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돌자 앞으로 통로가 끝나는 지점이 나타났다. 또 다른 짧은 층계가 아리애나의 초상화 뒤에 감춰져 있던 것과 똑같은 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네빌은 그 문을 열고서 위로 올라갔다. 


"누가 왔는지 봐! 내가 말하지 않았니?"


통로를 넘어 방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비명 소리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해리!"

"포터야, 해리 포터라고!"

"론!"

"로라!"

"헤르미온느!"


알록달록한 벽걸이들과 등잔들, 그리고 수많은 얼굴들이 눈앞에 한꺼번에 쏟아졌다. 잠시 후 우리는 스무 명이 넘는 듯한 사람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였다. 사람들은 우리를 껴안고 등을 두드리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악수를 청했다. 


"언니!"


미셸과 실비아가 나를 끌어안고는 포옹을 풀지 않았다. 어디에도 가지 말라는 듯이 꽉 끌어안고 있었다.


"좋아, 좋아, 진정해!"


네빌이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고 둘은 포옹을 풀었다. 

이곳은 아주 거대했으며, 특별히 호사스러운 목조 건물 저택이나 거대한 선박의 선실 내부처럼 보였다. 온갖 색깔의 그물침대들이 천장과 발코니에 매달려 있었는데, 발코니는 짙은 색 나무 판자를 댄, 창문 없는 벽 앞으로 빙 둘러져 나 있었다. 그리고 벽들은 환한 빛깔의 벽걸이 양탄자로 뒤덮여 있었다. 빨간색 천 위에 수놓은 그리핀도르의 황금 사자를 보았다. 노란색을 바탕으로 한 후플푸프의 검은 오소리와 파란색을 바탕으로 한 래번클로의 청동빛 독수리, 슬리데린의 은색 뱀이 있었다(뱀은 다른 깃발보다 작게 그러져 있었다). 그 외에도 책들이 가득 꽂혀있는 책꽂이와 벽에 기대어 놓은 빗자루 몇 개, 한쪽 구석에는 나무로 된 커다란 라디오가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당연히 필요의 방이지!"


네빌이 말했다.


"예전보다 훨씬 훌륭하지, 안 그래? 캐로우 남매가 나를 추적하고 있었고, 나는 이제 남은 은신처는 오직 하나뿐이란 걸 깨달았어. 결국 용케도 그 문을 통과해서 이곳을 발견한 거야! 사실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땐, 지금처럼 이렇지는 않았어. 이 방은 훨씬 더 작았고, 그물 침대 하나와 그리핀도르의 벽걸이밖에 없었어.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덤블도어의 군대 회원들이 도착함에 따라 이 방은 더욱더 커졌어."

"그러면 캐로우 남매는 못 들어오니?"


해리가 어디 문이 없나 둘러보며 물었다.


"못 들어와."


시무스가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온통 멍이 들고 퉁퉁 부어 있었다.


"이곳은 아주 제대로 된 은신처야.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이 안에 머물고 있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를 찾아낼 수 없어. 문이 열리지 않거든. 이건 모두 다 네빌이 알아냈어. 네빌은 정말로 이 방에 대해 훤하다니까. 필요로 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 방에서 요청해야만 해. 이를테면 '나는 그 어떤 캐로우 지지자들도 들어올 수 없기 바랍니다.' 하는 식으로 ㅁ라이야. 그러면 이 방은 그대로 해 줄 거야! 넌 그저 문구멍이나 제대로 닫으면 된다고! 네빌이 전문가라니까!"

"사실 이건 아주 간단한 거야."


네빌이 겸손하게 말했다.


"이 방에서 하루하고 한나절쯤 지냈을 때, 너무나 배가 고파서 먹을 걸 좀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랬더니 바로 그때 호그스 해도로 가는 통로가 열리더군. 나는 그 통로를 따라 내려갔고 애버포스를 만났지. 그 후로 줄곧 그가 우리에게 음식을 대 주었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방은 단 한 가지, 먹을 것만은 제공해 주지 못하거든."

"그건 말이지, 음식은 원소 변신술에 대한 겜프 법령의 다섯가지 주요 예외 사항들 가운데 하나거든."


론의 대답에 모두 깜짝 놀랐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방에서 거의 2주 동안이나 숨어 지냈어."


