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간. 사스케와 나루토는 전투적으로 음식을 쑤셔 박고 있었다.


"이야, 초 즐겁구만! 이렇게 여럿이서 식사하는 건 오랜만이군."

""한 그릇 더!""

"두 사람 다 그만 먹어."


시에미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참아서 먹지 않으면 빨리 강해질 수 없다니깐."

"조금이라도 쑤셔 박아서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먹고 토하면 다 도로묵이야. 식사는 적정량을 섭취해야 하는 거야. 둘 다 그만."


시에미가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사스케와 나루토는 뾰로퉁한 얼굴로 그릇을 식탁 위로 올려놨다.


"음, 좋아. 착한 아이들이네."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능!"

"맞아."

"나보다 강해지면 어린애 취급 그만해둘게."


식사가 끝나자 츠나미를 도와 시에미는 차를 우려냈다. 사쿠라는 걸려있는 액자 앞에 섰다.


"저기, 어째서 찢어진 사진 따윌 걸어두는 거에요? 이나리군, 식사 도중에 계속 이걸 보고 있었는데. 이 찢어진 부분 왠지 찍혀 있는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찢어놓은 느낌이네요."

"하아."


사쿠라의 질문에 시에미는 일부러 보란듯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뭐야, 그 반응은!"

"아직 어리니까 어쩔 수 없나."

"너도 우리랑 비슷한 또래거든!"


사쿠라가 시에미의 행동에 발끈해 외쳤다.


"…남편이에요."

"예전에 마을의 영웅이라고 불렸던 사내지."


이나리에게 있어 역린이었던 건지 그는 몇 번 기울이지 않은 차를 두고 나가버린다. 츠나미의 "어디 가니?" 채근하는 질문을 삼킨 이나리는 큰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나갔다.


"아버지! 이나리 앞에서 그 사람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항상…! 정말!"


츠나미가 이나리를 쫓아 나갔다. 타즈나가 눈물을 머금은 채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나리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군요."

"…이나리에겐 피가 통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었네. 초 사이가 좋고 진짜 부모자식 같았지. 그 시절의 이나리는 정말 잘 웃는 아이였다네."


삼키지 못한 눈물이 흘러나와 탁자 위로 툭툭 떨어졌다.


"하지만, 하지만…… 이나리는 변하고 말았어. 아버지의 그 사건과 함께. 이 섬의 인간 그리고 이나리에게 '용기'라는 단어를 완전히 빼앗겨 버린거지. 그날 그 사건 계기로."

"그 사건?"

"그 사건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이 나리에서 영웅이라고 불렸던 남자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서 거친 손에 헝클어진 안경을 벗고 깊게 한숨을 뱉은 타즈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삼년 전, 마을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나리를 구해준 것이 첫 시작이었지. 이나리에게 있서 많은 신념과 가치관을 심어 준 남자는 외국에서 꿈을 찾아 이 섬에 온 카이자라는 어부였다네. 철이 들기 전에 부친을 잃었던 이나리는 카이자와 진짜 부자지간처럼 지냈고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카이자는 마을에 있어서, 나라에 있어서 빛과 같은 사내였다네. 모두가 포기했던 위험한 일들을 해결한 카이자는 영웅이 되었지. 이나리에게 카이자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네. 하지만 가토가 이 나리에 온 뒤…."


입술을 깨문 타즈나의 어깨가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슬픔 때문인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려왔다.


"카이자는 가토에 의해 모두 앞에서 반란분자라며 공개처형 당했다네."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인지 심호흡 한 뒤 미지근해진 차를 단박에 마셨다.


"그 날 이후 이나리는, 그리고 츠나미도, 마을 사람들도 변해 버렸다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른 세수를 하는 타즈나에게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믿고 있던 남자가 처참하게 짓밟힌 장면을 보았다면 그런 눈을 해도 무어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루토가 덜컹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넘어졌다.


"뭐 하는 거야, 나루토?"

"수행이라면 관둬라. 차크라를 너무 썼다. 그 이상 움직이면 죽는다."

"증명, 해보이겠다니깐."

"뭘?"

"이 내가 이 세상에 영웅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니깐."


타즈나에게서 얘기를 들은 다음부터 나루토는 매일 밤 나가서 나무 오르는 수행을 했다.


"나루토 녀석, 어젯밤에도 돌아오지 않는 건가."

"단순 바보니까 매일밤 혼자서 나무 오르고 있어요. 차크라를 너무 써서 지금쯤 죽었을지도."

"나투토군, 괜찮으려나? 어린애가 혼자서 밤새도록 바깥에 있다니."

"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뵈도 그 녀석도 어엿한 닌자니까요."

