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테와 시에미가 숙소로 돌아온 것은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였다.
"피곤하지 않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콜록. 근데 그런 소원을 해도 됩니까?"
"뭐가요?"
"구름마을에 묻힌 휴우가 일족의 시신을 나뭇잎 마을로 돌려달라니."
"중닌 선발 시험이 구름마을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거였어요. 카오리가 부친 기일 때 시신도 없는 무덤에서 일그러뜨린 얼굴, 그게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그래서 부탁한 거에요. 닌자가 친구를 위한 것이 이상한가요?"
하야테는 고개를 젓었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콜록. 다만 못 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일단 소원이라고 말한 것뿐이니."
숙소 앞에 누군가가 초조한 얼굴로 왔다갔다했다.
"시에미!!"
타에는 두 사람을 보자 재빨리 달려왔다.
"타국에서 뭔 짓을 벌인거야?"
"의료활동…? 연락 못 받았어?"
"봤어! 그래도 걱정이 되잖아! 여긴 나뭇잎 마을이 아니라 구름 마을이라고!"
"걱정, 했어?"
"당연하잖아! 우린 팀이니까!"
타에의 말에 시에미는 머리를 쓰담았다.
"뭐, 뭐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타에는 놀란 목소리를 냈다.
"타에가 팀워크를 생각한 것이 흐뭇해서."
"왠 헛소리야?! 것보다 너 자꾸 날 아이 취급하는데! 내가 너랑 이타쿠보다 1살 많거든!"
"그랬던가?"
"그랬어!!"
"콜록 들어가죠."
하야테가 말하자 숙소로 들어갔다.
"이제 쉬도록 하세요."
복도에서 하야테가 말하고 본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야!"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누군가 외쳤다. 분명 하고로모 타마즈사와 같은 팀원이었던 사치코…. 성난 코뿔소처럼 성큼성큼 다가온 사치코가 시에미의 앞에 섰다.
"닌자가 되어서 남에게 피해주지 말란 말이야! 이 괴물주제에 닌자가 된 것부터가 맘에 안 들었어!"
사치코는 시에미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안 되지."
사치코 뒤에 있던 사람이 그 팔을 붙잡았다.
"같은 마을 닌자를 때리려고 하다니, 뭐하는 짓이야? 동료의식도 없어, 나뭇잎 마을은?"
"넌 뭔데! 저건 괴물이거든!"
사치코는 검은색 탱크탑 브라와 검은 숏팬츠를 입고 진녹색 겉옷을 걸친, 붉은색 머리칼을 높이 포니테일로 묶은 바위마을 쿠노이치를 노려봤다.
"중닌 시험 수험생. 여긴 나뭇잎 마을 뿐 아니라 중닌 수험생들이 쓰는 숙소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꺼져."
그녀는 잡고 있는 사치코의 손목을 거칠게 놔줬다. 사치코는 그녀를 노려봤지만 타국 닌자와 싸워면 국제적 문제로 번지는 걸 알았는지 휙 몸을 돌렸다.
"뭐 저런 싸가지가 있어?! 지 목숨을 구해준지도 모르고."
"오랜만이야, 자쿠로. 6년만인가?"
"보고싶었어! 시에미!"
자쿠로는 시에미를 끌어안았다.
"…아는 사이야?"
"응. 마을 밖에 있을 때 만났어."
"-자쿠로!"
"일행이 부른다. 좀있다 식사 시간 때 보자."
진녹색 눈동자와 치자색 머리칼을 지닌 바위마을 소년이 복도 끝에서 부르자 자쿠로는 시에미 양볼에 입을 맞춘 후 떠났다. 그녀는 "혼고!"라고 외치고 회색빛이 감도는 연한 갈색 머리칼을 아래로 하나 묶은 남자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두 사람의 귓가에 브라운 다이아 귀걸이 한쌍이 새벽빛을 받아 반짝였다.
"타에, 우리도 들어가서 쉴까?"
"응."
방으로 들어가자 이타쿠가 가부좌 자세로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아직도 저러고 있네?"
"아직도?"
"하야테 선생님이 나간 후부터 계속 저런 상태였어. 정신수련한다면서."
"방해하지 말아야겠네. 타에는?"
"난 잘래. 아침은 안 먹을 테니까 패스해줘."
타에는 약하게 하품을 하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잠에 빠지자 시에미는 이타쿠가 올라앉은 침대를 등에 기댄채 바닥에 앉아서 가방에서 꺼낸 책을 꺼내 읽었다.
이타쿠가 정신 수련을 끝낸 건 아침 식사를 알리는 숙소 방송이 들릴 때였다.
"아침 먹을 시간이야?"
"응. 타에는 안 먹겠다고 해."
"밥보다 잠인가? 하긴 밤새 하야테와 너가 돌아오길 기다렸으니까."
