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과 플뢰르의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은 바다가 내려다보는 절벽 위로 홀로 서 있었다. 그 집의 벽에는 온통 조개껍데기가 박혀 있었고, 하얗게 회칠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아담한 오두막집이나 정원 안의 어디를 가든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의 숨소리와 같은 밀물과 썰물의 끊임없는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산책하고 있는 해리는 얼굴에 와 닿는 시원하고 짭조름한 바람을 느끼며, 탁 트인 하늘과 넓고 텅 빈 바다가 바라보이는 절벽 위 풍경을 만끽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해리."


로우의 부축을 받으면서 로라가 정원으로 나왔다.


"로라."

"나에게 설명할 것이 있지 않니?"


레질러먼시를 써도 해리의 생각이 읽혀지지 않았다. 오클러먼시가 이제 완전히 각성했다는 의미였다.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딱총나무 지팡이에 대해서 들었지만...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이 무슨 뜻이야?"


내가 묻자 나를 부축하고 있는 로우가 헉하고 놀라버렸다. 


"로우, 잠깐 자리를 피해 줘."

"아, 응."


호크룩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로우는 들을 필요도 없겠지. 


"뭐부터 듣고 싶은데?"

"지하실에 있었던 일과 여기로 온 다음부터, 도깨비와 올리밴더씨를 만났다면서?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얼추 들었는데, 네 생각을 듣고 싶어서."


해리는 내가 묻자 말해주었다. 

지하실에서 웜테일이 해리를 죽이려고 했지만, 과거에 해리가 자신을 구한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볼드모트가 그에게 준 의수가 그의 목을 졸라서 죽었다는 거다. 게다가 깨진 시리우스의 거울에서 덤블도어의 청안을 보았다고? 해리는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계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립훅에게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에 들어가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는 것과 그 안에 호크룩스가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는 점, 지팡이가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는 올리밴더씨의 말에 따라서 웜테일의 지팡이는 론이 쓰리고 했고,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는 헤르미온느가, 드레이코 말포이의 지팡이는 자신이 쓰기로 했다는 거였다. 그리고 볼드모트가 딱총나무 지팡이를 소유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어차피 그는 그 지팡이를 쓸 수 없어."


내가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는 지팡이의 주인이 절대로 될 수 없어."

"아, 로라, 네 지팡이야."

"고마워."


애드밀, 아니 티파니의 지팡이를 받아들었다.


"그 지팡이는 너의 것이야."

"알아. 이건 원래부터 내것이었어..... 로우도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로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로우는 우리가 하는 일에 알아서 안 돼."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해리에게 말하고는 나는 바다를 응시했다. 내 형제의 지팡이를 보고는 이내 나는 그것을 두 동강으로 부러뜨렸다.


"로라, 무슨 짓을?!"


해리는 내 행동에 놀란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필요 없어, 이건 나에게."


게다가 형제 지팡이라니... 그런 것은 필요 없는 것이 좋다고. 나는 부러진 지팡이를 바다 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 원래 내 지팡이를 꺼내서는 해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나를 고문하던 그 여자의 것이었어. 나는 내 지팡이가 더 좋아."


해리에게 말했다.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에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났을 때, 론이 질문했다.


"그런데 그분이 정말 돌아가신 거니?"

"그래, 그렇다니까. 론, 제발 그 얘기는 다시 꺼내지 마!"

"몇 가지 사실을 좀 봐, 헤르미온느."


줄곧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는 해리와 나를 가운데 놓고 론이 말했다.


"은빛 암사슴. 그 칼. 해리가 거울에서 본 눈..."

"해리는 자기가 헛 것을 본 건지도 모른다고 시인했어! 안 그래, 해리?"

"그랬을 수도 있어."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헛것을 봤다고 생각 안 하지, 안 그래?"


론이 물었다.


"응, 생각 안 해."


해리가 말했다.


"그거 봐!"


헤르미온느가 끼어들 틈도 없이 론이 잽싸게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가 지하실에 있다는 걸 도비가 알았는지 설명해 봐, 헤르미온느."

"나도 몰라... 하지만 호그와트의 무덤 속에 누운 채로, 덤블도어 교수님이 어떻게 도비를 우리에게 보냈는지 너는 설명할 수 잇니?"

"나도 몰라. 어쩌면 그분의 유령이 그랬을지도 몰라!"

"덤블도어 교수님은 유령이 되어 돌아오려고 하지는 않으셨을 거야."


해리가 말했다.


"교수님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셨을 거야."

"무슨 뜻이야?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니?"


론이 물었지만, 해리가 더 말할 겨를도 없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


어느새 플뢰르가 긴 은발을 산들바람에 휘날리며 오두막집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아리, 그립훅이 너와 아이갸하고 싶어 행. 그능 제일 작은 침실에 있엉. 누궁가 엿듣능 걸 원치 않능대."


도깨비가 자신에게 전갈을 전하게 했다는 사실에 플뢰르는 몹시 기분이 상한 게 분명했다. 그녀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집을 향해 다시 돌아갔다. 

플뢰르가 말한 대로, 그립훅은 밤에 나와 헤르미온느 그리고 루나가 잠을 자는, 이 오두막집의 세 침실 중 가장 작은 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빨간색 면 커튼을 당겨 구름이 떠 있는 빛나는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상쾌하고 밝은 오두막집의 다른 방과는 달리, 이 방은 타는 듯이 불게 물들어 있었다. 


"난 결정을 내렸다, 해리 포터."


도깨비는 낮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을 톡톡 두드리고 있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린고트의 도깨비들은 이걸 근복적인 반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너를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훌륭해요!"


해리가 탄성을 질렀다.


"그립훅, 고마워요. 우린 정말로..."

"그 대신!"


도깨비가 결언하게 말했다.


"보수를 달라."


보수? 역시 그냥 일을 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로군.


"얼마를 원하시죠? 제게 금화가 있어요."


해리가 물었다.


"금화 말고."


그립훅이 대답했다.


"나도 금은 있다. 나는 칼을 원해.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칼을."

"그럴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해리가 말햇다.


"그렇다면 곤란하군."

"다른 걸 드릴 수 있어요."


론이 애절하게 말했다.


"장담하는데, 레스트랭 가문은 재산이 많을 거에요. 일단 금고 안에만 들어가면, 당신은 뭐든지-"

"론!! 도깨비들은 도둑이 아니야!"


내가 론의 말을 잘라버리면서 외쳤다. 


"도깨비들은 권한이 없는 보물을 갈취하는 않아!"


그들은 탐욕스럽긴 하지만... 그립훅은 그린고트에서 일한 도깨비다. 당연히 거기에 흥미를 끌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칼을 우리 건데..."

"그렇지 않아."


도깨비가 말을 막았다.