"어떨까나. 그 우스라톤카치. 정말로 지금쯤 녹초가 되어 있는 것 아냐?"


사스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산보를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산보가 아니라 나루토가 걱정되어서 가려는 것 아냐? 시에미는 옆에 앉은 이나리를 보았다. 


"나루토가 신경쓰이니?"

"에?"


시에미가 이나리에게 물었다.


"나루토가 신경쓰이는 것 아냐?"

"그런 바보 누가 신경쓴다고!"


이나리는 격한 부정했다. 


"잘 먹었습니다."


이나리는 후훗 웃는 시에미에게 도망치듯 방으로 가버렸다. 


"귀여워라."

"너무 놀리지마라, 시에미."


카카시가 말했다. 타즈나의 부탁으로 호위는 사쿠라가 하기로 되었다. 쉬게 된 시에미는 타즈나 집 근처에 있는 나루터에 서서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다가, 나루터가 바로 근처라는 것이 좋구나.


"오랜만이야, 시에미."

"잘 지냈는가?"


들려온 목소리에 시에미는 눈동자를 올렸다. 감귤색 눈동자를 지닌 진갈색 머리를 반-포니테일로 묶은 소년과 푸른색 꽃이 그려진 짧은 치마의 보라색 기모노를 입은 아래로 양갈래로 묶은 진녹색 머리색, 밝은 자주색 눈동자를 지닌 외형의 소녀가 시에미에게 손을 흔들었다. 


"슈이치! 카라타치 료코! 여긴 어떻게 왔어?"

"이 근방에서 네 차크라를 느꼈다."

"그랬구나."

"요즘 어떻지?"

"좋아."


블루 다이아몬드인 귀걸이를 나눠끼고 있는 두 사람은 시에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진짜?"

"진짜라니…!"


말을 멈추고 시에미는 가슴 부근에 주먹을 올려 꾸욱 눌렀다.


"거짓말쟁이."


그 모습에 슈이치가 나지막히 말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 괴로우면 괴롭다고 해. 슬프면 울어도 돼. 부탁이니까 꾹꾹 눌러담지 말고 마음껏 화내. 그런 식으로 자기 감정을 억지로 꾹꾹 눌러담으면 그걸로 끝일 것 같아? 그냥 잠시 아프면 되겠지, 조금 아프면 되겠지, 그런 게 아니라고. 계속 반복되면 너의 몸 속,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서져나갈거다. 원망해도 돼. 미워해도 돼. 너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이상한 소리를 하네. 난 진짜 괜찮아."

"난 거짓말쟁이는 싫지만 넌 싫어할 수가 없어.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료코가 시에미를 끌어안았다.


"나도 내 가족을 사랑해."

"그래도 그 두 녀석은 절대 용서 못 해."

"아하하;;"


그건 어쩔 수 없었기에 시에미는 두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감동스러운 재회도 좋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다."

"해야 할 일?"

"그래. 이 근방에서 흑단을 넣은 무리가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슈이치가 시에미에게 말했다.


"흑단…."

"료코, 가자."

"가고 싶지 않아. 떨어지고 싶지 않아. 7년만에 다시 만났는데!"


료코는 시에미의 품에서 투정을 부렸다.


"미즈에. 우린 의무가 있어. 그걸 져버려서 안 돼."

"알고, 있어."

"알았지?"

"응.


시에미가 엄하게 말하자 료코는 그녀의 품에서 나왔다.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래?"

"뭔데?"

"불의 나라에서 파도나라로 오는 길목에 히무로 시라유키와 카구야 시로츠키를 결계술에 집어넣고왔는데. 그 두 아이를 부탁해도 될까? 소녀 둘이야. 덤으로 오니 형제도 있어."

"여자아이인가?"

"슈이치!!"


료코는 여자아이라는 말에 반응을 보인 슈이치에게 날카롭게 대했다. 질투인가.


"그 아이들이 신경쓰이는 것을 보면 또 혈계한계야?"

"부탁할게. 결계술이 풀렸을 테니까 음…."

"걱정마라. 금방 찾을 수 있다."

"흑단쪽은 내가 처리할게. 그래서 그 무리가 누구라고?"

"가토 컴퍼니다."

"정말 내가 처리해도 되겠네. 어차피 그쪽과는 곧 만날 테니까."

"그럼 부탁하지. 언젠가 또 보지."

"응. 또 봐. 응? 인사 안 해줄거야, 료코?"


부드러운 말에 료코는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또 봐, 시에미. 그땐 조금 더 많은 애기를 하자."

"응."

"그래도 지금 시대는 평화로워서 다행이다. 너랑 이렇게 얘기할 시간이 주워졌으니까."

"그건 그러네."