시에미와 이타쿠는 조용히 방을 나가고 1층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보니 바위마을 반요를 만났어."
"그 녀석들도 중닌 시험에 참가한 거야?"
"맞아."
시에미가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 가까이 온 한 소년이 말한 거였다.
"혼고."
"혼고!! 치사하게 너만 시에미랑 얘기하다니!"
자쿠로가 셋이 함께 있는 모습에 총총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아직 얘기 안 했어."
"너희 둘 다 꺼져."
"너야말로 그녀 인생에서 꺼지지그래?!"
자쿠로와 혼고는 이타쿠를 보자 엄청 싫은 얼굴을 했다. 9번째 반요를 제외하고 나머지 반요들은 그를 싫어하고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을 알기에 시에미는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녀석들은? 모래는 참석 안 한다고 하던데."
"안개도 마찬가지야."
중닌 선발 시험에 참가한 반요는 바위 마을, 나뭇잎 뿐인가. 구름 마을에서 열리는 구름 마을 반요 얼굴을 볼 수 있지만. 아이가 그런 상태였으니까 참가는 하지 못하겠지.
"일단 밥 먹자."
이타쿠가 말했다. 배식받은 네 사람은 다른 닌자들의 눈에 안 띄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야. 처신 똑바로 해."
자쿠로가 젓가락으로 이타쿠를 가리켰다.
"무슨 예의없는 짓이야, 자쿠로. 식기로 사람을 가리키다니."
"저게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너뿐이야."
"내가 사람이면 그도 사람이야. 그가 괴물이면 나 역시 괴물이고."
"시에미, 알았으니까 그런 험악한 얼굴 하지 마. 고운 얼굴에 주름 잡힌다고. 자쿠로, 너도 자꾸만 시비걸지말고. 그는 시에미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알잖아."
혼고가 두 사람을 달래며 말했다.
"아니까 더 짜증나는 거라고!!"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녀가 앉고 있던 의자가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수험생들의 시선이 네 사람에게 쏠렸다.
"뭘 봐?!!"
자쿠로가 외치자 모두들 고개를 휙 돌렸다.
"횡패 부리지마, 자쿠로."
"젠장!"
"자쿠로!! 미안하다."
욕설을 내뱉으며 나가버리는 자쿠로에 혼고가 두 사람에게 대신 사과하고 그녀 뒤를 쫓았다.
"처신 똑바로 하라는 게 무슨 의미야? 시에미, 나에게 뭔가 숨기고 있어?"
"아니, 아무것도."
"그래. 너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겠지. 이 다음에 뭐할거야?"
"병문안."
"나도 갈게."
"그래."
그건 그렇고 구름마을에서 하는 시험이라서 그런지 구름 마을 닌자가 압도적으로 많네. 모래는 지리적으로 먼 곳이니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안개는 어째서 참석하지 않는 거지? 미즈카게가 막 취임해서 마을이 안정되지 않는 건가? 아니 그러면 더욱더 참가해서 마을이 위협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야 하지 않는가.
"아."
"왜 그래?"
"안개, 참석했어. 한 팀뿐이지만."
"안개마을은 폐쇄적이니까."
안개마을 닌자 서클렛을 착용하고 있는 한 팀을 발견했다. 그치만 반요들은 아니었다.
"다 먹었으면 가자."
두 사람은 혼고와 자쿠로의 깨끗히 비운 식판("이와중에 다 먹고 가다니….")을 치우고 식당을 나섰다.
타에가 혹시나 찾을까 쪽지를 남겨놓고 하야테에게도 말했다. 좀 걱정스럽게 응시했지만 모른척하며 숙소를 나왔다.
"아이! 병문안 왔어!"
시에미는 병실 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안에는 아이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 병실에 머물고 있는 환자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병문객들이 있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들에 뻘쭘해졌다.
"어서와, 시에미!"
땋은 머리를 둥글게 말아서 올린 아이가 흑색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반달처럼 눈웃음을 치며 반겼다. 아이의 옆에는 남성이 있었다. 아이처럼 구룻빛 피부에 7개의 칼을 등에 착용하고, 왼쪽 뺨에 소뿔 문신이 있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였다.
"오, 시스터! 동생 친구~?"
"그만둬, 비 오빠. 오빠는 랩을 정말 못하니까."
"뭐라고~ 바보자식, 이자식~!"
"아아아~! 안 들린다!!"
아이가 귀를 막으며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었다. 그녀가 한쪽 귀에 착용하고 있는 엘로우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흔들려서 찰랑 소리를 낸다.
"얌마! 아이! 비님의 목소리를 막는 것 아니야!"
"맞아!"