시무스가 말을 이었다. 


"이 방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마다 더 많은 그물 침대를 만들어 냈어. 심지어 여자애들이 나타나니까 제법 괜찮은 화장실까지 솟아나게 하더라니까."

"맞아, 정말이지 간절히 씻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라벤더 브라운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제서야 친숙한 얼굴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쌍둥이 패틸 자매도 있었고, 테리 부트, 어니 맥밀란, 안토니 골드스틴과 마이클 코너도 있었다. 


"그나저나 너희는 지금까지 뭘 하고 지냈는지 얘기해 줘. 정말 너무나 많은 소문들이 무성했어. 우리는 계속 <포터워치>로 너의 근항을 따라잡으려고 애썼지."


어니가 라디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가 그린고트에 침입하지는 않았지?"

"그랬대!"


네빌이 말했다.


"용 얘기도 진짜래!"


산발적인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몇 명은 우우 함성을 질렀다. 론은 정중히 답례 인사를 했다.


"무엇을 찾고 있었던 거야?"


시무스가 열의에 차서 물었다. 그 때 해리가 휘청거렸고 나는 그를 부축했다. 그는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다른 쪽은 론이 해리를 부축했다.


"괜찮아, 해리?"


네빌이 물었다.


"어디 앉을래? 피곤할 거야, 그렇지?"

"괜찮아."


해리가 대답했다.


"우리는 당장 시작해야 해."


그가 말했다. 그 말에 나와 론, 헤르미온는 단번에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 이제 우린 무얼 해야 하지, 해리? 계획이 뭐야?"


시무스가 물었다.


"계획?"


해리가 되물었다.


"어, 우리는... 그러니까 로라와 론과 헤르미온느과 나는 말이지, 해야 할 일이 있어. 우리느 ㄴ여기를 떠날 거야."


이번에는 어느 누구도 웃거나 환호하지 않았다. 네빌은 당황한 듯했다.


"무슨 말이야, 여길 떠나다니?"

"우린 이곳에 머물려고 돌아온 게 아니야. 우린 해야할 일이 있어."


내가 해리를 대신해서 말했다.


"그게 뭔데?"

"말해 줄 수 없어."


이 말에 온 방 안이 투덜대는 소리로 술렁거렸다. 네빌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우리한테는 말할 수 없는 거야? 그건 그 사람과 싸우는 것과 관계된 일일 거 아냐, 그렇잖아?"

"어, 그래...."

"그럼 우리가 너희를 도와줄게."


다른 덤블도어의 군대 회원들도 열의에 찬 얼굴로, 혹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두 명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기꺼이 당장이라도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너희는 이해 못할 거야. 우리는.... 우리는 너희에게 말해 줄 수가 없어. 그 일은 우리가 해내야 해. 우리 힘만으로."

"왜?"


네빌이 물었다.


"왜냐하면... 덤블도어 교수님은 우리 네 사람에게 어떤 임무를 남기셨어."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임무를 대해서는 말해서 안 돼.... 그러니까 교수님은 우리가 그 일을 해내길 바라셨어. 딱 우리 넷이서만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교수님의 군대야."


네빌이 말했다.


"덤블도어 군대라고. 우리는 모두 한 팀이야. 너희 네 사람만 따로 떠나 있는 동안에도, 우린 그걸 유지해 왔다고..."

"우리는 소풍을 갔던 거 아니야, 친구."


론이 말했다.


"그렇다고 말한 적이 없어. 하지만 난 왜 너희가 우리를 못 믿는지 모르겠어. 이 방에 있는 사람 모두가 계속 싸워왔고, 캐로우 남매의 추적을 받아서 이곳까지 쫓겨 온 거야.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덤블도어 교수님에 대한, 그리고 너에 대한 충성을 입증했단 말이야."

"이봐."


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터널 문이 열렸다.


"우리는 네 메세지를 받았어, 네빌! 안녕 너희 네 사람! 나는 너희가 반드시 여기 올 거라고 생각했지!"


그것은 루나와 로우, 딘이었다. 시무스는 기쁨을 못 이기고 큰 소리로 웃으며 마구 달려가더니, 단짝 친구를 꼭 껴안았다.


