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고 나온 시에미는 풍둔으로 말려버린 옷을 입고 욕실을 나왔다. 어깨의 상처는 아물어서 손으로 만져야지만 다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카카시가 깨어있었다.
"정신 차렸네요, 카카시씨."
침구 옆자리에 앉은 시에미를 카카시는 힐끗 살폈다. 팔토시로 평소에 가리고 있던 시에미의 팔은 보일듯 말듯한 흉터로 가득했다.
"하아~."
"난데없이 사람보자마자 한숨이라니 기분이 나쁘네요."
"그냥 서클렛 안에 목걸이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단다."
카카시는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하지 않았다. 시에미도 본능적으로 그걸 알아차렸지만 어차피 진실을 말해도 대답하기 곤란한 내용일 테니 묻지않았다.
"아무튼 오늘 있던 일은 마사키에게 말할 거에요."
"응?"
"상닌이 방심했다고 대신 혼내달라고 부탁할 겁니다."
카카시들은 전 암부인 시에미가 본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건 좀…."
"무모한 짓을 했다는 건 변명할 수 없어요."
카카시의 말을 듣지 않겠다듯 축축한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리자, 7반과 타즈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일어났냐니깐요!"
"정말 뭐에요. 사륜안은 굉장하긴 하지만 몸에 그렇게 부담가는 거였으면 신중히 생각하셨어야죠."
"미안하다."
"하지만 뭐, 이번에 그렇게 강한 닌자를 쓰러트렸으니까 당분간은 안심이겠지."
타즈나의 안도에 시에미는 수건을 뒤집어써서 어두워진 얼굴을 가려버리며 머리를 말렸다.
"그건 그렇고 그 가면 쓴 아이는 대체 뭐였지?"
"그 녀석은 안개마을의 암부 특수부대인 추적닌자가 쓰는 가면이다."
"특수부대…?"
"그들은 통칭 시체처리반이라고 불리며 그 닌자가 살아온 흔적을 일체 없애는 일을 임무로 하고 있지. 닌자의 몸은 그 닌자 마을에서 익힌 인술 비밀이나 차크라 성질, 그 몸에 사용한 비약 성분 등 여러가지를 담고있지. 예를 들어 내가 죽은 경우, 사륜안의 비밀은 모두 조사되어버려 자칫 잘못하면 술법 통채로 빼앗길 위험이 있단다. 즉 추적닌자란 마을을 버리고 도망친 탈주닌자를 말살하고 그 육체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으로 마을 비밀을 외부로 누설되는 것을 막는 가드 스페셜리스트다."
"저기…."
시에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마 자부자는 살아있을 거야."
"뭐?!"
"그거 무슨 소리냐니깐?!"
"추적닌자란 살해한 자의 시체를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법이거든. 증거라면 목만 가져가도 되는데 일부러 자부자의 시신을 업고 사라졌지."
"하지만! 카카시 선생님이 확인했잖아!"
"추적닌자가 사용한 대침(천본)은 급소를 맞지 않는 한 살상능력이 낮아. 의료술에도 사용되기도 하고. 추적닌자는 대침으로 자부자의 목 비공을 노려 가사상태로 만든 걸 거야. 인체 구조 상태를 완벽히 꿰뚫고 있는 추적닌자라면 가사상태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닐 테고."
"그 소년의 목적은 자부자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구하러 왔다?"
"아마도."
"초 지나친 생각이 아닌가?"
"아뇨. 수상쩍은 단서를 찾았다면 늦기 전에 준비해둔다. 그것도 닌자 철칙."
자부자가 살아있단 소리에 흥분해하는 사스케와 나루토에 시에미는 머리를 뒤덮고 있는 수건을 치웠다. 괜한 걱정이었구나.
"선생님, 늦기 전에 준비라니. 뭘 하실 거에요? 당분간 움직일 수 없을 텐데."
"너희들에게 수행을 시킨다."
"에? 잠깐 기다려요! 저희들이 수행해봤자 이길 수 없는 게 뻔해요! 상대는 사륜안 카카시 선생님이 고전할 정도의 닌자인걸요!"
"그 카카시를 구한 건 하닌인 나인데?"
시에미는 팔토시를 착용하며 말했다.
"같은 하닌인 내가 했는데 너희가 못 할리가 없잖아. 너희는 지금 급성장을 이루고 있는걸."
"진짜?"
"내가 거짓말을 한 적 있어?"
"없다니깐!"
"아마 가사상태가 된 몸을 지금은 움직일 순 없을테니 바로 쳐들어오지는 않겠지."
"이걸로 재미있어지겠다니깐!"
"재밌거나 하지 않아."
벙거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소년이 거기 서 있었다. 아이답지 않게 희망을 잃어버린 눈동자.
"누구냐니깐, 넌!"
