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들어왔거든."
"이런, 이런."
덤블도어는 마치 말포이가 야심에 찬 과제물 계획서라도 제출한 듯이 감탄을 했다.
"아주 훌륭하구나. 마침내 그자들을 학교 안으로 불어들일 방법을 찾은 거로구나, 그렇지?"
"그렇다."
말포이가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바로 당신의 코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당신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지!"
"대단하구나."
덤블도어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지금 그자들은 어디 있는 거냐? 넌 지원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구나."
"당신의 경비대원들과 맞닥뜨려서 지금 아래층에서 싸우고 있어.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어쨌든 내가 먼저 왔어... 나... 나는 할 일이 있거든."
"그렇구나. 그렇다면 할 일을 해야지, 얘야."
덤블도어가 다정하게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포이는 덤블도어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지만 덤블도어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레이코, 드레이코, 너는 살인자가 아니잖니."
"당신이 어떻게 알지?"
말포이가 즉각 쏘아붙였다. 하지만 말포이는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유치한지 곧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당신은 내 능력을 잘 모르는군."
말포이가 좀 더 세게 나왔다.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당신은 모른다고!"
"오, 아니야. 난 알고 있단다."
덤블도어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넌 케이티 벨과 론 위즐리를 죽일 뻔했지. 그리고 1년 내내 점점 더 필사적으로 나를 죽이려고 노력했었어. 드레이코, 미안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모두 미약하기 짝이 없었단다... 솔직히 너무 보잘것없어서, 나는 과연 네가 진심으로 그럴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지."
"진심이었어!"
말포이가 독살스럽게 소리쳤다.
"나는 1년 내내 이 일에 매달렸고, 오늘 밤 드디어..."
저 아래 성 내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고함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말포이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구나."
덤블도어는 슬슬 대화를 이끌어 갔다.
"그런데 네 말로는... 그러니까 죽음을 먹는 자들을 우리 학교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고 했는데, 솔직히 나는 어떻게 그 일을 가능했는지 모르겠구나... 어떻게 한 거지?"
하지만 말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너의 지원군이 내 경비대원들에게 격퇴를 당하면 어떻게 할 거냐? 혹시 너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밤 이 성 안에는 불사조 기사단 단원들도 와 있단다. 사실 넌 굳이 도움이 필요 없을 게다... 지금 난 지팡이조차 없으니까 전혀 나를 방어할 길이 없지."
말포이는 그저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알겠다."
덤블도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는 말포이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그자들이 오기 전에 혼자서 행동하기가 두려운 게로구나."
"난 두렵지 않아!"
말포이가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썼지만, 여전히 덤블도어를 해치려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두려워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왜 그렇지? 난 네가 날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드레이코. 살인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그럼 네 동지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나 좀 해 보렴. 어떻게 그자들을 학교 안으로 몰래 불러들였지? 그 방법을 알아내는 데 꽤 시간이 걸린 것 같구나."
말포이는 덤블도어를 노려보면서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그의 지팡이는 덤블도어의 심장을 곧장 겨누고 있었다.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말포이가 입을 열었다.
"몇 년 동안 아무도 쓰맂 않고 버려둔, 망가진 '사라진 캐비닛'을 고쳐야 했지. 작년에 몬태규가 들어갔다가 실종되었던 그 물건 말이야."
"아하."
덤블도어의 입에서 신음 소리에 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잠시 눈을 꼭 감았다.
"아주 영리하구나... 내가 알기로 그 캐비닛은 또 다른 한 짝이 있지?"
"보진과 버크 가게에 있지."
말포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두 캐비닛이 일종의 통로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나는 몬태규를 통해 알아냈어. 그는 호그와트에 있는 캐비닛 속에 들어갔을 때, 어딘지 알 수 없는 중간 지대에 갇혀있었는데, 어떤 때에는 학교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어떤 때에는 가게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고 했지. 마치 캐비닛이 학교와 가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고 했어. 하지만 아무도 자기가 지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거야... 결국 그는 순간 이동 시험을 통과하지도 못한 주제에, 간신히 순간 이동 마법을 써서 그곳을 빠져나왔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더군. 모두들 굉장한 재미있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을 거야. 그렇지만 오직 나만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어. 심지어 보진도 몰랐는데 말이야. 그 망가진 캐비닛을 괴면 호그와트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는 사실을 오직 나 혼자만이 깨달았다고!"