"우리는 그리핀도르 학생이고, 그건 그리핀도르의 것..."

"그러면 그것이 그리핀도르의 것이 되기 전에는, 누구의 것이었지?"


도깨비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도깨비들이 만들었으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자기의 것들이라고 주장하겠지.


"누구 것도 아니죠."


론이 답했다.


"그건 그리핀도르를 위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아닌가요?"

"아니야!"


도깨비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론을 가리키며 분노로 가득 차서 호통을 쳤다.


"역시나 마법사들의 오만함이란! 그 칼은 래그눅 1세의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고드릭 그리핀도르에게 빼앗긴 것이지! 그것은 잃어버린 보물이야. 도깨비가 만든 걸작이란 말이다! 그건 원래 도깨비들의 소유야! 그 칼이 나를 고용하는 대가야.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양자택일해!"


그립훅은 우리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의논을 좀 해 봐야겠어요, 그립훅. 괜찮으면 우리에게 잠시 시간을 주겠어요?"


도깨비는 골이 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우리를 데리고 텅 빈 아래층 거실로 내려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론이었다.


"그놈은 지금쯤 신나게 웃고 있을걸. 그 칼을 그놈에게 줘서는 안 돼."

"그게 정말이니?"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그리핀도르가 그 칼을 훔친 거야?"

"나도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지."


헤르미온느가 낙심한 듯 대답하자 내가 말했다. 


"도깨비랑 마법사들의 거래에 대한 가치관은 달라. 도깨비들은 자신들이 만들었으니까, 그리핀도르의 칼이 자기들끼리 주장하고... 우리 마법사는 그 칼을 도깨비에게 샀으니까 우리 것이라고 말하지."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도깨비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빌려주는 것과 같은 의미야. 즉 그 빌린 사람이 돈을 주고 물건을 사갔으면, 그 사람이 죽으면 도로 도깨비들에게 그 물건을 반환되어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그리핀도르의 칼은 후세로 전해졌고, 도깨비들은 그것을 훔쳤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도깨비들은 마법사들이 후세로 유품이 전해 내려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아니, 이해할 생각도 하지 않아. 그 문제는 지금까지 쭉 도깨비들과 마법사들의 갈등이 되었지."


내가 말을 하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리핀도르의 칼을 주지 않으면 그린고트에 들어갈 수 없다. 로우의 힘을 써도 안내하는 도깨비가 없으면 소용없으니까.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흘렸다. 


"좋아."


론이 입을 열자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는 건 어때? 그립훅에게 우리가 금고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만 그 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다음에는 그가 가져가도 된다고 하는 거지. 물론 금고 안에는 가짜가 있을 거야, 안 그래? 그럼 그것들을 바꿔치기해서 그에게 가짜 칼을 주면 되잖아."

"론, 도깨비는 그 차이를 우리보다도 훨씬 더 잘 알아볼 수 있어!"


헤르미온느가 구박햇다.


"그립훅만이 유일하게 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그래, 하지만 우리는 그가 알아채기 전에 달아날 수 있..."


론은 자신을 바라보는 헤르미온느의 표정을 보자, 그만 주눅이 들어 말을 흐렸다.


"그건..."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비열한 짓이야. 그에게 도움을 청해 놓고서, 그를 배신하자고? 왜 도깨비들이 마법사들을 좋아하지 않는지 아직도 모르겠니, 론?"


론의 귀가 새빨개졌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었어! 그러면 네 해결책은 뭔데?"

"우리는 그에게 다른 무언가를 제시해야 해. 정확히 그 칼만큼 아주 가치있는 걸로 말이야."

"아주 훌륭해. 내가 얼른 가서 도깨비들이 만든 다른 골동품 칼을 하나 찾아볼게. 네가 선물 포장을 하면 되겠다."


또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그립훅에게 일단 우리가 금고 안에 들어가는 걸 도와주면 그 다음에 그 칼을 주겠다고 말하자.... 하지만 정확히 언제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론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몹시 놀란 기색이었다.


"해리, 우리는 그래선 안 돼..."

"그립훅은 그걸 가질 수 있어."


해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걸 사용해서 모든 호크룩스를 없애고 난 다음에는 말이야. 그때가 되면 나는 틀림없이 그립훅에게 그 칼을 줄 거야.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어."

"하지만 여러 해가 걸릴지도 몰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그가 반드시 그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난 그를 정말로 속이는 건 아니라고...."


반발심과 수치심으로 가득한 헤르미온느의 표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건 싫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하지만 그거 말고 지금 무슨 방법이 남아 있는데?"


내가 말하자 헤르미온느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그게 묘안인 것 같아."


론이 다시 일어나며 말했다.


"가서 그에게 얘기해 보자."


다시 제일 작은 침실로 돌아온 우리. 해리는 칼을 언제 주겠다고 정확한 시간을 말하지 않도록 단어 선택에 유의하면서 제안을 했다. 해리가 말하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내내 인상을 찡그린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리 포터, 이제 내가 자네를 도와주면 그리핀도르의 칼을 내게 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해리가 대답했다.


"그러면 악수하지."


도깨비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해리는 악수를 했다. 

그립훅은 그의 손을 놓고, 손뼉을 짝 치더니 말했다.


"그럼, 시작하세!"


그것은 마법부에 침투하기 위한 계획을 다시 한 번 세우는 것과도 같았다. 우리는 제일 작은 침실에서 작업을 착수했다 그 방은 그립훅의 취향에 맞게 어둠침침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나는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에 딱 한 번 들어가 봤다."


그립훅이 말했다.


"그 안에 가짜 칼을 넣어 두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였지. 그 금고는 가장 오래된 방 가운데 하나야. 가장 유서 깊은 마법사 가문들은 으레 그들의 보물이 제일 깊은 층에 보관해 놓지. 그곳의 금고들이 가장 크고 보안이 가장 잘 되어 있거든."


우리는 찬장처럼 좁은 그 방에 한 번 들어가면 몇 시간씩 처박혀 있긴 했다. 서서히 시간이 흘러서 몇 주가 지났다. 뛰어넘어야 할 난관이 첩첩산중이었다. 비축해 놓은 폴리주스 마법약이 아주 많이 없어졌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였다. 


"이제 딱 한 명만 쓸 수 있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헤르미온느가 등잔불에 진흙처럼 걸쭉한 마법약을 기울여 보면서 말했다.


"그거면 충분할 거야."


그립훅이 손으로 그린 맨 아래층 통로들의 지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던 해리가 대답했다.