"안녕, 얘들아! 아아, 돌아오니까 너무 좋다!"


루나가 신이 나서 외쳤다.


"루나!"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너 어떻게...?"

"내가 루나에게 연락했어."


네빌이 가짜 갈레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너희가 나타나면 알려 주기로 루나와 지니에게 약속했거든. 우리는 모두 네가 돌아오면, 그것은 곧 혁명을 의미한다고 믿었어. 우리가 스네이프와 캐로우 남매를 타도할 거라고 말이야."

"그야 당연하잖아."


루나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안 그래, 해리? 우리는 그들을 호그와트에서 쫓아낼 거잖아?"

"내 말 좀 들어 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우리는 단지 래번클로의 보관함을 찾으러 온 것뿐인데...


"미안해. 하지만 우리가 돌아온 이유는 그게 아니야.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그 다음에..."

"너는 우리를 이 아수라장 속에 남겨 두고 갈 거란 말이야?"


마이클 코너가 다그쳐 물었다.


"아니야! 우리가 하려는 일은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거야. 그건 전적으로 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거니까.."


론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돕도록 해 줘! 우리도 이 일에 참여하고 싶어!"


네빌이 분노에 차서 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또다시 문이 열렸다. 지니가 벽의 구멍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프레드와 조지, 리 조던이 그 뒤를 바짝 쫓아왔다.


"애버포스씨가 좀 짜증스러워하시던걸."


프레드가 몇몇 사람들이 인사하는 소리에 손을 들어 답하면서 말했다.


"한숨 자고 싶은데, 그의 술집이 철도역으로 바뀌었으니."


리 조던의 바로 뒤에서 초 챙과 케드릭 디고리, 볼프람 그린그래스가 나타난 거였다.


"메세지를 받았어."


초 챙이 가짜 갈레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서 마이클 코너의 옆에 앉았다. 


"그래, 계획이 뭐야, 해리?"


조지가 물었다.


"그런 건 하나도 없어."


해리가 대답했다. 갑작스러운 사라들의 출현에 당황했는지 계획이 있을리가 없잖아. 


"우리는 쫓아가서 그냥 거들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거야말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이지."


프레드가 말했다. 


"당장 이런 짓을 그만둬!"


해리가 네빌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하러 이 사람들을 다 불러들인 거야? 이건 정신 나간 짓이야!"

"우리는 싸우고 있어, 그렇잖아?"


딘이 가짜 갈레온을 꺼내며 말했다.


"여기 이 메시지에는 해리가 돌아왔다고 적혀 있어. 그리고 우리는 함께 싸울 거야! 물론 난 지팡이가 있어야 하겠지만..."

"너, 지팡이가 없단 말이야?"


시무스가 말문을 열었다. 론이 갑자기 나와 해리쪽으로 돌아섰다.


"왜 얘네들이 도우면 안 되는데?"

"론!"

"얘네들은 도와줄 수 있어."


론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말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서 있는 나와 헤르미온느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게 어디 있는지 몰라.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그걸 찾아야 해. 굳이 그게 호크룩스라고 만할 필요는 없잖아."

"론의 말이 맞아. 우리도 우리가 뭘 찾고 잇는지 모르잖아. 우리에겐 이 애들이 필요해."


론과 헤르미온느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해리..."


나는 해리를 쳐다보았다.


"너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할 필요는 없어, 해리."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좋아."


해리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럼, 좋아!"


해리가 모두를 향해서 외치자 모든 소음이 싹 사라졌다. 옆의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농담을 쏟아 내고 있던 프레드와 조지도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바싹 긴장하고 흥분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뭔가를 찾아야만 해."


해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사람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뭔가를 말이야. 그게 여기 호그와트에 있는데,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어. 그건 아마도 래번클로의 물건일 거야. 누구든 그런 물건에 대해 들어 본 적 없니? 이를테면 래번클로의 독수리가 위에 앉아 잇는 그런 물건을 우연히라도 본 적 없어?"

"그러니까, 해리! 그건 래번클로의 보관이라고 말했잖아."

"그런데 그 래번클로 사라진 보관은..."


마이클 코너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사라졌어. 중요한 건 그거야."

"그게 언제 사라졌지?"


해리가 물었다.