"정말 대단하구나."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결국 네 도움으로 죽음을 먹는 자들이 보진과 버크 가게에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게로구나... 대단히 영리한 계획이야, 아주 영리해.... 그것도 네가 말한 대로, 바로 내 코앞에서 그런 일을 벌이다니..."
"그래."
말포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덤블도어의 칭찬을 통해 용기와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맞아, 그렇고 말고!"
"하지만 그 캐비닛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을 때가 있었겠지? 그래서 나에게 저주받은 목걸이나 독약이 든 꿀술 따위를 보내는, 그런 서툴고 잘못된 방법에 의지하려고 했었구나. 결국 목걸이는 엉뚱한 사람의 손에 들어갔고, 꿀술은 사실상 내가 마실 가능성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야..."
"그랬지.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 일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채지 못했잖아, 안 그래?"
말포이가 빈정거렸다. 이제 덤블도어는 다리에 힘이 다 빠진 듯, 성벽에서 조금 미끄러져 내렸다.
"사실 그렇지 않단다. 나는 네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어."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런데 왜 날 막지 않았지?"
말포이가 따졌다.
"막으려고 했단다, 말포이. 스네이프 교수가 내 지시에 따라서 널 감시하고 있었어."
"스네이프 교수는 당신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던 게 아니야. 그는 내 어머니와 약속을 했어..."
"물론 스네이프 교수는 너에게 그렇게 말했겠지, 드레이코. 하지만..."
"그자는 이중 첩자야, 이 멍청한 늙은이야! 그는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당신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게 아니야!"
"드레이코,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의 의견이 분명히 다른 것 같구나. 종종 있는 일이지. 나는 스네이프 교수를 신뢰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흥, 그렇다면 당신의 힘이 약해진 거겠지."
말포이가 이죽거렸다.
"그는 나에게 수없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었어. 자기가 모든 영광을 독차지하고 싶었을 테니까. 뭔가 좀 해 보고 싶었던 거겠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니' '그 목걸이로 뭘 해 보겠다고 하는 거니?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었어. 그 때문에 모든 게 들통날 뻔했다' 등등. 하지만 난 내가 필요의 방에서 뭘 하고 있는지 그자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어. 아마 그자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 보면 모든 상황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리고 어둠의 마왕이 가장 총애하는 부하의 자리를 내주게 되겠지.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가 될 거라고! 하찮은 존재 말이야!"
"그래서 아주 기쁘겠구나."
덤블도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힘들게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기를 원하기 마련이지. 그렇지만 너에게도 틀림없이 공범자가 있었을 거야. 누군가 호그스미드에 있고... 케이티에게 그 목걸이를 넘겨줄 수 있는 사람... 아하."
덤블도어가 졸음이 밀려드는 사라마처럼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구나... 로즈메르타. 그녀가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린 지 얼마나 된 거지?"
"드디어 그걸 알아차린 거야, 그래?"
말포이가 비웃었다. 그때 성 아래에서 또 다른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좀 더 크게 들려왔다. 말포이는 초조한 표정으로 힐끗 뒤를 돌아보더니, 덤블도어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덤블도어는 말을 계속했다.
"가엾은 로즈메르타가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아무나 혼자 들어오는 호그와트 학생에게 그 목걸이를 겨주었던 거로구나? 그리고 그 독약이 든 꿀술도... 그래, 그렇고말고. 로즈메르타만이 슬러그혼에게 술병을 보내기 전에 널 대신해서 독약을 탈 수 있었겠지. 그게 나에게 보내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믿고서 말이야.... 그래, 딱 들어맞는군.... 딱 들어맞아. 가엾은 필치는 당연히 로즈메르타의 술병까지 검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설명 좀 해 보렴. 로즈메르타와는 어떻게 연락을 취했던 거니? 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가는 연락 수단들은 모두 감시를 당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법의 동전을 썼지."