이제 나와 해리, 론, 헤르미온느는 오로지 식사 시간에만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조깨껍데기 오두막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식사 중에 종종 우리를 바라보는 빌의 사려깊고 걱정스런 눈길을 느끼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이 도깨비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그립훅은 예상외로 피에 굶주려 있었고 열등한 생물들이 고통받는다는 생각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투덜대며 마지못해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심지어 다리가 다 나은 후에도 여전히 쇠약한 올리밴더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자신의 방으로 음식 쟁반을 대령하라고 요구했었는데, 결국 플뢰르의 분노가 폭발하여, 빌이 위층으로 올라가 더 이상 이런 대우는 계속해 줄 수 없다고 통보하자 그 이후로 그립훅은 몹시 북적대는 식탁에 동참했다. 


오늘 저녁, 뮤리엘의 댁으로 떠나는 올래빈더가 빌의 부축을 받으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몹시 쇠약해 보이는 지팡이 제작자는 커다란 옷가방을 든 채 빌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보고 싶을 거에요, 올리밴더씨."


루나가 노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도 보고 싶을 거다, 얘야. 그리고 너도 말이지."


루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올리밴더가 말했다. 그는 로우를 보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 끔찍한 곳에서 너희는 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위안이 돼 주었지."

"아뇨.... 전 딱히...."


로우가 부끄러워하면서 몸을 베베 꼬았다.


"그러면 au revoir(또 만나요라는 뜻의 불어), 올래빈더씨."


그의 양쪽 뺨에 입을 맞추며 플뢰르가 말했다.


"뮤리엘 할머니에게 꾸러미를 하나 전해 주시겠어용? 그분의 티아라를 아직 못 돌려드렸거등요."

"그거야 영광이지."


올리밴더가 살짝 절을 하며 말했다.


"이런 융숭한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그 정도도 못할까."


플뢰르는 낡은 벨벳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서 지팡이 제작자에게 보여주었다. 티아라가 낮게 매달린 등잔불 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월장석과 다이아몬드군."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거실 안으로 살며시 들어와 있던 그립훅이 말했다.


"도깨비들이 만든 거 같은데?"

"그리고 마법사들이 값을 치렀지요."


빌이 조용히 대꾸했고, 도깨비는 도전적이면서 동시에 수상쩍은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이윽고 빌과 올리밴더가 어둠 속으로 길을 나섰다. 갑자기 오두막집 창문에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나머지 사람들은 식탁에 빽빽이 둘러앉았다. 그리고 서로 팔꿈치를 맞댄 채,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벽난로 안에서 불꽃이 딱딱 소리를 내며 튀고 있었다. 플뢰르는 그저 음식을 깨작거리고만 있었다. 그녀는 몇 분마다 한 번씩 창문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첫 순서로 나온 요리가 다 먹기도 전에, 빌이 긴 머리를 바람에 헝클어뜨린 채 돌아왔다.


"아무 문제 없었어."


빌이 플뢰르에게 말했다.


"올리밴더씨도 잘 도착했고, 엄마아빠가 안부를 전하더군. 지니는 너희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구나. 프레드와 조지는 뮤리엘 할머니의 성질을 제대로 긁어놓고 있는 모양이야. 그 애들은 아직도 그 집 뒷방에서 부엉이 우편 주문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그래도 할머니는 티아라를 돌려받으시더니 기운이 나시나 보더라고. 하신다는 말씀이 우리가 그걸 훔쳐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더군."

"아이고, 참 상냥하시기도 하지, 당신 할머니용."


플뢰르가 지팡이를 휘둘러 다 비운 접시들을 공중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서, 뿌루퉁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접시들을 들고 방에서 나갔다.


"우리 아빠도 티아라를 만드셨는데."


루나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음, 사실 그건 왕관에 더 가깝긴 해. 아빠는 사라진 래번클로의 보관을 재창조하고 계셔. 이제 그 왕관의 주요한 특징들을 대부분 똑같이 복원하셨나 봐. 거기에 빌리위그 날개를 붙였다는 점이 아주 다르긴 하지만..."


이때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플뢰르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부엌에서 뛰쳐나왓다. 빌은 벌떡 일어나서 지팡이로 문을 겨누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립훅은 소리 없이 식탁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누구냐?"


빌이 외쳤다.


"나요. 리무스 존 루핀!"


무시무시한 바람 사이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님파도라 통스와 결혼한 늑대인간이오. 그리고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의 비밀 파수꾼인 당신이 나에게 이곳 주수를 알려 주었고, 비상시에 오라고 명했소!"

"루핀이로군."


빌이 중얼걸고는 재빨리 문으로 달려가 빗장을 열었다. 들어온 루핀은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여행용 망토를 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하얗게 세어 가는 머리카락은 바람에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다시 몸을 일으킨 세운 루핀은 방을 둘러보며 누가 그곳에 있는지를 확인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아들이야! 장인어른의 이름을 본따서, 우린 그 애 이름을 테트로 정했어!"


헤르미온느가 꺅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요...? 통스가... 통스가 아기를 낳았어요?"

"그래, 그렇다니까! 아기를 낳았어!"


루핀이 외쳤다.

식탁 주위에서 기쁨의 함성과 안도의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헤르미온느의 플뢰르는 동시에 "축하해요!"하고 소리쳤다. 한편 론은 마치 그런 얘기는 생전 처음 듣는다는 듯이, "아기라니, 세상에!"라고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아들이야."


루핀은 자신의 행복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또다시 말했다. 그리고 식탁을 돌아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해리를 꽉 끌어안았다.


"대부가 되어 줄 거지?"


루핀이 해리를 놓쳐주며 말했다.


"제... 제가요?"


해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럼, 당연히 너지. 도라도 대찬성이야. 너만 한 적임자는 없어."

"제가.... 그럼요... 세상에...."


해리는 당황스럽고 놀란 동시에 기뻐했고 빌은 서둘러 포도주를 내왔고, 플뢰르는 루핀에게 함께 한잔하자고 권했다.


"하지만 난 오래 있을 수가 없어. 곧 돌아가야만 해."


루핀이 모두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몇 년은 더 젊어 보였다.


"고마워, 고맙네, 빌."


빌은 곧 모든 사람들의 술잔에 가득 채웠고, 우리는 일어서서 잔을 높이 들었다.


"테디 리무스 루핀을 위해."


루핀이 외쳤다.


"미래의 위대한 마법사를 위해!"

"누구를 더 닮았어요?"


내가 호기심에 물었다.


"내가 보기엔 도라를 닮은 거 같은데, 도라는 날 닮앗다고 하네. 머리털이 별로 없어. 태어났을 땐 검은색인 것 같았는데, 정말 농담이 아니라 한 시간 사이에 빨간 머리로 바뀌었어. 아마도 내가 돌아갈 때쯤엔 금발이 돼 있을 거야. 장모님 말씀으로는 통스의 머리칼도 태어날 때부터 색깔이 바꾸기 시작했대."