구룻빛 피부에 붉은 머리칼 소녀가 외치자, 마찬가지로 구룻빛 피부의 회색 머리칼 소년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취향은 존중해야 해. 솔직히 비님의 랩 실력은 쿨하지 못해."
흰 피부에 금빛 단발머리 소녀(라고 칭하긴 했지만 소녀티를 벗어나 성인이 되어가는 여성)가 허리에 한 손을 얹으며 말했다.
"사무이,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어."
흰 피부에 '電'이 적힌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소년이 사무이-금빛 단발머리 소녀에게 말했다.
"사무이 말이 맞아, 세이!"
아이가 외쳤다. 그러다가 시에미와 눈이 마주쳤다.
"바보 녀석들! 너희 때문에 시에미가 뻘쭘해하잖아!"
"아니, 딱히…."
"시스터! 진정! 안정!"
"내가 진정하고 안정되길 바라면 나가! 비 오빠의 랩을 듣고 있으면 멀쩡한 것도 나빠지니까!"
"어이, 아이!"
"너희는 조용히해! 난 환자야! 카루이! 오모이!"
"환자는 직위가 아니야."
"뭐라고 했어, 니가이~ 카라이~?"
아이와 같이 병실에 누워있는 구룻빛 피부의 두 남성-드레드 헤드의 뚱뚱한 남성(병원에서 제일 먼저 폭열충을 제거했던 남성)과 전체적으로 금발에 한 움큼 적발이 있는 남성이 아이의 시선을 후다닥 피했다.
"오! 뜨거운, 뜨거운 시선!"
"닥쳐, 아츠이!"
사무이와 아이가 동시에 흰 피부와 금발을 지닌 (사무이 동생으로 추정되는) 소년에게 말했다.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두 명의 여성과 흰 피부에 갈색 머리칼의 소년이 들어왔다.
"나뭇잎 마을 닌자?!"
구룻빞 피부, 녹흑색 직모 머리칼을 지닌 여성이 시에미를 발견하고 놀란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구룻빛의 흑발에 은회색 눈동자를 지닌 여성이 무뚝뚝한 시선으로 시에미를 보았다.
"아, 너가 그 닌자구나? 폭열충을 제거했다는 그 닌자. 여긴 무슨 일이지?"
"토로이 선생님!"
날선 목소리에 아츠이란 소년이 은회안 여성을 불렀다.
"친구 병문안에 무슨 일이 있어야 와야 하는 건가요?"
"나뭇잎 마을과 구름 마을이 친구라고? 나뭇잎 마을은-"
"호나미. 시에미에게 상처주면 당신이 내 담당 상닌이라도 용서못해."
아이가 낮게 말했다. 목울대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일어났다.
"그만 가볼게, 아이. 더 이상 있으면 폐가 될 것 같네."
"폐라니! 절대 그렇지 않아! 시에미!"
"4번째랑 5번째도 이 마을로 나랑 같이 중닌 시험을 보러 왔더라고."
"넌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데?"
"중닌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있지 않을까? 온 김에 쇼토 얼굴은 보고 갈 테니까 어서 몸 쾌차해."
"또 봐."
시에미가 나가고 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용서 못하는 거야? 그녀는 나뭇잎 마을에 살고 있을 뿐, 너의 원수가 아닐 텐데?"
그녀의 말에 호나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뭇잎 마을을 위해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야. 5대국 아슬아슬한 평화를 위해 용서하란 말도 아니야. 너 자신을 위해서, 너가 행복하기 위해서 증오를 버리고 용서할 수는 없는 거야?"
"용서해버리면-!"
"그래. 그래도 난 네가 언젠가는 용서하길 바래. 부정적인 감정에 계속 휩싸이면 괴물이 되어버리니까."
"괴물?"
"그래. 괴물. 증오에 증오를 낳고, 원망에 원망을 낳아서 용서하는 것조차, 사과하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이기적인 괴물. 용서는 남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한 것. 자신이 편안해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복수처럼 말이야."
"……."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용서하라는 말이 전쟁의 참혹함을 잊으란 말이 아니야. 닌계대전의 아픔을 잊어서 안 돼. 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으니까.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도 없어."
병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해졌다.
"양쪽 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야. 네가 나뭇잎 마을을 미워하는 것처럼 나뭇잎 마을에는 구름 마을을 미워하는 존재가 있겠지. 너 혼자만 피해자가 아니야. 우리는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쟁의 가해자이기도 해."
닌자라는 직업이 애초에 남의 목숨을 빼앗는 직업이니까 이 길을 선택했을 때부터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길 위에 서있게 된 거다. 그래서 항상 똑바로 걸어가려고 하는 거다. 조금이라도 삐끗하거나 길을 잘못들면 어둠 속으로 가게 될 테니까…. 돌아오는데 힘이 들 거다. 뭐 그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좋고 고운 길로만 가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