말포이는 계속 떠들어 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술술 털어놓았다. 하지만 지팡이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와 그 여자가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전갈을 보낼 수가 있었지."
"그건 작년에 '덤블도어의 군대'라고 자칭하는 모임에서 사용했던 비밀 연락 수단이 아니었느냐?"
덤블도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이 가볍기만 했다. 하지만 그가 벽에서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맞아, 그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지."
말포이가 입술을 씰룩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꿀술에 독약을 타는 아이디어는 바로 그 잡종 그레인저에게서 얻었지. 그 계집애가 도서관에서 필치가 마법약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거든."
"내 앞에서 그런 모욕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덤블도어가 조용히 타일렀다. 그러자 말포이가 사납게 웃어댔다.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판에 내가 '잡종'이란 말을 쓴다고 귀에 거슬린다는 거야?"
"그래,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덤블도어의 발이 옆으로 약간 미끄러지면서, 그가 다시 똑바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드레이코, 너는 날 죽이려고 한다면서, 이미 몇 분이나 흘렀는지 모르겠구나. 여기에는 우리 단 두 사람밖에 없고, 난 지금 네가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란다.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구나...."
뭔가 쓰다쓴 것을 맛본 사람철머 말포이의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뒤틀렸다.
"그럼 오늘 밤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꾸나."
덤블도어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약간 의아스럽단다... 너는 내가 학교를 비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물론 그랬을 거야."
덤블도어는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했다.
"로즈메르타가 내가 떠나는 걸 보았으니, 너의 그 천재적인 동전 연락망을 이용해서 너에게 귀뜸을 해 주었겠지."
"바로 맞혔어."
말포이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신이 그저 한잔하러 갔다고만 말했지. 곧 돌아올 거라고..."
"그래, 분명히 한잔하긴 했지.... 그럭저럭... 돌아왔고...."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나를 잡을 덫을 놓기로 했던 게냐?"
"우리는 탑 위에 어둠의 표식을 만들어 놓기로 했지. 누가 살해당한 줄 알고 당신이 빨리 돌아오도록 말이야. 그리고 멋지게 성공했지!"
말포이가 말했다.
"글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국 아무도 살해당한 사람이 없다는 거냐?"
"누군가 죽긴 죽었어."
그 말을 하는 말포이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당신네 사람들 중 한 명이었어... 너무 어두워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시체를 밟고 지나왔어... 당신이 돌아올 때,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거든. 오직 당신과 그 불사조 패거리들만이 길을 가로막았지."
"그래, 그랬겠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때 밑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더욱더 커다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 위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소리였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구나. 이 길 아니면 저 길뿐이다."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꾸나, 드레이코."
"선택이라고!"
말포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지금 지팡이를 들고 이 자리에 서 있단 말이야! 당신을 죽일 거라고!"
"얘야, 우리 더 이상 허세는 부리지 말도록 하자꾸나. 네가 날 죽일 작정이었다면, 내 지팡이를 빼앗자마자 곧바로 해치웠을 게다. 네가 어던 수단과 방법을 썼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려고 손을 멈추지는 않았을 거야."
"나에게 다른 선택이란 없어!"
말포이가 악을 썼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난 반드시 이 일을 해야만 해! 그가 날 죽일 거라고! 그가 우리 가족을 모두 죽일 거야!"
"네 입장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다 이해한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내가 왜 지금까지 널 직접 만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니? 그건 내가 널 의심한다는 사실을 볼드모트경이 눈치채게 되면, 네가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볼드모트의 이름을 듣자 말포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혹시라도 그자가 너에게 레질리먼시를 쓰고 있을지 몰라서, 나는 네가 맡은 그 임무에 대해 뻔히 알면서도 너에게 감히 말하지 못했던 거란다."
덤블도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침내 서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아직까지 넌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 네가 해친 사람은 아무도 없잖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네가 뜻하지 않게 피해를 준 사람들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지... 내가 널 도와줄 수 있단다, 드레이코."