루핀이 잔을 쭉 비웠다.


"오오, 그럼 더 할까? 딱 한 잔만."


빌이 다시 잔을 가득 채우자,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바람이 오두막집을 거세게 때렸고, 벽난로 불이 갑자기 타탁거리며 타올랐다. 빌은 포도주 한 병을 더 따고 있었다. 루핀의 소식은 잠시동안이나마 쫓기고 있는 처지로부터 벗어나서는 근심을 잊도록 만들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기분을 들뜨게 했다. 오직 도깨비만이 갑작스러운 축제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듯 그는 슬며시 이제 자기 혼자 차지하게 된 침실로 되돌아갔다.


"안 돼..... 안 돼.... 정말로 돌아가야 해."


마침내 루핀이 또다시 따라 준 포도주를 사양하며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용 망토를 다시 둘러썼다.


"잘 있게. 잘 있어라. 며칠 내에 사진을 몇 장 가져오도록 하지. 내가 너희를 만난 걸 알면, 다들 아주 기뻐할 거야..."


루핀은 망토를 단단히 여민 후에 여자들과는 포옹을 하고 남자들과는 악수를 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황량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대부라니, 해리! 그건 대단한 영예야! 축하해."


나는 해리에게 말하고는 루핀이 떠난 후에도 계속 축하를 하면서 여전히 신이 난 다른 사람들 근처로 갔다. 로우는 복잡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 얼굴이야?"

"아, 로라."

"표정 풀어. 좋은 일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부러워서 말이지."


로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포도주를 들이켰다. 그런 로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랑 같네."


내가 말을 하자,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부러워했거든."


역시 그때 그리몰드 광장 12번지 지하 부엌에서 루핀에게 따끔하게 말해서 다행이다. 통스에게 돌아가서 루핀는 떳떳하니까. 잔에 든 포도주를 들이켰다. 이상하게 맛이 쓰다고 느껴졌다.


작전이 세워지고 모든 준비도 끝났다. 가장 작은 침실의 벽난로 선반 위에는, 헤르미온느가 말포이 저택에서 입고 있던 스웨터에서 떼어 낸, 길고 거친 검은색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작은 유리병 속에 꼬불꼬불 말려 있었다.


"너는 실제로 그 여자의 지팡이를 사용하는 거야."


호두나무 지팡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해리가 말했다.


"그러면 상당히 그럴듯해 보일 것 같아."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혹시라도 그 지팡이를 쥐었다가 찔리거나 물리지 않을까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난 이 물건이 맘에 안 들어."


헤르미온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게 정말 싫어. 나랑은 완전히 안 맞는 것 같아. 내가 쓰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건 마치 그 여자의 일부같아."

"그래도 그렇게 하면 네가 그 여자인 척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론이 말했다.


"그 지팡이가 한 짓을 생각해 보라고!"

"내 말이 그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이건 네빌의 부모님을 고문한 지팡이야. 게다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더 고문했는지 누가 알겠어? 시리우스를 죽인 것도 바로 이 지팡이잖아! 내 지팡이가 그리워."


헤르미온느가 징징거렸다.


"올리밴더씨가 나에게도 지팡이를 새로 하나 만들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아침에 올리밴더가 루나와 로우에게 새 지팡이를 보내 주었던 것이다. 지금 루나와 로우는 뒤뜰 잔디밭으로 나가 늦은 오후의 햇볕을 받으며 지팡이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있었다. 역시 인간 사냥꾼들에게 지팡이를 빼앗긴 딘은 다소 침울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더니 그립훅이 들어왔다.


"우리는 지금 막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어요, 그립훅. 빌과 플뢰르에게는 내일 떠난다고 말했고요. 괜히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지 말라고 일러뒀어요."


특히 이 점을 단단히 못 박아 두었다. 우리는 떠나기 전에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로 변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하려는 일에 대해서 빌과 플뢰르가 알거나 짐작하는 게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설명했다. 인간 사냥꾼들이 우리를 잡아간 날 밤에 퍼킨스의 낡은 텐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빌은 우리에게 다른 텐트를 빌려 주었고, 그것은 헤르미온느의 구슬 백 속으로 들어갔다. 헤르미온느가 그 구슬 백을 양말 밑에 쑤셔 넣는 단순한 방법으로 인간 사냥꾼들에게 뺏기지 않고 지켜 냈다는 사실을 알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난 잃어버렸는데....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의 초상화는 헤르미온느의 구슬 백에 집어넣었으니까 아쉬운 점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쯪."


아침 여섯 시가 되자, 옷을 갈아입고는 만나기로 한 정원으로 조용히 나갔다. 새벽 바람은 싸늘했지만 5월이라 비바람은 거의 없었다.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으로 변한 헤르미온느가 그립훅을 대동한 채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오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에서 가져온 여벌의 낡은 망토 안주머니에 구슬 백을 쑤셔넣고 있었다.


"이 여자는 지독하게 맛이 없었어. 거디루트보다도 더 고약해! 좋아, 론, 이리 와 봐. 내가 해 줄게..."

"알겠어. 하지만 명심해, 난 턱수염이 너무 긴 건 싫다고..."

"오오, 정말이지, 이건 잘생겨 보이는 거랑은 전혀 상관이 없단..."

"그게 아니야, 거추장스럽단 말이야! 하지만 코는 좀 더 짧은 게 좋겠어. 네가 지난번에 해 줬던 것처럼 해 줘."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내쉰 뒤,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며 론의 여러 가지 생김새로 변형시켜 나갔다. 그리고 나도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나와 론은 완전히 허구의 인물로 변장할 계획이었다. 한편 해리와 그립훅은 투명 망토 속에 숨을 계획이었다.


"자... 애 어때 보이니, 해리?"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변장을 한 론의 머리는 길게 늘어져서 굽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빽빽한 갈색 콧수염과 턱수염이 나 있었고, 주근깨는 없었으며, 짧고 넓적한 코와 짙은 눈썹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페투니아를 떠올리면서 그녀를 살짝 모방해서 목이 쭉 뻗은 흑발의 빼빼마른, 웃음끼라고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표정을 하고 있는 부인으로 변했다.


"그럼 이제 가 볼까?"


우리는 희미해지는 별들 아래에 검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 있는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바로 경계가 되는 담장 너머, 더 이상 피델리우스 마법이 작동하지 않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입구를 나서자마자 그립훅이 말했다.


"이제 난 올라타야 할 것 같다, 해리 포터. 안 그래?"


해리가 허리를 굽히자, 도깨비가 그의 등으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해리의 목 앞에서 두 손을 맞잡았다. 헤르미온느가 구슬 백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 두 사람 위로 덮어씌웠다.


"완벽해."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발을 점검하기 위해 허리를 숙이더니 말했다.