"사람들 말로는 수 세기 전이래. 플리트윅 교수님 말씀으로는, 그 보관이 래번클로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졌댔어. 사람들이 찾아봤지만..."


초는 자신의 래번클로 동료들에게 동의를 구하듯이 말했다.


"아무도 그것의 행방을 찾지 못했어, 안 그래?"


그러자 래번클로 학생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데, 도대체 보관이 뭐야?"


론이 물었다.


"그건 일종의 왕관이야."


테리 부트가 말했다.


"래번클로의 보관은 마법 능력을 갖고 있어서, 그것을 쓴 사람은 지혜가 향샹된대."

"그래, 우리 아빠의 렉스퍼트 빨대도..."


하지만 해리가 루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면 너희 중 아무도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거니?"


그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초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네가 만일 그 보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면, 내가 우리 기숙사의 학생 휴게실에 데리고 올라가서 보여 줄 수 있는데, 해리, 래번클로 동상이 그걸 쓰고 있거든."

"그가 이동중이야."


해리가 우리에게 말했다. 점점 더 시간이 없네.


"이봐, 별로 실마리가 되지 않겠지만, 어쨌든 난 가서 그 동상을 봐야겠어. 최소한 보관이 어떻게 생겼는지라도 알아내야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다른 건, 알지? 몸조심해."


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지니가 아주 매섭게 쏘아붙였다.


"안 돼. 루나가 해리를 데리고 갈 거야! 그렇지, 루나?"

"오오, 그래, 내가 갈게."


루나는 즐겁게 승낙했다. 초는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해리가 네빌에게 물었다. 


"이리로 와."


네빌은 해리와 루나를 한쪽 구석으로 인도했다. 거기엔 작은 벽장이 열려 있었고, 가파른 층계로 이어져 있었다.


"이건 매일 다른 곳으로 나가게 돼 있어. 그래서 그자들은 결코 이걸 발견할 수 없었지."


네빌이 말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우리도 이 방에서 나갈 때 과연 어느 곳에 떨어질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거야."

"조심해, 해리. 애버포스씨에게 들었겠지만, 밤마다 복도에는 순찰병들이 있어."

"문제없어. 잠시 후에 봐."


내가 걱정하자 해리가 말했다. 해리와 루나는 서둘러 층계로 올라갔다. 그때 머리 속을 스치고 간 어떤 것에 해리와 루나가 가고 나서 난 층계 올라갔다. 횃불로 밝혀진 그 층계는 길게 이어져 있었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꺾였다. 마침내 단단한 벽처럼 보이는 것 앞에 도달했다. 그 문을 건드리자마자, 벽은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뒤를 흘끗 바라보자 벽은 즉시 다시 봉해진 것을 확인했다. 

나는 마법 교실 앞에 서 있었다. 그때, 유령 하나가 보였다.


"잠깐!"


키가 큰 유령의 뒤를 쫓아서 달려갔다. 유령은 내가 뒤쫓는 것을 알아차리자 단단한 벽을 통과해 달아나 버렸다. 그녀가 사라져 들어간 복도의 문으로 들어갔을 때, 통로 끝에서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미끄러지듯 달아나고 있었다.


"기다려주세요!"


그 유령은 땅에서 몇 센티미터 둥둥 뜬 채 멈추어 섰다. 허리까지 길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바닥에 닿을 만큼 긴 망토를 걸친 그녀는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도도하고 오만해 보였다. 복도에서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지만 한번도 말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회색 숙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래번클로 탑의 유령이시죠?"

"그렇다."


그녀의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부탁입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사라진 보관에 대해서 당신이 말해 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지 알아야만 해요."


순간 싸늘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널 도와줄 수 없을 것 같구나."


그녀는 그만 떠나려는 듯 방향을 돌리며 말했다.


"잠깐만요! 만약 그 보관이 호그와트에 있다면, 전 그걸 찾아야 한다고요, 빨리."

"그걸 탐낸 학생이 네가 처음은 아니지."


회색 숙녀가 비웃듯이 말했다.


"몇 대째 학생들이 날 성가시게 했단 말이야..."

"이건 점수를 잘 받자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 톰 마볼로 리들에 관한 일이에요. 당신은 그를 만난 적이 있나요?"