"아니, 그럴 수 없어."
지팡이를 쥔 말포이의 손이 매우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어. 그는 내가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날 죽일 거라고 말했어.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드레이코, 정의의 편으로 오너라. 그럼 우리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감쪽같이 널 숨겨 줄 수 있단다. 게다가 오늘 밤에 불사조 기사단 단원들을 보내서 네 어머니도 똑같이 숨겨 줄 수 있어. 네 아버지는 아즈카반에 있으니 지금 당장은 무사할 테고... 때가 되면 우리가 네 아버지도 보호해 줄 수 있어.... 드레이코, 정의의 편으로 오너라. 넌 살인자가 아니야...."
말포이가 덤블도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이미 여기까지 해냈어, 안 그래?"
말포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자들은 내가 이 일을 하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난 여기 살아 있어... 그리고 당신은 내 손안에 있고 말이야... 지팡이를 쥔 사람은 바로 나야.... 당신의 목숨은 나에게 달렸어..."
"아니, 드레이코."
덤블도어가 조용히 타일렀다.
"지금 바지를 베푸는 사람은 나란다. 네가 아니야."
말포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벌리고서 지팡이를 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지팡이가 떨어지려고 할 때, 갑자기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천둥처럼 요란하게 들리더니- 순식간에 검은 망토를 입은 네 사람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성벽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바람에 말포이가 옆으로 밀려났다.
한쪽 입가를 추켜올린 채 괴상한 미소를 짓고 있는 땅딸막한 남자가 킬킬거렸다.
"덤블도어가 꼼짝없이 궁지에 몰렸군!"
그자는 여동생인 듯한 땅딸막한 여자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이빨을 드러내며 신나게 웃었다.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빼앗겼군1 덤블도어가 혼자 있어! 잘했다, 드레이코. 정말 잘했어!"
"잘 있었나, 아마커스."
덤블도어가 마치 다과회에 온 손님을 맞이하듯이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알렉토도 데려왔구먼... 여전히 매력적이야..."
여자가 다소 신경질적인 웃음 소리를 냈다.
"그런 시시한 농담을 하면 죽는 마당에 무슨 도움이 될 것 같은가?"
"농담이라고? 아니, 아니지. 예의라고 해 두세."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해치워 버려."
덩치가 크고 팔다리가 껑충한, 회색 머리카락과 구레나룻이 마구 헝클어져 있는 남자가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목소리는 개가 짖는 듯이 몹시 귀에 거슬렸다. 그리고 그자에게서 오물과 땀, 피 냄새가 뒤섞인 악취를 맡을 수 잇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그의 손에는 누런 손톱이 길게 자라 있었다.
"펜리, 자네인가?"
덤블도어가 물었다.
"맞아."
상대방, 펜리 그레이백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날 보고 싶었나 보지, 덤블도어?"
"아니, 곡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군."
그레이백이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의 턱 아래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자, 그레이백은 천천히 음흉하게 입술을 핥았다.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 덤블도어."
"그렇다면 자네는 보름달이 뜨지 않을 때에도 사람들을 공격한단 말인가? 그거 참 보기 드문 일인데... 인육에 맛을 들여서 한 달에 한 번 그것을 맛보는 것으로는 이제 성이 안 차는 모양이로군?"
"맞았어."
그레이백이 말했다.
"그래서 충격을 받았나, 덤블도어? 겁이 나는 건가?"
"글쎄, 솔직히 좀 역겨운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군."
덤블도어가 쏘아붙였다.
"그리고 여기 있는 드레이코군이 자네와 이 모든 사람들을 학교로 초대했다는 사실이 좀 충격적이긴 하네. 그의 친구들이 지내고 있는 이 학교에 말일세..."
"내가 부른게 아니야."
말포이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그는 그레이백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자가 있는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저자가 올 줄은 나도 몰랐어..."
"호그와트로 여행을 간다는데 내가 빠질 수 없지, 덤블도어."
그레이백이 그르렁대며 말했다.
"물어뜯을 목덜미가 있는데 그 기회를 어찌 놓치겠어... 그 맛있는 걸...."