"하나도 안 보여. 이제 가자."


우리는 다이애건 앨리로 가는 입구인 리키 콜드런 술집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리키 콜드런의 바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구부정하고 이가 빠진 주인장 톰은 카운터 뒤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 멀리 구석에서 중얼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던 마법사 두 명이 헤르미온느를 흘끗 보더니, 어둠 속으로 뒷걸음질쳤다.


"레스트랭 부인."


톰이 웅얼거렸고, 헤르미온느가 지니가자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안녕하세요."


헤르미온느가 인사를 했다. 그러가 깜짝 놀란 톰의 표정이 보였다.


"너무 공손하잖아."


술집을 빠져나와 좁은 뒷마당으로 들어서며 내가 작게 말했다.


"넌 사람들을 쓰레기 취급해야 한다고!"


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알았다고!"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꺼내더니 앞에 있는 평범한 벽의 어느 벽돌을 톡톡 두드렸다. 즉시 벽돌들이 소용돌이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 한가운데에 구멍이 나타나더니, 차츰 넓어져서 마침내 아치 모양의 통로를 이루었다. 그 통로는 자갈이 깔린 좁다란 거리, 즉 다이애건 앨리로 이어져 있었다.

가게들이 거의 문을 열지 않는 시간이라 거리는 조용했고, 돌아다니는 쇼핑객도 거의 없었다. 다이애건 앨리는 어둠의 마법에 헌납된 몇몇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나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판자로 막아 놓은 상점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러 유리창에 나붙은 포스터에서는기피대상자 1호라는 제목의 해리 포터의 사진이 붙여 있었다. 수많은 남루한 사람들이 건물 입구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몇몇 행인에게 자신들은 진짜 마법사라고 호소하며 처량하게 금화를 구걸했다.

우리가 길을 나서자, 거지들이 헤르미온느를 흘끔거렸다. 그들은 그녀 앞에서 마치 녹아 없어지듯,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가능한 한 잽사게 달아나 버렸다. 피로 얼룩진 안대를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앞길을 막았다.


"내 자식들!"


그 남자는 헤르미온느를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날카로웠다. 마치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우리 애들은 어디 있어? 그놈이 그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넌 알지? 넌 알고 있잖아!"

"난... 난 정말...."


헤르미온느가 말을 더듬거렸다. 남자가 그녀의 목으로 손을 뻗으며 달려들었고 지팡이를 빼들어서는 휘들자, 붉은 광선이 남자를 맞췄다. 남자는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벌렁 내동댕이쳤다. 거리 양편에 있는 창문 너머로 얼굴들이 나타났고, 몇 안 되는 부유해 보이는 행인들의 무리는 어서 이 현장을 떠나려고 망토를 단단히 여민 채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 당황하지 마. 넌 지금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야."


내가 당황한 헤르미온느의 옆으로 다가가서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라면 진작에 거지들에게 주문을 외우고 남았다. 그녀는 비정한 마녀니까.


"아니, 레스트랭 부인!"


무성한 반백의 머리에 길고 뾰족한 코를 가진, 키가 크고 훌쭉한 마법사가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몸을 꼿꼿이 세운 채, 할 수 있는 한 가장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트래버스야."


도깨비가 소근거렸다.


"그래, 무슨 일이지?"


남자는 확실히 기분이 상한 듯, 오던 걸음을 멈추었다.


"전 단지 인사를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제노필리우스의 집으로 불려 왔던 죽음을 먹는 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저를 마주하는 게 달갑지 않으시다면...."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트래버스."


헤르미온느가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재빨리 대답했다.


"어떻게 지내시지요?"

"저,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어떻게 밖으로 돌아다니느 모습을 보니 놀랍군요, 벨라트릭스."

"정말이요 어째서 그런가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저..."


트래버스가 헛기침을 했다.


"제가 듣기론, 말포이 저택에 사는 사람들이 그 집에 감금되었다고, 그.... 탈출 이후로요."

"어둠의 마왕님께서는 과거에 그분을 가장 충성스럽게 섬겼던 이들을 용서해 주시지요."


헤르미온느는 벨라트릭스의 시건방진 말투를 멋지게 흉내내며 말했다.


"아마도 당신의 신임은 저만큼 좋지 못한 모양이군요, 트래버스."


죽음을 먹는 자는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한결 의심이 사라진 듯했다. 그는 내가 방금 기절 마법으로 공격한 남자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저놈이 당신의 신경을 건드리기라도 했나요?"

"괜찮아요. 다시는 그러지 못할 테니까."


헤르미온느가 싸늘하게 말했다.


"몇몇 지팡이가 없는 놈들이 말썽입니다."


트래버스가 말했다.


"다른 짓은 하지 않고 구걸이나 하고 다니는 거야 아무 이의가 없습니다만, 지난주에는 그 중 한 명이 실제로 제게 자기 사건을 마법부에 청원해 달라고 부탁하지 뭡니까. '저는 마녀예요, 선생님. 저는 마녀라고요. 제발 그걸 선생님께 증명하게 해 주세요!'"


트래버스가 여자 흉내를 내며 끽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그런다고 제가 제 지팡이를 그 여자에게 주기라도 할 듯이 말이죠. 그런데 누구 지팡이를...."


트래버스가 잔뜩 호기심을 보이며 말했다.


"지금 사용하고 계신 건가요, 벨라트릭스? 제가 듣기로는 당신 것은..."

"제 지팡이는 여기 있어요."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치켜 들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잘못된 정보를 들은 것 같군요, 트래버스."


트래버스는 그 말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리고 대신 나와 론을 돌아봤다.


"당신의 친구 분들은 뉘신지요? 전 잘 모르겠군요."

"이분들은 데스파드 부부에요. 드래고미르 데스파드와 파르팔라 데스파드죠."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우리는 가상의 외국인인 척하는 편이 가장 안전할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분들은 영어를 거의 못하시지만, 어둠의 마왕님의 뜻에 공감하시죠. 그래서 우리의 새로운 체계를 구경하기 위해 트란실바니아에서 이곳까지 여행을 오셨어요."

"정말인가요? 안녕하세요, 드래고미르?"

"안녀하쎄요?"


론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트래버스는 손가락 두 개를 내밀면서, 마치 손이 더럽혀질까 두렵다는 뜻 론과 마지못해 악수를 했다.


"당신과, 당신의.... 아... 공감하시는 친구 분들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이른 시각에 다이애건 앨리에 나오셨나요?"


트래버스가 물었다.


"그린고트에 들러야 해서요."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저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래버스가 말했다.


"황금, 더러운 황금! 우리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지요.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지면, 그 손가락 긴 친구들과 반드시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이 저는 퍽 유감스럽습니다. 그럼 함께 갈까요?"