"오~ 이나리! 어디 갔던 거냐?"
"어서와요, 할아버지!"
이나리란 이름의 타즈나 손자는 타즈나의 품에 안겼다.
"이나리. 제대로 인사하렴. 할아버지를 호위해준 닌자분들이라고."
츠나미가 아들의 행동에 훈계했다.
"괜찮다, 괜찮아. 그렇지, 이나리?"
"엄마, 이 녀석들 죽을 거야. 가토들에게 대항해봐야 이길 수 있를 리가 없어."
"뭐라구, 이 꼬맹이!!!"
이나리의 말에 나루토가 발끈한 건 당연했다.
"알았냐! 잘 들으라니깐! 난 장래에 호카게라는 굉장한 닌자가 될 슈퍼 히어로라니깐! 가토인지 쇼콜라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녀석은 내 상대가 안 된다니깐!"
"영웅이라니 바보 같아.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나직하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수많은 것을 포기한 자의 슬픔이 가득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빨리 돌아가는 편이 좋아."
이나리는 바다를 바라보겠다면서 올라가버렸다.
"미안하다."
타즈나가 대신 사과했다.
"오늘은 쉴까요?"
"엑-! 수행은?!"
"모든 사람이 너처럼 항상 기운이 넘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 나루토."
"오늘은 푹 쉬잖구나."
카카시가 말하자 다들 오늘 사건으로 심력을 소모해 기절하듯 골아 떨어졌다.
"시에미,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잡지 않았지?"
카카시는 자신을 간호하고 있는 시에미에게 물었다.
"그들의 성장을 위해서. 사스케와 나루토는 성장해야만 해요. 그리고 그들은 이번 임무라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에요. 닌자로서의 삶과 죽음은 내가 가르칠 것이 못 되니까."
시에미는 서클렛이 풀어진 카카시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너무 떠들었네요. 늦었으니 그만 자세요."
사륜안이 이식된 왼쪽 눈은 감고 오른쪽 눈동자만 뜨고 있는 카카시에게 시에미는 싱긋 웃었다.
"오늘은 제가 경호를 설 테니."
상냥한 미소와 따뜻한 온기를 지닌 손에 카카시는 안심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에미가 또 다른 손으로 이불에서 카카시의 가슴을 부드럽게 두드린다. 느린 리듬으로, 부드럽게, 다정하게. 카카시는 약간 남아있던 몸의 힘을 뺐다. 닫힌 눈꺼풀의 뒷면에서 그 리듬에 마음을 기울여 흔들흔들 의식이 수마 속으로 잠겨간다.
다음날 카카시는 정오쯤 깨어났다. 아이답지 않는 초연한 얼굴인 시에미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앉아서 창문 밖 하늘을 보고 있었다. 미약한 바람에 풀어놓은 머리카락은 움직임과 동시에 매끄럽게 흘렀다.
"시에미짱~ 약초 다 달여졌어."
"네! 가요!"
츠나미가 부르자 시에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몸을 일으키자 시에미는 카카시가 깨어났다는 걸 알았다.
"일어났네요?"
"그래."
"약 달였으니까 그거 마셔요."
시에미가 약을 가져왔을 때에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트윈테일로 묶어져 있었다. 시에미가 카카시에게 약을 내밀었다.
"큭?! 써!"
"입에 좋은 약은 원래 쓴 법이에요."
마시자마자 차크라가 빠르게 회복된다는 것을 느낀 카카시는 엄청 쓴 맛에도 불구하고 쭈욱 들이켰다. 사실 그 속에 피를 섞어야했기에 엄청 쓴 맛으로 만들었다. 우즈마키 일족에서 시에미와 카린만이 지니고 있는 초재생능력으로, 우즈마키 일족의 생명 에너지 컨트롤 극한 형태로 해서 상대가 신체를 물어서 상대방에게 자기 차크라를 나눠주는 식으로 상대를 재생시킨다. 다만 과다하게 그런 짓을 벌이면 결국 죽게 되어버려 카린에게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입단속시켰다.
목발을 짚은 카카시가 부하들을 숲으로 데려가서는 부하들에게 손을 쓰지 않고 나무 타는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 필요한 곳에 유지시키는 차크라 밸런스 컨트롤을 가르쳤다. 차크라 양이 많이 끌어낼 수 있다고 해도 밸런스 컨트롤을 할 수 없다면 술법 효과는 반감될 뿐 아니라 발동조차 되지 않고,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라는 장시간 싸울 수 없는 약점을 만들어낸다.
"나무 오르기가 끝나면 수면 보행도 가르쳐야겠네요."
"이번은 나무 오르기만 충분할 것 같은데."
수면 보행은 나무 오르기의 응용편이다. 나무 오르기가 흡착이면, 수면 보행은 방출.