회색 숙녀의 투명한 두 뺨은 더욱 뿌옇게 변했고, 대답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격해져 있었다.


"물론 나는...."

"그럼, 도와주세요!"


회색 숙녀는 서서히 냉정을 잃었다.


"그... 그건 상관없는 일이야...."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우리 어머니의 보관이랑은...."

"당신 어머니의 것이라고요?"

"살아 있을 때, 나는 헬레나 래번클로였어..... 내가 우리 어머니의 보관을 훔쳤어."

"당신이.... 당신이 어쨌다고요?"

"내가 보관을 훔쳤다고."


헬레나 래번클로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나는 어머니보다 더 똑똑하고, 더 유명해지고 싶었어. 그래서 난 그걸 갖고 달아났어."


회색 숙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사람들 말로는, 우리 어머니는 그 보관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시고, 그걸 여전히 갖고 계신 척하셨대. 그분은 당신의 손실과 나의 끔찍한 배신을 다른 호그와트 설립자들에게까지 숨기셨던 거야. 결국 우리 어머니는 병이 나셨어. 죽을 병에 걸리셨지 나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나를 한 번만 다시 보기를 간절히 바라셨어. 그래서 나에게 퇴짜를 맞고도 나를 오랫동안 사랑해 온 한 남자를 보내어 나를 찾게 했지. 어머니는 그 남자가 나를 찾아낼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계셨던 거야."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 남자는 내가 숨어 있던 숲 속까지 날 뒤쫓아 왔어. 내가 그와 함께 돌아가기를 거부하자, 그는 사납게 돌변했지. 바론은 언제나 성격이 불같았으니까. 내 거절에 분노하고 내 자유를 질투한 나머지, 그 남자는 나를 칼로 찔렀어."

"바론이라고요? 그러니까...."

"피투성이 바론, 맞아."


회색 숙녀가 대답했다. 그리고 입고 있던 망토를 한쪽으로 치켜들어 하얀 가슴팍에 나 있는 검은 상처를 보여 주었다.


"그는 뒤늦게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회한에 사로잡혔지. 결국 내 목숨을 앗아 간 무기를 뽑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그로부터 수 세기가 지났지만, 바론은 여전히 회개의 뜻으로 자기 몸에 쇠사슬에 감고 다니고 있어.... 마땅히 그래야지."


회색 숙녀가 씁쓸하게 덧붙였다.


"그러면... 그 보관은?"

"그것은 바론이 나를 찾아 숲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숨겨 놓은 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 속이 빈 나무 안에 숨겨 놓았거든. 알바니아의 숲이었어. 아주 외진 곳이었는데, 나는 그곳이 우리 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지."

"이 이야기를 그에게도 했나요? 그러니까 볼드모트에게도?"


회색 숙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몰랐어... 그는.... 듣기 좋은 말을 했어. 그는 꼭.... 이해하는 것 같았어... 동감하는 것 같았어..."

"리들이 교묘하게 물건을 빼앗은 사람이 당신이 처음은 아니에요."


내가 중얼거렸다.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면, 그는 얼마든지 매력적으로 굴 수 있으니까요."


결국 볼드모트는 감언이설로 회색 숙녀에게서 사라진 보관이 숨겨진 곳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리고 알바니아의 숲으로 가서 그 보관함을 찾아내고.... 호크룩스가 된 것이겠지. 귀중한 호크룩스가 되자 볼드모트는 더 이상 래번클로의 보관을 거기에 남겨 두지 않았겠지. 


"그가 일자리를 구하러 온 날 밤!"


내가 생각 끝에 불현듯 외쳤다.


"뭐라고?"

"그는 보관을 성 안에 숨겼어요. 이곳에서 가르치게 해 달라고 덤블도어 교수님께 부탁했던 그날 밤에 말이죠!"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왜 그 일자리를 구하러 왔는지.


"그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이나, 아니면 거기서 내려오는 길에 보관을 숨겼던 것이 분명해요! 그렇지만 교사 자리를 얻으려는 시도 역시 나름대로 가치는 있었죠. 그렇게 되면 그리핀도르의 칼까지 훔칠 기회를 얻게 될 수 있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저희가 그것을 반드시 파괴해 보이겠어요."