헤르미온느에게 앞서 가라는 손짓을 하며, 트래버스가 말햇다. 결국 우리에게는 그와 함께 자갈이 깔린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길 앞에는 눈처럼 새하얀 그린고트가 다른 조그만 가게들 위로 우뚝 서있었다. 거대한 청동 문으로 들어가는 대리석 층계 밑에 도착했다. 그립훅이 이미 우리에게 경고한 바와 같이, 평상시에 입구의 양옆을 지키던 제복을 입은 도깨비들은 두 명의 마법사로 교체되어 있었고, 두 사람 모두 길고 가느다란 황금 막대를 꼭 쥐고 있었다.


"아, 거짓말 탐지기로군요."


트래버스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몹시 야만적이긴 하지만.... 효과적이죠!"


트래버스는 양쪽 마법사들에게 좌우로 고개를 끄덕이며 층계를 올라갔다. 경비 마법사들은 황금 막대를 들어서 그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해리가 혼동 마법을 둘에게 걸었고 헤르미온느가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를 등 뒤로 찰랑거리며 층계로 올라갔다.


"잠깐만요, 부인."


보초가 탐지기를 치켜들며 말했다.


"방금 했잖아!"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의 거만한 명령조로 말했다. 그 보초는 당황했다. 그리고 가느다란 황금 탐지기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그다음에 동료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 동료는 약간 얼빠진 목소리로 "그래, 네가 저분들을 방금 검사햇잖아."라고 말했다. 우리는 헤르미온느와 함께 쌩하니 걸어 올라갔다. 

안쪽 문 앞에는 도깨비 두 명이 서 있었다. 그 문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잠재적인 도둑들에게 무시무시한 응징을 경고하는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 시구를 힐끗 보고는 은행의 넓은 대리석 홀 안으로 들어갔다. 긴 카운터에는 높은 의자 위에 걸터앉은 도깨비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그들은 그날 첫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와 론, 트래버스와 함께 외알 안경을 낀 채 두꺼운 금화를 살펴보고 있는 늙은 도깨비를 향해 걸어갔다. 헤르미온느는 우리에게 이 홀의 특징들을 설명해 준다는 구실로 트래버스가 앞서 가도록 했다.


"레스트랭 부인!"


도깨비가 헤르미온느가 다가서자 깜짝 놀란 어조로 말했다.


"이것 참! 무엇을.... 오늘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내 금고에 들어가야겠어."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늙은 도깨비가 약간 움찔했다. 그리고 주위의 도깨비들이 일을 하다 말고 고개 들어 헤르미온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분증은.... 가져오셨지요?"


도깨비가 물었다.


"신분증? 난... 난 한 번도 신분증을 제시하란 요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도깨비들이 알고 있다. 우리가 올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신의 지팡이면 충분하겠습니다, 부인."


도깨비가 말했다. 그리고 살짝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헤르미온느는 지팡이를 내밀었고, 도깨비는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받아 들고 자세히 검사하더니 말했다.


"아, 새 지팡이를 맞추셨군요, 레스트랭 부인!"

"뭐라고?"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건 내 거야...."

"새 지팡이요?"


트래버스가 다시 카운터로 다가오며 말했다. 아직도 사방에서 도깨비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느 지팡이 제작자한테 맡기셨는지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트래버스가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눈동자가 풀려 있다.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려 있는 건가? 대체 누가? 설마 해리가 사용한 건가?


"예, 아주 근사합니다. 말은 잘 듣나요? 저는 언제나 지팡이란 길을 좀 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헤르미온느는 완전히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이상한 반전을 받아들였다. 카운터 뒤에 있던 늙은 도깨비가 손뼉을 쫙 치자, 좀 더 젊은 도깨비가 다가왔다.


"클랭커가 필요하네."


늙은 도깨비가 젊은 도깨비에게 말했다. 그러자 젊은 도깨비는 잽싸게 물러가더니, 잠시 후 짤랑거리는 금속이 가득 들어 있는 것 같은 가죽 가방을 들고 돌아와 늙은 도깨비에게 건넸다.


"좋아요, 좋아! 제가 금고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레스트랭 부인."


늙은 도깨비가 이렇게 말하며 높은 의자에서 풀썩 뛰어내리자, 잠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도깨비는 카운터 끝을 돌아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쪽으로 신나게 다가왔다. 가죽 가방 속에 든 물건은 여전히 짤랑거리고 있었다.


"기다리게, 보그로드!"


또 다른 도깨비가 카운터를 돌아서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저희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도깨비는 헤르미온느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용서해주십시오, 부인. 하지만 레스트랭 가문의 금고에 대한 특별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도깨비는 보그로드의 귀에 대고 다급히 속삭였지만,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린 늙은 도깨비는 그를 무시했다.


"나도 그 지시를 알고 있네. 하지만 레스트랭 부인께서 자신의 금고에 들어가고 싶어 하시지 않나.... 아주 유서깊은 가문이고, 오랜 고객이지... 자, 이쪽으로..."


늙은 도깨비는 여전히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홀 밖으로 나가는 여러 문들 가운데 하나를 향해 서둘러 걸어갔다. 트래버스는 여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럴 때 그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얌전히 뒤를 쫓았다. 문 앞에 당도한 우리는 울퉁불퉁한 돌로 된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에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큰일났군. 그들이 의심하고 있어."


뒤에서 문이 쿵 닫히는 순간, 해리가 이렇게 말하면서 투명 망토를 끌어내렸다. 그립훅은 그의 어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들에게는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었어."


하나같이 멍한 얼굴로 서 있는 트래버스와 보그로드를 보고 헤르미온느와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해리가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강력하게 걸지는 못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겠어..."

"우리 이제 어떻게 하지?"


론이 물었다.


"아직 할 수 있을 때, 여길 나갈까?"

"글쎄, 그럴 수만 있다면."


헤르미온느가 중앙 홀로 들어가는 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 계속 해야 해."


해리가 말했다.


"좋아!"


그립훅이 말했다.


"그럼, 보그로드가 궤도차를 조종하도록 해야 해. 나는 더 이상 권한이 없으니까. 하지만 저기 저 마법사가 탈 자리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해리는 지팡이로 트래버스를 가리켰다.


"임페리오!"


트래버스는 발길을 돌리더니 어두운 선로를 따라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뭘 하도록 만든 거야?"

"숨도록 했어."