"그렇겠지요."
시에미는 지치지도 않는지 수행하는 사스케와 나루토를 바라보았다.
"넌 타즈나씨 호위를 한다고 하지 않았-?"
카카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에미의 몸이 펑하고 사라졌다.
"그림자 분신…!"
차크라가 흐트러진 시에미가 한참을 끙끙 앓다가 진정되었는지 다리 위에 웅크린 몸을 폈다. "콜록!" 마른 기침을 내뱉고 다리 위에 누워버렸다.
"괜찮은가!"
"괜찮, 아요. 좀 피곤해서 그런가봐요."
타즈나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시에미는 팔을 들어올려 눈가에 올려 시야를 가려버렸다.
"얘야…."
"진짜 괜찮아요. 단지 인술을 쓰면 항상 이러니까 잠깐 쉬면 괜찮아져요."
묻지 말라는 듯한 단호한 말에 타즈나는 주위 인부들에게 다시 작업을 움직이라고 말했다.
"난 오늘로 그만두게네. 미안하네. 타즈나."
자기 목숨이 아까운 인부가 타즈나에게 말했다.
"협력은 하고 싶지만 도를 넘으면 우리까지 가토에게 찍히고 마네. 게다가 자네가 살해당하면 본전치기도 되지 않네. 이쯤에서 관두는 게 낫지 않을까. 다리 만들기……."
타즈나는 한참동안이나 침묵을 지켰고 푹 숙인 고개 사이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럴 순 없네. 이 다리는 다른 사람의 다리가 아닌 '우리들'의 다리야. 자원이 적은 가난한 파도나라에 물류와 교통을 가져올 거라 믿고 모두의 힘을 합쳐 만들어온 꿈의 다리일세."
"하지만 그건 전부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야!"
"오늘은 이만하지."
한결 움직임이 편안해진 시에미는 일어나 타즈나에게 다가갔다.
"남은 인부와 기술자로 완공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 어차피 거의 막바지니까 말이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하아."
타즈나가 한숨을 푹 내쉬자 시에미가 그의 등을 토닥였다.
"힘내세요. 꿈이라면서요?"
"허허, 고맙네. 그래. 힘내야지. 이건 나만의 꿈이 아니라 이 마을 전부의 꿈이니까 말이야. 이 다리만 완성되면 이 파도나라를 발전시키고 가토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아무튼 오늘 일은 끝났으니 이만 귀가하시는 게 어떨까요? 호위 대상이 너무 돌아다녀도 곤란하거든요."
"음, 미안하네. 점심거리를 사야 해서 말이지. 괜찮은가?"
"어쩔 수 없죠."
츠나미의 부탁으로 거리로 나온 타즈나와 시에미. 지나치는 사람마다 앙상하게 마르고 두른 옷의 재질은 푸석푸석하고 꺼끌꺼끌해보였다. 거리는 생기가 없다. 어른들은 생기가 없는 눈으로 거리를 배회하며 일거리를 찾고 있고, 아이들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구석에 몸을 말고 있다. 빈의 극치를 보여주는 분위기에 가게라고 차려놓은 곳에는 텅텅 빈 바구니들이 가득했다.
"익숙한가? 표정에 변화가 없구만."
"글쎄요."
야채가게에 들어서니 상태가 좋지 못한 야채들이 비싼 가격에 올라와있었는데 그것을 지불한 타즈나였다. 가게로 나온 타즈나는 너지분해서 품에 안기엔 껄끄러울 수준인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안아올리는 시에미의 행동을 잠시 감탄 어린 눈으로 응시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에게 제 주머니에서 잔뜩 군것질을 쥐어주었다. 갑자기 오는 체온에 놀란 아이는 품에 쥐어진 먹을 것에 더 놀라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오랫동안 씻지 못한 머리임에도 다정하게 쓰다듬고는 바닥에 내려주니 꾸벅 인사하는 모습이 퍽 귀엽다.
"가토가 오고나선 이 꼴이야. 어른들은 모두 희망이 꺾여 오늘 내일 미래도 없이 살고 있지."
전부 다 죽은 눈을 하고 축 늘어진 어깨에선 힘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리가 필요해. 용기의 상징. 저항하기를 포기한 마을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더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정신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그 다리만 완성된다면! 마을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모두 돌아와 줄 거다! 그 다리는, 우리의 희망이다."
시에미는 봄의 볕처럼 말갛게 웃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에요. 희망을 가져요."
다리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그 날부터 계속 안 된다, 죽을 거다, 포기해라, 사방팔방에서 들리는 부정적인 말뿐. 그 사이에서 햇살처럼 웃는 꼬마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온 건 줄곧 타즈나가 듣고 싶던 한마디였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 손등으로 쓱 쓸어내린 타즈나는 시에미의 등을 소리나게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