그레이백은 누런 손톱으로 앞니 사이를 쑤시며 덤블도어에게 눈독을 들였다.
"후식으로 당신을 먹여 주지, 덤블도어."
"안 돼."
얼굴이 몹시 험상궂고 사나워 보이는 네 번째 죽음을 먹는 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우리는 지시를 받았어. 이 일은 드레이코가 해야만 해. 자, 드레이코, 빨리 서둘러라."
말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덤블도어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덤블도어는 평소보다 훨신 더 창백하고 기운 없는 얼굴로, 거의 성벽 바닥까지 미끄러져 내려앉아 있었다.
"어찌되었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은데!"
한쪽 입가가 올라간 남자가 여동생의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말했다.
"저 꼬락서니 좀 보라지. 이게 어찌된 일인가, 덤비?"
"오, 저항할 힘도 약해지고 반사 신경도 둔해진 거라네, 아마커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한마디로 나이가 든 거지... 언젠가는 자네에게도 닥칠 일이야... 그것도 운이 좋을 경우에 말이지만..."
"그게 무슨 소리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죽음을 먹는 자들이 갑자기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덤비, 네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입만 살아서 떠들 뿐, 정작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아무것도 말이야! 어둠의 마왕께서 왜 너 같은 걸 죽이려고 그토록 애를 쓰시는지 모르겠군! 어서, 드레이코, 당장 없애 버려!"
바로 그때 아래층에서 또다시 격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저 자들이 계단을 막았다! 리덕토! 리덕토!"
이 네 명은 상대를 모두 해치운 것이 아니라, 단지 싸움을 피해서 탑 꼭대기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들리는 소리로 봐서는, 뒤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온 것이 분명했다.
"드레이코, 지금이야. 어서 서둘러!"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화를 내며 재촉했다. 하지만 말포이는 목표물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할 정도로 심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내가 끝내 주지."
그레이백이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며 두 팔을 쭉 뻗고 덤블도어에게 다가갔다.
"안 된다고 말했지!"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럿다. 동시에 불이 번적하면서 늑대인간이 쿵 하고 나가떨어졌다. 성벽에 몸이 부딪힌 늑대인간은 비틀거리며 포악한 표정을 지었다.
"드레이코, 어서 해치워라. 아니면 옆으로 비켜서. 우리 중에 한 사람이..."
여자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성벽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다시 벌컥 열리더니 세베루스가 나타났다. 그는 지팡이를 한 손에 움켜쥔 채 새까만 눈으로 성벽에 몸을 기대고 축 늘어져 있는 덤블도어부터 잔득 화가 난 늑대인간을 비롯한 네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과 말포이까지 쭉 훑어보았다.
"스네이프, 문제가 생겼어."
땅딸막한 아카머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과 지팡이는 한결같이 덤블도어를 향해 있었다.
"이 녀석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세베루스..."
덤블도어가 부드럽게 세베루스의 이름을 불렀다.
세베루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말포이를 거칠게 옆으로 밀쳐 냈다. 다른 세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은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늑대인간조차도 기가 죽은 것 같았다. 세베루스는 한동안 덤블도어를 응시했다. 냉혹한 그의 얼굴 구석구석에는 증오와 혐오가 역력하게 배어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들더니 곧장 덤블도어를 겨누었다.
"아바다 케다브라!"
세베루스의 지팡이 끝에서 초록색 섬광이 발사되더니 덤블도어의 가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허공으로 팍 솟아오르는 덤블도어는 아주 잠깐 동안 번쩍이는 해골 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더니, 마치 헝겊으로 만든 커다란 인형처럼 성벽 너머로 천천히 떨어져서 사라져 버렸다.
-봐, 예지는 굉장히 무서운 거란다.
누군가 내 귀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벼락 맞은 탑......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72 (0) | 2017.03.20 |
---|---|
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71 (0) | 2017.03.17 |
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69 (0) | 2017.03.14 |
블랙 로즈와 회색 여왕 02 (0) | 2017.03.11 |
죽음을 초월한 기적의 마법, 사랑 68 (0) | 2017.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