해리가 이번에는 지팡이로 보그로드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러자 보그로드는 휙 하고 휘파람을 불어 자그만 궤도차를 호출했다. 궤도차는 어둠 속에서 선로를 타고 우리 쪽으로 굴러 왔다. 우리 모두가 궤도차에 올라타고 있을 때, 중앙 홀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보그로드가 그립훅과 함께 앞에 탔고 우리는 뒤쪽에 끼어 탔다. 그리고 궤도차는 속력을 내며 출발했다. 벽의 틈새 속으로 버둥거리며 들어가고 있는 트래버스를 지나서 앞으로 돌진했다. 곧 궤도차는 요리조리 방향을 틀면서 미로 같은 통로를 통과하기 시작하더니 아래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그린고트 안으로 깊이 들어왔고, 속력을 내어 U자 형 커브를 돌았다. 별안간 우리 앞에 선로 위로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안 돼!"


그립훅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대로 그 폭포를 휙 통과했다. 눈과 입 속에 물이 가득 차서 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갑자기 궤도차가 덜컹거리더니 뒤집혀졌고 우리는 일제히 밖으로 튕겨 나갔다. 지팡이를 꺼내서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우리는 아무런 고통 없이 울퉁불퉁한 통로 바닥에 가볍게 등을 대고 떨어졌다.


"와, 완충 마법이야."


푸푸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론과 헤르미온느가 보였다. 아마도 내 모습도 원래대로 변했겠지. 


"도둑 방지용 폭포야!"


그립훅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물바다가 되어 버린 선로를 돌아보며 말햇다. 


"그건 모든 마법을 씻어 버리지. 모든 마법적 위장을 말이야! 그들은 그린고트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리를 막기 위해서 방어 장치들을 작동시킨 거야."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흔들고 있는 보그로드가 보였다. 도둑방지용 폭포가 임페리우스 저주도 제거한 것 같았다.


"우리는 저자가 필요해."


그립훅이 말했다.


"그린곤트의 도깨비 없이 금고 안에 들어갈 수는 없어. 그리고 클랭커도 필요해!"

"임페리오!"


해리가 다시 주문을 외웠다. 그의 목소리가 돌로 된 통로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도깨비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전중하고 무심한표정으로 변했다. 론은 잽싸게 금속 연장들이 들어 있는 가죽 가방을 낚아챘다.


"해리,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이렇게 말하더니, 벨라트릭스의 지팡이로 폭포를 가리키며 외쳤다. 


"프로테고!"


방패 마법이 통로로 흘러넘치는 마법의 물을 차단했다.


"생각 잘 했어."


내가 말했다.


"길을 안내해요, 그립훅!"


해리가 말했다.


"어떻게 다시 빠져나가지?"


론이 도깨비를 쫓아 어둠 속으로 서둘러 걸어가면서 말했다. 한편 보그로드가 늙은 개처럼 헐떡거리며 뒤를 따라왔다.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자."


해리가 말했다.


"그립훅, 얼마나 멀었죠?"

"멀지 않았어, 해리 포터. 멀지 않아."


모퉁이를 돌았을 때, 거대한 용이 땅바닥에 사슬에 묶인 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네댓 개의 금고로 들어가는 문을 막고 있었다. 땅 밑에 너무 오래 감금되어 있어서, 괴수의 비늘은 색이 바래고 푸석푸석했으며, 눈은 뿌연 빛이 감도는 핑크색이 되었다. 그리고 양쪽 뒷다리에는 묵직한 족쇄가 채워져 있었는데, 족쇄에 달린 쇠사슬은 바닥에 깊이 박힌 거대한 말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한편 거대하고 뾰족한 날개는 몸통 옆에 접혀 있었다. 용의 흉측한 머리통은 우리 쪽으로 돌리더니 바위가 진동할만큼 커다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고 불길을 내뿜은 바람에 우리는 통로로 거슬러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은 앞을 잘 못 봐."


그립훅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래서인지 엄청나게 사납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저놈을 조종할 방법이 있다. 저놈은 클랭커가 다가오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배웠어. 그거 나한테 줘."


론이 가방을 그립훅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도깨비는 수많은 작은 금속 도구들을 꺼냈는데, 그것들은 흔들면 마치 작은 망치가 모루를 내려치듯 쨍쨍 울리는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립훅이 그것들을 내밀자 보그로드는 자신의 크랭커를 고분고분 받아들었다.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잇지?"


그립훅이 우리에게 말했다.


"저놈은 이 소음을 들으면 그다음에는 고통이 따라온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까 저놈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을 때, 보그로드가 손바닥을 금고 문 위에 올려놓아야만 해."


클랭커를 흔들며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아갔다. 그 소리는 바위투성이 벽돌에 메아리쳐 엄청나게 큰 소리로 증폭했다. 그 굉음에 용은 또 한 번 사납게 포효하더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용의 얼굴에는 잔혹하게 난 칼자국들이 있었다. 


"그에게 손으로 문을 누르라고 해!"


그립훅이 해리를 재촉하자, 해리는 지팡이를 다시 보그로드에게 겨누었다. 늙은 도깨비는 명령에 따라 손바닥으로 나무 문을 눌렀다. 그러자 금고 문이 스르르 녹아 없어지면서 동굴 같은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황금 동전과 황금 잔, 순은 갑옷, 괴이한 생물들의 가죽, 보석이 박힌 유리병에 담긴 마법약과 여전히 왕관을 쓰고 있는 해골 등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찾아봐, 빨리!"


해리가 외치자 우리는 금고 안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가서 후플푸프의 잔을 찾았다. 미처 주위를 둘러보기 전에,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다. 문이 다시 나타나서 우리를 금고 안에 가둬버렸고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상관없어. 보그로드가 우리를 내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론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자 그립훅이 타일렀다.


"지팡이를 좀 밝혀 주겠어? 그리고 서둘러! 시간이 별로 없다고!"

"루모스!"


불 밝힌 지팡이로 금고 안을 비추었다. 해리, 론, 헤르미온느도 각자 지팡에 불을 밝혔고 주위에 쌓여 있는 물건 더미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해리, 이게 혹시....? 아아!"


헤르미온느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보석 박힌 잔 하나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잔은 바닥에 떨어져서 갈라지더니 수많은 잔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쨍그랑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루는 사방으로 굴러가는 똑같은 잔들로 뒤덮였다. 이제 그것들 중에서 원래 잔을 구별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저 잔에 데었어!"


헤르미온느가 물집이 생긴 손가락을 빨며 신음했다.


"복제 저주와 화상 저주를 동시에 걸어 놓은 거야!"


그립훅이 말했다.


"너희가 만지는 모든 것들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동시에 복제될 거야. 복제된 것들은 아무 가치도 없지.... 그러니 만약 너희가 보물에 계속 손을 댄다면, 결국 주체할 수 없이 불어난 황금의 무게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좋아, 아무것도 만지지 마!"


해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론이 떨어진 잔 하나를 잘못해서 발로 슬쩍 건드리고 말았다. 펑 하며 스무 개는 더 되는 잔이 늘어났고, 론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뜨거운 금속에 닿은 그의 신발 일부가 타 버렸다.