슈이치가 말하자 료코는 한결 낫아진 얼굴빛을 했다. 

늦은 그날 밤, 사스케와 나루토는 아직도 수행을 하는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늦네. 나루토는 그렇다쳐도 사스케군까지…."


사스케에게 부축받으며 나루토가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너희들? 초 기진맥진 상태잖아."

"헤헤, 우리 둘 다 정상까지 올라갔다니깐."

"나루토, 사스케. 너희들도 다음부턴 타즈나씨 호위에 붙어라."

"오우!"


나루토가 기운차게 대답하다가 사스케 쪽으로 휘청거려, 두 사람은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타즈나, 츠나미, 카카시, 사쿠라, 시에미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초 금방이면 다리도 완성이다. 너희들 덕분이다."

"그렇다해서 너무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저녁 먹고는 탁자 위에서 엎드려서 자려는 나루토에 시에미가 흔들어 깨웠다.


"나루토, 자려면 방에 가서 자. 불편하게 여기서 자지말고."

"으응…."

"이런이런. 차크라를 너무 쓴 것 같네."

"왜!"


이나리가 탁자를 거세게 손바닥을 치며 벌떡 섰다.


"어째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하는 거지? 그래봤자 가토와 그 부하들에겐 못 이겨! 아무리 노력해도! 정말 강한 녀석에게 못 이긴다고! 너희를 보고 있으면 화가 나!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견이나 하고! 언제나 히죽히죽 웃고! 괴로움이나 그런 건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어린애가 제멋대로 내뱉은 말은 참을 수 있다만 마지막 말은 조금 그런걸.


"그럼 비련의 주인공처럼 질질짜고 있기만 하면 된다는 거냐. 너 같은 바보는 평생 질질짜고나 있어라! 울보 겁쟁이 녀석아!"

"나루토!"

"괴롭다고 힘들다고 티내는 건 너 같은 꼬마들의 특권이지."

"…?!"

"아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히죽거린다고 했던가?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사람의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거라. 정신까지 나약한 패배자 꼬맹아."


이나리는 우즈마키 남매 기백에 흠칫 놀라 뻣뻣하게 굳어있다가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나루토, 방까지 갈 수 있겠어? 사쿠라, 나루토 좀 부축해줘."

"에엑!"

"부탁할게."

"어쩔 수 없네. 자 가자, 나루토."

"고맙다니깐, 사쿠라짱~!"


사쿠라가 나루토를 데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왜 그렇게 대한 거냐."


카카시가 나가고(설마 이나리를 달래주러 간 건가?), 사스케가 차를 마시고 있는 시에미에게 말을 걸었다. 


"너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나?"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좋아하는 거야. 굳이 말하자면 정원사 마음일까? 씨앗이나 구근들을 보고, 이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까 두근거리며 설레는 그런 마음. 물론 기대한 만큼의 꽃을 피워내지 못할 때도 있지. 그래도 그것이 그 씨앗이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피워낸 거라면 얼마든지 존중해줄 수 있어. 하지만 아예 꽃조차 피지 못할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 이미 한 번 꺾여서 의지도 뭣도 없고, 그저 세상에 한탄과 힘없는 저주만 퍼붓는 한심한 꼬맹이 따위 존중해 줄 이유가 전혀 없어. 의지는 중요한 거야. 설사 그 의지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복수라도, 끝이 파멸 뿐인 야망이라도 말이지."


시에미의 말에 사스케가 움찔했다. 뭐 그것들이 앞을 막는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네가 말한 그 가능성은 아직 있지 않아?"

"흐음?"


사스케가 말하자 시에미가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변호를 하다니 별일이네. 이나리가 마음에 들었어?"

"어리잖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함은 나도 알고 있어."


아직도 그때 얽매여있는 건가? 


"사스케, 너도 올라가서 그만 쉬도록 해. 사쿠라에게도 쉬라고 전해줘."

"그러지 뭐."


독한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마시면 하지메가 뭐라고 잔소리를 할 텐데…. 또 화주로 참아야 하는 걸까.

시에미가 흰 환약을 꺼내고 입에 집어넣었을 때 카카시가 이나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참으로 안 어울리는 짓을 하셨군요."

"아하하. 안 잤구나."

"어린아이가 밖에 있는데 잠이 와야 말이죠."


시에미는 홀스터에 약통을 집어넣고 무릎에 올려두었던 두루마리를 정리했다. 


"저기…."

"밖에 너무 오래 있었나보네. 감기라도 걸릴 생각이 아니라면 다음부터는 생각있게 행동하도록 해."


시에미가 이나리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자국을 쓰다듬었다. 내뱉은 차가운 말과 다르게 그녀의 손은 굉장히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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