나는 헬레나 래번클로에게 말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둥둥 떠 있는 유령을 남겨둔 채 떠났다. 아마도... 필요의 방에 숨겨겠지. 이건 추측에 불과하지만....

필요의 방으로 향하는 동안 이상하게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대연회장으로 내려가는 학생 무리는 대부분 잠옷 위에 여행용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설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진작에 들켜버린 걸까? 해리,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서둘러서 필요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킹슬리, 루핀, 올리버 우드, 케이티 벨, 안젤리나 존슨, 앨리샤 스피넷, 빌과 플뢰르, 위즐리 부부, 애드밀과 레나, 레오도 있었다.


"무슨?"

"로라!"


해리가 있는 것이 보이자 나는 빠르게 그에게 달려갔다.


"해리!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학생들이!"

"볼드모트가 오고 있어. 사람들은 학교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어. 스네이프는 달아났어."

"근데 이분들은?"

"우리가 나머지 덤블도어 군대에게 전갈을 보냈어."


프레드가 설명했다.


"설마 모두가 이 재밌는 일을 놓칠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D.A. 회원들이 불사조 기사단에게 알렸어. 그래서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야."

"무엇부터 하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어?"


조지가 소리쳤다.


"우선 어린 학생들부터 내보내고 있어요. 모두가 대연회장에 모여 대열을 갖출 거예요."


해리가 말했다.


"우리는 싸울 겁니다."


엄청난 함성과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층계 발치로 밀어닥쳤다. 불사조 기사단과 덤블도어 군대, 퀴디치 팀의 동료들이 뒤섞인 그들은 모두 지팡이를 뽑아 든 채 대연회장으로 앞다투어 달려갔다. 

사람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어 오직 한 무리의 사람들만이 필요의 방에 남아 있었다. 위즐리 부인이 지니와 말씨름을 하고 있었고, 그들 주위에는 루핀, 프레드, 조지, 빌 그리고 플뢰르가 서 있었다. 애드밀과 레나와 레오는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도 도울 거야."

"하지만 당신은 다른 학교 학생이잖아."


호그와트 학생이 아니잖아....


"조카가 힘내고 있는데 우리만 꽁무니 빼라는 것은 아니겠지?"


레나가 자신의 은빛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응, 여동생이 힘내고 있는데 도망치라는 것은 아니겠지? 마리안느는 지금 마법약을 거의 완성시켰어. 몇 분 정도 더 끓여야 해서 아마도 늦을 거야. 그 마법약을 마시면 넌 살 수 있어."


애드밀이 나에게 말했다. 과연 그럴까?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거네.


"그럼 우리는 도와주러 갈까?"


레오가 말하자 애드밀과 레나는 가 버렸다. 


"넌 미성년자야!"


위즐리 부인이 지니를 향해 소리쳤다.


"난 절대 용납 못한다! 사내애들은 괜찮아. 하지만 넌... 너는 집에 돌아가야 해!"

"안 가요!"


지니가 엄마의 손에서 휙 팔을 잡아 빼는 순간 그녀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저도 덤블도어의 군대란 말이에요!"

"십 대 불량학생 모임이지!"

"그자와 대결하려고 했던 10대 불량학생 모임이죠.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용기를 내지 못햇는데 말이죠!"


프레드가 한 마디 거들었다.


"이 애는 이제 열여섯 살이야!"


위즐리 부인이 빽 소리쳤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너희 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이런 아이를 데려가다니...."


프레드와 조지는 약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엄마 말씀이 옳아, 지니."


빌이 부드럽게 말했다.


"넌 이래선 안 돼. 미성년자는 모두 떠나야 해. 그게 옳아."

"난 집에 갈 수 없어요!"


지니가 소리쳤다. 두 눈에서는 분노에 찬 눈물이 반짝거렸다.


"가족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집에서 혼자 기다리는 건 못 참아요. 그리고..."


지니의 눈이 해리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그녀의 애원하는 눈빛에 고개를 저었다.


"좋아요."


지니가 호그스 해드로 돌아가는 통로 입구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작별 인사를 할게요. 그리고..."


이때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통로에서 나오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구른 것이었다. 그 사람은 제일 가까운 의자로 기어 올라가더니 비스듬하게 걸쳐진 뿔테 안경 너머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제가 너무 늦었나요? 벌써 시작됐나요? 전 이제 막 알았어요. 그래서 전... 전..."