"가만히 서 있어! 움직이지 마!"


헤르미온느가 론을 꽉 붙들며 말했다.


"그냥 둘러만 봐!"


해리가 말했다.


"기억해 봐. 그 잔은 작고 황금으로 돼 있어. 오소리가 새겨져 있고, 손잡이가 둘이야... 그 외에도 어딘가에 래번클로의 상징인 독수리가 있는지 살펴 봐...."


제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맴돌면서 후미진 구석과 틈새까지 샅샅이 지팡이를 비추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의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된 바닥에 가짜 금화 홍수를 일으키고 있는 번쩍이는 황금은 열기로 더욱 달아올랐고, 금고 안은 마치 용광로 같았다. 


"저기 있어!"


천장까지 솟아 있는 선반에 있는 후플푸프의 잔을 보자 내가 외쳤다. 


"하지만 대체 무슨 수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저 위에 올라간담?"


론이 물었다.


"아씨오 잔!"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너무나 절박했던 나머지 헤르미온느는 그립훅이 작전 기간 동안 일러 준 사실들을 까먹은 것이 분명했다.


"소용없어, 소용없다니까!"


도깨비가 호통을 쳤다.


"그럼 어떡하죠?"


해리가 도깨비에게 물었다.


"만약 칼을 원한다면, 그립훅, 우리를 더 제대로 도와줘야 해요. 잠깐! 칼로는 물건을 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헤르미온느, 그거 이리 줘 봐!"


헤르미온느는 망토 안쪽을 더듬어 구슬 백을 꺼냈다. 그리고 잠시 주섬주섬 뒤적이더니, 번쩍이는 칼을 내놓았다. 해리는 루비가 박힌 칼자루를 쥐고, 칼끝으로 가까이에 있는 은제 포도주 병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과연 그 병은 불어나지 않았다.


"내가 저 손잡이에 칼을 찔러 넣을 수만 잇다면.... 하지만 저 위에까지 어떻게 올라가지?"


잔이 놓여 있는 선반은 어느 누구의 손에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있었다. 마법에 걸린 보물들에서 흘러나오는 열기가 이글이글 치솟았다. 잠시 후 금고 문 저편에서 용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쩔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문 너머에 도깨비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난 저 위에 올라가야 해. 반드시 저걸 없애야 한다고."

"레비코푸스."


내가 해리를 향해서 지팡이를 겨누고 속삭였다. 발목을 낚아채인 듯 거꾸로 공중에 떠올린 해리가 갑옷에 부딪혔다. 그러자 하얗게 달아오른 몸뚱이 같은 가짜 갑옷들이 우르르 불어나면서 비좁은 공간을 가득 메었다.


"미안!!"


론과 헤르미온느, 두 도깨비가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며 다른 물건들 위로 쓰러졌다. 그러자 그 물건들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점점 차오르는, 시뻘겋게 달궈진 보물들 속에 반쯤 파묻힌 우리는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해리가 후플푸프의 잔 손잡이에 칼을 밀어 넣었고, 칼날로 잔을 낚아챘다.


"엠피르비우스!"


헤르미온느가 자신과 나와 론, 도깨비들을 달아오른 금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리베라코푸스!"


도깨비들이 보물의 홍수 속에 파묻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해리와 그립훅은 불어난 보물의 꼭대기에 내려앉았다.


"저걸 잡아!"


칼을 놓친 해리가 뜨거운 쇠붙이가 살갗에 닿는 고통과 싸우며 소리쳤다. 문 반대편에서는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그립훅이 그리핀도르의 칼을 잡고 후플푸프의 잔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잔을 해리가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금고 문이 열렸다.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어마어마하게 불어나고 있는 뜨거운 금과 은 더미가 우리를 실은 채 금고 밖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도와주세요! 도둑이야!"


그립훅이 우리를 에워싼 도깨비들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숨더니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또깨비들 모두 손에 단도를 들고 있었고, 그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스투페파이!"


뜨거운 쇠붙이 위에서 일어나서는 외쳤다. 해리, 론, 헤르미온느도 가세했다. 빨간 광선이 도깨비 무리를 향해 발사되었다. 몇몇 도깨비가 쓰러졌지만 나머지 도깨비들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었다.

사슬에 묶인 용이 으르렁거리더니, 불길이 도깨비들을 향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레라시오!"


해리가 용을 묶어 두고 있는 두꺼운 족쇄를 지팡이로 가리키며 외쳤다. 족쇄가 쾅 소리를 내며 부셔졌다.


"이쪽이야!"


해리가 소리쳤다. 그리고 눈먼 용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해리.... 해리....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일어나! 올라타, 어서!"


용의 등에 올라탄 해리의 도움을 받아서 그의 등에 올라탔고, 손을 뻗어서 헤르미온느가 올라오는 것을 도왔다. 우리를 뒤따라서 론도 용의 등에 올라탔다. 잠시 후 용은 자신이 풀려났음을 깨달았다. 드디어 용은 포효하며 뒷다리로 번쩍 일어섰다. 날개가 펼쳐지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도깨비들을 볼링 핀처럼 쓰러뜨렸다. 용은 공중으로 훌쩍 솟아올랐다. 우리는 용의 등에 납작 달라붙었지만, 용이 열려 있는 출구를 향해 뛰어들자, 천장에 닿아 몸이 긁혔다. 한편 추격하던 도깨비들이 사납게 단도를 휘둘렀지만 용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우리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이 녀석은 너무 커!"


헤릠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용은 입을 쩍 벌리더니 또다시 불꽃을 내뿜어 통로를 폭파해 버렸다. 통로의 바닥과 천장이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용은 어마어마한 힘으로 길을 헤치고 나아갔다.


"데포디오!"


용이 크랭커를 울리며 악을 쓰는 도깨비들로부터 달아나서 더욱 신선한 대기를 향해 날아오르려고 몸부림을 치는 동안, 천장에 금을 내어 용이 통로를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헤르미온느도 내 행동에 같이 주문을 외워줬고 곧 해리와 론도 우리를 따라했다. 더 많은 굴착 주문으로 천장을 산산조각냈다. 느릿느릿 기어가며 으르렁거리는 용은 자신 앞에 기다리고 있는 드넓은 공간과 자유를 감지한 듯 불길을 내뿜었다. 마침내 주문과 용의 무지막지한 힘이 합쳐져 통로를 폭파했고, 우리는 대리석 홀로 탈출했다. 도깨비들과 마법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숨을 곳을 찾아 도망쳤다. 시원한 바깥 공기를 향해서 용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철문들을 강제로 뚫고, 기우뚱거리며 다이애건 앨리로 빠져나가 하늘로 높이 솟구쳐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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