퍼시가 침을 튀기며 떠들어 대다가 순간 말을 잃었다. 여기서 가족 대부분과 맞닥뜨리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한동안 놀라움으로 어쩔 줄 모르는 순간이 길게 이어졌다. 그때 플뢰르가 루핀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불쑥 물었다.


"저어, 아기 테디능 잘 지내죵?"


그것은 이 긴장을 깨뜨려보려는, 무모할 만큼 뻔한 시도였다. 루핀은 깜짝 놀라서 멀뚱멀뚱 그녀를 바라보았다. 위즐리 가족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얼음장처럼 더욱 단단해진 것 같았다.


"저는.... 오오 물론이죠... 아기는 잘 있어요!"


루핀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통스는 아기와 함께 있어요... 친정에..."


퍼시와 다른 위즐리 가족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여기 사진이 있어요."


루핀이 외투 안쪽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더니 플뢰르와 나와 해리에게 보여 주며 소리쳤다. 사진 속에서는 밝은 청록색 머리칼이 한움큼 자란 조그만 아기가 카메라를 향해 통통한 주먹을 흔들고 있었다.


"제가 바보였어요!"


퍼시가 울부짖었다. 그 소리가 어지나 컸던지, 루핀은 하마터면 사진을 떨어뜨릴 뻔했다.


"제가 머저리였어요! 저는 잘난 척 하는 얼간이였고, 저는... 저는...."

"마법부를 사랑했고 가족과 의절한, 권력에 굶주린 저능아였지."


프레드가 말했다. 퍼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난 정말 그랬어!"

"거참, 대답 한번 잘했어."


프레드가 퍼시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위즐리 부인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부인은 앞으로 달려가더니, 프레드를 밀쳐 내고 퍼시를 숨 막힐 정도로 꼭 끌어안았다. 한편 퍼시는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등을 두드렸다.


"죄송해요, 아빠."


퍼시가 말했다. 위즐리씨 역시 빠르게 눈을 깜짝거리면서, 아들을 포옹하기 위해 달려왔다.


"어쩌다가 제정신이 돌아온 거야, 퍼스?"


조지가 물었다.


"벌써 오래전부터였어."


퍼시가 여행용 망토 자락을 들어 안경 밑으로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하지만 빠져나갈 방도를 찾아야만 했어. 마법부에서는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거든. 그들은 언제나 배신자들을 투옥하니까. 나는 용케도 애버포스씨와 연락을 취했는데, 그가 10분 전에 호그와트에서 싸움이 벌어질 거라고 나에게 살짝 알려 주었지. 그래서 이렇게 온 거야."

"좋아.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반장들이 통솔력을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겠어."


조지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퍼시의 태도를 똑같이 흉내내며 말했다.


"이제 올라가서 싸우자. 안 그러면 그 많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전부 다른 사람들 차지가 될 거야."

"그럼, 이제 당신이 저의 형수가 되시나요?"


빌, 프레드, 조지와 함께 층계를 향해 서둘러 출동하는 와중에 퍼시는 인사를 건네며 플뢰르와 악수를 나누었다.


"지니!"


그때 위즐리 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니가 이 화해의 순간을 틈타서, 덩달아 몰래 층계를 올라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루핀이 제안을 했다.


"지니는 그냥 이 방에 잇도록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적어도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게 될 테니까요. 그래도 싸움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건 아니잖아요."

"전...."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위즐리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니, 너는 이 방에 그대로 있어라. 내 말 들어."


지니는 그 제안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엄한 눈초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위즐리 부부와 루핀도 층계로 향했다.


"론은 어디 있죠? 헤르미온느는 어디 있나요?"


해리가 물었다.


"그 애들은 이미 대연회장에 올라가 있을 게다."


위즐리씨가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전 걔들이 지나가는 걸 보지 못했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그들은 뭔가 화장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어."


지니가 말했다.


"오빠와 로라가 떠나고 얼마 안 있어서 말이야."

"화장실?"


방을 가로질러 필요의 방 바깥으로 이어지는 열린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화장실을 확인했다. 


"그들이 화장실 얘기를 했던 게 확실해?"


화장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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